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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어서
미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영문과 교수가 된 지윤은 펨부르크 대학 영문과의 학과장이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윤은 인종차별을 뚫고, 우아한 학과장 라이프를 누린 성공한 여성 같아 보이겠지만 펨부르크가 배출한 동양인 최초 여성 학과장은 영문학의 위기를 극복해내야 하는 과제에 맞닥뜨린다.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트렌디해지는데, 펨부르크의 영문학 교수들은 영문학과를 살려보겠다고 방방 뛰어다니는 지윤에게 빅엿을 날려버린다. 게다가 영문학에 대한 인기가 하락하니, 학교의 윗대가리들은 지윤에게 끊임없이 압박을 넣어대는데, 아무래도 우아한 여성 학과장은 물건너 간 것 같다.
1. 꼰대에서 벗어났다고 광고해봤자 여전히 꼰대인
학교라는 집단은 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일정 기간 잠시 머물고 가는 비둘기 같은 존재들이지만 대다수의 교수들은 그 학교에서 최소 정년까지 근무한다. 최소 정년까지라는 말은 교수는 종신 교수로 재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매년 최신의 유행을 흡수하고, 종신 교수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형성된 편견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수들처럼 하나의 전공만을 주구장창 파는 직종의 사람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의 전공에 있어서 전문가가가 되신 분들은 더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일 수는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유연한 사람들이라고는 평가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을 바탕으로 형성된 편견이 젊은 사람들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변화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고려, 여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여전히 교수 집단 내부에서는 유색 인종, 여성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 그저 표면적인 허례허식으로 학생들에게 학교가 한 단계 진보하고 있다고 마케팅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 마케팅의 정점에 서 있는 이가 바로 지윤이었다. 표면적인 학교 개혁의 주인공.
그렇게 지윤은 학교의 최초 여성 학과장이라는 허울좋은 상징을 등에 업었지만 고참 교수들은 그녀에게 협조해 주지 않는다. 그녀의 상사는 인기없는 수업은 폐강시키라고 하지만 그녀는 동료들의 수업을 폐강시킬 수 없어 전도유망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여자 교수와 합동 수업을 제안한다. 하지만 백인 노교수와 흑인 젊은 여강사의 조합은 시너지보다는 역효과를 발생시킨다. 몇 명 있지도 않은 수업을 진행하던 나이든 교수가 은근히 무시했던 교수의 인기를 목격했을 때의 그 허탈한 표정은 지식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정작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을 표현한 듯했다. 또한, 한 교수의 지식적 발전이 그의 의식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던 포인트도 그 백인 남자 교수, 엘리엇이 교양있게 흑인 여자 교수, 야즈를 무시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흑인 여자가 영문학 교수가 되기까지 백인 남자 교수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 남자 교수가 인격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밉상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지윤의 좋은 사람이자 좋은 학과장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무너뜨리는 주요한 사건이 된다.
결국, 지윤은 학교는 꼰대 집단이라는 학생들의 편견을 깨부시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개혁된 학교의 상징으로서 여성 학과장이 될 수 있었지만 개혁된 학교를 표방하기엔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개혁한답시고 모여봤자 꼰대는 자신들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저 꼰대로밖에 남을 수 없음을 지윤의 존재가 증명하고 있었다.
2. 놀랍지 않은, 어쩌면 당연했을 영문학의 위기
영문학은 백인들이 시작한 학문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학문인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리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젠더적 연구 등까지 저변을 확대해 오기는 했지만 과거의 죽은 자들의 역작을 연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학문은 현재성을 띌 수 없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 학문의 발전은 다른 학문들에 비해 유달리 느리게 보이기는 한다. 우선, 완성된 문장보다는 단편적인 짤,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미지적 메타포에 익숙해져 있는 젊은 세대가 보기에 초서나 셰익스피어, 바이런 등의 영문학 시인, 소설가들은 구시대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죽은 사람들의 역작을 평생토록 연구한 교수들과의 근본적으로 소통의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노교수들의 한 우물을 판 전문성이 젊은 세대에게는 휴지조각으로 평가받는다. 그 휴지조각은 결국 강의평가로 표현된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문에 대한 진심, 학문에 대한 전문성이 전문성 따위는 1도 없는 Undergraduate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지 화가 나고, 학생들은 현재성이 없는 학문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거침없이 쏟아낸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의 소통 오류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현 세대와 소통을 거부하는 학문은 환영받을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었다. 필자도 학생으로써 강의평가를 해보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 학생들에게 대학교의 강의는 순수하게 학문을 배워보고자 하는 열망보다는 어떤 수업을 들어야 더 재미있고,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노교수님들의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과 상충될 수 밖에 없다. 필자도 영문학 비스무리한 전공이었기 때문에 꽤 SF소설 수업부터 셰익스피어까지 다양한 수업에 발담가보았지만 현재 가장 핫한 문학적 이슈와 관련해 대해서는 수업받아본 기억은 없다. 아무리 영문학이 꾸준히 발전해왔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트렌드에 익숙한 세대와 트렌드보다는 클래식을 중요시하는 교수들 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영문학, 아니, 인문학 강단의 미래는 밝을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가 없다.
