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25-04-05 17:05:37
삶과 영화의 가능성
영화는 평범한 방에서 평범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비추며 시작된다. 헨드헬드로 촬영한 구도나 인터뷰 영상처럼 연출된 화면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림보 스테이션은 어딘가에 있을법한 평범한 장소이며, 시오리는 현실 세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현실과 환상 사이의 불분명함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떠올린다. 모호한 경계에서 <원더풀 라이프>는 영화로써 삶을 조명한다.
기억은 주관적인 것이라며, 대신 꿈이나 미래를 선택하면 안되냐고 묻는 이세야의 질문에 카와시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한다. 삶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있음에도 반드시 스스로 기억을 선택해서 연출하도록 한 설정은 영화의 주요한 메세지를 관통한다. 사실은 순간에 불과하다. 비디오 테이프와 기억에 기반해 연출한 영화는 다르듯이 우리가 떠올리는 기억은 주관적이다. 순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흘러가야만 하는 우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 기억, 비디오 테이프가 아닌 영화이다.
달은 이와 관련된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모치즈키는 달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매일 똑같은 달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시오리에게 나카무라는 '늘 똑같더라도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니 달은 참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카무라는 림보의 책임자이며, 이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관찰자에 머무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장면은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듯하다.
마지막 무렵에 영화에 등장하던 달이 사실은 그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 지점에서 달은 영화와 연결된다. 인물들이 달이라고 믿던 것은 사실 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이라고 믿었던 마음은, 그들이 느낀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림보에서 찍는 영화는 비디오테이프와 동일할 수 없고, 우리의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할 것은 사실이 아닌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영화를 찍는 시선 역시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유사하다. '무엇을 찍을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찍을지'이다. 그때 영화는 하나의 삶이 된다.
모치즈키는 쿄코가 마지막 기억으로 자신을 선택한 것을 알게 된 뒤 비로소 기억을 선택한다. 50년 동안 행복한 기억을 찾아 헤맨 뒤 자신도 누군가의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모치즈키의 기억을 촬영하는데, 쿄코와의 순간이 아닌 림보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한 것이 밝혀진다. 빛의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달처럼,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자신도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모치즈키는 다시 한 번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동료들과 함께 기억을 연출하고 추억을 선물하며 지내온 림보에서의 50년 세월도 삶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억을 선택하는 과정은 자신의 시선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와타나베는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던 자신을 회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삶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결국 와타나베는 아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러간 기억을 선택한다. 그저 그런 삶, 그저 그런 결혼 생활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어쨌건 그의 삶은 그곳에 존재했다. 향수와 회한이 섞인 그 추억은 와타나베가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는 야마모토는 기억을 선택하면 나머지를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여기며 어릴 적 어둠 속 옷장에 숨은 기억을 선택한다. 선택의 가치는 선택할 수 있었던 것에서 온다. 삶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 위에 놓인다. 야마모토의 선택은 사실 선택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삶의 요소들을 마주하고 선택하기를 회피함으로써 선택의 가치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와타나베의 말은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기억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세야는 회피하는 대신,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진다. 이세야는 젊은 인물이며 배우 본인의 이름을 사용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과 영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긍정하는 감독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부드러운 영상미가 설득력을 더했다. 조금 더 깊게 고민한 <어바웃 타임> 같았다. 삶에 대하여, 어찌보면 간편한 대답일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겸허한 마음이 느껴져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작성자 . null
- 1
- 200
- 13.1K
- 123
- 10M
-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