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8-05 10:27:28
넷플릭스,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는 본사 출입 못해
백신 의무화를 확대 중인 미국 대기업들
델타 변이 확산으로 미국의 대기업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는데요. 전 세계 최대 OTT 플랫폼 회사인 넷플릭스 또한 백신 의무화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스트리밍 전문 대기업은 사무실에 들어오는 모든 직원에게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새로운 규정에는 본사 방문자들도 포함될 것이라고 합니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업무를 위해 잠시 들리는 방문자라도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7월, 이미 할리우드 스튜디오 최초로 미국 전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관련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제작진에게 예방 접종을 의무화한 바 있죠. 이러한 규칙은 배우, 감독 그리고 제작진들이 일하는 영화나 텔레비전의 부분들을 일컫는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 용어인 ‘Zone A’에서의 모든 사람들을 포함했습니다.
노동절 이후, 넷플릭스는 재택 근무에서 사무실 정상 근무로 변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아서는 그러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도 사무실은 백신을 접종했을 경우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지만, 직원들은 당분간 재택 근무를 계속 시행할 수 있을 예정입니다. 참고로 현재 대부분의 인력이 원격으로 일하는 반면, 소수의 직원들은 대유행 기간 동안에도 이 스트리밍 회사의 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북미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백신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월트 디즈니사는 직장인 및 비노조 근로자(non-union hourly employees)들이 그들의 작업 공간에서 일하기 전에 백신을 완전히 접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월마트도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오려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죠. 구글의 경우, 출근 재개 시점을 9월에서 10월 18일로 늦췄습니다.
또한, 넷플릭스가 사무실을 두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는 코로나 확신을 위해 마스크 의무화를 다시 실시했다고 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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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피어날 것은 피어난다
SYNOPSIS.
대출과 빚에 허덕이는 ‘브루노’와 ‘알베르’ TV 중고거래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공짜 맥주와 감자칩에 이끌려 얼떨결에 환경 운동에 동참하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블랙 프라이데이에 반대하는 ‘캑터스’를 만나 환경 운동에 점점 진심이 되어가는데… 살기는 어렵지만 사랑은 하고 싶은 두 남자와 환경 문제 외에는 모든 것이 무감각한 여자까지… 갓생을 꿈꾸는 파리지앵 3인의 동상이몽 라이프가 시작된다!
POINT.
✔️ 프랑스 영화는 난해하다는 인식을 깨고 한국에서도 흥행했던 <언터처블: 1%의 우정> 감독 작품이에요
✔️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사랑받은 <알로 슈티>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예요
✔️ 팬데믹과 기후위기 속에서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감각을 전제로 한 작품이라서 흥미로워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노에미 멜랑 주연! 마티유 아말릭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얼굴들도 반가워요
계절을 따라 부지런히 옷장 정리를 하다가 한숨이 나온다. 아직 멀쩡하다 못해 새 옷에 가까운 상태이지만 여태까지 손이 잘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부터, 마르고 닳도록 입었긴 해도 버리긴 애매한 옷까지...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 늘 고민하는 동안에도 옷장에는 새 옷이 들어오고, 더 이상은 공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큰맘먹고 옷을 덜어냈다. 그리고 이제 당분간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다. 내 돈 주고 산 옷이 나에게 짐이 되는 게 싫다. 그러는 동안 밖에는 종일 그치지도 않고 장마 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강원도 어디에는 눈이 왔다고 한다. 지금 5월인데요.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텀블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단톡방에서 대놓고 부정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천 번을 써야 한다는둥 그건 의미가 없다는둥... 나는 더 이상 그 단톡방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텀블러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예의 차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기후위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민감도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거기에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엔 너무 바쁘고 지치고 화가 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산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런 우리 삶과 닮은 현실을 산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흥미롭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몰랐던 시절의 로맨스처럼 부요한 재정 상태나 환경 상황을 자랑할 수 없는, 낭비할 거라곤 없고 그래서 휘청거려도 기댈 데 없는 세대를 담고 있어서.
심지어 이 영화의 주축을 이루는 브루노와 알베르는 소액 대출을 계속하다가 파산에 이르른 사람들이다. 공짜 맥주를 따라가다 보니 환경 단체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껏 그래왔듯 어영부영 돌려막기 하는 태도로 이들의 활동에 합류한다. 닉네임제로 운영되는 환경 단체 규칙에 따라 '캑터스(Cactus, 선인장)'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여자를 보며 점차로 환경 운동에 진심이 되어가는데, 앞날은 여전히 캄캄하다. 브루노도 알베르도 각자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 하며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캄캄하고 답답한 상황임에도 어쩐지 실 없이 웃게 된다.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거예요
사실 이 영화의 원제는 '힘든 한 해 une année difficile'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가 익히 아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고위 정치인들이 나와서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같은 문장들을 말하는 장면들이 모여 나오는데 이 오프닝 시퀀스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기의 어려움이 있고, 모든 세대는 각자의 어려움을 돌파하며 살아가야 한다. 캑터스와 친구들은 그 문제를 환경 문제로 정의했고, 그에 따라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며 시대에 맞선다.