3. 애매하게 착한 사람은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지윤은 학과장으로서는 실패했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상대편의 욕을 먹더라도 정확한 위치를 고수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때가 있다. 지윤에게는 학과장으로 당선된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정했어야 했다. 야즈를 위했다면, 엘리엇에게는 조금은 매정했어야 했고, 빌을 위해서도 더 매정한 모습으로 일관했어야 했다. 그래야 그녀의 왕관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왕관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싶었기 때문에, 군중 심리에 휩싸인 학생들의 외면과 교수진들 모두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쁜 사람보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 욕은 더 먹는 것이다. 그러니, 지윤도 억울할 수밖에. 지윤은 오히려 학과장직에서 내려온 현재가 가장 그녀답다. 그러니 달리 생각한다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자리 때문에 선천적인 성격까지 바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안될 사람이기에 달리 생각한다면, 지윤의 우당탕탕 학과장 도전기는 오히려 그녀의 내재된 선함이 학과장이라는 자리의 압박감 때문에 변화할 만큼 얄팍한 선함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녀는 학과장이라는 자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착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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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 엄마와 딸의 위치, 심경 변화
- 수박의 의미
-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의외의 인물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2024)
부정당하는 것들마저 꿋꿋이 사랑할 용기
개봉일 : 2024.09.0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6분
감독 : 이미랑
출연 :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본문에서 인물의 이름은 극 중에서 사용되는 이름인 그린, 레인, 제희(노인)와 엄마로 표기 (엄마의 이름이 잠시 스쳐 지나가듯 나오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엄마의 이름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고 느껴져 그대로 ‘엄마’로 표기하겠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다른 것 같지만 닮아있는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과 유한한 삶의 끝에 서있는 노인. 네 여성들의 아픔과 사랑을 재료로 찍어낸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다.
영화는 외적으로 폭발하는 지점 없이 주인공인 엄마의 내면에 집중하며 진득하게 나아간다. 외부 사건의 자리를 대신 채운 짧은 침묵과 방문 사이를 들여다보는 눈, 사랑 위로 자라난 아픈 말들엔 엄마의 두려움과 슬픔이 깃들어있다.
<딸에 대하여>의 주인공인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의 딸인 그린은 7년 동안 만난 동성 연인 레인과 동거를 하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수박은 숟가락으로 대충 떠먹으면서도 딸이 먹을 수박은 예쁘게 썰어 준비하는, 딸을 사랑하는 엄마지만 딸이 함께 데려온 동성 연인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엄마는 인생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며 살고 있다. 그녀는 연고 하나 없이 요양원에 방치되어 있는 노인 제희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제희는 한 어린이 제단의 설립자로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희생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제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노인이다. 제단 사람들과 언론인들의 관심이 끊긴지는 한참이고 가정을 이루지 않아 찾아올 자식도 없다. 제희에게 남아있는 건 작은 손가방 하나와 곧 끊길 예정인 제단의 지원금뿐이다.
엄마는 이런 제희가 가엾다. 그리고 제희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 자신과 그린의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 두렵다. 남편, 아이 하나 없이 버려진 노인의 미래가.
그래서 엄마는 딸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반대한다. 딸을 사랑한다면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지만 차분히 앉아 대화를 나누기엔 엄마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극 중에서 엄마는 그린의 엄마, 요양보호사 여사님으로만 그려진다. 그녀의 이름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갈 뿐,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없다. 서서히 나를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불안감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 앞에서 더욱 짙어진다. 영화는 떨리는 중년의 마음을 따라가며 엄마와 딸의 두려움.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것을 재조명한다.
