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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획기사 2025-05-07 16:49:08

[JEONJU IFF 데일리] 불완전한 둥지 안에도 삶은 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눈을 사로잡는 섬세한 영상미의 영화 하나를 감상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앤드리아 아널드는 삶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감독인데요. 이번에도 그는 영국 하층민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현실을 포착하는 냉철한 시선 끝에 맺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영화 <베일리와 버드>입니다. 

 

베일리와 버드

Bird



 

Summary 

열두 살 베일리는 싱글 대디인 벅과 오빠 헌터와 함께 북부 켄트의 무단 점거한 집에서 살고 있다. 벅은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많지 않고 사춘기에 접어든 베일리는 집 밖에서 관심과 모험을 찾으려 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

출연: 니키야 아담스, 배리 키오건, 프란츠 로고프스키

 

 

 

날갯짓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은 사춘기 소녀 '베일리'입니다. 그는 비행 청소년, 양아치, 건달들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낡은 건물에서, 미성년자였던 시절에 자신을 낳은 아빠 '벅'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벅'은 그야말로 오늘 하루만을 사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면 버는 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죠. 내일에 대한 계획 없이 그날그날을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사는 아빠가 석 달 만난 새 여자친구와 또다시 느닷없는 결혼을 선포하자, '베일리'는 일상에 질려버린 채 집 밖을 맴돕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밖을 배회하던 '베일리' 앞에 새의 날갯짓이 만들어낸 바람처럼 홀연히 '버드'가 나타납니다. 오래전 헤어졌다는 가족을 찾으러 이 마을에 왔다는 '버드'. 둥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베일리'는 둥지에서 떨어진 듯한 '버드'를 돕기로 합니다. 

 

겉보기에 '버드'는 몹시 유약해 보이는 인물입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자유로움과 그대로 추락해 버릴 듯한 위태로움이 공존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는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 '벅'이 뱉는 말에는 도무지 신뢰를 느끼지 못하는 '베일리'도 "Don't you worry"라는 '버드'의 말에는 강한 힘을 느낍니다. 얇고 연약한 깃털이 겹겹이 쌓여 바람을 가를 정도로 단단해진 날개로, 그는 '베일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합니다. 

 

'버드'와의 만남은 '베일리'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결국 둥지를 완전히 떠나진 못했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 '베일리'. 그렇게 영화는 인간보다 더 큰 범위를 조망한다는 새의 눈을 가진 '베일리'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버드'를 연기한 독일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는 이 신비로운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펄럭이는 치마를 입고 옥상에 홀로 머무를 때의 모습은 정말로 새와 같은 형상을 떠올리게 했죠. 생각해 보면, <버드맨>부터 <애니멀 킹덤>까지 우리는 영화 안에서 인간이 새로 변신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새라는 존재가 가장 자연스럽게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버드'처럼 또 '베일리'처럼 다가올 바람을 기다리며 높게, 멀리 날아가기를 꿈꾸니까요. 

 

⊙ ⊙ ⊙ 

 

이상적이진 않지만,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영화는 베일리와 버드의 관계만큼이나, 미성년자 부모가 구성한 가족의 형태에도 집중합니다. 아빠 ‘벅’은 14살에 첫째 아들 '헌터'를 낳았고, 머지않아 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베일리'를 얻었습니다. '베일리'의 엄마에게도 세 명의 자식이 더 있죠. 그러나 젊고 치기 어린 두 부모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아이를 잉태할지는 도무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만, 아이를 위한 적절한 환경을 준비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채 자라는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폭력에 노출되죠. '베일리'에게 세상의 전부는 무단 점거된 건물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양아치들뿐입니다. 그 너머의 세계는 인식되지도, 정의되지도 않았죠. 주먹을 휘두르는 오빠 '헌터'를 향한 분노도 ‘끼워주지 않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토록 불완전하고 위험한 환경에 놓인 '베일리'를 보며 아빠 '벅'에게 화가 차올랐지만, 어쩐지 영화가 흘러갈수록 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은 오묘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벅'은 자식들에게 "너희를 낳은 걸 후회해. 하지만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를 두고 누군가는 ‘비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포장한 대사’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상하다고 평가해 버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벅'은 아이가 귀가하지 않으면 걱정하고, 자신의 결혼식에 함께해주길 바라고, 아이가 괴로워하면 곁에 앉아 진심으로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베일리'도 끝내는 가족의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때, 영화가 포착한 베일리의 심정은 벗어날 수 없는 가족 안에서의 체념이 아니었죠. 

 

너무 직설적이라서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 못해 그냥 외면해 버리고 싶은 가정의 모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삶이 다르니, 사랑의 모습도 다를 수 있습니다.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 안엔 저마다의 좌절과 희망이 있습니다. 누구의 방식이 옳다거나 틀렸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 이 영화는 그런 시선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One-Liner 

고장 난 둥지에서도, 누군가의 품이 있다면 새는 자란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CGV전주고사 1관 10:30

2025.05.05(월)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13:30

2025.05.06(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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