이들에게는 낭비할 자원도, 기댈 환경도 없다. 그렇기에 과격해진다. 환경 문제보다 부동산과 주식이 더 중요한 한국의 기성세대에게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청년과 청소년들은 이 불만을 말하고 있다. 신자유구의 구조에서 빈부격차는 점점 빅토리아 시대의 그것에 가까워지고 있어 청년 세대는 점차 가난해지고 있으며 (이 부분은 한국 사회에서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지만), 환경적으로도 기댈 곳 없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리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앞에서 목소리를 냈지만 들리지 않아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꿰매고, 환경 문제의 시급성을 가장 큰 소리로 외치기 위해 미술품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 속 환경단체 사람들도 가게를 막고, 차량 통행을 막고, 심지어는 비행기 출발까지도 막는다.
이들에 대한 관객의 반응 차이가 흥미로운데, 현실에서의 환경 단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폭도처럼 묘사하거나 오히려 이들 때문에 반감이 생긴다며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 때문에 더더욱 채식하기 싫어. 식물은 안 불쌍하니? 같은 사람들 말이다. 골프장의 환경 오염을 지적 당하기는 싫어하면서, 환경 단체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씩 문제 삼는 사람들.
하지만 이 영화 속 마티유 아말릭이 분한 캐릭터를 보라. 그는 은행에서 일하는 기성세대이자, 파산 위기에 놓인 젊은이들을 위해 봉사활동까지 하는 훌륭한 어른이지만, 동시에 카지노 출입에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다 조금씩 모자란 채로 산다. 그것을 청년 세대만의 문제로 취급하거나,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유난으로 치부하는 자세는 별로 어른스럽지 못하다. 물론... 이 영화 속 청년들도 무분별한 소비를 그만두고 좀 미래 지향적인 재정 계획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게 꼭 골프장 부동산 주식으로만 귀결되는 모양새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지향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조롱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바로 그런 자세들이 가뜩이나 힘든 올 한 해를 더 힘들게 해요...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거라는 오프닝 시퀀스는, 역시나 2024년에도 들어맞는다. 우리 시대가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지금 세대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과거의 '힘든 한 해'는 다 지나간 것들이기에 단순해 보인다. 1920년대는 독립운동이었겠지. 1970년대에는 민주화였겠지. 하지만 당대에도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립운동 하에 치열하게 갈라졌을 생각을, 민주화와 경제화 앞에서 각양각색으로 펼쳐진 담론들과 그 안의 우선순위 다툼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 어려움조차 각자의 몫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한 해, 역시나 올해도 힘든 한 해다.
하지만 유쾌하게 해나갈 수 있지
세상 모든 단체처럼 이들이 활동하는 환경 단체 안에서도 다양한 다이나믹이 펼쳐진다. 물론 환경을 위한 활동을 펼친다는 점은 다름이 없지만, 환경 외의 모든 것에 무감한 채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캑터스와 달리, 브루노와 알베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다른 감정들이 동기로 작용하기도 하고 결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OO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됐어요"라고 말하며 웃는 커플들 모두 그런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이들이 주고받는 사랑 또한 여느 영화와는 다르다. 장미꽃과 안개꽃 뒤섞인 90년대 테이블 위의 로맨틱한 식사도 없는, 고급스러운 명품 선물도 없는 만남. 단지 스스로가 살기 위한 구호를 외치며 만나고, 스스로가 좀더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선물 하나를 고르거나 받을 때에도 신중하다.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든 구호들은, 가끔은 아주 비장하지만 또 매일 묵직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사랑도 이들이 외치는 구호도 삶에 그렇게 녹아든다. 투쟁과 경각심, 기후 우울의 세대이자 가난과 채무의 세대인 이들은, 그렇게 삶에 유쾌한 순간들을 녹여낸다.
동시에 이 영화는 사랑의 작대기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동병상련 브루노와 알베르의 적당하고 느슨한 협력, 얼레벌레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모습. 전형적인 끈끈한 우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원래 우정이라는 게 그렇게 얼레벌레 쌓이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이따금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보고 시원하게 깔깔 웃어버리기도 하고, 영웅 서사 같은 일을 겪기도 하면서, 이들은 하루씩 나아간다. 남들과 다른 감각으로,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 즐거운 모습을 보다 보면 짙은 기후우울이 조금 달아나는 기분이다. 그치. 내일이 없는 삶 같은 기분이 들지만, 오늘을 차곡차곡 이어가는 거지. 비록 낭비할 낭만도 기댈 환경도 없이, 혼란스럽게 흔들리는 빈곤한 세대이지만. 이들의 투쟁이 아무리 불안하게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이들의 선택이 아무리 빈곤한 것처럼 보여도, 화낼 필요 없다. 아무튼 피어날 것들은 피어난다. 마음도, 사랑도 우정도, 그 안에서 내일도.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하여 시사회에 참석해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5월 15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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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매튜 본의 불완전한 자기 복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어 전쟁 도중 아내를 잃은 '올랜도 옥스퍼드 공작(랄프 파인즈)'는 아들을 보호해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가급적 '콘래드(리스 딕킨슨)'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도 전 유럽을 덮친 1차 세계 대전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 올랜도는 군에 자진 입대하려는 콘래드와 갈등을 빚지만 끝내 아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그렇게 콘래드는 전쟁터로 향한다. 이에 옥스퍼드 공작은 아들을 지키고, 더 나아가 무의미한 희생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믿음직한 유모 '폴리(제마 아터턴)'와 집사 '숄라(자이먼 운수)'와 함께 자체 비밀 정보기관을 운영하며 러시아 황실을 조종하는 '라스푸틴(리스 이반스)'처럼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흑막들을 처단할 불가피한 임무에 나선다.
