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9 12:06:19
[BIFF 데일리]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 리뷰
DIRECTOR. 촹칭션(CHUANG Ching-Shen)
CAST. 천옌페이(Yan-fei CHEN), 항첩여(Chloe XIANG), 치우이타이(Yitai CHIU) 외
PROGRAM NOTE.
1997년. 제1여고 입학시험에 실패한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제1여고의 야간 학생이 된다. 같은 교복을 입지만 명찰의 색이 다른 주야간의 학생들은 교실을 공유하는데, 아이는 주간 학생 민과 책상을 나눠쓰게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된다. 민과 함께 민의 교복을 입고 주간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던 아이는 어느 날, 루커를 만나 미묘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학업 성취도에 따른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십 대들의 사랑과 우정, 좌절과 성장의 스토리를 담백하고 솜씨 좋게 풀어 간다. <침묵의 숲>(2020)으로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진연비(천앤페이)를 비롯한 대만의 연기파 신인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풋풋한 성장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선영)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시절이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이 교과서 속 혹은 박물관의 유리벽 속에나 존재하던 시절. 모두 똑같이 소중한 제일여고 학생이라면서 주간반과 야간반 학생들의 명찰 색깔을 다르게 하고, 거기에 굳이 태양과 달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해 달이 발광체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똑같은" 것일 리 없다. 역시나 주간반과 야간반에게는 입학 첫 날부터 사뭇 다른 공지사항이 주어진다.
입시를 대하는 1997년 대만 풍경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익숙하다. 구체적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큼직한 정서만큼은 같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한 "여자는 사범대가 제일이야" 같은 말, 당시 훨씬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니까. 어른이 되고, 그 시절 그 분들이 진심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것임을 이따금 실감할 때조차, 내가 아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쭉 이어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꾸 사춘기의 아이들을 채근한다.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당시 입시의 중요성이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기회로 보였을 테니까. 인생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그 계단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 추후의 노력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요즘은 많이 무너지고 있다지만 90년대와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학벌은 그런 의미로 많이 받아들여졌으니까.
대입도 아니고 고입 시험에서부터 그런 소외감을 느껴버린 아이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쌓는다. 그런 아이를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동경하는 친구 민, 자꾸 설레는 대상 루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발돋움을 해보려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거짓은 거짓이라, 결국 거짓들은 핑퐁핑퐁 튀어오르고, 누구도 못되게 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제각각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친한 두 (여성) 친구가 동일한 한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는 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게 싫고, 그 과정에서 더 소중한 감정들이 배척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설정을 사용하면서도 과하게 중심에 두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대신, 불평등한 현실의 감각과 퉁 부딪힌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고 탁구를 치며 90년대 청춘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보다 평등하지 못하다는 감각이 앞서는 슬픔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청춘이 드러난다. 사실 아름답기만 한 청춘이 어디 있나.
우리가 대만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정서들을 충분히 가진 영화다. 동시에 성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를 산뜻하게만 그리며 얄팍해지는 대신, 내면에서 끊임없이 재난 경보가 울리는 시기라는 점도 명확히 짚는다.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을 긍정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나는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그런 시기 아닌가.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혼란스러움, 할 일은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은 따분함, 마음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남들의 껍질은 참 단단해 보이기만 해서 계속 느끼는 초라함과 질투,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어리고 서툴러 가끔은 나 자신을 견디는 게 벅차서 폭발할 것 같은 마음들까지.
이 영화는 그 나이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듯이. 재난만 있던 시절도 아니고, 아련함만 있는 시절도 아닌 그 시절에게. 때로는 거짓으로 위로 받은 마음조차 거짓은 아니었다고 끌어안으며, 영화에 나온 대사를 축복처럼 건넨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10/05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02)
10/06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64)
10/08 17:00 영화의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37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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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보는 내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영화. 이 영화를 보고나서 조금 밉상이었던 영화배우 커트 러셀이 멋지게 보일 정도였다. 커트 러셀은 쿠엔틴 라탄티노 감독의 영화 '데스 프루프'에서 악당으로 나와 세 명의 여성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아죽는 역할을 하는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남성우월주의, 여성혐오, 남성가부장제, 페미니즘 등을 모두 내포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는, 커트 러셀의 집안, 정확히는 아버지 빙 러셀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와 미국 프로야구의 민낯이다. 빙 러셀은 자신의 삶에서 야구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 팬이자 직접 선수로도 활약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커트 러셀도 한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단, 포틀랜드 매버릭스에서 선수로 활동했었다.
