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1 17:02:53
4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라이언 쿠글러의 뱀파이어 시대극 <씨너스: 죄인들> 북미 1위 안착 성공

<블랙 팬서> 시리즈를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신작 <씨너스: 죄인들>이
2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마인크래프트 무비>를 밀어내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북미에서 4,560만 달러를 벌어들여, 당초 예상치였던 3,500만 달러를 훌쩍 넘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로튼토마토에서는 98%의 평점을, 메타크리틱에서는 2025년 개봉작 중 일곱 번째로 높은 점수인 84점을 기록하며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루 받고 있습니다.
<씨너스: 죄인들>은 1930년대 고향 남부로 돌아와 ‘주크 조인트’(음악 바)를 연 쌍둥이 형제 스모크(Smoke)와 스택(Stack)을 주인공으로,
어느 날 그들의 마을에 뱀파이어가 들이닥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며, 마이클 B. 조던이 두 형제를 모두 연기했습니다.

한편, 국내 박스오피스도 개봉 후, 3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승부> 대신할 새로운 왕좌의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마약 수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신작 <야당>이 그 주인공입니다. 누적 관객 수 78만 명을 돌파하며 단숨에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2위는 한 계단 내려갔지만,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앞두며 여전한 화력을 보여주고 있는 <승부>가 차지했고,
3위는 다시 순위권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애니메이션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에게 돌아갔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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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빈, 이솜, 강유석배우 넷플릭스 제작의 <택배기사> 캐스팅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영화계 안팎의 다양한 소식과 영화 개봉작들의 이벤트 소식과 굿즈 일정을 소개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이번 주 영화계 소식을 다 같이 알아보실까요?
1. 넷플릭스 제작 확정 <택배기사> 김우빈, 이솜, 강유석 출연
<택배기사>는 2018년 아시아필름마켓에서 E-IP피칭 어워드를 수상한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입니다.
현재 우리 일상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택배기사'라는 현실적인 존재를 모두의 생존을 책임지는 특별한 존재로 재탄생시킨
독특한 발상으로 주목받았다고 전해지는데요.
<택배기사>의 연출은 <마스터>를 연출했던 조의석 감독이 맡을 예정이며 <마스터>, <스물>, <기술자들>,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등
영화/드라마를 막론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 김우빈이전설의 택배기사 5-8을 맡았습니다.
<마스터>에서 연출자와 배우로 만났던 조의석 감독과 김우빈 배우가 다시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또 한번의 호흡이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오직 택배기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전설적 존재 ‘5-8’을 선망하는 난민 소년 사월은 배우 강유석으로 최종 캐스팅 확정이 됐으며,
사월의 생명의 은인이자 사월을 식구처럼 돌보는 군 정보사 소령 설아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소공녀>, 드라마 <모범택시> 등에 출연했던 이솜 배우가 맡았습니다.
전설적인 택배기사와 택배기사를 꿈꾸는 소년, 그리고 사월을 두고 ‘5-8’과 얽히는 군인 등 기존에 볼 수 었었던 소재와 캐릭터인만큼 기대됩니다.2. 1월 12일 <특송>,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하우스 오브 구찌> 개봉
1월 12일(수) 모처럼 극장가에는 볼만한 작품들이 대거 개봉했습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박소담 원톱주연의 카 체이싱, 오락 액션영화인 <특송>,
그리고 명품 브랜드 구찌의 일가를 다룬 작품 <하우스 오브 구찌>입니다. 과연 이번 주 박스오피스의 승자는 어느 작품이 될까요?
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이기도 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전체 예매율 1위를 탈환하며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최근 기분 좋은 소식도 덩달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최근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3관왕을 석권하며
202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다관왕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 또한 행보가 만만치 않습니다.
극 중 구찌를 사랑하고 청부살해 의뢰하여 죽인 여인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레이디 가가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레이디 가가는 전 세계 유수 시상식 17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여우주연상 등 4개의 수상을 확정해
다가올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3. 영화 <특송>은 성공률 100%의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가 예기치 못한 배송사고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그린 범죄 오락 액션 영화입니다.
