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4-12-13 14:04:55
단점으로 쏘아 올린 장점
넷플릭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리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르물을 다루는데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사물에서는 발바닥에서 땀난다는 말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는 형사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던가. 주인공은 조사를 해야만 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겪으며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초조해한다던가. 흑막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빌런이 나타났을 때 아니 네가!!라는 말이 나오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장르마다의 특성은 대다수의 사람이 기대하는 점이면서도 식상함을 느끼기 쉬운 포인트이기에,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면서도 작품만의 변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변주로 가득하다고 하기보다는 단점으로만 가득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화면은 어둡고 사건 전개는 느리며 수사물에서 볼 법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단점을 뒤집어 모조리 장점으로 만들어버린다.
12.3일 이후로 가르마 위치만 달랐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히틀러의 인기는 스포트라이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의 가장 정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로 그는 마치 자신만이 계시를 받은 듯 밝은 빛 아래에 존재했고. 모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반짝반짝 홀로 빛나며 말빨 하나로 군중들을 홀라당 사로잡았다.(아 물론 누구는 그마저도 못해서 전 세계인의 욕만 홀라당 얻어먹었으니 그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수사물에서는 그다지 각광받는 시점은 아니다. 그리고 이 포커싱을 위해서,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수(한석규)의 집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두워야만 한다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기 위해. 위대한 배우 한석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한석규는 허탈함을 표현해 낼 줄 아는 세상 몇 안 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의 진가가 모든 장면에서 발휘된다.
태수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숨결 한 번에. 시청자들은 마음 바닥까지 훑는 듯한 저릿함을 느끼기도 하고, 애처롭게 딸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쏟아지는 태수의 복잡한 심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극 중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태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침착하고 냉철하며 묵직한 태도를 취하지만. 마치 혼자만 벚꽃을 뿌린 듯 샤랄라 빛나는 군도 속의 강동원처럼. 태수는 자신을 에워싼 어둠에 조금도 잠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배우를 보는 카타르시스 자체가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확실하게 태수를 비춘다.
수사 장르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수사가 진행되려면 계엄에서 해제까지의 속도쯤은 되어야 할 텐데, 이 작품은 프로파일러라는 태수의 직업상, 수사의 진척이 마치 국민의 짐 때문에 탄핵이 자꾸 미뤄지는 것만큼 느릿느릿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각본의 거의 대부분을 태수와 딸 하빈(채원빈)에게 집중시키는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씀으로써 흩어지는 이야기를 없애고 극 중에 덩그러니 두 사람만을 남겨둔다.
여러 용의자와 더불어 결국에는 밝혀질 최종 빌런을 이리저리 꼬아 놓으려면 주변에 대한 설명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을 따라가는 데 있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이 등장인물이 필요했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떡밥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해 물음표를 남기거나 실패한 수사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외롭게 뻗은 두 가지 외에 모든 곁가지를 없앰으로써 극 전체는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딸과 아버지 사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으로 시청자를 단단히 동여맨 채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행여나 그 와중에도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듯. 작품은 세 번째 트릭을 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들의 냄새나는 양말도,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추격전도. 흠씬 두들겨 맞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폭력 장면도 없다. 오로지 극의 분위기를 십분 닮은 태수의 집이 존재할 뿐이다. 그의 집은 과연 김건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정도가 아니고서야 프로파일러의 월급으로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밀을 감춘 듯 모든 문이 닫혀 있으며 대척점을 이루는 부녀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듯 그들은 늘 식탁의 끝과 끝에 존재한다.
장면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선으로 구분한 상징들은(마치 영화 [기생충]처럼) 배우들과 어우러져 최종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분명 비어있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이 마지막 트릭이 완벽하게 없애준다. 덕분에 배우들은 빛나고, 극의 진행 또한 매끄러우며, 비밀을 숨긴듯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다.
마치면서 (좀 길다)
1. 한석규 베우는 나이에 맞는 역할을 언제나 따박따박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만큼 그의 나이와 시간과 때에 맞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거짓 없이 진실과 진심만으로 뭉친 대배우를 보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면서도 코끝이 찡한 건지 모르겠다.
2. 비질란테로 대변할 수 있는 "사이다"물이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마지막을 선사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결말은 한석규 배우가 있었기에 더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3. 개인적으로는 제목조차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딸만 아버지를 배신한 줄 알았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관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비수를 꽂다 못해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괴롭힌다.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배신감 때문에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누군가는 알량한 신뢰를 업고 온 국민을 배신했다.
