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24-12-11 23:59:08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4)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4)
감독: 팀 밀란츠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등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8분
국가: 아일랜드
개봉일: 2024.12.11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석탄 사업을 운영하며 다섯 딸과 아내를 착실하게 부양하고, 직원들과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아는 따뜻한 아버지이자, 남편, 이른바 좋은 어른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가족들을 마주하기 전에 석탄을 나르느라 새카매진 손을 깨끗하게 씻는 세심함을 가졌고, 직원들의 식사를 풍족하게 챙겨주거나 길가에서 만난 이웃집 어린 학생에게 잔돈을 나눠줄 정도로 사려가 깊어 주변으로부터 잔걱정을 사기도 한다.
화목한 가정 속에서, 보통의 중산층 가정처럼 적당히 살림살이나 걱정하며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을 줄 알았던 빌. 하지만 현실의 비참함을 나타내는 듯한 장면들을 몇 차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그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고 어딘가 불편해하는 듯한 모습을 계속 비친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수녀원에 들어가던 소녀, 추위에 떨며 음식을 찾아다니는 얇은 옷차림의 어린 남자 아이, 술 주정뱅이 부친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딸 아이의 친구. 자꾸만 안타까운 순간들이 눈에 밟히고, 이는 새벽 같이 깨어난 그의 눈앞에 선연한 잔상으로 나타난다.
말 없이 사색에 잠긴 그가 회상하는 장면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이다. 빌의 어머니는 부유한 윌슨 부인의 집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미혼모였고, 윌슨 부인은 빌을 가족처럼 보살폈다. 어디까지나 주인댁에 얹혀사는 입장이었기에 어린 빌의 표정과 행동거지가 편안해 보이진 않았지만, 윌슨 부인도, 어머니와 함께 집안의 일을 돕던 하인 네드 아저씨도 어린 그에게 따뜻함을 베풀었다. 그의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나왔으나 아내인 아일린이 그에게 어려움을 모르고 살지 않았느냐고 언급한 것을 보면, 윌슨 부인은 빌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를 돌봐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빌이 이따금씩 어머니가 살아 계셨던 시점의 먼 과거를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빌은 그때 그 수녀원에서 석탄 배달을 하던 중 눈물로 고통을 호소하는 소녀, 세라를 만난다. 임신한 몸으로 석탄 창고에 갇혀 있던 세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눈물이 맺힌 눈동자에는 고통 어린 진실이 숨어있는 듯했다. 세라를 데리고 수녀들을 찾아가 수녀원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된 빌은 오랜 시간 마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수녀원에 감춰진 이면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엔딩에서 막달레나 세탁소로 밝혀진 이곳은 미혼모, 성매매 여성, 성폭행 피해자 등 성적 윤리에 어긋난 여성들을 데려와 강제 노동을 시키는 곳이었다. 감옥과도 같은 공간에 갇힌 채 바닥을 닦고, 세탁을 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노동에 동원되고 있는 수많은 소녀들.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기쁨도, 행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녀원의 원장은 빌로 인해 이곳의 어두운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걱정했다. 원장은 빌을 따뜻한 집무실로 안내해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물론, 세라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라는 행동들을 의도적으로 전시한다. 그리고는 크리스마스 편지와 함께 현금을 두둑이 챙겨주며 그에게 침묵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원장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던 빌은 못 이기는 척 선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빌은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풍족한 생활과도 거리가 먼 중산층의 가장이며, 그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여섯이나 있다. 수녀원과 척을 졌다가는 학교를 다니는 딸들에게 피해가 갈 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마을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그의 사업 운영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그의 아내와 가까운 지인들도 때로는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하는 일이 있다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빌을 타이른다. 하지만, 빌은 여전히 그 소녀를 구하고 싶다는 미련을 놓지 못한다.
빌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던 소녀에게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이름 또한 세라다.) 그의 어머니 또한 미혼모였고, 윌슨 부인 같은 선량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가족에게 버림 받은 채 이런 곳에서 강제 노동의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추위에 온몸을 부르르 떨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자신을 향해 구출을 빌었던 세라가 그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빌은 더욱 소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타인이 내밀어 준 사소한 손길 덕분에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던 그이기에, 자신이 세라에게 베풀 수 있는 행위가 가진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빌은 소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기로 결심한다. 모두가 그녀의 고통을 외면했지만, 그만큼은 윌슨 부인과 네드 아저씨가 자신에게 그러했듯, 사소한 선의를 전해보기로 한다. 훗날 갈등을 불러올지도 모를 행동으로 인해 본인 앞에 힘든 나날들이 이어진다 할지라도, 그 작은 손길이 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바꿔줄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걸 몸소 겪어 보았기에 현실 속 어른들의 사정은 뒷일로 미루기로 한다. 고통 속에 파묻힌 한 아이에게 빛이 들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분명 가치있는 것일 테니까.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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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