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25-04-11 01:05:31
대도시의 판타스틱 우정
영의 ‘재희’에서 재희의 재희로,
씁쓸한 위트에서 달콤한 판타지로
수트를 입은 남자가 옥상으로 들어선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들의 손목에 커플 타투가 보인다. 여자는 “자기 왔어?”라며 남자를 맞는다. 제목 삽입 후 영화는 신입생 환영 MT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스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는 남자와 뒤늦게 스쿠터를 타고 요란하게 도착하는 여자, 앞으로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이어질 좌충우돌 로맨스가 머릿속에 선하다. 농담 섞어 적어보면 이는 ‘헤테로베이팅’이다. 그들은 서로를 ‘남자’와 ‘여자’가 아닌 ‘흥수’와 ‘재희’로 인식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예정이다. 클럽 뒷골목, 흥수가 키스하는 상대의 얼굴과 함께 그가 게이임이 드러난다. 적잖은 관객은 이미 알고 있었을 정보, 원작 ‘재희’는 박상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대도시의 사랑법>의 첫 장이다. 이 위장이 노리는 것은 그 외 관객일 테다. 습관적으로 이성애 로맨스를 기대했던 이들의 시야를 일종의 ‘반전’으로 넓히려는 시도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흥수와 재희가 대학에서 만나 한 집에 살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재희의 결혼으로 맺어지는 마무리를 비롯한 이야기의 굵직한 줄기는 소설과 유사하다. 허나 영화는 각색 과정에서 재희의 서사를 불리고 내면을 들여다본다. 소설의 재희는 오로지 영(영화의 ‘흥수’)에 의해서 서술되었던 반면, 영화의 재희는 공동 화자다. 시점은 흥수의 것에서 점차 두 사람의 것으로 확장된다. 흥수가 재희 집에 이사 올 무렵 화면은 이분할된다. 같은 장면을 두 관점으로 촬영해 ‘이제 화자는 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각자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뒤따르고, 재희가 흥수의 방으로 건너오며 이분할 화면은 합해진다. 상호 영역을 존중하되 상대방이 필요할 시 선을 넘어 다가가는 관계를 상징하는 듯도 하다.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작은 연대의 제스처로 가까워졌다. 흥수가 게이라는 소문이 학과에 퍼지기 직전 재희는 센스있게 연막을 쳤고, 사진 사건 직후 흥수는 동기들에게 욕을 날리고 단톡방을 나갔다. “야, 술이나 마시러 가자”와 지포라이터를 주고받으며 “아웃사이더” 둘은 친구가 되었다. 재희와 흥수에겐 서로에겐 없는 소수자성과 특권이 있다. ”재희는 나를 통해서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으로 좇같다는 것을 배웠고, 나는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대도시의 사랑법> 46쪽, 박상영, 창비, 2019)라는 문장을, 영화는 둘 모두의 입장에서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범죄나 원치 않은 임신을 마주한 상태의 공포는 원작에 비해 상세하게 다뤄진다. 창문을 타고 올라온 남자를 신고한 후 떨리는 (재희의) 손이나 중절 수술 상담 후의 통곡은 각색이 더한 깊이다. 한국에서 “조신하지 않은” 젊은 여성으로 사는 고단함의 표현은 김고은 배우를 거쳐 설득력을 더한다. ‘단톡방 사진’이나 ‘가스라이팅 마마보이’ 역시 이 맥락에 따라 추가된 설정일 테고, 영화의 호흡에 잘 녹아들었다.
