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3 00:00:00
나의 뒷모습 보기
다른 모든 단어가 그러 하듯이, ‘예술’이라는 단어 또한 무수하게 많은 유동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술이 우리가 흔히 문화예술이라 부르는 영상물, 회화, 음악, 문학 등의 창작물들을 아우르는 분야를 일컫는 말이라고 했을 때, 왜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할까?
늘 생각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들 중 가장 크게 오해받고 있는 것이 예술인 것 같다.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를 해석할 줄 모른다는 식의 엘리트주의적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엘리트 계급의 전유물이라는 편견 또한 제일 큰 오해 중 하나니까. 내가 생각하는 오해의 가장 큰 요인은, 예술이 스스로를 입증하는 데에 너무 자주 실패한다는 점이다. 예술에는 많은 정보값이 들어있다. 그것이 예술 작품을 만든 창작자들의 잘못일 수도 있고 그 작품들을 유통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예술의 역할은 가진 정보값을 전달해 수신자가 모종의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이고, 그 영향에 대해 대중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어쨌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많이 없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보다가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영화를 만나게 되는 건 무더운 한여름 차가운 보리차를 들이키는 것처럼 상쾌하고 시원한 경험이다. 영화가 하는 역할에 대해 영화라는 방식 그 차제로 18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영화라니, 살아가며 중간중간 이런 영화를 봐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또 다른 영화들을 보며 살아가는 일은 뜨듯미지근한 물만 마셔야 하는 여름처럼 답답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는 어떤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막스가 될 만한 내러티브 또한 없다. 그저 배경이 되는 타이페이의 모습이 보여지고, 거기에 살고 있는 주인공 가족들이 등장하고,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겪는 일상들을 계속해서 나열해 보여준다. 누군가들에게는 충격적이기도 하고 ‘막장’이라 할 수 있을만한 자극적 사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일들은 늘상 일어난다. 결혼식, 장례식, 아픈 가족, 가출, 첫사랑,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진심, 사기 당해 날린 돈, 그리고 살인, 이 중에서 살면서 실제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전부 일상적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한 데 모아서 영화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 뿐.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영화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삼촌은 자기 뒷모습을 못 보니까 내가 찍어 줬어요.”
영화가 삶을 왜곡없이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삶을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굳이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비추어 볼 필요는 없을 테지만, 내가 주목하지 않고 지나쳤던 어떤 것들을 확대해 보여준다거나, 존재하는지 몰랐던 것들을 알려준다거나 한다면 하루에 몇 편이라도 시간을 내어 볼 의미가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이 영화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 계속해서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굴곡진 거울이다.
에드워드 양이 말하는 영화는 양양이 찍는 사람들의 뒷모습 같은 것이다. 나에게 뒷통수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사람의 뒷모습 자체가 새롭거나 의미있는 일은 전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 뒤통수를 찍어서 나에게 사진으로 건네 준다면 그것은 특별한, 어떻게 보면 특별 보다는 특이에 가까운 비일상적 순간이 된다. 나의 뒷모습이지만 그것을 찍은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사진이라는 틀 안에 담긴 새로운 이미지의 탄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예술로 만들어 준다니, 게다가 개인적인 이야기가 보편적이 되기도 하고 보편적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다니, 이처럼 신기하고 의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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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