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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 분다>, 꿈은 현실과 유리될 수 있는가
  • <바람이 분다>, 꿈은 현실과 유리될 수 있는가 2011년 동일본 지진과 계속되는 경제 불황에 일본 전역이 고통스러워하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더 이상 판타지를 품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 뒤 “판타지를 만든다면 그건 거짓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판타지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현실의 문제와 번민하는 인물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담아온 과정을 지켜봤던 관객에겐 다소 충격적인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판타지가 빠진다는 것은 낭만과 모험을 운용하는 그의 감각적인 비주얼과 마법처럼 이어지는 비현실적 서사의 재미가 사라진다는 말과 같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특정 시기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었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으나(<붉은 돼지>), 실존 인물의 연대기를 따라가는 영화는 <바람이 분다>가 최초였다. 어쩌면 <바람이 분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또 다른 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영화화 한 것은 사실 필연적인 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1985년 다카하타 이사오와 공동 설립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지브리(Ghibli)’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정찰군용기의 명칭 ‘기블리(Ghilbli)’의 일어 발음인 ‘기브리’를 미야자키가 잘못 발음한 데서 온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비행 군수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큰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미야자키는 어렸을 적부터 비행기를 열렬히 사랑했던 덕후이자 군용기 그림을 즐겨 그리던 소년 애니메이터였다. 그에게 비행의 이미지는 전쟁의 광기를 막을 비장한 결기였고(<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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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좋은 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영화 <지니어스> 리뷰 얼마 전, 원작 『맥스 퍼킨스 : 천재의 편집자(Max Perkins, Editor of Genius)』를 바탕으로 한 영화 <지니어스>를 다시 보았다. 사실 이 영화를 꺼내 보게 건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추천인은 오랜 세월 편집자로 일해온 사람이었고, 글을 업으로 삼고 싶은 내게 그의 권유는 다른 누구의 말보다 특별하게 다가왔다. 특히 영화를 보며 예전 영화학도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캐릭터들의 고민이 이제야 현실적인 질문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글쟁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글이 어떻게 태어나고 다듬어지는지, 그 지난한 과정을 드물게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랬듯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 천재를 알아보는 법 출처 : 네이버 영화 <지니어스> 스틸컷 1929년, 비 내리는 뉴욕. 찰스 스크리브너 선스 출판사 앞. 담배를 문 한 남자가 빗속에 서 있다. 굵어지는 빗줄기에도 미동조차 없는 그의 모습은 누군가를 묵묵히 기다리는 듯하다. 잠시 후, 카메라는 출판사 안으로 전환된다. 소란스러운 빗소리와 달리, 안에서는 연필이 원고를 긋는 소리만이 적막을 채운다. 그런 그의 앞에 새 원고 뭉치 하나가 던져진다. 이미 수많은 출판사에서 외면당한 방대한 원고. 그것이 종이 더미로 버려질지, 아니면 새로운 문학의 시작이 될지는 오직 편집장 맥스 퍼킨스의 눈에 달려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 맥스는 원고를 펼쳐 든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분량에, 출근길 열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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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편의 바깥에서 살아가고 사랑하기
  • 박준호 감독은 무대인사에서 <3670>을 "순순하지만 생각거리가 많은 영화"라고 소개했습니다. '탈북자 게이'를 다룬 영화로 알고 왔는데 "순순하다"라고 하시기에, 저도 모르게 지참해 간 메모장에 '순순하다?'라고 끼적였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즈음에 메모장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 물음표에 좍좍 줄을 긋고 느낌표를 그려 넣었습니다. "순순하다!" 엄한 곳에 감히 물음표를 갖다 붙인 저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을 안고, <3670>의 "생각거리"들을 찬찬히 짚어보려 합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3670>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3670>은 2025년 9월 3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3670 Summary 자유를 찾아 북에서 온 ‘철준’에게는 탈북자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외로움을 견디던 ‘철준’은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영준’의 도움으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계와 마주한다. ‘영준’은 ‘철준’의 친구가 되어주고 ‘철준’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하지만 인기남 ‘현택’의 등장과 함께 ‘철준’과 ‘영준’의 마음에 묘한 파장이 일어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박준호 출연: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외 행복이 보편의 바깥에 있더라도 대학 시절, '교차성'에 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여러 가지 정체성을 지니고 있고, 이것들이 교차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입니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그중에서도 소수자성의 교차를 특히 더 강조하셨습니다. 소수자가 겪는 차별의 경험은 정체성이 중첩될수록 새로운 형태로 강화될 뿐이라고요. 차별이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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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합작으로, <스탑 메이킹 센스>