이 배신이 가진 파급은 너무 커서 열흘이나 지난 지금도 일상에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덕분에 불안장애 약을 안 빼먹고 자알 먹는다)
제목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극 중 대사는 가르마 타는 거 외엔 그 어떤 관심도 없어 보이는 당신에게 선사하는 메시지 같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당신 혼자 빠진 그 망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했다는 히틀러처럼. 당신 또한 그의 말로를 따라갈 것이니. 그대의 최후가 오거든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우리에겐 친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배신자였으며. 주지 않은 신뢰마저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처참함은 당신이 자처한 것임을.
[이 글의 TMI]
1. 도시락 싸놨는데 안 들고 옴
2. 나 잡혀가면 좌표 좀 찍어줘요.
3. 냄비밥 해놓고 깜빡해서 밥 다 쉬었음.ㅠㅠ
#넷플릭스 #영화리뷰 #OTT리뷰 #이토록친밀한배자 #munalogi #한석규 #신작리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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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과 공존하는 사랑
SYNOPSIS.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영화가 시작되면, 당신은 곧바로 사랑에 빠질 것이다. 레아 세이두로 시작되는 이름들, 함께 나오는 음악, 레아 세이두가 걷는 거리가 담긴 색감… 이 모든 것이 더없이 ‘영화’롭다. 산드라(레아 세이두)가 마침내 도달해 두드리는 초록 문의 느낌조차.
그러나 잠긴 문을 열어주는 일조차 쉽지 않은 아버지와, 차분하게 아버지가 문을 열어줄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가는 산드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없이 영화로워 보였던 장면의 바로 뒷면에 현실이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중점을 두고 편집을 거친 결과물이다. 로맨스 영화는 두 사람의 로맨스 서사에, 성장 서사는 한 사람의 내면 성장 서사에 집중하여 인물의 일면들을 담아낸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로맨스 서사를 쌓거나 성장을 이루는 사건들은 절대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잡다한 일상과 갑작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면서 해나가야 한다. 수많은 감정과 사건들이 360도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니까. 복선과 맥거핀으로 곱게 준비해 둔 자리가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이 영화는 그 일면을 포착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산드라와 클레망의 사랑은 아무 전조도 상징도 없이, 작은 대화 하나로 시작된다. 갑작스럽게 만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고, 마가 뜨지 않는 대화가 즉각적으로 가능한 사이지만. 사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K-유교걸 정서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관계의 자장에 놓여 있다. 그 사실을 둘도 잘 알고 있어서, “나 이거 불장난 아니야”라고 진지함을 피력한다. 너무 쉽게 불장난으로 보일 위치라서.
우연한 재회와 가벼운 대화들 위에 번진, 불장난 아닌 사랑이 날로 자라나고 있다고 해서,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처럼 사랑의 면만을 담아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산드라에게는 돌보아야 할 딸도 있고, 무엇보다 큰 병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네 마네 하는 대화를 해야 하고, 철학 교수였던 아버지가 자신의 뇌리에서 길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든다. 우연히 만난 아버지의 제자가 안부를 묻는, 더없이 가벼운 대화 한가운데서 울컥 눈물이 터지기도 하고. 아버지의 짐을 챙기다 저항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클레망과의 사랑은 그 사이사이, 샌드위치 사이의 잼처럼 펼쳐진다. 빵 위에 쓱 발리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클레망과 산드라 사이의 대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슬픔이 깔린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일 수 있는 편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열정적인 키스 직후에도 딸 아이의 펜싱 수업에 가야 하고, 아버지의 짐을 정리해야 하고… 산드라의 일상은 그렇게, 시작되는 사랑과 사라져 가는 사랑, 다가와준 사랑과 다가가 돌보아야 하는 사랑 사이에서 굴러간다. 타오르는 육욕과 대조적으로 쇠해 가는 아버지의 육체 사이. 사랑을 그리워하는 밤과 아이를 재우는 밤 사이.
파리 한가운데서 레아 세이두의 얼굴을 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감정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과 위치를 저글링하듯이 돌리고 돌리면서 일상을 채워가는 것은 우리 모두 마찬가지니까.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학생이나 직장인 같이 자기 일상을 채우는 일에 관하여, 등등… 더러 누군가의 부모 혹은 조부모 같은 역할이 더해지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영화 속 산드라의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신 것처럼, 기존의 역할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삶은 언제나 다각도의 감정과 사건 사이 놓여 있다. 진공 상태의 삶이란 없다.