박소담 배우의 원톱 주연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카 체이싱 장면과
송새벽, 김의성, 염혜란 등의 다채로운 배우들의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만큼 박스오피스가 순위가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3. <드라이브 마이 카> 누적 관객 수 3만 돌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독립·예술영화 부문에서 3주 연속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누적 관객 3만명을 이미 돌파했다고 하는데요!
일본 영화계의 새로운 거장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또한 전미비평가협회상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외국어영화상에서 이름을 바꾼 비영어 부문 작품상을 차지했습니다.
그야말로 연일 수상행보를 보이고 있는 엄청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과연 2022 오스카시상식에도 국제장편영화상 메인 후보에 올라 수상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4. 이번 주 (1월 12일~1월 15일) 영화계 이벤트 &굿즈 증정 일정
1월 12일(수)
1월 13일(목)
1월 14일(금)
1월 15일(토)
1월의 둘째 주 영화계 소식과 이벤트(굿즈) 소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소식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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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HD의 미학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포함한다는 것을, 친구들끼리 단편영화를 찍으면서야 실감했다. 한 장소, 한 가지의 소품, 한 명의 배우를 화면에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주말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평일에 회사에 가서 하는 일들, 그러니까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고 회의를 하고 영수증을 모으는 일을 수십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한 현장에서는 온갖 장비를 이고 지고 촬영 내용을 기록한다. 필요하다면 이것도 수십 번 반복한다. 그러면 비로소 어떠한 자국도 없이 매끈한 작품이 완성되는 멋진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스타 배우들과 일하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영화를 작업해온 미셸 공드리가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영화를 내놓았다.<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 감독인 주인공 ‘마크’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 직접 적어 내려가는, 말 그대로 해결책 목록이다. 그는 이제 막 촬영을 마친 영화의 제작을 거절당했다. 자신과 일하던 파트너마저 회사의 편을 들자 그는 제작과 편집 담당인 동료 둘과 필름을 전부 챙겨 시골의 고모 집으로 도망친다. 의욕을 잃은 그는 복용하던 약을 단숨에 끊는다. 그러자 그가 유년기를 보낸 동네에서 아이디어가 끝없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빈 공책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솔루션들을 적기 시작한다.
마크는 관객조차 진력나게 할 정도로 제멋대로이다.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게는 분노하고, 회사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 직원과는 어떻게든 잘 되고 싶어 하며, 영화 음악을 작업하면서 동시에 다음 작품도 찍고 싶어 한다. 완성 전에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면서도 편집에 관여해야 하는 고집도 부린다. 이 와중에 동네 대표도 하고 싶고, 고모의 질병을 돌보고 생일 파티도 열고 싶어 한다. 생각과 계획은 너무 많고 그것을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 상황을 공드리는 마치 ADHD를 앓는 사람들의 행동처럼 연출했다. 예컨대 마크는 옛날 물건들 중 솔루션 북을 발견하고, 거기에 쓸 테이프를 찾으러 다른 방에 들어 갔다가 솔루션 북은 까맣게 잊고는 종이를 오려 스톱 모션 장면을 찍기 시작한다. ‘증상’에 가까운 이 행동은 미셸 공드리 특유의 꿈 같은 연출, 즉 개연성이 없어 보여도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그의 특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특유의 연출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또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는 이 영화는 ADHD 증상을 미학으로 바꾸어 놓는, 베테랑 감독의 영화 언어를 보여 준다.
