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5-21 11:46:54
5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디즈니의 실사영화는 계속된다! <릴로 & 스티치> 개봉

디즈니의 실사 영화를 향한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2002년에 개봉해 제7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던 애니메이션을
23년 만에 실사 영화로 재탄생시켰다고 하는데요.
오는 6월, 드림웍스 역시 동명의 인기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의 실사영화가 개봉하는 가운데,
과연 누가 웃고 울게 될까요?
릴로 & 스티치
Lilo & Stitch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108분
감독: 딘 플레이셔-캠프
주연: 크리스 샌더스, 마이아 케알로하, 시드니 아구동
개봉: 2025.05.21.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보송보송한 파란 솜털, 호기심 가득한 큰 눈,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가졌지만..!
가장 위험한 실험체 취급을 받던 ‘스티치’는 우주에서 도망쳐 지구의 하와이 섬에 불시착하게 된다.
단짝 친구를 원하던 외톨이 소녀 ‘릴로’는 별똥별과 함께 나타난 귀여운 파란색 강아지(?) ‘스티치’와 소중한 친구이자,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며 외로웠던 일상이 유쾌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치’를 잡아 우주로 되돌아가려는 정체불명의 요원들이 등장하고
‘릴로’와 ‘스티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가족 외톨이 소녀 ‘릴로’와 금쪽이 ‘스티치’의 버라이어티한 모험을 확인하라!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My Beloved Stranger

개요: 멜로/로맨스 | 일본 | 122분
감독: 미키 타카히로
주연: 나카지마 켄토, 미레이
개봉: 2025.05.22.
배급: 와이드 릴리즈㈜

줄거리
어느 날, 눈을 뜨자 우리가 사랑한 모든 시간이 사라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리쿠’는 8년을 함께한 첫사랑 ‘미나미’와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다.
너였기에, 빛나던 우리의 세계. 너였기에, 난 사랑을 할 수 있었어...
잃고 싶지 않는 그녀를 다시 되찾기 위해 시간을 넘어 여기,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평행세계 로맨스
로데오
RODEO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106분
감독: 롤라 퀴보롱
주연: 줄리 레드루
개봉: 2025.05.21.
배급: 필름다빈

줄거리
다혈질에 독립심 강한 성격의 줄리아는 모터사이클을 향한 열정과 혈기 넘치는 불법 집회 ‘로데오’의 세계를 쫓으며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줄리아는 은밀하고 변덕스러운 패거리와 우연히 엮이고, 그들의 보스는 줄리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
분리수거
The Erase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94분
감독: 이소민
주연: 박보경, 윤혁진, 태항호
개봉: 2025.05.21.
배급: (주)이놀미디어

줄거리
제때 정리하지 못한 가슴 속 찌꺼기. 마음도 분리수거가 필요해!
남자친구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재연’. 돌연, 제주도로 떠난다. 과거를 숨긴 게스트하우스 주인 ‘재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이별을 택한 ‘범주’와 원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는 뷰티 유튜버 ‘채원’,
마지막 이별 여행을 온 연인 ‘진석’과 ‘다혜’까지 여행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연애담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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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올드머니 패션 착용한 주인공 영화 8선
지금 떠오르고 있는 올드머니룩 ! 올드 머니(oldmoney)의 뜻은 말 그대로 오래된 돈, 유산, 상속받은 돈으로 오랜기간동안 부를 축적한 상류층을 뜻한다고 합니다. 브랜드 로고 대신 부유층만 알 수 있는 브랜드, 혹은 고급스러운 소재로 실루엣만으로 부유함을 표현하는 룩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는데요.
켄달제너, 기네스팰트로, 다이애나비가 올드머니룩의 유명인들이라고 하죠. 한국에서는 드라마 안나에서수지와 정은채 배우가 올드머니룩을 완벽히 소화해 내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올드머니룩은 부유층을 다룬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패션인데요. 부유층을 다룬 영화들 속 올드머니룩을 착장한 주연 배우들 같이 한번 만나보실까요~?
