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1-08-06 18:46:42
팜 스프링스 시사회 영화 후기 - 타임 루프로 커플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에서 무한 타임 루프를 하게 된 나일스는 현재를 반복해서 살게 된다. 모든 죽는 방법을 써봐도 현재로 되돌아오는 타임 루프는 사실 어느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서 시작되었는데 로이라는 할아버지가 나일스를 죽이려고 계속 쫓아온다. 하지만 나일스는 세라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려다 우연찮게 같이 동굴 입구로 들어가게 되고 둘은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 아침 첫날에 깨어나게 된다. 세라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고민을 하다가 나일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싸우다가 친해진다. 그리고는 무한 타임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러 세라는 간다. 과연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 존재하는게 무엇이길래 타임 루프를 반복하게 될까? 나일스는 로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타임 루프를 겪게 된다면
얼마나 삶이 피폐해지는지
알려주는 영화!
너를 끈질긴 악연으로 만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
그러다 사랑으로 번져가~
나일스는 찌질하고 코믹스러운 캐릭터지만 그런 나일스에게도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라는 인연을 만났다. 둘은 처음에는 끈질긴 악연이 될 뻔했지만 나일스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세라는 나일스에게 매력을 느꼈고 사랑을 나누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랑에도 권태기가 있듯이 둘의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는 자신이 저지른 업보라고 말한다. 나일스는 이에 한 술 더 뜬 채로 상상 속이라고 하거나 꿈속에 있거나 다중 우주를 벗어난 시물레이션 오류까지 언급한다. 그렇다. 나일스의 언급이 일부 맞았는게 이 영화에서는 양자 물리학을 다루는 개념이 나온다. 세라가 타임 루프를 벗어나기 위해 양자 물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수많은 이론을 바탕으로 동굴 입구에 있는 에너지 존재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온갖 방법을 써서 탈출하려고 한다. 또한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자신의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는 것과 지독한 인연이라도 나중에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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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선택한 소녀
모아나
줄거리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고, 드넓은 바다가 사방 천지에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섬, 모투누이.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족장의 딸 '모아나'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유일하게 쫄지 않았던 아이이기도 하다. '테 피티'여신의 심장을 훔친 '마우이'라는 영웅을 찾아서 '테카'를 잠재우고 심장을 돌려놔야 한다는 옛 이야기. 사람들은 다 그거 헛소리라고 해도 할머니는 모아나에게 너가 바로 바다에 선택된 아이라며 얼른 배 타고 나가라고 꼬신다.(물론 진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을 뿐.) 할머니는 모아나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도, 그러면서도 바다 근처를 서성거리며 망설여도 그저 바라보고 모아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모아나는 물론 너무나 바다로 나가고 싶지만, 완강한 아버지는 모아나가 족장의 자리를 지켜서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책임감 스웩 넘치는 아빠도 언젠가부터 섬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감지한다. 할머니는 이 때다 하면서 심장을 돌려놓지 않아서 저주가 온 거라고, 모아나에게 원래 이 부족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일깨워준다.(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뭐, 예상하겠지만 결국 모아나는 바다로 떠난다. 바다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책임지는 방식에 대하여
숨은 의미 찾기
디즈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고전적 공주들로 큰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 공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공주의 상은(이보시오, 관상쟁이 양반. 내가 공주가 될 상인가? feat.이정재) 아니었던 것 같다.
모법답안처럼 여겨지는 옛 공주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새로운 공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도를 통해 '포카혼타스/ 뮬란/ 미녀와 야수/ 벅스라이프의 개미공주' 같은 공주들 말고도 '타잔의 제인/ 인어공주의 딸/ 인크레더블의 헬렌' 처럼 여러 여자주인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공주들이 바로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의 공주들이었다. 여기서 잭팟 터진 게 바로 '겨울왕국의 엘사(feat.레리꼬)'였던 것이고. 그러나 디즈니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 숨어있는 더 많은 공주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모아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를 잇거나, 가문을 책임지거나, 책임을 지는 것은 보통 남성의 역할로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극성 부모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똑같을 거다. 마치 모아나처럼. 이렇게 말하니 마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모아나는 분명 '디즈니가 최종적으로 다다랐던 공주들'과는 다르다.
