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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2025-04-07 15:34:19

밤의 끝을 향한 비행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비밀을 목격하곤 한다. 사소하고 작은 비밀부터 타인에게 영향을 줄 만한 큰 비밀까지, 여러 비밀을 두고 우리는 입을 다물 것인지, 밝힐 것인지의 갈림길 앞에 놓이게 된다. 어떤 비밀은 관여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숨겨지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와도 관련되어 있어 밝히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숨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정말 옳은가?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또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영화 <올빼미>는 누군가 독살당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목격한 인물을 내세우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만약 우리가 이 인물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러한 질문 속에서 영화는 낮과 밤, 빛과 어둠, 그리고 볼 수 있는 이와 볼 수 없는 이를 두고 끊임없이 빛을 옮긴다. 해당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역사를 각색한 만큼, 역사적 사실과 영화의 내용을 비교해 짚어가기보다 <올빼미> 속 각색된 인물들과 관계 구도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화의 주인공인 천경수는 맹인 침술사로, 빛이 있는 곳이나 밝은 대낮에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어두운 곳이나 밤에는 흐릿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신경 감각들의 발달로 발소리와 숨소리만을 듣고도 환자를 진단하고 침을 놓는 데에 용한 실력을 보인다. 덕분에 침술사를 찾던 어의 이형익의 눈에 들고, 실력을 인정받아 궁의 침술사로 일하게 된다.

궁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을 때 경수는 기뻐하며 웃는다. 아픈 동생의 약값조차 낼 수 없던 어두운 현실에서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신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값이 밀려 더는 약을 내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경수는 외친다. 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약값을 낼 수 있다고. 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러나 경수가 조금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들어온 궁에는 그 무엇보다 어둡고 무거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살아남기 위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거짓말로 스스로 눈을 가렸던 경수는 가린 손 틈으로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경수는 독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그리고 나아가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하도록 명령했다는 것을 눈치챈 유일한 이다. 이때부터 경수에게 궁은 밝은 미래의 공간이 아니라 어두운 현실을 숨겨둔 감옥이 된다.

영화의 제목인 올빼미는 야행성 조류로, 낮보다 밤에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에 암흑 속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올빼미는 작중 주인공인 천경수와 닮아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낮에는 지팡이나 동행인 없이 앞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지만, 밤이 되면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설정은 경수의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인물들이 무방비하게 경수에게 약점을 내비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는 작중 초반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가 경수의 앞에서 옷을 모두 벗는 모습에서부터 예고된다. 앞을 볼 수 있는 형익은 가림막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경수는 가림막 너머로 와 침을 놓는다. 이때 경수는 보이지 않는 척 손을 덜덜 떨면서도 들키지 않게 침을 꽂는다. 당시 촛불이 꺼지며 안이 어두워져 조씨의 몸을 볼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을 유지해 안전해지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작중 중심 사건의 예고에 불과하다. 경수가 아예 앞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 형익은 소현세자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경수와 함께 침전으로 향한다. 그리고 경수를 앞에 두고 경수의 청각을 속여가며 소현세자에게 멀쩡히 침을 두는 척 행동한다. 범행을 공모하지도 않은 경수의 앞에서, 형익은 청각만 속이면 경수가 알지 못하리라 방심한 채 태연히 소현세자를 독살한다. 이때 촛불이 바람에 꺼지면서 경수는 소현세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만, 앞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척 들키지 않게 군다. 순간 경수를 의심한 형익이 경수의 눈앞에 침을 들이밀지만 명주천의 물기를 짜는 척 주먹에 힘을 꽉 준 채 눈을 뜨고, 천이 더 필요한지 묻는다. 형익은 다시 안심하고 범행을 이어가고, 경수는 모두가 잠든 밤, 자신이 목격한 독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소현세자 독살 사건의 진범, 목격자는 오직 하나. 위험을 무릅쓰고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할 것인가, 눈을 감고 낮이 오길 기다릴 것인가?

