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구름(Can We Just Love)
박송열/Korea/2018/71min/DCP/Color/Fiction/12세 이상 관람가/‘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
시놉시스
영화감독을 꿈꾸는 명훈과 배우를 꿈꾸는 선희는 서로의 존재를 위안 삼아 연애를 하고 결혼도 다짐한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실망한 명훈은 자신의 꿈과 현실을 돌아본다. 명훈은 선희에게 취직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박송열 영화의 엔딩은 언제나 잔잔한 전율을 준다. ‘잔잔한 전율’은 형용모순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박송열의 영화는 언제나 이 일을 해낸다. 그리고 그 전율은 늘 노동계급 소시민의 소박한 일상과 도덕을 마찬가지로 소박한 구원의 테마와 연결하면서 이루어진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1)의 결말, 주인공 영태는 어느 염치없는 선배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는다. 그 선배는 영태의 고가 카메라를 빌린 후 일언반구도 없이 팔아버렸다. 그 돈을 영태에게 돌려주지도 않는다. 영태는 어렵게 선배에게 300만 원을 받아낸다. 하지만 사정이 어렵다는 선배의 말에 마음이 약해져 다시 100만 원을 돌려준다. 그러나 선배는 곧바로 차를 샀다며 SNS에 자랑을 한다. 영태는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어느 새벽, 응징하고자 하는 마음에 선배의 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선다. 그의 소박한 삶을 지탱하는 소시민적 도덕이 물리적 해코지를 방지하는 문턱이 되어준 것이다. 이 응당한 분노와 소심한 체념. 없는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털려 사회적 존재로서의 품위를 지키기가 영 어렵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인간의 조건’을 벼려낸다. 영악한 자들이 절대 갖지 못할 무언가다.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2024)의 엔딩도 전작만큼이나 특별하다. 이번에도 영태와 미주 부부는 소시민적 애환에 시달린다.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보려다 실패한 영태와 유산한 미주. 두 사람의 삶은 크고 작은 ‘실패’로 가득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엔딩에서, 두 사람은 그 모든 실패가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듯이 느긋하게 서로의 몸을 포갠다. 전작에 이어 노동계급 소시민에게 구원은 자잘한 실패 속에서도 자신들이 소박하게 구축해온 일상과 도덕에서 피어오른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환기하는 장면이다.
〈가끔 구름〉(2018)은 노동계급 소시민에게 구원은 극적이라기보다 일상적이고, 거창하다기보다 소박하다는 박송열 영화의 일관된 메시지의 원점에 있는 영화다. 각각 감독과 배우를 꿈꾸는 명훈과 선희는 결혼을 준비 중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 상태다. 그들의 생활에서 마주하는 숫자의 단위는 이후 두 영화에서 그러하듯 여전히 ‘초라’하다. 각각 대리운전과 연기 레슨을 하며 부족한 생활에도 애정이 깃든 생활을 유지하던 두 사람.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과 비교에 흔들리기 시작하고 다투기도 한다. 명태의 시나리오는 제작에 들어가는 듯하다가 좌초되고, 선희는 계속 오디션에서 탈락하기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감, 비통함, 원통함, 울분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 기준으로관계를 재단하는 대신 두 사람 관계에서 나오는 내재적 가치로 관계를 단단히 재정립한다. 돈은 없지만 같이 있는 시간은 많아서 행복한 ‘외계인’으로서, 남들과 비교할 시간에 “우리 사랑 좀 하자”며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을 선택한다. 영화에 흩뿌려진 노동계급 소시민의 일상적 애환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스스로를 ‘구원’한다. 박송열 영화가 뿜어내는 기묘한 힘은 바로 여기서 솟는다. 세상이 우릴 힘들게 할지라도, 노동계급 소시민은 스스로 구원을 빚어낼 역량을 갖추었다. 그의 영화가 비연속적인 시퀀스와 ‘일반적’ 리듬을 벗어나는 편집으로 인해 익숙하기보다는 낯설게 다가오는데도 여타의 ‘자연스러운’ 극영화를 압도하는 힘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끔 구름〉은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에서 상영되었다. ‘독립영화’가 또 하나의 시장성을 담보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국제적인 경향성 속에서, 그 지배적 흐름을 거스르고 진정한 의미의 ‘독립’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상영하는 섹션이다. ‘투자(상업영화), 지원(독립영화)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가끔 구름〉을 찍기 시작했다는 박송열 감독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섹션이다.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의 일상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가능한 영화’는 앞으로도 이어져 영화적 모험을, 나아가 노동계급 소시민의 일상과 도덕 그리고 구원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상영 스케줄
2025.05.03.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17:30(상영코드: 355)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04.30 ~ 05.09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