<킹스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킹스맨의 기원을 다루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여러모로 기존 시리즈와 결이 다르다. 프리퀄 작품이니 만큼 시리즈의 두 주역 에그시와 해리가 모두 등장하지 않으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20세기 초가 배경이라서 기상천외한 신무기도 없다. 전반적인 분위기도 간단명료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잔혹한 액션마저 즐길 수 있게 만들 정도로 유쾌한 활극에 가까웠던 지난 시리즈와는 사뭇 대비를 이룬다. 몇몇 포인트를 제외하면 웃음을 유도하거나 B급 감성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지 않으며, 전쟁영화 혹은 정치극처럼 느껴질 만큼 시종일관 진중하다.
대신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매튜 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수작,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많은 부분 닮았다. 단순히 특정 시리즈의 프리퀄 작품이라는 포지션만 같은 것이 아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스케일이 더 크다는 점만 제외하면 영화의 콘셉트부터 핵심적인 갈등 구도와 주제에 이르기까지 판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우선 두 작품은 모두 대체역사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퍼스트 클래스>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엑스맨이 개입했다는 상상력에 기반한다면, <퍼스트 에이전트>는 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마다 킹스맨이 개입해 있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각 영화의 두 주인공이 폭력에 대한 대조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대립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뮤턴트라는 소수자가 생존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도 활용하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논쟁을 펼치며, 이는 마치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퍼스트 에이전트>에서는 아버지인 올랜도 옥스퍼드 공작과 아들인 콘래드가 갈등을 빚는다. 보어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으로 인해 모든 폭력과 전쟁을 혐오하게 된 평화주의자 아버지와 귀족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인 공작 가문의 후계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자진 입대하려는 아들의 충돌이 극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다. 단지 이 대립 구도가 유지된 결과 엑스맨이 창설된 것과 달리, 갈등의 종식으로 말미암아 킹스맨이 조직된 것만이 두 영화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두 영화 간의 유사점이 필연적으로 비교를 낳고, 그 결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완성도가 저해된다는 데 있다. 우선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고 미국과 소련의 충돌이라는 명료한 세계사적 배경을 제시해 갈등 구도를 단순화하고 극의 밀도를 높일 수 있었던 <퍼스트 클래스>와 달리, <퍼스트 에이전트>는 수년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등장인물과 갈등 구도가 모두 많고 복잡해지면서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옥스퍼드 공작 부자의 갈등이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참전국인 영국, 독일, 러시아 각국의 정치 상황과 세 나라의 군주이자 사촌관계인 조지 6세, 빌헬름 2세, 니콜라이 2세의 관계성이 또 다른 갈등구도를 이룬다. 이에 더해 세 군주를 조종하려는 흑막의 이야기도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며, 뒤늦게 참전하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 이야기까지 묘사해야 하다 보니 영화가 좀처럼 균형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균형의 붕괴는 영화가 실존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러시아 제국의 비선 실세였던 라스푸틴이나 실제 능력과는 별개로 미녀 스파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마타 하리를 그저 한 차례의 액션신을 보여주기 위한 엑스트라로 소비하는 것은 영화 한 편에 담기 어려운 분량의 한계를 여실히 내보인다. 또한 사라예보 사건부터 참호전과 러시아 혁명, 치머만 전보 사건에 이르기까지 워낙 방대한 사건들을 2시간 안에 녹여내야 하다 보니 당시 국제 관계와 개별 사건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영화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남아프리카에서 펼쳐진 보어 전쟁도 오프닝부터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결코 낮지 않다.
한편 옥스퍼드 공작 부자의 갈등 구도는 공감을 살만한 힘이 부족하며, 특히 이야기적 측면에서 <킹스맨> 시리즈를 <킹스맨>답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을 놓치는 듯 보인다. 실제로 옥스퍼드 공작과 콘래드의 갈등은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대립에 비해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소수자로서 생존을 위해 폭력적으로 저항할지 말 지를 둔 갈등 구조가 직설적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평화와 반전의 가치가 참전이라는 귀족의 의무와 충돌하는 것은 그만큼의 강렬함이나 절박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연출적 측면에서 기인한 문제이기도 하다. 작중 옥스퍼드 공작이 완고한 평화주의자가 된 이유는 그의 보어 전쟁 참전 당시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짧은 회상신을 제외하면 해당 경험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충분치 않으므로 옥스퍼드 공작의 신념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부자간의 갈등도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또한 옥스퍼드 부자가 어디까지나 영국의 최상위 귀족이자 젠틀맨이라는 점은 영국적인 매력을 더함으로써 <킹스맨> 시리즈의 영국적인 매력을 감소시키는 아이러니함을 낳는다. 흔히 <킹스맨> 시리즈의 영국적 특징이라면 킹스맨의 어원, 아서 왕 전설에서 차용한 코드 네임, 007을 의식한 설정과 대사들, 무기로 활용되는 양복, 구두, 우산 같은 외적 특징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킹스맨>의 영국적 특성은 하층 계급이었던 에그시가 해리를 만나 귀족과 젠틀맨들의 세계에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 자체에 담겨 있기도 하다. 에그시가 보여준 판타지는 아직도 왕실, 귀족과 평민 같은 계급 차이가 명백한 영국이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관객 한 명 한 명이 에그시가 되어 신분상승의 로망을 영국적인 방식으로 충족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킹스맨> 시리즈의 주요한 매력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옥스퍼드 부자가 누구보다도 영국적인 캐릭터지만 해리와 에그시의 관계처럼 로망과 판타지까지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인물은 아니기에 그들의 서사는 상대적으로 흡입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는 <킹스맨>이 <킹스맨>답지 못한 문제를 유발한다. 그 결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매튜 본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퍼스트 클래스>의 하위 호환 격이라는 인상을 남김과 동시에 킹스맨 시리즈로서의 정체성도 명확히 챙기지 못한다.
