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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미 만으로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을까
립세라는 폴란드의 한 시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칭송받는 야그나, 그녀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어 곳곳에서 혼담이 들어오고 있다. 마을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쫓아다니느라 바쁘지만 그녀는 하필 결혼한 유부남이 마을 최고 농부 집안의 아들인 안테크 보리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농사꾼인 이 마을에서 그녀는 그저 오늘도 종이접기를 하며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아름다운 미모는 그녀를 안테크의 아버지에게 시집가게 만들었고 그렇게 마을에서 제일 가는 마님이 되었지만 어째 그녀의 삶은 녹록치만은 않을 것 같다.
1. 러빙 빈센트를 떠올리게 하는 영상미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상화된 명화를 보는듯한 영상미, 정말 신경쓴 티가 난다. 밀레의 만종,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 사실주의, 자연주의 미술 사조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다가 명화속 인물들이 살아움직였던 역사속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딱 보는 순간, 이 영화 러빙빈센트와 정말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아니나다를까 같은 감독이더라. 자신만의 스타일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유니크한 영화를 본 것 같아 좋았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 그 시절의 농업이 삶의 전부였던 마을 속 풍경을 예술과 접목해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칭찬은 여기까지다.
2.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클리셰
나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유럽영화를 보고 있자면 운명적인 사랑의 노예라는 그 소재가 여전히 인기 소재인 걸까 싶을 때가 있다. 이 영화 속 여인은 미모를 무기로 남자들을 홀리면서도 진정한 사랑과 도피를 원한다. 모두가 농사일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그저 농장에서 누워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유부남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계시며 그 유부남의 아버지와 결혼했다. 모든 대사가 아침드라마 같았다. 난 그저 남자의 유혹에 이기지 못한 가련한 여인이라는 변명은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요새도 이런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그녀의 사랑이 은밀하게 워너비라는 걸까 싶기도하다. 표출되지 않는 관객의 마음 속 이런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걸까.
원작이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만큼 원작에 충실했던 지점도 있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이 보는만큼 여주인공이 조금더 자아를 가지고 행동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혹자는 그렇게 되면 그녀의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녀가 마을에서 마녀취급을 당한 것은 마을의 부정을 그녀가 뒤집어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그녀의 행실이 너무 수동적이었고 주체성이 없이 상황에 끌려다녔기에 그녀가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마녀사냥이란 바로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불륜이라는 전제 앞에서 그게 사랑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의 불행에 얼마나 안타까워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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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의 반대편에서 쓴 불완전한 SF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간은 AI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전쟁 끝에 AI를 뉴아시아 지역에만 고립시키는 데 성공하자, 미군은 아예 AI를 만든 창조주 '니르마타'를 죽여서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이에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니르마타의 딸로 알려진 '마야'(젬마 찬)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조슈아는 되려 마야와 사랑에 빠지고, 작전 중 그녀가 실종되자 실의에 빠진다.
이후 몇 년이 지나도 니르마타를 찾지 못한 미군은 다시 한번 조슈아를 작전에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마야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주기로 약속하면서. 아내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전에 합류한 조슈아는 니르마타와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신무기를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그는 신무기가 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이스)란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 마야의 비밀도 깨달으면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가렛 에드워즈의 <스타워즈> 뒤집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의 감독 가렛 에드워즈와 각본가 크리스 와이츠가 의기투합한 SF 영화 <크리에이터>. 소재나 주제만 놓고 보면 새로운 작품은 아니다. SF 영화사에서 고전으로 기억될 작품이 보여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전쟁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인공지능과 로봇의 인간성에 대한 고찰은 <블레이드 러너>, <A.I.> 등이 다룬 바 있다.
