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06 11:27:00
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하얼빈>, 개봉 2주 차에도 흔들림 없는 선두!
개봉 첫 주에 누적 관객 수 230만 명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던 <하얼빈>이 2주 차에도 여전히 선두를 지켰습니다. <하얼빈>은 12월 24일 개봉한 후, 단 하루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은 라트비아, 몽골 등지를 아리 알렉사 65 카메라로 촬영하고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관객들의 기대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음악에 참여하였고, 과거 비틀스가 녹음했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여 사운드의 퀄리티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소 높은 손익분기점 약 650만 명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봉준호 감독, 최동훈 감독 등 다양한 인사들이 “고결한 인격의 사람들을 품격 넘치는 촬영과 연출로 영접하게 해주신 제작진과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영화”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내 주말 관객 수 2위는 깜짝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소방관>이 누적 관객 수 350만 명을 기록하며 차지했습니다. <하얼빈>에 이어 또다른 국내 영화 대작이라고 기대받았던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3위를 기록하였으나, 개봉 첫 주 누적 관객 수 32만 명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는 <무파사: 라이온 킹>에게 돌아갔습니다. 2,383만 달러의 수익을 추가한 <무파사: 라이온 킹>은 북미 누적 1억 6,800만 달러, 전 세계 4억 7,6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으나, 제작비가 2억 달러를 초과한 만큼 새해에도 꾸준한 흥행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 비해 이르게 개봉했던 <수퍼 소닉3>는 2,120만 달러로 2위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북미 1억 8,750만 달러, 전 세계 3억 3,6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의 총수익은 10억 달러를 넘어서 프랜차이즈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3위는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를 연출해 믿고 보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신작 <노스페라투>가 차지했습니다. F.W. 무르나우 감독이 만든 역사적인 공포영화 <노스페라투>를 원작으로 하여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 등이 출연하는 새로운 <노스페라투>는 북미 누적 수익 6,940만 달러, 전 세계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인디 영화로서는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중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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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음악의 거장에게 바치는 찬사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포스터 [출처: 씨네랩]
영화 음악의 거장을 기리는 영화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는 영화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기 영화이다. 그의 영화 같은 삶과 함께한 영화 음악들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가장 마지막까지 영화 작업을 함께하고 대표작인 <시네마천국>을 함께 만든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제작했다. 그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마지막 유언에 언급했을 만큼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이자 형제 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엔니오 모리꼬네 본인을 비롯하여 다수의 음악계 영화계 유명인사들이 출연하여 그가 살아온 삶과 그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일대기를 보다 보면 엔니오 모리꼬네를 모르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경외감이 들기 마련이다.
나 역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들을 만드셨는지는 잘 몰랐는데, 노래로 들어보면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많이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넬라 판타지아'로 잘 알려진 영화 <미션>의 OST나, 황야의 무법자의 휘파람 소리를 들을 때 모두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외에도 일평생 400편이 넘는 드라마와 영화의 음악들을 작업하셨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렇게 압도적인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능력에 기반한다. 앉은자리에서 악보를 작성하고, 피아노 앞에서 건반만 바라보고 작곡을 했다는 주변 지인들의 증언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심지어 엔니오 모리꼬네는 다소 실험적인 방법이나, 감독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분위기의 곡들을 기가 막히게 영화에 연결시켰는데, 처음에는 그의 말에 반대했던 감독들도 결과물을 보고 나면 엔니오의 음악이 가장 완벽한 곡이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 점에서 감독조차 생각 못한 것들을 음악으로 그려낸다는 것이 가장 경이롭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스틸 컷 [출처: 씨네랩]
기록의 가치에 집중한 영화
