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2-09-04 17 views
<스틸 라이프> 후기
옐
연구원
한 동안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면, 내 장례식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와줄까?’ 삶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를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은 모두 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의 흔적은 지금의 나를 이루는 자그마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죽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기를, 나 역시도 누군가의 일부분이기를, 그래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계속해서 살아있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때의 나에게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였던 이들의 죽음을 진심을 다해 추모하는 존 메이를 보며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죽음에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다가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했었다. 어쩌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산 사람들은 오히려 그 죽음을 알지 못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던 말처럼 많은 이들이 존 메이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잔잔한 흐름의 스토리텔링과 끝까지 덤덤하지만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엔딩을 통해 그의 진심이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핏 보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지만, 그의 삶이 매듭지어진 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를 향한 진심 어린 추모를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후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영화의 엔딩이 조금은 갑작스럽거나 당황스러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존 메이와 켈리의 약속을 보며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었는데, 삶이 끝나고 나서야 그가 끝까지 기억하고 진심으로 추모했던 이들에게 기억되고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 약간은 속상하기도 했다. 어쩌면 켈리를 통해, 그리고 그가 남긴 진심 어린 흔적들로 인해 빌리 스토크의 마침표를 함께 찍으려 모인 사람들을 통해 존 메이가 새로운 흔적을 만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흔적이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듯한 화면의 색감 속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하고 다정한 진심을 영화를 통해 느꼈기에 나는 이 영화를 삶 속에서 자주 떠올릴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나의 흔적이 따스한 발자취로 남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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