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04 15:34:56
2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우리의 봉준호가 돌아왔다! <미키 17> 박스오피스 1위 등극

바로 어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가운데,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미키 17>은 개봉 첫 3일간 약 98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3월 3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케 했습니다.
개봉 전 진행된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향연과 미키와 미키와의 관계를 <미키 17>의 감상 포인트로 꼽았는데요.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제 바람은 제가 이 작품에서 느낀 걸 관객도 느끼는 거예요. 이 정도로 독특한 작품은 솔직히 정말 드물거든요. 이 작품은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영화예요."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누적 수익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2위는 우디 해럴슨, 시무 리우, 핀 콜이 출연하는 <라스트 브레스>가 차지했습니다.
<라스트 브레스>는 숙련된 심해 잠수부들이 맹렬한 자연의 힘과 싸우며 수백 피트 아래 바닷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려 하는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호러 영화 <더 몽키>는 한 계단 내려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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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을 이곳저곳 옮겨가 많은 따뜻한 마음을 퍼트리는 벌처럼
반복되는 일상과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에블린은 여러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전 늙었다기엔 너무 젊고 젊다기엔 너무 늙었어요.” 어떤 사회의 배경으로 인한 것도 있겠지만 주변의 상황만큼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에블린에게 우연히 다가온 니나라는 할머니는 60년도 더 된 이야기를 통해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함을 전해준다.
물에 빠진 자동차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는 미국 남부의 휘슬 스톱 마을의 잇지를 보여주고 사회에서 규정하는 여자아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인 잇지. 그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사회의 기준에서 더 벌어진 방황을 멈추지 못한다. 이런 잇지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루스는 오빠의 옛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잇지를 만나게 되고 잇지가 어려울 때는 루스가, 루스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잇지가 다가가며 함께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현재에 변화를 이끌 힘을 쥐어주고 배려라는 말에 묶인 침묵을 스스로 풀 수 있게 된 에블린은 계속해서 니니를 따라간다. 마침내 니니가 잇지에 겹쳐지며 <휘슬 스탑 카페>가 나타난다. 사회 억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지는 못했지만 잇지와 루스가 서로의 얼굴에 음식을 문지르며 웃음 짓던 그때와 그 공간이 그때를 간직하고 있었다. 타인의 편견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면서도 그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차별받고 처벌받던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나아갔다.
왓챠에 보고 싶어요 라는 목록이 있다. 그 목록에는 볼 수 없는 작품들도 있고 이미 OTT에 공개된 작품들이 있다. 그중,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담아 놓은지 꽤 오래되었는데 담은 지 반년만에 눌러보게 되었다. 왜 진작에 누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작년보다 영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조금 나은 지금 보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성별, 인종, 장애에 관한 이야기에 그저 흥행을 좇는 영화들을 많이 보아 어떤 소재에 대한 진부함이 들었었는데, 이런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 듯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고 웃음 나고 따뜻하고 또 통쾌한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에블린이 니니를 따라가듯 나도 그들을 따라가며 듣는 기분이 드는 이 영화는 목적을 위한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을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두 사람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관계성을 다루고 있어 더더욱 따뜻하게 느껴져서 의미가 있었다. 토완다!라는 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용기를 나눠주는 힘이 되고 익숙하지 않은 토마토 튀김에 익숙한 꿀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그렇게 잇지와 루스를 연결하고 니니와 에블린을 연결한다.
“너를 언제나 사랑해, 꿀벌의 연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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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에요.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에게 전율을 느끼기는 몇 배로 어렵다. 말과 글은 다르기 때문에 그 갭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첫 장면부터 슬로운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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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렇게 짜릿한 영화는 처음이다. 그냥 전부 다 짜릿했다.
