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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획기사 2025-05-07 23:00:32

[JEONJU IFF 데일리] 절망보다 푸른 나무처럼

DIRECTOR. 나지바 누리

CAST. 하와 누리

SYNOPSIS. 어린 시절 정략결혼을 한 지 40년이 지난 뒤, 하와는 마침내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며 글을 배운다. 그러나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고, 그녀와 그녀의 딸, 손녀의 꿈은 새로운 고난에 직면해 산산조각 난다.

 

 

구글에 "여성 교육이 금지된 나라"라고 검색해 보자. 딱 한 국가의 이야기만 줄줄이 뜬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24년에도, 해가 바뀐 2025년에도, 지구상에 여성 교육이 금지된 유일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이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의 현재가 아닌 미래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는 정말 치명적이다. 게다가 더 끔찍한 점, 이 악몽은 지금이 아닌 아주 오래 전 싹을 틔웠으며, 이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에서 두 번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 붕괴 (및 철수) 후 힘을 길러 1996년 카불을 장악해 2001년까지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하겠다는 명목으로 공포 사회를 조성했다. 여성은 공부도 일도 할 수 없이, 집 혹은 무덤에만 있어야 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조금 나았다지만 역시나 특정한 복장과 규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공개 처형까지 서슴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은 다시 자취를 감추고 오사마 빈 라덴은 사망했지만, 미군과 나토군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2021년 철수를 결정했고 같은 해 8월, 카불은 다시 점령되었다.

 

지금도 유튜브 영상을 관리할 만큼 SNS나 국제 여론을 의식하고 있고, 집권 초기에도 여성을 존중하겠다는 (그러니 국제 사회는 말 얹지 말라는) 성명을 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영화를 만든 나지바 누리 감독 또한 여성 기자로서의 삶이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옷가지와 노트북, 카메라, 지금까지 만들던 영화의 풋티지 영상이 담긴 장치만 겨우 들고 곧바로 출국한다.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

 

 

나지바는 그전까지 엄마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이름은 하와. 어린 나이에 30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자식 여섯을 낳았고, 이제는 남편의 치매 증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보고 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람.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운 큰 나무 같은 사람. 영화를 보면서 하와가 얼마나 현명하고 용감하며 대담하고 또 넓은 사람인지 느꼈다.

 

하와는 남편과 함께 사그라드는 날들을 고요히 보내는 대신, 기꺼이 밖으로 나가 자수 천 파는 사업을 벌인다. 동업자를 찾아 역할 분담이나 흥정을 능숙하게 해낸다. 결혼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지라, 뒤늦게 글자도 배운다. 어린 손주들이 지적하고 고쳐주는 내용을 듣고 익힌다. 심지어 손주들은 "할머니가 어떻게 (글씨를) 써?" 라고 되물을 만큼, 할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 그대로의 모습이다. 새로운 것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

 

 

 

 

 

 

 

 

 

 

 

 

 

이토록 현명하고 강인한 하와는  동안 '집 안의 사람'으로만 살았다. 뭐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여성에게 불합리했다. 하와는 어린 나이에 수십 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와의 조혼을 겪어야만 했으며, "부모가 자신을 위했다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다", "이런 결혼으로 우리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오랜 세월 후에도  상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지바의 언니는 이혼과 함께 두 살배기 딸의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그 딸, 자흐라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만 해도 돌아오는 매를 맞으며 유년기를 보냈고 끝내 쫓겨나 12년 만에 제 엄마를 찾아왔다. 나지바 언니의 새 남편은 다행히도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자흐라를 대해 주지만, 부부 또한 현실의 벽을 넘어설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양육권 분쟁에 시달릴 마음도, 혹시나 자흐라의 친부가 새로 낳은 아들들과 새로운 삶에 손을 뻗쳐오게 둘 마음도 없다. 결국 손녀를 맡아 옷과 팔찌를 사주고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하와의 몫이다.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웠던 사람처럼, 하와가 쓰려고 산 화이트보드는 자흐라의 공부 터전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재난은 언제나 약자를 치고, 어린 여자는 재난 상황에 약자 중의 약자이므로.

 

 

 

 

 

 

 

 

 

 

 

 

 

탈레반이 오면 14살 자흐라는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자흐라는 시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어른들의 결론이 난다. 그 동안 자흐라는 내내 울고 있고, 하와가 똑같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포로 바라보는 사람은 그 둘이다. 하와가 탈레반의 치하에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계속 극영화 못지않게 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자흐라와 하와의 표정에서 떠나지 못한다. 하와는 글을 배우기로 결심했을 때 몰랐을 것이다. 손녀에게 글을 가르칠 줄도, 딸이 멀리 떠나야만 해서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도.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웠던 것처럼, 그토록 유용하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운 것처럼 배운 게 아니라, 글을 배운다는 건 그만큼이나 일상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렇게나 필수적인 기술을 배워야 하는 기회를, 소녀들은 박탈당하고 있다. 하와는  고통을 알고 있다. 이미 피부로 겪었기에.

 

 

 

 

 

 

 

 

 

 

 

 

 

"차라리 다 같이 몰려가서 우리를 다 죽이라고 하자. 몰살을 당하는 게 낫겠어. 그러면 애도도 하루만 하면 되잖아." 얼마나 절망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닿을 수 없는 깊이의 절망을 스크린 너머 바라볼 수밖에 없다. 탈레반은 이미 여자들을 몰아냈다. 이미 공부하고 일하고 생각하고 "나대기" 시작한 여자들을 탈레반이 어찌 갑자기 가두겠나 했던 사람도 있을 텐데, 결국 그렇게 되고 있다. 이토록 생명력 넘치는, 푸른 나무 같은 여자들의 오늘과 내일을 탈레반이 뒤덮고 있다.

 

 

 

 

 

 

 

 

 

 

 

 

 

하지만 하와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과 자수 천을 곱게 챙겨 두었다. 언젠가 다시 펼쳐 옷을 만들어 팔고 사업 수완을 발휘할 날이   있길 바라며. 하와가 꾹꾹 눌러 쓰고 읽는 문장들을 자흐라와 다른 아이들도 계속 읽고   있기를 바라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전 세계가 모두 비슷해지는 시대에 다른 경험을 하는  자체가 저항입니다."라는 말로 관객을 전주에 초청했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함께 본다는 자체로도, 우리가 지켜보고 있음을 명확히 하는 자체로도, 포기하지 않은 어떤 이들에게  닿을  있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보기 괴로워도 포기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본다. 나무 같은 여자들의 자장이  넓게 드리우기를.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30-05.09) 상영일정]

2025.05.01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111)

2025.05.03 13:30 CGV전주고사 8관 (상영코드 330)

2025.05.06 17:3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상영코드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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