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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2025-04-20 20:45:10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스웨덴] 술과 인생에 대한 찬사와 경고 그 사이에서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게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한마디로 술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술의 영향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구분 짓는 대신, 술이 지닌 복합적인 특성과 그 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술은 억눌린 감정을 해방시키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면의 공허함을 더 깊게 파고들며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위험한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처럼 술이 주는 해방감과 파괴력, 그 상반된 성질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현실적이면서도 때로는 환상적인 방식으로 술과 인생을 조명한다. <어나더 라운드>는 술과 삶을 다층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찬사와 경고의 경계선에 서 있는 작품이다. 

 

 

일상의 권태


니콜라이, 마틴, 피터, 토미 4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중년 남성으로, 같은 고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의욕 없는 학생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들은 삶의 권태를 느낀다. 일터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갈등과 무기력함 속에서 이들은 삶에 좋은 자극을 줄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데, 니콜라이는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내세운다. 결국 그들은 지속적으로 적당량의 술을 섭취하며 이 농도를 유지하는 음주 실험을 시작한다. 일상에 환기를 누구보다 바랐던 이들에겐 이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어느새 식어버린 열정과 지나버린 관계들을 향한 간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생략'을 통해 표현되는 삶의 이면

 

인물들의 개인적인 배경이나 고통은 구구절절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짧은 장면, 대화, 표정 속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이 암시된다. 마틴과 아내의 갈등, 그가 느끼는 가족 관계에서의 소외감은 오히려 술을 마시기 전보다 술로 인해 망가진 이후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영화 초반에서 관객들은 마틴을 비롯한 주인공들이 술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이렇듯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내었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이 너무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지 않는다. 모두가 타인의 고통과 고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절제된 표현을 통해 비춰지는 삶의 조각들을 통해 영화는 소외감과 무력감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시금 강조되는 '술'의 양면성

 

 

영화에는 4명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 중 가장 중심으로 서사가 다루어지는 인물은 마틴이다. 그는 역사 교사로 일하고 있으나 아이들과 부모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간다. 가족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특히 아내와의 갈등도 자주 비추어진다. 처음에는 술을 마시는 것에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운전을 이유로 술자리를 거절하지만 친구들의 권유에 술을 마시며, 억눌렸던 즉흥적이고 생기 있는 면모를 드러낸다. 이후 친구들과 음주 실험을 하며 가장 먼저 농도를 높이고, 학교에서 몰래 마시는 방법을 고안하는 등 때론 주저하고 때론 대담한 모순적인 인물이다. 이렇듯 술에 늘 호의적이지 않는 그 누구라도 술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 영화는 술에 대한 경고를 하면서도 술이 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알코올이 선사하는 ‘환각’의 황홀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심리학 교사인 니콜라이는 육아와 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로 인한 번아웃을 겪고 그가 처음 제안한 음주 실험에 빠져든다. 술로 점점 망가지는 삶들을 보며 실험의 위험성과 한계를 직접 겪고서도, 알코올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불안 완화, 긴장 해소)를 끝까지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의대 진학에 실패할거라며 불안해하며 자책하는 학생에게 니콜라이는 몰래 술을 권하고, 학생은 술을 마시고 성공적으로 시험에 임한다. 술의 파괴력을 직접 겪고도 술의 힘을 믿는 니콜라이를 보며 술이 인간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한다.

 

사실은 본래 가지고 있던 것

 

실험을 통해 인물들이 술을 마시면 수업이 잘 된다거나, 인간관계가 개선되고 자신감이 생겨보이는 듯 하지만 영화는 “그 가능성들은 본래 그들 내면에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틴이 단순히 술을 마셔서 수업이 재미있게 변한걸까? 기분 좋은 환각으로 자신감을 북돋아준 것 뿐, 결국 그 역사적 지식이나 아이들을 리드하는 능력은 잠재되어있던것일 것이다. 체육 교사 토미의 아이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 음악 교사 피터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향한 염원, 심리학 교사 니콜라이의 학생을 응원하는 마음 -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이들의 내면에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다. 술은 단지 자극제로 존재할 뿐, 변화의 본질은 결국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영화는 ‘술’이라는 도구를 단순히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우여곡절을 겪고서도 영화는 술을 마시는 청춘과 중년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오프닝에서는 축제를 벌이는 청춘이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를, 엔딩에서는 중년의 주인공들과 졸업하는 학생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축복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이는 술이 인생의 파편 속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게 아닐까. 

 

죽음과 이별과 같은 어둠이 있더라도 ‘살아있는’ 감정과 관계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다시 잔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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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brunch.co.kr/@d61a9336cc454b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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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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