정신 없는 편집 과정에서 마크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차근차근 할 수도 있는 것을, 괜히 일을 키우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아이디어를 들이미는 마크와 당장은 안 된다는 동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충동을 참지 못해 물건을 내던지거나 소리치고는 뒤늦게 사과를 하느라 바쁘기도 하다. 그럼에도 모두들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외딴 시골 동네에서 음악 스튜디오를 찾아 내고 오케스트라를 구하고, 심지어 영사를 척척 준비해 마을에서 상영회를 여는 것은 마크 옆에 있는 샤를로트와 실비아다. 그들은 버겁지만 이 모든 노동과 황당한 아이디어를 감당한다. 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각자 다소 달라 보이지만 이들 모두의 목표는 단 하나, 영화를 끝까지 마치는 것이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 <무드 인디고>를 제작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전적인 영화이자 자아성찰이 담긴 코미디이다. 주인공 마크가 제멋대로 굴고 끝내는 옆에 머물던 사람들마저 떠나가게 할 정도로 대책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솔직하고 자조적인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사랑을 발산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한계는 바로 선의와 신뢰에 의한 관계들이 없다면 마크는 예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이다.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예술로서 영화를 보아주는 동료들과 자신의 엉뚱한 면을 이해해주는 고모 드니즈가 없다면 그는 수많은 아이디어에 짓눌리다가 영영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들은 작은 마을이 계속 굴러가듯이, 여러 사람의 노동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멋진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런 조건 없이 마크를 사랑해 주는 여자들, 특히 조용히 아파트에 들어와 엉망이 된 집을 손수 치워 주고 끝내는 가정이라는 새로운 ‘모험’으로 마크를 끌고 가는 가브리엘은 공드리가 연출하는 초현실적인 비주얼 만큼이나 꿈 같은 캐릭터이다. 마법 같이 이루어진 조건 없는 사랑, 아이를 낳는 것을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실은 권력이라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소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쇼트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걸음 다가가는 시도라는 것이다. 수없이 집적된 아이디어가 성가시게 느껴지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고, 거기서 반짝이는 혁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공드리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든 이 작품은 사랑과 관계를 가꾸는 것에 관한 작품이며, 동시에 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어지럽고 추상적인 계획과 수백 번의 노동이기도 함을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관객 앞에 선을 보이는 순간 영화는 만든 이들의 손을 떠나게 되고 감상과 해석과 왜곡은 전부 관객의 몫이 된다고 말하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심지어 마침내 관객의 반응을 조우하는 마크의 기분을 보여 주는 듯한 마지막 장면이 수줍음인지 수치인지 판단하는 것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다. 이렇게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고 결국 관객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영화로 마무리된다. <무드 인디고>를 보고 마음껏 슬퍼해도 되듯이,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비극인지 희극인지 논하지 않아도 됨을 깨달았듯이 이번에도 우리는 영화 만들기를 말하는 공드리의 언어를 재미있게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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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그해 여름, 남매 성장기의 한 페이지
7★/10★(윤단비 감독 작품, 2019년, 104분, 한국.)
〈남매의 여름밤〉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을 법한 유년의 기억 한 페이지를 소재 삼아 아이의 성장기를 담아낸 영화다. 겉보기에는 평온하고 잔잔하지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때로 격정을 느끼고, 아파하며, 성장한다. 여름과 성장의 질감이 짙게 묻어나는 이 영화를 천천히 따라가 보자.
철거를 앞둔 재개발 골목에 흰 다마스 한 대가 서 있다.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옥주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동주가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의 집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다. 나무로 된 짙은 갈색의 실내 장식에서 나는 냄새가 화면 바깥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어느새 아늑해지는 그런 냄새. 옥주와 동주는 아주 느린 속도로 말하고 걷는 할아버지와 그의 흔적이 담긴 집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내 적응하고는 금세 웃음을 되찾는다.
영화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빠르게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은 꽤나 잘 어울려서 관객을 웃음 짓게 한다.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인 장면들도 눈길을 끈다. 어떻게 상상하고 연출했을까 싶은 장면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남매의 기분 좋은 여름날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진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시간은 마냥 행복하게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에 아이들은 성장한다. 첫 번째는 어른이라는 문제다. 옥주와 동주는 어려운 형편에도 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남편과의 문제로 언젠가부터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사는 고모를 잘 따른다. 자신들을 아껴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진짜임을 알기 때문이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현실에 지친 어른, 현실에 지치다보니 현실과 닮아버린 어른이기도 하다. 두 어른은 거동이 힘들고 용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자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집을 팔고자 한다. 이것만으로 아빠와 고모를 욕할 순 없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 엄청난 품이 드는 돌봄노동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매우 힘들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간다면 꼭 그 집에서 살 필요가 없는 것도 맞다.
