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25-04-10 15:37:54
당신, 스윙하고 있습니까?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낭만을 이루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령 여름, 학창 시절, 밴드부, 눈싸움, 기차여행 ... 이는 분명 사람마다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는 20년 만에 다시 극장가에 찾아온 <스윙걸즈>가 그러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저편의 추억 그 자체인 영화. 하지만 이 영화가 숱한 고교시절 청춘물과 비했을 때 단연 독보적인 이유는 모든 인물들이 '즐거움' 그 자체를 쫓으며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즐거움을 잊게 되었나.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사회적 기준을 위해 어쩌면 내가 그닥 원하지도 않았던 목표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나. <스윙걸즈>는 마치 이에서 잠시 탈피하라는 것처럼 밴드라는 순수 즐거움을 위한 소녀들의 반짝거리는 열의를 착실하게 그려내준다.
부채 없이는 버티지도 못할 어느 무더운 여름 날, 토모코(우에노 주리)는 수학 보충 수업이 마냥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다 미처 챙기지 못한 밴드부의 도시락을 보고 토모코는 수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가지 잔꾀를 생각해내게 된다. 수업을 뒤로 한 채 밴드부에게 도시락을 무사히 가져다 주는 것. 그렇게 일시적으로 보충 수업반에 모인 여학생들은 야구장으로 짧은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때의 시퀀스는 마치 여름 휴가 같기도 하다. 잠시 얻어낸 뜻밖의 여정에 그들은 도시락을 훔쳐 먹기도, 곯아 떨어지기도, 진흙탕에 빠지기도 심지어는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는 것 마저 그 여정 중 벌어진 또 다른 뜻밖의 일일 뿐이다. 이렇게 관객은 초반부터 한 가지 사실을 강하게 직감할 수 있다. ' 괜찮아! 즐거우면 됐지 ! ' 땡볕의 더위에 소녀들은 마구 불만을 터트리다가도 금방 진흙 투성이가 된 서로를 보며 웃는다. 토모코와 요시에(칸지야 시호리)는 같은 반이 아님에도 원래 친하던 사이처럼 마구 장난 치며 순간을 즐긴다. 뜻대로 일이 안 풀려도 상관 없는 일에 놓인 다는 것 그리고 그걸 있는 그대로 즐기는 장면들은 관객을 그 여름 풍경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걱정도 근심도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밴드부인 나카무라 타쿠오(히라오카 유타)는 근심 투성이이다. 야구부와 밴드부 주장의 등쌀에 밀리는 것은 물론 밴드부의 음악과 전혀 동화되지 못한 채 실수만 연발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더 벌어지는 뜻밖의 상황에 타쿠오는 새로운 밴드부를 맞이하게 된다. 장시간 여름 날에 노출된 도시락은 밴드부에게 단체 식중독을 가져다줬고 급한대로 다음 경기 전까지 이들이 밴드부의 대타를 나서줘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재즈를 연주하는 빅 밴드를 결성하게 된 것 역시 난데 없이 나타난 기타 2인조로 부터 나오게 되었는데 영화는 그렇게 계획되지 않은 우연에 근간한 전개를 마구 펼치게 된다.
