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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2025-04-22 23:05:51

인도에서 보내온 빛으로 쓴 시

 

 

빛으로 시를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듯이 희망보단 절망에 가까운 대도시 뭄바이의 세 여성. 이들은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아주 작은 빛으로 그들만의 삶을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이들을 이해하고 손을 맞잡는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발리우드 영화가 곧 인도 영화라는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뜨리는 작품인 동시에 더 나아가 지금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도 여성들의 고단함을 영화적으로 수놓는다. 그것도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인구 2,000만명의 대도시 뭄바이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세 여성 프라바(카니 쿠스루티), 아누(디브야 프라바), 파르바티(차야 카담)는 저마다 말하지 못할 근심이 가득하다. 프라바는 독일로 일하러 떠난 남편과 1년째 연락이 되지 않고, 아누는 사람들 몰래 무슬림 남자와 연애를 즐긴다. 파르바티는 20년 넘게 살았던 집이 개발되면서 불법 거주가 신세가 되어 살 곳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은 반복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고향을 떠나 거대한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위해 손을 내민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에서 부재한 것은 빛, 시간, 그리고 사랑이다. 밤이 찾아와도 빌딩, 야시장, 거리 등 불이 꺼지지 않는 뭄바이지만, 정작 세 인물에게 드리워진 빛은 찾아보기 힘들다. 낮에는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을 해야 하는 그들의 얼굴을 비추는 빛이라고는 고된 몸을 이끌고 타는 기차 안이나 집 안 조명밖에 없다. 영롱한 빛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이 처한 환경은 불도 들어오지 않는 파르바타 집에서 핸드폰 조명에 기대 중요한 서류를 찾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에게 빛이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극 중 뭄바이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로 표현된다. 그만큼 자신의 시간이 아닌 어느 누군가의 시간을 위해 살아가는 환경에서 세 여성은 묵묵히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들이 간호사 혹은 병원 식당 주방장으로 나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겨야 하는 운명은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을 갉아먹는다. 더불어 이런 이들을 조금이나마 케어해줘야 하는 남편 혹은 가족은 부재하거나 내몰기에 바쁘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사랑 혹은 사랑의 자유가 없다. 프라바는 결혼은 했지만 남편이 없고, 아누는 사랑하는 이가 있지만 종교가 다르며, 파르바티는 이미 남편과 사별한지 오래다. 사랑할 대상이 없고, 그 대상이 있어도 종교의 벽이 가로막는 등 세 여성에게 사랑은 그저 사치이거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존재의 것이다.  

 

서로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이 세 여성이 가까워지는 건 앞서 소개한 것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이들을 가만놔두지 않고 계속 고난과 역경을 주면 줄수록 이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때도 있지만, 결국 이들은 서로 연대하며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준 작은 빛을 서로에게 비춰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는 마치 시와 같다. 다소 문학적인 표현이지만, 대구를 이루는 장면 안에서 인물들의 모습은 이 작품을 시로 인식하게 만든다. 영화는 전반부인 뭄바이와 후반부인 파르바티의 고향인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두 공간 속에서 세 여성의 삶은 대구를 이룬다. 뭄바이에서 부재했던 것들은 어촌 마을에서 채워지는데, 특히 현실과 판타지 그 중간 어디쯤을 보여주며 점차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꿈틀거렸던 인물들의 내면이 비로소 빛을 받아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랄까.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유려한 연출과 편집을 통해 묘한 쾌감까지 느껴진다. 여기에 에티오피아 뮤지션인 에마호이 체구에마리암 구에브로우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클래식컬한 음악은 인물들의 감정을 점진적으로 살린다. 참고로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아누와 남자 친구가 숲속 동굴 안에서 나누는 대화, 바닷가에서 의식을 잃은 남성과 프라바의 대화 장면은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제7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 물론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인도 영화가 칸국제영화제 수상을 한 건 30년 만이다. 그만큼 이 작품이 평단의 지지를 얻은 다수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결국 사랑을 소재로 인도의 사회적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이를 타파하는 것은 여성들의 연대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본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도에서의 사랑은 매우 정치적입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가는 아주 복잡한 문제이죠. 카스트 문제, 종교 문제… 이것들이 당신의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제 중 하나인 ‘불가능한 사랑’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매우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인 셈이다. 마지막 이들이 엮는 작은 연대의 빛이 초라하게 비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빛은 시작점에 불과할 수 있을 터. 인도는 인도의 여성들은 그리고 인도 영화는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 그린나래미디어

 

 

 

평점: 4.0 / 5.0
한줄평: 어두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연대의 빛과 용기!

작성자 . null

출처 . https://brunch.co.kr/@zzack0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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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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