스릴러보다 스릴넘치고 액션보다 짜릿하며 수사극보다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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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선언을 할 때도, 위기에 처하고 선을 넘고 팀원들과 분열이 일어나고 궁지에 몰릴 때조차 나는 시종일관 '슬로운이니까!' 하며 조마조마하긴 커녕 절대적으로 그를 신봉하고있었다. (장담컨데 내가 보아왔던 작 중 그 어떠한 인물보다 슬로운에 대한 신뢰만큼은 절대적으로 높았을 거다. 아마 저기에 내가 있었더라면 뭐가 됐던 미스 슬로운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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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동안 슬로운은 내게 절대적인 리더였고 정신적 지주였다. 중간에 정말 '지진'이 일어 쓰나미가 덮쳤다 해도 나는 별 걱정없이 편안하게 슬로운의 행보를 관람했으리라.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대사 중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라는 슬로운의 대사가 있다.
이 대사가 영화 '미스 슬로운'의 구심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로비의 핵심이 통찰력이라면,
제시카 차스테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다.
사실 영화를 구성하고 작품성을 이끌어내는 요소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작용하는 방법이 무수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연기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가장 잘 보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영화를 가장 몰입해서 보았을 때인 것 같다.
그 몰입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물들의 연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몰입을 넘어 이입하게되면 사실상 이외의 요소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200% 수행해주는 배우. 덕분에 캐릭터만큼은 정말 인상깊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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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VENGERS:DOOMSDAY 캐스트 공개
감독: 앤서니 루소, 조 루소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개봉일: 2026년 5월 1일(북미 예정)
새로운 어벤져스, 초호화 캐스팅
지난 3월 26일 마블이 5번째 어벤져스 영화, <어벤져스:둠스데이>의 캐스트를 공개했습니다. 출연 배우들의 이름이 적힌 의자가 차례로 등장할 때마다 팬들의 마음도 함께 졸여졌는데요. 도합 약 2억 7500만 조회수와 SNS 내 3백 만 언급이 발생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습니다. ‘영원한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둠 박사 역으로 돌아오며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상황에서, 히어로물 덕후의 마음을 120% 사로잡는 캐스팅이 견인한 것이죠. 말 그대로 초.호.화 캐스팅입니다. 한 번 보시죠.
아는 얼굴부터 뉴페이스까지
기존 멤버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앤서니 마키’, 앤트맨 ‘폴 러드’는 이번에도 함께 합니다. 윈터 솔져 ‘세바스찬 스탠’과 슈리 ‘레티티아 라이트’도요. 블랙 위도우는 초대 스칼렛 요한스를 이어 ‘플로렌스 퓨’가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엑스맨>과 <판타스틱 4>도 어벤져스에 합류합니다. 프로펙서 X를 연기한 ‘패트릭 스튜어트’와 매그니토 역의 ‘이안 맥캘런’이 등장하네요. 미스터 판타스틱 ‘페드로 파스칼’과 수 스톰 ‘바네사 커비’의 이름도 반갑습니다. 로키 ‘톰 히들스턴’과 닥터 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까지 도합 26명의 캐스트가 이름을 올렸네요.
새로운 판, 새로운 출발
전 세계가 그랬지만, 특히나 한국의 마블 사랑은 아주 놀라웠죠. 그렇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마블은 꾸준히 주춤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축을 이끌었던 핵심 주인공들이 사라진 것이 인기가 사그라든 것에 한 몫했지요. 장장 10여년 간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하며 쌓아올린 서사가 완벽하게 정리되면서 시리즈 자체가 마무리된 느낌이 강했습니다.
마블은 엑스맨과 판타스틱 4를 끌어들이며 새롭게 판을 짜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히어로 로다주가 빌런으로서 어떤 반전을 선사할 것인지와 신구 배우들의 조화가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리지널 배우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흥행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세계관을 부지런히 따라간다면 ‘그래도.. 마블!’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죠. 전성기를 그리는 향수에서 벗어나 독창적으로 빛나는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어봅니다.
