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4-05 15:14:48
넷플릭스 영화 음양사: 청아집 / 중국영화
우리나라의 <승리호>와 같은 날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중국영화 <음양사: 청아집>을 봤다.
인간과 요괴가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음양사>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이자 만화인데,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은 조금 흥미롭다.
(물론 일본에서도 이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중국 배우는 잘 모르는데, 주연을 맡은 인물들은 중국에서 인기 높은 스타들이라고 한다.
CG로 만들어진 특수효과는 <승리호>에 비교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승리호>가 흥행면에서 완승한 것으로 보인다.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지만, <음양사>의 팬들을 제외하고는 <승리호>가 더 인기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Positive.
1. 유명한 <음양사>가 원작이다.
음양사의 팬이라면 각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에 즐거울 것이다.
2. 세트와 의상은 화려하고 멋지다.
의상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CG와는 달리 훌륭하다.
3. 범인을 추리하는 듯한 구성을 가볍게 표현하고 있어서 잔재미를 준다.
추리하는 과정이 나오는 단계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
4. 청명과 박아 사이의 브로맨스가 재미를 준다.
능글맞은 청명과 고지식한 박아 사이의 옥신각신이 영화 내내 잔재미를 준다.
청명이 시종일관 박아를 놀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둘의 호흡이 괜찮다.
청명보다는 박아가 훨씬 매력적이다.
5. 법사들이 서로를 상대방을 염탐하는 장면은 가볍고 유머가 있어 좋았다.
| Negative.
1. 이야기가 중간중간 늘어지고 불필요한 장면이 많이 보인다.
느슨한 진행은 지루함을 준다.
2. 재앙의 뱀과의 대결 장면은 하이라이트임에도 너무 유치하다.
긴장감도 없고 새로움도 없고, 눈을 즐겁게 하는 장면도 없다.
3. 등장인물들의 능력이 너무 약하다.
수호신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상 청명의 부하들인 식신들이 멋진 등장에 비해 너무 약하다.
재앙의 뱀과 대결하기에는 음양사인 청명이 너무 약하다.
나중에 청명의 식신이 되는 박아 모습의 주작도 주작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너무 약하다.
4. 2020년 영화라고 하기에는 CG가 많이 유치해 보인다.
5. 중국 버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름도 중국식으로 나와서 원작 팬들에게는 어색할 것 같다.
| 총평
유치한 특수효과, 지루한 전개,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장면들이 재밌는 요소를 모두 먹어버렸다.
다만, 음양사 팬이라면 청명과 박아 캐릭터를 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음양사: 청아집 평점 5.5 (작품 6, 재미 5)
 ̄
음양사: 청아집 예고편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네레이드 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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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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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주차 개봉예정작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 7월 3주차 개봉기대작 골라왔습니다!
우리의 의리 넘치는 AI 로봇 메간이 돌아왔습니다.
<메간 2.0> 아예 병맛을 콘셉트로 들고와서 더 기대되는데 한국의 유튜버 입짧은햇님도 출연한다고 하네요..?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잠입편>,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결전편> 2편이 동시에 개봉해서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또한 한국 제작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드디어 국내에서도 개봉하는데요,
이미 <기생충>을 제치고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중 최고 흥행작에 등극하면서 금의환향 했습니다. 국내 성우진 캐스팅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병헌, 진선규, 이하늬, 양동근, 차인표, 장광까지… 과연 명성에 걸맞는 작품일지 궁금하네요 👀
이번 주 극장은 다큐멘터리부터 공포,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이 펼쳐질 것 같네요🔥
여러분은 추천작 중 어떤 영화 가장 먼저 보러가실 예정인가요?🤔
🎬 7월 3주차 PICK!
►<메간 2.0>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미세리코르디아>
►<킹 오브 킹스>
►<일과 날>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잠입편>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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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소통을 통해 진짜 사랑의 의미를 묻다
크러쉬 온 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취준생 용준(홍경)이다. 철학과 졸업생인 용준.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냥 앉아있는 용준. 이력서 쓰고 떨어지는 일상의 반복이다. 이런 용준이를 가만히 지켜놓을 리가 없는 사람이 있다. 용준의 부모는 돈가스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배달 알바를 시키는 용준의 부모. 딱 3개월만 하기로 한다. 첫 번째 배 달지는 어떤 수영장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애가 시선에 들어온다. 말을 거는 용준. 하지만 이 애는 뭔가 특별했다. 목소리 대신 수화로 대화하던 아이. 아이는 용준의 배달 지를 가리켰다. 목적지에 도착한 용준. 수영장에 들어간 순간 용준이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수영 코치로 보이는 여자에게 반한 용준. 여자의 이름은 여름(노윤서)이었다. 또 여름은 동생 가을(김민주)이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파릇파릇한 두 청춘이 만났다. 두 남녀는 서로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 두 사람의 여름이 시작됐다!
청춘스타
이 영화에서 빛났던 건 세 배우의 존재감이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홍경배우는 박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의 톤을 깔끔하게 이끌었다. 이 영화에서 용준이가 가진 임무는 막중했다. 청각장애인을 핵심으로 삼은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 안에서 소리가 억제된다. 용준이가 부모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긴 하나 대부분은 대사가 없다. 그럼 표정으로, 또 반응으로 사랑에 빠졌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홍경 배우는 그 섬세한 감정변화를 잘 포착해서 연기로 구현했다. 대표적으로 용준이가 용준 부모와 함께 있는 모든 장면을 보면 그 체감이 확 느껴진다. 이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은 여름이와 있는 장면 / 친구와 있는 장면 /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 세 가지로 나뉘어서 사랑의 힘을 받은 용준이를 묘사하는데 힘을 덧붙인다. 가족들이랑 있을 땐 비교적 편안함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여름이와 있을 때는 항상 조마조마하다. 또 동시에 여름이에겐 눈을 마주치는 둥 아닌 둥 하면서 여름이의 내면 그 자체에 귀 기울이는 남자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역량을 보여줬다. 이 배우가 <D.P>에서 조석봉을 괴롭히는 폭력적인 병사 역할이었고 <댓글부대>에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이 배우가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는 시네필이라고 하는데, <펀치 트렁크 러브>에서 아담 샌들러가 맡았던 주인공 역할의 초반부를 어느 정도는 영향받고 연기한 티가 났다. 글쓴이는 이 배우가 평소에 이렇게 소년스럽지만(잘생겼다는 뜻) 듬직했구나 싶어 놀랐다.