  • 스탑 메이킹 센스 Stop Making Sense, 1984 미국 다큐멘터리 88분 감독: 조나단 드미 모두의 합작으로, <스탑 메이킹 센스>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되뇌는 질문이 있다. ‘이 영화는 기록뿐인가, 아닌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분하는 과정이 아니다. 나만의 ‘의미 있는 작품 목록’을 채우는 지극히 사적인 감상법 중 하나로, 사회적‧역사적 소재 혹은 특정 이슈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신중한 물음표다.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는 극의 무게 중심이 시작이 아닌 끝에 있기에, 결말은 주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절대 잊지 말자는 호소나, 일반적이지 않은 메시지의 질주, 숨겨놓은 사건의 탈주, 인물들의 날 선 고백 등, 본 작품만이 가진 특징을 빼고 오직 정보만 나열하는 기록은 재미도 없을뿐더러 열심히 달려온 목적까지 앗아가기 일쑤다. 속 빈 강정뿐인 결말을 오래 곱씹는 일은 드물고, 설령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의미한 과정이란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탑 메이킹 센스>는 내게 의미가 있었다. 출처: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스틸컷 “안녕하세요, 테이프 하나 틀게요.” 아직 다 준비되지 않은 무대 위에 프론트맨 데이비드 번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다. 짧은 인사 후 테이프를 틀고는 기타를 튕기며 노래 ‘사이코 킬러’를 열창하는데, 새하얀 신발이 존재감을 내뿜으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자리에서 오른 다리로 연신 바닥을 힘주어 차며 리듬을 타더니, 곧이어 온몸을 흔들며 무대를 휘젓는다. 스태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무대를 세팅하는 데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코 킬러’ 가사 속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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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둘러 말하는 것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이 영화는 정호라는 말 없는 남자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작품에 풀칠을 하는 그의 모습과 애인 수진, 그를 짝사랑하는 인주, 그의 전 애인 유정의 애로사항이 교차된다. 바람을 피고 있는 수진과 마음을 숨기는 인주, 정호의 자살시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유정은 모두 조심스럽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145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에둘러 드러나는 이들의 사연이 흥미진진하다. '검은 개'라는 마지막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검은 개는 '마지막'을 은유하는 듯하다. 자신이 시한부인줄 알았던 인주와 연인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앓는 유정, 그리고 관계의 끝을 목도하는 수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개'와 함께한다. 죽음을 예감하자 계획하게 된 고백, 전 연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 바람으로 인해 모든 관계를 끝내는 상황들... 이렇듯 마지막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깨짐으로 퍼져나가듯. 하나의 조각이 깨짐으로써 멀리 퍼져나가듯.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실수, 말장난 등 사소한 일들이 미치는 파장을 목격한다. 그것이 뚜렷한 결말을 맺지 않을지라도 은근하게 번지는 후회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 8/20(수) 오후 7시 30분 시사회 메가박스 코엑스 * 위 기사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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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끈기와 따뜻함, 그리고 상실의 그림자
  • 뚜렷한 삶의 목표가 있으면, 사람은 포기보다는 다시 도전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크든 작든 각자의 목표가 있다. 그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실패를 맛보면 그것을 만회하려 하거나 해결 방법을 찾는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어떤 이는 포기하지만, 또 다른 이는 다시 일어선다. 계속 시도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에서 최대의 결과를 끌어내는 사람, 끝내 나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속 주인공 탄지로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본래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혈귀에게 가족을 잃고, 마지막 남은 여동생 네즈코마저 혈귀가 되어버리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뀐다. 이후 탄지로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생긴다. 혈귀의 우두머리 키부츠지 무잔을 쓰러뜨리고, 여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는 것. 아무 능력도 없던 소년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갈아 넣어 점점 강해져 가는 과정은 이 시리즈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감동이다. [첫 번째 감정] 탄지로의 끈기 탄지로의 가장 큰 힘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한계에 몰려도 다시 일어난다.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다잡고, 남은 힘조차 짜내어 자신에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되뇌인다. 그리고 또 한 번 일어선다. 이 과정에서 탄지로는 자신만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다시 시도한다. 단순히 재능이나 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버티고, 끝내 나아간다. 이번 영화에서도 탄지로는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다. 그에게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던 관객들도, 이번엔 혹시라고 생각하며 그가 쓸 다음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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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찬가는 용기의 찬가?