영화는 감독이 5년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엔니오 모리꼬네의 어린 시절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순간부터 가장 마지막 대규모 투어까지 그의 음악 인생 모두를 2시간 30분 동안 그려냈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클래식 음악이나 영화 음악 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나오는 전문적인 이야기들이나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업한 음악들의 가치를 정확하게 느끼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그가 영화 작업을 시작한 게 1960년대라서 대부분 처음 보는 영화들이라는 게 영화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해당 영화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생각한다면 엔니오 모리꼬네에 대해서 알아감에 있어서 가장 최적화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영화 음악을 좋아하거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그가 만든 작품들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꽤나 흥미롭고 경이롭게 감상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스틸 컷 [출처: 씨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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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도 반반이 필요하다
이 글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외워도 외워도 안 외워지던지. 울면서 밤새우기를 매일 했었죠저는 서른 살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늦은 대학 생활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마음이 가득했지만. 머리는 늘 냉정했습니다. 장학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환경이었거든요. 그래서 장학금도 받고 과외 아르바이트와 커피숍 알바를 병행해 가며. 이미 다른 학생들보다 10년은 오래된 뇌에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느라 늘 힘든 하루를 겨우겨우 넘겨야 했습니다.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생각했습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온 만큼 제대로 가자. 현실 앞에 주눅 들지 말자. 등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 마음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나이 때문에 모든 취업 서류에서 광탈하는 것은 물론. 더 높은 기준이나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받아주겠다는 곳들도 많았습니다. 내가 나쁜 선례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라는 생각에 저는 모든 것을 거절했고. 그렇게 세상에 두 번 없을 것 같던 3개월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죠.(참고 1) 정말 정신이 나갈 것처럼 힘든 3개월의 기다림 끝에 저는 겨우 직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그 업계의 임금 수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만하고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늘 이야기했지만. (참고 2) 통장에 찍히는 액수는 저를 늘 생기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하면 매일매일이 행복할 것이라고 늘 출근을 준비하는 거울 앞에서 말해보았지만. 소위 말하는 "부모님 빽" 때문에 제가 뒤로 밀릴 때마다 현타가 오기도 했죠. 그럼에도 꿈을 버릴 수만은 없었기에 소중히 마음을 감싸고 다시 한번 아침을 맞이하지만. 어쩐지 거울 속의 제 얼굴은 현실에 걸맞게 비뚤어지고, 낯설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역시. 자신들이 지금 이 상황까지 올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서로가 가지지 않은 모습에 끌려 만남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말이죠.
이상과 현실이 뒤엉켜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엉망인 상태로 살고 있는 바로 오늘의 모습을. 그들은 기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마치 형벌처럼 무미건조하고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죠. 어쩔 도리 없이 말입니다.
사진출처:아쉬타카 블로그/ 이 장면은 진짜 역대급이라고 생각함. 무미건조한 프랭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줌세상을 발밑에 두고 싶었던 프랭크는. 이제 매일매일 똑같은 모자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인 무기명의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노라 그렇게 다짐했지만. 태어난 지 서른 해 가 지난 생일날의 자신의 모습은 죽기보다 싫었던 그 모습과 닮은. 혹은 그보다 좀 더 못한 모습의 비즈니스맨일뿐이었죠.
첫 만남에서 프랭크에게 직업 대신 무엇에 관심이 있냐 묻던 에이프릴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노력도 재능도 그저 그랬습니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그것들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그것들은 멀리. 그리고 옅게 퍼져가기만 합니다.
두 사람의 꿈과 이상은 냉정하고 칼같기만 한 현실에 너무도 많이 얻어맞았습니다. 덕분에 둘의 보석 같은 추억과 기억들은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갈 만큼 쭈글쭈글하고 주눅 들어 버렸죠. 그 꿈의 주인공이자 당사자였던 에이프릴 역시 조심스럽게 들춰볼 정도로 말입니다.
에이프릴은 그런 추억에 가만히 숨결을 불어넣어 봅니다. 생동감 넘치는 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프랭크의 눈과 얼굴을 기억하며. 에이프릴은 남편의 본질을 찾아주기로 마음먹습니다. 형벌처럼 쓰고 다니던 남편의 모자를 벗겨주기로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가장 아름답지만 슬펐던 장면.사람에게 꿈이란 건 일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연료를 얻는 것과 같나 봅니다. 꺼져가던, 아니 잊고 있던 불씨를 에이프릴 덕에 살린 프랭크는 드디어 똑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 꿈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프랭크는 깨닫게 되죠.