사진:Marvel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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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급 영화의 꽃말: ‘누구나’의 영화, <인천스텔라>를 기점으로
C급 영화의 꽃말: ‘누구나’의 영화, <인천스텔라>를 기점으로
당장 오늘 저녁에도 우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심지어 그 방법이 매우 간단하다. 베란다에 방치된 냉장고 택배 박스가 바로 우주선이다. 박스를 접은 뒤, 네모나게 길쭉한 구멍을 옆면에 뚫고 그 안에 탑승하면 우주로 갈 준비는 모두 마쳤다. 만일 냉장고 박스가 없다면 대안책은 어디에나 있다.
“네? 이게 우주선이라고요? 이건 그냥 자동차잖아요.”
극 중 탐사대원이 국장에게 던지는 말이다. 어떻게 우주에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어. 어떻게 우주에 택배 박스를 타고 갈 수가 있어. 영화 〈인천스텔라>는 이 ‘어떻게’라는 물음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해답을 제시한다. 별다른 우주복이나 우주 함선, 산소 탱크도 필요없다. 1980년대를 호령하던 ‘스텔라’ 모델의 중고차 한 대만 있다면, 인천의 모 고등학교 운동장을 활주로 삼아 언제든 우주로 출발할 수 있다.
적극적인 패러디: C급 영화의 탄생
<인천스텔라>는 말 그대로 인천의 ‘스텔라’(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SF 장르의 독립영화다. 인천이 배경인 이유는 인천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이유도 있지만, 인간(人)과 하늘(天)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기동’과 그의 딸 ‘규진’은 밤하늘의 밝은 별을 보며 세상을 떠난 그들의 가족을 추억한다. 그 별은 한 때 기동의 훌륭한 동료 우주 대원이자 아내였고, 규진의 엄마였던 ‘선호’다. 어느 날 규진은 선호가 가지고 있던 프로젝트 파일을 우연히 발견하고, 엄마가 끝내 알아내지 못한 외계 신호를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독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규진의 해독을 기반으로 좌표를 알아낸 기동은 탐사팀과 함께 우주선 ‘인천스텔라'를 타고 우주로 향한다. 그리운 아내와 엄마를 생각하며, 기동과 규진은 우주와 지구에서 각자 고군분투한다.
제목과 줄거리를 들었을 때 <인터스텔라>가 떠오른다면 그것은 지극히 감독의 의도에 부응하는 바다. 주인공의 딸 머피처럼 규진이 암호 해독에 성공하게 도와주는 인물은 미래 시간대 우주에서 온 기동이다. 우주에서 조난당한 아빠가 블랙홀에 빠져들어 미지의 공간에 도착하고, 책장 너머로 딸에게 소리치며 들리지 않는 소통에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동일하다. 다만, 전자가 광활하고도 장엄한 우주와 압도되는 스케일의 책장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정확히 그 반대다. 평범한 가정집의 적당히 낡아 친숙한 책장을 두드리는 모습과 투박한 블랙홀의 CG 효과가 돋보인다. 쉽게 책장을 보지 않는 딸 규진을 향해 “책 좀 읽어. 책 좀 봐.”라고 외치며 웃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백승기 감독은 <인천스텔라>를 메이저 우주영화 <인터스텔라>의 ‘자매품 영화'라 소개하고, B급을 넘어 아예 제대로 된 ‘C급' 영화임을 당당하게 표명한다. 제한된 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독립영화의 현실에 기반하여 어설프게 따라할 바에야 ‘제대로 못 만든 영화’를 만들자는 파격적인 선언이다. 이렇게 백승기 감독만의 장르, B급을 넘어선 C급 영화가 탄생했다.