달리 말해 <크리에이터>는 의도와 목적을 찾기 쉬운 영화다. 유사점을 지우고 나면 지향점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가렛 에드워즈의 전작이 <로그 원>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크리에이터>의 성취와 한계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로그 원>은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이후 가장 호평받은 <스타워즈> 영화다. 클래식과 프리퀄 시리즈 간에 연결고리를 더했을 뿐만 아니라, 제다이가 아닌 일반인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를 두고 <스타워즈> 세계관을 가장 잘 이해한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렛 에드워즈는 <스타워즈>를 가장 확실히 전복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그 세계의 모순과 약점을 뼛속까지 알고 있을 테니까. 실제로 <크리에이터>는 <스타워즈>의 정반대 편에서 자기만의 SF 세계를 '창조'하고픈 야심으로 가득하다. 단지 그 욕망이 스크린 위에 온전히 구현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프런티어 정신의 그림자
<스타워즈> 시리즈는 미국의 신화라고도 불린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이고, 첫 편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스타워즈>가 미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스타워즈>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국의 정체성은 바로 프런티어(Frontier) 정신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항상 팽창하는 국가였다. 루이지애나, 뉴멕시코, 서부, 알래스카, 하와이, 필리핀, 전 세계, 심지어 달과 우주까지 개척했다. 서부극이 가장 할리우드다운 장르였던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스타워즈>도 마찬가지다. 배경이 우주일 뿐, 새로운 행성과 은하에서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크리에이터>의 전체적인 갈등 구도는 프런티어 정신의 이면,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극 중 전쟁은 외견상 A.I. 와 인류의 전쟁이다. 하지만 덧대어진 여러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고려하면 미국의 여러 대외 분쟁에 대한 비유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크리에이터>는 전지구에 영향력을 투사하려던 미국의 실패 사례를 망라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계단식 농업을 하고, 정글이 가득한 곳에서 인공지능 게릴라와 공습 위주로 전투를 벌이는 미군의 모습은 1960~70년대 베트남에서 싸우던 미군을 닮았다. 인공지능 창조자를 찾는다며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테러와의 전쟁'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말라며 뉴아시아를 압박하는 장면에서는 탄소 감축을 위해 개발동상국의 산업을 제재하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스타워즈>의 오리엔탈리즘에 도전하다
심지어 <크리에이터>의 고발은 단순히 영토나 대외 분쟁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 국가나 인종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무시하고, 탈취하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미국의 오리엔탈리즘도 꼬집는다. <스타워즈>도 문화적 프런티어 정신의 악영향에서 기실 자유롭지 않다. 핵심 설정인 '포스 The Force'만 해도 동양 사상의 '기氣'를 가져간 셈이고, 포스를 수양하는 제다이도 도사라는 개념을 취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렛 에드워즈는 이처럼 동양의 정신문화를 표면적으로 활용해 쌓아 올린 미국의 신화를 부수려 한다. 타 문화권의 유산을 입맛대로 재단하는 대신, 스크린 위에 온전히 살려내어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SF 세계의 전형에 도전한다. 그 중심에는 조슈아가 있다. 그는 니르마타를 추적하기 위한 첩보원이다. 얼핏 보면 그가 아내를 만난 것도, 잃은 것도, 다시 그녀를 찾아 나서는 것도 다 인공지능 창조주를 찾는 추격전의 일부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는 조슈아의 서사를 뒤집는다. 그의 첩보극을 개인적인 성찰과 발견의 서사로 다시 쓴다. 니르마타를 찾는 첩보극은 이제 고통의 원인을 찾는 정신적 여정이다. 그는 추격전 끝에 결국 아내와 재회한다. 아내의 모든 비밀도, 아내를 놓아주어야 자기 아픔이 끝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대신 자기 아들의 모습을 한 로봇 알피와 모든 AI를 구해내면 아내를 향한 사랑과 자기 아픔을 승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운다.