다른 주인공 여름 역을 맡는 노윤서 배우는 그녀의 출연작 중 가장 카리스마가 빛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10대 역할을 맡았던 노윤서 배우. <우리들의 블루스>나 <20세기 소녀> 같은 영화들은 본질적으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 대한 리액션만 보여줘야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본작에서의 서여름은 다르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세 인물의 성장기(용준/여름/가을)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덕에 이 인물은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 수밖에 없다. 이 과제를 잘 알고 있는 듯이 영화와 배우는 여름의 얼굴에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다. 여름이의 얼굴과 손이 영화를 이끄는 핵심 감정선이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름이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고 달려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노윤서 배우는 그전 장면과의 감정표현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플롯의 전복을 효과적으로 이끈다.
핵심인물 3인방 중 가장 연기 이력이 적은 가을 역의 김민주 배우는 원래 가수보다 이 쪽에 가까운 아티스트 같았다. 글쓴이에게 배우라고 함은 마이클 케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배우는 눈을 파는 직업이다’라는 말이다. 글쓴이는 이 말이 다른 사람(그것도 가상의)에게 취해있어야 직업인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문장을 이행하기에 김민주 배우는 장점 특색이 강하다. 고양이 같은 눈매와 뚜렷한 이목구비 덕에 이 인물의 감정전달이 관객에게 더 쉽게 느껴진다. 실제로 영화는 가을이의 눈빛을 담는 데에 주력했다. 영화 안에서 호수가 두 번 나오는데, 이 호수에서 볼 수 있었던 김민주 배우의 연기는 눈빛이 인상 깊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런 선천적(눈)인 연기 아니더라도 김민주 배우의 기술적인 부분도 크게 다가온 장면이 있다. 영화 안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걸 둘러싼 두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김민주 배우는 적극적으로 캐릭터의 입장을 보여주는데 세 인물 중 영화의 동력을 만든다는 점에서 캐릭터를 잘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소통을 경유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건 대화다. 중요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영화가 가진 낭만적인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많은 로맨스 영화에서 반복한 테마가 있다. 바로 진심으로 전하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같은 영화를 보면 어떤 로맨스물은 시간을 돌리고 기억을 지워서라도 사랑을 믿는다. 이 영화는 기존의 장르물처럼 사랑을 전하는데 그게 수어다. 그렇다면 수어를 중요하게 생각해야겠지? 영화는 다방면의 수어를 보여준다. A와 B가 대화하는데 C를 거친다. 사실 A-B만 대화해도 굳이 상관없는 장면에 C를 거친 장면을 넣었다. 이 영화에서 수어를 통한 대화를 강조하겠다는 의지를 전적으로 보여준 단면이다. 수어를 강조하기 위한 다른 장치도 있다. 바로 문자다. 현 2024년 MZ들이 문자메시지를 못 쓴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수어에서 생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보여준 것과는 반대로 직접적으로 텍스트를 통해 보여준다. 이 문자를 그냥 휴대전화 모니터를 그대로 보여주는 연출을 썼나? 아니다. 텍스트를 굳이 화면 안으로 보여줌으로써 인물들이 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사실상 수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동격으로 놓이는 것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영상통화를 통해서 수어로 대화한다. 문자로, 영상통화로, 수어로 각기 다르게 대화하면서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는 청춘남녀의 모습을 변화를 조금씩 주면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조한 연출 덕에 두 사람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또 대화가 중요했던 이유는 다루고 있는 소재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다고 볼 수 있는 점은 청각장애에 대해 무작정 연민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동시에 소모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극 중 일부 인물들에게 중요한 건 수어다. 그렇다면 수어에게 의미를 강화하는 연출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수어라고 대화가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기에도 충분하다. 윗문단에도 썼듯 이 영화의 수많은 대화들에게 수어가 모자랄 것이 없기 때문. 오히려 수어 때문에 두 사람의 소통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수어의 중요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 연출을 뒷받침하듯 용준이의 입에서 여러 대사가 나오는데, 감독이 처음부터 이 측면을 고려하고 각본을 썼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대화를 통해 사랑을 표현한다는 방식은 1차원적으로 사용되는 걸 넘어 점층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인물관계는 크게 두 가족으로 나뉜다. 용준 가족과 여름 가족이다. 용준 가족은 여름 가족과 다르다. 서로 소통하는 데 있어 수어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말과 말로 대화가 이뤄진다. 이 장면이 이뤄지는 방식이 특별하다. 어떻게 보면 그냥 일반적인 가족드라마 같기도 하지만 여러 장면을 겹치면서 이 시퀀스가 들어가야 할 당위성을 만들었다. 이 당위성은 반대측면에서 영화 안의 메시지에 해당하는 장면을 강조하는 효과까지 보여준다. 이 영화의 장르 중 하나가 청춘드라마이기 때문에 이런 연출이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냐에 따라 작품의 개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익숙하다면 익숙하지만 나름 탄탄하게 이 장면을 보여줘 묵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용준, 여름 그리고 나머지
이 영화의 단점이 크게 있지는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굳이 뽑자면 캐릭터성이다. 용준이와 여름이의 캐릭터는 훌륭하다. 그냥 달달하기만 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아니다. 사랑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체화하면서 생동감 있는 인물이 탄생했다. 문제라고 느낀 건 가을이와 용준이의 친구 재진이다. 가을이는 사실상 주연으로서 이 영화의 굴곡을 담당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인물은 그거만 담당한다. 당연히 가을이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단지 수영만 좋아하는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김민주 배우가 이 인물을 체화한 것과는 정반대로 각본에서 이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 인물이 말하는 대사들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사실상 본인이 원인인 것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친구 재진은 플롯을 위해 기능적으로 사용된 감이 있다. 이 인물의 행보가 유쾌해서 그렇지 어떤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헌신적인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오토바이와 관련된 장면에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부분이 영화에서 생략된 것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랑스러운 청춘드라마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은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점이다. 청각장애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연민에 빠지지도 않았고, 이야기의 달달함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본문에 적지 않았지만 나름 흥미진진하고 트렌디하게 연출한 흔적도 보인다. 소리가 없는데 어떻게 화면에 집중시키지?라는 질문을 짧고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리듬감을 살리기도 했다. 이런 장점에 힘입어 오랜만에 좋은 로맨스/코미디물이 등장했다. 야심 가득한 배우 홍경의 섬세한 감정연기가, 배수지 배우를 연상케하는 사랑스러움의 노윤서 배우가 본인의 매력을 오롯이 뽐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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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3주차 개봉예정작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 6월 3주차 개봉예정작이 도착했습니다!🌈“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 <퀴어>가 개봉했습니다.
