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2-08-22 86 views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시사회 후기입니다!!
까망
연구원
[영화정보]
제목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개봉 : 2022. 08. 25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코미디
국가 : 노르웨이
러닝타임 : 128분 (2시간 8분)
[줄거리]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율리에라는 사람]
<사누최>의 주인공 율리에는 '뭐든지 열심히, 뭐든지 잘, 뭐든지 최고'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의대로 진학한 이유도 그곳이 입학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그녀가 어느 순간 자신의 특성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도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율리에는 그렇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항상 열심히 탐색해나간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의대를 그만두고 심리학 전공으로 옮겼다가, 나중에는 사진작가에도 도전한다.
사랑과 연애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하지만 애매하게 사랑하고, 바람을 피우지만 애매하게 바람피운다.
이러한 율리에는 '모르겠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우리가 보기엔 자기도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그녀가 우유부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영화는 짧지만 분명한 언급을 한다.
[인문학과 방법론]
극 중 율리에는 남자친구 악셀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전체적인 맥락은 '지루한 얘기를 하는 남자친구에게 지루함을 느끼는 율리에'였지만, 그중에서 악셀이 얘기한 내용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자세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즘은 인문학에 방법론을 적용시키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에 수강했던 철학 전공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이라 내심 반가웠다. <해석학과 문예비평>이라는 과목이었는데, 기말 리포트 주제로 가다머를 선택해 작성했었다. 그 내용 일부를 발췌한다면 다음과 같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인생은 탄생(Birth)와 죽음(Death) 사이 선택(Choice)의 연속이라는 것인데, 장폴 사르트르의 명언이라고 이른바 알려져 있지만 그 근거는 없다. 어쨌든 이 말대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선택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여러 방법으로 계속 시도하는 건 과학적 실험에서 적용할 순 있겠지만 인간이나 역사, 사회에는 적용할 수 없다.
...(중략)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저서 『진리와 방법』의 제목이 주는 의미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진리와 방법’은 ‘방법론적 진리의 탐구’가 아니다. 방법론과 방법이 다르고, 실존론과 실존이 다르듯이 가다머에게 존재 인식은 그 방법들 중 하나가 아닌 방법 자체이며 이는 역사성, 전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방법을 방법론으로 보고 무엇이 옳은 길인가 하고 관찰하는 것은 이방인, 외부자의 시선임에 불과하다.
악셀의 '방법론을 인문학에 적용시킨다'라는 말이 우리가 율리에를 보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스크린 속 율리에를 보고 저기서 저러면 안 됐다,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나았다 등 여러 가지 말을 건넬 순 있지만, 그건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일 뿐이다.
그 당시의 그 율리에에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마치 과학에서의 실험처럼 A를 해봤다가 안되면 B를 해보고, 또 C를 해보고, 그런 식의 방법론은 과학에나 적용되지 우리에겐 적용될 수 없다는 말이다.
[매력적인 연출]
<사누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도 총 12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에 12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다는 자막이 떴을 때는 뭘 굳이 그렇게 많이 나눠놨지 싶었지만 다 보고 나니 기획 단계부터 구상한 건지, 편집 단계에서 추가한 건진 모르겠지만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여러 연출들이 영화를 더욱 다채롭고 흥미롭게 만든다.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인서트 컷들이 빈번하게 등장해 극에 활기와 속도감을 주기도 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연출, 버섯으로 인해 생겨난 환각 등은 자칫 평범할 수 있는 드라마를 극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율리에가 악셀에게 이별을 고하기 전까지의 하루를 나타낸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시퀀스의 시작과 끝이 부엌 조명 스위치를 통해 정확히 나뉘는데, 정말 마법이 시작되고 끝나는 순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촬영한 이 작품에는 도심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아 예쁘다, 저기로 여행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길거리나 소품들이 묘하게 <라라랜드>의 느낌도 나는데, 활기찬 도시 속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총평]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순히 위안을 건네는 영화는 아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고, 또 역설적으로 현실적이기 때문에 영화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 너는 어때?" 정도의 질문 내지 물음을 가볍게 놓고 떠나간다. 그 정도의 언급도 누군가에겐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후반의 설정과 리듬은 다소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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