싱 러셀이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홉 살 무렵이라고 그의 아내 루 러셀이 증언한다. 싱 러셀의 아버지가 수상비행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러셀의 집안이 기본적으로 상류층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싱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레프티 고메스로, 당시 뉴욕 양키스 투수였다. 이후 싱 러셀은 뉴욕 양키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할 정도로 가까웠고, 루 게릭의 마지막 홈런 방망이를 가질 정도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선수들이 타는 버스를 함께 타고 다녔고, 연습장에서 마음껏 선수들 사진도 찍는 귀염둥이였다.
결국 싱 러셀은 독립구단의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선수생활을 했으나, 머리에 폭투를 맞고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싱 러셀은 가족을 이끌고 동쪽 끝 메인주에서 서쪽 끝 캘리포니아 헐리우드로 이주했다. 싱 러셀은 배우가 될 계획을 세웠는데, 헐리우드로 이주해 곧바로 조연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승마 실력이 좋아서 서부영화에 악역 조연으로 출연했고, 그가 출연한 '보난자' 시리즈는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대 유명배우들과 함께 출연했으며, 특별한 존재로 부각하지는 못했어도 꽤 성공한 배우였다.
그런 싱 러셀이 배우를 하면서도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야구였다. 그는 야구 교습용 비디오를 제작했고, 이 비디오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참고할 정도였다. '보난자' 시리즈가 막을 내리면서, 40대의 싱 러셀은 갑자기 백수가 되었다. 1973년, 포틀랜드 비버스 야구팀이 연고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포틀랜드에 야구팀이 사라졌다. 비버스는 인기 없는 팀이었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서 더 작은 도시로 이전한 것이다.
이때 빙 러셀이 포틀랜드에 싱글A 야구팀을 창단하기로 결정한다. 포틀랜드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빙 러셀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어서 포틀랜드 주민들은 빙 러셀의 야구단 창단을 믿지 않거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빙 러셀은 헐리우드로 이주하기 전에 독립구단에서 프로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니, 그가 독립구단을 창단한다고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이미 미국에 독립구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메이저리그의 하위 리그 구단도 모두 메이저리그에 소속되어 있었다.
포틀랜드 주민들이 싱 러셀의 야구단 창단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직전에 다른 연고지를 찾아 이전한 포틀랜드 비버스는 트리플A(AAA) 팀으로, 메이저 리그 바로 아래의 수준이었는데, 싱 러셀이 창단하겠다는 야구팀은 고작 싱글A(A) 팀으로, 이제 막 동네 야구의 수준을 벗어난 사회인 야구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 주민들은 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구단주는 빙 러셀, 감독은 프랭크 피터스, 단장은 래니 모스였다. 당시 미국 프로야구의 유일한 독립구단으로 출발한 것이다. 선수는 신문광고를 내서 공개모집했는데, 모두들 어처구니 없어했다.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일 거라고 예상했고, 몇 명 오지도 않을 거라고 했는데, 공개 선발시험에 무려 400명 넘게 참가했고, 미국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이 무명의 선수들은 오로지 야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몰려든 것이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날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선수를 선발하고, 싱글A 리그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이들이 소화할 경기는 모두 84게임. 매버릭스 선수들은 모두 저마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어서 언듯 보기에 오합지졸로 보였다. 마침내 첫 경기가 열렸고, 매버릭스는 4대 0으로 완봉승, 심지어 투수 진 랜섬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다. 이후 11-1, 11-4, 10-4, 12-5, 7-1 등 다른 팀을 압도한다. 별 볼일 없는 팀이라고 무시했던 포틀랜드 주민들은 놀라운 경기를 보여주는 매버릭스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고, 지역신문에도 소개된다.
메이저리그 산하 구단 가운데도 싱글A 팀이 많았고, 이들은 독립구단인 매버릭스에 번번이 깨졌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독립구단 매버릭스가 눈엣가시였다. 매버릭스의 인기는 마침내 미국 전역에 알려졌고, 1974년, 싱 러셀은 '올해의 구단주' 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독립영화로 오스카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포틀랜드 지역신문 기자들이 증언한다.