우리들의 ‘제임스본드’였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데요🥹
특히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서
1950년대의 분위기를 생생히 살렸다고 합니다.
감각적인 영상은 물론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긴 작품으로
많은 씨네필들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여름을 날려버릴 서늘한 레전드
좀비 영화가 다시 돌아오는데요
바로 <28년 후>입니다! 조디 코머,애런 존슨, 랄프 파인즈, 잭 오코넬까지
엄청난 캐스팅으로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대니 보일 감독이라니
저도 빨리 보고 싶네요,,, 🤤
이 작품들 외에도 아일랜드 코미디,애니메이션, 한국의 독립영화까지
개봉예정작 중 과연 여러분의 PICK🔥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네요!👀
🎬 6월 3주차 PICK!►<엘리오>
►<잔챙이>
►<니캡>
►<28년 후>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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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적 시간의 재구성
1.
<인셉션>(2010)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세계 속 시간을 재정의한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의 도구인 시간을 스크린 위로 불러내서, 영상 언어로서의 시간을 구축한다. 각각의 꿈속에선 단계별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이 편집 기법을 통해 시각화된다. <미행>(1998), <메멘토>(2000)에서 시작한 ‘플롯 게임’을 지탱하는 내러티브적 시간의 혼재된 배열이 <인셉션>에서는 다른 형태의 지위를 획득한 셈이다. 대놓고 시간 흐름의 상대성을 논하는 <인터스텔라>(2014)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셉션>의 변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 시간이라는 관념을 향한 놀란의 집착이 후속작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덩케르크>(2017)의 시간은 <메멘토>와도, <인셉션>과도 다르다. 이 영화는 잔교에서의 일주일, 민간 어선에서의 하루, 전투기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서로 완벽하게 어긋나는 세 시공간대를 과감하게 교차한다. 그간 놀란이 구상해 온 비선형적 플롯 구조 가운데 <덩케르크>만큼이나 비정형적인 사례는 없다.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가한 <메멘토>의 플롯조차도 컬러의 역순행과 흑백의 순행이 섞이는 최소한의 규칙을 전제로 하지만, <덩케르크>는 플롯을 연결하는 관습적인 규칙마저도 최대한 느슨하게 구축한다. 더 나아가 <덩케르크>의 시간은 <인셉션>처럼 시각화된 물리량 변환이 아닌 다른 형태로 정의되길 바라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물리적 길이가 다른 세 시간대를 교차하는데, 교차된 장면들 총합의 길이가 장편 영화 포맷의 러닝타임에 부합해야 하므로, 잔교의 일주일보다 민간 어선의 하루가, 어선의 하루보다 전투기의 한 시간이 영화상에 더 많이 노출되도록 편집될 수밖에 없다. 즉, 시간대 구간이 짧을수록 각 쇼트마다 더 많은 지속 시간을 할당받는다. 다시 말해 상대적 길이에 따라 재배치된 시간이 필름에 새겨진다. <덩케르크>는 수용자의 관습적인 지각 체계가 작동하기 힘든 영화이다. 관객은 마침내 편집을 통해 재구성한 비선형적 시간 개념을 인식한다. 몽타주로 피어나는 도상적인 운동감과 이미지 간의 리듬을 유도하는 새로운 시간적 개념 또한 동시에 정의된다.
<덩케르크>에서 정의된 영화적 시간은 그간 펼쳐왔던 놀란의 시간 게임 중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테넷>(2020)이 공개되기 전까지 말이다. <테넷>의 시간 여행은 다른 영화에서 표현됐던 시간 이동에 관한 무의미한 기술적 반복이 아니다. <백 투 더 퓨처>(1985) 등이 불연속적 시간 이동을 서사적으로 활용한다면, <테넷>은 시간의 역전이 형상화되는 과정 자체를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 영화에는 <닥터 스트레인지>(2016) 등에 쓰인 단순한 되감기 기법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놀란은 역방향 촬영과 더불어 배우들을 거꾸로 연기하도록 디렉팅했다. <메멘토>에선 되감기 기술을 활용했던 놀란은 이번에는 촬영된 영상을 되감을 뿐 아니라, 피사체(주로 인물)가 직접 거꾸로 행동해서 시간의 역행을 재현하는 장면을 많이 동원한다. <덩케르크>에서 재정의된 시간처럼 <테넷>도 관습적으로 감각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시공간을 제시한다. 시간 순행과 역행이 공존하는 세상 말이다. 영화적 시간을 재정의하려는 많은 작품이 있지만, 감각 불가능한 시간의 역전 관계를 시각화하는 <테넷>의 실험만큼이나 생경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놀란 본인이 단편 <두들버그>(1997)에서 각기 다른 시간 선후 관계에 놓인 세 명의 남자(the man)를 동일한 공간에 중첩해서 표현한 점은 <테넷>의 전조로 볼 수 있지만, <테넷>은 분명 영화적 시간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있어 기존 영화들과 다른 양상을 띤다.
'테넷' 촬영 현장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주)
2.
문제는 놀란 영화에서 포착되는 시간의 변주나 재정의가 목표하는 지점이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영화적 시간을 재구성해온 놀란의 세계는 매번 부산스럽게 규모를 늘려가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 세계의 매혹적인 표층을 걷어내면, 근간에서 발견되는 건 지적 유희를 향한 감독의 개인적인 욕망뿐이다. 이토록 편집증적인 면모로 시간 재구성에 관한 영화를 생산하는 연출자가 누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놀란이 기획한 영화적 시간의 특징적 표지를 읽어내는 순간에 촉발되는 매력 자체는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영화가 머금은 지적 유희를 탐닉하려는 수용자의 몸부림이야말로 놀란 영화가 가치를 획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놀란의 영화가 형식을 통한 영상적 구현의 극한을 추구하는 사례라면, 동시대 감독들 가운데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몇몇 영화들은 놀란의 다소 피상적인 결과물들이 가닿을 수 없는 깊이에 도달한다. <보이후드>(2014)는 기술 자본을 등에 업고 욕망을 구현하는 놀란의 영화에서 절대 성취될 수 없는 결과를 제시한다. 링클레이터는 이 영화를 12년 동안 연출했다. <보이후드>의 인물들이 실제로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은 분장이나 특수효과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삶의 순리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사실 태생적으로 영화는 편집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두기도 하고 확장하고,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매체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링클레이터의 기획은 현실과 영화의 시간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삶의 재현 수단으로써 영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비포 삼부작(<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 역시 주연 배우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노화 과정이 그대로 반영된 시간성이 필름에 각인된 사례다. 링클레이터의 영화적 시간은 곧 삶과 예술의 관계에 관한 작가의 견해처럼 보인다.
