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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만큼은 맘껏 웃고 싶을 때, <패딩턴>
오늘의 영화는 바로,
맘껏 웃고 싶을 때 보는 영화 <패딩턴>입니다.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코미디 | 영국 | 95분
감독 폴 킹
출연 벤 위쇼, 니콜 키드먼, 휴 보네빌 등
등급 전체 관람가
줄거리
폭풍우에 가족을 잃은 꼬마곰 ‘패딩턴’은 페루에서 영국까지 ‘나홀로’ 여행을 떠난다.
런던에 도착한 ‘패딩턴’은 우연히 브라운 가족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가족을 찾아 나선다!
한편, 말하는 곰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악당 박제사 ‘밀리센트’는 호시탐탐 ‘패딩턴’을 노리는데…<패딩턴>의 T.M.I
ⓒ 네이버 영화
<패딩턴> 원작은?
1958년, 영국의 문학작가 마이클 본드의 '내 이름은 패딩턴'이 영국에서 첫 출간되면서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 패딩턴 베어 시리즈는 3,500만부 이상 판매,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패딩턴 속편
2015년에 패딩턴이 개봉한 후, 2017년에 패딩턴 2가 개봉했고,
현재 패딩턴 3 제작 중에 있습니다.
"맘껏 웃게 만들다!"
ⓒ 네이버 영화
<패딩턴>은 페루에 살던 꼬마곰이 런던에 오면서 벌어지게 되는 일을 담았습니다.
꼬마곰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 상황 자체도 너무 재밌긴 하지만,
꼬마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런던의 모습 또한 유쾌하게 담아냈습니다.
칫솔이 어떤 용도를 쓰이는 물건인지 모르고 귀를 닦기도 하고,
안내 문구를 잘못 이해하고 하는 행동, 패딩턴의 행동 하나하나가 웃음을 띄우게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출연진"
ⓒ 네이버 영화
벤 위쇼, 니콜 키드먼, 휴 보네빌, 샐리 호킨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들이죠?
세계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여배우 중 한 사람으로 떠오르는 니콜 키드먼은
자신의 딸을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냉정하고 집착이 강한 박제사 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냈습니다. 주인공 '패딩턴' 목소리는 가디언의 Hot List 2007에 주목해야 할 배우로 선정된 벤 위쇼가 맡았습니다. 밝고 천진난만한 패딩턴 그 자체를 보여줘 극의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보고싶다?
-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
-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귀여운 캐릭터와 유쾌함이 더해져 큰 재미를 선사하는
지금까지 영화 <패딩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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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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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하지 못한 실패에도 나 자신을 사랑하기
- 영화 <엔딩스 비기닝스>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 먼저 관람하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늘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많은 시간을 취업과 성공을 위해 투자한다. 그런 삶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나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하고, 어떤 성공의 길을 가게 될지를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찾아갈 때마다 새로운 직업을 찾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반복되는 삶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태도나 감정을 찾아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취향을 확인하고 그것을 더욱 굳혀간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사랑받는 것을 느끼고, 그런 사랑의 과정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그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오면, 자존감은 다시 떨어지고 감정은 계속 변해간다. 사랑에 실패한 많은 사람들은 이불속에서, 거리에서, 술집에서 상실감을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과거의 잔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괴롭힌다.