1975년에 싱 러셀은 공중파TV NBC에 출연하고, 매버릭스 팀과 선수들도 자세하게 소개되면서, 매버릭스는 전국에 널리 알려진 스타 팀이 된다. 이 팀에 '짐 버튼'이라는 투수가 등장하는데, 뉴욕 양키스의 주전 투수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최고의 투수였으나, 그가 쓴 책이 메이저 리그의 추문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쫓겨나 야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 싱 러셀이 매버릭스에서 함께 뛰자고 제안했고, 짐 버튼은 매버릭스의 투수로 활동한다. 이후 짐 버튼은 1978년 메이저리그에 복귀한다.
포틀랜드에서 야구는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야구장을 찾았다. 독립구단에 싱글A팀이 하는 야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 숫자는 미국야구에서 신기록을 세운다. 예전 팀인 비버스의 경기에는 겨우 30-40명 정도가 경기장을 찾았지만, 매버릭스 경기 때는 평균 4천5백명, 시즌 전체 12만 7천 명으로 마이너리그 신기록이었다.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야구를 하는 매버릭스의 경기는 그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들까지 동화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운영하는 싱글A, 더블A, 트리플A 팀은 메이저리그 선수를 기르기 위한 육성팀의 역할에 불과했으므로, 메이저리그에서 하위 리그 경기의 승패나 즐거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버릭스는 독립구단이었고, 무엇보다 야구를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관중도 그 느낌을 안 것이다.
빙 러셀은 기존의 메이저리그 시스템에 맞서고 있었다. 빙 러셀이 그걸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빙 러셀의 야구철학이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와 대립하게 된 것이다. 1977년에 매버릭스는 승률 66%로, 미국 전체 야구팀 가운데 1위였다. 메이저리그 산하구단은 매버릭스의 리그 우승을 막기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최고의 선수를 내려보냈다. 노스웨스트 리그 최종 결승전이 열리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매버릭스는 2-1로 패한다.
1978년, 포틀랜드를 떠났던 트리플A 팀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때 메이저리그의 법은 상위 구단이 들어오면 하위 구단은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 상위 구단은 지역에서 반경 145km 이내에 다른 구단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메이저리그가 독립구단인 매버릭스를 없애기 위한 작전인 것이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도 빙 러셀은 일방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포틀랜드로 들어올 구단은 빙 러셀에게 이전 비용은 2만6천 달러를 제시하면서, 기존의 관례보다 5배를 더 주는 것이라고 했다. 빙 러셀은 그 제안에 대해 무려 10배가 많은 20만6천 달러를 제시했다. 결국 이전 비용 문제는 법정으로 갔고, 법원은 중재를 거쳐 최종 결론으로 빙 러셀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 역시 마이너리그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빙 러셀과 매버릭스 선수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미국 야구역사에서 매버릭스의 존재는 즐겁고, 재미있는 야구, 행복한 야구를 하는 마지막 독립구단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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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지만 쉽게 망각하는 사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영적 세계를 표현한 픽사의 엄청난 상상력과 표현력은 놀랍다. 이래서 픽사 영화는 믿고 봐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단순히 쉽게 흘러가는 줄거리 속 숨어 있는 심오한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소울>에서 가끔 등장하는 한국어와 한글은 한국인이 봤을 때 친근함과 소소한 웃음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나에게 불꽃을 만들어준 영화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화 서두에 적었다시피 한글과 한국어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우리들처럼 흑인들이나 뉴욕에 사는 사람들도 <소울>에 소소한 재미를 느낄 것이다. 거대한 뉴욕 도시 풍경과 분위기는 물론,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의 인종에 맞춰 소울 가득한 재즈 음악과 흑인 바버샵, 흑인 특유의 억양과 발음 등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인 문화들을 살펴볼 수 있고, 같이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라라 랜드>의 세바스찬(라리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과 비슷하여 그를 떠올렸지만, 피아노 연주로 전해져 오는 분위기와 소울이 달랐다. 역시 재즈는 흑인 문화인만큼 그 소울을 따라갈 순 없나 보다. 표현 같은 픽사 작품인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창의적이게 표현한 영화라면 <소울>은 인간의 영적인 세계 즉, 죽음과 창조에 대해 창의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인간이 죽고 난 후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의견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소울>은 우주처럼 보이는 배경에 거대하고 환한 빛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으로 죽음을 표현한다. 환한 빛을 향하니 긍정적인 세계로 향하는 듯 보인다. 