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2025-04-15 10:29:24
사실을 말한다는 것, 진실을 믿는다는 것
얼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불안이었다. 진실이란 언제나 명백한 것일 줄 알았다. 어딘가에는 분명 확실한 답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믿음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실제 범죄 사건을 다루면서도, 영화는 명확한 사실보다 누가 무엇을 말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1976년 텍사스에서 벌어진 경찰관 살인 사건, 랜들 아담스라는 청년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그가 범인이라는 결론은, 경찰의 조사와 증인의 증언, 그리고 법정의 판결이라는 그럴듯한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결정들이 얼마나 허술한 기억과 편향된 시선 위에서 이루어졌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감독은 수많은 인터뷰와 재판 기록을 차분히 들추며, 표면 너머에 숨은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관객은 그 잔해 속에서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되짚어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을 재구성하는 방법 자체를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치는 재연 장면의 반복이다.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인물의 증언을 따라 반복해서 재연함으로써, 영화는 하나의 고정된 진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총이 발사된 순간, 자동차의 위치, 인물의 움직임까지도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그 차이들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가서게 만드는 미세한 흔들림이자,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조형되는가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 반복이 혼란스럽게 느껴졌지만, 곧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던지는 가장 강렬한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재연은 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오히려 진실을 구성하고 또 구성하면서, ‘우리가 믿는 진실은 누구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영화는 이 질문을 통해,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진가는 잘못된 판결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더 나아가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사실, 경찰 수사에서 제시되는 정황, 그리고 증인들의 증언 모두가 인간의 해석과 선택에 따라 뒤틀릴 수 있는 주관적 진실임을 드러낸다. 즉, 진실은 언제나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감정 속에서, 혹은 의도 속에서 형태를 달리하며 조용히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실은 때때로 감추어지고, 심지어 파괴되기도 한다. 그 감각은 영화 ‘추락의 해부’를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 또한 한 남성의 추락사를 둘러싼 재판 과정을 따라가며, 진실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때로는 부재하는가를 예리하게 보여준다. ‘가늘고 푸른 선’이 수많은 오류 끝에 결국 현실을 바로잡는 데까지 나아갔다면, ‘추락의 해부’는 끝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음으로써 진실의 불확실성을 더욱 부각한다. 그 안에서 진실은 점점 모호해지고, 관계의 균열과 침묵의 의미만이 선명해진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공통으로 법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진실의 허약함과 인간적 균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닿아 있다.
감상 내내 마음 한편에는 묵직한 불편함이 남았다. 그 불안은 단지 영화 속 인물의 억울한 사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믿어온 세계의 규칙들이, 사실은 허술한 기억과 틈 이야기들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는가? ‘가늘고 푸른 선’은 완전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진실을 향한 치열한 탐색이자, 우리가 믿어온 사실들에 대한 조용한 반박이 된다. 진실은 흔히 단단하고 분명한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이 영화는 그 진실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바뀔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가? 영화는 그 질문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남긴 여운은, 현실을 조금 더 낯설게,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든다.
사진 출처 : M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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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