CINEPICK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는 미국의 작가 로렌 와이스버거가 집필한 소설이 원작인데요. 직장에 실제로 있을것 같은 캐릭터들로 개봉 20주년이 다가가는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재밌고 여성팬층이 매우 두터운 작품입니다. 실제로 원작 소설보다 나은 이야기 전개로 호평을 받고 미란다 역의 메릴 스트립 연기는 크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패션잡지회사에 관련된 영화다보니 등장인물들의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뉴요커들에 대한 환상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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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대표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며 2014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2014 골든글로브상 외국어 영화상 수상 2014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비영어 영화상 수상작으로 세계 3대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트리플 크라운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중장년층의 부유한 세계를 그린 <그레이트 뷰티>는 주인공이 로마의 사교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면서 점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의 공허함을 느끼는 과정을 거칩니다. 위의 주인공의 감정과 대비되는 화려한 세계는 풍자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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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소재의 영화이며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전세계 27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스펜서>는 영화계 동료, 언론, 평단, 관객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특히 의상이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데 <작은 아씨들> <안나 카레니나>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재클린 듀런이 맡았고 그시절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던 다이애나비의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수년간 다이애나의 패션을 수집하며 완성도를 높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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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회 연속으로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으로 가족들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해 고찰한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의 제목인 <해피엔드>는 해피 엔딩의 의미가 아닌 행복이 끝난다는 의미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영화 속 '로랑'가는 프랑스에서 건설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이지만 자살을 몇 번이고 시도하다 실패한 조르주, 아들 피에르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앤, 바람을 계속 해서 피는 토마스 등 고상한 줄만 알았던 가족들의 이중성이 점점 표면우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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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따라 평이 갈리는 우디앨런 작품 중 수작이라고 뽑히는 영화로 특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신경쇠약의 여성을 잘 연기해낸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로 큰 호평을 받으며 86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르메스, 루이비통, 펜디, 샤넬, 로저 비비에 등 다양한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의 의상이 등장하는데 케이트 블란쳇의 이름값을 이용해 간신히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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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는 누구나 부러워 하는 귀적적인 삶이지만 알 수 없는 권태로움을 느끼는 엠마의 공허감과, 매력적인 쉐프인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에게 감춰져 있던 열정으 른끼며 사랑에 빠져드는 상류층 여성의 은밀한 욕막을 표현해낸 영화로 미술, 의상 뿐만아니라 틸다 스윈튼의 우아한 몸짓과 카리스마를 강렬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배우 뿐만 아니라 <아이 엠 러브>의 스태프들이 이탈리아 상류층 재벌가문의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깊은 고심을 했고, 각 캐릭터에 맞는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을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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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뉴욕의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를 열망하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애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간적 서정을 느끼면서도 부와 상류층의 상징인 보석상 '티파니'를 동경하기 때문에 꿈과 현실의 괴리감을 피할 수 없는데요. 또 가난한 작가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부자를 찾아 헤메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빈부격차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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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이자 할리우드 영화의 패러디이며 1973년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 최우수감독상, 1973년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부뉴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미란다 공화국의 대사 돈 라파엘이 6명의 부르주아들과 함께 근사한 만찬을 가지려 하지만 그때마다 기이한 상황에 처하며 좌절을 겪는 과정을 부뉴엘 특유의 통렬한 유머감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오늘은 '올드머니패션' 주제로 영화를 다루어보았는데요 앞서 추천드린 영화는 패션뿐만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수작들이기도 합니다. 즐겁게 영화 즐겨주시길 바라며 저는 다음주에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큐레이터 AM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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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크로이처의 <코르사주>
본 글은 씨네랩을 통한 시사회 관람 후 리뷰를 요청받아 쓴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이 쓴 <트라우마>에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관해 언급한다. 그는 강제 수용소에서 최악의 상태는 자살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악의 상태는 아무런 능동적 행위 없이 수용소의 흡수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상태”에 관한 이야기다.
<코르사주>는 엘리자베트 황후에 대해서 다룬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엘리자베트가 프란츠 요제프에게 발탁(?) 된 까닭은 오로지 그녀의 외모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인형처럼 서있기를 바랐다. 누구라도 황후에 대한 환상은 있겠지만, 알려진 것처럼 왕이나 왕비는 생각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서론에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대해 언급한 이유 중 하나가 신체적 자유에 대한 문제다.