물론 매튜 본 감독 특유의 감각이나 <킹스맨> 시리즈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목들 덕분에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킬링 영화로서 최소한의 본분은 다해낸다. 예를 들어 라스푸틴과의 결투씬이나 절벽 엘리베이터 시퀀스는 역동적이고 시원하지만 동시에 잔혹한 매튜 본 특유의 액션 연출과 B급 감성이 빛을 발한다. 또한 독일군과 영국군 참호 사이에서 펼쳐지는 콘래드 전투와 결투 장면은 비교적 담백하게 묘사되어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며,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정치와 무관하게 선제적으로 행동한다는 킹스맨의 창립 이념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재치로 메우기에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구멍은 예상보다 너무나도 컸고, 시리즈와 매튜 본의 이름값을 고려할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P(Poor 형편없는)
잘못된 방향으로의 자기 복제가 낳은, 시리즈와 감독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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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을 받아들인 자에게 열리는 다음 라운드
클라우드 (Cloud, 2024)
폭력을 받아들인 자에게 열리는 다음 라운드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스릴러, 액션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 스다 마사키, 후루카와 코토네, 오구다이라 다이켄, 오카야마 아마네, 쿠보타 마사타카
개인적인 평점 : 3/ 5
쿠키 영상 : 없음
“하여간 특이해”, “이상한 애네”
한국인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대표적인 시그널로 통하는 말이다. 나도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불분명하고 의아하고 이상하다. 그런데 그래서 다시 찾게 된다. 잠시 헛웃음이 나게 하다가도 금세 진지함을 보이는 그의 영화엔 미묘한 매력이 있다.
<클라우드>는 특히 이런 미묘함과 혼탁함이 빛나는 영화다. 주인공 요시이를 맡은 배우 스다 마사키는 혼탁함과 의아함이라는 애매한 요소들을 매력으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몇 수 앞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신묘한 연기를 펼치며 영화 곳곳에 느껴지는 결핍을 메꿔내고 마치 솜사탕을 만들 듯 영화의 몸집을 몇 배로 불려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클라우드>는 아무에게나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스다 마사키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큰 고민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요시이는 리셀러다. 그는 낮에는 옷을 깔끔히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엔 구김살이 가득한 불법 리셀러 라텔로 활동한다. 그는 오직 감에 의지해 물건을 사재기하고 웃돈을 얹어 재판매하며 돈을 번다. 요시이의 물건이 비싸게 팔리는 요행이 반복될 때마다 그의 통장엔 숫자가 늘어나고 동시에 라텔을 향한 증오도 늘어난다.
세탁 공장 일과 리셀러를 병행하던 요시이는 최근에 사재기한 치료기로 크게 돈을 벌고 공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한적한 호수 근처 저택을 임대한 후 그곳을 사무실 겸 연인 아키코와의 보금자리로 꾸민다. 요시이는 지금보다 더 큰돈을 벌길 바라며 사노라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리셀러 활동을 이어간다.
그 사이 온라인에선 리셀러, 사기꾼 라텔을 혼내주자는 피해자 모임이 생겨나고 누군가는 라텔을 향한 분노를, 누군가는 목적지가 없는 분노를 쏟아내며 하나의 팀을 조직한다. 이들은 라텔을 잡는 게임에 참가한 파티원이 되어 상식을 웃도는 폭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요시이는 살아남기 위해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결단을 내리게 된다.
<클라우드>는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감독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몽롱한 꿈같은 작품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왜인지 말이 되는 것 같고 이런 놈들이 존재할까 싶은데 또 비슷한 놈들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다. 무지향성의 분노와 폭력, 집착이 범람하는 이 이상한 세계가 어쩐지 낯설지 않아 더 찝찝하고 흥미롭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각자의 이상한 집착을 가진 참가자들이 모인 게임
요시이, 아키코는 돈과 물건에 대한 집착, 사노는 고용주 요시이와 그의 변화에 대한 집착, 괴한 무리는 자신의 분노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과 집착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런 집착을 충족하기 위해 엉망으로 벌려둔 상황을 대략 ‘보상이 걸린 한 판의 게임’ 정도로 정의하고 합리화하며 곧 죽어도 자신의 폭력과 실수엔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요시이는 이 사달의 시작점인 리셀러 일을 그저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물건이라도 살 사람이 있으면 팔리는 것, 그냥 도둑잡기 게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괴한들을 자신의 업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비난하고 경멸한다.