그의 첫 작품은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을 패러디한 <망치손>이다. 집에 망치가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했다. 지하철역에서 촬영한 <은하전철 999>와 300명의 인원을 모으지 못해 3명으로 대폭 축소한 <3>, 가내 수공업 3D 안경으로 구현한 <아바타>까지. 모방이라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원본에 비해 현저히 낮은 퀄리티와 강화된 유머로 승부하는 그만의 패러디 전략은 일상의 상상력을 내세운다. 백승기 감독이 주축인 영화 제작사 ‘꾸러기’는 C급 전문 영화사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항상 ‘C’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소개하는 C급 영화란 카메라(Camera)로 코믹(Comic)하게 찍어서 컴퓨터(Computer)로 편집해 영화관(Cinema)에 내건 창의성의 산물(Creative)이다. 즉, C급 영화야말로 완전한 영화의 본질을 관통한다고 역설한다. 백 감독의 영화는 단순히 원작의 ‘하위호환 모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의도된 패러디를 통해 새로운 주제와 형식을 전달한다.
‘인천스텔라’만의 기발한 우주를 완성하다
영화 <인천스텔라>는 현실에 기반한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 우주를 표현한다. 우주에서 온 신호를 해독하기 위해 고작 카세트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른 뒤 헤드셋을 낀다거나, 우주로 가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주차된 빨간 중고차 ‘인천스텔라’에 탑승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우주로 향하는 그들이 입은 유니폼은 우주복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실제 우주복은 모두가 알다시피 외부의 열을 차단하는 헬멧, 통신 헤드셋과 이어폰, 생명 유지장치 등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영화 속 그들은 은박 유니폼을 입은 뒤 오토바이 헬멧을 머리에 쓰고, 방한 장갑과 하얀 장화를 낀 채로 너무나도 태연하게 자동차에 올라탄다. 쿠킹 호일을 두른 것처럼 번쩍거리기만 하는 우주복을 착용하고 유유히 우주를 유영하기까지 한다. 다소 어설픈 행색에도 대원들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다. 웃음을 터뜨리는 게 괜히 미안할 만큼.
탐사팀에게 항로를 안내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나 멋있는 AI 음성도 없다. 우주복을 입은 곰돌이 그림으로 덧칠한 블루투스 스피커만 덜렁 놓여 있을 뿐이다. ‘LG U+ 클로버 스피커’를 대신하는 ‘세잎클로버’다. 중력을 계산할 때는 공학용도 아닌 가정용 계산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집에 굴러다니던 계산기와 무선 이어폰만 있다면, 영화 속 장면을 완벽한 싱크로율로 재현할 수 있다.
SF+독립영화+C급= ?
흔한 SF 장르의 우주 영화를 생각하고 이 영화를 감상했다면 의문이 들 수 있다. 광활한 우주를 수놓는 웅장한 풍경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계기판과 수식도,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근사한 우주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의 직장은 NASA가 아닌, ASA(아시아항공우주국)이다. 우주 신호를 감지하는 헤드셋과 카세트 플레이어, 블랙홀 시공간을 통제하는 블루투스 스피커, 나아가 새로운 행성 ‘STAR GAM(갬성)’의 토양을 검사하는 홈-매트 훈증기까지.