동양의 진짜 정신문화를 살리다
이러한 조슈아의 여정을 동양적으로 보면 수행과 득도의 과정과도 같다.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르침인 보리심(菩提心)이 조슈아의 서사에 반영된 듯 보인다. 보리심은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는 대비심(大悲心)에서 비롯되는 마음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조슈아라는 인물은 보살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AI와 가족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AI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실천에 옮겼으므로. 이는 과거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해 차별적으로 수용, 생산한 동양의 문화를 새로이 직시하고 그 정수를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네팔, 티베트 같은 고산지대에서 AI가 승려 복장을 한 모습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더 나아가 이는 <크리에이터>가 나름 색다른 SF 영화로 보이는 이유다. 영화 속에는 AI와 인간의 차이를 결정짓는 기준에 관한 여러 윤리적, 철학적 질문이 등장한다. "인간은 AI와 공존할 수 있는가, 아니면 AI를 파괴해야 하는가?" "AI도 인간처럼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등. 다른 SF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뻔한 질문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는 이전까지의 영화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차별성을 갖추는 데 성공한다. 동양 철학에 기반해 AI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확실한 대답과 당위성을 내놓기 때문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자기모순
그러나 <크리에이터>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이다. <스타워즈>가 범했던 잘못을 똑같이 반복한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이 뒤섞인 듯한 '뉴아시아'의 지형과 도심만 봐도 실책은 명백하다. 극 중 뉴아시아의 도심은 도쿄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외곽 지역은 베트남이나 중국 남부의 농촌 모습으로 설정돼 있다.
사실 한중일 관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 국가는 국가별로 정체성도, 개성도 확연히 다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대외적으로 한 팀이 되길 바라는 실수를 미국이 반복하는 이유다. 베트남 역시 수백 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바 있다. 그런데 <크리에이터>는 '뉴아시아'라는 이름 하에 상이한 국가의 정체성을 합쳐 버렸다. 이는 아시아 국가를 단순히 '동양'으로 범주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발현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크리에이터>의 핵심 요소인 종교를 활용하는 방식 또한 실수와 몰이해의 연속이다. AI 창조주의 이름인 '니르마타'(निर्माता)는 네팔어로 창조주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문제는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가 네팔에서 태어나기는 했으나, 정작 네팔은 힌두교 인구가 90% 이상인 국가라는 점. 이는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핵심으로 품은 영화에서 간과하기에는 작지 않은 실수다.
또 고산 지대에 위치한 불교 사원은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듯 보이지만, 정작 뉴아시아에 거주하는 AI들은 힌두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이는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와 아시아 지역의 종교사에 대한 이해 부족이 탄로 나는 대목이다. 물론 영화의 지향점을 고려하면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시각적인 요소가 빚어내는 오해로 인해 영화의 메시지나 의도에 설득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써먹지 못한 맵시
이에 더해 시각적인 장점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 가렛 에드워즈는 <고질라>나 <로그 원>에서 압도적인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시점으로 스펙터클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웅장한 자연 풍광, 강력한 미군의 공습이 대표적이다. AI 로봇이 농사를 짓고 절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SF 영화의 본분에 충실하다. 하지만 독특한 세계관은 점점 모습을 감춘다.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후, 영화의 초점이 멜로드라마로 옮겨 가기 때문.
그 결과 장르 간에 불협화음이 생긴다. 멜로드라마에 집중하다 보니 마야의 비밀, 니르마타의 진짜 정체와 관련된 미스터리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더 나아가 영화의 결말도 아쉬움이 크다. 윤리적, 철학적,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순간에 로맨스가 부각되다 보니 스스로 잠재력을 제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액션씬도 디테일이 부족하다. 일례로 미군이 AI 마을을 탱크로 습격할 때 미군과 인공지능은 순서대로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다. 전투 중 극대화되어야 할 절박함이나 긴장감은 크지 않고, 오히려 템포가 끊긴다는 느낌이 크다. 물론 할리우드 기준으로 적은 제작비(약 8천만 달러)를 고려해야겠지만, 초중반부 좁은 공간에서의 액션씬이나 <로그 원> 속 전투 시퀀스를 떠올려 보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결국 <크리에이터>는 거대한 야심을 지녔고, 그 야심 자체는 시의적절했으나, 야심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미완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히 누군가는 감독의 야심이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낼 것이고, 누군가는 레퍼런스 활용이나 블록버스터로서의 미흡함을 지적할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Acceptable 무난함
뒤집고 되짚는 과정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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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링타임 영화 더킹
영화 더킹을 아시나요?!
