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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2025-04-08 18:45:25

끊어진 약속을 기다리며 커가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보았다. 해당 영화를 보면서 여러 방면으로 분산되어 뻗어 나가던 주제가 결국 섬세하게 잘 합쳐졌다고, 이로 인해 이 영화를 모두가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14살의 사춘기 소녀가 느낄 수 있는 고민과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것을 1차적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2차적 목표로는 소녀라는 개인에서 확장하여 1994년이라는 그 시대만이 주는 분위기와 메시지를 전달했다.

 

 

 

<벌새>는 ‘은희’라는 아이의 성장에 가장 지독하게도 적합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영화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과 의사선생님, 그리고 영지 선생님까지. 이들은 은희에게 고통과 희망, 그리고 위로라는 감정을 끊임없이 심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에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듯이, 은희를 대하고 교육하려고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떠한 신에서 아픈 은희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모습들은 그들이 은희에게 보여준 악행마저 잊게 한다. 그것을 넘어서, 아이러니하게도 은희의 가정을 마치 이상적이고 평범한 가족처럼 보여지게 하는 따뜻한 연출들은 철저하게 은희의 시선에 맞춰진 것이라 느꼈다. 

 

 

 

 

 

 

 

 

 우리 모두는 행복과 슬픔, 즐거움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언제나 교차적으로 느끼지만, 그 것을 애써 부정하려고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부정을 부수고 우리가 그러한 감정마저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은희라는 캐릭터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말을 안 듣는다는 ‘사춘기 중학생이라는 스테레오타입’. 이 스테레오타입을 보면서 우리는 ‘이해가 안된다’, ‘참 속 썩인다’ 따위의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유일하게 따뜻하고 사람다웠던 존재는 그들이 항상 비난하고 제물로 삼은 은희였다. 그리고 은희는 잊혀진 우리 자신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감탄한 것은 영화의 뛰어난 현실감과 공감이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들을 보면 대본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현실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은희와 지숙이 평소에 나누는 대사들이나, 우리네 아버지에게서 언젠가는 들어봤을 아버지의 거친 표현들까지. 그 배우들의 호흡과 대사 하나하나들은 나이와, 성별, 시대, 공간마저 완전히 다른 은희라는 인물의 삶에 저를 투영하게 만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해야 하는 벌새. 그 벌새처럼 은희도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한다. 은희의 목표는 그 누구보다도 높은 하늘도 아니다.  그저 다른 벌새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평범한 높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높이까지도 은희가 날아오르는 것은 녹록치 않다. 안 그래도 작은 날개로 인해 죽을만큼 힘을 내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은희라는 이름의 벌새를 언제나 떨어뜨린다. 은희에게 있어 가장 큰 추락은 영화가 1994년을 시대로 설정한 이유였던 ‘성수대교 붕괴사고’이다. 은희가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을 말했던 존재 영지 선생님을 잃게 되었고, 그 고통과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이와 함께 은희와 영지, 그리고 은희와 시대 사이의 약속은 조각난다.

 

 

 

 

 

 

 야속하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저 30년전의 은희가 그 조각을 주워담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누구나 겪었을 일이니 무던하게 넘겨라"라는 말. 그 말만큼 잔인한 말은 없다. 알지 못하면, 말 대신 묵묵한 토닥임을 택하는 것이 어쩌면 옳은 길인지도 모른다. 쓰라린 상처에 새살이 채워지게 약을 발라주지는 않더라도, 상처에 먼지와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주는 것이 은화와 수많은 벌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가 조금식 아문다면 벌새들은 분명 다시 한번 날갯짓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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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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