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날과 참 잘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바로 박송열 감독이 연출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쌀쌀한 밤과 더운 낮 사이 그 틈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가끔 구름>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부부로 돌아왔다. 현실적인 사랑과 일상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에서 상영된다.

영화정보
박송열
PARK Songyeol
Korea
2021
90min
DCP
Color
Fiction
12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불안정한 일자리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영태와 정희 부부는 사채는 절대 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머니의 생일날, 다른 형제들이 모두 두둑한 돈을 선물로 줄 때 이들 부부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영태는 초라함을 느끼고 괜스레 정희를 탓한다. 이에 정희는 홧김에 사채를 빌리러 간다.
영화리뷰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까지도 지켜낸 두 사람은 현재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에 열중한다. 때론 버거운 삶에 지쳐 주저앉기도 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견디곤 했다. 영태는 영상을 작업해 왔고 정희는 학교 강사로 일해왔으나 두 사람은 현실의 문제로 공사장, 택배, 대리운전, 마트, 식당 등 일용직을 전전한다. 평화로운 그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큰 이유 역시 '돈' 때문이다.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적어도 이것만큼은 하지 말자는 금기를 깨고 말았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경제적 여유'는 더 빠르게 무너져갔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현재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삶 속에서도 삶의 질을 챙기는 모습이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건 중 하나이다. 작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의 행동은 무모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존엄이었다.
영화가 현실에 맞닿아 있는 만큼 그 생생함은 스크린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에 집중하기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큰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반전 없이도 이야기의 단단함이 살아있고 그들의 일상은 선명하게 전달된다. 겉 보기엔 아무 일도 없지만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선과 관계의 파동은 왠지 모를 이끌림을 선사한다. 어떤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채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 막연한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그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 투박한 사랑을 지켜내려는 고단한 일상이 불안정한 계절의 온도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영화가 끝나도 현실의 갑갑함도 막막함도 해소되지 않지만 낮이 덥고 밤이 추운 게 당연한 것처럼 인생은 흘러간다. 삶은 노력한다고 해서 그 대가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고 때론, 무책임감에 한숨 쉬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도 삶은 계속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의 삶을 다정하게 응시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고귀하고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오가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에서도 이어질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