보통 주인공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면 '책임 vs 자유'의 구도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에게 책임을 분배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엘사와 모아나의 구도를 비교해보자면,
엘사 :'왕국에서 자신의 힘을 숨기고 훌륭한 여왕이 되는 것 vs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
모아나 :'족장이 되어 사람들을 바다로부터 지켜서 책임지는 것 vs 바다로 떠나 섬의 저주를 풀어 사람들이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이라는 상황에 놓인다. 엘사와는 달리 모아나는 '책임 vs 책임'의 구도를 갖는 것이다. 거기에 바다로 떠나는 것이 자신의 자유임과 동시에 부족의 정체성을 찾는 모험이기도 하다. 모아나는 아빠가 찾지 못했던 새로운 책임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번에 디즈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 인크레더블 2를 리뷰할 때, 제작진이 세대교체를 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특이한 것은, 모아나를 격려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조언하는 것이 할머니라는 점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모아나를 흔드는 것이 바로 아빠다. 이로써 두 종류의 어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른은 진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결국 공생하며 서로를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지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변한다. 문제에서 도망쳐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고 그저 참기만 하던 옛날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딪히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전세대에게 말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자리를 양보하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선택받은 게 아니다
감상평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단연 90년대생이다.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세대를 무시하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꾸려나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 방식이 설령 믿을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시도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이전세대의 권력남용이다. 늘 새로운 것은 비난받았지만, 세상을 바꾼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우이'는 '모아나'와 같은 처지이다. 전설의 영웅이라 불리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모아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막막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는 동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점을 배우고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결말을 만들어낸다. 뱃머리가 약간 삐그덕거려도, 거센 물살에 가끔은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배가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모아나는 관객을 하나의 지점으로 이끈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가끔은 큰 파도를 만나서 다치기도, 누군가를 잃기도 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배를 만나고 무인도를 찾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항해를 멈출 수는 없다. 가끔씩 지독한 인생의 파도에 너무나 지쳤을 때, 내가 발견했던 땅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물론 너무 마음에 드는 땅이 생긴 사람은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뭍보다는 파도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땅에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바다로 내몰 수도, 땅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영화 속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뭉친 소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바다라는 모험을 즐기고, 그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결국 모아나가 책임진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우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졌다.
때로 항해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언젠가는 바다 위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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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로치, 나의 올드 오크 (2023)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카메라를 든 시리아 난민 소녀 야라의 사진 컷들로 시작된다. 같은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사망한’, ‘무고한’, ‘망명에 끝내 실패한’ 난민의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했다. 10대 후반의 야라는 살아있으며, 망명에 성공한 10대 소녀다. 그녀는 카메라 시선 아래 대상화 되지 않는다. 되려 새로운 정착지인 영국의 한 폐광촌 마을을 자신의 관점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TJ가 운영하는 펍 '올드 오크'는 마을의 유일한 공론의 장으로, 영화 안에서 직접적으로 명시된다. 이 펍은 경계를 두고 '바깥의 장소'와 '안의 장소'로 나뉜다. 그중 안쪽은, 과거 연대의 기억이 아카이빙 된 장소다. TJ의 아버지 세대에 광부들의 파업이 그것이다. 하지만 끝내 광산은 폐업하고, 상처로만 남은 기억은 환부처럼 숨겨져 있다. 그리고 난민이자 새로운 이주민 야라가 카메라를 들고 그 환부를 파고든다.이 공간을 다시 연다는 것은 희망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희망을 위해서 열 것인가가 쟁점이 된다. 크게는 기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공론의 장으로 쓸 것인지, 새로운 식구들인 난민들과 밥을 굶는 아이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할지이다. TJ가 후자를 선택하며, 올드 오크는 두 진영의 대립으로 첨예하게 나뉜다.
다음으로는 회생에 대한 비용의 문제다. 마치 야라의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오래된 카메라 2대가 들어가듯, 올드오크의 주방은 유지비도 많이 들고, 수리비도 감당할 수 없이 커진다. 여기서, 이민자(난민) 출신 기술자들의 노동력을 빌리며 두 집단 사이의 연대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야라는, 외부인이자 동시에 내부인으로서 공동체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사진 전시회). '힘, 연대, 저항(Strenghth, Solidarity, Resistance)'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두 공동체는 점차 연대하지만, 일부 주민들의 자국민 우선주의 그리고 인종차별과 혐오주의로부터 시험을 받는다. TJ의 강아지 ‘마라’의 죽음은 과거 공동체를 지탱하던 상식과 공감, 신뢰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절망감을 더한다.
TJ와 일부 지역주민들은, 교회의 지원을 받아 무료 배식을 한다. 이것은 광부들의 폐업에서 모여 식사를 했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TJ의 아버지는, 교회가 노동자들의 손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귀속된다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연대가 실패하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야라의 새로운 관점과 더불어, TJ는 과거 노동계급(교회)과 미래의 노동계급(난민, 이민자)의 연대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노동자 계층과, 난민 수용으로 이뤄진 미래의 노동 계급 간의 연대가 몇 순간의 마법 같은 이벤트, 예컨대 사진 전시회나 무료 배식으로 성사된다는 주장은 어딘가 헐거웁다. 동네 대다수의 주민이 야라의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들고, 거리 행진으로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공통된 동기가 무엇인지는 되려 설득적이지 못했다.
<미안해요, 리키>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위시한 전작들에서는, 인물들의 행동 이면에 깔린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토대가 촘촘하고 견고했고, 무엇보다 시스템적인 부조리를 꼬집었기에, 이 부분에서 거장의 은퇴작에 아쉬움을 더 진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이 영화는 경제성장 둔화, 지방인구 소멸, 노동 허가제 안의 수많은 불평등적 요소, 급변하는 국제정세 가운데 난민을 어떻게 이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고 지역사회에 수용하는가의 문제… 등등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주지하듯이 '올드 오크'는, 브렉시트 이후 노동력 부족과 물가상승,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의 국가적 현실을 보여주는 스케치이기도 하다.