이별의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주인공 다프네
영화 <엔딩스 비기닝스>는 사랑이 끝난 이후 찾아온 인연 때문에 혼란을 겪는 주인공 다프네(쉐일린 우들리)의 이야기다. 직전에 사귀던 애드리언(매튜 그레이 구블러)와의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살던 집을 나와 언니 집에 살게 되는 다프네는 영화 초반 많은 눈물을 보여준다. 이불속에서, 거리를 걸으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애드리언과의 기억은 그의 심장을 파고들며 괴롭힌다. 더 이상의 상처와 실패를 하지 않으려 금주를 하고 누군가와의 데이트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는 다프네가 연인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천천히 보여준다. 과거의 연인과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던 공간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있다. 다프네는 다니던 직장과 머무르던 집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영화 속 내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려 애쓴다. 그러다 언니의 생일 파티에서 다프네는 프랭크(세바스찬 스탠)와 잭(제이미 도넌)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애써 관계를 발전시키려 애쓰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가진 매력에 끌린 다프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만나며 다시 인연을 만들어가도 될지 고민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지친 삶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다프네도 두 명의 새로운 사람들 만나게 되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상처 받았던 마음을 조금은 치유를 해나갔을지 모른다. 남자답고 재미있는 남자 프랭크와 다정다감하고 지적인 남자 잭은 다프네에게 주는 매력과 끌림의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아직 과거의 연인 애드리언과의 감정이 완전히 다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프네는 영화 내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별 후 따라오는 자기 비하의 감정과 새로운 인연
모든 실패에는 자기 비하의 감정이 따라온다. 자신이 진짜 실수를 했을 수도 있고, 타인의 실수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두 사람 각각의 실수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을 수 있다. 다프네가 느끼는 그 감정과 생각 안에는 그 실수와 실패뿐인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새로운 두 사람과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영화는 다프네가 잭과 프랭크를 각각 만나는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세세히 묘사한다. 서로의 눈을 보며 새로운 관계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다프네의 모습은 영화 초반 슬픔에 빠져있는 다프네와는 다르게 보인다.
확신 없이 시작된 관계 사이에서 다프네는 계속 고민을 계속한다. 감정적으로 끌리는 프랭크, 이성적으로 옆에 있고 싶은 잭 사이에서 고민하는 와중에 과거의 상처와 실패는 계속 그의 눈에 아른거린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연인과 이별한 이후 그 추억을 한동안 계속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과거에 했던 행동과, 자신의 실수들을 떠올리며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 다시 자책하게 된다.
영화는 이별 이후 삶에 대한 태도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다프네가 처한 상황과 그가 하는 선택 자체는 관객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 이 이야기는 다프네가 겪는 실패와 상실감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달콤하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성들과의 관계는 꽤 로맨틱해 보이지만, 그 관계들로 인해 다프네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선택을 하는 데에는 결국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함께 실패한 과거에 대한 감정을 잘 정리해야 한다.
결국 사랑해야 할 건, 나 자신
객관적인 시각에서만 영화를 바라보면 다프네는 결코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수하게 많은 연인들이 다프네와 같은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경험한다. 의도치 않게 실수의 길로 들어선 주인공 다프네의 경험을 통해, 영화는 수많은 관계의 실패와 자신의 실수는 인생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앞으로 계속 내딛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렇게 자신을 아끼며 한 발씩 나아갈 때, 이별에 의한 트라우마와 과거에 대한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어떠한 상황이 올지라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의 의지다.
감독 드레이크 도레무스는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나 <뉴니스> 같은 현실적이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번 <엔딩스 비기닝스> 에서도 세 등장인물이 데이트할 때 아름다운 음악이 같이 등장하고, 배우들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볼 수 있는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의 감정 변화를 아름답게 묘사해 나간다.
과거의 실패와 현재 맞닥뜨린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화 <엔딩스 비기닝스>는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과거의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좀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삶을 자신을 사랑할 때 엔딩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abbitgumi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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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그때의 힘
실패의 느낌을 나는 통각으로 기억한다. 무언가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덜컥 접할 때,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라든지 실연당했을 때라든지 뭐 그런 때. 몸인지 마음인지 알 수 없는 어딘가 갑자기 주사기가 꽂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부터 아릿하게 통증이 퍼지고 눈물이 고이는 그 기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겠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그런 느낌이 있다. 실패감과 자괴감, 무력감과 절망감이 몸을 뒤덮는 아픔.
