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샤워 바다 (Memories Showers Seas), Korea, 2025, 82min, Documentary, World Premiere
▶Director
임흥순 IM Heung-soon
▶Synopsis
제주 4·3 이후 일본으로 밀항해 재일조선인의 삶을 산 고(故) 김동일이 남긴 2,000여 점의 뜨개와 옷들은 그녀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켜온 작은 역사이다. 김동일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누는 과정 속에서,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양한 재일조선인의 여전히 아물지 않은 삶을 조명하고 서로 얽혀 있는 기억을 나누고 연결한다.
<기억 샤워 바다>, 삶으로부터 또 다른 삶으로, 감각으로부터 또 다른 감각으로
<기억 샤워 바다>는 여유로운 템포로 담은 어느 공원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도입부의 장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화면 속 그들이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줄로만 알았던 그들은 자세히 보니 앞이 아닌 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이것은 편집을 통한 감독의 의도적 연출인 듯하다. 감독은 우리가 지나온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일까? 해당 장면에 대해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도입부는 곧이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제주 이야기와 연결되며 나를 과거 그곳으로 데려가는 가교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의 역행하는 걸음처럼 나도 시간을 거슬러 감독이 방문했던 그때의 제주로 돌아갔다.
<기억 샤워 바다>는 2023년 같은 이름으로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열렸던 전시에 근간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과거 전시했던 옷들을 감독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진행자의 말과 함께 다양한 옷들과 뜨개의 흔적들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2,000여 점의 뜨개와 옷들은 제주 4·3 이후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을 살아온 고(故) 김동일 어르신의 삶의 흔적이자, 자신의 기억과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적 기록이다. 뜨개는 그녀에게 끊임없는 자가 치유의 과정이었을 것이며, 영화는 거울과 비어있는 마네킹, 흩날리는 옷의 이미지들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거울에 비어있는 마네킹이 등장할 때, 그녀의 대한 후 세대의 말과 함께 거울의 이미지가 등장할 때, 관람자들은 그 공허한 공간 속에 몰입해 그녀의 지나온 걸음을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녀의 삶의 흔적이 곳곳이 묻은 옷이 후 세대에게로 와 닿는 과정을 담는다. 재일조선인의 정체성과 후 세대의 기억에 관한 담론은 <되살아나는 목소리>,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 함께한 <이방인의 텃밭> 등 다양한 영화에서 다뤄지고 있다. 해당 영화들은 각각 ‘필름’이라는 손으로 감각이 가능한 사물, 예술과 연대, 식물 등을 통해 그 정체성과 기억을 찾아가는데, <기억 샤워 바다>는 ‘옷’이라는 피부에 닿는 어떤 것, 인물의 신체와 행위를 함께하는, 무엇보다 사람의 숨결 가까이 감각 되는 물체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 다시 감각하고, 감각 되는 모습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그녀의 삶을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고요한 항구는 이내 도입부에서 등장했던 공원을 처음과 반대로 ’순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차곡히 겹쳐진 레이어는 쌓여온 시간들을 보여주며 항구와 겹쳐진 사람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정취가 묻어나던 과거의 터를 연상하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의 염원, 소망, 바램을 상상하며 보면 풍경이 달리 보인다’는 말처럼 <기억 샤워 바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누군가의 삶으로, 염원으로, 소망으로 채우며 관객을 끌어들이는 듯 하다.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며 따라가던 관람자들은 그 끝에서 결국 우리네 삶과 염원을 마주하게 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4.30.(수) ~2025.5.9.(금)
▶상영 일정
5/2(금) 13:30분
5/3(토) 14:00 메가박스 전주객사 7관
5/4(일)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GV)
5/7(수) 21:00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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