킬링타임 영화로 추천하고 싶어
가지고 왔어요~
조인성과 정우성 류준열까지
비주얼과 연기력이 좋아 보는 맛이 있는
영화 더킹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블랙, 코미디, 액션, 시대극, 정치, 피카레스크
감독 / 각본 : 한재림
출연진 :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김의성, 김아중
개봉일 : 2017년 01월 18일
평점 : 8.39
스트리밍 : NETFLIX, Wavve
기획 의도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었던 검사 태수는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을 만나
핵심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 하게 된다.
정권이 교체되는 중요한 시기,
새로운 판을 짜며 기회를 노리던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는데.
여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며
몇몇 실제 정치인들의 언급과 풍자 역시 과감하게 보여주는 뻔한 내용일 뻔했지만
화려한 영상과 내레이션을 통해 영상 전달을 잘했다.
아직도 많은 대한민국의 부패한 검사들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영화 더킹이 소환되곤 한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더킹 결말을 살펴보자면
승승장구하던 박태수(조인성)은
한강식(정우성)에게 크게 배신당하고 친구인 최두일(류준열)도 잃게 되며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된다.
모든 걸 잃고 나서야 깨우친 박태수는
한강식을 잡기 위해 장인과 아내(김아중)의 도움을 받아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다.
장인어른의 야당의 핵심 인사를 소개해 주며
검찰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검찰 개혁과 불우한 가정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말의 동정 표를 휩쓸게 되며
태수가 당선이 되었는지 알 수 없게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열린 결말로 끝난 영화 더킹은
마지막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집어넣은 게 아닐까 싶다.
투표의 중요성. 왜 우리가 투표를 해야 하는지!
영화 더킹은 킬링타임으로
정말 매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심심할 때 한 번씩 보기 좋은 영화 더킹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내가 당선되었냐고? 떨어졌나고?
그건 나도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니까.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
-영화 더킹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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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현실 속 총 천연색 꿈
이 글은 영화 [더 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샤흐리야르 왕의 마음이 이랬으리라.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왕의 마음이 로이(리 페이스)는 어쩐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자신의 꼬라지를 본다면, 오히려 왕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련한 환자는 사랑에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커리어 까지도 자신의 척추처럼 박살 나게 생길 위기였으니까. 이 기구한 운명을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답답함을 알아주는 누군가라도 등장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로이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아직 숫자를 3까지 밖에 모르는 것만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앞니 빠진 암살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결국 그렇게 넘고 싶어 하는 요단강(?)도, 쉽게 건널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어 볼 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이 구원자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는 입을 열었다. 이 얕고 가는 자신의 목숨줄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꼬마 샤흐리야르 왕 앞에서. 로이는 기꺼이 세헤라자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 암살자의 스턴트는 실로 대단했다.
로이가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스턴트 역할을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물론 이 초보 복면에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이 넘어가는 숫자에 기겁을 하기도 하고(!) 공범인 주제에 도덕적 잣대가 너무 높아 대역을 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지만.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망설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미션 수행의 시간이나 방법도 치밀해져 갔다.
하지만 마지막 미션의 벽은 이 하룻강아지 대역에게는 여전히 조금은 높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힘껏 까치발을 해야 할 것임을. 로이는 알 수 있었다. 로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그러려면 알렉산드리아에게 연료를 계속 불어넣어 까치발의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간신히, 하지만 반드시 쥐어져야만 했다.