반면, 창조는 생물학적인 탄생 이전으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성격이나 성향을 미리 만든 상태로 성장해간다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자아를 미리 만들어놓고 성장하면서 그 자아를 발현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영적 세계는 신기함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인간의 자아 형성은 어떻게 되고, 죽음 이후에 다가오는 과정은 이러한지 그리고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순간 <소울>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상의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자라고 느낀 영화다. 이 주제는 너무 단순해서 금방 망각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소울>은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영화다. 일상의 즐거운 순간,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제와 더불어 '목적'이라는 키워드도 언급하고 싶다. 조 가드너는 '하프 노트'라는 재즈 클럽 멤버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막상 꿈에 그리던 재즈 멤버가 되니 그는 마냥 기뻐하지 않고, 공허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꽃이 약해진 것이다. 목적, 목표를 정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긍정적인 성과나 변화를 얻길 원하고, 실제로 얻기도 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한 없이 높아지고 과장되어 간다. 그리고 결국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달했을 때, 과장되었던 기대감에 김이 빠지기 시작하며,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대감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두려워서 무계획을 실현할 수도 있다. <소울>은 한편으로 목적 있는 삶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정확히는 무조건 목적이 있어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꽃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묻지만, 단순하고 일반적인 순간에도 마음속 불꽃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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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의 만남
3분 추천
스포일러가 싫은 사람이라면 전작을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이사벨 펄먼 배우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나, 역시 연기력으로 압살해버린다.
전작에 대한 연결성이 짙어서 전작을 본 사람에게는 기대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후기길게 말할 필요 없는 확실한 스릴러 영화. 이미 반전 요소를 알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유명한 영화라서 프리퀄로 어떻게 재미를 줄까, 보기 전부터 기대가 앞섰다. '대체 저 아이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뭘까'를 궁금해했던 게 전작이라면, 이번 [오펀 : 천사의 탄생]에서는 '대체 저 비밀을 어떻게 숨길까'가 관건이었다.가족을 속이고 장악해가는 에스더를 기대했는데, 예상외의 반전이 등장하며 순식간에 영화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반전이 설득력 있지는 않지만, 빠른 전개 덕분인지 중후반 흡입도가 확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사벨 펄먼의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영화 초반에는 얼굴이 너무 변해서 어색하긴 하지만, 집중하다 보니 눈에 익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게다가 내용이 내용인 만큼 오히려 광기에 젖은 성인의 모습이 좀 돋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있음*
딸이 죽었음에도 아들을 싸고도는 엄마를 보니 이전에도 딸이 행복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트리샤에게는 자식보다는 안정된 가족이 더 중요했던 것이겠지. 그보다 더 앞선 것은 남편에 대한 애정이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딸을 데리고 온 그 속셈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진짜 딸이라면 가출했을지도.
흥미로웠던 건, 에스더의 특이한 그림 기법이 앨런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점이다. [오펀 : 천사의 비밀] 편에서 에스더의 숨은 비밀을 드러내고 충격을 주었던 요소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것 말고도 에스더의 러시아 억양이나, 정신병원에서 받은 성경 책이나, 옷 입는 취향 같은 것들이 등장해서 전작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이렇게 보니 그녀가 어떻게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이보다 더 앞선 이야기를 찍는 건 이제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찍어줬으면 좋겠다. 오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영화이기도 해서. 이번 편은 평이 극명하게 갈리고 별로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꽤나 재밌게 봤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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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NA 기대한 이 영화, 아쉬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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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이 돌아왔다. 장르는 마찬가지로 로맨틱 코미디. 〈킬링 로맨스〉는 〈남자사용설명서〉의 길을 계승한다. 남성과 여성이 불균등한 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평등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를 감독 특유의 B급 코미디로 유쾌하게 질문하는 그 길 말이다.