다른 장르도 아니고, 무려 우주 SF 영화를 집에서 당장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었다니. 상당히 파격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다. 3,700배 차이가 나는 제작비로 만든 영화는 저예산 인터스텔라를 넘어, 홈 메이드 인터스텔라에 가깝다. ‘이런 것도 영화라고', ‘이 정도는 나도 만들겠다'는 식의 관객의 반응이 예상되지만 백승기 감독은 오히려 이런 반응을 처음부터 바랐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이게 영화라면 나도 만들겠다'던 댓글에 “제발 같이 만들자"고 답했다. C급 영화는 누구나 감독이 될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무대다.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도 가장 높은 예산과 스케일을 자랑하는 우주 영화를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만들어보겠다는 발상은 상당히 위험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C급 영화의 꽃말: ‘누구나’의 영화
본래 패러디와 모방은 고급 예술을 따라한 저속하고 값싼 대중예술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고급과 저급, 진짜와 가짜는 이제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저속한 대중예술이라 불리던 ‘키치’ 또한 새로운 스타일로써 우리 삶에 빠른 속도로 스며들었다. 과연 B급 감성과 그것을 넘어선 C급 영화는 ‘진짜 예술’을 밀어내는 저급하고 촌스러운 유행일 뿐일까. 더군다나 거대 자본과 투자력을 갖춘 할리우드의 것임이 분명했던 SF 장르를 구현했다면.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시도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과감한 도전이다. 이 영화를 단순히 모방 작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그들이 그리는 하찮은 우주에서 우리의 일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스 하나만 있다면 우주로 갈 수 있으며 언제든 우주에 가 닿을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우리는 특별하다. 영화의 주제는 그 모습만큼이나 간단하다.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초신성(super nova)은 영화의 영제목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마치 태아의 모양을 본뜬 듯한 별의 폭발은 죽음의 상태를 일컫는 초신성의 뜻과는 달리,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탄생과 소멸을 모두 겪을 수 있는 별은 각자의 인생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많은 자본이 투자되거나 화려한 CG와 소품은 없지만 오히려 부족하기 때문에, 우주의 빈 공간을 개개인 모두로 채울 수 있다며 역설한다. 때로는 촌스럽고 유치하고, 어설퍼 조잡해 보이는 장면에서 마침내 우리를 발견해내기까지의 과정은 즐겁다.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면 이곳은 이미 항공우주국의 한 가운데, 우주비행선의 발사대다. 아직 버리지 않은 택배 박스는 이제 우주비행선의 단단한 몸체가 되고, 어릴 적 읽던 전집이 꽂힌 투박한 책장은 다른 머나먼 우주 공간에 있는 가족이 애타게 나를 부르는 차원의 문이 된다. 시공간을 접어 차원의 지름길을 만드는 <인터스텔라>처럼, 인(人)과 천(天)이 단숨에 맞닿는 순간을 부족함 없이 표현한다. 인류를 구해야 하는 거대 자본 SF영화의 사념은 가족을 구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으로 바뀌지만, 영화가 주는 진리와 울림은 불변한다.
영화 <인천스텔라>에서는 사람이 모두 위대하고 아름다운 별이 된다. 거대 자본과 화려한 CG, 정교한 소품의 부재가 남긴 빈 자리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유머가 채운다. 이 C급 세계관에서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로 특별한 항성이다. 분명 <인천스텔라>는 어딘가 이상하고 빈틈이 많으며 개연성이 부족한 영화다. 마치 내가 사는 평범하고 서툰 삶처럼. 그래서 따뜻하고, 그래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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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영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그저 그 시간에 집중한다. 특별히 몇몇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은 그들이 놀고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때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친구와 다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기억을 쌓아나간다. 그래서 모두에게 유년기 시절의 좋은 추억들이 하나쯤은 있다. 그 시간 그 모든 것을 함께한 어른들은 그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기록한다. 언제든지 꺼내어 보고 그 당시를 추억하면서 자신의 깊숙이 담아두었던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유년기를 벗어나는 시기는 결국 찾아오며 누구도 예외는 없다.
청소년기가 되고 어른이 되면 몸에 커지고 아는 것도 조금은 더 많아진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만이 가고 싶은 방식으로 삶을 그리고 나아간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모험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면 결국 집 밖의 시간을 늘리게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일 때 가지고 있던 동심과 순수함, 천진함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동심은 아직 어른이 되어 커진 마음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 누군가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나이가 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렇게 나이 듦을 경험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유년기 시절의 동심을 가지고 있다.