꿈과 작별했던 거리와 시간만큼. 부부가 파리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의 꿈을 변명하듯 옹호해야 하죠. 얼마나 자신들의 생각이 환상적인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계획이 얼마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철저한지.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들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할수록. 현실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반증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현실은 참혹했고, 그들의 꿈은 아직 수줍었습니다. 프랭크의 승진과 에이프릴의 임신이 맞물리면서. 그들의 파리행은 영원히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죠. 에이프릴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는 프랭크의 그림자 같기만 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진출처:경기북부 데일리/울컥했던 또 하나의 장면행복은 파리에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은 순간부터 행복은 파리에만 있었죠.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지만. 파리행이 취소된 지금의 에이프릴은 두 번 다시는 그 행복에 손조차 뻗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비참함을 느낍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이 냉정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포근한 인정과 관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은 그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서로를 갉아먹을 수 있는 말을 내뱉는지 만을 알려주었죠. 그리고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그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에이프릴은 두 번의 유산을 하게 됩니다.
한 번은 명백하게 12주를 넘긴 아이입니다.
또 한 번은 현실입니다. 자신이 잉태한 것이 꿈인 줄 알았지만. 결국 그녀의 속에 있었던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냉정한 현실이었죠.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고. 부부의 비극은 현실과 꿈의 거리만큼이나 극으로 치닫습니다.
윌러 부부의 이야기는 이웃들에게 가십거리로 남게 됩니다. 누군가는 피하고 싶고 누군가는 곱씹고 싶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이 안에 숨어있는 그들의 고군분투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합니다. 현실은 결국 그들의 본질마저 저 깊은 곳에 파묻어버리고 맙니다.
마치면서
이 영화는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타이타닉의 커플이 이루어졌다면. 행복했을까.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잭과 로즈 역시 자신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에 끌렸고 사랑은 했지만.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체험이 가능했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경사로에 우뚝 서 있는 집처럼 두 사람이 버텨주길 바랐지만. 결국 그들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과 같았죠. 결국은 넘을 수 없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에 결말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두 사람이 조금만 더 마음을 넓혔더라면 어땠을까요. 꿈과 현실은 어찌 보면 같은 모습이었고. 그들을 함께 살게 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했더라면.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매일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 혹은 상대방을 향해 조금이라도 미소를 보이는 것부터 시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은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죠.
참고 1
여태 일만 하며 살다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백수 생활을 딱 3개월 했었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것이 없는지 알게 되었음. 이때 심적으로 정말 많이 성장했음. 그리고 누군가는 3개월 백수 생활이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구직은 사람 손이 늘 모자라는 직종이라 3개월 이상 놀았다는 건 자기가 구직활동을 안 했거나 다른 것 준비하느라 안 갔거나 둘 중 하나임.
참고 2
석사 후 연구원 초봉 2400~3200 수준. 다행히 유행에 민감하거나 한 성격이 아니고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워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지만. 가끔 서울에서 이 월급으로 산다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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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 공포영화? 이별영화?