  • 루이스의 용기 차갑지만 뜨겁다. 이런 느낌이 든다. 분명 뿌리에는 어려운 과학적 설명들이 있다. 영화 자체도 차갑고 정적이다. 스타 워즈처럼 화려한 SF를 기대한 사람이 있는가. 그럼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영화가 뜨거웠던 이유. 영화 속의 용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보자.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의 용기가 영화를 뜨겁게 만든다. 루이스는 외계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성공한다. 이 자체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외계인의 언어 체계는 인간의 그것과 달랐다. 거기다 시간도 부족했다. 주변 상황들이 루이스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곳곳에서는 외계인을 죽이네 마네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종말이 찾아왔다 선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 국가들의 군인들도 외계인을 경계하고 있었다. 언제 적으로 바뀔지 모르니. 그러나 진짜 위기는 그 이후 찾아온다. 루이스는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한 뒤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본 미래는 불행한 미래였다. 그녀는 딸을 낳는다. 그러나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 미래를 피할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루이스는 그 미래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미래가 좋지 않음에도 그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 컨택트는 그것이 용기라고 말한다. 요약 컨택트는 차갑고 정적인 SF다. 그런데 영화는 뜨겁다. 주인공 루이스는 자신에게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래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용기이다. 외계인(헵타포드)의 용기 외계인들도 용기를 보여준 존재들이다. 그들이 지구로 찾아온 이유. 외계인들은 3000년 후 무엇인가 위기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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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위가 위대함을 만드는가?
  • 우리는 특정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전문가나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논평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들은 유서 깊은 원칙과 근거들을 빌려 설명을 해주고는 한다. 우리가 그들이 하는 말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나아가서는 더 도덕적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위대성은 그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식인’이라는 지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 <지리멸렬>이다. 지리멸렬의 사전적 정의는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즉, 말이나 행동에 논리적 일관성이 없을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렇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지식인들의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 남의 문 앞에 놓여있는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먹는 신문사 논설의원, 만취해 길가에서 용변을 누려는 검사, 그리고 도색잡지를 즐겨보다 여학생에게 들킬 뻔한 위기를 겪는 교수. 그들의 일탈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게 목격되거나 제지당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식인’으로 등장해 사회 문제에 대해 권위 있는 척 논평한다. 봉준호 감독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는 ‘지위’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더 신뢰한다. 하지만 지위가 곧 인격이나 위대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진정 개인의 인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위가 부여한 권위일 뿐인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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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펌처럼 고백도 매끄럽게 성공할 수 있을까?
