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영화의 장르를 따로 가리지 않고 잘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전체관람가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은 어른이 보기에 너무 유치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 잘 보지 않았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영화가 있다. 바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이다. 동화를 원작으로 했던 본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에 이어 11년 만인 2025년 6월 11일, 속편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이 개봉했다. 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을 먼저 보았는데, 이내 주인공들에게 매료되어 이전 작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만큼 좋은 인상을 남긴 영화 애니메이션이다.
개봉 : 2025.06.11
등급 : 전체관람가
장르 : 애니메이션
국가 : 프랑스
러닝타임 : 80분
감독 : 장-클리스토페 로저, 줄리엔 청
소개 :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은 절친, 음악가 곰 ‘어네스트’와 꼬마 생쥐 ‘셀레스틴’! 둘은 ‘어네스트’의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러 그의 고향 ‘샤라비’로 향한다. 오랜만에 찾은 거리에는 음악이 금지되어 침묵만이 흐르고 ‘어네스트’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는데… 사라진 멜로디를 되찾기 위한 ‘곰’과 ‘생쥐’의 특별한 우정이 다시 시작된다!
영화는 전편에 이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함께 지내는 집에서 시작된다. 꼬마 생쥐 셀레스틴이 음악가 곰 어네스트의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기 위해 머나먼 어네스트의 고향, 샤라비로 향하면서 이야기의 막이 열린다. 샤라비에는 음악이 불법이 되어있고(2000년대 애니콜 Talk Play Love 뮤직비디오가 생각났다..^^) 음악을 되찾기 위한 두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다. 1편이 셀레스틴과 그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엔 어네스트와 그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줄거리와 별개로 내가 생각하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 의 관전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동화 같은 따뜻한 작화와 음악, 프랑스 영화 특유의 자유로운 표현, 그리고 순수한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점들이 짜임새 있게 잘 연결되어 하나의 영화에 녹아있는데, 그걸 잠시 해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동화같은 따뜻한 작화와 음악
요즘 극장가에서 2D, 그것도 이렇게 질감이 살아있는 작화를 보기가 정말 힘들다. 게다가 동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 영화를 이렇게 원작을 살려 잘 구현한 경우는 더더욱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동화 작화 스타일의 2D 애니메이션 특유의 따뜻하고 아날로그 한 느낌이 귀여운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 완성도를 높인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멜로디 소동이라는 제목답게, 각종 클래식 악기들이 아름다운 선율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바이올린뿐 아니라 미파솔의 색소폰, 그리고 음악보존협회의 타악기들까지 현, 관, 타를 아우르는 악기들로 유럽 스타일의 풍성하고 클래시컬한 OST를 선보인다. 극장에서 이런 음악을 들은 것이 언제인지..! 양질의 음악을 장르 없이 사랑하는 나에게는 무척 귀한,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였다.
프랑스 정서의 개성있고 독창적인 표현법
이런 아름다운 작화와 음악은 프랑스 영화 특유의 표현들과 만나며 시너지를 낸다. 1편에서도 그런 표현들이 두드러졌었다. 과감한 구도는 물론이고 물감을 뿌려서 계절의 변화를 표현한다든지, 차를 물감으로 지워버리거나, 두 주인공의 꿈속 장면들이 그러하다. 스포가 될까 봐 말하진 못하지만, 2편 역시 이처럼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표현법을 사용한다. (특히 추격전이 인상적이다) 동화에서는 주인공의 상상이 곧 현실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한순간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도 그게 뜬금없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그런 걸 프랑스 영화가 참 잘한다. 그림과 음악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하나가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모든 대사가 우리에게 낯선 프랑스어인 점도 이런 개성 있는 애니메이션 구성과 합쳐져 색다른 매력을 만든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셀레스틴, 어네스트 하고 부르는 그 억양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함께하는 삶을 필사적으로 지키는 주인공들이 전하는 가치
마지막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명확해 그를 이해한 어른 관객들에겐 영화가 전혀 시시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편도 1편에서 그랬듯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이야기는 태어난 환경, 가족, 주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것을 제안한다. 생쥐 직업 중 최고라고 불리는 치과 의사보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셀레스틴처럼 어네스트도 가족들이 원하는 꿈보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살아왔다. 이 "주체성" 은 단지 내 일이나 꿈에만 지나지 않고 이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선택했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영화 소개 글에서는 둘의 우정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들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느꼈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닐뿐, 서로를 위해 굳은 일을 기꺼이 해내고 가장 변하지 않는 소망이 서로와 함께하는 삶인 게 어찌 순수한 사랑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저 곰과 생쥐의 귀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네스트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셀레스틴의 모습을 보며 나의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이들은 원하는 일과 가족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멋지지 않은가? 가끔은 현실을 이상이 버티게 해주기에 이상적인 이야기도 필요하다. 살아가는 데에 돈과 명예도 물론 필요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순수한 마음도 중요했다는 것을, 사회에 물든 어른에게 다시 알려주는 아주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여운이 남는, 그리고 재밌게 보기 좋은 영화라고 느꼈다. 셀레스틴, 어네스트 어딘가에서 함께 행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