사교(邪教)를 통해 보여준 예술과 종교의 존재에 대한 사유
눈부시게 아름다울수록 공포와 두려움은 커지고 기이한 오컬트 속에서 왠지 모를 위로가 느껴진다. 개봉 전부터 로튼 토마토에서 고득점을 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이다. 전작 <유전>과 <미드소마> 모두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미드소마>는 <유전>과 달리 주인공을 불안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한 가정에서 개인으로 옮겨 귀신이나 신이나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요소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여주며 화려하고 이색적인 풍경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이함에 놓여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전작 <유전>으로도 큰 호응을 얻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미드소마>가 로튼 토마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데에는 수많은 걸작의 탄탄한 레퍼런스와 실제 연출을 위한 감독의 섬세한 연구 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드소마>는 감독이 연인과 싸우고 쓴 각본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영화에서 연인의 관계, 결혼, 이별, 이혼 들을 통한 의존적 관계에 대해 고심한 감독의 노력이 다방면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국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의 팬임을 밝히고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작의 제작까지 참여 예정인 아리 애스터는 이 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이미 여러 번 인터뷰에서 밝혔다. 시나리오 레퍼런스로 <결혼의 풍경(1973)>, <결혼과 이혼 사이(1981)>, 미장센 레퍼런스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1964)>, <석류의 빛깔(1969)>,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 등 치밀하게 준비한 덕에 1970년대의 <위커맨(1973)>의 뒤를 이을 2019년의 포크 호러작 <미드소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돋보이는 미장센의 대표적인 예로, 영화의 초반부인 대니의 집의 벽에 걸린 축제를 벌이는 듯한 기이한 그림의 액자 등과 같이 많은 이스터 에그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사원이나 제물이 불에 타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감독은 버림받은 주인공이 과거와 연관된 물건들을 태우고 나서야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관계의 파탄을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을 차용하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는 대니가 가족을 잃으며 시작하여 새로운 가족(공동체)을 얻으며 끝나는 시나리오와도 맞닿아있다.
아리 애스터의 또 다른 두드러진 연출로는, 다른 대중적인 호러물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남성 제작가의 시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부터 다수의 호러물, 스릴러에서 관객의 몰입도와 교감 신경 자극을 위하여 성적 긴장감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미드소마>의 경우 ‘일반적인’ 성적 긴장감을 조성할만한 요소들이 다수 있으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러한 감독의 시각의 영향으로 감독의 성장 배경 및 개인사를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성애와 권력의 관계를 뒤집어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전 단편작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에서도 보이듯 동성애와 종교적으로 받은 억압이 감독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종종 삐뚤어진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감독은 관객들이 밝고 화려한 호르가 구성원들의 의식에 함께 빠져들기를 바랐을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감독이 정말로 전하고자 했던 장면은 바로 대니가 울자 함께 더 크게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일 것이다. 주인공 대니가 겪은 어려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대니의 상실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대니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지만 울고 있는 대니의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 중 후자를 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주인공을 철저하게 상실로 인한 결핍 속에 배치한 뒤 서서히 권력을 부여하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특이한 오컬트 영화로 포장했지만 속은 대니의 이별 영화인 셈이다. 예술이라는 기술이 하는 능력은 소외와 결핍을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진 또 다른 것이 종교이다. 기이한 행위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그들의 사이엔 유대가 생기고 공감을 자아내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 따라서 영화라는 예술을 이용하여 종교의 능력을 보여준 것 자체가 예술로써의 역할까지 완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종교가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사유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장센적인 측면에서, 장르적 특성에서, 컬트 영화사의 한 작품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니와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이다. 다양한 흥미로운 요소들로 꾸며진, 속은 제대로 된 알맹이 덕에 영화는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평을 받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오컬트 영화 이상으로 결핍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작품에서 보여줄 감독의 시선이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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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슈퍼 히어로 3부작의 또 다른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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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일단 이 지구에 없어
얼핏 들어보면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리는 듯 한 소리가 난다. 드러머는 그웬이다. 펑펑펑펑..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드럼에는 한탄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머릿속에 가득한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은 마일즈다. 스파이더우먼이 된 그웬. 그웬은 거미에게 물린 후로, 정확히 슈퍼히어로가 된 후에 스스로를 혼자라고 생각했다. 차원문이 열린 후에 만난 마일즈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마음이 잘 맞았던 두 사람. 사실 그웬에겐 첫사랑이 있었다. 이름은 피터 파커.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웬은 피터의 편이었다.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그웬과 피터. 그렇다고 해서 피터가 엇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피터.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아픔을 잊을 채도 없이 경찰인 아버지에게 살인범 누명이 써진다.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차라리 거미한테 물리지 않았으면 다행일 텐데. 아버지도 속여야 한다. 여전히 외로운 그웬. 이런 입장에서 마일즈가 그웬 삶에 등장했다는 건 선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소극적이었던 그웬. 별다른 인사도 못한 채로 마일즈를 다른 차원으로 떠나보냈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었나? 갑자기 그웬의 지구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르네상스 벌처'가 이쪽 세상에 침입한 것이다. 출동하는 스파이더우먼. 분전을 펼치지만 쉽지 않다. 이때 낯익지만 어딘가 신선한 얼굴이 들어온다. 파마머리에다 임산부인데, 분명히 스파이더우먼이다. 다른 차원에서 온 손님인가? 그웬의 호기심은 곧 사실이 된다. 안녕! 그웬? 난 제시카 드루! 다른 차원에서 왔어. 또 다른 멀티버스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 멀티버스에서 그웬이 생각지도 못했던 대환장파티가 열린다. 과연 이곳에서 어떤 모험이 벌어질까?