그리고 그게 두렵기 때문에 때로는 올인해야 하는 순간에 주춤거리게 되기도 한다. 있는 힘껏 몸을 던져야만 공중그네를 탈 수 있는데 떨어질까 두려워서 몸이 빳빳하게 굳는다. 다음 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순간의 아찔함이 자꾸 뇌리를 울려와 뛸 수가 없는 그런 마음.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있는 힘껏 뛰어야 한다. 공중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그 이유는 분명 그 두려움이니까. 그러니까 못 할 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될 일도 그르친다고, 그러니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쉽지. 모든 희망의 말에 냉소적이 될 만큼, 나는 계속 그런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있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이 영화가 너에게 많은 힘을 줄 것 같아.
나한테는 그런 영화였거든.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주연 배우는 마리옹 꼬띠아르라 했다. 그럼 시놉시스는? 복직을 앞둔 직원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보너스를 택했고 산드라에게는 이제 돌아갈 자리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작업반장이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된다. 산드라는 16명의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들을 설득해 보려 하고, 주어진 시간은 주말 이틀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deux jours, une nuit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고, 또 다른 제목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이게 논술 문제라고 하면 차라리 뭘 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영화 시놉시스라니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강한' 마리옹 꼬띠아르라면, 아마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꼿꼿한 인물이 투쟁을 하는 모습이 감동적인 그런 영화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내 예측은 무참히 깨졌다. 푸석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가 받은 전화, 전화를 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오븐에서 타르트를 꺼내고 칼로 자르는 그 일상적 허드렛일의 느낌... 거의 도망치다시피 뚝 전화를 끊은 산드라의 얼굴에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보여주는 강인함도 아름다움도 없었다. 다만 실패의 통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얼굴이었다. 억지로 신경안정제를 꾹꾹 눌러 삼키는 건 또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가.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저 표정을 지을 때의 마음과 생각과 얼굴 근육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영화는 단조롭다. 처음에 전화를 걸어주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입장의 사장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함께 내 준 동료도 있고,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산드라의 복직 찬성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해준 동료도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산드라가 주소를 알아내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산드라의 대사는 계속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재투표를 할 거고, 쉽지 않겠지만 날 위해 투표해 주면 좋겠어. 매번 벨을 누르기 전에는 긴장하고, 잘 되면 얼떨떨해하면서도 환한 웃음이나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만 잘 되지 않을 때는 또다시 나락으로 빠진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감정만큼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니 오히려 그간의 노력을 다 수포로 돌리게 될까 봐 두려워서인지 점점 더 괴로워한다.
그만 하고 싶어, 그냥 관둘래,라고 말하며 울기도 여러 번 한다. 심지어 남은 신경안정제를 모두 다 한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산드라는 많이 아팠고, 아프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아직도 건강하지 않다. 희로애락을 가파르게 오고 가야 하는 이 시간, 잘못한 게 없음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조르듯이 부탁해야 하는 이 입장이 산드라에게는 쉽지가 않다.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다 산드라가 주저앉을 때마다 붙잡아 주는 건 그 남편 마누다. 마누는 산드라의 아픔에 같이 한숨 쉬고, 단조로운 몇 마디 말을 건네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산드라가 울면서 그냥 다 관두겠다고 할 때도, 신경안정제를 한번에 먹어 버렸을 때도, 병원에 누운 산드라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마누는 그렇게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산드라가 걱정하는 일들이 마누에게도 큰 걱정거리일 텐데도, 산드라가 신경안정제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산드라를 신경 써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가사가 잘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줄일 만큼 예민하게 신경 쓰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톤을 고요하게 유지한다. 마누는 반짝반짝 웃는 얼굴로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대본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도 않을 단조로운 몇 마디 말만을 한다. 그러나 그 말과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산드라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러나 산드라가 그 힘을 직접적으로 느끼거나 그런 마누가 빛을 발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그냥 산드라는 허덕이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사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엄청난 대형 사건보다 매일 반복되는 것들일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를 그런 일상에서 구원해 주는 것도 그런 사소함이다. 공원에서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 점심 먹고 고르는 커피 한 잔, 뭐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는 매일 비슷비슷한 반찬과 이불 무늬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계속 함께 있는 사람들. 마누는 산드라에게 그런 사람으로 있어 준다.
