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두codu2024-12-03 13:33:56
죽음을 옆에서 바라봐 주는 사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룸 넥스트 도어>(2024)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생한 삶의 복판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생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주는 공포를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죽음을 외면한 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두려움에 용감하게 맞서기도 한다.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책으로 쓴다.
강렬한 붉은색 옷을 입고 ‘환희와 우울’을 오가는 자궁경부암 3기의 시한부 환자인 마사(틸다 스윈튼)는 항암 치료뿐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들의 피험체가 되어 암과의 투쟁을 치르고 있다. 자신의 몸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미 죽음까지 결심했던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창백하고 건조한 얼굴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하는 틸다 스윈튼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겪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배우임을 몸소 보여준다. 마사라는 인물 자체는 모든 색을 빼앗긴 듯 창백하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생동감 넘치는 색의 향연이다. 집은 감각적인 미술품과 소품들로 꾸며져 있다. 마사가 마지막을 보낼 장소 역시 붉은색과 녹색을 주축으로 살아있는 색의 생기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마사와 만난 잉그리드는 그의 말을 들어주며 언제든 곁에 있어주려 노력한다. 마사는 그런 잉그리드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을 부탁한다. 자신이 안락사를 실행에 옮길 어느 밤에 자신의 옆방에 있어줄 것을, 이 여정에 동행해 주기를 부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잉그리드에게 이는 어렵고, 불편하고, 무서운 부탁이다. 마사의 선택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왜 하필 잉그리드 자신이어야 하는가? 잉그리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글로 쓰는 것을 넘어 죽음 그 자체를 마주할 위험, 혹은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원래 마사의 계획은 잉그리드가 옆방에서 닫힌 문으로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잉그리드는 마사의 옆방에 있지도 않았고, 닫힌 문이 아닌 투명한 테라스 유리창 너머에서 초록색 선베드 위에서 선명한 노란 정장을 입고 영면에 든 마사를 보게 된다. 마사의 죽음은 고통스럽기보다 평안해 보인다. 그가 원하던 ‘평화와 정적’이 거기에 있다. 문 뒤에 도사리는 죽음을 예감하며 문을 여는 것과 선 베드에 누워 흐드러지게 누워 있는 죽음을 통유리로 마주하는 것 중 무엇이 잉그리드에게 나은 지는 알 수 없으나 품위를 지킨 죽음의 이미지로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아름다운 날에 좋아하는 새소리를 들으며 떠난 마사는 딸 미셸의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다. 극 중 마사는 계속해서 자신과 사이가 소원한 딸 미셸을 언급한다. 마사의 죽음 후 엄마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공간을 찾게 되는데 틸다의 1인 2역으로 인해 그 건물은 마사와 잉그리드 외에 다른 인물은 허락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잉그리드는 “집이 너로 가득”하다고 말하며 마사이자 미셸인 그 존재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만든 <룸 넥스트 도어>라는 공간은 죽음 직전에 잠시 거처하는 유예의 시공간이다. 그곳에서 마사와 잉그리드는 죽음을 기다리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즐겁게 죽음의 시간을 보낸다. 마사의 죽음 옆에서 우리는 그저 그의 죽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도 마주한다. 짧지만 분명한 플래시백으로 보여지는 마사의 과거는 약간의 단서만 제공하며 마사의 삶을 가늠하게 한다. 다소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삶의 단편들은 오히려 삶과 죽음의 보편성을 부여한다.
<룸 넥스트 도어>는 안락사를 이상적이게 그려낸 듯도 하고, 저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평온하고 안정적인 안락사를 할 수 있다는 감상도 준다. 저 아름다운 풍경과 안전한 환경은 분명 이상적이며 환상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이상적인 안락사 세트장 같다. 그러나 어떤 삶을 미화할 수 있듯이, 어떤 죽음도 미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큰 욕망이자 환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함께 죽음을 동행해 주는 친구 잉그리드다.