숫자로는 4년 차
4년여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4년이면 뭔가 좀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멀티버스'와 '스파이더맨'이 익숙하다. 왜 익숙한지 따지기 전에 우선 전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시리즈의 1편이었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이 작품이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과 차별점을 가져 호평을 들었던 이유는 클리셰 뒤집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스파이더맨 시리즈 굉장히 익숙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코믹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사영화 시리즈들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호러 장인 샘 레이미가 연출했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글쓴이 같은 90년대 후반생의 관객이라면 다들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로 기차를 멈춰서는 장면은 히어로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또 앤드류 가필드가 피터 파커를 맡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엠마 스톤의 추락신이 역시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톰 홀랜드가 주인공을 맡은 마블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가장 최근작인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전 세계 히어로 무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스파이더맨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만화/영화이기 때문에 시리즈의 필수요소 같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뿐일까? 멀티버스라는 소재는 근 몇 년간 영화판에서 핫했던 소재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준으로 2주 전에 개봉한 <플래시>, 올해 아카데미 7관왕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로키>가 그렇다.
전작 1편과 이 2편은 이 앞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특징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1편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의 캐릭터를 을 아주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의 네 번째 리부트? 또 벤 삼촌 나오겠지? 빌런 벌처/닥터 옥토퍼스/일렉트로/미스테리오/그린 고블린/샌드맨/베놈같이 기존에 나왔던 캐릭터들 아니야? 보나 마나 히로인 또 죽겠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무조건 나올 거 같은데? 삼촌 어떻게 죽을까? 스파이더맨을 또 온 세계가 괴롭히겠지? 이거 전부 다 빗겨나갔다. 우선 1편의 메인빌런은 킹핀이다. 이 킹핀이 원래 북미에서 스파이더맨의 안티테제 중 하나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그 대신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판에선 '데어데블' 시리즈의 빌런으로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바 있지만 그거 드라마 일일이 다 본 분들이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킹핀을 빌런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코믹스 바탕이었던 영화 전개의 디테일도 살리고 신선함까지 갖추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빌런 캐릭터를 변주하는 방식은 프라울러에게도 마찬가지다. 프라울러와 마일즈와의 관계, 그러면서도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어떤 공통점을 갖는 좋은 연출이 있었다. 이 외에도 멀티버스의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선했다. 닥터 옥터퍼스가 누구야? 에 대한 부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코믹스에서 튀어나온 스파이더맨의 세팅이 그렇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세명의 스파이더맨을 봤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도 스파이더맨이 인간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영화는 이것마저 깼다. 스파이더맨 누아르나 피터 포커 같은 캐릭터는 그냥 만화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색할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 장르니까. 이런 화술을 가진 1편은 가히 사람들에게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 충분했다.
2편인 본 작은 1편이 갖고 있던 장점을 그대로 승계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도입부쯤에 등장하는 벌처와 한 빌런이 그렇다. 벌처가 '르네상스 시대'에 그게 있었다는 상상부터가 신선하다. 이는 초반부 그웬 지구의 피터가 어떤 인물이었는가? 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빌런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확 뒤집은 셈이다. 이 두 세팅은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반복되면서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딜레마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빌런은 인지도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글쓴이도 이 영화에서 감독들이 가상으로 창조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빌런의 능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기존 멀티버스 소재 영화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데, 이 자체가 영화의 시각화와 분명하게 시너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단 이 빌런뿐만 아니라 미겔 오하라 스파이더맨 / 제시카 드루 스파이더 우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스파이더맨, 스파이더우먼은 각자의 명분이 확실하다. 이 덕에 인물의 개성이 죽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이 영화를 직접 보시길 바란다.