다른 곳에서 뺨 맞고 요시이를 잡으러 온 괴한들은 정확한 이유 없이(이 무리에서 요시이에게 제대로 된 사기를 당한 사람은 없다) 요시이를 죽이려는 이 상황을 그냥 모르는 사람들과 벌이는 게릴라 게임 또는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 여기며 자신들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이 상황에 끼어든 사노와 아키코는 사심을 채우기 위해 요시이를 새로운 측면으로 이끌거나 그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며 함께 게임의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요시이에게 열린 다음 라운드
평화로운 숲속과 어울리지 않는 총성이 이어지는 상황. 총을 든 괴한들과 사노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런데 사노의 옆에 딱 붙은 요시이는 총을 쏘지 못하고 그저 사노의 뒤를 어색하게 따라다닌다.
요시이는 라텔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신체적으로 누군가를 해한 적은 없었고 실제로 누굴 죽일 마음도 없었다 요시이는 이 상황에서도 누굴 죽이겠단 마음보다 물건을 챙기는 게 먼저다. 요시이가 1라운드에서 나무 막대기를 깔짝이며 상대를 기절시키고 있는 초보라면 요시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다음 라운드에서 칼을 들고 상대를 죽이는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타카모토는 가족을 죽인 살인범이고 다른 괴한들은 요시이가 숨었던 오두막의 관리인을 죽이고 유기한 동조자다. 사노는 과거를 알 수 없지만 총기를 다루는 어두운 일을 했음이 분명하고 아키코는 돈을 위해 요시이를 죽일 마음이 있다.
사노가 묶여있던 요시이를 풀어주는 순간, 요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순간 사노의 팔을 의지하지만 바로 손을 떼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하며 사노와 한발자국 정도 떨어진다. 그리고 괴한들을 설명할 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말한다. 요시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괴한, 사노와는 다른 사람임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자 요시이도 1라운드를 넘어 사노와 다른 이들이 머물고 있는 다음 라운드로 이동한다.
요시이는 사노를 겨누고 있는 토도야마 (이온전자 치료기 사장)를 발견하고 사노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쏜다. 사노는 요시이에게 총 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냐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요시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타카모토를 잡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갈 때 사노의 속도에 맞춰 함께 달려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요시이는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폭력을 받아들였고 그는 이제 사노와 같은 선상에 서있다.
마지막까지 함께 상황을 정리한 요시이와 사노는 비현실적인 하늘의 입구로 달려간다. 사노와 함께 새로운 라운드에 진입한 요시이는 이제 자신이 원했던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폭력에 물든 사람과 폭력에 물들지 않은 사람의 삶은 같을 수 없으니까.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쏟아내는 괴한들, 폭력을 부추기던 사노,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한 요시이. 이 들의 모습이 그다지 놀랍고 낯설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큰 찝찝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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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계 거장 vs 이미지 세탁한 재벌 가문
8★/10★
사진계의 거장과 예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재벌 가문이 맞붙었다. 전자는 낸 골딘이고 후자는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소유주인 새클러 일가다. 시작은 옥시콘틴이었다. 퍼듀 파마는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개발한 후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옥시콘틴의 중독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 약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만 말했다. 나아가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종국에는 불법으로 점철된 공격적으로 영업을 이어갔다(이 과정은 넷플릭스 영화 〈페인 허슬러〉 참고). 그 결과는? 수십만 명이 옥시콘틴에 중독됐다. 지금까지 60만 명 이상이 옥시콘틴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낸 골딘 역시 과거 수술 후 옥시콘틴을 처방받았고, 중독되었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투쟁을 더욱 확장하기로 결심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이 싸움을 담아냈다.
퍼듀 파마를 만나기 이전부터, 낸 골딘의 삶과 예술은 이미 투쟁이었다. 낸 골딘의 언니는 ‘마음이 병들었다’는 부모의 판단 때문에 정신병원에 머물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언니의 진료 기록에는 그녀가 평범한 정도의 반항심을 가진 청소년이었고, 오히려 부모가 문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죽었고, 골딘은 언니에게서 유쾌한 반항심을 배웠다. 골딘은 집에 있으면 ‘언니처럼’ 될 거란 우려에 부모님 집을 떠나 위탁 가정을 전전했고, 한 히피 학교에서 마침내 구원받았다. 이후 골딘은 게이, 드래그퀸 등의 친구들을 사귀며 퀴어 공동체에서 생활했고 스냅사진으로 친구들이 뿜어내는 삶의 생동감을 포착했다. 섹스보다 사진이 좋았을 정도로, 골딘은 사진에 심취했다. 메리 올리버와 마이클 커닝햄이 각각 《긴 호흡》, 《그들 각자의 낙원》에서 아름다운 산문으로 예찬한 바 있는 ‘게이들의 천국’ 프로빈스 타운의 레즈비언 분리주의자 공동체 일원으로 지내기도 했다. 보수적 가족의 억압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동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예술/사회/문화 공동체로 이끈 셈이다. 이후에는 필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댄서, 성노동자 등으로 일했고 그녀의 사진이 품은 탈규범적 생명력의 예술적 가능성을 알아본 한 큐레이터에 의해 마침내 정식으로 예술계에 발을 디뎠다(골딘은 큐레이터에게 지금껏 작업한 사진을 모은 박스를 옮기기 위해 택시 기사에게 오럴 섹스를 해줬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데뷔 이후에도 녹록지 않았다. 남자친구와의 섹스 장면 등 그녀가 살아가는 일상의 생기를 포착한 사진은 조롱받았고, 기성 예술계의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투쟁으로서의 삶/예술도 이어졌다. 영화는 골딘이 미국의 에이즈 위기 당시 급진적 에이즈 운동을 벌인 단체 액트업과 함께 작업한 장면을 특히 자세히 비춘다.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로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던 에이즈 감염인들과 당사자들이 벌이는 저항 운동은 퀴어 공동체에서 예술을 길어온 골딘이 옥시콘틴 중독자 당사자로서 퍼듀 파마와 싸우는 데 결정적 영감을 주었을 터다.