거기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여기서 완벽하게 안정적인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소중히 여길수록 그 상실은 아프다. 아버지의 노트에 쓰인, “이 병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나를 벌한다”는 문장처럼. 가장 소중했기에 가장 아픈 상실이, 필연적으로 삶을 찾아온다.
아버지의 병증도 해결 방법이 없지만, 병이 없어도 인간은 무언가를 쉬이 상실하는 존재이다. 산드라와 딸 린은 이미 남편/아빠라는 가족 구성원을 (어떤 형태로든) 상실한 경험이 있고, 지금 아버지/할아버지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으며, 클레망과의 관계 귀추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삶은 시간에 따라 하나씩 많은 것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것.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은 서른 즈음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병에 갇혀가는 아버지를 보며, 그 아버지의 어디를 붙잡아야 할지. 끝나가는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것이 늘어갈 때 그걸 어떻게 붙잡으려 애써야 하는지. 이 슬픔에서 파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방법은 별로 없다. 아버지를 위해 좋은 요양병원을 찾고, 좋아하시던 음악을 틀어 보거나 딸아이의 그림을 병실에 붙여 두는 각양각색의 노력을 하지만, 솟구치는 슬픔을 아주 사라지게 할 방법은 없다. 클레망과 서로 꼭 끌어안고, 아무리 사랑한다 말해도, 그 슬픔을 없애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위해 가끔 기꺼이 바보가 되어 줄 수 있다. 아이들을 방에 몰아넣고 최선을 다해 산타와 루돌프로 열연하는 어른들의 귀여운 모습처럼,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산드라에게 몸을 한 번 맞대어 끌어안는 것처럼. 삶에 상실은 끝없이 일어나지만, 그 거대한 슬픔을 버티고 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이런 귀엽고 사소한 순간들이다. 거대한 구멍을 단숨에 메울 수는 절대 없는, 그러나 얼기설기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순간들이 “어느 멋진 아침”을 선사한다.
높은 언덕에서 보면 에펠탑은 보여도 우리 집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듯이, 삶이라는 거대한 것을 조망하면 얼핏 거대한 슬픔에 비해 이런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살게 하고 쉬게 하는 곳은 에펠탑 같은 랜드마크가 아니라 집이다. 상실이 숱하게 일어나고, 슬픔의 얼굴도 영영 가시지 않을 것이다. 서울 어디서 보아도 보이는 거대한 건물처럼. 그러나 슬픔과 사랑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의 축복이 아닐까.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에 내 몸 뉘일 곳 또한 있다는 것이.
그러고 나니 영화가 끝나면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LOVE WILL REMAIN이라는 가사가 잔잔하게 위로가 된다. 잃어버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의 세계 속에서, 슬픔과 공존하는 사랑. 결국 그게 우리에게 영영 남을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9월 6일 개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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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에놀라는 성격도 좋고 똑똑하고 씩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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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오빠는 셜록 홈즈
태어났는데 아빠가 원빈. 아빠가 유재석. 엄마가 탕웨이. 비슷한 맥락에서 친오빠가 셜록 홈즈라는 점은 참으로 신기하다. 오빠 셜록은 정말 똑똑하다. 그리고 잘생겼다. 목소리도 섹시하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오빠 셜록의 직업은 탐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에놀라의 직업도 탐정이다.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에놀라. 나도 오빠만큼 멋진 탐정이 될래! 꿈은 쉽지만 현실은 그만큼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파리만 휘날리는 에놀라 탐정 사무소. 사건 하나라도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 오빠는 나라 돈을 훔쳐간 사람의 행방을 찾은 일을 하는데 여동생인 에놀라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소녀 한 명이 에놀라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사건의 경위를 묻는 에놀라. 의뢰인은 금세 사정을 전한다. 의뢰인의 사건은 친언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의 영국은 노동환경이 열악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여동생의 입장에선 언니가 걱정이 된 것이다. 좋았어! 첫 번째 사건이야!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고 처음 일거리가 들어왔다. 우리의 에놀라 홈즈는 혈혈단신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그 과정 속에서 협동과 신뢰, 연대의 의미를 깨우치면서.