<딸에 대하여>는 동성 연인과 엄마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꼭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늙어감과 외로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모녀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걸 느낄 수 있으니 꼭 성소수자인 딸이 아니어도 20대 이상의 딸이 있는 모녀관계라면 혼자보단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어린 딸과 엄마보다는 어른인 딸과 엄마에게 추천!)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데칼코마니 같은 엄마와 딸
엄마는 딸이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길 바란다.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엄마의 바람대로 그린은 자신의 행복을 찾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린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성소수자를 위해 투쟁한다.
엄마의 눈엔 딸의 사랑과 정의감이 소꿉장난과 오지랖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렇게 모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동성연애에 관계도 없는 다른 강사의 부당 해고 집회에 얼굴을 팔고 다니다니. 엄마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붙잡고 대체 왜 그러냐며 소리친다.
그린은 엄마가 자신에게 부당한 거, 싫은 거는 말하라고 가르쳤다고 답한다. 엄마는 몰랐지만 딸은 엄마의 가르침대로 잘 자랐고 엄마도 여전히 부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는 손발이 묶인 제희와 그것을 방관하는 동료를 향해 소리친다.
“어떻게 저게 남의 일이야. 우리라고 저렇게 안 될 줄 알아?”
부당 해고 사건에 대해 말하던 그린도 엄마와 똑같이 우리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전여전 그 자체인데 엄마는 그걸 모른다.
한숨 쉬어가며 나와 우리를 이해하다.
문밖을 서성이던 엄마, 문안에서 자고 있던 딸. 두 사람의 위치 변화 / 결말 해석요양원 과장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던 엄마는 제희와 함께 요양원에서 쫓겨난다. 엄마는 제희를 찾아 깊은 산속 병동을 방문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엄마보다 더 어린 딸들은 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식구를 받아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희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그린, 레인은 함께 장례식을 진행한다. 엄마는 제희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지독하게 붙잡고 있었던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린이 어르신이나 자신처럼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고.
그런데 엄마는 이제 인정하려고 한다. 그린의 곁에는 레인이 있고 두 사람과 함께 웃고 싸워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딸이 자신의 등 뒤를 지켜줄 수 있을만큼 자랐다는 것을.
그린은 엄마 대신 상주에 이름을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킨다. 그 덕분에 항상 문밖에서 전전긍긍하며 딸의 방을 바라보던 엄마는 이제 방 안에서 편하게 잠에 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횡단보도에서 함께 손을 잡고 지나가는 또 다른 딸들의 앞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엄마는 딸에게 예쁜 수박만 주고 싶다
수박의 의미엄마는 그린이 집에 오기 전, 그린을 위해 커다란 수박을 산다. 엄마는 홀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겹게 수박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수박을 반으로 뚝 잘라 절반은 예쁘게 썰어 그린을 위해 남겨두고 절반은 TV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대신해 홀로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푹푹 파먹다 금세 비어버린 수박처럼 어느덧 엄마의 인생도 탄생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위치에 다다른다. 엄마는 이제 나이 먹는다는 게, 혼자가 된다는 게 두렵다. 그리고 2층 집에 사는 세입자 가족처럼 이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할 딸이 걱정된다.
내 수박은 아무렇게나 팍팍 퍼먹어도 괜찮지만 딸은 예쁘게 썰어진 수박을 먹이고 싶은 게, 내 삶은 모나게 흘러가도 괜찮지만 딸의 인생은 예쁘게 꾸며주고 싶은 게 엄마다. 엄마의 말대로 그린과 레인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결혼, 법적 보호자, 아이를 가진 가정.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엄마는 동성애자의 삶이 이성애자의 삶보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린을 말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엄마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어른이자 믿음을 나누는 연인이다. 그린과 레인은 커다란 수박을 반반 나눠 들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설령 무겁고 쉽지 않은 인생이라 해도 두 사람은 지금처럼 인생의 무게를 나눠들고 함께 웃으며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엔 그린과 레인이 들고 온 수박이 부서지거나 소비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굳이 필요 없어서 해당 장면을 넣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이유 삼아 영화가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지고 갈 인생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덮어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레인
치매 증상이 심해진 제희는 수시로 배변 실수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인지 기저귀를 차는 것은 한사코 거부한다. 엄마는 어르신이 편한 게 제일이라며 귀찮은 빨래와 목욕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요양원 과장과 관계자들은 비품을 너무 많이 쓰고 빨래도 너무 자주 한다며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눈칫밥을 먹던 엄마는 제희에게 억지로 기저귀를 채우는데 제희는 그것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몰래 침대를 벗어나 자신을 찾으러 온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실수까지 한다.