그러나 여기에는 빠진 게 있다. 옥주는 요양원과 집 문제를 두고 아빠에게 묻는다. “그걸 왜 우리가 결정해?”(요양원), “할아버지한테는 얘기했어?”(집). 옥주는 두 어른보다 현실과 윤리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더 잘 알고 있다. 설령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더라도, 집을 판다고 하더라도 할아버지가 결정의 주체 혹은 의논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두 어른은 이 당연한 과정을 생략한다. 다소 화가 난 듯이 보이는 옥주의 감정은 정당하다. 어른이 부재한 곳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두 번째는 엄마 문제다. 옥주는 늘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동주를 자존심도 없냐며 다그친다. 아마도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동주에게 엄마를 만나러 가면 혼내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그런데 동주가 몰래 나가 혼자 엄마를 만나고 선물까지 받아 온다. 옥주는 화가 나서 이를 뺏으려 하고, 동주는 엄마의 선물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두 남매는 소리 지르며 몸싸움까지 한다.* 그러나 옥주가 이렇게 화가 났던 건 사실 자신도 엄마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엄마 문제에 의연한 척했던 건 어떻게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긍정하기 위한 포장이었을 뿐, 그 역시 동주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와 청년의 경계에서 홀로 의연히 버텨내고자 하는 옥주의 의지가 대견하면서도 쓸쓸하다. 그해 여름 한 소녀의 지극히 사적인 성장통이 보편적 호소로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덧. 이 영화를 배리어프리 영화(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제작된 영화)로 봤는데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한국어 영화를 자막(일반 자막이 아닌 배경음악 등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한 상세한 자막), 내레이션(박정민 배우가 재능 기부한 것으로 화면 움직임에 대한 해설 등으로 구성)과 함께 보며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내레이션의 문장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굉장히 문학적인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화면 대신 내레이션만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그려냈을 남매의 여름밤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싸우는 두 남매를 중재하며 달래주는 사람이 할아버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노쇠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오히려 남매를 다독인다는 것은 아빠와 고모의 판단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우리 시대의 어른됨이 정상성(사회생활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육체적, 정신적 기준) 바깥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어쨌든 ‘현실’이 인간을 찌들게 하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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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인간 되는 힘, 상상력
SYNOPSIS.
“당신은 몇 번째 미키입니까?”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 그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알 죽고, 내일 만나”
POINT.
✔️ 봉준호 감독의 신작. 다른 말이 필요할까요?
✔️ 시작은 하이틴 스타였지만 어느새 모두가 믿고 보는 배우가 되어 있는 로버트 패틴슨. 그뿐 아니라 토니 콜레트, 마크 러팔로, 나오미 애키와 스티븐 연까지... 매력 있는 배우들이 가득 등장합니다.
✔️ 감독의 전작 중 <마더>나 <살인의 추억>보다는 <옥자>와 <설국열차>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
✔️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수많은 노동자 특히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을 언급했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본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독재자 쪽을 실재와 많이 연결하는 분위기...�
*<미키1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셔요.
봉준호가 '명징하게 직조'하는 세계
<미키17>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감독의 (영어 영화) 전작인 <옥자>와 <설국열차>를 떠올린다. 비록 입 안은 한강 <괴물> 쪽을 더 닮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옥자를 연상케 하는 친근한 외계 괴수가 등장하고, 망해가는 지구를 떠나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을 '개척'하러 떠난 우주선 내부는 어쩐지 얼음으로 뒤덮인 지구의 어떤 기차를 떠오르게 하니까. 한국 사회의 어떤 지점을 송곳처럼 좁고 집요한 시각으로 후비는 대신,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범세계적인 주제를 두루두루 두드리는 작품들이다. 봉준호 감독의 세계에서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 계열의 영화들을 선호한다면, <미키17>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 한결 독기가 빠진 느낌, 한결 초점이 여러 군데로 분산된 느낌에서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가 후벼파는 세계는 너무 정확하고 그래서 너무 보기 괴로웠으므로 (이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마음에 공감성 수치 비슷한 마음을 뒤섞은 것이다) 한결 넓게 두드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그가 '명징하게 직조'해낸 세계에서 다루는 주제 의식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미키17>은 봉준호 감독 작품으로는 놀랍게도 사랑 영화다. 놀리는 거 아니고 진짜로 사랑 영화.