감독은 비단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 인물의 입을 빌어 기후위기로 인해 전쟁터가 되어버린 지구와 사회가 맞이한 시한부의 상태를 개탄하기도 한다. 마사가 겪는 시한부의 삶은 모든 지구인이 겪어야 할 삶과 다르지 않다. 성공적인 치료법을 통해 개선될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나이의 문제도 아니다. 잉그리드의 책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는다. 젊은 세대의 불안과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만큼 젊은 죽음은 적지 않다. 우리 모두는 전쟁 같은 삶의 비극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잉그리드 “비극 속에서 사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마사의 폭풍 같은 삶과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잉그리드는 마사의 전쟁 같은 삶과 평화로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것은 그가 좋은 관찰자이자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의 죽음, 인류의 죽음 나아가 문명의 죽음을 말하는 영화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누구와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할지 고민해 볼만한 영화들을 계속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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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향성 없이 시대상을 잘 드러낸 영화 《에놀라 홈즈》
넷플릭스에서 셜록 홈즈 전편을 보고 나서 그 이후 셜록 홈즈는 실존 인물처럼 다가와버렸다. 나의 머릿 속에는 셜록-베네딕트 컴버비치가 각인되어 있었던 터라 다른 셜록 시리즈들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에놀라 홈즈는 셜록 드라마 시리즈에서 마지막에 조금 등장을 했던 터라 그래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캐릭터 설정은 많이 다르긴 했다. 드라마 셜록에서는 여동생이 감옥에 수감될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지만 영화 에놀라 홈즈는 철부지 같으면서도 소녀미 가득한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드라마의 세계관과는 이어지지 않아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에놀라 홈즈》 시놉시스영화 《에놀라 홈즈》는 에놀라가 사라진 엄마를 찾으러 나서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식 끊긴 두 오빠들에게 에놀라는 맡겨지고, 보수적인 마이크로프트는 에놀라를 현모양처로 키우려 한다. 하지만 홈즈 가문 답게 에놀라는 두 오빠를 따돌리며 런던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시작부터 도망자 신세인 귀족 청년과 엮이고 만다. 그 와중에 오빠 셜록까지 따돌려야 하는 에놀라. 미스터리가 가득한 이 모험.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큰 줄기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영화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정면을 보면서 에놀라가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아주 격하게 놀랐다. 영화의 형식의 중간중간 에놀라가 관객에게 현재 상황을 리포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연극에서 대표적인 방법으로 활용되던 서사극 형식을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주인공이 연극 속에 있다가 갑자기 관객에게 이야기를 설명해주면서 관객들이 몰입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효과를 주는 방법이다. 영화 《에놀라 홈즈》에서는 이 효과가 제대로 먹혔다. 갑자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여러분~?하고 에놀라가 관객을 불러댄다. 에놀라의 감정선에 몰입하기 보다는 그 상황과 흐름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다.
그리고 내용이 여성 참정권에 관련된 이야기였기 때문에 여성 화자인 에놀라의 감정선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영화 자체가 억압의 구조로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서사극 형식이 여성 화자가 여성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객들이 자신의 입장에 맞춰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끔 만든 장치이지 않았나 싶다.
본격 자아 찾기 프로젝트
에놀라는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자란 에놀라지만 엄마는 에놀라에게 친구이자 선생님이었기에 엄마에 대한 의존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엄마에 대한 좌절감에 허우적 거리기보다 에놀라는 스스로 엄마를 찾아나선다. 그런 에놀라에게 런던에서 조우한 엄마의 친구는 충고의 말을 건넨다. “다른 사람 찾는라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네 자아를 찾아.”
이 이후 에놀라는 엄마를 찾는 것에도 몰두하지만 점차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도망자 신세의 귀족 청년을 다시 찾아내고 그를 도와 여성 참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에놀라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내 인생의 나의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여성 탐정의 길을 떠난다.
후속작이 나올까?