영화는 골딘의 삶/예술 여정과 퍼듀 파마를 상대로 한 현재의 싸움을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장면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미술관 내 새클러관에서 골딘과 동료들은 퍼듀 파마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새클러관은 새클러 일가가 엄청난 돈을 예술계에 후원한 대가로 설치된 곳으로, 메트로폴리탄뿐 아니라 구겐하임, 루브르, 대영박물관 서구의 유수한 미술관‧박물관에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예술계에서 새클러 일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거다. ‘예술에서 후원자의 존재는 필수적인가’라는 물음에는 여러 입장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껏 예술에 늘 ‘큰손’ 후원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돈이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과라면, 수많은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로 고통받은 결과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자 그대로 죽음을 대가로 한 돈으로 예술을 후원해 사회적 명성을 쌓는 일은 예술-후원의 문제가 아니라 포괄적 사회 정의의 문제다. 낸 골딘은 예술이 가장 더러운 돈을 위장하는 데 쓰이는 일을,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모욕한 제약회사의 전시관에 자기 작품이 전시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퍼듀 파마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것을, 무엇보다 예술계가 새클러 일가와 그의 영향력을 완전히 퇴출할 것을 요구하며 긴 싸움을 펼쳐나간다.
골딘이 속한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즉각적인 처방약 중독 개입)은 새클러관이 있는 여러 미술관을 두루 순회하며 행위 예술,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마침내 예술계에서 새클러 일가의 이름을 걷어내는 데 성공한다. 저명한 사진 예술가로서 쌓아온 명성과 추구해온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물론 이 승리는 부분적이다. P.A.I.N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 활동가, 당사자의 싸움으로 퍼듀 파마는 파산했고, 새클러 일가는 60억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회사 파산으로 책임을 면피하고, 합의금으로 수천 건의 소송을 취하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부분적인 승리가 감동적인 이유는, 낸 골딘의 싸움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상적인 답변을 내놓아서다. 예술에는 후원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예술은 늘 후원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낸 골딘이 그랬듯 예술과 정치를 도드라지게 결합할 수도 있고,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작품이라도 누군가의 내면과 사회의 심연에 근본적인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예술은 종종 예기치 못한 변화의 씨앗이 되거나 그 변화의 징후를 표상한다. 예술의 정치성을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예술이 최소한 기업가의 이미지 세탁보다는 더 정치적이라는 점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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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찾아 헤맬 너에게
나는 상당히 만화에 보수적인 편이었다. 10대 시절부터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소위 대작들에 길들어져서인지. 새로운 만화를 알게 되더라도 한 권이라도 꺼내보지 못할망정, 사람들의 평가만 한참을 뒤적이다가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읽을 마음을 단념한다.
애니메이션은 더욱 심하다. 제대로 다 본 애니메이션이 한 편도 없고, 작가가 직접 그린 만화가 진짜라는 얄팍한 신념 때문일까. 혹은 위 대작들의 애니메이션이 썩 좋은 결과물이라 할 수 없어서 그럴까. 차차 하더라도 영화와 같은 롱폼을 한 번의 온전한 집중으로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 넷플릭스를 틀은 채 밥을 먹고 떠들며 시리즈물을 챙겨보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주위에서 <진격의 거인>을 꼭 보라는 말의 등쌀에 밀려서. 그리고 나의 행동들이 편견이 아닌 기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벼룬 듯 음침하게 시즌1 1화를 켰다. 결과는? 그 순간부터 결말까지 누워있어도, 앉아 있어도, 밥을 먹어도. <진격의 거인>을 봤다. 대작 앞에서 나는 그저 알량한 편식쟁이였고, 대작은 그런 나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그러니 심장을 바칠 수밖에.
워낙 이야기가 방대하고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내용을 요약하지는 않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한 QnA 형식으로 본문을 이끌겠다. 무엇보다 시리즈 전체 리뷰가 아닌, 최종장 극장판인 <더 라스트 어택>의 리뷰인 만큼 이 이상의 이야기는 가능한 지양하도록 하겠다.
Q.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A.시리즈 전체를 통틀면 엘빈 스미스. 극장판 한정으로 지크. 둘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지만, 두 캐릭터의 사상은 극과 극이면서도 가장 맞닿는 지점이 있다. 엘빈은 대의를 위해 사익과 공익을 가리지 않고 불사르는 캐릭터이다. 거인에게 자신의 팔이 물렸을 때도, 날아오는 돌들을 향해 희생을 자처했을 때도. 어린 신병들에게 죽음을 강요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도. 그는 대의를 위해 전진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꿈을 포기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그 모든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대의가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크는 정반대이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에게 상처를 받았고, 이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아 지크를 허무주의의 길로 빠지게 했다. 그렇게 본인의 사상을 위해, 그 믿음을 사실로 실현하기 위해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살인을 일으켰다.
가장 양극에 도달한 두 캐릭터이지만 믿음의 노예라는 점에서 비슷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의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이라도 믿음의 족쇄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더욱 온정이 간다. 결국 세상에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사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온전히 대입하지 못하기에 집착이 생기고 상처는 곪는다.