물론 황후의 자리와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을 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는 없다.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았을 때 그들은 저항해야 한다. 저항해야만 주체적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여성 서사들은 주체성이 가장 큰 이슈처럼 보인다. <코르사주>도 어김없이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코르사주>가 여타 영화와 다른 점은 주체적 인간의 자리에 가는 방법을 죽음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엘리자베트는 첫 번째로 낳은 딸이 세상을 떠났고, 시어머니와 깊은 갈등이 있었으며, 1889년 아들 황태자가 자살했고, 60세에 살해당한 비운의 황후로 알려져 있다. 다만 영화에서 그녀는 40살에 생을 마감했고, 그 이후의 삶은 그녀의 대리자가 이어간 것으로 그린다. 마리 크로이처 감독이 40살의 엘리자베트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 시기부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위해 투쟁한 시기라고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도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녀는 정신병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 속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축일 선물로 완벽한 시설을 갖춘 정신 병원을 원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디테일을 계속해서 쫓아가야 한다. 영화 속에서 정신 병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아마 시기적으로도 히스테리가 주목을 받기 직전의 시기였을 것이고, 고증을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죽음의 문턱으로 향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설정이다. 정신병원에 누워있는 두 여자 중 한 명은 간통으로 정신을 놓았고, 또 다른 여자는 아이를 잃었다. 엘리자베트는 두 여자가 각각 겪은 경험을 지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일부러 말에서 떨어진다. 죽음에 대한 첫 몸부림. 그리고 그녀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딸과 여행을 가겠다는 요청에서 딸을 데리고 가지 못하게 하자 창밖으로 투신한다. 죽음에 대한 두 번째 몸부림. 하지만 그녀는 미치지 않고 끝내 정신을 붙들고 있다. 히스테리란 무엇인가. 정서적 충격을 해소할 수 없을 때 우리의 몸이 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증상을 발현하는 방어기재라고 프로이트가 말해주지 않았던가. 엘리자베트는 정서적 충격을 온전히 주체적 몸짓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그런 방식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것은 충동적인 것이며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전적으로 의식적인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욕망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끊임없이 투쟁하여 행위 자체를 이성적 판단에 의해 끌어올렸을 때 우리는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이성적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윤리라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마약을 하는 것 또한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런 비관적인 행동이 어떻게 주체성을 위한 과정이라고 묻는다면 영화가 대답해 줄 것이다. 엘리자베트가 단발머리를 하고 마당에 앉아 다른 이들과 음악을 들을 때 그녀가 느끼는 해방감을 바람으로 표현한다. 그 바람은 그곳에 앉아있던 이들 중 엘리자베트에게만 향한다. 이 쇼트에서 느껴지는 해방감과 처연함은 그녀의 선택이 그녀의 몸을 파괴할지라도 그건 그녀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아니, 어쩌면 그 선택은 그녀에게는 의무라고 일컬어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세 번째 자살 시도는 성공으로 끝난다(고 생각 한다). 영화가 따라온 것은 그녀가 진정한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자살 시도는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자살 시도에서는 황제이자 남편에게, 그리고 딸과의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 직후에 시도하지 않는다. 편안하고, 우아하게 그녀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나면 그녀의 우아하고 자유로운 춤이 이어진다.
2022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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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욕하지 마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터〉의 정병길 감독은 계속 액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아마 〈악녀〉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악녀〉의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구멍이 많고 전형적이라 아쉬웠다는 인상만 남아 있다. 하지만 액션신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액션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나 싶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특히 버스 액션신이 그랬다. 기존 액션의 연장에 있다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액션이었다.
〈악녀〉의 장점과 단점은 〈카터〉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현란한 액션이 먼저고 스토리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처럼 활용된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낫다. 인간의 공격성을 극대화하는 DMZ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남북이 합작하여 치료제를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치료제 개발의 중추인 박사와 그의 딸을 북한의 연구소로 옮기고자 하는 남북 합작 작전에 미국이 개입하여 훼방을 놓는다. 여기에 부성애 코드를 장착한, 사연 있는 요원이 작전을 완수하라는 미션을 받고 개입하고, 언젠가부터 북한 정권이 영화에 나올 때 꼭 등장하는 군부 내 쿠데타 세력 또한 등장한다. 익숙한 민족주의 서사지만, 〈악녀〉 스토리의 빈약함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그래도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악녀〉보다 나을 뿐이다. 서사 자체만 놓고 본다면 〈카터〉는 분명 낙제점이다. 서사의 진부함과 얼개는 말할 것도 없고 개연성 없음의 문제도 사실 꽤 심각하다. 그러나 다시금 말하지만 〈카터〉의 중심은 액션이다. 정병길 감독은 〈악녀〉에서 선보였던 액션을 더 큰 스케일로, 더 실험적으로 연출했다. 규모가 커진 만큼 중간중간 공백이 보이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를 꽉 채운 액션과 이를 원테이크 연출로 담아낸 기법, 게임을 연상케 하는 카메라 워킹 등은 분명 정병길 감독만이 가진 자산이다.
