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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2025-05-03 12:18:45

의심이 곧 믿음이다「콘클라베」

"내 믿음에 회의가 들어요.."

영화 「다우트」의 마지막 즈음에, 돌처럼 굳건하고 단단한 믿음으로 일관하던 수녀 알로이시스는 눈물을 흘리며 얘기한다. 교구 신부의 성추문을 파헤치고 난 직후였다. 그 제목부터가 의심(doubt)인 「다우트」를 위시해, 종교를 다룬 수많은 이야기들의 실질적 주제는 대부분 '의심'이다. '종교'는 그 의미상 '믿음'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자면 필연적으로 '의심'이라는 키워드가 녹아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로맨스 영화에서 남녀 간의 다툼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따라서 에드워드 버거의 「콘클라베」가 종교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의심을 적극적으로 다룬 것은 특별하지 않다. 다만 「콘클라베」의 미덕은 영화에서 그 '의심'이 드러나는 형태가 매우 세련됐다는 것이다.

 

 

 

세 가지 의심


우선 소재부터 흥미롭다. 「콘클라베」는 교황은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하고,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로렌스' 추기경이 죽은 교황의 거처를 돌아다니면서 상황을 수습하는 씬으로 본격적인 포문(?)을 연다. 이때 로렌스 추기경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캐릭터를 만나면서 관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데, 그 상황에서 교황 선출 의식인 '콘클라베'를 집전하는 일종의 진행자 역할을 떠맡게 된다.

이는 전형적인 추리 영화의 도입부와 유사하다. 어떤 사건이나 캐릭터에 관련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상황들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인데, 영화는 시종일관 철저한 '로렌스' 추기경의 관점으로만 진행되기에 영화 내내 관객들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다만 「콘클라베」에서 '로렌스'가 쫓는 것은 범인이 아니라 일종의 '신앙'이다. 콘클라베의 집행관으로서 그의 역할은 미국 법정의 판사와 유사하다. 판결 자체에는 딱히 권한이 없지만 투표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 (특정 후보에 대한) 어떤 정보를 열고 닫을 수 있다. 그래서 영화 내내 로렌스는 정보/첩보의 바닷속에서 어떤 인물이 '교황에 적합한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가톨릭 문화에서 교황이란 신과 인간의 중간쯤에 위치한 (인간이라기보단) 강력한 종교적 상징이라는 점에서, 로렌스가 고민하는 '누가 교황에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은 사실 신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로렌스에게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의 진위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그는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극의 중반부에 이르면 안 그래도 복잡한 진실게임에 숨겨진 한 층위의 베일이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건 바로 '로렌스' 저 자신의 욕망이다.

로렌스는 진보 진영 유력 후보인 '벨리니'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사실 로렌스 속엔 어떤 욕망이 있다. 로렌스가 "양이 있으면 목장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어야 된다"라는 선대 교황의 애정 어린 조언을 반복해서 되뇌는 건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내심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콘클라베에 시작하기 앞서 짧은 연설을 하던 로렌스가 너무 존재감을 드러내버린 바람에 진보 진영의 표가 갈라져버리는데, "그렇게 야망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라며 비아냥거리는 '벨리니'추기경에게 로렌스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극의 중후반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투표를 하는 로렌스의 행동을 봤을 때, 공격적인 연설은 로렌스의 무의식적인 욕망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콘클라베」가 의심을 드러내는 형식은 입체 / 다층적이다.

  1. 정보에 대한 의심

  2.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

  3. 신앙 자체에 대한 의심

세 가지의 의심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어떤 긴장감은 위엄 있는 종교 의식이라는 느리고 지루한 소재 속에서 충분한 장력을 뽑아낸다.

 

 

 

 

인간에서 상징으로, 콘클라베


「콘클라베」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장대한 인서트(Inserts) 컷과 인물 클로즈업의 반복적인 대비다. 특히 거대한 종교화를 비추거나 특정한 성물을 제법 긴 시간 동안 비추는 등 인서트 컷을 일종의 종교적 상징처럼 사용하는데, 이는 로렌스의 시각에서 바라본 신성성의 모습이다. 선대 교황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지지하는 후보인 '벨리니'나 '베니테스'에게 순결의 프레임을 씌우는 등 로렌스에게 신앙이란 완전무결의 무엇인 셈이다. 이에 반해 감독의 카메라가 인물을 비출 땐 섬세한 표정이 드러나는 클로즈업을 선택한다. 결국 신앙을 체화하여야 할 인간은 로렌스가 기대하는 순결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며, 그것은 클로즈업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캐릭터들의 표정으로 드러난다.

극의 후반부 원인 모를 폭탄 테러 직후 이와 같은 도식은 살짝 뒤틀리는데, 투표장이 아닌 작은 강당에 모여 속에 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꺼내는 추기경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지금껏 종교화를 비추던 그 롱숏으로 추기경들을 비춘다. 이때 처음으로 극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지금껏 조용히 있던 '베니테스'다. 마지막 남은 유력한 보수 후보 '테데스코'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순식간에 콘클라베의 중심으로 떠오른 '베니테스'를 비추는 카메라는 지금껏 인물들을 비추던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연출을 보인다. 역시도 베니테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한 로렌스의 연장일 것이다.

정리하자며 「콘클라베」는 일종의 추리 스릴러의 형태를 띤 로렌스의 내면 탐구(?)인 셈이다. 사실 소재가 콘클라베일 뿐 기독교의 교리나 개념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에서 '종교'가 있는 자리에 각자의 '믿음'을 넣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독해할 수 있을 테다.

결국 영화에서 중요한 건 내가 믿는 어떤 순수성, 내가 믿는 성역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일 텐데, 극의 마지막 나름의 반전으로 기능하는 '최종적 진실'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의심해 보아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의심을 품지 않는 확신"이라는 작중 로렌스의 대사는 결국 영화가 말하고 싶은 최종적인 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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