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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획기사 2025-05-05 16:14:41

[JEONJU IFF 데일리] 경계 없는 서사, 퍼펫 애니메이션의 마법

스톱모션은 지금 이 시대에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형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든지 인공지능으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장면 하나하나를 기워 완성하는 작업이라니. 인공지능의 활약이 마법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의 손끝에서 오롯이 완성되는 이러한 결과물이 더 마법처럼 느껴집니다. 웬만한 용기와 끈기, 열정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지요. 

 

'퍼펫 애니메이션(인형을 사용한 스톱모션)의 대가'로 불리는 퀘이 형제는 지난 19년간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물결을 지켜보면서도 묵묵히 또 한 편의 스톱모션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바로 그 퀘이 형제의 세 번째 장편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

Sanatorium Under the Sign of the Hourglass




Summary 

요제프는 유령이 나올 듯한 기차를 타고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는 쓰러져 가는 요양원으로 향한다. 미심쩍은 고타르트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요제프는 요양원이 수면과 각성 사이 부유하는 세계 어딘가에, 시간과 사건이 어떤 형태로도 측정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퀘이 형제 

 

 

스톱모션으로 물성화한 현실과 환상의 세계

 

이 영화를 홍보하는 문구에서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동명 소설을 물성화한 미스터리 영화"라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흔히 '영화화'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는데, 왜 '물성화'라는 표현을 썼는지 궁금했죠. 영화를 보고 나니 왜 하필 그 단어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말로 붙잡기 어려운 어떤 관념이나 분위기를 손에 잡힐 듯한 실체로 만들어낸 작품, 그것이 바로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였습니다. 

 

퀘이 형제가 주목한 브루노 슐츠의 소설 『모래시계 요양원』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요양원을 찾아간 주인공의 경험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퀘이 형제의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주인공 '요제프'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요양원으로 향하고, 유령들이 살고 있는 낡은 요양원에서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하죠. 

 

영화는 희귀한 물건을 경매로 판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실사)와 경매 물품 중 하나인 '죽은 망막 보관함' 안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이야기(애니메이션)가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집니다. 퀘이 형제는 모호하고 몽환적인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실사와 그들의 장기인 퍼펫 애니메이션을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액자 밖의 사람들이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죽은 망막 보관함' 속 이야기는 꼭 나만 경험할 수 있는 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 ⊙ 

 

직관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영화 

 

스톱모션이라는 형식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어쩔 수 없이 스토리나 구조가 단순하고 평이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는 19년이라는 작업 기간이 말해주듯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심오한 주제 의식까지 다뤄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닙니다. 현실과 환상, 액자의 안팎을 오가는 구조는 복잡하고, 흐름은 비논리적이며, 이야기의 방향은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반복되고, 어떤 대사는 들리지 않으며, 어떤 소리는 불협화음처럼 익숙하지 않은 자극만을 주기도 하죠. 철제와 금속 소재를 중점으로 사용한 스톱모션을 낯선 경험이 주는 긴장감에 불편감을 더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어떠한 명확한 논리도 따르지 않는 겁니다. 

 

도대체 이 영화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꼭 1인용 영화관처럼 그 안에서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죽은 망막 보관함'이라는 설정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관객에게 가닿을 개별적인 이야기를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은 나에게만은 또렷하게 남는 단 하나의 현상, 즉 본질에 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퀘이 형제의 어법은 흐릿하고 모호한 표상들로 구성되지만, 이로써 그저 영화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게 합니다. 또 각각의 장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이지만, 모순적으로 이를 경험하는 순간은 유일한 단 하나의 일이죠. 한 번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경험이며 그것이 곧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이라는 본질을 퀘이 형제는 영화를 통해 선사하고 있습니다. 

 

⊙ ⊙ ⊙ 

 

다소 어려운 영화였습니다만, 장인의 손길로 버무려진 퍼펫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이것이 또 하나의 본질일 수 있겠지요. 

 

One-Liner

망막에 맺힌 상은 흐릿하나, 그 속엔 저마다의 본질이 있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CGV전주고사 2관 20:30

2025.05.04(일) CGV전주고사 2관 20:30

2025.05.08(목) CGV전주고사 5관 21: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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