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2-03 11:29:42
전근대의 질곡, 그리고 근대의 ‘예수’가 된 여자
영화 〈노스페라투〉

8★/10★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질곡, 누군가는 이를 끊어내야만 한다. 1838년 독일, 엘렌은 성적 환희에 젖은 표정으로 악마와 교합한다. 이날 이후, 엘렌은 악몽을 꾸고 심신미약에 시달린다. 한편, 엘렌의 남편 토마스는 거액의 부동산 계약을 위해 타지에 있는 올록 백작에게 향한다. 토마스가 떠나자 엘렌의 불안 증세는 점차 심해진다. 의사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도록 엘렌에게 코르셋을 입으라 권한다. 발작 증세를 억누르기 위한 결박도 권한다. ‘예민한’ 여성에 대한 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처방이었다. 그러나 엘렌의 증세는 악화일로다. 의사는 고민 끝에 한때 촉망받는 의료인이었던 미치광이 연금술사에게 엘렌을 데려간다. ‘현대식’을 표방하는 의사의 자기 패배 선언이다.
한편 엘렌의 고통이 점차 가중되는 동안, 토마스 역시 올록 백작과 만나 진이 빠지는 경험을 한다. 내내 그에게 끌려다니던 토마스는 마침내 올록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쳐 나온다. 올록은 그런 토마스를 뒤따른다. 올록은 오랫동안 때를 기다렸다. 엘렌을 비롯한 또 다른 수하가 있는 도시로 향해 자신의 절대적 영향력을 확립할 때를.

올록이 도착하자 도시에는 금세 전염병이 퍼진다. 엘렌의 증세를 처치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충돌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이 전염병을 악마의 영향력이라 진단하고, 누군가는 그런 해석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거부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은 죽을 쑨다. 전근대에 대한 근대의 연전연패다.
이제 올록이 온 도시를 지배하기 직전이다. 엘렌이 나선다. 그녀는 내내 자신이 더는 올록을 섬기지 않는다는 점을, 이제는 올록이 아닌 남편을 사랑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결국 올록의 강요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진심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만이 올록을 전근대의 세계로 완전히 퇴장시켜 봉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연금술 대 의학, 악마의 재림 대 전염병. 즉 전근대와 근대의 패러다임 전쟁에서 후자는 번번이 패배했다. 전근대의 질곡으로 표상된 악에 완전히 잡아먹힐 위기다. 그러자 근대적 분류‧인식 체계에서 늘 뒤처져 있다고 모욕당해온 여성인 엘렌이 그 모욕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악마 올록과 성적으로 교합해 해가 떠오르면 올록이 돌아가야만 하는 관을 파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번다. ‘마녀(악마에 대한 성욕)’, ‘히스테리(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여성)’라는 낙인을 기꺼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악마에게 소멸을 선사해 근대를 온전히 열어젖히는 예수로서 희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엘렌이 숭고한 희생을 결심하는 결정적 동기가 남편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문, 경제적 필요에 얽매이지 않는 두 개인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근대적인 현상이다.

이 영화는 최초로 뱀파이어가 등장한 동명의 영화(〈노스페라투〉(1922))를 리메이크한 것인데, 100여 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를 넉넉히 견딜 만큼 깊이 있는 상징을 적확하게 활용한다. 클래식한 연출을 동시대적으로 갱신해 몰입감을 유지하는 솜씨도 일품이다. 숨 막히게 몰아붙이거나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공포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은근하게 장악하여 곱씹게 한다. 이전에 〈라이트하우스〉에서 본, 로버트 에거스가 그려낸 미지의 것에 대한 열망과 공포의 메타포가 더욱 세련되게 발전해 계승되었다는 데에 대한 반가움도 크다. 가히 ‘걸작’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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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높은 영상 속 질낮은 이야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건 어떤 것일까. 살기 위한 의지가 사그라든 상황에서도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아마도 가족은 다시 살아야 할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다시 직접 만나서 서로를 안고 보듬으면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생각은 의지를 주기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맡은 일이 국가적으로 기대가 있었던 일이라면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더 힘을 쓰게 된다. 여러 동료를 잃은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목표점에 근접한 남은 인물은 끝까지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더 문>은 한국 최초로 달 탐사를 하기 위해 우주로 향하는 우리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호에는 3명의 대원이 타고 있었지만 태양풍으로 인한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황선우 대원(도경수)만 살아남는다. 그를 구하기 위해 5년 전 첫 번째로 탐사선을 만들었던 김재국 센터장(설경구)이 다시 우주센터로 돌아와 도움을 주게 된다. 김재국 센터장은 5년 전 달탐사를 위해 나래호를 발사시켰다가 폭발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호는 나래호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탐사선을 잘 알고 있는 김재국 센터장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국 최초 달 탐사선인 우리호에 닥친 재난
다른 대원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기체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달탐사를 강행하겠다고 결정한 황선우 대원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해 결국 달에 도착한다. 사실 황선우 대원은 우리호에 탄 3명의 대원 중 가장 우주 비행에 대한 지식과 능력이 떨어진다. 3명 중 가장 초보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탐사선에 남아 관제센터와 협력을 하고 그것을 통해 달에 결국 도달하는 과정이 영화에서 꽤나 긴장감 있게 담겨있다. <더 문>에서 보여지는 모든 과정은 그 황선우 대원의 의지 때문에 만들어진다.