주인공은 톱스타 여래와 그녀의 남편 조나단 나(JOHNathan Na) 그리고 여래의 팬클럽 회원이자 4수생인 범우다. 여래는 CF 스타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큰 투자를 받은 SF 작품 〈낯선자들〉에서 발 연기를 선보인 후 조롱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상심한 채로 ‘콸라’ 섬으로 떠난 여행에서 환경 운동가이자 동물권 운동가, 부동산 개발업자인 조나단을 만나 결혼한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여래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다. 환경‧동물권 운동가인 동시에 부동산 개발업자는 존재할 수 없다. 이 공존은 둘 사이의 모순이 완벽히 감춰질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조나단이 겉으로는 다정한 남편인 척 굴지만 실은 여래를 정서적‧신체적으로 완벽히 통제하는 남자이듯 말이다. 조나단은 여래가 환각, 조울증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약을 먹이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 여래의 몸무게를 유지시키기 위해 그녀가 먹는 것을 통제한다. 요컨대, 조나단은 미쳤다는 낙인에 여래를 가둔 후 그녀를 자신만을 위한 액세서리로 만드려고 한다. 남자들이 오랫동안 여자를 길들여온 방식이다.
부동산 개발을 위해 오랜만에 콸라 섬을 나와 한국으로 돌아온 조나단과 여래. 그 옆집에는 온 가족이 서울대에 갔는데 혼자만 그러지 못해 4수 중인 수험생 범우가 산다. 범우는 자기 옆집에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여래가 산다는 사실에 흥분하지만, 곧 그녀가 남편에게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여래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조나단을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된 B급 ‘병맛’ 코미디는 조나단을 죽이기 위한 기상천외한 작전까지도 이어져 관객을 홀린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꼴 보기 싫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승재’를 연기했던 오정세 배우의 특별 출연도 반갑다.
영화는 끝까지 B급 병맛 코미디를 고수하며 조나단에게는 몰락을, 여래와 범우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여래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여래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범우가 여래를 돕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는 조나단을 죽일 수 있는 몇몇 결정적인 기회에서 머뭇거리다 일을 망친다. 하지만 끝내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는 그 선한 마음으로 여래를 돕는다. 그가 3수에 실패하고 4수에 들어가면서 동물과 대화하기 시작했다는 설정에서 범우의 ‘실패’ 경험이 여래에게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실패 경험이 또 다른 취약한 존재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다. 요컨대, 〈킬링 로맨스〉는 남자의 폭력으로 결혼에 실패한 여자가 수험 생활에 실패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 성공을 독식하는 남자를 물리치는 이야기다. 연대가 억압을 이긴다.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남자사용설명서〉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유쾌하게 풍자하여 평등한 사랑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넓힌 이원석 감독이 비슷한 결의 영화로 돌아온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킬링 로맨스〉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 영화로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자신이 애초에 마음먹었던 영화의 톤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의 코미디에 익숙하거나 그의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참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대체 2시간 동안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황당해할 수도 있다. 내내 코미디에 힘을 주다 보니 드라마에 힘이 들어가야 할 순간에 힘이 빠진 듯한 느낌도 있다. 코미디 연출이 핵심이라도 〈킬링 로맨스〉 서사의 근간은 자유를 위해 남편을 죽이고자 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코미디 톤을 죽이고 서사의 힘을 키웠어야 했다는 소리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씨가 마른 시대에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감독이 10년 만에 같은 결의 영화로 돌아왔다는 데서 〈킬링 로맨스〉에 대한 기대감은 ‘JOHN NA’ 컸다. 그러나 결과물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물론 나는 이 영화를 적당히 재밌게 즐겼다. 하지만 다른 관객 역시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감독의 비타협적 실험이 뚝심이 아닌 자기만족에 그칠지도 모르겠단 불안이 들었기 때문이다(코미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자기감정보다 타인의 반응을 먼저 떠올린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원석 감독과 그의 지향을 ‘JOHN NA’ 응원하지만 말이다.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로맨틱 코미디'(https://brunch.co.kr/@cyomsc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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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물 속에 녹아든 미국 사회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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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겨울왕국이 영화관을 지배하고 있을 때 입소문이 퍼지던 작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영화 <나이브스 아웃>이다. 추리물인데 그렇게들 재밌다고 해서 N차 관람각이라기에 기대를 했으나 솔직히 추리물은 그저 그랬고, 오히려 사회 풍자가 군데군데 있어 재밌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놉시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각 85세 생일에 숨친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누아 블랑이 파견된다. 그렇게 집안 사람들을 한 명씩 조사하던 중 탐정 블랑은 간병인 마르타를 사건의 중심에 두며 수사를 펼쳐나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나이브스 아웃>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기존 추리물을 한 데 모아놓은 듯한 느낌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 작품이 원작이 있는 작품인가?였다. 그만큼 익숙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둔다는 점, 단조롭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 정치적 풍자나 약물오용, 그리고 히피문화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많이 생각났다. 또한 사건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려준 후 이를 추적해나가면서 퍼즐을 끼워맞추는 블랑의 수사 방법은 형사 콜롬보과 굉장히 유사했다.