엄마의 2층 집에 세 들어 사는 부부는 여전히 싱크대 위에서 물이 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전에 불렀던 분들 말고 진짜 전문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엄마는 그들의 요청대로 다시 전문가를 부르고 물이 새는 걸 잡으려면 천장을 다 뜯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는 답변을 듣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억지로 채워놓은 기저귀, 임시로 해결해 놓은 누수는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사람의 마음도, 사람과 사이의 문제도 그렇다. 평범하지 않다고, 나와 다르다고 억지로 막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마음도 바뀔 거라고 대충 덮어놓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다.
그린은 몰라도 레인은 이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에 떠밀려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레인이 엄마와의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편한 건 말씀해달라, (그린에게) 우리만 참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하는 거다. 관계에 확신을 갖고 있다.. 레인은 차가운 엄마 앞에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고 갑작스레 등장한 제희를 정성껏 보살피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마 레인이 없었다면 엄마는 더 오래 아니 어쩌면 평생 딸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레인은 미움이 뚝뚝 새어 나오고 있던 모녀 관계를 지붕부터 뜯어 싹 고쳐낸다.
처음엔 당연히 엄마와 딸 그린의 갈등이 중점으로 그려지고 레인의 비중이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레인이 모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고 이야기를 봉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그려져 더 좋았다.
생각보다 더 곱고 어른스러웠던 레인과 빛나는 눈으로 레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하윤경 배우의 모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엄마의 마음속주름 하나까지도 모두 느끼게 해준 오민애 배우와 반질반질하고 예쁘고 단단한 자갈 같은 그린을 보여준 임세미 배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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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추상 속에 담긴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
[DMZ Docs] 추상 속에 담긴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
전시 <하인츠 에미히홀츠 드로잉전 : 기울어진 비전> 리뷰
감독] 하인츠 에미히홀츠
전시소개]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과 공동 주최로 2024년 기획전의 주인공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드로잉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 ‘기울어진 비전’에서는 감독이 창작한 800여 점의 드로잉 작업 가운데, 순서와 서사, 도상 해석을 고려하기 보다는 이미지의 시각적 흑백 대비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 영화와 드로잉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실마리에 근거하여 추려진 수백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출처 :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스포일러 유의
다큐맨터리와 꿈
다큐멘터리와 꿈이 갖는 이미지는 어떨까?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아내는 느낌이라면 우리가 잠잘 때 꾸는 꿈은 개연성도 사실성도 없이 허무맹랑한 경우가 많다. 어찌보면 굉장히 대척점에 있는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다큐멘터리 감독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자신의 꿈에 초점을 맞춘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비현실적인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이 굉장히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이번 기울어진 비전 전시에서 선보이는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메이크업의 기초’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감독이 자신의 ‘꿈’에 기반하여 매달 본인의 무의식을 기록한 드로잉 시리즈를 담아냈다. 하인츠 감독이 꿈에서 본 이미지를 2차원의 평면에 구현하고, 이를 다시 3차원의 전시장에 구조물로 재현해 놓았다.
흑백의 대비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꿈의 요소들은 마치 카툰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문 속 사회비판 요소가 강력하게 담겨진 4컷, 8컷 카툰을 보는 듯했던 이유는 그만큼 꿈 속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이 굉장히 시각적으로 강렬했기 때문이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꿈들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폭발할듯한 에너지가 가득 담긴 그림들이다. 유리창이 깨지는 그림이거나 사람이 어디론가 로켓처럼 발사되는 그림 등 운동감이 상당히 잘 드러나는 이미지들이었다.