그래서 든 의문은 후속작이 나올 것인가?였다. 에놀라 홈즈는 원작 소설이 6권이라고 한다. 에놀라 홈즈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셜록처럼 그 추리의 세계를 깊게 담아낸 것도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여성들의 삶을 면밀하게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즉, 이미 그 시대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맞제. 그 땐 그랬었지.’하는 감상을 할 수 있는 영화였다. 그 소재를 되게 러프하게 다루면서도 재밌게 풀어냈고, 여성의 입장에서만 편향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작품이었다.에피타이저 같은 작품이랄까?
그래서 과연 에놀라 홈즈가 이제 에놀라의 인생과 그 시대상을 면밀하게 보여주는 후속작으로 찾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 기대감과 함께 궁금증이 들었다.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찌보면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영화 《에놀라 홈즈》. 후속작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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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설 특선영화 라인업
작년 극장 개봉영화들 놓친사람 모여롸 24년도 설도 온가족과 함께 영화 즐길 수 있다구요 #아시안컵 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설 특선영화로 훈훈하게 보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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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나잇 인 소호>낭만과 비극을 품은 런던의 거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런던 소호로 온 ‘엘리(토마신 맥켄지)’. 기대와 달리 런던과 기숙사에서의 삶은 피곤하기만 하고, 이에 그녀는 새 자취방을 마련해 삶에 변화를 주려한다. 그리고 마치 엘리의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이 색색의 네온사인이 깃든 새 자취방은 꿈에서 1960년대 소호의 매혹적인 가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를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샌디의 화려한 모습에 매료된 엘리는 매일 밤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삶을 함께 누리려고 하지만, 꿈이 점점 악몽으로 변해갈수록 현실에서 그녀의 삶도 점차 기괴해진다. 끝내 샌디에게 닥친 비극의 목격자까지 되어버린 엘리는 현재까지도 살아있을 범인을 쫓는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인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다. 비교적 유쾌한 코미디에 기반해 잔혹한 액션, 과장된 연출이 빚어내는 쾌감과 미학이라는 감독 본연의 스타일로부터 적지 않은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웃음기를 내려놓은 호러 영화로 돌아왔다는 점, 그리고 비중에 관계없이 등장했던 액션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그 빈자리는 진중한 스토리가 대신한다. 영화는 1960년대와 현재 런던을 오가며 누구보다도 성공을 바라왔지만 사회의 벽과 폭력에 가로막혀야 하는 청년들의 두려움을 강렬한 색감과 화려한 렌즈 플레어와 조명이 만든 초현실적인 이미지 안에 녹여낸다. 이때 눈길을 끄는 것은 낭만과 비극으로 가득한 두 주인공의 사연을 전달하고 대담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라이트 감독이 선택한 메신저, 거울이다. 덴마크의 설치 예술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말대로 거울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한다. "역사적으로, 거울은 잠재의식에 대한 생각을 가진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거울은 평행 세계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바로 이러한 거울의 이중적 기능을 스토리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영화는 엘리를 끊임없이 거울 앞에 위치시킨다. 당장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엘리는 거울을 본다. 그 안에서 그녀는 어릴 적 죽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다. 런던 패션 학교에 진학한 후 룸메이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기숙사를 나와 이사한 방에서도 엘리는 거울을 본다. 그 거울 안에서는 자신과 닮은 모습의 샌디를 발견한다.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 런던으로 온 자신처럼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샌디를 본다. 이때 거울의 독특한 특성은 엘리가 거울에서 보는 두 대상으로부터 서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오며 엘리를 주체이자 대상이라는 이중적 관계 안에 놓고, 막 대학생이 된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비춘다.
우선 엘리는 거울 안에서 자신의 옆에 있는 엄마를 볼 때 단순히 거울에 비친 이미지만 보지 않는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엄마의 꿈을 자신이 이루겠다는 각오, 런던에서 지낼 미래에 대한 기대와 동경, 동시에 런던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조현병을 앓다가 자살한 엄마의 전철을 불안증을 앓고 있는 자신이 따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까지 같이 본다. 이렇게 엄마와 함께 서 있다가도, 다시 혼자 서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엘리는 현재 자기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뚜렷하게 인식한다.