미키는 종이처럼 계속해서 재출력되는 '인간'이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SPC 계열사) 제빵 기계에" 사고를 당한 이들을 말하며 "나열한 사건의 그 자리에 또 다른 분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미키가 복제되는 것이 판타지 같지만 김군 뒤에 박군이, 그 뒤에 윤양이... 일자리는 유지되고 인간이 계속 교체되"는 현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친구와 마카롱 가게를 냈다가 쫄딱 망한 미키의 이야기는, 숱하게 유행 따라 깔렸다가 사라지는 가게 종목들 (<기생충>의 대만 카스테라는 물론, 그 이전에는 커피 번이나 슈니발렌 과자, 그 이후에는 탕후루가 있다.)을 생각나게 하는 동시에, 4대 보험도 되지 않는 다양한 일자리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망한 자영업자이며, 플랫폼 노동자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고용주가 그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다.
미키1에서 미키15까지의 시간은 영화에서 매우 빠르게 처리되지만, 그래서 마치 우주선의 탐험 목적과 우주선이 부여받은 임무를 스케치하는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지만, 그 과정에서 미키가 인간이라는 감각은 점점 희석된다. 망한 자영업자이자 4대 보험 안되는 노동자였던 그에게, 생체 실험 피해자라는 타이틀이 추가된다. 이쯤 되면 그의 일은 더 이상 노동법상 분류하는 노동에 속하지 않는다. 지구를 빠져나간 우주선에게 법을 들이대는 것도 우습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근로기준법상 그렇다. 근로기준법 제2조 1항에서 "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으나, 죽음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의 존재와 그의 노동 모두, 법 바깥의 무엇이 된다.
미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극중에서 많은 인물들이 미키에게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묻는다. 제니퍼를 생각해서 머뭇거리면서도 어렵게 말을 꺼내는 카이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딱히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질문이 아니다. 존재와 노동이 모두 법망 안에 있는 그들에게, 그 질문은 미키와 자신 사이의 선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 미키의 존재를 한 번 더 밀어내는 질문이다. 똑같은 우주선을 타고 있지만, 너는 여기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선포, 미키의 이름을 지워내는 명명(命名)이다.
여기서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 타인의 환대 속에서만 자신의 사회적 성원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키17은 필연적으로 무력하다. 절대 다수가 그에게 성원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정체성 투쟁의 핵심에는 모욕에 대한 저항이 있"고, 모독은 ,"그들을 사물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모독(mortification)의 어원에 죽음mort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는 건 어떤 느낌이냐는 모욕 앞에 미키는 저항할 수 없다. 그는 다만 짓눌려, 침묵으로 그 시간을 묵묵히 넘길 뿐이다. 이러한 폭력적 구조에 오랫동안 짓눌려온 미키는 크리퍼가 자신을 구해 주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구조에 억눌린 사람이 으레 그렇듯,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며, 사회적으로도 계속 밀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미키는 일종의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은 말할 것도 없이 마셜과 일파 부부다. 사실 이들이 미키만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어쩐지 현실 곳곳에서 많이 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름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잘 드러난다. 제니퍼의 사망 앞에서 그들이 보인 반응은 '제니퍼'라는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아니라 '자궁을 가진 가임기 여성'의 죽음을 아까워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생명체에게는 '크리퍼'라는 집합명사를 붙인다. 그들에게는 자기들 두 사람 외 모든 인물들이 집합명사로 존재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처럼, 이들은 우주선에서 타인의 이름을 들이마셔 때로는 지우고 때로는 악마화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미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나샤 그리고 미키18이다. 미키1에서 미키17까지의 우주선의 탐험 역사와 과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면서 관객이 이 모든 미키들을 한 사람으로 인지할 때, 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미키18이 등장한다. 마치 <서브스턴스>에서처럼 힘주어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라고 말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색깔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와 수가 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미키17과 미키18 또한 한 사람이다. 체제에 순응해야 했고, 법 바깥의 존재인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미키17과, 그런 미키17 안에 어딘가 쭈그러져 있었을 다른 마음이 전면에 나선 미키18이 있을 뿐.