이걸 기다렸지
<셜록> 시리즈 중 최신판이 나온 지 좀 됐다. 이 후더닛 장르 맛집이있던 미드 <셜록> 이후로 뭔가 그럴듯한 추리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나이브스 아웃> 정도? 이 영화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을 맡았던 드라마가 워낙 이런 특성을 잘 살려서인지 글쓴이 같은 후더닛 팬들에게는 좀 아쉽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전작 드라마 <셜록>의 설정 일부를 따 온 영화다. 헨리 카빌이 컴버배치가 맡았던’ 셜록’으로 나오고, 소설의 흑막과 가장 주요한 조력자가 후반부에 나온다. 비단 인물관계뿐만 아니라 서스펜스적인 측면을 잘 살렸다는 점이 영화의 강점으로도 작용한다. 영화의 주요 플롯은 ‘그래서 의뢰인의 언니는 어디로 갔는가?’이다. 이를 추적하는 이야기의 구성이 좋았다.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 이 증거가 왜 중요한지도 다 알려주고. 에놀라의 추론에 카메라가 동행하며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 영화에서 최종 보스까진 아니더라도 중소형 보스(?)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 보스의 계급 설정도 에놀라가 맞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좋은 설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치한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스릴러만 강조된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썼듯 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의 가능성이다. 여자 탐정 캐릭터가 그동안 영화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의 기억 속에는 아마 없던 것 같다. 심지어 ‘명탐정 코난’의 코난도 남자 캐릭터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유럽의 시대 특성상 여성이 주목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무작정 여성 혼자서만 원톱으로 끌고 가는 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핍진성이 성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오빠 셜록, 어머니, 어머니의 조력자 이디스의 존재를 배치해서 에놀라가 주체적으로 서기 위해서 타인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부각했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지금 당장 구글에 ‘밀리 바비 브라운’이라고 검색하면 그녀의 인스타그램이 나온다. 순간 보고 내가 아는 얼굴 아닌 줄 알았다. 분명 뭔가 수수한 이미지인데 케이트 블란쳇이 연상되는 화장법이 느껴졌다. 단순히 화장법뿐만 아니라 배우는 이 캐릭터에 빙의한 듯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똑 부러지는 똑순이 캐릭터는 좀 식상하다. 그리고 제4의 벽 부수는 것도 어디선가 많이 봤다. 밀리 바비 브라운은 적지 않은 곳에서 봤던 캐릭터 세팅을 본인만의 개성으로 능수능란하게 이끈다. 이 캐릭터 해석에는 기존에 많이 봐왔던 ‘셜록’ 드라마와 영화판에서 볼 수 있던 해석이 돋보인다. 이는 영화 연출에서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에놀라의 조력자로 나오는 헨리 카빌의 연기와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도 좋았다. 전자 헨리 카빌은 로다주의 셜록, 컴버배치의 셜록과는 다른 느낌의 연기를 했다. 선배 셜록 둘 보다 보다 더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셜록은 과제가 있다. 로다주와 컴버배치가 보여준 것처럼 고지능의 뇌를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에놀라의 조력자로서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버텨주며 사건의 중요한 열쇠로 활약한다. 후술 하겠지만 영화에서 셜록의 지나치게 비중이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헨리 카빌이 맡은 역할은 이를 뒷받침하듯 내적으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인물은 후반부에서 기존의 셜록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게 감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영화는 꼼꼼한 설명을 놓지 않았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맡은 어머니 홈즈 역시 이중적이다. 사회운동가인 어머니 홈즈. 여기서 이 어머니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에놀라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연대의 대상이 되어 엔딩의 디딤돌이 되어준다. 이 배우가 연기를 통해 극에 설득력을 부여하려면 체형,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와 제스처로 주는 신뢰감이 필수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를 이해하고 있는 듯이 극에서 등장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빨아들이며 따뜻한 어머니 연기를 보여준다. 이 사람은 장난기도 있고 성격이 깊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딸 에놀라에게 ‘난 가끔 너를 독립적으로 키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여기서 이 인물이 대사 하는 문장 내용부터 억양까지 어머니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을 잘 강조했다. 베테랑의 클래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새로운 해석
영화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사건 해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코난의 사건이 있다. <바스커빌 가의 개>나 <주홍색 연구>가 그렇다. 만약 이런 사건의 재해석이 궁금했던 팬 분들이라면 살짝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여성 노동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 그래서 셜록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소시오패스적인 측면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장르적인 재미를 중점으로 전개했던 소설, 드라마와는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 구성이 되어있다. 이를 위해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소설을, 영화의 주제와도 맞게 살짝씩 변형한 점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에서 최종 흑막이 드러나는 부분은 이 이름을 말하는 배우의 연기가 좋기도 했지만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제적인 측면이 중반을 넘어서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한번 더 꺾었기 때문이다. 이 흑막의 동기 때문에 원작 소설과 전작 영화, 드라마의 팬들은 ‘원작 파괴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불호 여론에 대해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흑막 캐릭터 묘사의 역사를 보면 사이코패스적인 측면만 강조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빌런 유형은 우리가 많이 봐왔다. 대표적으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은 이런 빌런으로 갖고 왔으면서 동시에 그런 맥락을 부여했다. 글쓴이는 감독이 의도한 것 같지만 이런 디테일이 다른 영화들의 흑막들과는 좀 다른 점처럼 느껴진다.