두드러지는 또다른 차이는 후반부 전개과 결말의 뉘앙스다. 원작의 재희는 “네 룸메이트 지은이는 고양이야?”라고 물어본 남자와 결혼한다. 그는 재희와 영의 관계를 ‘이상하다’고 여기지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결혼식이 끝나고 홀로 집으로 돌아온 영은 냉동실에 있던 블루베리 봉지를 꺼낸다. 거기엔 보라색 얼음 한 조각만이 남아 있다. 재희와의 20대는 갔고, 그들의 관계는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영화는 재희의 약혼자를 두 인물로 쪼개 각자의 기능을 부여했고, ‘지석’을 통해 데이트 폭력 이슈를 언급한다. 재희는 지석이 아닌 (흥수와의 우정을 포함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 영화의 엔딩 역시 텅 빈 집에 홀로 돌아온 흥수의 모습이나, 톤은 사뭇 밝다. 블루베리는 한 그릇 가득 남아 있다. 그것을 입에 문 채 흥수는 소설의 첫 문장을 적고, 재희의 전화를 받고 피식 웃는다. 20대는 끝났지만 재희와의 관계는 변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또 다르게 ‘우리’일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첫 숏은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는 흥수의 발이다. 그는 문을 열고 탁 트인 옥상으로 나가 재희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언제나 상대방을 찾아내는 사이, 문을 열고 시야를 넓히는 우정을 유지하리란 암시다. 괜히 화풀이를 하다가도 서로의 눈물과 상처를 목격하자마자 눈을 뒤집고 걱정하는 관계, 이언희 감독은 이 안 로맨틱한 사랑의 결말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보단 얼얼하고 달콤하게 가슴을 채우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커밍아웃 묘사에 관한 우려,
그럼에도
edm과 재즈 발라드의 리듬을 오가며 무르익는 우정을 표현하는 초반 편집은 <대도시의 사랑법>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멜로드라마와 시트콤, 스릴러를 휙휙 오가는 톤은 관객의 집중력을 효과적으로 붙들어 놓으며 공감과 깨달음, 미소와 폭소를 유도한다. 이는 동시에 단점이다. 갈등의 발생과 해소를 반복하는 빠른 전환과 자극적인 전개는 인물이 사건이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을 앗기도 한다. 이를 테면 데이트 폭력 피해로 인해 방금 응급실에 다녀온 재희에게 흥수가 수호와의 이별을 호소‘해야 하는’ 까닭은, 그 대화를 할 타이밍이 그때뿐이라고 감독이 판단해서다. 두 사람이 응급실에 다녀오게 만든 일련의 ‘지석 사건’에도 이 맥락에서 이야기할만한 각색들이 보인다. 가장 의아했던 순간도 이쯤에 있다.
성적 지향이 알려지는 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흥수와 달리, 원작의 영은 딱히 클로짓은 아니었다. 재희는 연인의 질문공세를 받다 ‘지은이가 사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임을 실토한다. 이를 전해 들은 영은 “나의 비밀이 재희와 그 남자의 관계를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52쪽, 박상영, 창비, 2019)고 서술한다. 영화는 아웃팅 상황과 ‘배신감’을 조금 달리 다룬다. 재희는 흥분한 지석과 이미 한 대 맞은 흥수 사이에서, 어느 정도는 흥수를 보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얘 게이’라고 외친다. 영화가 아웃팅의 심각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허나 흥수의 대사가 점점 자격지심으로 수렴하고 말다툼이 그를 향한 재희의 물음들로 귀결되면서, ‘꼭 갈등의 원인이 흥수가 클로짓인 데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라는 우려가 든다. 물론 동성애혐오적인 엄마가 몇 차례 등장하며 흥수의 게이쉐임에 영향을 미친 배경을 나타냈다. 수호와의 연애는 그가 벽장에서 나오기를 교과서적으로 격려했다. 그러한 흐름에서 들어간 대화로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부 속 시원하게 해결된’ 엔딩을 위해 흥수의 속도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인상은 남는다.
이별 후 지석은 무단침입해 재희를 폭행한다. 흥수는 지석을 목격하고 바로 신고하는 대신 쌍방폭행해 파출소에 끌려온다. 그래야만 극적 커밍아웃과 감동적인 연설이 이루어질 수 있어서다. 지석은 ‘저 여자가 바람을 피우고 동거하면서 남자가 게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토로하고, 경찰은 사실이냐고 묻는다. 재희가 눈치를 보다 제 탓으로 돌리려는 찰나 흥수는 커밍아웃한다. ‘다행히’ 그는 떠밀려서가 아니라 기꺼운 선택으로 게이임을 밝히는 것처럼 보였고, 혐오반응 대신 취객의 박수와 경찰의 ‘인정’을 받는다. 흥수의 커밍아웃이 상황의 해결책으로 작용하여 재희의 공포와 상처까지 씻어내는 듯 보이는 이 ‘아름다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재희가 피해자일 수 있으려면 “그런 애가 아니”어야 하는 걸까?) 순간의 의문은 ‘다행’의 전개와 노상현 배우의 전달력 덕에 석연하지 않게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다니엘 오의 “흉물”스러운 영화와는 다르다.(<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178쪽, 박상영, 문학동네, 2018) 잘 살고 잘 노는 퀴어와 앨라이의 서사, 한국에 필요했다. 아쉬웠던 점은 잠시 접어두자. 포만감을 느끼며 극장을 나선 관객들이 재희와 흥수를 돌이키게 되었다면, ‘헤테로베이팅’에 걸린 일부 관객의 편견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면,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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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