그리고 서사 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꿈 속 상황들을 3차원적인 공간의 전시장 속에서 커튼이 흘러내리듯 곡선의 형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2차원의 그림 자체에 굴곡이 생기면서 관객이 어느 각도에서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림의 이미지가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하면서 사람마다 다양한 주관적 해석이 가능할 수 있게끔 기획되어 있어서 그리 크지 않은 전시였지만 꽤나 오랜시간 서성이며 작품들을 보는 맛이 있었다.
공감각을 활용하다
전시 기울어진 비전은 크게 3가지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는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꿈 속 이야기를 담은 ‘메이크업의 기초’, 그리고 자신의 역대 영화 포스터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 마지막은 베를린 ‘언더그라운드’라는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이다. 이중 가장 오랜시간 인상깊게 봤던 것은 바로 베를린 ‘언더그라운드’라는 영화 작품이었다.
영상 작품이어서 가만히 앉아서 봐야하기에 절대적으로 봐야하는 시간이 가장 긴 것도 사실이었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도 가장 집중을 한 공간이기도 했다. 베를린 ‘언더그라운드’는 2004년부터 2021년까지 하인츠 에이미홀츠 감독이 만든 171권의 공책과 스케치북, 2019년 당시 베를린 지하철 9곳, 가상의 향수 브랜드 광고 2개,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길가에 심어진 67개의 나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말 설명만 보면 도대체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의아해할 것이다. 자리에 앉아 설명글을 보면서도 도통 무슨말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니터로 눈을 돌리자마자 정말 홀린듯이 집중을 하게 되었다. 특히 가상의 향수브랜드 광고 2개는 분명히 시각적으로만 정보가 전달되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그 향수의 향을 맡아보려는 행동을 할 정도로 향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뛰어났다. 5분이 넘는 시간동안 탑, 미들, 베이스 노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영상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비슷한 조각상이 같은 방향으로 회전을 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물이 슬로우모션으로 흩뿌려지는 굉장히 단순한 구도의 영상이 반복적으로 보여지는데 정말 향기 하나하나를 현실에서 맡아본 향에 비유하면서 관객이 스스로 그 향을 쫓아가게끔 만들고 있었다.
하인츠 에미히홀츠 드로잉전: 기울어진 비전을 통해 이제까지 다큐멘터리에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을 잠시나마 깰 수 있었던 것 같다. 추상적이면서도 그 세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사실적인, 이 괴리감과 간극을 표현하는 하인츠 에메히홀츠의 작품에 홀렸던 시간이었다.
<전시정보>
장소 : 고양시 예술창장공간 해움
일시 : 2024. 9. 26. (목) ~ 10. 2. (수) 10:00 ~ 18:00
도슨트 : 14시, 16시(약 15-20분 소요 * 9.29~30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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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존재감의 선을 느끼는 방법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간의 심성이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두 가지 학설입니다. 여러분은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것을 더 지지하시나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건한 성악설 지지자였습니다. 인간은 악하고 이기적으로 태어나지만, 사회화를 거쳐 선함을 익힌다고 믿었어요. 그러나 최근에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선은 만들어질 수 없지만, 악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간의 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도, 이 주장들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에게는 선함과 악함이 모두 있다는 거죠. 어느 것이 먼저였든지 간에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악만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악에 비해 선은 너무나 사소하고 희미한 존재감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바로 이럴 때, 선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예리하고 뾰족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겁니다. 그 안에는 그들이 포착한 제각각의 선이 담겨 있거든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4년 12월 11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Summary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빌 펄롱'은 석탄을 팔며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 펄롱'은 숨겨져 있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팀 밀란츠
출연: 킬리언 머피, 아일린 윌시 외
선, 사소하지만 묵직한 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수녀원에 석탄을 납품하러 간 '빌'이 그곳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진실을 마주한 빌이 '방관'과 '행동' 사이에서 고뇌하는 과정이 채우고 있는데요. 영화 내내 깊은 고통, 불안과 불편 속에 있던 '빌'은 끝끝내 악에 저항하는 작은 행동 하나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바로 수녀원에 버려져 학대받던 소녀 '사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빌'이 '사라'를 데리고 나오는 과정에는 아무런 스펙터클이 없습니다. '사라'가 갇힌 곳에 접근하기 위한 잠입도, 악의 축인 수녀원장과의 대립도 없어요. 오히려 수녀원장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그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유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행한 구원은 여느 때와 같이 수녀원의 석탄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에 쪼그리고 있는 소녀를 부축해 나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러닝타임의 90% 이상을 할애한 고뇌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고 허무하지요.