<나의 올드 오크>는 상식과 공감, 연대 의식을 잃어버린 분노 어린 개개인의 얼굴을 전시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 분노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이 도덕적 의무감에서, '힘, 연대, 저항'이라는 가치에 공감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본다는 주장은 어딘가 명확하지 않고, 공허하다. 자선, 혹은 온정주의에 기대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음의 한 챕터가 더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거장이 그 챕터를 마치기 위해서라도, 다른 작품으로 극장으로 한번 더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Eurofilm 12. 영국, 프랑스, 벨기에]
- 이미지 제공 : 씨네랩
2023년 12월 8일 감상 / 2023년 12월 1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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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설픈 트리거 남발에 실패해버린 드라마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기는 하지만, 〈물랑 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를 연출한 바즈 루어만은 화려한 비주얼과 극적인 드라마를 결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그런 그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자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렸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스크린으로 소환한다니 당연히 많은 영화 팬이 그 결과물을 기대했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2018), 〈로켓맨〉(2019), 〈주디〉(2020) 등 가수·배우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근래에 계속 제작되어왔다는 점도 호재였다. 이전 작업을 비판적 참조물 삼아 자신만의 개성인 더 화려한 볼거리, 더 진득한 드라마를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엘비스〉는 엘비스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우 오스틴 버틀러를 캐스팅해 엘비스의 노래와 춤, 비주얼 등을 재연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리하여 엘비스를 다시 무대로 올려놓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하지만 바즈 루어만의 또 다른 장기인 드라마의 농도는 형편없다. 〈물랑 루즈〉와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비주얼과 치명적 드라마를 적절히 맞물리게 연출했기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여러 등장인물 간의 갈등, 사랑, 우정 등 다양한 요소를 가장 본질적이고 주가 되는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데 활용해 영화의 핵심 감정선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엘비스〉가 실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 영화에는 여러 드라마 요소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을 뿐이어서 무엇이 메인 드라마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각각의 요소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다 금세 사라지는 것이다. 영화는 내레이터의 대사로 어떻게든 여기저기 널린 드라마 요소를 갈무리하려 하지만 유기적 연결 없이 대사만으로 이들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신의 산만함을 자백하는 꼴이다.
영화가 최종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드라마는 팬들을 향한 엘비스의 사랑인 듯 보인다. 죽기 얼마 전까지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엘비스, 가족의 친밀감보다 공연할 때 팬과 호흡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더 아끼는 엘비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상업주의적 착취를 거스르는 엘비스의 열정과 의지,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끝내 메인 드라마와 결합하지 못한 다양한 드라마 요소가 남아 있다. 엘비스의 재능(혹은 ‘상품성’)을 알아보고 매니저가 되어 그를 착취하는 톰 파커, 러브 스토리, 극적인 상승과 하강, 사치와 약물중독, 흑인 뮤지션과의 관계 등등. 이 중 몇몇은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와 어우러지지만, 대개는 다소 튀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진지한 대사를 하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싶었는데 그 부분은 살짝만 비추고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식이다. 이와 같은 유기적이지 못한 이야기의 반복은 영화 중반부에서부터 내내 반복되어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 요소를 갖추었다고 감동이 더 커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밀도와 농도다. 영화의 헐거움은 자신이 발견한 엘비스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한 바즈 루어만의 욕심이 패착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물랑 루즈〉와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의 얼굴과 대사가 떠올라 아쉬움이 생길 정도였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과 맺었던 긴장 관계를 재현하는 영화의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가정 형편상 흑인 마을에서 자란 엘비스는 어릴 때부터 흑인 커뮤니티에서 그들 음악의 수혜를 입으며 자랐다.* 백인 가수 중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흑인 음악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편에는 영화 〈드림걸즈〉(2006)에 나오듯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도둑질해갔다며 잔뜩 분노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가 아니었으면 흑인 음악이 주류로 부상하지 못했을 거라며 엘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구심이 들었던 건 엘비스가 보수주의적 검열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장면을 인종 정의와 연결한 연출이었다. 바즈 루어만은 엘비스를 흑인을 위해 싸운 투사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엘비스가 인종 간 교류 등 변화하는 시대의 정수를 체화하여 보수적 연예계에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왔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를 엘비스의 의식적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엘비스의 문화정치적 의미는 그가 흑인 음악을 차용해, 딱 달라붙는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고, ‘선정적인’ 춤으로 소화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엘비스를 인종 정의를 위한 활동가로까지 만들었을 필요는 없단 소리다.
영화에는 엘비스가 ‘발이 없어 땅에 앉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끊임없는 날갯짓은 새를 더 높은 곳에 올려주기도 하지만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엘비스의 삶을 잘 압축한 표현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탁월한 비유에 맞춰 엘비스 삶의 다양한 요소를 조율하지 못한 채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의 과잉 나열에 그치고 만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바즈 루어만의 다른 히트작과는 달리 어설픈 트리거 남발에 실패해버린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엘비스는 당시 보수적인 백인들이 ‘여성스럽다’고 느낄 만한 패션과 몸짓을 체화한 자이기도 했다. 엘비스의 흑인성과 여성성은 곧 그의 ‘상품성’이 되었다.