영화적 시간을 사유하는 또 다른 사례는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링클레이터의 영화가 현실과 영화 사이의 시간성을 탐구하고 있다면, 펫졸드의 <트랜짓>(2018)은 과거와 현재를 중첩하는 기묘한 설정을 통해 특정 시기에 구속된 시간 논리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한다. 펫졸드는 그의 작품에서 주로 역사의 흔적을 응시한다. <트랜짓>은 시공간성의 해체가 현대 사회에 산재한 이슈(난민 문제 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 사유하는 작업이다. 펫졸드의 사유는 시간의 재구성을 넘어, 시공간성이 반영된 역사에 관한 논점을 제공해 준다. 물론 <덩케르크>의 시간은 전쟁 현장에서 생존하려는 자들의 모습을 관객이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공간성의 무화를 유도하는 <트랜짓>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테넷>에서의 과시적 유희는 그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인셉션>은 <트랜짓>에 비해 시공간의 다층적인 관계가 매력적으로 구축된 작품이지만, 그 형식적인 틀이 <트랜짓>의 사례처럼 사회 문제나 현실 요소와 소통할 기회를 마련해 주지는 않는다.
3.
한편 형식적인 관점에서 왕가위의 시간과 놀란의 시간을 비교해보는 시도는 흥미로운 논점을 생산할 수 있다. 왕가위의 영화는 시공간을 필름에 붙잡아두려고 한다. 왕가위는 <중경상림>(1994), <타락천사>(1995) 등에서 스텝프린팅 기법을 적절히 응용하여 형식의 층위에서 그 점을 강조한다. 왕가위는 흘러간 시간과 그 흔적의 공허함, 질감 등을 매력적으로 시각화하는 데에도 탁월한 센스를 보인다. 왕가위의 영화에는 주로 어긋나는 관계와 실패하는 사랑의 순간들, 공간을 맴돌거나 홀연히 떠나는 인물들, 기억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왕가위가 주로 천착하는 소재들은 형식과 긴밀히 맞물려서 영화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다. 왕가위의 영화는 형식을 통해 작가적인 관점을 구현하려는 좋은 사례처럼 보이지만, 놀란의 영화에서는 그 연결고리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왕가위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표출하지만, 놀란은 시간을 통해 영화의 구조를 매혹적으로 만드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닌가.
다른 영화들도 유의미한 쟁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샘 멘데스와 로저 디킨스는 <1917>(2019)의 의도된 롱테이크 촬영을 통해 영화적 시간을 현실로 전이시켜 관객에게 생생한 몰입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1917>의 기술적 성취만으로 서사 화법의 지위를 대체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는 놀란의 영화가 갖는 한계점과 유사하게, 채택된 기술의 당위성에 관한 논의를 만들어낸다. 되감기의 변주 등을 동원한 <테넷>의 시간 역행 묘사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형식적 산물이지만, 그 목적성을 따지기 시작할 때 영화는 급격히 동력을 잃는다. 서사적 측면에서 되감기 기법을 영리하게 활용한 이창동의 <박하사탕>(1999)은 <테넷>이 놓친 요소들을 알뜰하게 챙기면서 작품의 유기성을 강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이와 다르게 <테넷>에서는 작품 내적 요소 간의 호응보다는 기술의 발달을 통해 형상화한 감독 자신의 가공된 욕망과 자의식만이 느껴진다.
4.
각각의 영화에서 다르게 표현되는 영화적 시간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카메라로 시공간을 담아내는 영화예술의 태생적 근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분석이다. 영화적 시간을 재구성하는 놀란의 작품들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텍스트로 기능한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는 명확한 한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인셉션>을 기점으로 구체화된 그의 욕망은 <덩케르크>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점을 만들어냈지만, <테넷>에서는 기존의 매력마저 잃어버린 듯 방황하는 면모를 드러냈다. <덩케르크>의 비선형적 시간 개념은 형식을 조작해서 관객의 지각 체계에 균열을 가한 뒤, 역사의 흔적과 영화와 현실을 매개하여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담론을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테넷>은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전제한 채 다시 한번 조작된 시간을 들이밀지만, 어쩐지 표층에만 머무른 채 심도 있는 담론의 장을 제공하진 않는다.
놀란을 향한 상당수의 지적은 생각보다 가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가 극복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놀란은 현대 영화 산업의 첨단에서 독특한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거칠게 말하면 포스트-스필버그처럼 보이는 보기 드문 유형의 창작자이다. 그에겐 16mm 필름 대신 아이맥스 필름이 있고, 열악한 로케이션 현장 대신 특별 제작된 회전 세트나 폭발해도 상관없는 비행기가 있다. 워너브라더스의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을 토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내는 자본주의적 연출가 놀란에겐 고삐 풀린 창작욕의 구현과 대중성 기반의 안정적 수익 구조의 창출이 모두 요구된다. 놀란이 영화 산업의 자본 논리에 종속된 이상, 자의식 과잉과 상업성 확보 사이에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영리한 줄타기를 선보여야 한다. <덩케르크>는 장르적 서사 코드를 마냥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메멘토> 이후 정체된 듯 보였던 그의 작가적 역량을 재입증한 사례였지만, <테넷>의 실험이 만들어낸 산물은 영화사와 감독, 대중과 평단 사이의 다층적인 이해관계에 반영된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사례로 보인다. 놀란이 재구성하는 영화적 시간은 과연 <테넷> 이후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그가 시간 실험을 지속할지 집착하던 소재에서 손을 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천재 감독의 다음 연출작을 기다리는 일이다.
