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ne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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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오프닝 스포)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격언이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이 영화는 '우정'에 대한 영화라고 미리 확인시키는 듯하다. 그런데 바로 영화의 카메라 안에 들어오는 건 천천히 갈 길을 가고 있는 선박 한 척이다. 카메라는 이를 오랫동안, 지긋이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 보여주는 건 어느 숲의 개와 여자다. 개가 땅을 파기 시작하고 여자가 맨손으로 흙을 걷어낸다. 나란히 누워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두 구의 유골이 보인다. 그리고 보이는 나무 위의 새, 새의 지저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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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영화인데 두 친구는 언제 등장하는 걸까 생각하며 이 영화의 오프닝을 보고 있자면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 영화 초반쯤 좋긴 하지만 이렇게 길게 보여줘야 하는 걸까 약간의 의구심응 갖기도 했는데 이 점은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조금씩 풀리다 엔딩에 다다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화의 구성이 이 당황스러운 오프닝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프닝이 그 축소판이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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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참 묘하다. 일단 두 주인공부터 범상치 않다. 남성적이지 않은 인물과 아시안 외지인, 이들의 우정이라는 것부터가 서부극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쿠키'가 버섯을 따며 먼저 등장한다. 사냥꾼 무리의 취사 담당인 그는 자신의 맡은 일에 성실히 임하지만 무리의 다른 이들은 소심하고 남성적이지 않은 그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어느 날 밤, 쿠키는 버섯을 따다가 '루'를 만난다. 발가벗은 채로 떨며 배가 고프다는 루를 쿠키는 외면할 수 없다. 자신의 천막을 공유하고 담요와 먹을 것을 갖다주며 작은 호의를 베푼다. 첫 만남은 이게 다지만 이들의 우정은 이 찰나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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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난 뒤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서부 개척의 시대, 모두가 금을 바라볼 때 이들은 쿠키로써 꿈을 꿨다. 영화의 제목 '퍼스트 카우'(첫 젖소)는 마을의 대장 '팩터'의 재물이다. 더 맛있는 비스킷을 만들기 위해 쿠키는 이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서리하고 루는 망본다. 쿠키가 만든 비스킷은 삽시간에 인기를 얻게 되고, 마을의 값비싼 거래품목 중 하나가 된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그러나 루의 말대로 둘만의 방식대로 만든 둘의 역사는 역시나 그의 말대로 오래 가지 못한다. 자본으로 꿈꾼 그들의 역사는 다른 자본에 의해 무너진다. 이는 계속해서 예견된 둘의 결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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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와 루의 결말이 곧 아메리칸 드림의 실패를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이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다. 서부극의 요소들을 갖고 있지먼 그 근원에는 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서부극 장르의 여러 대표 요소들을 레퍼런스 삼으면서 조금씩 비튼 것은 이와 상통하는 것일 테다. 예견됐던 수난이 펼쳐지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을 카메라는 이전과 같이 혹은 그보다 더 따스하게 바라본다. 서로가 떠난 줄 알았던 둘은 아지트에서 다시 재회한다. 지쳐있지만 여전히 농담을 던지며 서로를 챙긴다. 고요하게 잠이 든 두 사람을 자연이 소중히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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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정해진 엔딩'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중 하나이지 않을까. 1.37:1의 화면비에 담기던 자연의 풍경은 사실 별 거 아닌 것들을 모아둔 숏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 경관 하나하나가 모여 주는 고요한 위안에 마음이 움직였다. 쿠키와 루의 주위를 지키고 그들의 우정을 감싸 안는 그 따스함에.
켈리 라이카트는 이름만 익히 들어보고 아직 작품을 접하지 못했던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서부극'과 '풍경'이라는 키워드 정도만 알았다. 이 영화가 벌써 일곱 번째 장편작이지만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잔잔하고도 매력적이게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따듯한 영화로 처음 만났기에 다른 이전작들이 궁금해질 따름이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 관람 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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