영화는 황대원이 반복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운데 우주적인 재난인 유성우를 등장시켜 큰 위기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황대원의 의지와 김재국 센터장의 원격 지원으로 많은 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더 문>의 내용을 이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주 재난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이 영화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는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모두가 예상 가능한 따뜻한 결말로 달려간다.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건, 할리우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어진 CG다. 달의 상공과 달 지면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어색하지 않고 영화에 몰입감을 더해준다. 유성우가 떨어져 지면이 폭발하는 장면들과 그것을 피해 움직이는 탐사선의 모습들이 꽤 실감 나게 담겨있다. 그 장면에 과학적인 오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어색함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능하면 극장에서 직접 질 높은 영상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훌륭한 우주 장면과 CG
이런 영상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각 장면들의 신선함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달탐사선의 고장으로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탐사선 외부로 나가있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하고, 달에 혼자 살아남은 대원을 무사히 귀환시키는 이야기에서는 <마션>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달에서 유성우를 피해 차량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애드 아스트라>의 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이미 선보였던 여러 설정과 장면들을 참고하여 장면을 구성했다는 기시감이 많이 든다. 그러니까 화면의 질은 우수하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
이야기의 전개도 아쉽다. 황대원이 달에 도착해서 유성우를 만나게 되어 큰 위기가 발생하는데 중반부터 시작된 유성우가 끝까지 쏟아진다. 또한 그렇게 많은 유성우가 쏟아지는데 탐사선과 황대원에게는 쏟아지지 않는 시간이 꽤 길어 의아함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리고 미국 나사에서 한국을 공식적으로 돕지 못한다는 설정인데, 영화의 말미 나사 디렉터인 윤문영(김희애)의 신파적인 연설로 윗선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구조작전도 이해할 수 없게 느껴진다. 영화 곳곳에 포함된 신파 코드 역시 SF 영화로서의 매력을 많이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아쉬운 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이다. 혼자 남은 대원을 살리기 위해 투입되는 김재국 센터장은 과거에 일했던 사람이고 탐사선의 구조나 기능을 잘 안다. 하지만 그가 현재 우주센터에서 어떤 지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현재의 센터장을 무시하고 헤드셋을 빼앗아 황대원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직원들에게 일을 지시한다. 그의 지시에 따라 센터의 인물들이 업무를 진행하는 것 또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달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황선우 대원의 아버지는 과거 김재국 센터장과 같이 나래호 발사 준비와 진행을 했던 인물이다. 그 당시 나래호의 실패로 3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것으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그 당시 책임자였던 김재국 센터장 역시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김센터장은 황선우 대원을 구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황대원은 김센터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에 황대원의 아버지의 편지와 김센터장의 고백을 보여주며 황대원이 마음의 변화를 하게 만들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니까 초반에 가졌던 김센터장에 대한 증오가 아버지의 편지 이후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고, 김센터장의 고백 이후 김센터장을 용서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글로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이 둘 간의 감정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이야기와 캐릭터
이 주 인물의 주변에 있는 인물도 아쉽다. 이야기 내내 센터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조한철) 캐릭터는 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는 리액션을 많이 보여준다. 장관으로서 책임을 보여주거나 나쁜 역할을 맡아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그저 놀라고 무서워하는 과한 리액션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김센터장과 같이 일하고 있는 한별(홍승희)의 존재도 물음표를 만든다. 한별은 위기의 상황에 꽤 좋은 아이디어를 전달하지만 그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를 거의 설명하지 않으면서 기능적으로만 활용시키도 만다.