이렇게 얼렁뚱땅 형성된 만큼 트럼본에 애착을 보이는 세키구치를 제외하고 모두는 어쩐지 영 의욕을 보이지 못한다. 특히 타쿠오의 엄격한 훈련 아래에서는 더더욱. 처음 접한 관악기는 음정은 커녕 소리 내기 조차 쉽지 않고 관심은 자꾸만 딴 데로 세어나가는 와중 세키구치의 열정은 쉽사리 다른 이들의 마음을 바꿔놓는다. 이때 정당성은 필요 없어진다. 그저 단순하게 ' 나도 해볼래 ! ' ' 나도 해내고 싶어! ' 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소리 내기에 성공한 아이들은 삼삼오오 저들끼리 소리를 맞춰보곤 어딘가 엉망진창이지만 즐거운 첫 합주를 해내게 된다. 이름도 몰랐던 , 정말 우연에 의해 뭉친 이들이 함께 호흡 함으로 완성되는 노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첫 연주의 기쁨도 잠시 빅 밴드는 차례로 위기를 맞이한다. 그 중 첫 번째는 예상 외로 빠르게 찾아온 밴드부의 복귀. 두 번째는 복귀에 따른 악기 상실. 세 번째는 악기를 위한 목돈의 부재이다. 이는 밴드라는 속성의 필수 요소와도 같다. 합주를 위한 다수의 사람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단체 아르바이트로 합심해 악기 구매 비용을 마련하고자 한 이들이 흥미 감소로 대거 탈퇴하게 된다. 당장 눈 앞에 여흥이 더욱 즐겁다는 이유이다. 아이들은 이런 부분에서까지 솔직하다. 컴퓨터에 금방 흥미를 잃어 결국 중고 악기를 위한 목돈을 팔게 된 토모코의 지난 모습처럼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면 쉽게 저버리게 된다. 밴드에 남은 이들은 결국 계속 해보고자 하는 이들, 아직까지 이 연주가 더 재미있는 이들이다. 위기가 찾아온듯 했으나 최소의 필수 요소들은 갖춘 셈이다. 하지만 초보들의 여정은 험난하다. 연습 장소도 코치도 별다른 재능도 없는 이들은 여러 도움으로 합주에는 성공하나 무시받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런 그들을 구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재즈러버 수학 선생님인데, 그야말로 재즈 연주에는 재능이 없으나 열정만큼은 뛰어난 인물로 아이들에게 그 기초를 다지게 해준다. 이때 등장하는 대사에서부터 우리는 영화가 초반부터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지점을 재차 확인 할 수 있는데 바로 여자 꼬시기에 재즈를 배우려는 것 아니냐 하는 비난에 이제 더 이상은 아니라고 반박하는 모습이다. 앞서 얘기한대로 이들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밴드부의 대타라는 목표도, 야구부의 응원을 위함이라는 사명도, 밴드부 담당 선생님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저 스윙을 연주하는 행위가 좋은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순수한 즐거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필 왜 스윙이었는지 역시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재즈의 한 스타일로 흔히 흥이라고 표현 될만한 자연스러운 몸짓을 일컫는 스윙은 결코 의도에 의해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정에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순수한 음악적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는 토모코, 타쿠오, 요시에, 세키구치, 나오미가 바로 스윙인 것이다. 이는 지난 밴드부에서 의욕을 보이지 못했던 타쿠오의 모습과 확연히 비교된다. 우리는 숱한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즐거움보다 다른 여러 이유들을 목표로 삼아 움직였으나 적어도 <스윙걸즈> 속에서는 즐거움에 따라 움직이는 소녀들을 따라 스윙을 연주하게 되는 것이다. 야구부였던 선배가 개그스럽게 내뱉는 대사 '스윙을 하는 자와 스윙을 하지 않는 자' 로 나뉜다는 대사는 그러한 의미에서 보다 확실한 메세지를 전달해준다. 우린 스윙하고 있는가? 학창 시절이기에 더욱 스윙 할 수 있긴 하나 그렇다고 어른이 된 누군가가 스윙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따라가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은 관악기를 처음 다루던 이들처럼 서툴고 지겨울지 몰라도 소리가 나는 그 순간의 경험은 아마 뜻밖의 일들을 불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쥐가 끔찍이도 싫었던 요시에가 유난히 어려웠던 고음을 쥐로 인해 성공한 뒤로 행운의 부적으로 삼게 됐던 영화 속 귀여운 포인트처럼 우리 역시 뜻밖의 일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요시에의 트럼펫에 대롱 달려있던 쥐 인형처럼 항상 부적처럼 곁에 있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모두 <스윙걸즈> 라는 작품이 관객에게 건내는 아주 명량한 위로인 것이다.
주연인 우에노 주리를 비롯한 주조연들이 함께 한 무대 영상이 실제 있을 정도로 영화 <스윙걸즈>는 무엇보다도 진실된 즐거움을 띄고 있다. 일본 내에서 꽤 큰 흥행 성적을 거둔 만큼 개봉 당시 배우들은 여러 곳에서 무대를 진행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음악을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순간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음악을 체험하고 공유한다. 연주자까지도 빠짐없이 하나의 순간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배우들의 호흡으로 연주되는 스윙을 들으며 우리 역시 스윙의 일부가 된다. 엇박으로 박수를 치진 못하더라도 대사 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들려오는 멜로디 속에서 그들의 성공적인 무대를 보는 것 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그 성공적인 무대는 예상치 못한 도움, 예상치 못한 행운에 의해 마련되었으나 결국 이는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에게 찾아왔다. 신나는 엔딩 크레딧의 끝에 영화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당신, 스윙하고 있습니까?
- 1
- 200
- 13.1K
- 123
- 10M
-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