피터팬을 웬디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영화 <웬디>
영화 <웬디>는 동심과 나이 듦에 대한 영화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터팬을 재해석하여 웬디(데빈 프랑스)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장르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웬디는 기찻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집에서 엄마와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웬디는 옆에 앉아 같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식당에 주변에서 놀거나 간단한 식당 일을 돕는다.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 집의 아이들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재미없는 일상이 아닌 뭔가 색다른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영화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주로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담는다. 마치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처럼 관객들도 집 밖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초반 세 아이가 잠들기 전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어릴 적 꿈에 대한 것인데, 웬디는 왜 지금은 그 꿈을 이룰 수 없는지를 묻는다. 이에 엄마는 지금 하는 일과 상황에 만족하니까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그 뒤에 바로 이어진다. 엄마가 나가고 웬디는 왜 엄마가 꿈을 실행하려 하지 않는지 혼잣말로 궁금해하는데,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엄마는 늙었으니까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에 웬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 일련의 장면은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바로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피터팬과 원더랜드의 아이들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영화 <웬디> 안에서도 우연히 기차에 탄 피터(야슈아 맥)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웬디와 더글라스, 제임스는 늙지 않는 섬에 도착하고 거기서 꽤 오래 머무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다. 이들 역시 나이가 들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놀이를 하며 계속 아이로 생활하고 있다. 처음 그곳에 간 웬디는 처음엔 어색해하지만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와 재미를 경험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들과 동화된다.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 그들에게 에너지가 되어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쁨 안에 있는 섬의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 그 자체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아이와 노인
그 섬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들도 있다. 섬의 노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린 이들이다. 영화 속 노인 중 한 명인 버죠(로웰 랜디스)는 몰래 친구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훔쳐보곤 한다. 아이들은 보통 도망가며 그가 버조가 아니라고 외친다. 버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일종의 늙음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버조가 과거 자신들과 같이 아이의 모습이었던 또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나이 든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이유로 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쫒아내 버린다. 그렇게 노인으로 변한 이들은 노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분리되어 생활하게 된다.
사실 보조를 비롯한 노인들은 친한 친구를 잃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 늙은 모습으로 변했다. 아픔을 경험하고 나서 철이 들고 조금 성장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그런 아픔과 번뇌를 겪고 나서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들처럼 사춘기의 변화를 겪고 또 가족과 학교에서 다양한 일을 겪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처 받고 슬픈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일을 경험하다 보면 어느덧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금방 노인이 되어 버리지만 아이와 노인 사이에 어른이라는 시기가 존재한다. 영화는 그 모습을 생략하고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키면서 과연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노인들은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것이 동력이 되어 피터의 일행과 노인 일행이 대립하게 되기도 한다. 기존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팬에서 피터팬과 후크가 대결하는 것처럼 노인들은 젊음을 얻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들이고, 피터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둘의 대결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노인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과 대립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노인들은 조금씩 사람이나 사회에서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말 주변이 없어지고 조용히 무언가를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노인들은 아이들에 비해 말이 없다.
웬디가 제안하는 노인을 바라보는 태도
웬디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노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인물이다. 노인으로 변한 아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들에게 같이 대화하고 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춤을 추며 그들과 어울린다. 어두운 표정만을 짓고 있던 노인들이 웬디 주변에 하나둘씩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았던 미소가 가득하다. 사실 노인들이 아이였을 때 노는 방법이나 느낌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저 늙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든 것뿐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어울릴 것을 제안한다.