**영화를 본 후 찾아보니, 로튼 토마토에 비슷한 평이 있었다. 평론가 Marcelo Stiletano는 “루어만은 모든 실존적 디테일에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은 끝내 허위의 제단에 희생되었을 뿐이다(Even though Luhrmann seems really interested in all the existencial details, they end up sacrificed on the altar of pretension)”라고 이 영화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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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등생이 아닌 모범생의 길을 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갈 날만 기다리며 외무부 중동과에서 하루하루 버틸 뿐인 외교관 ‘민준’(하정우). 그러던 어느 날, 민준은 놀라운 기회를 잡는다.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 '오재석'(임형국)의 암호 메시지를 받은 것. 아무도 레바논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가운데, 민준은 외무부 장관의 약속을 받아낸다. 비공식작전에 성공하면 미국 발령이라는 약속을. 이에 그는 레바논으로 향한다.
부푼 희망을 안고 베이루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경비대에게 쫓기는 민준. 공항을 간신히 빠져나온 그는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를 우연히 만난다. 설상가상으로 인질 몸값을 노리는 갱단마저 그를 쫓기 시작하자, 민준은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은 판수만 믿고 비공식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매력 없는 모범생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 영화계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한국 외교사의 비하인드를 다루는 작품이 여럿 공개됐다. 남북 외교관의 소말리아 탈출기를 그려낸 <모가디슈>,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다룬 <교섭>이 대표적이다.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 주지훈이 출연한 <비공식작전> 역시 같은 트렌드를 따른다.
사실 트렌드에 올라탄 영화는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있다. 상황이 좋게 흘러가면 관객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해서 흥행할 수 있다. 반대로 뒤늦게 트렌드에 올라탄 경우 리스크가 크다. 앞선 작품들과의 차별화에 실패해서 관객의 눈도장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공식작전>은 후자에 가까운 상황이다. <교섭>의 흥행 실패는 해당 소재가 소구력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이에 <비공식작전>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최대한 넓히려고 노력했다. 초반부는 유머러스하다. 후반부를 채운 액션 시퀀스는 강렬하다. 하정우와 주지훈의 케미는 익숙하지만, 기대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 와중에 시대상을 반영한 묵직한 드라마는 심금을 울리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모범생 같다. 특출 난 지점은 없어도 고루고루 균형을 잡았다. 다만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조금 가혹하게 말하자면, 재미는 있되 매력이 없다.
묵직한 드라마의 힘
<비공식작전>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대목은 드라마다. <교섭>과 유사한 이야기가 전체 틀을 잡는다. 두 작품 모두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전달하는 방식은 다르다. <교섭>은 '정재호'(황정민)를 어떻게든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의 화신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인물과 관객 간의 가교를 놓는 데는 실패했다. 개인의 일탈이 두드러진 샘물교회 사건을 소재로 삼다 보니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비공식작전>은 영리하다.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초반부에 민준은 허술하다. 그에게 외교관으로서 대단한 사명감은 사치다. 서울대 출신 후배에게 밀려 승진 못하는 그는 평범한 공무원 중 하나다. 이 소시민적 감성 덕분에 관객은 손쉽게 민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이 교감은 그의 변화를 납득할 수 있는 여지도 준다. 평범한 직장인이 모든 자국민을 구하려는 진정한 외교관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보조 플롯도 인상적이다. 레바논에서 그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외무부는 안기부와 갈등을 빚는다. 외교관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되지 않겠냐는 외무부 장관의 항변은 힘이 없다. 외무부의 단독 작전 때문에 안기부장 심기가 불편해졌으므로. 이 갈등은 결국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국익을 따지기 전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6월 민주 항쟁과 서울 올림픽이 시대적 배경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그러다 보니 외무부 직원들의 단체 행동, 오재석 서기관과 민준의 만남은 과한 연출 없이도 뭉클하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버디 무비
물론 드라마에만 집중하면 자칫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질 수 있다. <비공식작전>는 버디 무비를 활용해 열기를 적절히 식힌다. 민준과 판수의 티키타카가 쉼터인 셈이다. 이 접근은 효과적이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버디 무비의 전형과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버디무비는 상극의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처음엔 온갖 갈등을 빚다가 점차 닮아가는 변화의 감동이 핵심이다. 인종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 <그린북>처럼. <교섭>만 해도 주인공의 성격도 스타일도 정반대였다.
<비공식작전>은 다르다. 외교관 민준과 사기꾼 판수는 사실상 같은 인물이다. 민준은 외무부 중동과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갇혀 있고, 판수는 레바논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눈앞에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오자 사투를 벌인다. 달리 말해 <비공식작전>은 같은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김성훈 감독의 장기가 곁들여진다. 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어둡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다. <터널>처럼. <비공식작전>도 마찬가지다. 문을 사이에 둔 티키타카, 돈가방을 둘러싼 추격전에서는 두 배우의 합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두 인물은 유대감을 쌓는다. 목적지만 가면 그만이었던 택시 기사와 승객은 서로를 진짜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지가 된다. 기사와 승객이 바뀐 듯 보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이 버디 무비는 뭉클한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방점을 찍은 액션
마지막으로 <비공식작전>은 액션과 서스펜스로 관객의 눈길을 끝까지 사로잡으려 한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지 않다. 하지만 지형지물을 아기자기하게 활용해서 긴장감을 고조한다. 광야에서 들개가 나오는 장면, 베이루트의 주택 옥상에서 민준과 무장 단체와의 대치, 차가 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종횡무진하는 카 체이싱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비슷한 배경의 <모가디슈>와 비교하면 결정적인 장면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남는다.