지루함과 긴장감의 핑퐁게임
그래서 그런지 영화 초반에는 조금 지루했다. 뭐 이렇게 떡밥들을 많이 뿌려놓나 싶었다. 사건의 진전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아서 좀 휘몰아쳤으면 좋겠는데 하는 감정이 종종 들었다.
중반부터는 간병인 마르타가 범인임을 단정지어 놓고 사건을 전개해나간다. 그래서 마르타는 자신이 범인임을 감추기 위해 블랑과 함께 수사를 하면서 수사를 방해한다. 그런데 뭔가 퍼즐조각이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도대체 이 쎄한 감정은 무엇일까? 이미 범인이 밝혀졌는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하면서 긴장감이 감도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텐션이 낮게 흘러가서 함께 공존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지루함이 느껴졌다. 이 부조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음표는 머릿 속에 자꾸 뜨는데 은근히 지루했던 작품이었다.
블랙코미디 덕에 웃을 수 있었던
지루함과 긴장감이라는 오묘한 감정 속에서 정말 재밌게 웃을 수 있었던 부분은 블랙코미디가 다량으로 등장했던 부분이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굉장히 고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서 이 작품이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할런의 엄청난 재난으로 인해 야기된 가족 간의 깊은 불화가 주요 소재인 이 작품에서 인플루언서 조니와 백인 우월주의에 물든 제이콥, 인종차별주의자 리처드 등 각각의 캐릭터에 미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현안들을 부여해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있어서 작품을 보는 데 재미가 있었다. 특히 할런의 85세 생일에 벌어진 이민자에 대한 토론이야기는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합법적인 이민자들의 성실함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이 기여를 하지 않고 들의 세금만 축내는 불법 이민자들은 마땅히 추방되어야 한다는 리처드의 모습은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안의 이단아였던 랜섬의 행동을 보고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할런의 가족들을 볼 때는 점잖게 자신들을 포장하느라 참 애썼다는 측은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기대만큼 엄처난 재미를 안겨주진 않았지만 블랙코미디를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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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 없는 노출 수위와 반복되는 지루함
내 인생은 확실히 반전 영화의 연속이다. '이런 문제가 생겼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갖고 온다. 해결된다. 그 해결됨으로써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가 반복되는 게 나의 삶이었다. 이거 좀 반전 아냐? 이쯤이면 됐다 싶었을 삶의 과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부분은 아무리 봐도 놀랍다. 이런 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잘 알고 있는 지점이 있다. 바로 모든 인생이 다 똑같다는 것이다. 다음에 안 일어날 것 같았던 일이 형태만 다른 채로 돌아오는 것, 참 질리는 일이지만 이걸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드라이브 마이카>와 <소울>이 등장한 것 아니겠어?
이런 영화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것과 별개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각자의 사연을 듣게 된다. 그럼 내가 가진 사연이 금세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세상을 향한 미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문장. 내 인생의 구체적인 성공담과 복수담을, 세상은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묻기 전까지 먼저 늘어놓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 내가 살면서 느낀 점이다. 그래도 내 뒤를 아내 건 자식이건 후배들이건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가진 상처를 그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이 나란 사람을 바탕으로 픽션으로 제작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다. 이 영화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노마 진, 그러니까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금발머리를 한 영화 <블론드>다.
살아있단 건 너무 아픈 상처 같아
"살아있다는 건 너무 아픈 상처 같아"라는 노래 가사가 더 아프게 들려온다. 물론 기리보이라는, 우리나라 아티스트의 가사지만 이 문장은 주인공 노마 진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아예 태어나선 안됐나. 노마 진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없었다. 왠진 모르게 어머니와 함께 사는 노마 진. 이 어머니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어머니. 어머니는 진작에 딸을 버렸다. 보육시설에서 자란 노마 진. 자기 곁에 없었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잔 노마 진. 할리우드에 들어가고 난 후에는 자기 적성도 찾은 것 같았다. 이런 그녀를 세상은 마음대로 두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마 진에게 접근하는 남자들. 노마 진이라는 사람에 메릴린 먼로라는 두 번째 이름이 붙어도 그녀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 노마 진, 마릴린 먼로는 험난한 세상을 딛고 홀로서기에 도전한다.