 

 

 

영화는 빛의 양에 따라 앞을 보기도, 보지 못하기도 하는 경수를 두고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며 본다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먼저 경수는 초반부터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궁궐 안 사람들에게 침을 놓을 때를 비롯해 모든 순간, ‘소경이 보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눈앞을 완전히 가린다. 자신과 같은, 힘이 없는 약자는 보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도 소현세자가 경수의 주맹증과 관련된 진실을 덮어줬기 때문에, 죽기 직전 경수의 사형 집행을 맡은 병사들이 경수를 못 본 척 살려주었기 때문에 순간순간마다 살아남기도 했다.

그러나 약하다는 이유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감추는 것만이 옳을까. 경수가 어두운 곳에서는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현세자는 경수와는 반대의 관점에서 그를 바라본다. 살기 위해 눈을 가렸다는 경수의 비밀을 못 본 척 감추어 주면서도 안 보고 사는 게 몸에 좋다고 하여,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하며 경수에게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청에서 가져왔던 확대경을 선물한다.

지금껏 경수는 빛의 양이 적은 곳에서 흐릿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었고, 그 얕은 시각에 기대어 편지를 쓰거나 업무를 해 가며 연습해왔다. 그러나 경수가 쓴 글씨들은 흐릿하게 봤을 때는 멀쩡해 보여도 올바르게 쓴 글씨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확대경으로 자신의 글씨를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경수는 그제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에도, 봐 왔던 것에도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소현세자가 확대경과 함께 건넨 제대로 보는 힘을 가지게 되면서, 경수는 지금껏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를 다시 볼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인조는 보이는 것을 외면해야 할 때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청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청의 문물들을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꺼내놓자 명의 편에 서야 한다고 강경하게 거부한다. 명은 이미 쇠락해 힘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지만, 인조는 이전에 청에게서 얻은 굴욕을 잊지 못해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청에게 등을 지려 한 것이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하며 인조에게 새로운 시각을 건네려 들자 인조는 자신의 권력에 소현세자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그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인조와 인조의 후궁인 조씨가 공모해 형익을 시켜 소현세자를 독살시켰다는 진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인조는 진실을 외면한 채 소현세자를 죽인 진범을 찾으라며 아들의 죽음을 대하는 보통의 왕의 구색을 갖추려 든다.

 

명은 이미 쇠락했다는 진실을 말하던 소현세자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자 그를 독살했듯, 인조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은 없애고 진실을 감추려 든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 세자빈이 찾아오자 세자빈의 가문에서 선물한 전복죽에 독이 들어 있었다며 누명을 씌워 가두고, 경수가 최 대감을 도와 진실을 밝히려 하자 최 대감에게 권력을 주겠다는 말로 소위 말하는 합의를 봐 가며 왕의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소현세자는 학질로 사망했고, 궁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자신은 아들의 비통한 죽음에 깊이 통감하는 왕일 뿐이라는, 허울뿐인 이야기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중 소현세자는 경수보다 이전에 인조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말했던 인물이다. 청에 끌려갔다 8년이 지나서야 돌아온 그는 청에서 보고 겪었던 것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인조에게 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때 인조는 나지막이 대답한다.

 

, 보는 눈이 바뀌었구나.


소현세자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해당 장면에서, 인조는 소현세자를 적대시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결국 소현세자를 죽이기로 공모한다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진다.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한 자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현세자의 죽음을 경수가 목격하면서 그 새로운 관점은 경수에게로 옮겨온다. 지금껏 따라왔던 이형익이 소현세자에게 독침을 꽂아 그를 독살하려 한 진범이었다는 진실의 면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지금껏 이형익과 윗선의 명만을 따라온 경수에게 능동적으로 선택할 선택지를 부여한다. 보는 눈이 바뀐 소현세자는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해 죽었고, 진실을 알게 된 경수 또한 보는 눈이 바뀌었다. 이제 선택은, 숨겨져 있던 진실을 목격한 경수에게 달려 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할 것인가, 덮어두고 기존의 것들만을 바라볼 것인가?