아쉬운 것이 드문드문
영화는 유쾌하고 재밌게 달린다. 제4의 벽을 넘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유쾌한 입담도 재미있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상큼 발랄한 로맨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단점은 또렷하다. 우선 첫 번째. 셜록의 비중이 너무 많은 듯하다. 물론 어머니 홈즈가 말한 대로 이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극에서 혼자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셜록의 도움을 받는 부분은 아쉽다. 후반부 주제적인 측면에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똑똑한 소시오패스인 셜록이 극후 반부 의외의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결정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든다. 헨리 카빌의 카리스마로도 인물의 기능적인 활용을 지우지는 못한 것이다. 또 구체적으로 초반에 셜록이 어떤 사건을 승계받는다. 이때 이 인물이 사건을 승계받은 것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맥거핀이라기엔 인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마냥 그렇지많은 않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군데군데 살짝 헐겁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느껴진다. 아무리 당시 시대상이 여성 혐오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좀 지나칠 정도로 에놀라를 애 취급하는 것은 아쉽다. 몇몇 장면은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뭐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었고, 현대에 반복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발상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런 말들이 나쁜 게 아니니까. 그런데 꼭 나이 든 중년의 남자가 에놀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핵심 키워드인 ‘여성들과의 연대’를 위해 극단적으로 설정한 부분도 몇몇 보인다. 가령 경찰이 살짝 무기력하게 묘사된다던지 하는 부분이 그렇다. 이를 셜록 홈즈의 조력자 포지션이나 튜르스페리의 존재감으로 메꾸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메시지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엔딩을 보여주려고 준비물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아주 칭찬해
그래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단 재밌다. 스릴러로서 뛰어나다. 또 증거를 모아 모아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일단 이런 인물 원톱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추후 행보가 궁금해진다’인 것 같다. 글쓴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에놀라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러닝타임을 이끄는 영화를 보는데 안성맞춤이다. 1편보다 훨씬 더 성장한 영화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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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추천 TOP 5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추천 TOP 5
요즘 교양 유튜브나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있답니다. 원래는 집에서 영화 볼 시간이 부족해서였는데 어느 순간 푹 빠졌답니다. 보통 한 시간에서 90분 정도로 영화보다 짧아서 봤는데 제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또 한 번 체감합니다. 그 반성의 의미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추천 TOP 5>을 올립니다. 그리고 BGM은 2020년 베스트 펑크 록 음악인 <Grounds>을 올립니다.