  • 원래 멜로/로맨스 영화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고백의 역사>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려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배경은 1998년 부산, 악성 곱슬로 고통받는 박세리(신은수)가 김현(차우민)에게 고백하기 위해 친구들, 그리고 전학생 한윤수(공명)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이 곱슬머리보다 긴 생머리를 좋아한다는 고급 정보를 입수하고 윤석의 어머니(백장미)가 운영하는 장미 미용실에서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펌을 받기 위해 그를 도와주는 세리. 윤석은 그런 호의가 처음엔 부담스럽다가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세리에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윤석은 세리를 위해 고백 성공률 100%인 야자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학알을 접어 커다란 유리병에 가득 채우기도 한다. 그러나 고백의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윤석. 영화를 보면 세리와 윤석이 이어질 거란 건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현의 입장이 꽤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고백 장소를 정해 놓고 현을 부른 상황에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실 나쁜 놈이려나? 고백을 받아주지 않으려나? 그러나 세리는 정면돌파를 택한다. 현은... 전교생의 반(어쩌면 그 이상)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다. 실은 현도 세리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고백 작전이 끝난 뒤엔 내용이 살짝 어두워지는데,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 킬링타임용으로 추천할 수 있을만한 영화다. 중간중간 나오는 웃음 코드가 잘 맞았고 박정민, 공유, 정유미 등 특별출연한 배우들도 나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가장 놀랐던 건 박세리 역의 신은수 배우인데,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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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과 남이 만나 가족이 된다
  • 가족이기에 말할 수 있고, 가족이기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전자의 경우 내겐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직설적인 쓴소리가 대부분이었고, 후자의 경우 여러 복합적인 감정으로 내 입을 닫게 만든 것들이었다. 걱정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숨겼고 고독과 외로움은 주말의 저녁식사로 무마했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이러한 가족의 속성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가족을 다시 정의하며 자신만의 화법으로 위로를 건넨다. 평범한 중학교 교사인 정하는 병휴직 기간 동안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진우와 그의 여자친구 제니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의 해후도 잠시 숙소를 잘못 예약한 제니의 부모님과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되고, 여기에 정하의 여자친구 지선까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6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진우의 청소년기로부터 시작한다. 그 나이 또래에 보일 수 있는 반항, 다소 강압적인 아버지, 그리고 위태로운 부부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며 진우의 아버지이자 정하의 남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인물들의 대사로 하여금 춘천이라는 동네를 끊임없이 좁고, 소문이 나기 쉬우며, 지역 내 특징이 그 어디보다도 도드라지는 지역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는 다른 주인공들보다도 정하에게 더욱 두드러지는데 춘천이라는 동네는 정하가 살면서 계속 깨어나가야만 하는 현실과도 닮아있다. 외지인으로서 직장 내에 주요 직무부서에까지 올라온 그녀의 현재와 결말 즈음 복직을 앞두고 결정을 내린 그녀의 선택은 내용만 다를 뿐 실은 같은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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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2)에 관한 단상
  • 우리는 감각하고 그녀는 투쟁한다 미야케 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뜻하다”일 것이다. 후끈한 열기라기보단 딱 체온 정도의 따스함. 세상을 향한 의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마음의 온도가 식었을 때라면 혹은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미야케 쇼의 영화를 찾고 싶어진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필자가 본 미야케 쇼의 영화 3편(<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는 내내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투쟁을 지켜보면서도 스크린이 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따뜻한 온기를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흐르는 이미지와 부산한 사운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극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인 복서의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 관객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다루는 영화 속 시간의 케이코만 만날 수 있을 뿐 그녀의 전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케이코에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때론 그녀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코를 계속 지켜보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르다. 작품의 배경은 분명 도쿄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번화가의 이미지가-이를테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아니라 케이코가 냄새난다고 했던 강변과 평범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복싱 체육관이 주 무대다. 16mm 필름의 따뜻하고 생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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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는 그곳에, 나는 이곳에.