<스펜서>
올해 3월 <스펜서>가 개봉했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간 다이애나 스펜서. 파블로 라라인 감독을 직접 인터뷰한 건 아니지만 난 감독이 이를 전면으로 보여준 게 다이애나가 느낀 행복감을 묘사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리 호러에 가깝게 등장인물의 목을 옥죄서 후반부의 카타르시스에 힘을 주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이후 스펜서가 그려나갈 인생의 청사진이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 것이다. 또한 '달리기'라는 운동의 성격을 차용해서 분출하는 에너지를 그린 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충분하다. 반대 측면에서 스펜서의 억압받는 삶을 보여주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스펜서가 밤중에 슬쩍 일어나서 부엌에 몰래 들어가 뭔가를 먹는 장면이 있다. 이를 집사가 감시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기본적인 욕구가 제어되는 스펜서의 일생을 암시한 좋은 연출이었다. 스펜서가 뭐만 하면 헛구역질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펜서의 주변인이었던 매기는 아예 성적 취향까지 숨겼었다. 이렇게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섬세한 구석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답답한 스펜서의 일생을 깔끔하게 묘사했다.
이번엔 <블론드>다. 이 <스펜서>와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여성 원톱 주인공. 아나 데 아르마스 /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스타 여배우를 섭외했다는 것.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뤘다는 것. 남편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 베를린의 선택. 뭐 굳이 꼽자면 더 있을 여러 공통점이 있다. 이는 의상이라는 키워드에서도 읽을 수 있다. 노마 진은 불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옷을 꽉 껴 입는다. 몸매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펜서>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자기에 대한 사진을 찍는 연출은 나름 꼼꼼했다. 역시 <스펜서>에서도 볼 수 있다. 엔딩까지 러닝타임을 끌고 가면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처지도 꼽자면 공통점이 있다. 나체/질주라는 것은 다시 어린아이의 형태로 돌아감/원초적인 에너지 발산이라는 지점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을 묘사한 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패왕별희>
그 대신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스펜서>는 단적인 기간만 보여줬고 이 <블론드>는 긴 일대기를 보여줬다. 이는 후자가 <패왕별희>와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형식은 <패왕별희>를 빌렸지만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는 <스펜서>와 비슷했던 것이다. 다시 <패왕별희>로 돌아가서, 이 영화에서 장국영이 맡았던 주인공은 철저하게 시대에 희생된 인물이다. 물론 후반부 공리 캐릭터에게 폭언을 하는 부분이 제시되긴 하지만 이 사람은 정체성의 혼란을 문화 대혁명이라는 시간적 배경 아래에서 겪고 있다. <패왕별희>는 이 구분을 명확하게 했다. 바로 '경극에는 여자가 출연할 수 없음'이라는 설정과 퀴어 캐릭터라는 모순이 극에 창의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인물은 선택지가 없다. 당시에 보수적이었던 중국 사회가 없었어도 답답한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박하사탕>도 이 <패왕별희>에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주인공 영호는 자기가 선택했지만 분명하게 제시되는 시간적 배경 아래에서 점점 미쳐갔다.
다시 쓰자면, 이 영화는 <패왕별희>의 형식을 빌려 <스펜서>의 주제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닫혀있던 시대상. 그리고 그 안에서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던 여성 주인공.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특이점을 갖는다. 그런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게 너무 많아서.