그리고 그 모든 미키를 순정으로 끌어안은 나샤가 있다. 특히나 피에타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정말 아름다워 울컥했다. 나샤에게 있어 미키의 존재가 법 안에 포용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미키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계속 마주하는 것이 괴롭지 않았을 리 없음에도 그를 혼자 두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아름다운 순정이어서.
인간성이 메마른 지옥도에서 우리를 구하는 건 결국 사랑이다. 그것이 독점적 연애 관계든, 무어라 정의 내리기 이전에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든,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이든. 오늘의 내가 하루를 살아가기 전에, 나를 끌어안고 내 아픔을 애정과 안타까움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 사랑이 있고.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잘 먹고 애쓰며 살아낸 과거의 내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내가 다가오기를 미래에서 (조금을 나를 답답해 하면서도)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도 있다. 이 모든 존재들의 사랑으로, 우리는 오늘을 산다.
인간이 인간 되는 힘, 상상력
하지만 모든 사람과 자기애 같은 혹은 연인에 대한 사랑 같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인간성의 최소선을 우리는 도로시에게서 볼 수 있다. 나 자신과 연인. 가장 가까운 인물들을 제외하고 미키의 목소리, 더 나아가 크리퍼의 목소리까지 들으며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이자, 소통의 방식만 놓고 보면 마셜과 일파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도로시는 크리퍼의 반응에서 그들이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인물이자, 미키를 인간으로 대하는 유일한 과학자다. 미키의 손이 잘려 나가도 '와 대박' 이러고 있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그들에게 미키의 신체는 사물화되어 있다), 미키의 수명이 10분인지 15분인지까지 살뜰하게 신경 쓰고 있는 유일한 과학자다. 타인을 사물화하지 않는다는 건, 타인의 입장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로시가 과학자로서 가진 가장 큰 힘은 아마도 바로 이 상상력이 아닐까. 가능성을 상상하고,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며, 지금 없는 것들을 그려 볼 수 있는 능력. 돌아보면 영화에서 마셜과 일파가 만든 세계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인물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대우받고 죽어가는 미키와 함께하는 매일을 상상하는 나샤도, 독재자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미키18도.
결국 사랑도 소통도 그런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다 보면 제일 끔찍한 것도 제일 애틋한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일 끔찍한 인간의 상태, 그저 인간성이 메말라 온 세상을 지옥도로 인지하는 상태를 벗어나려면, 소통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다양한 의미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상상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코처럼 고함을 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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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틱 코미디, 그런데 기후위기를 곁들인
두 사람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모든 영화에는 인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있다. 〈타이타닉〉에서는 귀족과 하층민이라는 신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앙숙 가문,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성격,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라는 시민적 지위 등등이 그렇다. 이들 영화는 서로의 세계를 살아보지 못한, 그래서 상대방과 그가 속한 세계가 너무나 낯선 주인공이 상대를 알아가며 조금씩 자신이 기존에 속한 세계를 허물고 나와 상대의 세계에 진입하고, 종국에는 두 사람의 세계를 결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로 나아간다. 물론 꼭 사랑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맥락에 따른,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사랑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이 차이를 더 극단적으로 확장한다. 〈디피컬트〉가 그러하듯이.
