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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스포 有)
"So, may we start?"
영화는 녹음실에서 시작한다. 레오 까락스의 목소리로 시작해 스팍스로, 각 인물에게로 카메라가 이동한다. 그리고 의상을 갈아입고 영화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오르는 두 주인공 헨리와 안.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는 숏에서 끝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연극의 1막을 현장에서 관람하는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시작, 레오 까락스의 목소리는 전한다. 노래, 박수, 야유 등 모든 건 머릿속으로만 하길 바라며, 끝날 때까지 숨을 참아달라고. 이윽고 숨을 크게 들이쉬는 관객들의 소리가 들린다. 사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모순이다. 공연을 보면서 어떻게 끝까지 숨을 참을 수 있을까.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의 화자는 이를 권유하고 관객은 따른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우리, 또다른 관객들은 여기에 녹아들어 같은 순간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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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이 현재성이었다. 현장, 순간, '현재'의 영화라고 해도 될까? 그도 그럴 것이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의 대부분 장면은 후시 녹음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녹음한 소리를 담아냈다. 카메라의 위치가 숨김 없이 드러나고 대상과 거리의 정도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이는 후반 작업을 선호하지 않고 현장에서의 작업을 중시하는 감독의 신념에서 온 것인데, 이 영화를 극장에서 극장 사운드로 봐야 할 이유라 생각한다. 이를 얼마나 느끼는 지에 따라 감상이 꽤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사운드 뿐만이 아니다. '아네트'의 구현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아네트의 첫 등장은 적잖은 당혹감을 안겼다. 딸을 위한 영화에서 딸이 인형이라니. 역시 보통 감독이 아니다. 3D까지 고려했던 작업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목재 인형이 됐다. 허구의 물리적 존재는 실재하는 생명체보다도 오히려 그 존재감을 내뿜는다. 이것이 가지는 물성을 생각해볼 때, 등장에서부터 엔딩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목재 인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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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는 현재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허구의 영화다. 한 쪽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무대 뒤와 앞, 달빛과 심연, 바람과 좌절, 상상과 현실, 삶과 픽션. 모든 것들이 서로의 경계에서 충돌하고 섞인다. 이 영화는 그 혼합에서 현재와 허구를 나누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픽션의 경계를 나누기보다, 픽션이며 동시에 현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종종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일부분을 끌어들이는 장면들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놓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중이 엿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조되는 건 헨리와 안이다. 스탠드 업 코미디언과 오페라 가수, 직업부터 얼마나 다른가. 관객을 죽이는 사람과 관객을 구해주는 사람. 한 사람에게는 알던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바라던 관계가 정작 자신에게 독이 되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바라던 영원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금이 가다 일순간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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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아네트가 있다. 제목이 가리키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헨리이기 이전에 아네트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도 아네트다. 아네트를 가지고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헨리는 심연(Abyss)과의 교감을 하고야 말았다. 내면의 어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무서운 기세로 주체를 집어 삼켜버렸다. 그 슬픈 진실을 이제서야 마주한 아버지 앞에 딸이 앉아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쁜 아버지의 회한임과 동시에 모든 걸 떠안아야 했던 희생자 아네트의 재탄생 순간이다. 제 죗값을 받는 인물에 대한 조소보다도 안타깝게 두 사람의 마지막 혹은 새 시작을 지켜보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영화였던 건 사실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영화문법이었달까. 하지만 모든 걸 떠나 이 이야기가 가진 엄청난 동력 만으로도, 이 비극의 세레나데를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히 차고도 남지 않나 싶다.
+ 전작을 보진 못했지만 '레오 까락스'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홀리 모터스>를 보자 다짐해본다. 함께 언급되는 <폴라 X>와 <소년 소녀를 만나다>도 궁금해진다. 일단 <홀리 모터스>를 보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재관람하기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 관람 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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