영화 <더 문>이 한국에서 제작한 SF영화로서는 적지 않은 예산으로 좋은 화면의 영화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상만큼 성공적이지 못하다. 인물들의 감정은 과잉이 된 듯 신파를 유발하고 각 인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관계를 설정해 가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영상이 주는 재미는 있지만 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달에서 벌어지는 탈출 장면은 긴장감 있게 보게 되지만 지구에서의 모습에서는 흥미가 떨어진다. 이야기와 캐릭터만 놓고 보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은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더 문>에서 그의 장기가 유기적으로 잘 발휘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관객이 캐릭터에 대해서 공감하기 어렵다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신파 부분에서도 하품이 날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는 좋은 영상을 보여주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아쉽다. 설경구, 도경수, 김희애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하지 못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배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지 못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더 문>은 극장에서 보기 최적화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달에 남은 대원의 의지가 발휘되면서 벌어지는 탈출 장면은 훌륭하고 깔끔한 그래픽으로 만들어져 있고 스케일도 크기 때문에 작은 화면보다는 큰 화면에서 보는 것이 좋다. 이야기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만든 SF영화가 만들어낸 우주 장면이 궁금한 관객들에게는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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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독특한 감성의 한국식 멀티버스 영화가 궁금하다면
마블(Marvel) 사는 히어로 영화의 신대륙을 개척함과 동시에 수많은 관객에게 평행 세계와 다중우주(Multiverse)라는 개념을 알렸습니다. 저도 스파이더맨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이 세계, 저 세계를 오가는 것을 보면서 평행 세계와 다중우주의 개념을 확실히 깨달았죠. 마블의 최근 행보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면 알기 힘들었을 어려운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는 바로 이러한 다중우주 개념을 적용한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거대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여러 보통의 우주들의 이야기'라는 설정만으로도 산뜻하고 신선한 작품이었죠. 이 영화 속에서 찬란하게 빛난 보통의 우주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
Stars in the Ordinary Universe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는 현실의 일면에 상상력을 더한 흥미로운 3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됩니다. '우월한 유전자' 이론을 접하고 자율학습 대신 열등한 인간의 존재 가치를 찾아 방황하는 여고생의 이야기(<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 크고 창대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대통령의 꿈을 좇다가 결국 거지가 되고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거지의 왕>), 입에 지퍼를 잠가야 할 순간에도 눈치 없이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고충을 다룬 이야기(<진실을 아는 자>)까지. 같지만 다른 평행 세계 속 이야기답게, 등장인물들이 시공간을 오가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출몰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중우주 속 세계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연결한 작품은 아닙니다. 세 이야기는 분명한 하나의 공통된 주제, 삶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죠.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에서는 자기 자신이 열등한 유전자라고 믿는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고, <거지의 왕>에서는 대통령이라는 환상 같은 꿈만 뒤쫓다가 거지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가며, <진실을 아는 자>에서는 괴로움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진실을 이야기하고야 마는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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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이야기 모두 비참한 현실을 가벼운 웃음으로 비트는 블랙 코미디 요소를 갖추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삶의 의미를 고민하던 주인공은 '우월한 유전자건 열등한 유전자건, 땡땡이 치면 숙제가 많이 밀린다'는 허무하면서도 당연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큰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대통령을 꿈꾸었던 주인공은 거지가 돼버린 후에도 크고 창대하게 '거지의 왕'이 되겠노라 선언하죠.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진실을 이야기해 온 주인공은 별안간 진실을 말하는 입이 우월한 유전자로서 선택받은 것이라고 믿게 되고요. 삶의 의미라는 심오한 주제를 떠안은 세 주인공 모두 조금은 황당하고 우스운 결론에 다다른 셈입니다.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 김보원 감독은 “현실을 리얼리즘으로 직시해버리면 고통이 배가 되기에 끔찍한 고통과 감정을 웃어넘길 수 있는 블랙 코미디 장르를 사랑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장르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진실을 아는 자>에는 실제론 아무 의미 없는 별들을 머나먼 지구에서는 찬란한 빛으로 보고 감탄한다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통의 우주들도 참 별 볼 일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마찬가지죠.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지구는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보통의 지구도 멀리서는 찬란할 겁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점일지라도 말이죠. 모든 일엔 배울 점이 있듯이, 이렇듯 허무맹랑함으로 범벅된 듯한 이야기 속에도 진득한 깨우침이 녹아 있습니다.