불필요한 것으로 가득 찬
원작 소설은 마릴린 먼로의 삶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원작 <블론드>를 읽지 못했다. 그래도 이 영화가 각색하고자 했던 지점이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군더더기로 이루어져 있다. 왜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아나 데 아르마스)가 신체부위를 노출해야 하며. 아버지를 사칭해서 청혼하는 남자와 왜 키스를 해야 하며. 구강성교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유산하는 모습을 굳이 구체적으로 연출한 의도는 무엇이며..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장면이 영화 구석구석 들어가 있다. 영화는 소설과 달라서 장면마다 제작자가 연출하고 싶었던 의도라는 게 있다.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여준다던가, 지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꼬아놨다던가, 따뜻한 감동으로 관객에게 에너지를 준다던가 하는 것 등등이 연출가 될 수 있다. 왕가위, 크리스토퍼 놀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왜 뛰어난 감독일까를 생각해보면 관객에게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정성 있게 전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냥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이미지? 영상미? 내용이 아름답지 않아서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여성 혐오적인 시대상? 그렇다기엔 극 중 마릴린 먼로가 고르는 선택지가 '단지 아버지의 존재가 어렸을 때부터 없었기 때문에'로 퉁쳐진다. <패왕별희>에서 장국영 캐릭터가 마음대로 자기 삶을 개척할 수 없었던 것과는 정반대다. 각본의 허술함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 것이다. 아버지를 사칭해서 청혼하는 남자랑 같이 사는 여자가 어디 있어? 감독은 이런 노마 진의 삶이 기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이 시퀀스의 영상미를 아름답게 뽑았다. 근데 영상 아름답게 뽑은 게 대수인 건 아니다. 일단 이 사람은 여기서부터 그냥 쓰레기인데 여기에 또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노마 진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패턴으로 계속 속는다. 이럼 영화의 설득력과 진정성이 떨어진다. 자기가 선택한 것 아닌가? 뭐 어쩌라는 말인가? 여성 혐오적인 시대상에 대해 공부하려면 같이 업로드된 넷플릭스의 마릴린 먼로의 다큐를 보는 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느껴지지 않는 미학적 아름다움
이렇게 줄거리랄 것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일어난 애정결핍'이 무려 2시간 40분 동안 반복되기 때문에 리뷰랄 것도 없는 영화의 줄거리가 반복되고 있다. 이야기가 후반부에 노마 진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다는 거 빼고는 같은 패턴의 연속이기 때문에 지루한 연출 방식이 더 고루하게 느껴진다. 또 주인공 왜 옷을 안 입고 사는지 궁금하다. 그냥 가벼운 잠옷 정도 입을 수 있는걸 왜 저렇게 나체로 자주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반복적인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다 흐물흐물하게 끝나는 엔딩을 보면서도 물음표 쳐지는 기분을 부정할 수 없다. 과연 어떤 걸 예술가로서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무의미하게 자극적인 내용의 반복이라 무엇에도 몰입할 수 없었던 답답한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영상미를 이쁘게 뽑았다기엔 내용에서 받쳐주지도 못했으며 왜 마릴린 먼로를 소재로 삼았는지도 의문이다. 또 굳이 실존인물의 실제 이야기인 것처럼 이야기를 쓴지도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었냐? 아니오. 실제로는 당당한 분이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냥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영상미가 예뻐서 시각적인 쾌감이 분명했나? 이야기가 구려서 집중이 잘 안됐다. 또 계속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니(심지어 사실도 아님) 집중도 안 된다. <스펜서>처럼 힘을 줄 수 있는 곳에서 임팩트를 줘 카타르시스를 줬나? 아니오. 이 영화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못 만든 영화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직업윤리적으로 성실하지 못한 영화를 보면 많이 아쉽다. 단지 자극적이기만 한 것이 모든 예술의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두루뭉술한 영화더라도 분명한 강점은 있다. 일단 영상미 자체는 잘 뽑았다. 계속 반복되는 내용이라 예쁜 영상미도 보다 보면 질리지만 뭐 화면비율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또 아나 데 아르마스의 명연기가 돋보인다. 노마 진은 극에서 엄청 자주 운다. 이 눈물연기의 패턴이 점점 달라지며 임팩트를 주는 건 대단했다. 또 아버지의 부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극본이 좀 과하게 전개되는데, 이를 구현하는 표정연기나 눈빛 연기도 좋았다. 주요 시상식에서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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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라이온 킹]의 전설이 다시 시작된다! "무파사, 이제 너의 시대야" 세상을 뒤흔들 전설적인 왕의 탄생🌠 그 거대한 여정의 시작을 확인하라! 🎞️[무파사: 라이온 킹] 파이널 예고편 공개 위대한 전설 [라이온 킹] 이전의 이야기🌅 [무파사: 라이온 킹] 12월 18일 IMAX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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