주변 인물이 마치 게임 속의 성직자처럼 몇 번 힘을 부어주고, 그러면 주인공이 빙의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으랏차차 최종 보스를 무찌르고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구도는 사실 만화 속에나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그런 슈퍼히어로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고, 그러니 이 영화도 구태여 말하지도 강조하지도 않고 슥 담았다.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라고 해서 "1박 2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절망에 빠져 날려버린 한 번의 밤을 제외한 이틀이었다. 산드라는 계속해서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의 상황과 사정도 모두 다르고, 입장도 모두 다르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동료들을 범주화하지 않으려고 공 들인 느낌이 물씬 난다.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 것은 물론이다. 전화로 간단하게 찬성표를 약속한 동료조차도 이름이 카데르라는 걸 몇 번이나 불러준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입장을 말하는 동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료들 중에는 공교롭게도 이혼을 결심한 여자 동료가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지금 생활을 버리고 남자친구와 새 출발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딱 잘라 거절한다. 다른 한 명은 남편이 절대 안 된다고 돈이 빠듯하다며 펄펄 뛰는 걸로도 모자라 산드라에게 뻔뻔하다고 욕하는 걸 두고 그 집을 나와 버린다. 그리고 산드라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하며, 같이 차를 타고 가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클럽에라도 간 것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시원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 음악이 강조되는 부분은 자동차에서 음악을 듣는 두 장면뿐인데, 각각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이민계 동료들도 있다. 부득이하게 둘 다 집을 비운 상황이다. 휴일이라고 쉴 수 없는, 다른 일을 또 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고 그러니 더더욱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에서는 동료의 아내가 집을 비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산드라가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들의 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고는 짤막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나가는 길에 급하게 물을 사던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박스를 나르고 있던 그는 여전히 불편해하면서도 도저히 안 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다른 동료는 축구장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있던 참이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와서는 준비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는 산드라에게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런 투표를 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당연히 네 복직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이야기한다. 미쟝센에 정말로 햇빛이 많았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 이 장면은 축구장의 잔디밭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장면처럼 기억되어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를 노스탤지어를 자아냈다. 그의 이름은 티무르였는데, 나는 막연하게 그의 먼 선조를 상상해 보았다. 집에 들어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벙글벙글 웃고 있었을, 그의 머나먼 조상의 삶에 비하면 오늘 그의 삶은 얼마나 빠듯하고 이방인의 것이 되었나. 그럼에도 그 풍족한 마음은 잃지 않아서 그는 산드라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눈물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전의 동료가 보인 불편한 표정도 이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내가 상상한 선조 대였다면 분명 그도 넉넉하게 웃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산드라에게 벌컥 화를 낸 사람도 있고, 생활에 지친 얼굴로 삶의 경비를 헤아려 보며 안 된다고 조곤조곤 설명한 사람도 있었고, 산드라 복직의 당위성 자체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없는 척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제롬의 집에서 산드라만큼이나 어려운 제롬의 선택을 듣는다. 산드라의 복직에 찬성해야겠지만, 그러면 계약직인 제롬은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될 게 뻔했다.
아, 계약직. 70-80년대 노동의 아픔이 집약된 단어가 저임금이라면 오늘날의 아픔은 계약직이라는 단어로 수렴되는 거 아닐까. 그 아픈 단어까지도 동료들 안에 담아낸 이 넓은 스펙트럼. 제롬의 말투가 덤덤해서 더 곤혹스러웠다. 아무튼 산드라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월요일 아침 8시, 작은 회사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누구도 악역은 없는데 누구나 괴로운 시간이었다.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는 작업반장조차도 산드라에게 자기 정말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진실일까?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두세 명만 돌아와도 이야기는 와전될 수 있고, 입장의 차이가 첨예한 이런 때도 물론 예외는 아닐 테니까. 아무튼 작업반장까지 포함해 절대악은 없지만 피해는 생기는 괴로운 상황이 되었다.