'인셉션' 촬영 현장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주)
* 본 콘텐츠는 씨네리와인드에 게재 후 씨네랩에 업로드된 글입니다.* 브런치 드플레 님의 자료를 받아 작성하였으며,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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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 소개서] '팀 버튼'의 캐릭터 소개서
- “어떤 영화를 사랑하게 하는 데에는 스토리, 대사, 연출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그러나 그 중에서도 빼먹을 수 없는 것은 단연 캐릭터이다. 특히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는 작품을 완전히 집어삼키기도 한다.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가 만난다면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그 무엇보다 빛난다. 제대로 설정되기만 한다면,4개의 눈을 가지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 괴물들도 충분한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영원히 사랑받는다.[캐릭터 소개서]에서는 영화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강한 애정을 담아 소개한다.뽀글거리는 머리와 아이 같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가방에서 오래된 갈색 노트를 꺼낸다. 노트를 펼치자 눈알 없는 해골들, 입에서 벌레를 내뿜는 유령과 같이 생전 처음보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남들이라면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노트를 얼른 덮어버리려고 하겠지만, 남자는 노트 속 그것들을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괴기스러운 캐릭터들을 창조한 남자는 누구일까?그는 바로 할리우드의 대표 괴짜 감독 ‘팀 버튼’이다.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팀 버튼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배제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정말 미친 듯이 아름다운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팀 버튼의 노트를 펴고 그의 미(美)친 캐릭터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자.
‘첫 번째 캐릭터’<가위손/ 에드워드 시저헨드>팀 버튼 감독의 노트를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한 남자의 그림이다. 사람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초췌한 표정.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시저헨즈’, 가위손이다.- 영화 : 가위손 (1991)
- 감독 : 팀 버튼
- 출연진 : 조니 뎁, 위고나 라이더, 다이앤 위스트, 안소니 마이클 홀가위손이라 불리는 그는 인간이 아니고, 창조된 기계였다. 외로운 발명가였던 ‘빈센트’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심장을 가진 기계인 에드워드 즉, 가위손을 창조한다.그러나 빈센트는 에드워드에게 인간과 같은 손을 만들어주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결국,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위손 때문에 빈센트와 함께 살던 성에서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그런 그를 화장품 판매원 ‘펙’이 만나게 되고, 그를 마을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된다. 마을로 내려온 에드워드는 펙의 딸, ‘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에드워드는 마을에서 정원을 가꾸고 이발을 해주며 점차 적응하게 된다.그러나 킴의 남자친구 짐이 금고털이에 에드워드를 이용하려 하고, 마을 사람들이 차 사고의 범인으로 에드워드를 의심하는가 하는 등 에드워드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짐이 킴을 찾아와 폭행을 하자 결국, 에드워드는 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위손으로 짐을 살해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에드워드는 결국 쓸쓸히 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사랑했던 킴의 모습을 얼음에 조각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나게 된다.영화 속 에드워드는 감독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기라도 하듯 기괴한 비주얼을 하고 있다. 새하얀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하며, 손에는 길고 날카로운 가위가 달려있다. 날카로운 가위를 가졌지만 병약하고 소심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관객들로 하여금, 에드워드에 대해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성에 사는 미스터리하고도 외톨이 같은 존재,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진 캐릭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동화 <미녀와 야수>일 것이다. 그러나 두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성을 가진다. 먼저 미녀와 야수에서의 야수는 처음에는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미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시련을 이겨내면서, 점점 따뜻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고 미녀와 결혼하게 되는 행복한 결말까지 맞이한다.반면 가위손 속 에드워드는 순수함과 기대에서 시작해, 시련을 겪었으나 야수와 다르게 결국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와 초월이라는 정서로 끝나게 된다. 에드워드는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겉모습과는 정반대로 그는 마을의 누구보다도, 아니 그 어떤 누군가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에드워드가 가졌던 기대와 희망은 결말을 더욱 아프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동화와 다른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 것이다.팀 버튼의 영원한 페르소나 ‘조니 뎁’이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 바로 영화 가위손이다. 록 가수 출신이었던 조니 뎁은 당시에 영화를 몇 편 찍지 않은 신인 중에 신인이었다. 그러나 ‘게리 올드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크루즈’ 등 당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그는 가위손 역할로 낙점받았다. 팀 버튼을 빠져들게 한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의 눈빛이 아마 그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광대나 피부 등 조니 뎁만의 특징은 많지만, 특히 그의 눈빛은 그 누구와도 다르다. 체념과 희망, 공허함과 가득함을 동시에 담은 눈빛은 가위손하면 그 어떤 배우도 생각나지 않게 하는 무언가이다.가위손은 팀 버튼 감독이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림 속 남자는 길쭉한 체형에 날카로운 날들이 손에 달려있었다.
어린 시절 외톨이었던 팀 버튼 감독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난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날 그냥 혼자 두길 바라는 욕망 같은 것이 있었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알지 못한다."감독은 에드워드에게 날카로운 날을 달아주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타인과 멀리 떨어지면서도, 그 타인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에드워드에게서 겹쳐 보인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상실을 겪는다. 아버지 같던 빈센트를 잃는 데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킴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잃게 된다.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해 판단하고, 자신의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는데 너무나 익숙한 우리.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영화관을 나가면 우리는 금세 감각기관이 판단하는 것을 제외한 것들은 외면할 것이다. 가위에 스쳐 조그만 생채기가 날까 한걸음 떨어지기 이전에, 나의 한걸음이 누군가에게 느껴질 수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두 번째 캐릭터’<잭 스켈링턴>다음으로 노트의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허한 구멍만 있고,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이것. 하얀 뼈와 검정 줄무늬 정장은 마치 한몸인 것처럼 붙어있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잭 스켈링턴’이다.- 영화 :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1993)
- 감독 : 헨리 셀릭
- 원안: 팀 버튼
