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획기사2025-05-05 12:46:58
[JEONJU IFF 데일리] 공존이라는 메시지 위에 서서 외치는 호소,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집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의식주에서 ‘주’를 담당하는 집이라는 개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신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경향을 지닐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을 정신적인 공간의 개념으로 나눈다면 그 또한 거시적인 의미의 ‘집’이 될 테다.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작품으로서, 제목 그대로 집에 살던 새가 어디로 갔는지를 묻는다. 나의 해석으로는 제목에서 사용된 집이라는 개념은 ‘우리 곁’이라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들을 전부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곁에 있던 새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The Birds Who Lived Home - Where Did You All Go?
Cast
감독: 김화영
출연: 김세희, 로예주, 서지원, 유다님, 이영관 등
시놉시스
닭이 등장한 과거의 기록을 통해 인간이 닭을 다뤄온 역사를 추적한다. 그리고 오늘날 닭을 포함해 가시거리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현재를 듣는다. 이는 생태계 절멸의 시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축산동물 상황에 대한 폭로라기보다, 결국 이 안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실패담에 가깝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는 현실을 염세적으로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직면하게 이끈다. 그리고 유예된 시간에 누구와 만날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을지 안내한다.
‘우리 곁’ 새들의 행방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영화 문법적 요소들을 일일이 캐내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담이 된다. 나중에 언급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는 엄격하게 본다면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영화가 아닐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독특하다고 느껴진다. 동물 해방 운동가, 동물권 운동가 등 다양한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장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크린에 영상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그 첫 단부터 등장하는 민화 애니메이션과 내레이션에 관한 부분이다.
제목만 본다면 의문을 남기는 요소들이 있다. ‘집에 살던 새’라는 것은 무엇인가. 제목이 가지는 의미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에 부분마다 중간 삽입되는, 내레이션이 입혀진 민화 애니메이션들이 그 불명확함에 실마리를 던진다.
주로 영화는 닭에 관한 민화들을 서술한다. 과거에서부터 닭이라는 존재는 우리 조상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관한 내용을 내레이션으로 전달한다. 공통으로 확인되는 지점은 닭이 우리 조상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는 제목에서 말하는 집에 살던 새는 닭이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곁에 있던, 집에 살던 새는 어디로 갔는가.
영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한 문장이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조상들에게 길한 존재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민화에서도 곳곳이 존재감을 드러냈던 닭은 21세기인 오늘날에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애니메이션이 막을 내리면 그제야 영화는 그 행방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 행방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 동물권의 가치가 떠오른다.
동물권을 지켜라, ‘우리’를 위해
순히 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돼지도, 소도, 생선과 해산물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최근 동물권을 위한 운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해외에서는 급진적 사회 운동으로 동물권 인식 고취 등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져 오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움직임이 매체에게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큼직한 이유 중 하나는 과거 급진적 운동으로 인한 동물권 운동가들에 관한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인식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공통된 합의가 이끌어지지 않고, 사회적으로 동물권 운동가들의 활동이 ‘그들만의 세계’로 고립될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다시 한 번 동물권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영화라는 확성기를 쥐여준 것은 상징적으로 보인다. 운동가들의 경험과 배경, 그것을 통한 스토리텔링으로 그들의 활동과 생각을 덜 급진적이고 덜 공격적으로 풀어갈 수 있게 한 것은 이 사회적 흐름을 어느 정도 반영했음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고 메시지 또한 얄팍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이들의 메시지에는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그 안에 뼈가 있다. 강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서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를 도출한다면 결국 공존이 남는다. 인간이 그들의 야생성을 빼앗았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이익을 위해 유전병을 남기고 도망가려는 돼지의 뒷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인간에게는 야만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야생에서 온 그들을 존중하지 못하면 그들은 동물이 될 수 있을까. 배터리형 사육장 안에서 키워지고 먹임 당하며 기형적으로 몸을 부풀려진 닭들은 과연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능동성을 상실한 존재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보장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동물이라는 붙임표를 들이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편으로 그런 능동성을 빼앗고 있는 인간도 동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같은 인간끼리의 동족상잔과 집단학살에는 목소리 높이지만, 동물을 비윤리적으로 사육하는 것에는 침묵하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합리와 이성으로 다른 동물과 존재의 선을 그었던 인간이 다른 동물 앞에서는 비합리적인 야만성을 드러내는 것을 본다면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그렇기에 영화는 공존에 관한 메시지를 남긴다. 영화 종반부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동물권에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영세한 사업장과 대기업 간의 위계질서에 관해서도 대략 언급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과 인간 간의 위계질서가 윤리적으로 정립되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그 힘의 질서에 우리는 아무 말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들을 동물로 대접해야 우리도 동물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래야 인간으로서 우리가 자신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막연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비판을 드러낼 수 있다. 이미 이렇게 벌어진 사회 현상과 구조에서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떤 도움이 되겠냐는 말들은 빠짐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러므로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공존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준다면, 더 넘어서 우리 사회 속에서도 우리만의 공존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명확하게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어쩌면 분명히 답 내릴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일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다보면 막막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운동가와 활동가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단순히 동물들만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이 인간으로 공존할 수 있기를 위해서. 그 이야기를 영화는 막간을 이용한 민화 애니메이션으로 부드럽게 설득한다. 이제는 관객이 고민할 시간이다. 정확한 뒷배경을 알지 못하고 허울뿐인 채식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공존마저 포기한 인간이 될 것인가. 혹은 인간을 인간으로 세우기 위해 일어설 것인가.
상영 일정
2025. 05. 02(금)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20:30
2025. 05. 04(일) CGV전주고사 4관 13:30
2025. 05. 05(월)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21:00
2025. 05. 09(금)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17:00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30일~5월 9일 동안 개최됩니다.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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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