색다른 지점도 있다. 후반부 액션에서는 두 주인공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초중반부에는 검문소 테러 장면처럼 민준과 판수가 액션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인 대목이 있다. 오재석 씨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는 현지 중동 테러 조직의 교전 한가운데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간극은 오히려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지나치게 영화적인 액션이 아니라서 현실감이 살기 때문이다. 또 <교섭>과 달리 단조로울 수 있는 액션 패턴에 변주를 주면서 여름 대작에 걸맞은 쾌감을 주려 한다.
모범생이라 아쉽다
그러나 <비공식작전>은 끝끝내 아쉽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모범생이지만, 확실한 매력이 안 보인다. 배우 활용법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민준은 <수리남> 속 '강인구'와 결이 비슷하다. 그들은 그저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했고, 그 대가로 곤경에 빠진다. 둘 모두 적당히 가볍고, 종국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배우 하정우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와 분위기가 감독의 전작인 <터널>을 닮은 점도 모범생 이미지를 강화한다. 위기에 빠진 주인공은 고립된 공간에서 원맨쇼를 펼친다. 바깥에서는 주인공을 도우려는 이들과 방해하는 세력이 갈등을 빚는다. 진지한 분위기는 주인공의 예상치 못한 코미디 덕분에 환기된다. 주인공이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 결과 <터널>의 확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한 번 찾아낸 성공 방정식을 따라갔다는 인상이 강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작전>은 굳이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범죄도시 3>나 <밀수>가 호불호는 갈려도 자기만의 확고한 개성을 어필해 관객을 극장까지 유인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론 팝콘 무비로서 튀는 단점이 없다는 점은 여름 시장에서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하정우와 주지훈, 그리고 김성훈 감독의 조합이 갖는 무게감과 명성에 비하면 마냥 장점이라고 하기도 애매해진다.
<비공식작전>은 여러모로 작년 여름시장의 생존자 중 하나인 <헌트>를 떠올리게 한다. 장르적으로 스릴러와 액션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포지션이 유사하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천만 영화를 만들어 냈던 하정우-주지훈 조합도 이정재-정우성 커플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헌트>와의 유사점 때문에 <비공식작전>의 단점은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러닝타임을 액션으로 꽉꽉 채우고, 두 주인공의 비중도 거의 오 대 오로 가져가면 최대한 개성을 살리려 노력한 <헌트>. 반대로 <비공식작전>은 어떤 면도 준수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작전>의 미래는 어둡다. 극장에서 <헌트>처럼 손익분기점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심지어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예매율 1위를 차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가 대기 중이니 앞날은 더욱 암울하다.
Acceptable 무난함
재미는 있다. 극장까지 가는 게 관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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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진실과 진심 사이에
감독] 임찬익
출연] 이주승, 아디나 바잔(Adina BAZHAN), 구성환, 조하석 등
프로그램 노트] 다큐멘터리 조연출 승주는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도 역시 조연출 신세로 고려인 결혼식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승주. 그러나 감독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예정된 촬영을 하지 못하고 제작비만 날리고 만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면 승주의 연출 입봉작을 제작하겠다는 대표의 말에 승주는 가짜 결혼식 촬영을 계획한다.
목표가 간절할수록 처해 있는 현실은 더욱 괴롭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유혹에 쉽게 빠지기 마련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이룬 목표는 달콤하기보다는 쓰디쓸 뿐이다. 자명한 인생의 진리를 전하는 이 작품은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운 풍광과 이에 어우러진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로 그 메시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승주가 가짜 결혼을 위해 선택한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의 진정한 의미가 빛을 발하는 결말에 이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정엽)
선혈이 낭자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스크린 중에도 이따금, 부드러운 초록빛이 스크린을 메울 때가 있다. 좀비를 비롯한 이생명체의 공격, 디스토피아의 살벌한 세계관, 고어나 호러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자주 찾는 이유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라면 <다우렌의 결혼>이 꽤나 반가울 것이다. 이 영화는 처참한 장면 대신 말갛고 순한 장면으로 마음을 두드리니까.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 이주승은 여기서도 적당한 피로와 타협으로 점철한 현대인의 얼굴로 포문을 연다. 난민촌을 담은 다큐멘터리라면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 보호 차원에서 이름을 적당히 가명 처리하고 가명임을 밝혀도 될 것 같은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조연출 승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상 앞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대로 고민하며, 열심히 일상을 채운다.