그가 자신의 장점 외에 다른 것들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를 높인다면, 그의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다며 영화를 혹평하는 관객*의 마음도 결국 돌아서리라 본다. 지금은 스타일만 언급되고 있지만, 그가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은 〈내가 살인범이다〉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감독이었음을 되새겨보자. 그가 구축한 독창적‧독보적 스타일이 언젠가는 영화의 완성도와 어우러지길 기대하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면죄부가 언제까지나 허용되지는 않을 터다. 다만 아직은 스타일에‘만’ 천착하는 액션 아방가르드 정병길에게 기회를 빼앗을 때가 아니란 소리다. 단점은 너그러이 눈감아주고, 장점에 집중한다면 〈카터〉 감상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네이버 영화' 평점 댓글란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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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불안의 초상화
영화는 결혼식을 앞둔 저스틴과 마이클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저스틴은 조금 부산스럽지만 행복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결혼식에 찬물을 끼얹으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저스틴은 점차 결혼식장을 탈출해서 목욕을 하거나, 남편을 거부하고 낯선 남성과 관계를 가지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며 고통스러워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림을 치워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채워놓는 모습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며, 각자의 요구를 강요할 뿐이다. 저스틴은 우울에 잠식당하며 서서히 무너져내린다. 헨드헬드로 불안하게 담긴 저스틴의 모습은 그녀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의 등장으로 전환된다. 과학자들은 멜랑콜리아의 궤도가 지구를 비껴나갈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클레어는 계속해서 불안에 휩싸인다. 결국 멜랑콜리아의 충돌은 현실화되고, 담담한 저스틴과 달리 클레어는 점차 무너져내린다. 각각 우울과 불안에 무너지는 인물의 모습을 비추는 두 이야기는 비슷한 구조로 맞물린다. 저스틴은 우울에 빠져 서서히 잠식되어 간다. 한편 지구는 단어 그 자체로 우울을 의미하는 행성 '멜랑콜리아'와 충돌하며 파괴된다. 그렇기에 지구는 저스틴, 더 나아가 우울에 빠진 모든 이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클레어에게 이야기하는 저스틴의 대사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저스틴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사악하기 때문에 멜랑콜리아의 충돌을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생명체는 오로지 지구에만 존재한다고, 온 우주에 생명체는 우리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스틴의 대사는 우울에 빠진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지구의 생명체가 우주 속에 외롭게 존재하듯이 그녀 역시 홀로 외로이 존재한다. 타인은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타인과의 관계는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다. 지구는 사악하다고 말하는 저스틴에게 세상은 억압과 고통이다. 그러나 지구를 그녀 자신에 대입해 보면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결국 자기혐오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멜랑콜리아', 우울은 지구를 파괴하듯이 한 인간의 세계를 파괴한다. 저스틴을 잠식하는 우울과 클레어를 무너뜨리는 불안은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멜랑콜리아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종말이다. 스스로의 의지를 초월하는 거대한 종말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함을 느낀다. 멜랑콜리아의 충돌에 담담한 저스틴의 모습은 우울에 잠식당한 끝에 무감각해진 그녀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비춘다.
1부에는 저스틴이 자신의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달리는 도중 한 다리를 건너가려 하지만, 말은 다리를 건너기를 거부한다. 저스틴은 말을 학대하다시피 때리지만 결국 다리를 건너가지 못한다. 자신의 말을 학대하는 모습은 자기혐오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한편 2부에서 클레어는 불안에 떨며 아들과 함께 골프카트를 타고 도망치려 하지만 같은 다리 앞에서 부딪혀 건너지 못한다. 저스틴과 클레어는 우울과 불안, 그로 인한 자기 파괴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종말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리를 건너 도망치지 못하듯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종말을 맞이한다.