코미디, 로맨스를 아우르는 영화 〈디피컬트〉의 배경은 파리다. 주인공은 알베르와 발렌틴. 알베르는 채무에 시달리며 주거도 일정하지 않은 가난한 하층민 남성이고, 발렌틴은 급진적인 기후 활동가다. 둘이 처음 만난 곳은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둔 어느 쇼핑몰. 알베르는 TV를 싸게 구입해 비싸게 팔 목적으로, 발렌틴은 지구를 망치는 무의미한 소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첫 만남이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듯한 두 사람은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한다. 알베르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 브루노의 손에 이끌려 무료로 맥주와 음식을 나눠주는 곳에 간다. 발렌틴과 활동가 동료들이 친목과 결의를 다지고 다음 활동을 계획하는 모임의 장소였다. 알베르는 자기 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일을 진지한 표정으로 도모하는 사람들을 보며 피식거리기를 멈출 수 없지만, 어쨌거나 함께하면 먹을 것이 나오고 그들이 재활용을 위해 수집한 물품을 몰래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브루노와 함께 슬쩍 발렌틴의 활동에 동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느덧 솟구친 발렌틴을 향한 알베르의 호감이 가장 큰 동기다. 알베르는 발렌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활동의 다음 단계가 곧 로맨스의 다음 단계와 맞물리며, 영화는 전개된다. 쇼핑몰, 패션쇼, 농장, 박물관, 심지어 은행까지. 기후정의를 촉구하는 이들의 시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시위 장면을 온라인 생중계를 위해 참가자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불안정하고 흔들리지만 바로 그 이유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장면과 화면 밖 카메라가 주인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와이드숏을 교차하며 보여주어, 시위 현장의 박진감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자연히 시위와 연계된 두 사람의 로맨스가 무르익는 과정과도 맞물리며 극의 감정선과 재미를 더욱 고조한다.
위기도 있다. 알베르와 발렌틴의 관계를 질투한 또 다른 활동가가 알베르가 실은 단체 물품을 장물로 팔아넘기는 등 운동에서 개인 잇속을 챙겨왔다는 점을 폭로한 것이다. 기후 우울증으로 감정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대한 동력을 잃었으나 조금씩 알베르에게 마음을 열던 발렌틴은 이후 알베르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당연하게도 둘은 결국 위기를 극복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위기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뻔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영화가 두 사람의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캐릭터, 서사 설정이다. 〈디피컬트〉에서 누군가 기후위기를 얼마만큼 심각하게 인식하는지는 〈타이타닉〉의 신분,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문, 〈엽기적인 그녀〉의 성격, 〈베이비 드라이버〉의 시민적 지위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다. 즉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가 귀족과 하층민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버무린 영화라기보다는 동시대에 기후위기에 대한 감각‧인식의 지형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를 질문하는 영화로 볼 때 더 재미있다. 만약 당신이 기후 음모론자라면, 푼돈을 벌어 하루하루 근근이 사는 남자와 기후 우울증 때문에 감정적으로 파산한 여자가 사랑과 연대로 그들 개인뿐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세상까지 더 좋게 만든다는 이 영화의 서사가 한없이 지루하고 허황되게 느껴질 것이다. 〈디피컬트〉의 서사 구조는 2022년에 열린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2021년작 프랑스 영화 〈지평선〉과 유사한데, 두 영화를 유럽에서(혹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기후 시민이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분명하게 가시화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해석해도 무방해 보인다.
같은 징후를 포착한 한국의 상업영화를 나는 알지 못한다. 즉, 한국에서 기후 시민은 아직 하나의 분명한 시민적 정체성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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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치고 힘든 순간이 하이틴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성적표를 받은 미국의 고등학생, 거기에 적힌 글자는 ‘C’다. 여타의 학생이라면 우울한 기분으로 게을렀던 과거를 후회하거나 부모님께 혼날 걱정을 할 것이다. 그녀는 다르다. 선생님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부모님께 성적표 공개를 거부한다. 어떻게 자신하냐는 질문엔 매 학기 선생님들을 설득해 점수를 올렸다고 당당히 말한다. 심지어 독신인 토론 선생님이 행복하면 점수가 올라갈 거란 가정하에 다른 선생님과 로맨스를 만든다,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고 훌륭한 성적을 받으며 친구들의 고마움과 인기를 한꺼번에 얻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하이틴 영화 ‘클루리스’에서는 가능하다.