이는 엘리아슨이 잠재의식을 만나다고 표현한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거울의 매끄러운 표면에 반사된 나를 닮은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거울이 우리가 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던 자기 자신의 외관이나 정체성에 대해 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백설공주> 속 새 왕비가 마법 거울로부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매일 재확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면서 엘리는 삶의 확고한 중심을 잡는 주체이자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겪는다.
그에 반해 꿈 혹은 환각 속의 거울에서 만난 자신과 똑 닮은 샌디는 엘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심정을 재확인하는 것과 달리 전혀 다른 이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경험을 한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엘리 본인이 샌디가 있던 거울로 들어가고, 샌디가 엘리의 삶으로 넘어오면서 둘의 세계는 경계가 사라지고, 엘리는 샌디의 삶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다. 자신이 염원하던 60년대 런던의 낭만과 화려함, 그리고 런던에서 성공한 이의 기쁨을 온몸으로 즐길 기회가 오자 고민 없이 기꺼이 샌디의 삶 안으로 뛰어든다.
이러한 엘리의 경험은 거울이 우리와 닮은 이미지를 보여주기는 하나, 결코 똑같은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기에 가능하다. 거울에 비치는 상은 좌우가 바뀌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나 동일하지는 않은 또 다른 주체를 거울 안에서 만나고, 그 주체가 '나'를 볼 때 '나'는 그 주체에게 하나의 대상이 된다. 즉, 거울 속 나 자신을 통해 타인을 만나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동화의 주인공이었던 왕비가 거울 속에서 백설공주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발견한 순간, 둘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되는 이유다. 이처럼 거울은 단순히 대상을 비출 뿐만 아니라 나와 타인의 세계를 마주 보게 하고 교차시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이며, 이는 런던에서 새로운 커리어와 삶을 시작한 엘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성인으로서 중심을 잡고, 더 큰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가는 과정은 항상 설렘과 안으로 가득할 수 없다. 거울에서 자신과 함께 타인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곧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호러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거울 속에서 만난 샌디와 그녀의 화려한 삶은 한 명의 청년이자 여성이 겪어야 했던 쇼비즈니스계의 추악한 악습으로 인해 거울 부서지듯 산산조각 난다. 이때 샌디가 겪어야 했던 공포와 무력함은 유령과 망자의 모습으로 엘리 앞에 나타나며 런던 골목골목마다 그녀를 에워싸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누르는 악습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스타일리시하고 화려한 런던 소호의 밤길에 내려앉은 어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는 그 두려움과 공포에 그저 굴복하거나 미쳐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일을 하며 샌디의 신원을 밝히고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한다. 이에 더해 자신만의 힘으로 주위를 배회하는 유령들을 떨쳐낼 수 없을 때는 친구인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해낼 수 있음도 보여준다. 과거의 낭만과 비극이 한 데 얽힌 것이 현재의 모습이라는 사실과 다른 이의 비극이 언제든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 곧 거울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엘리는 한 명의 성인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의 성장담은 거울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현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건네는 격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장과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엘리가 거울을 보듯이 스크린을 보면서 그녀의 다양한 감정과 사연 속에 빠져들고, 그들의 사연이 완결되는 지점에 우리의 삶도 닿기를 바라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의 거울, 런던과 소호의 거울에 담긴 이야기가 선사하는 즐거움과 별개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분명한 단점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샌디가 중심이 된 과건의 사건이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현재 엘리의 경험과 오버랩되면서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것에 비해 엘리의 현재 이야기는 그 자체로 관객을 흡입시킬만한 매력이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개별 인물과 패션이라는 소재를 사실상 거의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과의 로맨스나 룸메이트인 조캐스타와 같은 캐릭터들은 단지 샌디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첫 시작이자 단추로써의 역할 외에 별다른 의의가 없는 도구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또한 패션이라는 소재를 사실상 거의 다루지 못하다 보니 굳이 엘리를 왜 패션 디자이너로 설정했는지도 와닿지 않는다. 