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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021-09-17 09:09:15

<토베 얀손> 사랑이라는 그림에 눌러 담은 예술가의 삶

<토베 얀손> 리뷰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토베 얀손>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핀란드의 명망 높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히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토베 얀손(알마 포이스티)'은 주관이 뚜렷한 예술세계로 인해 아버지와 세상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이에 예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틈틈이 만화 캐릭터인 '무민'을 그리면서, 또 유부남 국회의원이자 애인인 '아토스(샨티 로니)'와 만나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토베는 연극 연출가 '비비카(크리스타 코소넨)'로부터 삽화 의뢰를 받고, 두 예술가는 이내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비비카의 도움을 받아 시청 벽화를 그리며 인정받고 그녀와의 사랑 속에서 의도치 않게 무민의 세계관도 넓혀나가던 토베. 그러나 비비카가 돌연 파리로 떠나면서 안정을 찾은 듯 보였던 그녀의 사랑과 예술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 캐릭터들 중 빼놓으면 섭섭한 캐릭터인 무민은 국내에서도 전시회가 열리거나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이 진행되는 등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캐릭터의 유명세에 비해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트롤이 원형인 이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창작자인 토베 얀손이 왜 이들을 그렸는지, 그리고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토베 얀손>은 196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으며, 핀란드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던 예술가 토베 얀손의 덜 알려진 이야기를 담담히, 다만 꾹꾹 눌러 담아 그려낸다.

 

 

자이다 베르그로트 감독은 토베 얀손을 두 개의 갈림길 사이에서 끝없이 고뇌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우선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예술가의 인생에 주목한다. 핀란드에서 가장 뛰어난 조각가인 아버지 밑에서 예술가로 자라난 만큼 순수 회화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토베는 그림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남들이 보기에 그저 자연 풍광을 추상적으로 그린 듯 보이는 그림에는 상황과 때에 맞춰 달라지기도 하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다. 여성의 흡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던 시기에 자신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예술가 지원금 선정 여부가 달린 중요한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한다. 

 

반대로 틈틈이 그려오던 무민 만화에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서 그녀의 고통은 싹을 틔운다. 가족, 친구, 심지어 애인들마저 그런 그녀의 재능은 정작 만화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삶이 극적인 순간이나 전환점에 도달할 때마다 항상 무민을 그리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는 숲으로 도망가는 무민을 그린다. 비비안과 사랑을 속삭이던 행복함은 늘 붙어 다니면서 둘만 알 수 있는 언어로 대화하는 토프슬란과 비프슬란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한편 이별의 아픔과 사랑의 상처는 겉으로는 늘 친절하지만 내면은 흉터로 가득한 캐릭터의 원형이 된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 높게 평가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을 가장 잘 담아내는 것이 모두 어긋나다 보니 한 명의 예술가로서 토베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 

 

 

이때 영화는 스스로 작가, 화가, 각본가, 만화가 중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그녀의 내적 혼란을 보다 다양한 층위로 구성한다. 토베의 내적 고민과 외적 갈등을 다룬 에피소드를 하나씩 넘나들며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이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 불협화음을 그녀의 인간관계를 통해 외면화하며 그녀의 예술적 고뇌와 나머지 인생의 갈등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다. 그 결과 자칫 난해하거나 낯설 수 있던 그녀의 아픔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뇌는 가족, 친구, 애인들과의 갈등을 통해 익숙한 감정으로 치환되고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새로운 초상화에 만족해하며 아토스에게 그 의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그녀는 다음날 아침에 월세를 독촉하는 집주인과 본처에게 전화를 받고 자신을 떠나야 하는 애인이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시청 벽화를 그리게 되어 마침내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후에도 딸의 예술 세계를 못마땅해하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악화된다. 카메라는 사인회를 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토베와 순수 미술가로 성공을 거둔 절친들을 한 앵글에 담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토베는 자신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아이들이 작가인 자신보다 캐릭터들을 더 사랑한다고 자조하고, 동시에 파리에 열리는 전시회에 와달라는 친구의 초청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범성애 성향을 지녔던 토베가 남자 연인인 아토스, 그리고 여자 연인인 비비안과 함께하는 순간은 특히 눈에 띈다. 두 연인이 토베와의 관계를 대하는 상이한 태도는 토베의 마음을 뒤집어 밖으로 꺼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차이는 토베에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러난다. 첫 번째 연인이었던 아토스는 결혼을 그 자체로 자신의 순수한 감정이 발산된 결과로 여기며, 그래서 그는 토베와의 결혼을 하나의 종착역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신중하다. 반면에 비비안에게 결혼은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발판에 불과하다. 그녀에게 결혼은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방패막이고, 그래서 비비안은 토베와의 관계 역시 사랑의 흐름이 자유롭게 거쳐가는 간이역처럼 생각한다. 

 

이는 토베가 그림과 만화에 상반된 가치를 부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토스가 항상 토베와의 관계에서 진지하고 그녀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순간에도 일관된 애정을 표현한 것처럼 토베는 마지막 순간까지 순수미술, 순수 회화를 향한 로망을 숨기지 못한다. 반면에 비비안이 사랑을 쉽게 생각하듯이, 토베는 무민과 만화에 그리 큰 애정을 주지 않는다.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계약이 끝나자마자 만화 연재를 포기하고, 동생이 만화를 대신 이어가는 것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토스와 비비안 사이에서 방황하듯 내심 그림과 만화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토록 복잡한 토베의 마음과 예술도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는 그녀의 삶은 영리한 연출과 편집의 힘 덕분에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영화가 유사한 춤 장면을 반복해서 선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두 연인 사이에서 선택을 내린 순간 그녀는 혼자 춤춘다. 이때 카메라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의 어두운 얼굴에 주목하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 모습을 포착한다. 흥미로운 것은 토베의 춤이 오프닝 장면에서 먼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토베의 춤은 좁게 보면 사랑의 아픔을, 길게 보면 그전까지 계속해서 보여준 한 예술가의 인생을 동시에 함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엔딩 크레디트에서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모습으로 춤추는 실제 토베의 영상과 대조를 이루며 토베의 선택과 결단에 무게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편집은 토베 얀손의 삶에 녹아 있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결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한 박자씩 느리게 화면을 전환시키면서 매 순간마다 짙은 여운을 남기는데, 그렇다고 해서 템포가 늘어지거나 지루해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긴 생애 중 무민이 만들어지고 유명세를 얻게 되는 약 10년 간의 시간 안에서 여러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보여주는 만큼 시간의 흐름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풍부하고 구체적인 감정 묘사는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 텀이 길어지는 에피소드들에게 통일성을 부여한다. 그 결과 <토베 얀손>은 결코 모든 장면이 유기적으로 유려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지만, 중간중간 끊어지는 둔탁한 지점의 매력이 그조차도 잊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스케치한 한 예술가, 더 나아가 한 인간의 삶과 고뇌

작성자 . DAY

출처 . https://brunch.co.kr/@potter111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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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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