 

-2. 낮과 밤의 전복 새롭게 창조되는 세계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들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자는 단연코 주인공인 천경수다. 경수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거나 안내인과 동행해야만 대낮에도 길을 걸을 수 있다. 어두워지면 흐릿하게나마 사물과 글자를 인식할 수 있지만, 그를 당당히 밝힐 수도 없다. 경수의 대사처럼, ‘보이더라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야만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궁의 왕족들은 경수의 머리 위를 점한다. 경수에게 침을 맞는 중전도, 소현세자도, 인종도 모두 여차하면 경수를 영원한 어둠 속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수는 궁의 비밀을 알아도, 알지 못해도 암흑 속에 있는 것처럼 허우적대야 한다.

그러나 진짜진실을 모르는 건 경수가 아니라 궁의 왕족들이다. 그들은 경수의 눈이 완전히 멀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경수가 어둠 속에서는 앞을 가로막은 암흑을 걷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무방비하게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궁의 왕족들에게, 경수는 천천히 침을 꽂는다. 이는 다시 말해 왕족들에게만 경수의 목숨이 달린 것이 아니라, 경수에게도 왕족들을 위협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작중 형익의 침을 맞아 독살당하던 순간, 소현세자는 눈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조용히 죽어간다. 진실이 가려지던 그날 밤, 어둠이 드리워진 곳이 곧 낮이나 마찬가지였던 경수는 모든 걸 목격한다. 이 순간, 경수가 보았으나 보지 못한 것처럼 넘어갔던 장면들이 다시금 돌아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다. 인조의 후궁이었던 소용 조씨가 형익에게 무언가를 건네던 순간, 그리고 무언가를 건네받은 형익이 독이 묻은 침으로 세자를 독살하는 순간. 경수는 그 순간에는 형익의 의심을 피하고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굴었지만, 다시 돌아와 형익이 미처 제거하지 못했던 침 하나를 손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침을 회수하려 왔던 형익을 피해 달아나며 소동을 벌이게 되고, 밤중 병사로 꾸며져야 했을 소현세자의 죽음은 독살범이 있다는 의혹과 함께 논란이 된다. 증거는 가졌으나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경수는 세자의 편이 될 수 있는 이들을 떠올리다 세자빈을 찾아가지만, 인조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며 찾아온 세자빈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워 옥에 가둔다. 경수는 이후 형익이 받아 구석에 숨겨두었던, 세자를 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던 문서를 찾아 최 대감을 찾아간다. 그러나 최 대감은 인조가 소용 조씨를 통해 건넸다던 그 문서의 필체와 공식 문서의 필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이 묻었던 침, 소용 조씨가 건넸던 문서. 모든 증거를 직접 가져왔던 경수는 원손의 도움으로 인조가 의심을 피하고자 다른 손으로 비밀 문서를 적었다는 사실을 알고, 왼손으로 쓴 공식 문서를 얻기 위해 나선다. 이때 경수의 무기가 되는 것이 바로 이다. 그는 형익이 보낸 것처럼 당장 침을 놓아야 마비가 멎는다고 속이고 왕의 침소로 잠입한다. 그리고 인조에게 침을 놓아 오른손에 마비가 오게 만든다. 이 때문에 급히 문서 작성을 요청하는 우승지 앞에서 인조는 왼손으로 글씨를 적게 된다. 옥새를 찍기 직전 형익이 달려와 경수가 범인이라고 외치지만, 경수는 그 순간 인조에게 침을 놓아 모든 신경이 마비되도록 만들고, 왕을 인질로 삼아 사람들을 무른 뒤 문서에 옥새를 찍어 들고 달아난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인조는 경수의 말에 벌벌 떨고, 숨겨져 있던 진실은 경수의 힘을 통해 바깥으로 드러날 위기를 맞는다.

 

경수는 증거품을 전달한 뒤 계획대로 궁을 나가려다 문지기들이 형익이 원손을 치료하러 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다시 궁 안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아들이자 장차 인조를 압박할 수 있는 원손에게 형익이 독침을 놓으려는 것을 목격한다. 경수는 다시금 침을 무기로 사용한다. 그가 쓰던 독침을 형익에게 놓아 형익을 쓰러뜨린 뒤, 경수는 원손을 업고 달려 나온다.