  • 대구를 떠나 부산으로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주변 친구나 선생님들, 심지어 진학에 크게 압박을 주지 않으셨던 부모님조차 의아해했던 결정. 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내새웠지만 돌이켜보면 도피였다. 웃긴 점은 특정한 환경 때문에 벗어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향에서도 힘든 일은 딱히 없었다. 다만 여기를 벗어나면 조금은 더 성장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막연한 생각은 충동으로 번지고, 이내 나를 먼 곳을 가게 했다. 물론 후회는 없다. 부산에서 새로운 인연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지나쳤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잊고 있던 그때의 기대도 어느정도 충족되었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왜 대구를 벗어나려 했을까. 그곳에서도 인연과 사건들은 충분하다 못해 계속 재생산되지 않는가.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의 주인공은 4명이다. 이들은 각자 사연을 품고 있다. 친구를 우발적으로 죽였다거나, 원조교재 사실이 학교에 퍼졌다거나, 요양원에 끌려가게 생겼다거나, 자신의 잘못으로 친구가 눈 앞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등. 누구도 쉽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 짊어진다. 사회는 더욱 잔인하다. 사회는 보통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의 대가를 치루면서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의미 없는 논의처럼 사회는 사람보다 서순이 앞서는 건 물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복지로 사람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반면 큰 대가를 요구하지만 울타리는 쇠창살에 가까운 부조리한 사회도 있다. 영화의 감독 후보가 묘사하는 중국 사회는 후자에 가깝다.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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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 내게 꽃을 내밀 때
  • DIRECTOR. 마이크 리 CAST. 마리안 장 밥티스트, 미셸 오스틴 외 SYNOPSIS.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할 말 다 하는 '팬지'. 집, 길거리, 마트...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긴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보듬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뿐, 남편과 아들은 귀를 닫은 듯 그저 무심할 뿐이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팬지'와 '샨텔'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팬지'가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하던 가족은 그녀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하는데... POINT. ✔️ 7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의 컴백입니다. ✔️ 특히 <비밀과 거짓말>을 함께한 명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와의 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연기가 너무 훌륭합니다. 연기를 통해 팬지의 얼굴에서 그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다 가늠해 보게 만듭니다. 역시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네요. ✔️ 보고 나면 세상에 친절한 마음으로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싶어지는 영화 ✔️ 특히 K-장녀들에게는 꽃을 다발로 주고 싶어지는 영화... ✔️ 가족 상담 사이코드라마로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비전공자 비전문가 주제에) 해보았습니다. 당신은 팬지의 가족 중 누구에게 가장 마음이 가나요? 당신을 화나게 혹은 슬프게 하는 인물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가족 상담의 사이코드라마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상당 시간을 할애애 팬지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방을 지저분하게 해 놓은 아들에게, 남편에게, 마트에서 장 보다 마주친 여자에게, 치과 의사에게... 팬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대개 고슴도치 같다. 팬지는 신랄한 말투로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도끼날처럼 떨어지는 말을 가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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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의 시대, 낭만의 밴드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슈퍼소닉>은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무명 시절부터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밴드의 결성 이야기부터, 1996년 무려 25만명의 관객이 모였던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까지의 3년간의 기록을 담아낸다. 갤러거 형제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텍스트로만 단편적으로 접했던 이야기를 실제 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무대 밖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니 '리암 갤러거'와 '노엘 갤러거'라는 사람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는 반가운 오아시스 원년 밴드 멤버들도 함께 등장한다. 저마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한층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끔 돕는다. 특히 요즘엔 보기 드문 저화질 캠코더 영상을 기반으로, 콜라주처럼 구성된 짤막한 애니메이션, 시점을 넘나드는 가족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이 계속해서 교차하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다양한 방식이 뒤섞이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롭게 흘러간다. 여기에 갤러거 형제들의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욕설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오히려 활력을 얻는듯하다. 다큐멘터리는 밴드의 시작부터 그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오아시스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 레이블 사장인 앨런 맥기의 선택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어찌 보면 이들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리암과 노엘의 노력이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리암이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음악에 엄청나게 몰두하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노엘은 내 생각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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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촉각으로 그려낸 고독의 세계