⊙ ⊙ ⊙
이 작품은 화면비에서도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재미있게 활용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로 이어지면서 4:3 비율이었던 화면은 점진적으로 1.66:1 비율까지 확장됩니다. 또 세 우주가 전환되는 장면은 가장 큰 1.85:1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하죠. 감독은 “우주가 다르니까 당연히 화면비도 달라야 하며, 평행 세계의 지구들이 모두 존재하는 화면은 마땅히 가장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변태 같은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이런 변태 같은 설정에 감동하지요.
철학과 과학, 존재와 사유, 진실과 탈진실. 블랙 코미디와 다중우주라는 외양 안에서 다양한 논제를 다루고 있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하게 빛나는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블 사의 다중우주 영화와는 또 다른, 독특한 한국식 다중우주 영화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Summary
무한한 다중우주에서 펼쳐지는 보통 사람들의 세 가지 이야기. 우주 #1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알게 된 한 여고생.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묘한 자율학습을 시작한다! 우주 #2 삶의 의미를 통달한 듯 보이는 거지. 험난한 여정 끝 얻게 된 진실한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주 #3 진실은 계속해서 진실을 알린다.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다들 떠나갈까.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김보원
출연: 박서윤, 심규호, 오동민 외
Schedule in JIFF
2023.04.28(금)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20:30
2023.05.01(월) CGV전주고사 4관 17:00
2023.05.02(화) CGV전주고사 6관 10:30
2023.05.03(수) CGV전주고사 4관 16: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27일 -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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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좇아서
언제나 미디어는 여성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미디어 중독자였다. 유이의 ‘꿀벅지’를 기억하고, 설현의 완벽한 뒷모습을 기억한다. 한 통신사의 설현의 입간판은 숱한 남성에게 도둑을 맞기도 했다. 지금의 흐름은 양분화되어 있다. 누가 봐도 마른 몸의 슬렌더형 여성상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상은 함께 유행한다. 취향의 차이라지만,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 또한 사실은 마른 몸을 가진 여성이다. 카메라 뒤에 서는 일을 꾸준히 해왔기에 방송용 카메라가 가지는 한계를 안다. 카메라는 피사체를 현실보다 조금은 부하게 비추며, 화면상의 모습은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서는 여성들은 미디어에 보여질 기준에 맞춰 자신의 몸을 옥죄여 관리한다.
<서브스턴스>는 여성의 몸과 노화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에어로빅 쇼를 진행하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중년을 맞이한 스타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선망이 될만한 몸을 가졌음에도, 노화는 어쩔 수 없다. 남성 프로듀서들은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그 역학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왕년의 스타’가 되어 쇼에서 내쳐진다. 이 영화는 그 순간에 절망하는 중년의 여성을 비추는 쇼가 아니다. 바디호러라는 장르를 이용해 그녀에게 새로운 젊음의 몸을 주는 특이한 양태를 취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서브스턴스’라는 도구를 통해, 엘리자베스는 젊은 몸을 얻는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일주일은 엘리자베스의 몸으로 살아야 하고, 일주일은 젊은 몸을 가진 ‘수’로 살 수 있다. 앞은 조건이고, 뒤는 가능이다. 그 룰을 어기면, 균형은 무너진다.
그렇게 얻게 된 젊고 아름다운 몸으로 수(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수)의 자리를 빼앗는다. 소프트웨어는 같은 사람이기에, 보여주는 에어로빅은 다를 바 없을 것임에도 남성 프로듀서들은 수는 무언가 다르다며 열광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수의 신체를 파편화해서 재현한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들을 여성의 몸에서 주로 대상화되는 ’부위‘들을 중심으로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수의 에어로빅 씬은 ’소프트 포르노‘와 다를 바 없다. 이전의 영광을 누리게 된 엘리즈베스는 수의 몸을 탐하고, 규칙을 어기게 된다. 그렇게 바디 호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의 시간을 늘릴수록 엘리자베스의 시간은 줄어든다. 그렇게 수의 신체에서 엘리자베스의 신체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노화를 넘어 붕괴를 겪고 있는 자신과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하는 욕심은 결국 엘리자베스의 신체를 부식시키고 영화는 파국으로 흘러간다.
결말부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 영화는 끝까지 가는 영화다. 멈출 때가 됐다고 생각할 때에도 영화는 브레이크를 절대 밟지 않는다. 이 작품은 결국 중요한 것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든지 하는 교훈적인 영화가 아니다. 끝까지 가는 이 작품의 방향성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한, 젊음과 미에 대한 추구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중요한 건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악몽의 세계가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작품은 바디 호러라는 장르를 빌렸을 뿐, 그 어떤 작품보다도 현실적인 작품이다.
