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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2025-04-11 17:46:14

멀어지는 빛과 외면하는 얼굴들 사이에서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마틴 스콜세지

 

-드라마, 스릴러

 

 

 

 ‘트래비스 비클’은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택시 드라이버이다. 그가 운전할 때마다, 보이는 길거리엔 자동차와 간판들에서 나오는 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떤 남자에게는 그 가득한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면조차 쓸 수 없는


 

 

 

 

 영화 내내, 트래비스를 한 명의 사람으로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트래비스는 자신이 모는 택시와 하나처럼, 마치 도구처럼 취급 받았다. 영화 속 유력한 대통령 후보 팰런타인은 트래비스의 택시를 타게 된다. 팰런타인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벳시에게서 들었던 남자를 자신의 차에 태우게 된 트래비스는 신이 나서 그를 응원하며 듣기 좋은 말을 건넨다. 그러자 팰런타인은 웃으며 다음 대통령이 바꿔줬으면 하는 것을 묻는데, 정치에 대해 아는 것 없이 그저 순수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말을 건넸던 트래비스는 당연히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은 정치에 대해 모른다며 넘어가려는 트래비스와 집요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는 팰런타인. 미묘하게 변한 강압적 분위기에 트래비스는 고민하다,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원했던 것을 트래비스가 말해줘서 놀랐던 것일까. 아니면 너도 그 쓰레기 중에 하나인데 쓰레기가 쓰레기를 쓸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일까. 팰런타인의 표정은 의미심장하게 변한다. 차에서 내리며 잔돈은 넣어두라고 말하는 팰런타인. 그것은 분명 선의와 호의가 아닌 약자를 향한 강자의 멸시였다.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는 팰런타인과 가면을 쓸 여력조차, 아니 마음조차 없는 트래비스. 그 간극은 승객이 택시 드라이버에게 돈을 건네는 창문 하나만큼의 좁은 거리에서 이루어졌지만, 사실 그 간극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할만큼 넓었다. 그렇게 강자와 약자 간의 계급이 주는 간극ㄱ은 옳은 방향으로 가려던 한 사람의 방향을 조금씩 뒤틀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추락


 

 

 

 

 팰런타인이 트래비스를 조금씩 뒤틀었다면, 트래비스를 끝내 추락시킨 것은 벳시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인상을 로맨틱한 독백으로 전하는 트래비스, 그 순간은 마치 꿈 속에서 천사를 본 것처럼 황홀함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트래비스의 일방적인 노력에 둘은 가까워지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관계는 한 순간에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 이유는 다른 것도 아닌 영화 한 편이었다. 트래비스와 벳시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데, 영화에는 나체의 남녀가 나오게 된다. 그러자 벳시는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게 되고 트래비스를 포르노나 보는 쓰레기로 취급한다. 포르노 영화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트래비스. 평생 그런 영화만을 보아왔고 다른 영화를 볼 기회조차 없었던 트래비스는 그저 자신에게 익숙하고 재밌는 영화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벳시는 그런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또 다른 택시를 타고 떠나버린다.

 

 

 

 

 

 

 만약 트래비스가 택시 드라이버가 아니었다면 벳시가 단 영화 한편으로 트레비스를 그렇게까지 매몰차고 차갑게 몰아붙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트래비스의 말투, 옷차림, 직업 등으로 벳시는 이미 트래비스의 가치를 단정지었고, 그 단정에 대한 확신의 근거가 바로 그 영화일 뿐이었을 것이다. 벳시가 떠나버리자 트래비스는 자신도 택시가 있다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아마 그 순간 트래비스는 자신이 나아질 수 없는, 그리고 언제든지 대체되고, 갈아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갱단들 사이에서 아이리스를 구한 트래비스는 영웅이 된다. 그러던 중, 아이러니하게도 벳시가 다시 한번 트래비스의 택시를 탄다.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택시는 벳시의 집 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벳시는 택시값을 계산하려 지폐를 꺼낸다. 둘의 인연을 정리해버리는 그 지폐 한 장. 너가 아무리 발악해도, 쓰레기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한 조소. 지폐 한 장에는 그 조소가 담겨 있었다.

 

 

 

저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영화 속,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트래비스. 그를 보면서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겹쳐 보였다. 언제나 웃고 행복하고자 했던 트래비스와 트루먼.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았고 철저히 도구화 했다. 세상은 이들이 대중을 즐겁게 하는 일, 그리고 사람을 나르는 일만을 하길 원했고,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희망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루먼은 창문을 깨고 자유를 얻었지만, 트래비스는 끝내 창문을 깨지 못했다. 택시 드라이버로서 바라본 거리에 가득한 인간 쓰레기들. 그것들 중에는 펠런타인처럼 화려하고 깨끗한 외면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지독한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트래비스는 거리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고 단련한다. 그렇게 단련이 끝나고, 펠런타인의 유세현장에 나타난 트래비스. 그는 무언가 확신을 한 듯, 모히칸 머리를 하고 있다. 사람을 위하는 척 연기하며 단상에 선 펠런타인과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뿐인 트래비스.