영화는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장면을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는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충돌하는 장면과 그 순간 인물들의 모습들이 느린 속도로 이어진다. 엔딩 장면은 마법 동굴에 앉은 저스틴과 클레어, 레오 위로 멜랑콜리아가 거대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장면과 이어지는 종말의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굴레와 같은 종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두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우리를 압도한다. 우울과 불안, 고독과 외로움을 영화 매체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묘하면서도 경이롭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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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 하네케 - 피아니스트
미카엘 하네케 - 피아니스트
개인의 뒤틀린 내면과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욕망과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 에리카는 경쟁률이 높은 음악대학의 교수로, 그의 실력과 명망은 자타가 인정한다. 겉으로 보이는 에리카는 음대 교수로 번듯하지만, 그의 내면은 황폐하고 메말랐으며, 뒤틀려 있다.
에리카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할퀴고, 헐뜯으며, 비난하면서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이 대목은 매우 상징적인데, 에리카와 그의 엄마는 애증으로 엮인 관계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에리카는 독립해서 혼자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럴 이유도, 경제적 여유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은, 엄마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엄마와 쉽게 분리되지 못하는 정신적 미성숙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엄마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 역시, 에리카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분리불안을 겪고 있는 증거이며, 다른 의미로 엄마가 자신을 지켜주는 '남성'의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리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제자의 옷에 유리병을 깨서 집어 넣어 그 제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게 만들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싸이코패스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있을 수 없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엄마이며, 그의 취미는 포르노 가게에서 혼자 포르노를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에리카의 현재 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그녀가 왜 그렇게 비틀린 욕망을 갖게 되었는가 알 수는 없다. 현재 엄마와의 관계를 미루어보면, 에리카의 엄마 역시 '정상'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내 상상이다.
에리카의 엄마가 젊었을 때, 에리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리카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간다. 에리카의 엄마는 자존심이 강해서 남편을 찾지 않았고, 에리카를 혼자 키운다. 하지만 남편이 자기를 버렸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무너지고, 생활을 위해 굴욕적 상황을 감수하면서 근근이 살아왔다. 그 사이 에리카에게 피아니스트의 재능이 보이자, 엄마는 에리카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에리카의 엄마는 자신의 낮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심리, 남편에 대한 복수심 등이 뒤섞인 감정으로 에리카를 닥달하고, 에리카는 그런 엄마의 기대에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에리카에게 엄마는 유일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변변한 연애조차 해 본 적 없는, 그래서 남자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사랑의 감정이 어떤 건지 알 수 없는 여성이다. 그가 보는 것은 포르노 속의 남성이고, 관념 속의 남성이다. 그런 그녀에게 한 청년, 클레메가 나타난다. 공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피아노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청년, 집안도 훌륭하고, 큰 키에 잘 생긴 외모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 클레메가 에리카의 연주를 듣고 그녀의 수업을 수강 신청한다. 에리카는 반대하지만, 다른 교수들의 찬성으로 클레메는 에리카의 수업에 참가해 피아노 교육을 받고, 에리카에게 애정의 감정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젊고 잘 생긴 클레메의 구애를 거부하던 에리카도 어느 순간 클레메를 받아들인다.
나이는 많아도 연애 경험이 없는 여성과 젊고 잘 생긴 청년의 연애는 처음부터 뒤틀리기 시작한다. 에리카는 클레메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는 온통 변태성욕자의 욕망을 충족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클레메는 화장실에서 처음 만나 섹스를 할 때부터,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만, 에리카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권력을 가졌고, 그녀의 재능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던 클레메는 에리카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에리카의 욕망에 순순히 따르는 듯 하던 클레메였지만, 정도가 지나친 변태성욕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클레메는 에리카의 요구를 거절한다. 뿐만 아니라,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에리카의 태도를 확인한 클레메는 에리카를 비웃고, 천박한 여자라고 비난한다. 클레메 역시 에리카가 드러내는 변태성욕에 호기심을 갖지만, 자신의 존재, 사회적 위치, 집안의 명예 등을 생각해 일정 수준에서 에리카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청산한다. 에리카는 클레메에게 집착하고, 자신의 연주회가 있던 날, 관객으로 들어오는 클레메가 아는 척도 하지 않자, 칼로 가슴을 찌르고 공연장 밖으로 나간다.
욕망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욕망이 자아를 잡아먹기 시작하면, 개인의 자아와 본능은 분열하기 시작한다. 에리카의 내면은 제어할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현실의 삶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음대 교수로서의 정체성보다 변태적 섹스에 집착하는 중년의 여성, 생리가 끝났지만, 면도칼로 자신의 음부를 베어 피를 흘리며 '유사 생리'를 해야만 하는 비참한 집착, 포르노 가게에서 혼자 포르노를 보며 성욕을 해소해야 하는 고독한 상황 속에서 에리카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존재한다.
