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획기사 2025-05-04 09:59:39
[JEONJU IFF 데일리]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한 발악으로, <맨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빠짐없이 수많은 상영작을 선보인다. 한국경쟁작들을 한데 모은 ‘한국경쟁’부터, 전위적인 작품들이 돋보이는 ‘국제경쟁’ 섹션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국내 경쟁부문 탈락작과 비경쟁 부문 작품들을 모아둔 섹션인 ‘코리안시네마’는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의 향연 그 자체다.
코리안시네마 섹션 내 구분은 다큐멘터리, 현직 배우들의 연출작, 중견 감독들의 작품부터 신진감독들의 작품 등까지 다양하다. 모든 작품이 주목받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어떤 곳에서나 신진감독들의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어떤 새로운 얼굴과 신선한 생각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낼까. 그 호기심을 한지수 감독의 <맨홀>로 풀어보고자 한다.
맨홀
Hideaway
Cast
감독: 한지수
출연: 김준호, 권소현, 김민서, 박미현
시놉시스
폭력을 일삼던 소방관 아버지가 순직한 뒤 새로운 삶을 꿈꾸던 18살의 선오는 아버지의 폭력을 잊은 듯 행동하는 엄마와 누나로 인해 혼란스럽다. 새롭게 친구가 된 기진 무리와 어울리며 엇나가는 선오. 아버지의 1주기 기념식에 다녀 온 엄마와 누나에게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선오 내면의 무언가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 같다. 평소에 그릇된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내 손으로 하게 되고, 부정하고 싶던 것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맨홀>이 다루는 사례는 조금 더 드라마틱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현실에 그런 딜레마들은 잊을 때면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맨홀>은 고등학생 선오(김준호)가 아버지로부터 당하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자신이 타인에게 폭력하기에 이르는 일련의 수미상관 형태를 가진다.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메타포와 끊임없이 반복하는 딜레마들이 특징이다. 서사 구조가 극히 어렵기보다 친절한 형태를 띤다. 그러나 은유와 작품이 던지는 질문들에 길을 잃기 쉬울 수 있으니 관람에 주의가 필요하다.
가정폭력 일삼는 아버지가 타인에게 영웅이라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가장 큰 명제를 관객에게 떠안긴다. ‘집에서는 악마 같은 아버지가 밖에서는 영웅이라면?’ 선오와 누나, 어머니는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선오 남매에게 보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미루어봤을 때, 선오 아버지는 의처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어머니를 의심하고, 의심스러움을 분노로 표출한다. 그렇게 어머니부터 자식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포에 질리게 한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남매는 동네 숨겨진 곳에서 한 맨홀을 발견한다. 그 맨홀 뚜껑 아래에는 자그마한 공간이 있다. 그곳은 작은 남매에게 도피처가 되어준다. 그 이상으로 그들의 ‘집’이 되어준다. 우연히 만난 고물상 강아지는 그들에게 내려지는 포근한 달빛과도 같아 ‘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 표면적인 서사는 시간에 따른 역행적 삽입 구조를 통해 플래시백된다.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는 소방관으로서 언제나 사람들을 구했고, 그 과정에서 명예롭게 순직한다. 우스울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폭력적인 사람의 명예로운 죽음이라니. 남겨진 선오 가족에게 그 죽음은 달빛과도 같았을까. 포근히 내린 가정의 평화는 선오 가족에게 찾아올 수 있을까.
맨홀 안 지하실에서 ‘판도라의 상자’로
지하실은 어쩌면 선오의 마음이 공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은 가정폭력을 통해 공통된 경험과 마음을 가진 선오와 누나 둘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이제 누나는 지하실에 오지 않으니, 선오 뿐이 그 공간을 유일하게 점유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다 비행 청소년 친구들 무리에서 만난 희주를 만난다. 희주와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선오는 희주에게 지하실을 공개한다. 자연스레 희주라는 인물이 선오 누나의 자리를 대체하는 셈이 된다. 영화는 그렇게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맨홀 아래 지하실이라는 공간에서 구체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관계와 감정의 지하실은 아버지라는 기억으로부터 변질하기 시작한다. 도피처면서도 남매애를 형성했던 그 공간은 폭력적인 아버지의 죽음이 명예로웠다는 증명들이 찾아오면서 발길이 끊긴다. 선오는 남은 가족이 아버지의 폭력적이었던 모습을 끝내 용서하는 것에 분노한다. 그렇게 순직을 기리는 명패와 아버지의 사진들은 선오의 손에 의해 맨홀 뚜껑 아래로 추락한다. 말 그대로 ‘버려’진다.
두려움과 방황 속에서 피어났던 희망과 사랑의 감정들이 있었던 곳에 분노와 증오가 담기자 그 공간의 문은 완전히 닫혀버리기에 이른다. 따뜻했을지는 몰라도 인간미가 담겨있던 곳에 부정적인 것이 침입하자 그 공간은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의 가장 핵심이 되는 존재인 외국인의 시체가 지하실로 떨어진다. 절망과 공포, 두려움과 죽음은 이제 그 공간의 성분이다. 손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손을 대게 된다. 금지된 것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선오는 러닝타임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맨홀의 뚜껑을 열게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간에.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곳이 폭력을 삼키는 곳으로
<맨홀>은 꽤 많은 긴장감과 두려움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딜레마 속에서 선오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외국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뒤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선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트라우마를 제공한 장본인이 사회적 명예를 갖게 되는 것은 선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선오에게 폭력이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즉 선오에게 폭력은 아버지였고, 아버지는 폭력 그 자체였다. 그런 이가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폭력을 자신의 아지트에 던져버렸어야 했을 것이다. 아지트면서도 그곳은 일종의 대지 밑, 지하이기에 ‘비가시화’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오는 그 폭력이라는 것에 다시 손을 내민다. 시비에 휘말렸던 외국인을 선오 무리가 찾아 단죄할 때, 결국 발길질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숨겨왔던 폭력에 관한 열망과 억눌렀던 분노는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그 외지인에 잔인하게 표출된다. 그 잔인성의 끝은 선오가 다시 맨홀 뚜껑을 열게 한다. 이제는 그 맨홀 뚜껑 아래에 증오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폭력성마저, 자신이 표출한 그 증오스러운 것의 현현마저 존재한다. 그렇기에 아이러니다. 폭력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폭력으로 봉합한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오의 몸부림은 결국 선오를 스스로 다시 그 그림자 안에 묶어두는 것은 물론, 그 그림자가 되게끔 만든다.
뚜껑이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닫혀버려 그 비밀과 증오를 가둘 때까지, 맨홀은 러닝타임 내내 일종의 내핵처럼 자리한다. 그 중심과도 같은, 심지어 제목에까지 존재감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맨홀>은 그 존재 자체로 관객에게 러닝타임이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끝없이 질문한다. 아버지를 용서할 것인가, 용서하고 잊고 새 출발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관객이 스크린 바깥에서 스스로 그 질문에 답할 때다.
상영 일정
2025. 05. 01(목)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20:30
2025. 05. 02(금) CGV전주고사 4관 10:00
2025. 05. 03(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8관 17:30
2025. 05. 09(금)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13:30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30일~5월 9일 동안 개최됩니다.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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