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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2025-05-07 01:37:14

외롭고 불안한 우리가 90년대의 낭만으로 회귀하고 싶을 때

Somnium 연구원

출처.

**스포일러 포함 리뷰**




여름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뜨거운 열기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진 사랑을 담아낸 <콜미바이유어네임>청량한 그리스의 배경이 담긴 <맘마미아>푸르른 녹음을 비롯한 사계절의 풍경이 오롯이 담긴 <바닷마을 다이어리등 다양한 영화가 있지만나에게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중경삼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중경삼림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사실 영화의 유명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내용을 보고 실망을 좀 했었다당시에는 영화의 영상미보다는 서사에 좀 더 집중하고 봤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도시인들의 외로움과 쓸쓸함고독함이 공허한 사랑 타령으로 점철된 느낌을 받았달까하지만 내가 중경삼림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된 건두 번째 감상부터 시작되었다늦은 여름 밤에 약간의 감수성에 젖어있던 나는 이 영화가 불현듯 다시 보고 싶어졌다그리고 여름밤의 선선한 공기와 함께 영화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중경삼림에는 네온사인이 빛나는 화려한 도시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군중들과 대비되는 개인의 고독함이 탁월하게 표현되어 있다왕가위 감독은 이러한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을 헨드헬드 촬영 및 슬로우모션리듬감있는 편집다채로운 색감 등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이러한 중경삼림 특유의 센티멘탈리즘과 촬영 스타일은 현대에도 유효해서 왕가위 영화의 마니아들을 아직도 끊임없이 양산 중이다.




중경삼림은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경찰 663과 메이가 처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저 멀리서부터 페이가 일하는 가게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경찰 663의 모습은 그가 음식을 주문할 때까지 끊이지 않고 한 번에 이어진다별다른 편집 없이 인물이 가까이 다가오 자연스럽게 클로즈업으로 이어지지는데, 이를 통해 양조위의 아름다운 비주얼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등장 자체를 더욱 인상깊게 만들어냈다또한 이 장면을 메이의 시점 숏으로도 볼 수 있는데짝사랑 상대를 바라볼 때 눈을 떼지 못하고 사로잡혀있을 수 밖에 없는 그 심리 롱테이크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이후 흘러나오는 California Dreamin 사이로 대화를 하게 된 둘은경찰 663의 실없는 농담을 기점으로 서로에게 친밀감을 쌓아간다이후 두 인물이 경찰 663의 집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도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경찰 663은 페이가 몰래 놓고간 이 CD를 전 연인이 좋아하던 노래로 착각한다그렇게 이가 즐겨듣던 California Dreamin은 경찰 663이 전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만든 매개체이면서도영화를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영화가 현재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러한 영상 스타일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연한 만남과 이별이 빠르게 이뤄지고옛 연인과의 추억과 그리움이 깃든 물건에 대한 집착하는 등 영화를 관통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홍콩 반환이라는 변화의 흐름 안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저마다의 사랑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는 현시대에도 유효하다짧게 스쳐지나간 만남들 속에서도 잊지 못할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경삼림은 휘발되지 않을 청춘의 초상을 기록한 작품과도 같다왕가위 감독은 찰나의 순간들을 통해 인연의 의미를 알게 되는 과정을 필름에 담아냈고그 덕분에 우리는 도시의 고독을 느낄 때면 언제든 90년대의 낭만으로 회귀할 수 있는 안식처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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