그는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스턴트를 이어가야만 했다. 오디어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더 험하고 어려워져 갔고. 그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크 밴디트는 충실하게 로이의 대역을 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여전히 처음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현실의 자신도. 자신의 대역인 밴디트로서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삶도 조금씩 간절해지는 세헤라자데는 자꾸만 자신의 왕이자 대역인 알렉산드리아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로이는 다리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두가 실패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던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낙하로 인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의 등 외에는 이제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은 없을 것만 같았다.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서 있던 곳이 참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로이를 대신해 그 높은 곳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낙하해 버린. 이 꼬마 스턴트역을 보며. 로이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로이의 작은 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세헤라자데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모험의 끝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로이는 환상 속 모든 인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물들의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추락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도 같아서.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 세계에서 추방할 뿐. 그 어떤 의미의 실패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의 추락으로 인해 겁에 질린 로이는 그 사실조차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겁쟁이인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추락을 감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이라는 망상에서 구해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적 욕심이 3까지 밖에 없는 무자비한 왕(?)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이자 실패라 여겼던 작품을 이 꼬마 대역에게 보여주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끝에. 두 운명 공동체(?)는 겨우 웃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뒤 덩그러니 둘 만 남아버린 환상의 세계는 이제 끝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몇 번이고 재생될 것만 같은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되어. 두 벤디트의 뱃속에서 영원히 날갯짓을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추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마치면서
정제 탄 수.. 단순당 최고!!
그들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 까지는 흑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꾸게 된 모든 꿈들은 총천연색이었다. 차갑고 메말랐던 일상이 이렇게 질감과 색감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의 지분은 거의 모두 알렉산드리아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잿빛에 지나지 않았던 회사원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여 준. 같이 영화를 봐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두 또 먹으러 가쟈!!!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추락, 스턴트,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모티브를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의 TMI]
1.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가 없다. 돌아버림
2. 환상 속 5인조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후레쉬맨 같아서 빵 터짐
3. 이런 뽀송한 질감의 영화 너무 좋다
[다음 리뷰 예고]
미키 17!!
원작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된다. 근데 봉감독님 나빠.. 애를 원작보다 열 번이나 더 죽였어ㅠㅠ
#더폴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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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로봇 드림(Robot Dreams), 2024
스페인 / 애니메이션 / 102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어두컴컴한 집 안, 맛없는 냉동 도시락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빙빙 돌아간다. 2인용 게임을 혼자 하는 게 익숙한 도그의 저녁밥이다. 도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설렘이나 기쁨, 행복은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일상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간혹 찾아오는 새로움은 앞으로 다가올 지겨움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엇 하나 즐겁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도그는 오늘도 옆집 커플의 행복을 애써 외면하며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무료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가나 싶었는데, 돌연 TV 광고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외로우신가요?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도그는 곧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존재가 등장하자 도그의 일상은 180도 바뀐다. 도그의 친구이자 가족,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가 된 로봇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반려 로봇이지만, 나의 짝을 의미하는 ‘반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로봇 역시 (도그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존재를 특정한 종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한다. 