그러나 경수가 불을 붙여 타오르기 시작한 얕은 빛은 곧 흐릿해진다. 경수가 원손을 업고 최 대감을 찾던 도중 날이 밝아오고, 어둠 속에서만 앞을 볼 수 있는 경수는 시야가 흐릿해져 가야 할 방향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정처없이 떠돌다 인정전에 당도해 옥좌에 앉아 있던 인조의 앞에 서게 된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것을 밝힌 경수의 앞에 밝혀진 것조차도 감출 수 있는이들이 등장한다. 경수가 증거품만 가져온다면 진실을 밝혀줄 것 같았던 최 대감은 경수가 몸을 날려 구해왔던 증거물을 들고 인조를 찾아간다. 그러나 인조의 회유 끝에 자신의 권력을 챙길 수 있는 선을 계산하며 합의를 하기 시작한다. 옥에 갇힌 세자빈이 믿었던 마지막 빛, 최 대감은 언제든 꺼질 수 있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얕은 빛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힘을 발휘해 독살의 증거를 확보했던 경수는, 인조와 최 대감의 아침 앞에서 무력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수가 보이는 것을 밝혀도 권력 구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세자빈의 죽음과 원손의 죽음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이들이 까맣게 타 들어간 현실을 조명한다.

 

-3. 끝나지 않은 밤

 

그러나 영화 속 세계는 그 지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수의 눈을 가리고 끌고 가라고 명령할 수 있는 힘이 인조에게 있었다면, 인조의 명령을 받드는 이들에게도 거부할 힘이 있다. 최 대감이 인조와 합의를 본 뒤 나와 사람들에게 독살자는 없다고 선언하자 경수는 따라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았다고 소리친다. ‘주상이 이형익을 시켜 세자 저하를 독살했다는 경수의 외침에 인조는 화가 나 검을 들고 소경이 나를 능멸한다고 소리치다 넘어져 머리에 피가 흐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왕실 사람들은 인조를 돕지 않는다. 오히려 차가운 시선으로 인조를 바라볼 뿐이다. 궁녀, 내시, 호위, 누구라고 지칭할 것 없이 모두 드러난 진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경수를 침수시켜야 했던 내금위는 경수의 목을 치려다 말고 내금위장에게 우리 모두보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가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는데 이럴 수는 없다며 그 힘을 거부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 눈을 떴기 때문에 경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4년 뒤, 마비가 심해진 인조의 앞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이 순간 비로소 낮과 밤은 거꾸로 뒤집힌다. 경수가 도움을 청하고자 했던 왕실 사람들은 억울하게 끌려가거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며 인조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경수는 흐려진 시야 속에서 진실을 다시금 덮으려는 목소리를 듣고, 쓰러진 원손을 두고 무력하게 끌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경수는 마비된 채 무력하게 누워 있는 인조의 앞에 앉는다. 그리고 침을 꽂는다. 등불이 꺼지고 밤이 찾아오면, 경수의 낮이 된다. 그 어둠 속에서 소현세자의 정수리에 박힌 채 남아 있던 독침을 기억하며, 경수는 인조의 머리에 독침을 꽂아 넣는다. 누구도 인조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그 무력한 공간에서.

경수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권력을 뒤집을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경수가 조력자를 찾은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경수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세자빈은 누명을 쓰고 끌려나가고, 최 대감은 권력 욕심에 자신의 눈을 다시 가릴 뿐이다. 눈이 가려진 자와 눈을 가린 자, 그렇게 조력자들이 퇴장했을 때, 다시 말해 어둠 속에 남은, 앞을 볼 수 있는 이가 자신밖에 남지 않았을 때 경수는 비로소 전면에 등장한다. 원손에게 사실을 고하고, 용기를 내고, 증거물을 직접 찾아내고, 인조의 오른손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소현세자가 독살당했던 방식 그대로 인조에게 독침을 놓는다.