멀티버스 뒤집기
지난 아카데미에서 7관왕을 기록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는 멀티버스 상상력의 극한을 찍으며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핫도그가 손가락인 세상 묘사다. 또 뭐 모녀가 돌인 세상도 있고 나무인 세상도 있고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 묘사만큼이나 중요했던 건 이야기의 구성이다. '에에올'의 핵심이 뭐냐? 그 모든 가능성을 감수하고 현재를 선택하겠다는 로맨틱함이다. 이는 곧 '내가 성공하더라도 현재가 소중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조부 투파키의 내적 세팅이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흑화 한 조부 투파키. 모든 가능성을 경험했다는 것은 시각적인 소재 '멀티버스'와도 이어진다. 이는 곧 혹시나 만약같이 '과거에 이렇게 되면 어땠을까?'를 붙여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모든 멀티버스에 모녀의 관계를 넣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비단 '에에올' 뿐만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플래시>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는 슈퍼히어로 완다가 다크 홀드에 의해 주화입마에 빠져 자기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었고, 후자는 배리가 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이를 받아들였다는 내용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러니까 '에에올'과 유사하게 정해진 운명을 슈퍼히어로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다뤘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멀티버스를 풀고 있다. 그러니까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본다면 이 영화가 멀티버스를 활용하는 방식에 감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왜 이 영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성립한다. 또 슈퍼히어로라는 장르 특성에도 충족한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생기는 철학적인 대립도 흥미롭다. 마이클 샌델이 공리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기차에 대한 비유를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이 비유를 어떻게 치환시켰는지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통통 튀는 전개
멀티버스를 영화에서 어떻게 풀었는지와는 별개로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는 아주 흥미롭다. 우선 이를 위해 미겔 오하라와 스팟,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어떤 스파이더맨'에 대해 쓸 수 있다. 3번째 인물은 등장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영화가 품고 있는 힙한 감성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스팟은 기존 마블 영화 다 합쳐서 가장 위협적인 빌런처럼 등장한다. 갖고 있는 능력은 다르지만 '정복자 캉'과 궤를 같이 하는 감이 있다. 이를 위해 시각적으로 스팟의 능력 묘사를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영화에서 굉장히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통통 튀고 힙한 시각화 방식에 기괴함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를 보여주는 좋은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추후에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만큼이나 강력한 빌런으로 언급될 만하다.
미겔 오하라 스파이더맨은 굉장히 그럴듯한 인물로 보인다. 아니 사실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동기부여는 옳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인물이 갖고 있는 당위성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포스가 있다면 설득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5대 5로 대립할 수 있던 이유는 기존 영화들이 심리적으로 그 둘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게끔 잘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스파이더맨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했다는 점은 영화에서 핵심 딜레마를 묘사하는 데 있어 엄청난 강점으로 뽑힌다. 오스카 아이작의 목소리 열연이 이를 덧붙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두 번째 강점이다.
눈호강의 최고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의 최고 가치 중 하나는 시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눈호강은 <아바타> 1편과 맞먹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시각화 중에서도 훌륭한 두 지점은 예고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바로 마일즈와 그웬이 서로 만나는 모든 신이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글쓴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그웬이 쌓아 올린 인물 서사와 감정선 또 마일즈가 쌓아 올린 감정선이 이 장면을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아주 흥미롭다. 영화에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등장에 임팩트를 주는 방식도 쾌감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스팟과 어떤 나라에서 벌어지는 장면 모두 다 바스키아를 연상케하는 시각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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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 존중 없는 사랑은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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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를 꼽는 남편. 남편의 가능성을 믿고 영화판을 떠나 극단 무대를 택한 아내. 더없이 이상적인 관계로 보이는 이들은 어느 순간 차에 치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은 있을지언정 존중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결혼이야기>는 존중 없는 사랑으로 파경을 맞는 부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LA 출신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배우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고 영화배우가 됐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품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어쩌면 잘 나가는 할리우드 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욕에 자리 잡은 극단 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찰리의 연극에 매료된다. 결국 니콜은 터전인 LA 대신 낯선 땅 뉴욕에서 삶을 꾸린다. 꿈과 기회를 포기하면서 사랑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니콜을 한 사람의 아내, 극단의 평범한 배우로 전락시킨다. 사랑하는 아들 헨리도 니콜에게 '엄마'라는 이름의 또 다른 짐을 지운다.