- 출연진 : 크리스 서랜던(노래: 대니 엘프먼), 캐서린 오하라, 켄 페이지, 패트릭 스튜어트잭 스켈링턴은 할로윈 마을에 사는 인기스타이다. 그러나 그는 매번 같은 할로윈 준비를 하면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방황을 하던 그는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에 가게 된다. 그는 크리스마스 마을을 보며 사라졌던 열정을 되찾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게 된다. 잭은 자신이 산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락’, ‘쇼크’, ‘배럴’ 세 악동에게 원래의 산타를 조심히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악동들은 악명 높은 악당, ‘우기 부기’에게 말하지 말고 정중히 모시라는 잭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산타를 우기 부기에 넘기게 된다. 잭을 사랑하는 ‘샐리’는 크리스마스에 완전히 빠져 이성을 잃은 그을 막기 위해 안개를 만들면서까지 방해하지만, 잭은 뼈돌프(?) 애완견 제로의 도움으로 무사히 출발한다.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크리스마스를 상상한 잭의 선물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인형 대신 괴물이, 강아지 대신 구렁이가 들어있는 등 그는 크리스마스를 망쳐버렸다. 그 와중에 샐리는 산타를 구출하려다 오히려 우기 부기에게 잡히고 만다. 잭 역시, 잭의 행동을 크리스마스 테러로 느낀 사람들에 의해 대공포 공격을 당하고 격추당하게 된다. 잭은 떨어진 망가져버린 자신을 보며, 실수를 깨닫고 호박의 왕인 자신의 원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잭은 마을로 돌아가 우기 부기와의 치열한 결투를 통해 샐리와 산타를 구출한다. 잭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산타는 크리스마스를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날로 되돌린다. 산타는 할로윈 마을에 눈을 내려주고, 잭은 샐리와 함께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해골의 왕이라는 별칭처럼 잭 스켈링턴은 할로윈 마을 내 사교적이고 인기 많은 리더이다. 할로윈의 준비와 결정을 잭에게 검토받을 정도이다. 그렇게 잭과 작중에서 표면적인 갈등을 보이는 인물은 사실상 우기부기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오히려 완벽한 삶 때문일까? 잭은 내면의 공허함을 겪고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공허함을 이겨내기 위해 충동적이지만, 추진력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잭의 크리스마스 계획은 결국 실패하지만, 잭은 거기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 자신의 역할인 할로윈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 즉, 크리스마스를 만드는 잭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잭을 성찰하게 하고, 성장시킨 것이다. 잭은 자신이 망친 크리스마스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로 잡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잭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이상적이고 능력 있는 리더 캐릭터이다. 특히, 모난 점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해당 영화 전후의 팀 버튼의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캐릭터성이라고 할 수 있다.즉흥적이지만, 훌륭히 조직을 이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를 떠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잭은 가족과 관련된 내면의 아픔을 갖고 있으며 특정 순간마다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웡카와는 다르다. 잭의 구구절절한 과거 이야기나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영화에서 크게 다루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적극적인 캐릭터의 매력만이 훌륭하게 보여준다. 작중에서 관객은 잭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데, 잭의 기다란 팔다리가 만들어가는 춤과 쾌활하고 능동적 성격은 우리에게 한편의 즐거운 뮤지컬을 보는듯한 느낌을 선사한다.잭의 비주얼로 돌아가 더 알아보자면 먼저 하얀 해골 모양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둥글고 큰 머리에는 코가 없고,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입은 길고 가로로 넓게 벌어져 있으며, 선처럼 가늘게 그어진 이빨이 보인다. 마치 이모티콘처럼 미니멀한 잭의 디자인은 그의 표정이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보여지도록 한다. 이 때문에 잭은 무서운 존재와 친근한 존재를 넘나들게 된다. 할로윈 마을의 인물들이 가진 작은 키와 대비되는 잭의 큰 키는 잭을 돋보이게 하며 그를 자연스럽게 리더로 여겨지게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그의 가늘고 긴 팔다리가 만든 몸짓 하나하나는 동작을 경쾌하게 보이게 하며, 그를 우아하고 고딕적으로 느껴지게 한다.해당 작품은 팀 버튼이 원안을 제공했을 뿐, 감독까지 맡지는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격이나 비주얼 등 인물의 캐릭터성을 만드는 데에는 팀 버튼의 아이디어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세심한 캐릭터 설정이 특징인 팀 버튼의 캐릭터답게, 잭이 고민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고 진정한 가치를 찾는 모습도 적절히 등장한다. 당신이 뛰어난 미장센에 주제의식이 숨겨지듯이 담긴 영화가 보고 싶다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추천한다.
‘세 번째 캐릭터’
<빅터 프랑켄슈타인>
노트의 왼쪽 아래에는 한 소년이 그려져 있다. 커다란 눈과 언밸런스한 체형은 해당 인물 역시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앞서 본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잭과의 파격적인 비주얼과는 다르게, 해당 캐릭터는 비교적 깔끔하고 얌전해 보이기도 한다. 소년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지금부터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보자.- 영화: 프랑켄위니 (2012)
- 감독: 팀 버튼
- 출연진: 캐서린 오하라, 마틴 쇼트, 마틴 란도우, 찰리 타핸‘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내성적인 소년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는 애완견 ‘스파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파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엄청난 슬픔에 잠긴 빅터는 과학의 힘으로 스파키를 살려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빅터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과 그의 재능으로 번개 실험을 하게 되고 스파키를 되살린다. 그러나 스파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빅터의 친구들, 이웃들이 알게 된다. 다른 아이들도 빅터의 실험을 흉내 내면서 다양한 동물들이 괴물처럼 변하게 되자 결국, 마을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실험이 가져온 결과에 빅터는 책임을 지고 스파키와 함께 마을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역시 실험으로 탄생한 고양이와 박쥐의 충격적인 결합체, ‘미스터 위스커스’는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고 빅터의 소꿉친구, ‘엘사 반 헬싱’과 스파키의 여자친구, ‘페르사포네’를 풍차로 납치한다. 빅터와 스파키는 엘사와 페스사포네를 구하는 데 성공하지만 빅터는 탈출에 실패한다. 빅터를 구하고자 스파키는 ‘미스터 위스커스’와 다시 한번 대결을 펼치게 된다. 스파키는 대결에서 승리하지만, 풍차에 깔려 다시 한번 죽는다. 그러나 빅터가, 다시 한번 스파키를 살리고 빅터와 스파키가 다시 재회하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프랑켄위니>의 원작은 팀 버튼이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1984년 만든 동명의 실사 단편 영화이다. 1984년 단편 영화 <프랑켄위니>는 장편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애완견 스파키를 잃은 빅터가 번개의 힘을 통해, 스파키를 살린다는 설정은 동일하다. 그러나 박쥐 고양이가 아닌 이웃들이 스파키를 괴물로 오해하며 혼란과 갈등이 생긴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팀 버튼 감독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애완견과 이별한 아픔과, 흑백의 화면처럼 고전 공포 영화 시대의 느낌을 결합해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1930년대 고전 공포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해당 작품을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기획했으나 좋지 못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팀 버튼은 세월이 지나 작품의 스토리를 확장하고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더해 2012년,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다.팀 버튼의 특징인 자전적인 이야기 구성은 해당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빅터에게는 과학이, 팀 버튼에게는 그림이라는 평생을 바칠만한 취미가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자신만을 전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닌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강아지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아마 주인만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특성 때문은 아닐까 싶다. 밖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일이 있었든지, 나라는 이유로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존재를 찾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작품을 보다 보면, 팀 버튼의 B급 유머를 통한 클리셰 비틀기가 적절히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작게 본다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대결구도는 우리에게 흔한 구도이다. 물론 <에이리언 시리즈>, <아바타 시리즈>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의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인간을 욕심 많고 악한 존재로 묘사할 것인지, 아니면 재앙의 피해자로 묘사할 것인지의 차이는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그러나 감독은 작품의 빅터와 미스터 위스커스의 대결에서 빅터를 먼저 리타이어시키고 스파키와 미스터 위스커스를 대립시키면서 인간이 아닌 생명체끼리의 대결을 성사시킨다. 이러한 구도는 클리셰의 전환을 보여줬으며, 특히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 강아지 vs 고양이의 대결이라는 점 역시 웃음을 유발한다. 작품의 결말 역시 진정한 죽음이니 뭐니 하면서, 스파키를 떠나보내며 작품을 끝내는 게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로 살린다는 점 역시 팀 버튼답다는 느낌을 준다.