하지만 영화의 길이가 길지 않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약한 것은 아니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구성이 관객에게 선의 형태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거든요. 기나긴 숙고 끝에 내린 사소한 결단 하나, 그것이 바로 선이지요. (마침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98분, 동명의 원작 소설은 쪽수가 132쪽으로 짧습니다. 이마저도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지네요.) 그가 한 행동은 그저 손을 내미는 것뿐이었지만, 우리는 그 안의 묵직한 힘을 느낍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선의를 과장하여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그 힘을 더 강하게 전달합니다.
'빌'의 선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의 삶에 켜켜이 쌓인 또 다른 선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구성을 통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빌'의 과거를 조금씩 보여주는데요. 그의 어린 시절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지만, 그 속에도 분명한 선들이 있었습니다. 상주 고용인의 자식을 받아주고, 가난한 엄마 대신 갖고 싶었던 직소 퍼즐을 선물했던 집주인이 대표적이죠. '빌'이 아무리 고되어도 손에 묻은 재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아이들이 있는 식탁에 앉는 것, 부하 직원에게 노동 그 이상의 값을 지불하는 것, 그리고 '사라'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된 것은 유산처럼 남은 선의 영향입니다.
⊙ ⊙ ⊙
고민에 빠진 '빌'이 아내 '아일린'에게 '사라'의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이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가 선을 베풀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대사에 담겨 있는 듯해요. 우리 인간은 모두 특별한 보편성을 가졌지요. 개개인은 모두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이나, 그 특별함 속에는 부정할 수 없는 보편들도 있습니다. 같은 종으로서의 보편, 같은 정체성으로서의 보편, 같은 문화권에서 비롯되는 보편, 같은 이념과 가치관이 만드는 보편... 우리는 모두 다르면서도, 모두 같습니다. 그러니 선을 베풀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모두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희미하지만 강한 선의 마음이 이야기 밖에서도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One-Liner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용기 하나를 위한 9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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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2019/ 미국)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질투의 파괴력>
찰리와 니콜 바버는 연극 감독과 영화 배우 커플. 슬하에 어린 외아들 헨리를 두었고 화목한 가족이었으나 지금은 이혼을 하려고 한다.
니콜의 고향은 미국 서부 LA이고 찰리는 동부 뉴욕에서 활동한다. 헐리우드에서 막 배우로 발돋움 하려던 찰나에 찰리를 만나 단 2초도 안되어 사랑에 빠진 니콜은 미련 없이 고향을 등지고 찰리를 따라 뉴욕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20대부터 연극계에서 인정받은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는 찰리와 그러한 남편의 연극에 출연하는 니콜은 지극정성으로 헨리를 키운다.
그러나 10년도 되지 않아 찰리와 니콜의 결혼생활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찰리는 연극의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연극배우로서의 니콜의 평가는 그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투자하는 것만큼 벌어들이기 힘든 연극 공연에 니콜은 조력자로서 그녀의 재능과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붓지만 니콜의 도움은 그늘 속에 가려지고 찰리만 조명을 차지하자 니콜은 어느덧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을 질투하게 되어 부부 사이는 그만 냉랭해지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연극 스태프와 남편의 불륜을 눈치 챈 니콜의 마음은 더욱 얼어붙고 만다.
그러던 차에 헐리웃에서 꽤 비중있는 역할을 니콜에게 제의하자 그녀는 헨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일을 다시 시작하는데 헨리도 뉴욕 생활보다는 LA를 더 좋아하게 된다. 그러니 뉴욕을 기반으로 한 찰리와 모자의 사이는 자꾸만 멀어진다.
찰리가 이혼에 대해 시큰둥하며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자 니콜은 LA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이때부터 부부는 진흙탕 싸움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에서 이혼이란 변호사들의 큰 시장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이혼소송의 성격상 상대방으로부터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어 승률은 물론 성과를 높여야 생태계의 승자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성, 지성 모두를 쏟아부어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소송인을 부추길 수 밖에 없다.