같은 시기, 남편 찰리의 몸값은 높아져만 간다. 소위 천재들만 받는다고 알려진 맥아더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찰리는 극단 사람들이 잘해준 덕분이라며 상금을 극단 유지에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극단의 헌신적인 리더답다. 하지만 니콜이 잘해준 덕분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나 보다. 니콜은 자신의 유명세까지 이용하며 극단 홍보에 나서고, 극단의 실험극들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갔다. 니콜의 몫은 부부라는 이유로 어느 순간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니콜에게 오랜만에 영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찰리의 성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찰리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 니콜을 꼽아놓고도 아내의 재기를 축하하지 못한다. 자신과 극단이 있는 뉴욕을 떠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LA로 가야 했으니까. 찰리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했지만 결국 니콜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허락을 할 때조차 출연료를 극단 유지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한다. 니콜은 자꾸만 몸이 극단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든다.
찰리와 니콜. 이들 부부가 감독과 배우의 관계인 건 대단히 상징적이다. 감독과 배우는 언뜻 대등한 파트너로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독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배우를 활용한다. 배우는 역할에 몰두하기 위해 본인을 지워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니콜이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라기보다는 '부부의 세계'에 매몰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함이다.
니콜은 대화 대신 소송을 택한다. 재산을 더 많이 가져갈 요량은 아니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찰리와 대화로 상황을 풀 용기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 영화 '결혼 이야기'는 찰리와 니콜의 지리멸렬한 이혼 소송 과정을 그린다.
소송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의뢰인의 진심은 변호사들에게 닿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소송에 들어갔을 때만 상대를 향해 분노한다. 상처를 받는 건 당연하게도 니콜과 찰리. 그들은 '나를 이렇게 창피하게 만드는' 서로에게 점점 실망한다. 부부의 사랑은 형태를 바꿔 간다. 애틋함에서 애끓는 증오로, 또 공허한 평화로. 다시 애틋함으로.
이혼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결혼에 대해 많이 상기하는 시기였다. 헤어진 이후 서로의 진심을 알고 눈물을 삼키는 일도 있었지만 이들 부부는 부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니콜과 찰리에게 결혼 생활은 '우리는 어긋나 있구나'라고 확신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영화 후반, 찰리의 품을 떠난 니콜은 배우상이 아니라 감독상 후보가 된다. 그것도 우수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수여하는 에미상이다.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찰리는 TV를 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애초에 니콜의 세계를 존중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극단의 멋진 리더이자 헨리의 다정한 아빠였지만 니콜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였던 것.
TV 채널을 돌리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보는 관찰 예능이었다. 출연한 부부들의 재결합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에서 쓸쓸한 바람이 인다.
아내는 "이 사람은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자꾸만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가 불편하다. 이미 자신들의 '결혼이야기'라는 책을 써 내려간 관계다.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고 이별을 감행한 상태인 것. 결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제삼자들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가사가 귓가를 맴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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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한 주사 맞고 그제야 정신 차렸네
혹평세례라는 극약처방 맞은 효과가 확실히 있었다. 비록 180도 달라진 완성도까지는 아니지만, 시즌 1에서 보여줬던 단점은 어느 정도 수습한 채 스토리를 마무리지었다.