작중의 빅터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감독의 작품의 많은 인물이 보여주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아웃사이더의 성격을 전부 가지고 있다. 죽은 동물을 번개로 되살린다는 점 외에는,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비교적 현실성 있는 설정을 가진 만큼 빅터에 공감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랑하기 때문에 되살린다’라는 간단한 논리구조는 원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와는 다른 숭고한 목적이다. 팀 버튼 감독의 많은 캐릭터는 대부분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앞서 본 ‘에드워드 시저헨드’와 ‘잭 스켈링턴’도 마찬가지이다. 빅터 역시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며, 스파키에 대한 강한 연대를 보여준다. 특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에드워드 시저헨드와 잭 스켈링턴, 그리고 뒤에 나올 비틀쥬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팀 버튼의 무수한 캐틱터들 중 그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캐릭터는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가족과 친구, 마을 사람들과도 교류가 적은 편이지만, 오직 한 존재 스파키와의 우정과강한 연대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끈다. 빅터는 스파키에 대한 강한 사랑과 애정으로 다른 것들을 애써 외면한다. 눈이 멀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 본 적이 있던가. 순수함이 보여주는 투명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프랑켄위니>를 통해 한번 느껴보자.
‘네 번째 캐릭터’
<비틀쥬스>어느덧 노트의 마지막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면 두 인물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세월이 지나 옷이 달라지고 주름만 생겼지, 똑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까맣게 칠해져있는 눈두덩이와 산발이 된 머리. 숨겨지지 않은 가벼움과 광기는 결코 감출 수가 없다. 마지막 그림의 캐릭터는 ‘비틀쥬스’이다.- 영화 : 비틀쥬스 (1988) / 비틀쥬스 비틀쥬스 (2024)
- 감독 : 팀 버튼
- 출연진 : [공동] 마이클 키튼, 위고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단독] 비틀쥬스: 알렉 볼드윈, 지나 데이비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제나 오르테가, 저스틴 서로‘비틀쥬스’는 36년의 세월을 거쳐, 두 영화나 출연한 귀한 몸이다.먼저 1988년에 개봉한 <비틀쥬스>이다. 영화는 ‘아담’과 ‘바바라 메이틀랜드’ 부부가 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결국 알게 되고 유령들의 법에 따라, 자신들의 집에 머무는 유령이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집에 뉴욕 출신의 디츠 가족이 이사 오게 되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집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자신들의 집을 망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아담과 바바라는 자신들의 집을 지키기 위해 디츠 가족을 쫓아내려 하지만, 그들은 겁을 주는데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디츠 가족도 그를 보지 못한다.결국, 메이틀랜드 부부는 최후의 방법으로 바이오 엑소시스트 전문가(인간 퇴치사)인 ‘비틀쥬스’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비틀쥬스는 난폭하고 미치광이 같은 성격의 유령으로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비틀쥬스는 디츠 가족 중에 유일하게 유령을 볼 수 있는 딸 ‘리디아’와 결혼해 세상으로 나가려는 다른 목적이 있던 유령이었다. 결국 비틀쥬스가 디츠 가족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자, 메이틀랜드 부부와 리디아는 그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게 된다. 결국, 리디아와 메이틀랜드 부부는 비틀쥬스를 물리친다. 메이틀랜드 부부는 자신들의 집에서 평화롭게 살게 되며, 디츠 가족도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게 된다.다음은 2024년 개봉한 <비틀쥬스 비틀쥬스>이다. 해당 작품은 어머니가 된 ‘리디아’를 중심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리디아는 여행가였던 남편을 잃고, 1편에도 나왔던 새어머니 ‘딜리아’와 딸 ‘아스트리드’와 살고 있다. 전작에 등장한 메이틀랜드 부부는 떠났다는 설정이다. 그러던 중 새 사진을 찍으러 간 리디아의 아빠이자 딜리아의 남편인 찰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족들은 찰스의 장례식을 위해 그들이 살던 윈터 리버로 돌아간다. 그렇게 찰스의 장례식을 마치고, 리디아와 남자친구 로리의 갑작스러운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가족들은 윈터리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혼자 자전거를 타던 아스트리드는 나무에 부딪히고, 나무 위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과 시간을 보내던 와중 소년은 자신이 유령이며, 아스트리드에게 아빠를 만날 수 있으니 함께 저승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소년을 믿는 아스트리드는 저승에 가지만, 사실 그 소년은 연쇄살인마 출신 유령으로 아스트리드를 제물로 바치고 자신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을 알게 된 리디아는 딸을 위해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 비틀쥬스의 도움으로 리디아는 아스트리드를 구하지만 이번에도 비틀쥬스는 리디아에게 결혼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기지를 발휘해 계약이 무효임을 증명하고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비틀쥬스가 저승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마이클 키튼’의 미친 연기로 팀 버튼의 이름을 알리는데도 일조한 비틀쥬스는 정말 광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1편과 달리 2편에서는 비틀쥬스의 캐릭터성이 악당에서 조력자로 전환되긴 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아기 비틀쥬스 출산 공격, 내장 내뿜기, 괴물 선물 등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괴롭히는 비틀쥬스의 스킬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다. 비틀쥬스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성격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인간퇴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비틀쥬스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나 비틀쥬스의 시시콜콜한 과거 이야기는 1편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36년이 지나, 2편이 되어서야 ‘델로레스’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그의 과거 이야기가 짧게나마 나온다. 비틀쥬스는 수백년 전,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시기, 델로라스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하기로 했었다.그러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던 델로레스가 자신을 포도주로 독살하려는 것을 알게 되자, 델로레스의 머리를 토막내어 함께 저승에 간다. 하지만 2편에서 부활환 델로레스는 어쩐 일인가 비틀쥬스를 아직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를 끊임없이 스토킹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틀쥬스에게 숨겨진 마초적인 매력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웠을까. 비틀쥬스는 델로레스에게 도망을 다니며 여전히 리디아에게만 결혼을 요구한다. 이처럼 마초적이면서도 순애보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비틀쥬스의 이중적인 캐릭터성은 “그게 비틀쥬스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관객을 수긍하게 한다. 비틀쥬스는 한번 할 때는 제대로 하는 쿨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오래전, 자신을 뒤통수친 리디아가 다시 한번 자신을 소환하자 과거를 잊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연쇄살인마 유령을 정의구현하는데 물심양면 돕는다. 