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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2025-04-30 18:35:11

<해피엔드>, 안전이라는 이름의 폭력

지유 연구원

출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탤릭체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네모 칸의 타이포와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학생들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장면들을 제시한 후, 카메라가 비추는 밤의 풍경에서 학생들의 실루엣은 사라졌지만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학생들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온다. 영화의 타이포에 반듯하고 굵은 이탤릭체가 눈에 먼저 들어오고 카메라가 학생들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듯, <해피엔드>는 주체의 시선으로 선택한다. 오프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말하는 화자 대신 듣는 청자를 비추거나, 전혀 상관없는 배경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림자를 찍기도 한다. 이런 카메라의 규칙은 교장과 그 옆의 선생들 등 권력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화면의 정중앙에서 말한다.

 

 또한 시위나 지진의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 데모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지진의 상황에서는 소리 없이 흔들려 떨어지는 물건만을 보여준다. 학생들의 교장실 칩거 농성도 처음 교장실을 점거할 때의 장면이 아닌 이후 교장실에서 대치하는 장면을 선택한다. <해피엔드>가 주체의 시각을 선택했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에 있다. 인물들이 다니는 학교는 하얗고, 24시간 돌아가는 감시카메라와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안전한 곳이다. 뉴스 속 총리는 시만들의 안전을 주장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엄중한 배제를 약속한다. 언뜻 보면 안전해보이는 세상이지만 그 근간에는 소수자들에 대한 타자화가 깔려있다. 카메라가 시위와 지진을 숨기듯 세상또한 시위와 지진을 숨기며 안전한 사회처럼 보이게 만든다. 소수자인 문제아, 이민자, 재일외국인들은 학교와 세상 속 권력의 시선을 피해 숨거나, 숨겨져야 한다.

 

 

 

 

 

 깔끔한 건물과 좋은 차가 있는 만들어진 사회와 달리, 진짜 사회는 어둡고, 구름 가득한 하늘에는 붉은 글씨의 뉴스가 뜨며 매일 지진 재난 문자가 날아든다. ‘안전의 이면에서 사는 학생들이기에 학교, 사회가 애써 감추고 있는 부조리함을 본다. 그러나 같은 문제아로 치부되어도 유타와 코우는 동일한 선상에 서 있지 않다. 유타가 교장의 차를 보며 같이 장난을 치자고 권유할 때, 학교에서 야타와 경찰을 주제로 농담을 할 때 유타는 고개를 들고 서있지만, 코우는 허리를 굽히고 있다. 유타와 코우가 클럽이 있던 장소에서 말다툼을 할 때도 코우는 서있는 반면 유타는 고개를 숙이고 디제잉에 집중한다.

 

 초반의 장면, 경찰의 단속으로 사람들은 클럽에서 빠져나가고, 코우도 사람들처럼 클럽을 떠나려하지만 음악에 심취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유타를 보고 돌아온다. , 유타의 집에서 제일 먼저 집밖을 나가는 건 코우다. 아이들은 코우를 선두로 차례차례 집을 떠나지만 유타는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다. 위 장면들은 유타와 코우의 성격을 보여준다. 코우는 재일외국인으로 엄중한 잣대 위에서 살아간다. 유타가 경찰에게 잡히면 단순한 학생의 일탈로 치부되지만 코우는 자신의 존재와 삶을 위협받는다. 교장의 차에 장난을 치려는 유타를 말리거나, 교장실 점거 농성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도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타는 동아리실을 폐쇄하고 음악 기기를 창고에 옮기자 혼자서라도 그 기기들을 훔쳐오는 즉흥적인 인물이다. 코우의 시선으로는 같은 짓을 해도 유타와 자신에게 다른 결과가 따르는 현실과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기는커녕 아무 생각 없어만 보이는 유타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반면 유타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바뀌지 않았으나 한마음 한뜻으로 어울리던 친구들이 점차 흩어지고,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나가는 것에 소외를 느낀다.

 

 이 둘의 갈등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해소된다. 유타는 악기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시위하는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다 경찰에 붙잡혀 끌려 나가는 장면을 본다. ‘이라는 유타의 공간에 이 침범하게 되고, 이후 같이 서드 앰프를 옮기던 코우또한 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찰에 잡혀 끌려가는 것을 본다. 이는 유타가 코우가 서 있는 위치가 자신과 다른 임을 인식하게 되는 장면이다. 영화의 후반부, 교장실 점거 농성이 있은 후 교장의 연설에서 학생들은 교장의 감시카메라 철폐에 환호하는 쪽과 예방의 효과가 있다며 반대하는 쪽으로 나뉜다. 이때 환호하는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코우와 달리 유타는 반대편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위치한다. 자신의 차에 장난을 친 범인을 고발하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교장의 조건에 유타는 범인이 자신임을 고백하고 퇴학당하며, 비로소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게 된다.

 

 코우는 후미와의 만남으로 성장한다. 후미는 일본인이지만 재일외국인들이 받는 차별에 관심을 가지고, 시위에도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인물이다. 후미와 만나며 코우는 시위에도 참가하는 등 방어적인 기제를 조금씩 벗어가지만, 시위 사실을 학교에 들키고 장학금을 빌미로 협박받는다. 이런 일들이 있고, 코우는 후미를 필두로 교장실로 점거 농성을 하러 가는 무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헬멧을 쓰고, 김밥을 챙겨 교장실로 들어간다. 코우가 일본인과 재일외국인이라는 차이로 유타에게 일방적으로 가졌던 질투와 억울함을 후미의 존재를 통해 해소하고, 밖에서 안으로 이동한다.

 

 

 

 

 

 

 

 <해피엔>에 나오는 지진과 EDM, 시위는 모두 흔들림으로 묶인다. 사람들은 지진을 재난으로 보고, EDM을 불량하고 방탕하다 여기며, 시위를 폭력적이라 여긴다. 그러나 유타가 세워놓았던 교장의 차가 지진으로 전복되어버리고, 점거 농성이 인권을 침해하는 감시카메라 철거를 이룬 것처럼 이런 흔들림들은 해방과 저항으로써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단 한 번의 흔들림이 기분 좋은 결말을 가져올 수 없음을 시시한다. 유타와 코우의 갈등에서도 해소와 성장의 암시만 있을 뿐, 직접적인 장면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코우가 여전히 유타를 두고 먼저 계단을 내려가듯, 둘이 완전히 동일 선상에 서게 된 것도 아니다. 영화의 결말부, 코우가 대학 장학금을 받고 손님들이 환호하는 장면에서 가만히 멈춰져 있던 전등은 환호하는 손님의 머리에 부딪치며 다시 요동친다. 지진은 완벽한 사회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지진이 일어난 후에도 새로운 부조리함은 생겨난다. 그러나 적어도 지진을 멈추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는 잉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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