에리카가 여성이라는 점이 성적 욕망의 억압과 뒤틀린 발현에서 특별한 이유가 될까. 여성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성적 억압의 압력이 남성과 비교해서 훨씬 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영화에서 에리카는 이미 '엄마'의 존재로 인해 어려서부터 미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엄마의 욕망을 투사하고, 엄마의 욕망을 대리 구현하는 존재로서 딸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삶을 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에리카가 칼로 자해하고 공연장 밖으로 사라지는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적 존재로 나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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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의 정수를 쌓아 올리다!
3시간 35분. 극장에서 인터미션 마주할 수 있게 한 <브루탈리스트>는 잊지 못할 영화적 경험을 안긴다. 영화 외적일 뿐만 아니라 영화 내적으로도 잊지 못할 경험을 전한다. 왜 이 영화가 이렇게도 길수밖에 없는지, 긴 시간 동안 왜 우리는 미국으로 간 한 유대인 건축가가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목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끝내 알게 된다. 마치 기나긴 터널을 묵묵히 버티며 끝내 밝은 빛을 맞는 느낌처럼, 영화는 끈질기게 자유를 갈망하는 라즐로의 고통의 나날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다.
파시즘을 피해 미국행을 택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자유의 삶이 아닌 이민자로서 겪는 냉혹한 현실이다. 사촌의 일터에 얹혀살고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참기 힘들다. 부유한 사업가인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서재를 리모델링하는 일을 맡고 유려한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지만, 결과는 되려 거친 항의를 받는다. 결국 사촌 집에서 쫓겨난 라즐로는 막노동으로 근근이 먹고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버럭 소리치던 해리슨이 찾아와 과거 일을 사과하며, 자기 집에 초대를 한다. 이에 응한 라즐로는 그에게 건축물 설계 제안을 받는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여긴 라즐로. 하지만 예산, 시대를 앞선 건축 양식 등 장애물을 만나고, 또 다른 시련을 겪는다.
|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노예다”
<브루탈리스트>라는 영화를 설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자유다. 극 중 등장하는 괴테의 말처럼 라즐로는 파시즘의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배에서 올라와 자유의 공기를 마신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온전한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깊은 늪이다.
영화 초반을 생각해 보면 라즐로에게 미국은 자유의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비친 것만 봐도 그렇다. 라즐로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에게 자유의 여신상은 온전히 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여신은 온전히 그리고 똑바로 미국인들에게만 자유를 선사하는 아이콘일 수 있다.
이렇듯 라즐로는 이민자로서 본의 아니게 차별을 받는다. 한 예로 자신을 미국인으로 칭하고, 기독교 신자인 사람을 아내로 맞이한 사촌은 라즐로의 유일한 구원자인 동시에 철저한 배신자로 나온다. 이유는? 돈값을 못 해서다. 의도가 어떻든 그가 설계한 서재를 보고 화가 난 해리슨 때문에 공사비를 못 받은 사촌은 이 모든 잘못을 라즐로에게 돌리고, 그를 쫓아낸다. 아무리 혈연관계라 해도 미국에서는 이용 가치가 없는 이민자를 곁에 둘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전쟁으로 고향을 도망쳐 나왔지만, 결국 돈의 논리로 선 미국에서도 그가 누릴 자유는 없는 것이다.
| 아메리칸드림 속에 숨겨진 이민자의 수난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라즐로에게 산타가 나타난다. 바로 해리슨이다. 라즐로가 만든 서재 덕분에 유명세를 탄 덕분에 해리슨은 라즐로를 곁에 두고 자신에게 특별하고,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건축물을 지어달라고 한다. 이를 승낙한 라즐로는 그 즉시 헤어 나올 수 없는 족쇄에 채워진다.
미국과 자본주의의 결정체로 보이는 해리슨은 돈으로 라즐로의 재능을 산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착취한다. 겉으로는 선의를 배푸는 척하지만, 그의 속내는 어떻게든 라즐로의 재능을 빼먹을 궁리만 하는 것. 이런 속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자신이 고용한 이들의 입을 통해 경비 감축 등의 이유로 라즐로를 압박한다. 라즐로의 예술성만큼이나 해리슨에게 중요한 건 돈이다.