투표의 결과는 8대 8. 최선을 다했지만 과반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산드라의 복직은 성사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소식,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소식, 누군가에게는 복잡 미묘한 심경이 드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산드라는 담담하다. 오히려 선심 쓰듯 산드라에게 '계약직 기간이 끝나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일어날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회사를 빠져나가며 마누에게 전화를 걸고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맞다. 산드라는 싸웠다. 동료를 설득한 게 아니라 삶과 싸웠다. 그리고 이건 패배일까 승리일까? 객관적인 지표가 변하는 건 별로 없다. 처음에 산드라가 울면서 이야기했던 괴로운 일들이 다 일어날지도 모른다. 임대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생활은 더 빠듯해질 것이며,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날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마누의 한숨이 늘고 산드라가 눈물을 훌쩍거리는 날들이 또 있을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은 정말로 내일을 위한 시간이었다. 산드라는 그 시간 동안 건강해졌다. 복직은 하지 못했지만 다른 일을 구해서 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태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한 번 병원균에 맞서 본 몸은 항체를 만들어낸다. 한 번 싸워본 사람은 싸움의 감각을 익힌다. 그렇게 우리는 연약한 와중에 실패와 싸우며 역설적으로 강해진다. 실패한 사람도, 실패가 두려워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이나 따스하고 예쁜 말이 아닌, 별 거 아닌 일상성으로 다르덴 형제는 우리를 위로한다. 나도 당신도 약하고 두렵지만 분명 그렇게,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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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두 멍청한 놈들이 만든 영화'라고?
7★/10★
괴상하고, 황당하고, 어이없게 웃기고, 그럼에도 감동적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언급할 내용이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영화만큼이나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넘쳐난다.
•-제작사가 ‘A24’다. 〈문라이트〉, 〈킬링 디어〉, 〈더 랍스터〉, 〈미나리〉, 〈애프터 양〉을 제작한 바로 그 제작사 말이다. A24가 역량 있는 제작사인 건 분명하지만 기존 포트폴리오의 연장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논하면 곤란하다. 이전 영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2022년 3월에 미국의 단 10개 극장에서만 개봉했다. 그런데 극장 당 5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역대 극장 당 수입 기준 전체 3위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3,000개 극장으로 상영을 확대했고,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루소 형제가 제작했다. 멀티버스 소재를 활용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결이 완전히 다르다. '정통 블록버스터' 멀티버스와 'B급 코미디' 멀티버스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양연화〉, 〈라따뚜이〉 등을 오마주한 장면은 덤이다.
•-양자경이 할리우드 진출 20년 만에 단독 주연을 맡았다. 원래 성룡을 주인공으로 낙점한 후 양자경을 그 부인 역에 캐스팅하려 했으나 각본 과정에서 서사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 주인공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씨네필이 주로 활동하는 영화 평론 사이트 레터박스에서 ‘올타임 베스트 250’ 1위에 올랐다. 이전에는 〈대부〉, 〈기생충〉이 차지했던 왕좌다.
이제 영화 이야기. 그러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매력을 글로 설명하기는 영 어렵다. 줄거리가 있고, 설정이 있고, 웃음과 감동 포인트도 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직접 봤을 때만 확인 가능하다. 블록버스터의 소재인 양자역학과 멀티버스를 B급 감성 가득한 코미디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거창한 설정 속에서 조금씩 웃음 타율을 높여나가다가 장대한 드라마로 결론 짓는 식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여성 에블린은 여러 모로 퍽퍽한 삶을 살아간다. 깐깐한 아버지와 유약하기만 한 남편, 레즈비언 반항아 딸만으로도 괴로운데 세무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로 그나마 운영해오던 세탁소마저 문을 닫을 판이다. 심지어 자기가 먹여 살린다고 여겼던 남편이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멀티버스가 열린다. 무한한 다중 우주에는 절대 악 조부 투파키가 있고, 에블린이 그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란다. 그녀가 최후의 희망인 이유가 가관이다. 그녀는 멀티버스의 수많은 에블린 중 가장 불행한 에블린, 즉 최악의 에블린이라는 이유로 저항의 아이콘이 된다.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엉망진창 현실이 에블린에게 준 ‘깡’이 그녀의 무기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최악은 아니다. 조부 투파키가 사실은 에블린의 딸 조이라는 사실이 남았기 때문. 에블린이 딸 조이에게 권위적으로 굴며 윽박질렀기에 조이가 흑화해 조부 투파키로 변했단다. 이제 에블린은 선택해야만 한다. 우주의 운명을 위해 딸을 무찌를 것인가, 형편없는 엄마였지만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하며 다른 미래를 만들 것인가.