앞서 여성의 몸에 대해 주로 얘기한 바 있다. 하지만 요즘 가장 눈길이 가는 이슈는 ’중안부‘ 이야기다. 과거 작은 얼굴, 큰 눈, 높은 코, 브이라인 턱에 대한 추구가 컸다면, 이제는 ’중안부‘라는 말도 안 되는 영역까지 미에 대한 기준은 침범했다. 여성들은 그렇게 매일 거울 앞에 앉아 그녀들과 다른 자신의 얼굴에 절망한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화장을 한다. 그럼에도 덜어지지 않는 부족함은 시술로, 수술로 이어지며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추구미’ 를 좇는다. 끝없이 바뀌는 미의 기준 속에 우리는 어디를 좇아가야 하는가.
나는 여타 여성들보다는 외모 강박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설 일이 있었다. 카메라 앞에 비춰진 나의 모습 속에 나의 단점들이 보였다.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작은 턱으로 인해 납작한 편인 옆모습이라든지, 좁은 어깨에 비해 큰 얼굴이라든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변화시킬 의지는 없지만, 더 아름다운 나를 원하지 않냐고 물으면 말끝을 흐리게 될 것 같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공허한 말만을 외쳐서는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이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낼 수 있을까.
로라 멀비는 일찍이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라는 저작에서 미디어 속 ‘Male gaze’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여성 감독이 ‘Male gaze’를 갖고 놀며, 그 시선이 망쳐놓은 세상의 끝의 끝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녀가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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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11월 신작
넷플릭스 2022년 11월 신작
썸바디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데이팅 앱을 만들었다
연쇄 살인범이 다음 타깃을 찾는데 앱이 이용되면서
개발자는 로맨스와 살인이 뒤얽힌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데...
크리에이터: 정지우, 한지완
출연: 김영광, 강해림, 김용지, 김수연
장르: 범죄, 한국드라마, 스릴러
공개: 11월 18일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화려한 스타들을 전문적으로 서포트하는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매니저들
별난 성격의 사람들을 상대하고 사내 정치를 헤쳐 나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크리에이터: 박호식, 백승룡, 공재원, 박소영, 이찬, 남인영
출연: 이서진, 곽선영, 서현우, 주현영, 심소영, 김국희, 김태오, 황세온, 노상현, 최연규, 신현승, 정혜영
장르: 한국 드라마, 코미디
공개: 11월 08일
코리안 넘버원
유재석, 이광수, 김연경이 한국의 방방곡곡을 찾아간다
최고의 장인들에게 전통 노동을 한 수 배워
넘버원 도제가 되기 위해서
감독: 정효민, 김인식
출연: 유재석, 이광수, 김연경
장르: 리얼리티
공개: 11월 25일
1899
1899년 이민자들을 싣고 뉴욕으로 향하던 배가 미스터리한 사건을 마주한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혼란에 빠진 탑승객들
그때 충격적인 수수께기가 한올 풀어지기 시작하는데...
크리에이터: 얀테 프리제, 바란 보 오다어
출연: 에밀리 비첨, 어나이린 바나드, 안드레아스 피치만, 미겔 베르나르도 등
장르: 스릴러, 드라마, 액션
공개: 11월 17일
에놀라 홈즈2
탐정이 된 후 첫 번째 사건을 수임한 에놀라
하지만 실종된 소녀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쩌면 오빠 셜록의 도움까지도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말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데이브드 슐리스, 헬레나 본햄 카터 등
장르: 미스터리, 시대물, 액션
공개: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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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2022)> 리뷰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20220>은 델리아 오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올리비아 뉴먼 감독 하에서 제작되었다. 드라마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1960년대의 미국 캐롤라이나를 주 무대로 삼으며, 놀라우리만큼 아름다운 영상미로 관객들의 시선을 거침없이 사로잡는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카야 클라크(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어릴 적부터 마을과는 동떨어진 습지에서 나고 자랐으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자매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떠나 결국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에 이르지만, 카야만큼은 고향에 남았다. 결국 아버지마저 집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카야는 습지 안에서 잠들었고 또 눈을 떴다.