  • 두 소년이 함께 춤을 춘다. 주인공 치히로와 그의 친구 나오야가 함께 추는 춤. 이들의 춤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정형화되지 않은 이들의 몸짓.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접촉’이다. 선생은 말한다. “움직이지 말고 파트너가 움직이게 하라”. 두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몸을 맞대지도 않고 서로간의 호흡을 맞춰나간다. 그들의 춤만이 비접촉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접촉을 기피한다. 특히 주인공 치히로가 그렇다. 아버지를 잃고 이복형에게 맡겨진 치히로. 치히로는 형의 손장난조차 피하는 인물이다. 나오야와 함께 추는 춤으로 단련된 탓일까. 치히로는 비접촉에 능하다. 나오야의 여자친구 또한 나오야의 손길을 거부한다. 나오야는 평소와 같이 친밀함을 표하는 손길을 내밀지만, 이별을 결심한 그녀에게 그 손길은 불편한 침범이다. 원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거리를 지켜서라도 곁에 머물고 싶다는 나오야를 두고 그녀는 떠나간다. 그러나 실은 두 사람도 접촉을 원하는 인물들로 보인다. 영화의 중간 중간 치히로는 아스팔트 거리에 얼굴을 맞댄다. <아사코>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아사코와 바쿠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 사람에겐 서로가 있다. 그러나 치히로는 혼자다. 그래서 치히로는 손을 잡은 상대를 바라보는 대신 바닥에 안기듯 온몸을 접촉시킨다. 접촉을 기피하는 치히로의 기질은 이별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이복형과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사는 치히로는 자신이 당신들의 짐이 되는 것이 아니냐 직접적으로 묻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혼자가 된 치히로는 또다른 이별을 두려워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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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의 시간이 전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사랑
  •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 알 수 없는 감정에 끌린 두 사람은 아무런 일정도 없이 기차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단 하루,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난 우리가 지금 마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짧은 하루의 우연은 영원이 된다. <비포 선라이즈> 속, 파리로 향하고 있던 학생 셀린이 대뜸 말을 건 옆자리 남자, 제임스(제시)를 따라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차에서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 제시에게 이끌렸기 때문에. 호텔 숙박비도 없이 하루 동안 거리 곳곳을 오가면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딱히 스펙타클하지 않다. 갑자기 지갑을 도난당한다거나, 마약 밀매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거나, 그런 '영화 같은' 사건은 없다. 이들은 오로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할 뿐이다. 나이 든 노파와 같은 셀린과, 열세 살 꼬마와 같은 제시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 속 사랑이 정말 영화 같다고, 그리고 운명 같다고 느낀다. 제시는 셀린을, 셀린은 제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들이 아는 건 이들이 각자 털어놓은 '이 순간'의 정보들 뿐.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감정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그리고 꽤나 대담하게 행동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 또한 잘 모르는 이곳에서. 순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을 이끈 상대와 함께. 와인잔을 몰래 가져오고, 앉아 있다 손금 점을 보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옛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커다란 사건 없이도, 그리고 상세한 정보 없이도 그들은 '지금 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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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위기의 영화
  • 조희영의 영화에는 분위기가 있다. 배경은 길거리일 때가 많고, 인물들은 계속 대화를 나눈다. 또 그들은 자주 걷는다. 미장센은 적당히 세련되어서 감독에게 특유의 미감이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극에는 줄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미세한 감정과 은은한 대화의 흐름,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설명 속에서 종종 길을 잃더라도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이 영화에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혹은 느낌이 자연스레 솟아서다.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차분한 호흡과 정돈된 미감이 주는 영화의 안정감에 땀 흘리는 순간, 생활의 순간, 노동의 순간이 부재해서다. 의도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속 인물들은 일하는 중이거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명상하듯, 산책하듯 연기한다. 그래서 조희영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조금씩은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구체가 아닌 추상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땅〉에 이어 홀린 듯 끌려가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며 영화에 들어갔다. 멀리서 흘긋거리며, 끈에 묶여 허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으로. 영화에는 정호와 관계 맺은 세 여자가 있다. 먼저 수진.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정호의 애인이지만 현재 자기가 책 표지 그림을 그려준 시인과도 만나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인 인주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어쩌면 심각한 병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정호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러 캐스팅에 도전 중인 배우 유정은 정호의 전 애인이다. 유정에게는 그녀와의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애인이 있는데, 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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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주었지만 끝내 하늘에 닿지 못한 생에 대하여