우린 냉동 도시락이 데워질 때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 어떻게든 머무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로봇 드림>은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을 만나게 했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둘의 시너지는 순풍을 타고, 재미없던 삶은 무한한 행복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해수욕장에서 강제 종료된 로봇으로 인해 멈추고 만다. 로봇이 고장 난 이유는 언급되지 않는다. 바다를 헤엄치고 잠수까지 한 로봇이 고장 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영화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도그가 외로움에 빠진 이유나 로봇을 움직이는 주요 부품에 관한 설명, 로봇의 자연스러운 감정 및 이성 습득도 마찬가지다. 전부 영화의 몰입도를 깨트릴 수 있는 물음표지만 이야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빈 곳에 별표를 붙이고 시간을 들여 메우려 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못해 주인과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로봇에 더 집중한다. 무엇보다, 도그와 로봇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직진하기 바쁘다. 일찍부터 작고 사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중요한 건 뒤가 아니라 앞에 있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이 될 오늘’이 더 가치 있다는 <로봇 드림>만의 심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폐장을 선언하고 여름 개장을 예고한 해수욕장 공고문 앞에서 도그는 절망한다.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반려 로봇을 샀는데 한순간에 외로움을 반납받게 된 상황이라니, 도그와 로봇에게 벌어진 첫 번째 위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둘의 첫 이별(위기)은 별다른 사건충돌 없이 영원한 이별로 남는다. 이야기는 도그와 로봇의 각자 입장으로 나눠 두 갈래로 진행된다. 역시 <로봇 드림>이 가진, 아주 능숙하고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로봇을 데려올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도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신문 광고에 또 반응한다. 설산에서 처음 본 동물들과 썰매를 타며 나름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사람에 눈코입을 선물하며 제2의 로봇을 만나고, 새해 기념으로 연을 날리다 멋진 선글라스를 낀 오리도 사귀지만, 역시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을 기준으로 한, 기울어진 저울을 가진 도그에게 다른 동물과의 관계 형성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수욕장에 멈춰 있던 로봇은 꿈을 연속적으로 꾸며 진짜 세상을 경험한다. 꿈이 전부 악몽이지만,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로봇은 ‘성장’한다. 도그 없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고, 관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영역임을 몸소 체험한다. 슬픔과 별개로 기존 관계가 깨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흐름도 깨닫는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관계(삶)가 주는 진짜 교훈은, 전제를 잘 알고 있음에도 매번 다시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로봇은 해수욕장 개장 후 원숭이에게 구출되지만, 악어가 운영하는 철물점에 팔려 온몸이 산산이 조각난 후 전원이 꺼진다. 삶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순간, 너구리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외로움에 결국 굴복한 도그는 상점에 반값으로 나온 틴(로봇)을 산다. 한때 도그의 반려였던 로봇은 몸통 대신 달린 카세트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완전한 이별과 함께,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반려’가 또 등장한 순간이다.
너구리와 살기 시작한 로봇은 틴과 함께 걸어가는 도그를 우연히 발견한다. 둘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 로봇은 다시 한번 꿈꾼다. 도그는 몸이 바뀐 로봇을 단번에 알아보고,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지만, 곧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틴은 도그를, 너구리는 로봇만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로봇은 카세트 되감기 버튼을 눌러 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도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인다. 도그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로봇도 팔과 다리를 흔든다. 나란히 서서 같이 췄던 춤을 각자 다른 곳에서 추는 도그와 로봇. <로봇 드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이다음에 등장한다. 호텔 꼭대기 층에서 춤추던 로봇이 도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재빨리 숨는 장면이다. 로봇과의 추억에 젖어있던 도그는 돌아선다. 그렇게 틴과 손을 잡고 로봇과 영영 멀어진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우리는 알고 있다. 왜 로봇이 꿈을 꾸고, 도그가 왜 틴을 사고, 로봇이 마지막 순간에 왜 숨어버렸는지. 우린 모두 각자의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두 배로 더 빨리 쓰기도 한다. <로봇 드림>은 이를 로봇(꿈)과 도그(외로움 탈피)로 보여줬다. 로봇이 겪은 불행과 도그가 겪는 슬픔은 형태만 다른 특별한 데칼코마니였다. 꿈(로봇)은 현실(도그)이고, 현실을 겪은 로봇은 다시 현재를 살기 위해 꿈을 꿨다. 도그도 멈추지 않고 로봇과 같은 모양을 찍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원하는 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서 외로움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나아가 전반에 깔려있던 구멍에 과거가 돼버린 관계(기억)들을 채우게 하고, 불완전한 관계를 향한 갈망이 메마르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한다. 