외부인과의 접촉이 철저히 격리된 공간에서, 아버지로부터 타인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카야지만 그의 삶이 지루했다고 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테이트 워커(테일러 존 스미스)와 애정을 쌓기도 하고, 자신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던 점핑의 부인인 메이블 매디슨(마이클 하이얏) 덕분에 학교를 가보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와의 접촉이 있을 때마다 돌아오는 건 어째서인지 상처뿐이다. 최소한의 접촉을 제외한 은둔 생활을 다시 이어지던 중 카야는 체이스 앤드루스(해리스 딕킨스)와 연인이 되었지만, 글쎄,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살인사건은 바로 체이스의 죽음이었다는 걸 상기해 보자. 이런 배경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외톨이 신세였던 카야에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과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수군거림 뿐이다. 심지어 그의 집을 수색하던 보안관은 이렇게 발언한다. 과학자야, 마녀야?
드라마장르라고 명명되었지만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만큼,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적 요소가 존재한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카야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과 관객이 가진 정보량의 격차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점차 벌어지기 때문이다. 관객은 카야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에게 이입하게 되고, 자연스레 그의 무죄를 외치는 변호사 톰 밀턴(데이비드 스트라탄)이 승리하길 원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 영화는 그 과정에서의 긴장을 추구하지도, 촉망받는 쿼터백 체이스를 살해한 용의자가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파헤치지도 않는다. 그저 카야의 삶과 자연의 풍경에 집중한다. 마치 체이스의 죽음은 곧 사라질 바람이었다는 듯이. 카야가 법정에 서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고, 최악의 경우 사형을 선고받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왜일까.
사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 지독하리만큼 익숙한 현대인이 카야, 아니, 습지로 대변되는 야생(혹은 자연)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라 해도 무방하다. 또한 그렇기에 그 과정엔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분류한 선악의 개념도,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규정된 윤리적 규범도 없다. 학교가 아니라 자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자처하는 카야는 이렇게 말한다. 습지는 늪이 아니며, 그곳엔 빛이 있다고. 다만, 습지가 늪을 품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 늪은 습지의 빛을 잠식하는 어둠이 아니며 우리가 관습적으로 진흙탕과 진배없이 부정적인 공간이라 상상하고 두려워한 늪은 습지의 전부가 아니다. 빛이 쏟아지는 저지대와 늪이 어우러진 습지라는 공간은 생태계의 한 면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습지인가. 습지는 본디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김태철, 2007)” 경계적 공간이다. 이러한 습지의 속성은 이름 있되 이름 없는 자, 세금을 낸 적 없어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도 주체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웠던 자, 그러하므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였던 캐서린 카야 클라크의 속성과 겹친다. 특히 카야가 자신의 존재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했던 가족조차 잊고 살았다는 사실은 어느 날 문득 깨달아 슬퍼했던 모습을 보이는 씬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 뿌리를 상실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동시에 그가 얼마큼 습지(자연)에 가까운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사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모더니티가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띠는 습지를 결국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았던 것처럼, ‘습지 소녀’로 불리며 배척받았던 카야 역시 마을사람들에게 자아성찰의 계기가 된다.
습지와 카야가 동화되었음을 반증하는 외부인은 비단 마을 주민뿐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미국 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는 카야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카야와 일면식이 없는 사회복지과 주민은 그를 여성 전용 주거 시설로 보내려 한다.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외부인의 시선과 계산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카야는 그의 권유로부터 달아나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는 제 뿌리를 옮기는 순간 자신이 말라죽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버림받은 소녀는 용기 있게 자립하여 삶을 일궈내는 자가 되어, 오래전 자신의 곁을 떠난 어머니를 기다린다. 습지는 그런 곳이다. 버려진 자신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고 키워준 곳이자, 가족들이 언젠가 다시 모일 지 모른다는 소망이 숨겨진 곳. 이렇듯 그 터전은 카야의 뿌리이자 인생이기에, 카야는 옮겨질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다르다. 국가 권력은 ‘젊은 여성’이 ‘습지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마을 사람들은 듣기 거북한 소문을 퍼뜨린다. 심지어 습지를 말려 호텔을 지으려 한다는 자본주의가 밀어닥치기도 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지와 여성은 단죄의 대상이며 질서를 통해 교화가 필요한 대상, 즉 정복이 필요한 대상이기에.