  •  과거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에는 물론 코미디가 주되지만, 그 안의 미묘한 슬픔과 비애도 엿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특히 영화 <모던타임즈>를 관람하면 이를 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찰리 채플린의 분장을 떠올려본다면 우리가 왜 그의 유머에도 슬픔을 발견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표정 그리고 축 처진 눈과 입은 광대를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라기엔 '광대스러움'이 묻어있지 않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의 눈물>을 생각한다. 분명 웃는 듯한 그녀의 눈망울엔 눈물이 고이다 못해 한 방울 떨어지고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가득한 전체 배경에 눈물의 푸른색은 대비되어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전체 배경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전체 속 무언가의 존재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배경이 행복과 환희에 가득 차 있는 반면 슬픔과 비극이 서려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각종 빛과 환희, 사랑과 환락이 넘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세계관 속 비극이다. 비극을 조명하면서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는 희망에 집중한다. 인생에 있어 희망과 빛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말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할 수 없는 필연(必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유달리 빛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작품들은 관객의 눈 피로감을 위해 빛의 양을 설정하거나 조명하고자 하는 부위에만 빛을 쬐는 등 조절한다. 그러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해가 뜬 오전이나 오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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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사랑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 순수한 사랑에 대한 낭만은 멸종해 버렸다. 사람들은 더는 사랑의 애정과 열정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2000년대 초 같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요즘 극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 노래도 자기 성장보다 연애를 우선시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낭만 서사가 되었다. 사랑에 대한 낭만은 한심한 환상 따위로 치부되는 현재가 도래해버리고 말았다. 나이를 먹으며 주변 사람들은 점차 앞으로 다가올 연애에 조건, 배경을 따지기 시작했다. ‘나 정도면 이 정도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 ‘결혼하려면 이런 배경의 사람이면 좋겠어.’ 이렇게 사랑에 조건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어른의 현실인 걸까? 순수한 사랑은 어린아이의 상상에 불과할까? 이런 고민이 한참이던 때, 셀린 송 감독이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Materialists>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2024)를 선보임으로써 ‘사랑’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던 셀린 송 감독이 이번에는 <머티리얼리스트>를 가지고 나타났다. 지난 영화는 과거의 아련히 반짝이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갖게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를 과거로써 빛나는 채 남겨둘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번 영화는 오늘날 현대인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욕망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의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루시 (C)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의 잘 나가는 중매 회사 커플매니저인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가 동시에 나타난 두 남자 사이에서 갖게 되는 고민을 그린다. 한 남자는 연봉도 높고, 키도 크고 잘생긴 해리(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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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감독] 이지은 출연]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 장재희 시놉시스] 초등학교 5학년 반장인 명은은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가 부끄러워 자신의 집안 내력을 숨기며 친구들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예민한 소녀이다. 글짓기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인정을 받지만, 거짓말은 점차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이 커지고 만다. 그러던 중 전학 온 솔직한 쌍둥이 자매와의 만남은 명은의 내면을 흔들며 자신의 비밀과 마주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스포일러 유의# 거짓말 속에 숨은 유년의 불안과 성장의 그림자 영화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생 명은의 시선을 통해 유년기의 불안정한 자의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스스로를 조금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작은 거짓말을 하곤 하는데, 영화는 바로 그 ‘작은 거짓말’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커지며 아이를 압박하는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명은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모가 창피해 친구들 앞에서 사실을 숨기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집안’을 꾸민다. 그러나 이 거짓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뿐, 점점 자신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돌아온다. 관객은 명은의 불안과 고립, 그리고 들킬까 두려워하는 긴장감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학창 시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감추려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작품은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넘어,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타인의 기대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래서 명은의 거짓말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불안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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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railers

Awesome trailers from cinLab
    • 영화 <윗집사람들> 티저 예고편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공식 초청작✨ 하정우X공효진X김동욱X이하늬 섹다른 조합의 윗집 & 아랫집 사람들이 온다. [윗집 사람들] 12월 coming soon🗣️ #윗집사람들 #하정우 #공효진 #김동욱 #이하늬
    • 영화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 메인 예고편
    • 누군가에겐 추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열정을🔥 올 추석 가장 뜨거운 달리기가 다시 시작된다👟 남녀노소 모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 메인 예고편 확인👉 #나쁜계집애달려라하니 #달려라하니 #10월7일추석극장대개봉 #영화추천 #하니 #나애리
    • 영화 <괴물의 아이> 스페셜 예고편
    • 호소다 마모루 감독 '괴물의 아이' 개봉 10주년 기념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9월 10일, 환상적인 세계로 다시 초대합니다. #괴물의아이 #호소다마모루 #4K리마스터링 #9월10일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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