경수를 살려주는 이도, 인조를 끝내는 이도 모두 왕족이 아니다. 경수는 진실을 알고 경수를 살려준 내금위 때문에 살 수 있었고, 다시금 인조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경수의 운명도, 인조의 운명도 모두 권력자의 손에 끝나지 않았다. 영화 내내 권력을 쥐고 있었던 이들은 왕족이었지만, 결국 이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고 매듭짓는 이는 따로 있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힘은 권력자가 아닌 시민에게 있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4. 대비 : 관객을 속인 양면성

 

<올빼미>를 보는 동안 관객은 끊임없이 속는다. 이는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나 경수의 재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익과 인조의 양면성과도 관련이 있다. 먼저 인조의 명을 받들어 소현세자를 독살하기 전까지 형익은 선한 이미지로 연출된다. 작중 초반부터 형익은 내의원에서 일할 이를 찾기 위해 직접 침술원을 찾는다. 그리고 맹인 침술사인 경수가 청각을 비롯한 발달한 감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제대로 침을 놓자 이런 능력을 알아보고 경수를 내의원으로 데려온다. 당시 경수에게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동생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약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형편이 좋지 않아 약값이 많이 밀려 힘들어하던 경수에게 궁에서 일하게 해 준 형익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구도는 경수에게만이 아니라 왕실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알게 된 뒤 경수가 강빈을 찾아가 고하자 강빈은 형익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믿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왕실을 위해 일해왔고, 원손을 아끼던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수의 등장과 소현세자가 선물했던 청의 문물, 확대경으로 인해 강빈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조 또한 절대적인 악역으로만 비추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세자가 돌아오기 전 원손에게 다정하게 대해줬으며, 소현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진심을 다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독살 의혹이 있다는 말에 철저히 조사하라고도 명한다. 이는 작중 인물들에서 더 나아가 관객들까지도 그들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인 경수가 어둠 속에서 진실을 보기 전까지, 그리고 강빈이 인조를 찾아왔을 때 인조가 떨고 있는 것을 느낀 경수가 배후에 왕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전까지. 경수가 진실을 고했을 때, 낮에도 밤에도 그들을 지켜볼 수 있었던 원손과 세자빈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 ‘그가 그럴 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로써 영화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기점으로 분위기의 반전과 함께 인물들의 이미지를 대비시킨다. 형익과 인조의 숨겨진 면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표면상 병사(病死)로 정리된 듯했던 소현세자의 죽음 뒤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던진다. 이때부터 경수 또한 형익과 인조와 대적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형익의 지시 아래에서 일했던, ‘봐선 안 될 것을 보았다면 모른 척해야 한다는 의원 만식의 조언 아래 숨죽여 움직였던 경수는 형익과 인조를 속이고 증거를 손에 쥔다. 그리고 비로소 인조에게 독침을 놓기까지 한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면, 인조의 죽음을 기점으로 인조와 경수의 구도 또한 다시 한 번 바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을 밝히던 경수의 입을 막았던 인조와, 경수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밝히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침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인조. 경수가 비로소 인조에게 독침을 놓고 조용히 침소를 떠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다면 악역들의 밤은 끝이 났을까?

과거 인조반정으로 인조를 왕위에 세웠던, 소현세자의 죽음을 숨겨주는 명목으로 인조와 타협하며 권력을 쥐고 비선실세의 자리에 오른 최 대감은 극중에서 어떤 결말로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두운 밤은 계속해서 다시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아주 조용히 우리를 속이려 들면서.

인조에게 독침을 꽂으며 경수는 나지막이 묻는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해당 대사를 내뱉는 장면에서 경수는 인조에게, 그리고 나아가 영화관 바깥의 목격자들에게 묻는다. 모든 진실을 목격했다면 당신의 차례다

본 것을 봤다고 말할 것인가, 입을 막는 손을 기어코 떼어내고 소리칠 것인가, 또는 눈을 가리고 돌아누울 것인가

 

우리가 어떤 밤을 지나 어떤 아침을 맞이할지는, 이제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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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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