카야는 이렇게 말한다. 갑각류의 껍질 안에는 생명이 있다는 걸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잊고 있다고. 카야는 습지를 자신의 입맛에 있게 변형시키려는 문명의 시도에 분노할 때 특별한 까닭을 읊지 않는다. 개발하지 않는 것이 사회에 더 도움이 되리라는 협상을 하지도 않으며, 생태계의 교란을 심각하게 걱정하며 성명을 내지도 않는다. 카야의 분노는 순수하다. 자신의 삶을 파괴하려는 시도 자체에 분개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자연과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 주는 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것도,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그저 우리가 그동안 분명한 목소리를 지녔던 자연과 여성을 얼마나 도외시했던지를 통렬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이에 따라 영화에서 아쉬운 면모를 찾을 수도 있었는데, 습지 구석구석에서 삶과 생존의 처절한 흔적을 읽어낼 수 있을 카야에겐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을 공간을, 카메라는 철저히 서정적인 시각으로 공간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의 제목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카야의 엄마가 말해주었다는 그 장소는 대체 어디일까. 카야의 손위오빠였던 제레미 "조디" 클라크(로건 맥레이) 또한 힘들면 그곳으로 달려 나가라고 말했던 그곳은. 영화를 보다 보면 사실, 그 제목이 맥거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야는 자신이 힘들 때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장소를 점차 넓혀가지 않았나. 심지어 작가가 되어 카야는 누군가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될 수 있는 책을 출판하기까지 했다. 아빠의 눈에 띄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던 소녀의 성장은, 그를 끊임없이 체제에 맞추고자 폭력을 휘둘렀던 외부에 저항하고 자신만의 삶을 갈고닦아온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로 눈부시기만 하다.
★★★☆
참고문헌
김완구. "특집 논문 : 생태위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 ; 야생지(wilderness) 철학과 생태학: 그 한계와 의미." 환경철학 0.14 (2012): 61-92.
김태철.“습지의 중심은 바닥이 없다” : 모더니티와 문학적 습지 인식.외국문학연구(2007):119-146.
전연희. "여성연극에서 전통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 한국연극학 15.1 (2000): 315-345. 캐롤 처칠의 <습지>(Fen)를 중심으로, Caryl Churchill's <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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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공감으로 만들어낸마블 영화
인생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아주 형편없는 생활을 하던 사람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생각을 다시 잡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려 노력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전체 인생에서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이다. 그 기쁜 순간을 지나고 화학물질이 만드는 인체의 사랑 호르몬 분비가 끝나는 시기가 되면 열정적인 사랑도 시들어간다.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뛰어든 두 사람의 삶은 이미 꽤 많은 변화를 이룬 후일 것이다. 정말 상대방을 위하는 존재를 만났다면 두 사람은 자신의 바뀐 삶에 적응하며 열정적인 사랑 대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자신의 동반자의 손을 잡고 같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두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가족을 통해 그들의 삶의 에너지를 그다음 세대로 서서히 내린다. 그렇게 아주 완벽한 모습의 가족이라고 해도 그 안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 불만이 쌓여 다투기도 하고, 서로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부가 된 두 사람 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로 인한 그늘은 다른 어떤 상황에서보다 어두울 것이다. 남은 사람은 그 자신이 운명을 다할 때까지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또 남은 가족들을 챙겨갈 것이다. 두 사람이 만들었던 그 가족이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지 아니면 깨져버릴지는 순전히 남은 가족들의 몫으로 남는다.
한 가족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마블 영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히어로 영화지만 한 부부의 사랑이야기에서 파생된 이야기다. 웬우(양조위)는 수세기 동안 텐 링즈를 이끌며 세상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열 개의 팔찌를 낀 그는 팔찌의 힘으로 다양한 조직과 싸우면서 자신의 조직인 텐 링즈를 운영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어두움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탈로라는 신비한 세계의 힘을 빼앗기 위해 그곳에 갔다가 입구에 지키고 있던 여인 리(진법랍)을 만난다. 팔찌의 힘을 이용해 싸우는 웬우를 막기 위해 맞서 싸우는 리는 아주 부드럽고 우아하게 웬우를 막아선다. 그 둘은 한동안 매일 서로 만나며 대결을 벌이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
웬우와 리는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들의 기존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웬우는 팔찌를 빼고 악행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 리는 탈로에서 나와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아들 샹치(시무 리우)와 딸 샤링(장멍)을 낳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듯했지만 아내 리의 죽음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들이 만들었던 사랑은 아주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만들어냈지만 한 순간에 큰 그늘이 지고 말았다. 영화는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가족 가운데 아들 샹치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쩌면 마블 영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사랑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 샹치의 가족 이야기가 기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일이 발생한 것은 웬우가 가진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때문이다. 그는 영화의 가장 강력한 빌런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가 가진 감정을 완전히 공감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그가 행하는 악행은 결국에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웬우는 영화의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에 그의 표정은 우리가 흔히 보던 악당의 모습이 아닌 우울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가 행하는 악행의 이유가 드러나는 후반부가 되면 관객은 더욱 그의 감정에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 상치보다 공감 가는 캐릭터 웬우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샹치다. 