꿈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분명 입봉이라는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데, 어쩐지 자꾸 꼬이고 박살나고 멀어지기만 하는 느낌으로 승주는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을 걷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방인에게 기꺼이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만은 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실 고려음식 열전이었던가 싶어질 만큼 멋진 식탁 장면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에도, 승주만큼은 뚱한 표정이다.
마을 잔치를 결혼식처럼 둔갑시키는 것도, 거짓 결혼식을 만드는 것도, 그는 내켜 하지 않는다. 진짜가 아니니까. 다큐는 진짜를 찍는 작업이니까. 그러나 도저히 물러설 길이 없다 싶자, 그는 결국 가짜 결혼식을 결정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결혼식이라고 믿는다면, 그럼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에 적당히 물러선다. 어쩌면 승주가 이 영화에서 처하는 갈등은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더 정확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인가 사실인가" 하는 질문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짜'라는 말의 범위를 가늠하며 영화를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는 때로는 진실, 때로는 사실의 의미로 통용되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혹은 진실과 사실에 대한 깊은 고뇌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다. 대신 진짜라는 말의 경계를 슬며시 녹이고 넓힌다.
순한 마음은 진짜다
샤슬릭을 굽는, 그러니까 음식을 만드는 연기와 냄새를 피우면서 결혼식 소식을 알린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 결혼식 소식을 전하고, 어쩌다 마주친 승주의 카자흐스탄 이름 '다우렌'을 연신 부르며 환한 미소로 축하를 건넨다. 그 입소문과 축하의 장면들은 하나 같이 순하기만 해서, 보는 내내 참 좋았다. GV에서 들으니 실제 마을 이장님도 그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던데, 촬영에 열려 있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드러난 모양이다.
상대와 나의 관계성이나 거기서 얻게 될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누군가의 행복에 마냥 기뻐하는 마음. 물론 거기에는 아디나가 그 동안 마을에서 쌓아 온 덕망이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그냥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합을 어여삐 여겨 주는 마음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그 순한 마음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다.
같이 옮긴 걸음은 진짜다
가짜 결혼으로 시작했지만 아디나와 승주 일행은 점차로 가까워진다. 기분 좋은 날, 바람 좋은 날 함께 둘러앉아 좋은 음식을 같이 먹고, 같이 걸어다니고, 같이 웃는다. 이러한 과정이 단순히 연인으로서의 과정으로 그려졌다면 이 영화를 굳이 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진부한 멜로 서사 쪽으로는 힘을 주지 않았다.
가짜 연인 행세를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애정이 꽃피는 드라마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으며, 심지어 가짜 결혼이라니 얼마나 올드한 틀인가. 이 영화에서 결혼이라는 틀은, 서로를 종속하는 폐쇄적 로맨스가 아닌 순한 동화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기능한다. 멜로 드라마라기엔 개연성이 흐릿하다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디나와 승주 각자의 걸음이 모였다 흩어지는 또 모이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다소 거짓말 같은 엔딩도 그럭저럭 납득하게 되는 건, 그래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지기 때문이다.
마주본 눈은 진짜다
누군가의 방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의 꿈과 소원을 보는 것과 같다. 거기까지 보았다는 것은 상당히 가까운 관계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순한 마음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같이 걷고, 그의 마음 한 자락을 엿보고, 그의 눈 속에서 자신과 같은 면까지 보고 나면, 이제 그 두 사람은 먼 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턱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다우렌' 승주와 아디나가 서로를 보고 자신을 본 것처럼, 이 영화를 본 나도 다시 나를 본다. 푸른 갈치를 생각하면서. 나의 '진짜'는 어디에 있는지, 혹시 어디 그물에 걸려 빠르게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영화에서 '진짜'를 느끼게 한 것들은 모두 그저 진심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담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지만, 연출자 따로 감독 따로인 상황에, 아예 가짜 상황을 연출해 담는 상황조차 "다큐도 연출이라니까!" 하는 말에 어영부영 묻히는 상황에서, 그 말은 자꾸 삐그덕거리고 어긋나기만 한다. 대신 이 영화 내내 오롯이 빛나는 것은 진심이다. 백석의 시에 나오는, "욕심이 없어 희여졌"고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으며,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한 존재들처럼 조용히 새하얀 진심.
백석을 생각하니 더더욱, 이 영화의 배경에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1937년 척박하게 얼어붙은 땅에 대뜸 던져졌으나,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거기서도 국수를 말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 이 세월 다 가고도 그 마음은 그대로여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에 묻어난 진심은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푸른 산과 너른 초원에 곱게 펼쳐진 이들의 톡톡한 존재감을 극장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17:00-18:23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31)
7월 5일 16:30-17:53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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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마침내 돌아온 영웅들
1. '슈퍼맨(헨리 카빌)'의 비명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지구의 모두가 슬픔에 잠긴 사이 '배트맨(벤 에플렉)'과 '원더우먼(갤 가돗)'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직감한다. 지구의 수호자가 죽었음을, 자신을 저지할 최후의 보루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행성을 파괴할 무기 '마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를 침공할 '스테픈울프(키어런 하인즈)'와 그 흑막인 '다크사이드(레이 포터)'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이에 그들은 슈퍼맨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유지를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영웅인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과 '사이보그(레이 피셔)', '플래시(에즈라 밀러)'를 찾아 나선다.