이는 비슷한 시대상과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크루엘라>와 가장 대비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패션 학교에서 겪는 엘리의 에피소드는 새로운 삶과 커리어에 도전한다는 엘리와 샌디의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 간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기능적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의 환상적인 호흡과 강렬한 이미지가 시선을 끌어당기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분명 뇌리에 각인될 작품일 듯싶다. 호러 영화로 돌아온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변화가 성공적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엘리와 샌디의 이야기를 열고 닫는 거울을 다방면으로 이용한 스토리텔링과 몽환적인 스타일이 최소한 러닝타임 동안은 몇몇 흠결까지 가릴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뽐내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런던의 현재와 과거, 낭만과 비극이 만나는 성장담을 과시적인 스타일로 빚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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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공자>의, 귀공자에 의한, 귀공자를 위한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불법 복싱 경기를 뛰며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던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어느 날, 평생 본 적 없는 한국인 아버지가 보낸 변호사가 마르코의 앞에 나타나고, 그는 아버지가 자기를 찾는다는 말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마르코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목숨을 건 추격전에 휘말린다. 비행기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던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는 곧장 마르코의 숨통을 조여 온다. 마르코의 이복형인 재벌 2세 ‘한 이사’(김강우)도, 필리핀에서 우연히 마르코와 만났던 ‘윤주’(고아라)도 제각각의 이유로 마르코를 쫓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문 모를 추격전의 끝에서 마르코는 자기 인생을 바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또 한 번의 변주
한국형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줬던 <신세계>.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박훈정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신세계>와 비교될 운명이었다. 실제로 몇몇은 <신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박훈정 감독은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누아르라는 장르 밖으로 나가지는 않되, 그 안에서 변주를 줬다. 일례로 <마녀>는 <신세계>와 달리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객에게 어필했다.
<낙원의 밤>은 서사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꾀했다. 한국형 누아르의 관습적인 이야기를 거부했다. 의리와 정을 강조하는 사나이 대신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두 남녀에게 주목했다. 우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족처럼 보이기도 하며, 이성 간의 사랑 같기도 한 이야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낙원의 밤>은 서정적인 누아르였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귀공자>도 마찬가지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캐릭터다. 공들여 만든 '귀공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장르, 이야기, 메시지를 마음껏 가지고 논다. 귀공자가 한 인물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다만 성공적인 변화인지는 의문이다. '귀공자'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전반적인 균형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귀공자의 영화
귀공자. 처음 보거나 들으면 꽤 어색한 제목이다. 근래에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서 오글거리거나 과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보다 적확한 제목도 없는 듯하다. 따져 보면 이 영화는 어떤 맥락에서든 귀공자의 영화가 맞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귀공자는 "귀한 집 아들. 또는 귀한 집 젊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귀공자>에는 눈에 보이는 귀한 집 아들과 숨겨진 귀한 집 아들이 있다. 한 이사는 눈에 보이는 귀공자다. 재벌 2세인 그는 이복여동생 '가영'(정라엘)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 중이다. 마르코는 숨겨진 귀공자다. 필리핀에서 병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 마르코는 한 이사의 또 다른 이복동생이자, 귀한 집 아들로 밝혀진다.
<귀공자>는 기본적으로 이들의 추격전이다. 한 이사는 쫓고, 마르코는 쫓긴다. 한 이사는 급하다.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 내서 유언 내용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르코를 사로잡으려고 한다. 그의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으니. 아버지를 만나는 줄 알았던 마르코는 이내 필사적으로 도주한다. 평생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살던 그가 이복형을 위해 순순히 죽을 이유는 없다.