영화 초반은 샹치가 미국에서 일을 하며 혼자 생활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이티(아콰피나)와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그는 아버지 웬우가 보낸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예전 삶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어 나간다. 동생 샤링과 다시 만나고 결국에는 웬우와 다시 재회하게 되는데, 다시 만난 아버지 웬우와 같이 앉은 샹치와 샤링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영화는 한 가정의 그늘이 만들어진 이후, 각자가 짊어지고 있던 그늘이 그들을 어떤 식으로 변하게 했는지를 재회한 그날 이 가족의 식사 장면으로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웬우는 자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가며 좋지 않은 선택을 하지만 자신의 자녀인 샹치와 샤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웬우가 샹치와 샤링을 볼 때 나타나는 단호한 눈빛에는 따뜻한 연민이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웬우가 샹치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애증일 것이다. 아내의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었던 아들에 대한 원망과 그래도 사랑했던 아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웬우의 감정은 배우 양조위의 눈빛과 몸짓으로 훌륭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적어도 샹치 캐릭터의 첫 영화인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샹치가 아닌 웬우가 진정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격투 액션 장면은 마치 중국 무협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빠른 속도감과 타격감을 통해 중국 무협 영화들에서만 보던 화려한 격투 액션을 마블 세계관 안에 훌륭하게 가지고 왔다. 때론 빠르게, 때론 부드러운 액션 장면으로 강약 조절을 해나가던 영화는 후반부에는 마블 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CG 액션과 화려한 무기들을 등장시켜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액션 장면들은 그동안 마블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종류의 무협 액션이 다채롭게 담겨있다는 것이다.
샹치가 활용하는 무술은 강력한 동작으로 강하게 타격하는 형태다. 이는 아버지인 웬우와 텐 링즈의 고수들에게 배운 스타일이다. 반면에 어머니인 리와 탈로를 지키는 사람들이 쓰는 무술은 부드럽게 상대의 힘을 이용해 반격을 가하는 스타일이다. 완전히 상반되는 격투 스타일은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웬우와 리가 만나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서로 완전히 상반된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상대방의 스타일에 끌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상반된 스타일의 두 사람이 만나 어찌 보면 완벽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샹치도 아버지의 격투 스타일로 시작했지만 탈로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무술을 배우면서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의 스타일을 모두 받아들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통 무협 스타일과 마블 히어로 액션 스타일의 성공적인 조화
마블은 새로운 페이즈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에서는 러시아 국적이나 배경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또한 많은 대사를 실제 중국어로 구사하게 하여 더욱 해당 문화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아마도 향후 개봉하게 되는 마블 영화들에는 더욱 다양한 국적의 히어로나 인물들이 포함되고 해당 문화권의 특징들도 영화에 담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블 영화에서 한국어가 들리거나 그 외의 나라 언어들이 높은 비중으로 포함된다면 마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샹치가 처음 소개되는 영화다. 그래서 샹치의 캐릭터의 특성과 격투 스타일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에 대해 알려주고자 구상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샹치가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지만 이번 영화는 샹치의 윗 세대의 이야기가 끝맺어진다. 샹치의 아버지 웬우와 어머니 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죽음으로 그 사랑이 끝나는 순간까지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샹치 캐릭터의 모험은 그가 등장할 다음 마블 영화부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대사가 중국어로 이루어지지만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이 금지되어있는 상황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개봉을 하지 못하는 이 영화는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극장 개봉에 들어갔으며 꽤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마블 영화를 보여준 마블 스튜디오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새로운 페이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11월에는 <이터널스>, 12월에는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 시리즈의 이야기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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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주 최신 개봉영화(베놈2, 졸트, 실: 인연의시작, 십개월의 미래, 푸른호수)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0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베놈2 #졸트 #실 인연의 시작 #십개월의미래 #푸른호수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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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림 스캐너> 메인 예고편
경계를 넘는 순간,
악몽은 현실이 된다!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세라'
숙면에 대한 희망으로 대학 수면 임상시험에 참여하지만,
악몽 속 검은 그림자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힌다.
숙면을 미끼로 비밀리에 자신의 꿈을 스캔한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녀 역시 꿈속 그림자를 밝혀내기 위해 실험은 계속된다.
꿈속 검은 그림자의 실체에 다가가게 되자
그림자는 꿈이 아닌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과연 꿈속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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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령> 1차 예고편
항일조직 스파이 '유령'에게 고함, 2023년 1월 18일 개봉 확정! 작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