생각해보면 해리슨이 이 건축물을 짓는 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것도, 마을 공동체를 위한 것도,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예술 건축물을 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명예 도취. 있어 보이기 위한 과식욕의 매개체를 만드는 것뿐이다. 예산 때문에 단 몇 미터를 줄이는 것에 분노하는 라즐로를 겉으로 이해하지만, 그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해리슨의 모습은 마약 같은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가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그 예술성을 탐닉하고 어떻게든 동경을 넘어 빼앗고 싶어 하는 모습. 해리슨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는 ‘록펠러와 살리에리 중간쯤’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한 바 있다. 해리슨의 모습은 유럽의 아름다움을 오로지 돈으로 사서 만들려고 했던 미국의 민낯과도 일치한다. 이를 보여주듯 극 중 해리슨은 라즐로는 정신적으로, 성적으로 착취한다. 결국 미국은 이런 예술가들의 피와 땀, 눈물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66:1의 화면비, 비스타비전이 주는 폐쇄성<브루탈리스트>는 현재는 거의 쓰지 않는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되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이 화면비를 고수한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라즐로 등 이민자들이 느끼는 폐쇄성을 오롯이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영화는 조피아의 취조실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지는 장면은 짙은 어둠 속 배 안에서 가판으로 올라가는 라즐로의 모습이다. 마치 감옥처럼 느껴지는 통로를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데, 보는 입장에서는 시네마스코프와 달리, 비스타 비전만의 폐쇄성이 느껴진다. 이후, 이 화면비로 보이는 라즐로의 여정 또한 어딘가 모르게 갇힌 듯한 느낌을 전한다.
결국 영화는 이 비율을 통해 미국에 와서도 온전히 자유를 찾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듯한 라즐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감옥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그의 모습. 어떻게 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만의 감옥은 그가 마약을 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루탈리즘을 소재로 한 영화는 건축처럼 대칭과 반복 등의 구조적 특징을 오롯이 펼친다. 조피아의 얼굴로 시작해 조피아의 얼굴로 끝내는 영화는 인터미션을 기준으로 1막 ‘도착의 수수께끼’, 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은 수미쌍관 구조를 가져간다. 특히 혼자던(1부), 가족과 함께 하던(2부)는 미국이란 땅에서 그는 자유가 아닌 감옥신세라는 걸 동일하게 보여준다. 극중 에르제벳이 말한 것처럼 이들에게 미국은 썩은 나라이며, 말을 하지 않던 조피아는 결혼과 동시에 약속의 땅이스라엘로 떠난다.
|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예술이자 목적지!
끝내 완성한 건축물은 해리슨이 아닌 라즐로의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나라에서 죽어가는 예술혼은 끝내 지난한 여정을 관통하며 우뚝 솟아오른다. 이 건축물은 파시즘으로부터 도망친 이후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속 아픔과 인생이 녹아 있다. 후반부 라즐로를 강간한 사실을 에르제벳의 입을 통해 공개된 이후 해리슨은 이 건물로 도망치는데, 그때 비로소 이 건축물의 내부가 온전히 공개된다. 마치 자신과 에르제벳이 경험했던 감옥이 이 공간에 녹아져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어둡고 폐쇄적이며, 기도 공간에서는 햇빛에 비치는 십자가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한다.
라즐로의 내상과 에르제벳의 외상이 합쳐져 완성한 듯한 이 건축물은 결국 이 부부가 겪은 아픔과 인생을 응축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브루탈리즘은 ‘날것 그대로의 콘크리트’(Béton brut)라는 어원이 말해주듯, 아무런 장식 없이 콘크리트로 구축한 이 건축물은 누군가에게는 흉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시련과 고난을 버텨 끝내 자유를 찾고자 노력한 이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나이가 든 조피아는 라즐로의 예술을 전시하는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이 아무리 유린당해도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여정이 아닙니다.” 미국의 삶을 접고 예루살렘에 온 라즐로가 조피아에게 했던 이 말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어떻게든 삶의 인장을 남긴 라즐로와 에르제벳, 그리고 수많은 이민자를 향한 찬사다. “어떤 격변이 있어도 오래 살아남는 것을 만들기 위해 건축을 한다”는 라즐로의 답은 이민자들의 역사를 바탕으로 세워 올려진 미국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과연 미국은 누가 세웠는가!
사진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4.0 / 5.0
한줄평: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의 정수를 쌓아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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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는 거침없는 한 사내의 사건![1탄/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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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상존재> 티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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