귀공자에 의한 영화
두 귀공자의 갈등을 틈타 속셈을 알 수 없는 세 번째 '귀공자'가 등장한다. 그 역시 귀공자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한다. "생김새나 몸가짐이 의젓하고 고상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그는 마치 제임스 본드 같다. 깔끔한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자랑한다. 일 하는 솜씨도 프로다. 신속 정확하게 목표를 처리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속물적이다. 명품 구두에 피가 튀면 크게 화내며, 빗방울이 떨어지자 양복이 젖을까 봐 추격을 멈추기까지 한다. 그 덕분에 귀공자가 본모습인지, 귀공자를 동경하는 경박함이 진짜 정체인지 알기 어렵다.
그의 행적은 이러한 양면성을 반영한다. 러닝 타임이 지나도 그의 속셈은 오리무중이다. 그는 마르코를 한 이사에게 데려가던 사람들을 습격한다. 마르코를 빼낸 후에는 몸값으로 천만 달러를 요구하며 한 이사를 협박한다. 그렇다고 마냥 마르코를 돕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친구라고 소개하지만 정작 마르코에게 총을 겨누기도 한다. 선과 악이 분명한 한 이사와 마르코 사이에서 '귀공자'는 물음표가 가득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콘셉트도 그의 양면성과 맞닿아 있다. '귀공자'의 계획이 끝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영화 분위기도 그의 행보에 따라 달라진다. 마르코가 추격전에 휘말리는 전반부는 진지한 누아르에 가깝다. 그런데 '귀공자'가 난입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피 튀기는 액션과 만난 그의 유머와 기행이 무거움과 경박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다. 박훈정 표 누아르가 블랙코미디로 넘어가는 전환점인 셈이다.
귀공자를 위한 영화
이들 세 귀공자가 모이면 영화는 마침내 본심을 털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 혼혈 '코피노'가 있다. 전반부는 마르코의 일상을 자세히 비춘다. 그는 불법 복싱으로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다가 끝내 범죄를 저지른다. 아버지의 도움은 없다. 이 대목은 코피노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마르코와 한 이사의 만남도 문제를 고발한다. 한 이사는 마르코를 잡종이라 부르며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이기 때문. 이는 서서히 이슈화되는 동남아 차별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 <귀공자>의 시도는 더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귀공자'는 자기도 코피노라고, 피 튀기는 추격전도 인질극도 다 자기가 계획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 순간 귀공자 3명의 관계가, 익숙한 재벌가 다툼은 다시 쓰인다. 차별하는 한국인과 차별받는 코피노, 그리고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뒤엎으려는 코피노가 새롭게 보인다. 마르코의 진짜 정체를 둘러싼 반전도 허를 찌른다. 귀공자라는 허상조차 막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일말의 아쉬움은 있다. 모든 코피노를 하나의 정체성 안에 가두는 섣부른 일반화가 눈에 띈다. 원색적인 언행을 걸러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귀공자>의 시도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슬픈 열대>가 본래 제목인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상업영화에서 코피노라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귀공자만을 위한 결과
하지만 <귀공자>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다. 과감한 시도는 좋았으나, 의도가 스크린 위에 온전히 구현되지는 않았다. 귀공자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려다 놓친 캐릭터가 많다.
고아라가 연기한 윤주가 대표적이다. 강렬한 첫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사건의 배경과 전개를 설명하는 기능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퇴장도 작위적이다. 추격전의 흐름을 한 번 더 꼬기 위해 갑자기 사라진다. <마녀>와 <낙원의 밤>에서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을 만든 전력이 있다 보니 이러한 활용법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귀공자'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파생된 문제도 있다. 반전의 임팩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에게 모든 역할을 몰아준 결과 다른 두 주인공은 그저 소모된다. 우선 매력적인 마스크를 지닌 신인 강태주를 찾아 놓고도 마르코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그를 진중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로 설정하다 보니 친구가 되어야 할 '귀공자'와의 합이 잘 맞지 않는다. 복싱이라는 소재를 액션 영화가 살려내지 못한 것 역시 실망스럽다.
한 이사 역시 전반부와 후반부의 괴리가 두드러진다. 김강우의 광기 어린 연기는 인상적이지만, 그는 '귀공자' 주도로 장르가 전환될 때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전반부에는 무게감 있는 사이코패스였지만, 후반부에는 무게 잡는 척만 하는 평범한 악역으로 전락한다.