■미국 헌법 수정 제13조 (13th·2016)
-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다큐멘터리상
<셀마>를 만들었던 여성 감독 에바 두버데이가 수정헌법 13조 통과에 따른 소수 인종의 대량 투옥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다른 소수 인종의 광범위한 투옥을 초래한 것은 단지 뿌리 깊은 문화적 인종주의만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BLM 운동의 배경은 이토록 자본주의라니 대단히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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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The Last Dance 2020)
10부작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에 푹 빠져들기 위해 굳이 농구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기기 위해 일생을 바친 한 남자의 매혹적인 연대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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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팩토리 (American Factory 2019)
-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노조 설립과 최저임금 상승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던 버락과 미셸 오바마가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 후야오 공업에 인수된 오하이오 주 데이튼 시의 GM 공장을 관찰한다. 숙련된 미국 노동자들이 중국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러스트 벨트가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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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민주주의 - 룰라에서 탄핵까지(The Edge Of Democracy·2019)
권력을 장악하는 가장 손쉬운 길은 사법·언론·군부·재계 등 기득권에게서 충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의 특권이 지나치게 커지는 순간 국가는 쇠락한다. 이것이 국가가 멸망하는 가장 큰 원인이자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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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Crip Camp·2020)
미셸과 버락 오바마가 두 번째로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아메리칸 팩토리>보다 어떤 면에서 더 우월할지 모른다. 우리는 장애우를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지켜볼 것이 아니라 ‘장애를 극복할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자'라고 독립과 연대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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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로 달려가야 하는 노란 벤의 로드 무비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2006 by Jonathan Dayton, Valerie Faris
꿈꿔 온 미인대회에 출전하게 된 올리브. 그런 올리브를 데리고 한 명 한 명이 유별난 이 가족이 함께 캘리포니아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노란색으로 가득 찬 이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의 전체를 함축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란 벤을 향해 달려가는 각각의 인물들과 소소하고 유쾌하지만 잔잔히 마음을 울리는 상황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양로원에서 마약하다 쫓겨난 할아버지, 프루스트에 관한 학자로는 일인자라고 하지만 그마저 밀리고 애인까지 뺏긴 동성애자 삼촌, 성공에 대한 강의를 하지만 번번이 계약에 실패하는 아빠, 며칠째 같은 음식만 준비하는 엄마,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묵언수행까지하지만 색맹인 아들, 미인대회에 나가고 싶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는 조금 벗어난 듯한 막내. 인물들부터가 개인의 각기 다른 목표와 갈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가족들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하여 한 차에 탄다는 것부터 일단은 시나리오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의미는 완벽하다. 감독은, 일단 힘을 합쳐 밀어야 출발이 가능하다는 설정을 추가하여 그 의미를 증폭시킨다.
‘식구’는 먹을 식(食)에 입 구(口)를 이용하여 한 테이블에 앉아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만큼 가족을 다룬 영화에서도 식사 장면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장면이다. 영화에서도 영화 초반부에 식사 장면을 통하여 본 격적으로 인물 설명과 인물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의외로 식사하는 가족들을 보여주는 앵글 자체는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대신에 대사에 힘을 준다. 평범한 앵글에 강력한 대사를 이용하여 평범해 보이는 가정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식사하기 전에 카메라가 인물들 각각을 잡는 방법은 다르다. 부엌의 구조를 이용하여 이중 프레임을 만들어 아들과 아빠를 각각의 칸에 나누어 두고, 방 문을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용하여 인물 들을 고립시킨다. 이런 콩가루 집안을 제대로 보여준 덕분에 후반부에서 가족의 행동에 더욱 힘이 실린다.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이는 이들에게 점점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고 남들과는 다른, 남들이 생각하는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행동들을 한다. 후반부의 기점이자,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겪는 큰 고비 중 하나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있어서도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운반한다는 것은 남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가족에겐 최선의 선택이자 이 가족이 앞으로 달려 나아가기 위하여 결정해야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각각의 가족이 하나의 목표를 위 해 달리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자마자 미인대회장에서 장의사를 찾는 아빠의 모습에서 이들이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 또한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시체를 싣고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 싶지만 아들이 막내와 장난을 치던 중 파일럿에게는 치명적인 색맹이라는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차 안에서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아들은 차에 내려 밭으로 뛰어 내려간다. 이 장면에서도 가족들이 멀리서 서 있는 하늘, 아들이 주저 앉아있는 땅을 분명하게 나누고 높이의 차를 줌으로써 분명한 실패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들을 한 차에 타고 달리게 했던 이들의 목표인 미인대회를 앞두고 미인대회를 망쳐버리고 나온다. 이들의 목표였던, 성공의 지표였던 미인대회로 달려가는 길에서 이들은 사회가 정한 기준보다도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다. 관객들은 카메라를 통하여 그 여행을 함께했기 때문에 이들이 미인대회에서 실패했지만 패자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 것이다. 미인대회 마지막 무대 직전, 바다 위 부두에 서 있는 풀샷으로 잡힌 삼촌과 아들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들은 이미 ‘가장 고통받았던 지난 날들이 내 인생의 최고의 시간이었다’라는 프루스트의 명언과 함께 클로즈업된 이들의 투샷은 그 어떤 장면보다 안정적으로 보인다.