Q. 결말에 대해
A.땅울림이 많은 비판을 받는 듯하다. 이는 선뜻 에렌이 인류의 80퍼센트를 죽이고 동료를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관 속에서 좌표라는 개념이 있다. 2000년간 정해진 역사에서 에렌은 그 사실을 알고만 있을 뿐,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죽는다는 운명에서 발버둥 친 에렌이지만 거대한 흐름은 막을 수 없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에렌이 동료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목숨은 부지해 줄 테니 막으러 올 테면 와봐라. 그들이 인류 대학살 속 겨우 건져낸 목숨을 스스로 걷어차게 한 힘이 무엇일까. 바로 자유의지이다.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목숨과 증오의 반격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목숨과 연쇄의 단절을 택할 것인가. 결국 그들은 후자를 택했고, 마치 이 모든 서사가 지금을 위해 존재했다는 듯이 마음을 다잡으며 에렌을 막았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가 누군가에게 자유를 선물한 채 세상을 떠난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면서 한편으로 철학적이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답이 없는 논제처럼. 극과 극은 서로를 낳고 대립하며, 그 과정을 어쩌면 역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Q.가장 좋았던 장면은?
A.지크가 아르민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장면. 이후 지크는 쿠사바와 제회해 묻어놓았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당신과 캐치볼을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고. 결국에는 모든 원흉이었던 아버지도 용서한다. 탐구의 주체인 인간이 그저 번식의 부산물이면 행복 역시 부산물에 그칠 뿐이다. 사소하더라도 소중한 일상이면 그것이 곧 삶의 의미라는 깨달음은 왜 항상 한발씩 늦을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Q. 추천하는가?
A.올해 1분기에 본 모든 드라마, 영화, 만화를 통틀어서 가장 추천하는 작품. 나의 편견을 뽑아버린 건 시즌 1에서 이미 끝나버렸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전개되는 반전과 감동에는 깊이가 있었다. 물론 이 글에 언급되지 않은 주요 캐릭터와 사건이 셀 수 없이 많으니, 작품을 보고 이 글을 이해하는 편이 수월할 것이다. 안 봤더라면 꼭 보고, 한 번 봤으면 두 번 볼 것. 일단 나부터. 신조 사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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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토베얀손
줄거리
유명한 조각가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자연스레 예술가로 성장한 토베 얀손.
흔들리고 불안정한 삶의 굴곡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녀는 어떤 예술가였을까?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숨은 의미 찾기
무민은 하얗고 말랑하고 폭신하고 따스하며 무해하다.
언뜻 보기엔 곰인지 하마인지 헷갈리지만 사실 무민은 '무민 트롤'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을 토베 얀손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무민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호 속에서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그녀의 염원이 무민이라는 존재로 하여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뛰쳐나온 건 아닐까.
영화는 혼돈 속에 빠진 예술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듬어 가는지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토베 얀손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실은 그녀의 예술이 어떻게 안정되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날것의 감정들이 정제되어 모두 무민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이건 그냥 돈벌이야. 이 그림이 진짜 나야."
토베는 만화를 칭찬하는 비비카에게 정색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저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말한다. 만화는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며, 자신은 순수 미술을 그리는 예술가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토베의 태도는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지는 게 싫어서 인정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 미술에 대한 그녀의 열망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순수 미술에 대한 사랑은 토베가 초상화를 그릴 때 나타난다. 그녀는 한눈에 알아보기는 힘든 추상화를 그리며 화산과 물줄기와 불꽃이라며, 이 중에 어떤 것이 자신일지를 묻는다. 자기 내면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토베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정답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토베, 당신과 그림은 별개야."
"내 그림이 나야."
토베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전시회에서 토베는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빼라는 아버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게 예술가 지원금 선정 여부가 달린 전시회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캔버스에 거짓을 담은 적이 없었다. 약간 숨기거나 꾸며낼 법도 한데, 멍청할 정도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낸 것이다.
'내 그림이 나'라는 말을 한 치의 거짓 없이 뱉을 수 있는 화가가 어디 있을까.
프랑스에서 비비카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토베. 그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연인과 웃음을 짓는 비비카에게 상처를 받는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정작 비비카가 하는 말은 자신을 위해 무민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을 써달라는 것. 토베는 그 말을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희곡을 쓰기로 한다. 그 다음날, 아토스가 찾아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 토베는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에 하얀 덧칠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캔버스 살 돈이 없어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에 그녀가 붓과 물감 같은 미술용품을 서랍장 안에 처박아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보다 앞서서 이 장면을 통해 이미 토베가 순수 미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처받아서? 희곡을 쓰기로 해서? 아니다. 무민이 비비카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에, 진짜 자신을 숨기고 비비카가 원하는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왜 마음을 바꾸셨죠?"
"왜냐면 제가 화가로서 실패했거든요."
토베는 본격적으로 신문에 무민을 장기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다. 그토록 인정과 명예를 원했지만 그녀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 보일 정도다. 시종일관 어둡고 가라앉은 토베의 표정은 항상 웃고 있는 무민의 표정과 상반되어 보인다.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 그녀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자포자기'였다.
비비카가 떠나고 그녀에게 남은 무민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한때는 사랑의 표현물로 여겨지던 사랑스러운 비프슬란과 토프슬란의 대화도 이제 그녀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었다. 무민은 아버지의 말마따나 '낙서'일뿐이었다. 다만 좀 비싼 낙서였을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었다.