이에 더해 액션 누아르를 표방하는 영화치고 액션씬의 임팩트가 약하다. 카 체이싱 장면의 경우 템포가 다소 느리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비추는 앵글이 고정되어 있고, 차체를 비추는 앵글은 자동차 광고를 보는 듯하다. 그 결과 역동감이나 박진감이 부족하다. 잔인하게 피 튀기는 액션도 인상적이지 않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정확히 어떤 사건이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박훈정 감독은 개봉 전 기자간담회에서 "차별받은 이들이 차별하는 이들에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귀공자와 코피노, 두 키워드를 엮어낸 스토리에서 그 의도는 분명하게 읽혔다. 하지만 그 의도가 스크린에서 적절하게 펼쳐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결과 이번에도 박훈정 감독의 변주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신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날도 다음을 기약한다.
Poor 형편없음
달리 말하면 김선호의, 김선호에 의한, 김선호를 위한 영화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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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한 풍자, 개운치 않은 비행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말도 안 되는 설정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2024년에 '여장남자' 설정이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잘해도 본전이라는 것도 모두 인지하고 있다. 대놓고 밀어붙이니까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긴 하다만, 풍자가 애매해서 영 개운치 않다.
영화 '파일럿'은 잘 나가던 비행기 조종사 한정우(조정석)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실직하자, 여동생 한정미(한선화)로 위장해 항공사에 재취업한 뒤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그렸다. 스웨덴 영화 '콕핏'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조정석의 여장'을 전면적으로 앞세운 만큼, '파일럿'은 조정석의, 조정석에 의한, 조정석을 위한 영화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식상한 여장남자 콘셉트도 지켜보게 만들고, 이를 특유의 코미디 감각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허술한 설정과 비호감인 캐릭터가 미워 보이지 않는 건 전부 조정석 때문이다. 이미 '헤드윅'을 통해 여장남자 연기에 능통한 그가 맛깔나게 살리자,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자연스레 동화된다.
조정석의 원맨쇼를 지원사격하는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한정우의 동생이자 '진짜 한정미' 역의 한선화, 한정우를 각성시키는 파일럿 윤슬기 역의 이주명, 한정우의 엄마 김안자로 분한 오민애의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정석이 말아주는 코미디는 취향, 나이, 성별과 무관하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00% 흡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어디에 초점을 뒀는지 모를 만큼, 산만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여장을 감행하면서까지 취업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한정우의 고충에 몰입하려고 하면, 갑자기 가장으로서 소홀했던 지난날의 반성으로 옮겨간다. 그러다 자식들을 모두 키운 뒤 칠순의 나이에 자기의 삶을 즐기는 어머니 김안자의 이야기가 부각된다.
관객들이 흐린 눈으로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기엔 개연성이 너무 널뛰기하듯 뒤죽박죽이다. 허술하게 위조한 한정미의 이력서로 부기장에 합격했다는 설정이나, 뛰어난 미모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한정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 모습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중 한정우의 후배인 서현석(신승호)이 한정미를 알아보지 못하고 되려 한눈에 반한다는 설정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어 했던 '젠더 이슈'와 '성 인지 감수성 표현'이다. 한정우의 '꽃다발' 발언부터 서현석의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 발언, 내부고발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윤슬기 등 여장남자 설정을 통해 실제로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깊이감 없이 가벼운 유머 속에 담아내는 데에만 급급해 보였다.
결국 풍자가 애매해지니, 관객들을 태우고 이륙한 '파일럿'의 코믹 비행이 그리 개운치 못했다. 박스오피스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긴 하나, 주변인들에게 추천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YES"라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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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에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조선 팔도 제일의 살수 '이난'(신현준) 병마가 그를 위협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에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한 마을에 의탁한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울부짖는 백성들의 비명으로 점철된 살아있는 지옥… 조선 최고의 살수 '이난' 마침내 그가 깨어난다!