팬들의 큰 기대 속에 마침내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 대해 영화 리뷰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의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은 총평을 내렸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감독의 비전에 맞게 확장되는 거대한 장면들로 제목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 영화가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 팬들을 만족시킨다(Zack Snyder's Justice League lives up to its title with a sprawling cut that expands to fit the director's vision -- and should satisfy the fans who willed it into existence)."
평가대로 팬들이 만족할 장면, 확장된 거대한 장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잭 스나이더 특유의 슬로 모션에 담긴 각 히어로의 능력과 역할을 최대한으로 부각하는 액션,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Junkie XL의 음악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1.33 대 1의 화면비율을 통해 전달되는 감독 특유의 다크한 영상에는 수많은 스펙터클과 상징들이 빼곡하다. 기존에 <어벤져스> 속 히어로들의 코스튬만 바꾼 듯 보였던 등장인물들도 커진 분량 안에서 각각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새롭게 디자인된 빌런들 역시 거대한 위압감을 선사하며 선과 악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한다.
2. 그렇다면 이 환상적인 볼거리들, 거대한 컷들이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비전은 과연 무엇일까? 이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잠시 시선을 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영화가 슈퍼맨이 둠즈데이에게 찔려 사망하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결말로부터 곧장 이어지는 만큼, <배트맨 대 슈퍼맨>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이해할 때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갖는 진짜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아킬레우스는 그 분노를 거름 삼아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죽인다. 그의 시체를 전차로 끌고 다니며 모욕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막사를 찾아온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를 만난 그는 변한다. 프리아모스의 용기와 부성애에 감명받은 그는 역시 아들을 사지에 내보낸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휴전을 제안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며,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일리아스'의 흐름을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정확히 따른다. 고담시의 수많은 범죄자와 맞서 싸우다가 가장 친한 친구인 로빈을 잃은 배트맨. 그는 어느 날 하늘에서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는 슈퍼맨을 보며 그동안 쌓아온 분노를 폭발시킨다. 이에 그는 슈퍼맨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의 발목에 줄을 묶어 온갖 고통을 준 끝에 그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단지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던 슈퍼맨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목격한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슈퍼맨과 휴전하고, 더 큰 위험인 둠즈데이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전투에서 사망한 슈퍼맨의 장례식에서 저스티스 리그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3. 약간의 순서만 바뀐 채 일리아스의 서사를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면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저스티스 리그>를 위해 남긴 두 개의 주춧돌을 알아볼 수 있다. 하나는 <배트맨 대 슈퍼맨>이 사실상 분노에 가득 찼던 배트맨이 아킬레우스처럼 인간성을 되찾아 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배트맨의 대적자였던 슈퍼맨은 헥토르와 프리아모스가 보여줬던 것처럼 사랑, 희생, 용기와 같은 고결한 인간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슈퍼맨의 죽음을 계기로 배트맨이 저스티스 리그를 만든다는 결론은 곧 인간다움을 잃게 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는 단독 영화에서 언제나 사랑의 힘을 강조했던 원더우먼이 배트맨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로 돌아와 보자. 새로운 <저스티스 리그>가 기존 버전으로부터 가장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세 명의 히어로, 아쿠아맨, 플래시, 사이보그의 서사가 보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전작부터 만들어 온 큰 그림이 온전해진 결정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세 히어로는 비록 정도는 다를지언정 전작에서의 배트맨처럼 제각기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쿠아맨은 자신을 버리고, 신경을 쓰지 않은 어머니이자, 아틀란티스의 왕 아틀라나에게 분노해 아틀란티스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쓴 누명을 풀기 위해 범죄학을 공부하는 플래시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에게 크게 실망한다. 사이보그 역시 일하느라 바빠서 자신의 미식축구 경기에 오지 않고, 어머니와 자신의 교통사고도 막지 못한, 심지어 자신을 끔찍한 기계와 결합시킨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배트맨과 원더우먼을 만나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분노와 실망감을 떨쳐내고 슈퍼맨이 상징하는 인간에 대한 희망,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아틀란티스가 스테픈 울프에게 공격당한 후 아틀란티스인들의 간청으로부터 그들의 절실함을 느낀 아쿠아맨은 슈퍼맨의 유지를 받들겠다던 배트맨을 떠올리고, 어미니의 오지창과 함께 그에게 합류한다. 플래시는 화만 유발하던 "너만의 미래를 만들어라"라는 아버지의 말로부터 세상을 구할 기회를 잡는다. 사이보그는 아버지의 희생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그의 사랑을 깨닫고, 그가 기대대로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한 영웅의 길을 걷는다. 이처럼 새로운 <저스티스 리그>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결말로부터 곧장 이어지면서 전작의 서사를 계승함과 동시에 더욱 확장시킨다.