돈벌이 수단이자, 비비카와의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였다.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없었어."
"난 프랑스만큼 사랑하는 게 없어."
프랑스에서 운명처럼 다시 재회한 토베와 비비카. 토베는 정착된 사랑을 원했지만, 자유분방한 비비카에게 토베는 스쳐가는 하나의 인연에 불과했다. 그녀와의 하룻밤을 보낸 토베는 결국 헤어짐을 택한다. 이 순간에 비비카는 평소처럼 토베에게 "가지 마."라고 명령하지만, 토베는 "더 이상은 안 되겠어."라며 결국 방을 나선다.
결국 토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끈마저 사라져버린 상황.
토베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에게서 두꺼운 공책 하나를 건네받는다. 토베의 기사가 실린 신문, 그녀의 작품이나 인터뷰가 실린 잡지 등을 정성스럽게 오려 붙인 공책은 바로 아버지의 것이었다. 무민을 희곡으로 써서 처음 무대에 올린 날, 연극이 끝나고 토베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기도 전에 못마땅한 얼굴로 극장을 나섰던 아버지가 실은 애정 어린 눈으로 그녀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 토베는 그날 밤, 아버지의 조각품 하나와 공책을 펼쳐두고 와인을 마시며 울고 웃는다.
오랜만에 캔버스와 붓을 꺼내든 토베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린다. 때마침 찾아온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자기 초상화라고 말한다. 그들의 짤막한 대화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제목이 뭔데?"
"시작하는 사람."
토베는 평생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비비카와의 헤어짐은 굉장히 중요했다. 헤어짐 이전까지 토베에게 무민은 그저 비비카와의 흐릿한 연결고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비카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서 떠나보내며 무민에 대한 그러한 마음도 내려놓는다. 그 이후에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확인한 토베는 무민을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온전한 자신의 예술로, 어엿한 하나의 작품으로.
모두가 무민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동안 정작 작가인 토베는 무민을 거부해왔다. 토베의 아버지가 무민을 두고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며 무시하는 태도가 토베 자신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삶의 굵직한 언덕을 넘을 때마다 그녀가 눈을 돌렸던 것은 무민이었다. 무민은 토베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 아름답지만 때로는 아픔과 슬픔이 담긴 그녀만의 숲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알게 된 아버지의 진심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토베는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고뇌했지만, 실은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결과물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비비카라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사랑이나, 아토스처럼 전략적인 사랑이 아닌, 언제든 자리를 지키는 가족처럼 은은하게 데워주는 사랑의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걸, 토베는 알게 된 것이다.
토베는 더 이상 무민을 거부하지 않는다.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영화 마지막 장면의 초상화는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다. 초반에 그렸던 추상적인 초상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이전까지 자신을 '자유롭다'라고 규정하길 원했다. 하지만 진짜 자유란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유로우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지기로 한다.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항로를 향해 나아가며 외친다.
"난 인생이란 멋진 모험이라고 믿어요."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감상평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무민에는 정말 관심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라는 점 외에는 아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막상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딱 앉은 순간 약간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놓치지 말고 잘 봐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영화를 보면서 영화 내용이나 의미보다는, 토베 얀손이라는 한 명의 예술가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몇몇 장면들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사인회를 하면서 침울해하는 장면이었다. 함께 예술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게 보일 때, 그리고 나 역시 예술보단 생업을 택했다는 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 나까지도 괴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센 바람에 창이 열리고 토베가 작업하던 무민 원고가 방안에 흩날리는 장면이었다. 토베는 잠에서 깨 이 장면을 그저 멍하니 지켜본다. 예술을 쫓기만 하던 토베에게 예술이 드디어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다 하나였음을, 내 생각이고 작품이고 세계였음을 깨닫는 듯한 토베의 모습에 함께 벅차올랐다.
영화를 보고 무민보다는 무민을 만든 토베얀손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써왔는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무민에게서 토베 얀손이 겹쳐 보인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하였으나,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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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신세경, 왜 서촌으로 갔을까 (with 아름다움)
Ott 앱인 Seezn 오리지널 영화인 어나더 레코드가 공개되었어요.
다큐멘터리인 이번 영화는 배우 신세경의 고민과 함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서촌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서촌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죠.
마치 그들 옆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체 리뷰를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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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 인간 캡틴 아메리카의 나름 의미 있는 중2병
어벤져스의 가장 큰 두 축은 누가 뭐래도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다. 그러니 이 둘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지독한 중2병을 앓은 이유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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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위쳐 : 블러드 오리진> 쿠키 티저 예고편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는 법. 새로운 프리퀄 시리즈 《위쳐: 블러드 오리진》으로 대륙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만나보자. 《위쳐》의 작중 시대보다 1200년 앞선 엘프 세계가 배경인 작품으로, 잊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초의 프로토타입 위쳐의 탄생, 그리고 괴물, 인간, 엘프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핵심 시점인 '천구의 결합'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다루는 《위쳐: 블러드 오리진》은 2022년에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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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19/20> 공식 예고편
어른이 되기까지 D-7 열아홉에서 스물이 되는 순간, 모든 규율이 사라지고 설렘 지수 급상승? ?새로운 청춘을 열어보시겠습니까?? 설렘중독 청춘 리얼리티 《열아홉, 스물》 두근거림이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