젊음이라는 것은 한번 잃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언젠가 늙어간다.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찾아온다. 영화 후반부 누군가가 늙어서 못한다고 이야기할 때, 웬디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영화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이 듦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웬디도 엄마가 되고 자신의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지만 그 나이 든 육체가 가진 마음만큼은 육체만큼 나이가 들지 않는다. 노인들도 나름의 동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만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영화 <웬디>를 연출한 데뷔작 <비스트>(2012)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신인 감독이다. 그는 두 번째 연출작인 <웬디>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고, 피터팬 원작이 담고 있는 내용에서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끌어내어 영상화했다. 극적인 요소가 다소 떨어지고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영화가 조금은 심심하고 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을 관객에게 명확히 던지는 영화다.*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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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리뷰>
https://youtu.be/Rsehc6qDP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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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걸음 뒤, 한걸음 앞에서 기록한 분열의 시대
시빌 워: 분열의 시대 (Civil War, 2024)
한걸음 뒤, 한걸음 앞에서 기록한 분열의 시대
개봉일 : 2024.12.31.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액션, 전쟁, 드라마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알렉스 가랜드
출연 :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와그너 모라, 스티븐 헨더슨, 제시 플레먼스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믿고 보는 제작사 A24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모종의 이유로 두 갈래로 나뉜 세상’이 주는 공포와 긴장감을 동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거대한 동력을 선택한 것치고는 움직임이 다소 방어적이다.
이 영화는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배경과 몇 개의 시선을 제시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최종에 이르러 애매한 감상을 남기게 만드는데, 이 싸움에 있어 확실한 선을 원한 관객에게는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영화 예고편과 시놉시스를 보고 거대한 전쟁 블록버스터 또는 정확한 저격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조금 더 고민해 보길 권하고 싶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흔히 생각하는 전쟁 블록버스터가 아닌 전쟁 한가운데 서있는 한 기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묵한 드라마에 가까우니 말이다.
극 중 미국은 최악의 내전을 겪고 있다. 이 혼란한 정세 속에서 종군 기자인 리, 조엘, 새미. 그리고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청년 제시는 아수라장이 된 도시를 누비며 끔찍한 순간들을 생생히 담아낸다. 이들은 정부와 반대 세력 사이 힘의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마지막 특종 기회를 잡기 위해 대통령이 숨어있는 워싱턴에 가기로 결정한다.
기자들은 총을 든 군인과 반대 세력들 사이에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이 카메라 한 대만을 들고 달려든다. 이들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바로 옆에 두고서도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카메라의 뷰 파인더만을 쳐다본다. 빗발치는 총성 사이에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섞여들리고, 각자의 무기를 든 군인과 기자들의 비슷한 실루엣이 보인다.
리와 기자들은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던 전투에 이어 원치 않은 사건에도 휘말리며 몇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비현실과 현실이 뒤섞인 상황과 오래 외면해왔던 공포들을 흠뻑 체감한다.
무엇을 위한 분열인가
워싱턴으로 향하던 네 사람은 한 테마파크 입구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군인 시체를 발견한다. 이상함을 느끼고 차를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총알이 빗발치고 새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려 바닥에 엎드린 군인 옆에 자리를 잡는다. 조엘은 군인에게 묻는다. 저 안에 누가 있냐고, 지휘관은 누구냐고. 군인은 답한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지휘관은 없고 그저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해서 쏘는 것이라고.
군인의 대답은 현재 내전 상황을 한 번에 설명한다. 이들은 누구와 왜 싸우는지 모른다. 그저 살기 위해 총을 쏠 뿐이다. 기자들도 군인들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내전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처럼 보이지만 나중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정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무엇을 찍고 그 사진 아래 어떤 말을 적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두 무리의 Shooting(총격, 촬영)이 가진 의미는 점점 흐릿해지고 이들은 더 이상 이 전쟁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 또한 이들에게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걸 흐리게 만드는 피
피와 뷰 파인더에 가려진 제시의 시선
공포와 피는 뚜렷했던 것을 점점 흐려지게 만든다. 특히 처음으로 전쟁을 가까이서 겪은 된 제시가 이에 크게 반응하고 변화한다. 주유소에서 처음 고문 당한 사람을 봤던 날, 제시는 밤이 되었음에도 요동치는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하지만 피 흘리는 사람을 다시 눈으로 보고 카메라로 담고 또 거대한 시체 구덩이에 떨어져 본 후 도착한 워싱턴에서 제시는 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탱크에 따라붙으며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리가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사진 현상액에도 자신의 체온을 담던 따뜻한 소녀는 어디로 가고 백악관 복도엔 징그럽다 싶을 만큼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 제시가 남는다. 제시의 눈에 가득 맺혔던 누군가의 피는 결국 그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그의 눈앞을 가로막은 뷰 파인더는 소중한 이(리)의 죽음마저 가려버린다.