에블린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B급 코미디 요소도 폭발한다.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베이글, 쇼킹한데 고급스러운 비주얼 등등이 적극 활용된다. 여기에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는 ‘없다.’ 영화를 연출한 다니엘스의 말마따나 “농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에블린의 싸움은 진지하고, 그녀가 가족과 우주 중 그 무엇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당탕탕 대모험 끝에 에블린이 도달한 그곳에서는 마침내 감동이 피어난다. 억척스런 사업가이자 가장이었던 에블린은 웃음을 되찾고 주변 사람과 이를 함께 나눈다. 무한히 넓은 멀티버스의 모든 것(에브리씽)과 모든 장소(에브리웨어)가 모두 함께(올 앳 원스) 어우러진다.
만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코드가 자신과 맞을지가 고민이라면, 2016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차지한 다니엘스의 전작 〈스위스 아미 맨〉으로 취향 테스트를 해봐도 좋다.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방귀만 뀌는 언데드로 나오는 이 황당한 영화는 B급 웃음과 감동이라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공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호불호가 갈릴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꽂힐 영화임도 분명하다. 모든 진지함은 잠시 내려놓고 다니엘스의 상상력을 따라가보시기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두 멍청한 놈들이 만든 영화"일 뿐이라는 다니엘스(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말은 다소 과한 겸손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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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하는 존재들에 대한 헌사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 디렉티스 컷’을 오직 이미지에 취한 영화라고 평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그리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강렬한 미장센을 통해 '추락하는 존재들'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스턴트맨 로이(Roy)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추락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에 가깝다.
영화는 192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시작된다. 스턴트 연기 중 사고를 당한 로이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을 잃은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다.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또한 농장에서 사고를 당해 다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둘은 모두 추락을 겪은 인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추락’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위태로운 상태를 상징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자, 사랑에 실패한 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 모두가 이 영화 속에서 '추락하는 존재들'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쓴 편지의 우연한 추락으로 연결된 이들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로이는 본래 알렉산드리아를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자살을 위한 약을 얻는 것) 일종의 도구로 이용하려 하지만, 그녀의 적극적인 개입은 로이의 이야기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간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오디어스(Odious)라는 폭군에 맞서는 다섯 영웅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환상 속 이야기 또한 로이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야기 속 영웅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들 중 특히 중요한 인물은 가면을 쓴 영웅 검은 도적(The Black Bandit)이다. 로이가 이야기의 화자로서 스스로를 반영한 캐릭터인 이 도적은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패하며, 결국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켜 결말을 바꾸려 한다. 환상 속 세계에서조차 인물들은 추락하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추락은 불가피할지언정, 그것이 끝이 아니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 폴은 영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 특히 스턴트맨들을 조명하기도 한다. 로이의 직업은 스턴트맨이며,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화면 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가 영웅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철저히 소외된 존재이고, 그가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얻은 것은 부상과 절망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스턴트맨들의 희생을 조명하며,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의 추락을 가시화한다. 