1. 빈약한 극본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예상 가능하다. 모든 장면이 클리셰로 가득하다. 악당에게 병에 걸린 전설의 살수가 다시 영웅이 되는 이야기인데 탐관오리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묘사부터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까지 굉장히 얕다. 분명히 초반에는 살수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유머코드가 등장하면서 '달마야 놀자'나 '가문의 영광' 같은 2000년대 상업 영화의 느낌도 많이 난다.
악당에게 쫓기는 비운의 살수 스토리는 마치 어둠의 조직에게 쫓기는 천재 탐정 명탐정 코난을 보는 것만 같다. 코난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이건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는 느와르 액션이 아닌가. '와, 저 살수 진짜 멋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 주인공 캐릭터에 힘은 들어가 있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그 멋있음에 설득되진 않는다. 그저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단편적인 배경 묘사 아래 주인공이 멋있다는 사실만 강조해놔서 관객의 입장에서 그냥 목소리 깔고 액션만 보여주면 캐릭터에 동화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싶다.
2. 어딘가 허술한 액션
장르가 시대극 느와르 액션인 만큼 액션도 굉장히 공들인 티가 난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예상해 본다면, 액션에 돈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진 않다. 이게 제작비 때문이라면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가성비가 높은 액션을 선보였다는 뜻인데 수준높은 액션이냐 아니냐를 평가할 때 가성비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이 적절한 지는 모르겠다. 혹시 가능하다면 굉장한 연출력이 필요할 텐데, '정말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도 이런 액션을 구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소리는 안나올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액션이 몰려있는데 액션 영화를 잘 보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액션이 주는 긴장감 보다는 이난 캐릭터가 카리스마있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전략이 다른 관객에게까지 먹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액션이 아무리 많아도 허술하다고 느꼈다.
3.누굴 위한 영화일까
모든 영화는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 독립 영화인지 그리고 장르별로 규모와 타겟 관객이 정해진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어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인지 묻고 싶다. 상업 영화인 것 같은데 내용이 너무 뻔하고 액션이라도 보라고 하기엔 액션 연기에 큰 메리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캐릭터도 그저 단편적이라서 예상이 가능하고 말이다. 도대체 이난과 대적하는 그 여자 살수는 눈이 왜 빨간 건지 알 수 없었다. 하다하다 '인간이 아닌 크리쳐'까지 등장시킨 거냐라고 생각했다. 허세 섞인 대사 또한 덤이다.
이난을 죽이려고 하는 그 위의 인물은 끝끝내 등장하지 않아 다음 시즌을 노린 걸까 싶은데 과연 다음 시즌은 나올 수가 있을까.
영화 리뷰 꽤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혹평은 처음 하는 것 같다. 혹시 보시는 분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린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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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는 아름다왔지만, 남주는 나이들어 보였다 ㅠㅠ / 웹소설 원작 / 타임루프 영화일까? / 스포가 될만한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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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views • Feb 12, 2023 • #후쿠모토리코 #네가떨어뜨린푸른하늘 #일본영화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네가 떨어뜨린 푸른 하늘"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의외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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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후겟츠 웨슬리> 스페셜 예고편
허구한 날 티격태격하는 결혼 5년차 부부 올리브와 클레이는 고민 끝에 이혼을 결심하고 반려견 웨슬리에게 사실을 말한다.
깔끔하게 헤어지는 줄만 알았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은 웨슬리의 양육권을 두고 법정 싸움을 하게 되고, 법원에서는 반려견 행동 심리학자를 지정해 두 달 후에 누가 최종 양육권을 가질지 판결하기로 한다.
하지만 웨슬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두 사람 앞에 반려견 행동 교정사 글렌이 나타나면서,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데..
과연 웨슬리는 누구의 품에 안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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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룸 넥스트 도어> 1차 예고편
제 81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작 올 가을 놓칠 수 없는 마스터피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튼 X 줄리안 무어 [룸 넥스트 도어] 국내 개봉 확정 기념 1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