 

 

 

 하지만 서로가 받는 관심과 사랑의 총량은 펠런타인이 서있는 단상과 트래비스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차이 났다. 택시의 창문 사이보다도 더욱 멀어진 둘의 거리는 결코 좁힐 수 없었다. 사람들을 위하는 척 가면을 벗지 않는 펠런타인. 트래비스는 그를 암살하려 하지만 총도 제대로 꺼내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실패한다. 그제서야 군중들이 처음으로 트래비스를 쳐다보게 되고, 그 순간에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트래비스는 영웅의 모습이 아닌 허중지둥 비겁하게 도망치는 한심한 쓰레기의 모습이었다.

 

 

 

나에게만 암흑같은


 

 

 

 

 학대받는 아이리스를 위해 트래비스는 갱단을 괴멸시킨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살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총알은 없었다. 총알이 없었던 것을 알게 된 트레비스는 안심했을까, 아니면 절망했을까. 분명 절망했을 것이다. 트래비스는 자신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쓸어버려야 하는 거리의 쓰레기로 생각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희망에서 시작하여 스스로를 죽어야 할 쓰레기라고 단정짓기까지의 외로운 과정들. 이 과정들은 좁은 방, 꺼진 TV 앞에서 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통과 상실의 연속들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과정들을 알아준 이는 없었다. 갱단을 소탕하고 소파 위에 쓰러진 트래비스부터 시작하여 괴멸된 갱단, 트래비스를 포위한 경찰들을 거쳐 길거리의 사람들까지 담아내는 카메라. 그 카메라가 담아내는 하이앵글은 건조하고 관조적이다.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하는 자들과 스스로는 쓰레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 이들 중 쓰레기는 누구일까.

 

 

 

 

 

 

 트래비스는 룸미러를 통해 언제나 손님들을 쳐다본다. 그 모습은 손님들이 자신을 친구이자 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트래비스의 그런 바램에 무색하게도 그들은 아무도 트래비스를 친구 또는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트래비스는 그저 쓰레기통이었다. 택시의 뒷좌석에 자신이 들고 온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토를 하는 인간들.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트래비스는 쓰레기들을 위한 쓰레기통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답도 하지 말고 그저 입 닥치고, 자기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라는 한 손님의 말처럼 트래비스의 인생에는 자신의 생각과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택시만 모는 것이 세상이 그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곳에 몸을 맡겨


 

트래비스가 택시를 몰 때마다 보이는 자동차들의 라이트와 가게의 간판들. 그것들이 내뿜는 빛은 흠결 없이 깨끗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리고 탁하다. 하지만 그 흐리고 탁한 빛들 중 어느 한줄기조차도 트래비스를 비추지 않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존재하며, 그림자가 없는 빛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빛이 흐리고 탁함을 부정하며,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곁에 드리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다가오면 멀어지는 빛들. 그 빛들은 누군가를 외면하는 얼굴과 닮아있다.

 

트래비스에게 남은 삶은 그야말로 잿빛이다. 트래비스가 아이리스를 구하고 영웅이 된 것조차 그의 망상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로, 영화 속 트래비스의 남은 삶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누구보다 혐오하지만, 그들에게 시선이 점점 끌리는 트래비스. 어쩌면 트래비스는 그 쓰레기들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리의 쓰레기들도 과거에는 트래비스와 닮은 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갔지만, 수많은 멸시와 외면을 마주하고 결국, 자기혐오의 결정체가 되어 쓰레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가다 수없이 봐온 쓰레기 더미들이 내뿜는 눅눅한 비린내와 누린내마저 온기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그 온기마저 느끼기 위해 그들은 그 쓰레기 더미로 뛰어들었고, 그들은 점점 더 커다란 쓰레기 더미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겨울이 되고, 혼자서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질수록 트래비스도 점점 더 그 온기에 이끌릴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트래비스들이 고민하며 지나왔던 거리를 지나, 결국 쓰레기 더미에 몸을 맡기게 된다. 낮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저 쓰레기 더미들을 불쾌해하고 흉물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라. 그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들은 만든 건 그 어떠한 것도 아닌 당신들과 우리, 그리고 나라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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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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