특히 도그와 로봇이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 속 엔딩과 연결되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물한다(주인공도 삶에 허덕이다 마침내 자기만의 알코올 농도를 찾고, 엔딩 삽입곡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에 맞춰 막춤을 춘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완벽하지 않고 때론 상식적으로나 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관계 안에서 꿈을 꾸다 다시 꿈을 접고, 또다시 꿈꾸며 사는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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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루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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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다. 지루한 고향을 벗어나 창의적인 도시로 대학을 가는 게 목표다. 고향에는 그녀가 싫어하는 것투성이다. 철로변에 있는 집과 수많은 규칙들. 그녀는 별다를 것 없는 인생을 만드는 건 이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을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이름은 나름대로 괜찮을 인생의 첫걸음이다. 남들과 같지 않을 무언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일상 속에 내가 정한 무언가였으니까. 이름 정도면 다른 특별한 무언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그건 공짜니까. 끊임없이 그 이름을 주장하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엄마가 화날 때면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또박또박 부르는 건 변함없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지은 이름만은 나의 영토니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정한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사회의 규칙에 맞춰 살기 바쁜 나이에는 본인이 원하는 이름 하나 정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특별함이다.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건 자라는 내내 배워가지만 배운다고 납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때때로 불합리한 일들은 논리와 관계없이 발생한다. 재난처럼 벌어지는 일은 그저 감당해야 한다. 몸에 익지 않은 불편한 감정들은 견디다 보면 조금씩 그 한계치가 늘어난다. 윤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깨우쳐간다.
어른의 길목에 선 이들이 겪는 희로애락은 몇 마디 말로 서술하기엔 역부족이다. 끝없는 우울감과 고민은 존재를 뒤흔든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0 아니면 1밖에 없었다. 보통은 제 성질에 못 이겨 감정을 터뜨리고 결과물은 어디 한 군데 깁스를 하거나 사건의 주역이 되는 식이다. 충동은 감정을 가속하고 내리막의 끝에 나오는 말들은 곱지 않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보고 싶은 마음은 종종 주변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노력은 어렵지만, 주변을 낮춰보는 일은 훨씬 쉬우니까 쉬운 길을 택하게 된다. 나도 모를 내 마음을 남에게 전하는 건 번번이 엉뚱한 곳에 날아가 꽂힌다.
한 꺼풀 내 생각을 벗겨내면 타인의 의외성에 감화되는 순간이 온다. 진심으로 아끼고 속 깊은 조언을 해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생각의 축이 움직인다. 영화에서 전하지 못한 진심을 뒤늦게 발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틋하다. 쓰려다 말고, 다시 쓰려다 접어버린 편지에 진심이 있다. 진심은 못다 끝낸 문장 안에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편지를 읽고 크리스틴으로 전화를 건다.
봄은 마냥 행복한 계절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노란 꽃가루가 일렁이는 세계가 한참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봄에 태어났는데 꽃가루 알레르기를 겪는 아이러니라니 거 참. 봄을 생각하는 시기, 사춘기도 꽃가루 알레르기 같다. 마음에서 뭐든 밀어내는 계절, 한철 왔다 가고 고통스러운 증상도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하기보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격정을 인내했던 시절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지나쳐갔다.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사춘기의 끝은 가까웠다. 여드름만 남기고 떠나진 않았다. 관계와 존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어쩌면 저 시절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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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의 첫 아시안 영화, 샹치가 걱정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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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21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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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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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샹치 예고편 공개
00:43 익숙한 그림과 냄새들
02:24 다양한 성공&실패 예시들
04:18 기대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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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이> 메인 예고편
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을 떠났던 '에런'은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을 파헤치던 '에런'은 여자친구였던 '엘리'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묻혀있던 두 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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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주피터스 레거시>
[2021년 5월 7일, 넷플릭스 공개]
그 어떤 유산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100년 가까이 세상을 수호한 1세대 슈퍼히어로들. 이제는 그 아이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들이 물려받은 전설과 이상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영웅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첫 번째 세대의 슈퍼히어로.이제 그 아이들의 세대가 세상을 밝혀온 횃불을 이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긴 했을까.
높아지는 긴장 속에, 오랜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