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25-03-03 00:20:28
이야기를 타고 내려오는 다정함
‘당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문제는 국내외 다양한 영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년 개봉했던 재일조선인 박수남 감독님과 박마의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2019년 개봉한 강상우 감독님의 <김군>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단순히 로맨스나 성장스토리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화이트 버드>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이후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
<화이트 버드>에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었던 줄리안은 새로운 지역으로 전학을 가고, 새로운 학교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의 할머니 사라는 그런 그에게 차 한잔을 권하며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을 구해주었던 줄리안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형식적으로만 바라본다면 흔히 현재 줄리안과 사라가 사는 시점의 이야기인 외화와 어린시절 유대인 소녀 사라와 다리가 불편한 소년 줄리안의 이야기인 내화로 구성된 단순한 액자식 구성이지만, 더 나아가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세대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인 줄리안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는 점에서 포스트 메모리의 관점으로,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맺는 상호적 관계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사라는 어린 시절 유대인으로서 2차 세 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따돌림을 당하던 소년 줄리안의 도움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자로 취급 받고, 차별 받던 줄리안의 작은 배려와 선의는 무너져가는 사라의 일상을 구하고, 두 소년 소녀는 어두운 상황 속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 되어준다. 영화의 마지막, 사라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서로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성장을 통해 많은 것들이 잊혀도 일상 속 다정함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나치의 집권과 유대인 학살, 수용소로의 연행, 검문 등 두 소년 소녀의 성장과 러브 스토리 뒤로는 사라와 줄리안의 일상 곳곳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2차 세계 대전의 역사가 계속해서 등장하며 당대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마리안느 허쉬는 ‘메모리’ 대신 ‘포스트메모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후 세대들이 어떤 방식으로 트라우마적 사건과 역사에 접속하는 지에 집중하고, 이후 세대는 직접적 경험이 아닌 사진이나 부모가 들려주는 ‘잠자리 이야기(bedtime story)’를 통해 이러한 기억들과 간접적으로 매개 된다고 본다. <화이트 버드>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줄리안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접하는 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은 포스트메모리가 되고, 차 한잔과 함께 시작한 할머니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사진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의 기억과 줄리안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라가 손자 줄리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줄리안이 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긍정적으로 변화 시키는 모습은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과거와 현재의 능동적인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사라의 유년 시절은 달라진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다정함’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통해 현재와 연결된다.
국적도, 세대도 다른 나 역시 <화이트 버드>를 통해 사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나의 삶과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줄리안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태도를 성찰 해 볼 수 있었 듯, <화이트 버드>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들에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사건은 종식되었지만, 동일한 사건이 아닐 뿐, 현재 세계 곳곳과 작은 일상 곳곳에서도 늘 크고 작은 분쟁과 권력의 남용, 무분별한 차별과 편 가르기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 속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건,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여전히 소년 줄리안이 사라에게 내밀었던 손처럼 작은 관심과 선의가 아닐까? <화이트 버드>는 사라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통해 작은 다정함과 선의의 위대함을 손자 줄리안을 넘어 관객들에게 까지 전한다.
* 위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의 자격으로 <화이트 버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1
- 200
- 13.1K
- 123
- 10M
-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