뷰 파인더를 벗어난 리의 시선
제시는 주유소 사건을 겪고 리에게 묻는다. 저는 왜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제시는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리는 제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린 묻지 않고 기록하지. 다른 사람이 묻도록.”
리는 오랜 시간 모든 물음을 지운 채 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 덕에 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냉혈한에 가까운 종군기자로 여러 전쟁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제시와 그가 던진 질문이 리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새미는 주유소에서 충격을 받고 공포에 떨던 제시의 모습과 어린 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은 리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제시의 모습을 관찰한다.
주유소 사건 다음날. 리, 조엘, 제시는 시내에서 벌어진 소규모 격전에 참여한다. 제시는 어제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죽어가는 이를 찍는다. 이때 리는 셔터를 누르는 걸 멈추고 사진을 찍는 제시를 가까이서 바라본다. 그때부터 리는 제시를 통해 자신을 본다. 피에 벌벌 떨던 어린 소녀였던 자신과 뷰 파인더 뒤에 숨어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찍는 종군기자인 자신을.
리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동료 새미와 토니의 죽음은 왜 이들이 죽어야만 하는지 이 전쟁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리의 마음은 무너지고,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쯤 그의 종군 기자로서의 자아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리는 커다란 탱크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몸을 웅크린다. 이제 뷰 파인더를 벗어난 리의 눈엔 누군가의 죽음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제시의 죽음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카메라 뷰 파인더 뒤에 가려진 제시의 눈엔 리의 죽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총 맞는 순간도 찍을 거예요?”라는 제시의 질문에 리는 온몸으로 답을 내놨지만 그걸 알아줄 소녀 제시는 이제 뷰 파인더 뒤로 사라졌다.
<시빌 워:분열의 시대>는 기자들의 눈과 뷰파인더를 통해 이 이상한 전쟁을 기록하며 은근하게 묻는다. “우리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뷰파인더 뒤, 아니면 앞?”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누가 무너져야 하고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니다. 영화가 은근슬쩍 던진 ‘이 커다란 분열 속에서도 놓쳐선 안 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분열과 죽음이 익숙해진 시대라 해도 우리는 뷰파인더 뒤에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승, 패와 잘잘못이라는 결과 밑에 쌓인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린 리처럼, 처음 여정을 시작했을 때의 제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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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 제목: 브레이킹 아이스
- 원제: The Breaking Ice
- 감독: 안소니 첸
- 출연: 주동우, 류호연, 굴초소
- 수입: 찬란
- 배급: (주)디스테이션
- 공동투자: 퍼스트맨스튜디오, 소지섭
- 개봉: 2025년 6월 3일
- 관람등급: 15세이상관람가
- 장르: 청춘 케미스트리
- 러닝타임: 100분
◉ SYNOPSIS 연길에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나나(주동우)는 휴대폰을 잃어 홀로 고립된 여행객 하오펑(류호연)을 샤오(굴초소)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한다. 다음 날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놓친 하오펑은 나나, 샤오와 함께 어울리기 시작하고 그들이 함께한 7일 동안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세 사람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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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30초 예고편
하루 동안 정기적인 보고를 하지 않으면 터지게 되는
폭탄을 가슴속에 지닌 채 기밀 정보를 알아내는 AN통신.
요원 ‘타카노(후지와라 타츠야)’와 ‘타오카(타케우치 료마)’는
대기업 CNOX와 태양광 에너지가 관련된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여기에 정체불명의 여인 ‘아야코(한효주)’와
일급 스파이인 ‘데이비드 킴(변요한)’까지 관련 정보를 노리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는데…
차세대 에너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