4. 그렇기에 잭 스나이더의 촬영본 중 4분의 1 가량만 활용된 조스 웨던 감독의 기존 <저스티스 리그>에서 각각의 플롯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고, 영화의 짜임새가 부족해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이 가족사로 인해 중간에 하차했던 2017년의 <저스티스 리그>는 각 히어로의 서사가 부족하고, 6명의 히어로가 하나의 팀으로 묶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슈퍼맨의 부활을 비롯해 중요한 에피소드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에 5명의 히어로가 슈퍼맨을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로 인한 비인간적인 면모로부터 벗어나는 서사로 연결된 이번 작품은 다르다. 그들만의 힘으로는 지구와 모든 인간을 말살하겠다는 스테판 울프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 그들이 인간의 고결함과 희망의 상징인 슈퍼맨을 되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히어로인 슈퍼맨보다 한 인간인 클라크 켄트를 잊지 않았던 로이스 레인이 부활한 그를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개 등은 큰 그림 안에서 물 흐르듯 유려하게 이어진다.
이처럼 '일리아스'와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이야기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반복, 변형하는 각 인물의 서사와 플롯이 제자리를 찾아 가자 잭 스나이더의 비전은 화려한 액션과 Junkie XL의 웅장한 사운드트랙과 더불어 큰 전율을 선사한다. 이에 더해 로이스 레인을 잃고 분노로 타락해 지구를 파괴한 슈퍼맨에 맞서 조커를 비롯한 빌런과도 손잡은 배트맨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는 반복, 변형, 확장되던 히어로들의 이야기가 전복될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케 하며 취소된 속편에 대한 아쉬움과 일말의 희망을 동시에 자아낸다.
5. 물론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우선 상술했듯이 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미리 관람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2017년에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를 보지 않은 관객의 입장에서도 어떤 장면이 편집되었고, 어떠한 내용이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하나 줄어든다.
슬로 모션이 남발되는 경향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를 남기고, 개그 씬처럼 흐름을 끊는 장면들이 있다 보니 총 6개의 에피소드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된 4시간 2분의 분량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플래시가 아이리스 웨스트를 구하고, 사이보그가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시험해보는 것과 같이 영화 전개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장면들도 리듬을 잡아먹는다. 또한 배트맨의 악몽, 빌런들의 집합인 인저스티스 리그를 만들려는 렉스 루터의 음모, 새로운 캐릭터인 마션 맨헌터의 등장 등은 DC 영화와 코믹스 팬들이 아니라면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사족처럼 보일 수 있다.
6. 한편 영화 외적으로도 주목할 지점이 있다. 사실 제작 도중에 교체된 감독의 촬영본으로 완전히 재편집한 영화가 공개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DVD나 블루레이를 출시할 때 감독판 혹은 확장판을 공개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우다. 이는 소비자인 팬덤의 강력한 요청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앞으로의 반응에 따라 소비자와 제작자의 역학 구도가 뒤바뀌는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수 있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스타 감독이 아니라면 편집권이 제한되어 감독의 구상이 온전히 발현되기 힘든 할리우드 시스템에 균열이 가해진 사례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영화 팬들에게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단지 트렌드를 쫓는 것 대신 다양한 색깔을 지닌 감독들의 비전이 온전히 빛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 결과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몇몇 두드러진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탕자로서 수많은 팬들에게 축제나 다름없는 귀환을 알린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고대하던 잭 스나이더와 DC의 명예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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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버리 - 아이빼고 다 가진 금수저 부부 VS 아이빼고 다 부족한 MZ커플의 위험한 거래
*해당 리뷰영상은 영화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유산 상속을 위해 아이가 필요한 금수저 부부 ‘귀남’(김영민)과 ‘우희’(권소현).
계획 없는 임신을 해서 난감해진 개털 백수 커플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
‘미자’와 ‘달수’는 생활고로 인해 안타까운 결심을 하고, 하필 ‘귀남’이 있는 산부인과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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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가장 버라이어티한 공동 태교가 시작된다!
11월 20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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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저링3 - 악마?가 시켰다'보기 전 확인할 공포?의 연대기 - 컨저링 유니버스 정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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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부부의 퇴마기인 '컨저링'으로부터 시작된 공포의 세계관을 재미있게 알아보자
컨저링 유니버스
개봉순
컨저링(2013) - 애나벨(2014) - 컨저링2(2016) - 애나벨 인형의 주인(2017) - 더 넌(2018) - 요로나의 저주(2019) - 애나벨 집으로(2019)시대순
더 넌(1952) - 애나벨 인형의 주인(1955) - 애나벨(1967) - 컨저링(1971) - 애나벨 집으로(1972) - 요로나의 저주(1973) - 컨저링2(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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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와인 패밀리> 메인 예고편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요?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아온 캐나다의 자동차 회사 CEO 마크.
문득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의 신념에 반대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이탈리아 아체렌자로 떠난다.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던 마크는 할아버지가 남긴 포도밭을 되살리고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지만, 그의 무모한 도전에 마을 주민들은 꿈 깨라며 만류하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부딪히는데…
쉼표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달콤한 인생 리셋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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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서펀트>
[2021년 4월 2일 넷플릭스 공개]
- 살인자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제 사건에 기반한 <더 서펀트>는 끊임없이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찰스 소브라즈(골든글로브 후보 타하르 라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를 법정에 세우고자 전력을 다한 이들의 분투 또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