더 나아가, 타셈 싱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추락하는 자들’ 위에 세워진 것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들은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이는 자신의 내러티브 속에서 모든 것이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검은 도적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거부하며,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단순한 이야기의 반전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방향성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추락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병원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 알렉산드리아가 웃으며 영화 속 스턴트 장면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희망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더 폴이 진정으로 조명하는 것은, 추락을 거스르려 몸부림치는 인간의 숭고함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떨어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사랑을 잃고, 희망이 꺼져가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그저 추락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며 다시 일어서려 하는가? 로이는 절망 속에서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어 간다. 검은 도적은 패배하지만, 마지막까지 싸운다. 그리고 스턴트맨들은 매번 넘어지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영화의 환상적인 영상미는 로이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투영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말한다. 추락은 필연이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고 그렇기에 더 폴은 모든 낙오한 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추락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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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함을 잃지 않는 클래식한 로드 무비
색채를 통한 성장의 미장센
긴야의 붉은 욕망
초반부, 긴야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남성성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후, 긴야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여성에게 집착한다.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른 여성을 만나기 위한 욕망이 투영된 수단이 바로 붉은색 차이다. 싫다고 거부하는 아케미를 억지로 안으려고까지 하며 상대방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고, ‘욕망’에만 급급하던 긴야를 상징한다. 아케미와 유사쿠와 함께 여행을 할수록 욕망으로 가득하던 붉은색 차는 턱에 막혀 굴러가지 않고, 제동을 못해 온갖 이물질을 뒤집어쓰며 더럽혀진다. 붉은 욕망의 색채가 퇴화된다. 후회가 담긴 유사쿠의 조언과 아케미와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남성성에 대해 학습하며 성장한다.
유사쿠의 노란 성장
노란색은 사랑과 창조,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지닌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시마 미쓰에(바이쇼 치에코)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이다. 노란 손수건을 달아서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노란색은 창조, 생(生)의 이미지이다. 부정적 의미로는 비겁함과 불안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내가 초혼이었을 당시 아이를 유산한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 시마 유사쿠는 못된 말을 퍼부으며 폭력성을 드러내고 집을 나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아내의 상처는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비틀린 남성성’을 드러낸다. 출소 후, 긴야의 모습을 통해 과거 자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자각하고 성찰한다. 세 인물의 여행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져다준다. 노란색이 창조와 생(生)의 이미지로 시작해, 불안정한 비겁함이다가 다시 사랑과 행복의 이미지로서의 의미를 갖기까지가 유사쿠의 전반적 성장 서사이다. 인물의 발전을 한 가지 색채를 통해 표현하였다.
종착지는 유바리
여행이라는 장소의 이동을 따라 각 공간에서 경유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 인물이 성장하는 공식을 가진 로드 무비. 긴야와 유사쿠의 성장 서사가 교차되고, 비틀린 남성성을 가졌던 두 남성의 반성과 성찰의 테마가 주된 플롯이다. 로드무비의 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세 인물의 종착지는 유바리이다. 유사쿠의 과오 청산과 긴야의 깨달음은 유바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긴야와 아케미, 그리고 집 앞 나무에 매달려 펄럭이는 수많은 노란 손수건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선 뭉클한 감동마저 선사한다.
여성 서사의 공백은 1977년도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하였지만, 유쾌함만큼은 넘어선 야마다 요지 감독의 <행복의 노란 손수건>. 유쾌한 로드무비를 찾던 관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영화일 것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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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마존 활명수> 메인 예고편
막힌 웃음 뻥- 뚫어주는 우리는 류진스에염! 올가을 웃음 엑스텐 예고하는 [아마존 활명수]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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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을 때까지> 티저 예고편
호화스러운 별장, 다이아몬드 목걸이, 아름다운 자미..
완벽한 결혼 기념일을 보낸 엠마와 남편.
다음 날, 사랑하는 남편이 엠마의 눈 앞에서 죽어버린다.
죽은 남편과 단 둘이 별장에 고립된 엠마.
곧이어 정체 모를 괴한까지 들이닥치고
미쳐버릴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 연속되는데..
미칠 틈도 혼란스러울 틈도 없다!
지금 당장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