승자를 외치던 아빠가 패자가 되어서도 즐거워하고, 파일럿이 되겠다고 침묵하던 아들이 입을 열 때 가족과 소통하게 된다. 감독은 마지막까지 잘못된 사회의 기준을 미인대회로 보여주며 비판하고 있다.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부터 희망을 의미하는 노란색의 미국 60-70년대 전형적인 벤을 함께 미는 장면까지, 개인의 갈등부터 사회의 갈등까지 완벽한 시나리오를 영화적 언어로 구사해냈다. 자칫 클리셰 할 수 있는 가족과 사회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지 않으면서 재미를 주는 영화이다.
사진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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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는 여기에 있다] 씨네랩 VIP 시사회 참여
*이 영화는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오랜만에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영화를 보러 갔다. 본디 액션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최근에는 세계관이 재미있는 액션 영화가 많아서 관심이 갔다. 게다가 조한선 배우가 나온다고 하길래 궁금했다.
영화 티켓을 받았는데 팝콘과 음료 세트를 할인해 주고 있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다 팝콘이랑 음료를 들고 있더라. 밥을 안 먹고 와서 나도 사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뭐지..? 하고 가서 봤는데 조한선 배우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음!!! 가까이서 실물 보는데 잘생겨서 깜짝...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 배우들의 짧은 무대인사가 있었다. 우왕... 너무 멀어...ㅠㅠ 멀어서 잘 안 보였는데도 잘생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 역시 괜히 반해원의 남자가 아닌... ㅋㅋㅋ
영화 [나는 여기에 있다]는 액션에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사건의 전개 자체를 액션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선두와 규종, 두 사람은 장기이식자라는 콘셉트인데, 그래서 숨을 몰아쉬면서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일부러 길게 보여준다.
영화의 소재가 획기적으로 독특하지는 않다. 하지만 '장기이식자의 성격이 공여자에게 영향을 받는다'라는 컨셉은 좋았다. 아쉬웠던 건 컨셉을 풀어나가는 전개력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 속 규종의 성격 변화를 보여주려면 공여자를 더 디테일하게 보여줬어야 하는데, 제대로 비추지 않고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쯤 나오려나'하고 기다리다가 끝나 버렸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CCTV 화면이다. 수미상관의 매듭을 지으려고 했던 것을 보면, 시나리오 자체는 탄탄하고 꽤 흥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상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사건이 단순할수록 캐릭터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되는데, 캐릭터를 보여줄 틈이 없이 영화가 끝나버려서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났다.
다만 조한선 배우는 확실히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온 힘 다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열혈 형사라는 캐릭터가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캐릭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에 응당한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보여줄 틈 없이 영화가 끝나버렸다. 컨셉과 캐릭터를 풍미 있게 살릴 수 있었는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이 영화는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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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아는 이방인의 도시, <군산전기>
군산전기 City of Outlanders, 2020
한국 / 다큐멘터리 / 61분
감독: 문승욱, 유예진
우리가 아는 이방인의 도시,<군산전기>
대형 LED 위에 무용가 안나가 누워서 춤을 춘다. 그녀의 고요하게 뻗어가는 팔과 애절하게 꺾이는 다리가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과 만나면서, 역사가 기억이 되고 기록이 추억이 된 군산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장소와 사람, 안나가 소개하는 군산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으로 풀이되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을 일관적으로 '이방인'이라 소개한다. <군산전기>는 이방인, 군산을 이방인의 입을 통해 설명하는 장편 다큐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이방인. 있는 그대로 읽으면, 꽤나 차갑고 낯설게 느껴진다. 나와 마주 보고 있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두 배 이상 멀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섞일 마음이 전혀 없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군산전기>의 이방인은 다르다. 영화가 조명하는 이방인엔 거부하지 못할 따뜻함이 묻어있다. 처음부터 눈과 귀로 파고드는 무용과 음악의 이끌림보다도 더 집중되는 무언가가 있다.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이방인'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를 찾기 위한 발판으로, <군산전기>의 긴 궤도를 끝까지 지탱한다.