영화 ‘클루리스’는 벌써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넘는 이야기로 제인 오스틴의 ‘에마’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하이틴 영화의 정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꼭 봐야 할 하이틴 TOP’ 순위에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하이틴 영화계의 히치콕의 ‘사이코’고 셰익스피어다. 전체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베벌리 힐스에 사는 고등학생 셰어의 학교생활과 우정, 사랑을 다룬다. 부유한 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란 아가씨가 변호사 아빠를 닮아 말도 청산유수인데 자신감마저 넘칠 때 벌어지는 상황들이 주요 사건이다.
클루리스 영화의 특징은 셰어라는 인물의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주인공의 매력이 특히 중요한 하이틴 영화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먼저 옷을 좋아한다. 몸에 달라붙는 슬립 원피스와 노란색 체크 셋업 의상, 가죽 치마와 프레피 룩은 화려한 외모와 잘 어울린다. 영화의 분위기마저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게 보인다. 유행은 돌고 돌아서 촌스럽지 않고 2020년에 유행하는 의상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셰어가 집에서 입고 있는 보라색 이너와 세트인 카디건은 요즘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게다가 영화가 셰어의 독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최근 유행하는 Vlog를 보는 기분이 든다.
다음 특징은 영화 속 어떤 상황이라도 과즙미를 머금고 상큼하게 만드는 대사들이다. 아빠가 밤늦게 파티에 간 셰어에게 “몇 시인 줄 알아?”라고 묻자 그녀는 태연하게 씩 웃으며 ‘이 옷엔 시계가 안 어울려요.’라고 대답한다. 만화를 보며 의붓오빠인 조시에게 매우 실존주의적이라고 고급스럽게 말하고는 단어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 다른 파티를 나가려고 할 때 아빠와 나누는 대사는 어이가 없어서라도 웃게 된다.
“그 옷이 뭐니!”
“드레스요.”
“누가 그래?”
“캘빈 클라인이요.”
설득력 없고 종종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사고 회로는 당연하다는 듯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하자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 사랑스럽고 멋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또래 남자애들은 자신보다 옷도 못 입고 멍청하다고 무시한다.
이렇게 세상을 다 알 것처럼 친구들에게 훈계하고 세상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거라 행동하던 그녀도 사회의 벽에 부딪힌다. 맞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연결해주다가 상처 받고, 사람에 대한 그릇된 편견으로 위기에 처한다. 기어코 운전면허 시험까지 떨어졌을 땐, 자신이 몹시 작고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녀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말하듯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10대다.
진정으로 셰어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이 순간이다. 좌절한 순간들마저 그녀 답게 해결한다. 철없던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다툰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물품 기부 행사를 열며 앞장선다. 그러면서 엉뚱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철없음을 깨닫는 순간조차 쇼윈도를 보며 내면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저 옷이 제 사이즈가 있을까요?’라며 독백한다. 옛날 영화답게 연출도 귀여워서 셰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할 땐 그녀 뒤에서 분수가 튀어 오른다. 그녀와 영화는 뭘 해도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이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쉽기 때문이 아닐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풋풋한 주인공의 로맨스에 대리 설렘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과거에 개봉한 하이틴 영화는 열이면 열 개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을 이루고 우정을 얻고 성장한 주인공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치고 무기력하게 버티는 시간들이 결국엔 하이틴 영화처럼 더는 닫을 수 없을 만큼 꽉 닫힌 행복으로 끝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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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티 토르와 다시 돌아온 토르! 마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Rabbitgumi 입니다!
토르의 새로운 단독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번에 4번째 토르 단독 영화인데요.
1편과 2편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지만,
3편에서 타이카 와이키키 감독이 연출하면서 재치 넘치는 영화로 재탄생했죠.
4편도 같은 감독이 연출해서 그 분위기는 유지됩니다.
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으로 마블에 안착했을까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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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의 파국을 담은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가 개봉했어요.
항상 괴물이 등장했던 그의 영화에 이번에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데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한 인간의 욕망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겼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참 아름답고 몰입감있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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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차 예고편
관능적으로 녹여낸 신분 초월 로맨스! 2022년, 웰메이드 파격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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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닭강정> 공식 티저 예고편
"내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습니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세상에 없던 신'계'념 코미디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 3월 15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