물론 그의 도움과 상관없이 이번에도 얼얼한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말이다.저승에서 보내는 수백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유연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다는것도 비틀쥬스가 굉장히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편에서 그는 변변치 않아보이던 인간퇴치사 즉,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다. 그러나 36년의 세월이 지나자, 밥을 포함해 많은 직원을 둔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는 점도 그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비틀쥬스는 야심을 갖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이 교활하다고 말하겠지만, 체계적인 계획으로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도 사실 능력이다. 거의 썩은 듯한 푸석푸석한 피부, 녹색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기괴한 메이크업 그리고 과장된 리액션과 표정까지 비틀쥬스하면 생각나는 비주얼은 이와 같다. 그의 비주얼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막무가내이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작품에 큰 혼란을 유발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비틀쥬스의 다양한 캐릭터성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비틀쥬스>와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사실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 상실과 기억, 그리고 사랑을 담았다는 것이 <비틀쥬스 시리즈>가 공통으로 가진 주제의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가 다소 오글거리고 썩 내키지 않는다면, 비틀쥬스에만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주제와 가치를 오염시키지 않는 선까지만 엇나가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는 비틀쥬스.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지금까지 순수와 공포가 공존하는 팀 버튼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해 알아봤다. 부디 그의 캐릭터들과 함께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세계에 마음껏 빠져들고 싶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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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약속을 기다리며 커가는
-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보았다. 해당 영화를 보면서 여러 방면으로 분산되어 뻗어 나가던 주제가 결국 섬세하게 잘 합쳐졌다고, 이로 인해 이 영화를 모두가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14살의 사춘기 소녀가 느낄 수 있는 고민과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것을 1차적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2차적 목표로는 소녀라는 개인에서 확장하여 1994년이라는 그 시대만이 주는 분위기와 메시지를 전달했다.<벌새>는 ‘은희’라는 아이의 성장에 가장 지독하게도 적합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영화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과 의사선생님, 그리고 영지 선생님까지. 이들은 은희에게 고통과 희망, 그리고 위로라는 감정을 끊임없이 심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에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듯이, 은희를 대하고 교육하려고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떠한 신에서 아픈 은희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모습들은 그들이 은희에게 보여준 악행마저 잊게 한다. 그것을 넘어서, 아이러니하게도 은희의 가정을 마치 이상적이고 평범한 가족처럼 보여지게 하는 따뜻한 연출들은 철저하게 은희의 시선에 맞춰진 것이라 느꼈다.우리 모두는 행복과 슬픔, 즐거움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언제나 교차적으로 느끼지만, 그 것을 애써 부정하려고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부정을 부수고 우리가 그러한 감정마저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은희라는 캐릭터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말을 안 듣는다는 ‘사춘기 중학생이라는 스테레오타입’. 이 스테레오타입을 보면서 우리는 ‘이해가 안된다’, ‘참 속 썩인다’ 따위의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유일하게 따뜻하고 사람다웠던 존재는 그들이 항상 비난하고 제물로 삼은 은희였다. 그리고 은희는 잊혀진 우리 자신이었다.영화를 보면서 감탄한 것은 영화의 뛰어난 현실감과 공감이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들을 보면 대본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현실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은희와 지숙이 평소에 나누는 대사들이나, 우리네 아버지에게서 언젠가는 들어봤을 아버지의 거친 표현들까지. 그 배우들의 호흡과 대사 하나하나들은 나이와, 성별, 시대, 공간마저 완전히 다른 은희라는 인물의 삶에 저를 투영하게 만들었다.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해야 하는 벌새. 그 벌새처럼 은희도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한다. 은희의 목표는 그 누구보다도 높은 하늘도 아니다. 그저 다른 벌새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평범한 높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높이까지도 은희가 날아오르는 것은 녹록치 않다. 안 그래도 작은 날개로 인해 죽을만큼 힘을 내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은희라는 이름의 벌새를 언제나 떨어뜨린다. 은희에게 있어 가장 큰 추락은 영화가 1994년을 시대로 설정한 이유였던 ‘성수대교 붕괴사고’이다. 은희가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을 말했던 존재 영지 선생님을 잃게 되었고, 그 고통과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이와 함께 은희와 영지, 그리고 은희와 시대 사이의 약속은 조각난다.야속하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저 30년전의 은희가 그 조각을 주워담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누구나 겪었을 일이니 무던하게 넘겨라"라는 말. 그 말만큼 잔인한 말은 없다. 알지 못하면, 말 대신 묵묵한 토닥임을 택하는 것이 어쩌면 옳은 길인지도 모른다. 쓰라린 상처에 새살이 채워지게 약을 발라주지는 않더라도, 상처에 먼지와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주는 것이 은화와 수많은 벌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가 조금식 아문다면 벌새들은 분명 다시 한번 날갯짓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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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의 보디가드 2 영화 후기 /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잭슨의 티키타카 / 난무하는 f*** 욕설 / 사방에 튀는 핏방울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킬러의 보디가드 2”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에 쿠키영상이 하나 있고, 엔드크레딧 후에 관객도 깜빡한 쿠키사진이 하나 있습니다.#코믹, #액션, #블록버스터, #라이언레이놀즈, #사무엘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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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가장 강렬한 마블 안티 히어로의 탄생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