지난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 2'는 79년이 지난 2024년 서울을 배경 삼아 이야기가 이어진다. 2024년의 윤채옥(한소희)은 '은제비'라는 이름으로 실종자들을 찾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심부름센터인 부강상사를 운영하는 장호재(박서준)와 만나게 된다. 경성의 봄을 함께 했던 장태상(박서준)과 똑 닮은 외모를 지닌 호재와 엮이면서 채옥은 끝나지 않은 자신의 운명과 악연을 파헤쳐 간다.
700억 원이라는 높은 제작비에 유명 작가와 감독(강은경 작가 & 정동윤 감독), 그리고 한류 스타들이 뭉쳤음에도 올드한 연출과 대사, 느린 전개, 어색한 연기력 등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혹평을 받고 났더니, 제작진이 절치부심하여 시즌2 전체를 재편집하며 쇄신했다.
확실히 '경성크리처 2'는 시즌 1보다 여러 면에서 나아졌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를 줄이면서 러닝타임도 훨씬 짧아졌고, 회차도 7부작으로 줄였다. 지적받았던 느린 전개도 한 층 빨라지며 속도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액션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호재와 쿠로코 대장(이임생)이 황량한 도로 위에서 펼치는 추격신 및 일대 다수 격투신으로 꽉 채운 오프닝 시퀀스부터 눈과 귀를 잡는 액션 장면으로 사로잡는다. 특히 얼굴을 가리고 검은 옷으로 통일해 그림자처럼 쫓는 쿠로코들과 두 주인공이 그려내는 빠른 템포의 액션들은 독보적이다.
시즌 1에서 전혀 살지 않았던 멜로 케미도 시즌 2에선 괜찮아졌다. 아무래도 시즌 1에서 두 주인공 간 얽힌 서사들을 남김없이 들려준 덕분인지, '경성크리처 2'에선 긴 설명 없이 이들의 애틋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시즌 2로 보완하였다 하더라도 '경성크리처' 시리즈는 여전히 아쉬운 면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45년을 배경으로 삼았던 시즌 1에서 담아낸 항일 정신이 시즌 2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 세기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는 그들을 이야기한다고는 하나, 크리처를 위해 일회적으로 소모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시대의 비극과 일본의 만행을 상징하는 소재 나진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불친절했다.
두 주인공인 호재, 채옥과 주변인들과의 관계성 또한 잠깐 스쳐가는 소품처럼 활용해서 아쉽다. 마치 무언가 있을 법한 관계성에 대한 묘사는 대폭 생략한 채 냅다 결말로 달려가기만 한다. 여기에 떡밥은 계속 뿌리는데 반해 명확하게 복선 회수가 되지 않고 새로운 시즌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도 다소 당황케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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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 도깨비 깃발, 명절용 오락 영화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속편!
설 연휴를 앞두고 해적 도깨비 깃발이 개봉했습니다.
2014년에 개봉했던 1편에 이은 속편이죠.
속편이지만 영화 속 시기와 캐릭터는 모두 바뀌었어요.
이번엔 의적과 해적이 만나게 됩니다.
거의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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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과 흥이 살아있는 모아나 2 / 전작보단 별로인듯 / 열정적인 음악과 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모아나 2" 후기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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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메인 예고편
“늦었지만 이제는 해야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반성 없는 세상을 향해, 그의 복수가 시작된다!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던 ‘오채근’(안성기)은
소중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광주 출신의 ‘진희’(윤유선)를 만나며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된 그는
당시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기준’(박근형)에게 접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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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니얼굴> 메인 예고편
어느 뜨거운 여름, 집에서 뜨개질만 하던 은혜씨가 양평 문호리리버마켓의 인기 셀러로 거듭난다 “예쁘게 그려주세요” “원래 예쁜데요 뭘~” 예쁜 얼굴도 안예쁘게 그려주는 은혜씨 앞에 4천 명의 사람들이 환하게 웃음 짓는다 -감독: 서동일 -출연: 정은혜, 장차현실 -개봉: 2022년 6월 23일 -제공/제작: 두물머리 픽쳐스 -공동제공/배급: ㈜영화사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