군산은 주민 몇백 병이 살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영화는 그런 군산이 이방인들의 도시가 된 연유를 간단한 자막과 그때의 사건이 담긴 사진 자료로 대체한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쌀 수탈, 노동자들의 유입, 이후 군산을 둘러싼 희망과 좌절의 반복, 그 과거 위에 여전히 현재를 덧씌워 사는 지금의 군산. <군산전기>는 군산에 정착한 이들과 떠나는 이들을 인터뷰하며 중간중간 반짝였던 역사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여전히 처음과 같은 분위기와 시선을 유지한다. 군산이란 환경은 군산에 소속되어 사는 이방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 등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군산은 한결같이 정적이고 고요하며 동시에 인간적인 따스함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일제의 잔재로 남은 건축물(벽돌식 콘크리트 건물 같은)에서도 그 기운은 계속된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봐도 삭막하고 답답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보면 볼수록 정반대의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노출되는 애절함과 애환, 나아가 고통은 이방인으로서의 군산에겐 이미 지나간 정류장일 뿐이다. 비극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휘몰아치는 고통의 파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강인함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길러지는 능력이 아니다.
호기심의 답은 당연하게도 군산의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고향을 떠나 군산에 정착한 외부인, 이방인이라 부른다. 이미 5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쉽사리 군산을 자기 고향이라 말하지 않는다. 제2의 고향이란 말도 없다. 이웃도 이방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처럼 살지 않는다. 이방인이면서 이방인이 아닌 삶. 이들에게 '이방인'은 복잡하지 않은 동시에 단순하지 않다. 단어란 껍데기만 남기고 그 안을 자신들의 언어로 가득 채워 새로 만든 듯하다. 이러한 태도는 군산에 새로 유입되는 젊은 이방인에게도 빠르고 쉽게 전이된다. 기존의 이방인이 새로운 이방인에게, 또 떠나려는 이방인에게 마음의 편차 없이 다가가는 방식은 그들이 처음 군산에 뿌리내린 방식과 맞닿아 있다.
평이하지 않은 기록을, 평범하지 않았던 일들을 그대로 안고 사는 법을 터득했기에 이방인들은 행복과 불행을 쉽게 나누지 않고, 온갖 사건과 상념을 잔잔한 물결로 받아들이며 지금도 ‘군산’에 산다. 무탈하게 소소하게 또 따뜻하게. <군산전기>는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객까지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첫 장면에 등장한 군산을 비추던 대형 LED 화면은 관객이 직접 넘나든 거대한 문이자 창이었다.
군산은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도시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만 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군산이란 뼈대를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공유하고 있으나 지금의 군산은 예전의 군산과 다르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방인의 도시란 어감이 묘하게 공동체적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안엔 관객도 포함되어 있다.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 보아요.'
우린 다 함께 산다, 계속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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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주 최신 개봉영화(007 노 타임 투 다이, 수색자, 스쿨 아웃 포에버, 서유기: 재세요왕, 용과 주근깨 공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007노타임투다이 #수색자 #스쿨아웃포에버 #서유기재세요왕 #용과주근깨공주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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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쟁이] 마블과 한국?! 마블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그동안 모두 잘 지내셨나요? 정말 너무너무너무 오랜만에 영상을 올리게 되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ㅜㅜ 제가 최근에 본업에 너무너무 바빠서 영상을 만질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ㅠㅠ 이제부터는 다시 영상에 집중 해보려고요~
제가 없는동안 제 영상들을 좋아해주시고 구독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은 우리 한국과 마블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다루어 보았습니다! 즐겁게 시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여러 댓글이 초보 유튜버인 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시청자로써 제가 개선 해야될 점이나, 원하는 영상, 원하시는 점, 여러의견들을 내주시면 제가 다 읽어보고 좀 더 나은 유튜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영상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2017. 10. 15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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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식물카페, 온정> 메인 예고편
종군 사진기자로 일했던 주인공 ‘현재’는
파키스탄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로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다.
퇴사 후 다시 찾은 할아버지의 수목원에서
어린 시절 느꼈던 식물과의 특별한 교감을 떠올린다.
식물로부터 살아갈 용기를 얻은 ‘현재’는
도심 속 <식물카페, 온정>을 운영하게 된다.
본인의 반려식물과 함께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카페를 찾은 손님들에게 ‘현재’는 병든 식물은 물론
병든 마음에 필요한 그만의 식물 처방전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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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엄마의 왕국> 메인 예고편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기억을 찾아가는 아들👨 평화로운 왕국이 붕괴되었다! [엄마의 왕국] 7월 24일 개봉 확정 & 미스터리 가득한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