찰리와 니콜의 사소한 결점들은 피비린내 풍기는 이혼소송법정에서 침소봉대 되어 도대체 이 커플이 어떻게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싶으리만치 그들의 좋았던 관계는 왜곡된다.
그러나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 헨리의 양육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고 아빠와 엄마 둘다 사랑하는 헨리는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아버지가 헨리를 잘 돌볼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해 전문 감정인이 하루 중 오랜시간을 함께 하며 관찰하는 장면, 그리고 주머니칼로 실수하여 혈액이 낭자한데도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태연한척하는 찰리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결국 LA에서 이혼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는 양측 변호사들의 실력 덕분에 찰리와 니콜은 양육권을 나눠 갖고 이혼을 하게 되지만 그들은 아직 서로를 사랑한다. 니콜은 찰리의 풀어진 신발끈을 묶어주며 헨리를 돌보는 시간을 양보하고 찰리는 동부의 생활을 접고 LA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로 결정한다. 그들이 조금만 더 빨리 서로를 이해하여 양보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혼 이야기>는 각각 이혼의 경험이 있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연출과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로 이혼을 겪는 부부의 감성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아담 드라이버의, 폭발하듯 감정을 담아 쏟아내는 대사와 실감나는 연기도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미국 서부와 동부를 오가는 이 영화는 느긋한 서부의 문화와 그보다는 긴장되고 삭막한 동부의 문화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니콜과 찰리의 다른점을 강조한다. 결혼 생활이란 각각 다른 배경을 지닌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따뜻한 그릇 안에 차이점을 담아 녹이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는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어려운 것 아니겠나.
찰리와 니콜의 행복한 결혼생활에 틈을 생기게 한 원인은, 성공에 취해 아내의 작은 바람들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 무신경함, 자신에게 귀기울여 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품게 된 남편에 대한 질투였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양측 변호사들의 주장과 별거 후에 이룩한 니콜의 작은 성공이 더욱 벌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이혼 조정기간에 상대방에 대한 장점을 빽빽하게 적어내려간 여러 장의 기록도 그들의 멀어진 사이를 다시 잇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혼 생활이란 무엇인가.
부부란 무엇인가.
돈독한 부부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틈은 얼마나 어이없게 생겨나는가... 등등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부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아 두어야만 할 영화(©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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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을 수 없는 운명일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구글 Chan's Note/
한때 넷플릭스와 후발주자였던 왓챠를 죽어라 비교해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혹은 비슷한 돈을 내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공식처럼 나돌던 시절도 있었죠. 각각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진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 덕분에 아주 약간 더 넷플릭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오리지널 시리즈를 훑어보곤 합니다.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지워갈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시 리스트를 보면 휴가를 받았을 때 심심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처럼 찰나의 시간이 날 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를 택하면 성공할 확률도 많고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는 내내 마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돌고 도는 같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어떤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다 보고 나니 명작이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이네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이 캐스팅 실화냐.
이 영화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처음에 캐스팅을 흘깃 보고는 와... 피 튀기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상상했을 땐, 미친 연기력의 향연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마을 자체에서 반복되는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등 떠밀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인물들은 이 영화 안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 쟁쟁한 스타들 중 누구 하나 톡 튀게 하이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두드러진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인 셈인 영화랄까요.
이야기는 정말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 갑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을 엮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네요.
뜨개질을 해 가는 속도 역시 정말 일품입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는 생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 수 있게끔 너무 느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속도대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끝매듭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얼굴만 잘 생긴 줄 알았더니. 이것들이.
연기도 잘하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나쁜 역할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덕질을 하게 만드는 많은 배우들이 들어차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신체적인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소위 말하는 것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경우를 여기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스타들의 "미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가 잘 생겼다.라는 것으로 국한되어버리면. 그걸 오히려 깨기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오히려 힘을 더 많이 써야 된다고 하죠. (참고 1)
그랬기에 저 역시 엘리오가 더 킹 헨리 5세에서 연기자가 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의 포효 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죠. 그것을 지켜보며 저 또한 희열을 느꼈던 이유 역시 또 다른 연기자 탄생의 순간에 내가 함께 했다.라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대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대표적인 영국 배우들은 자신의 악센트를 너무도 감쪽같이 버렸고. 세바스찬 스텐은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을 찌운 채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다가 출연 배우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볼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의 연기 리즈를 갱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노력이 빛을 뿜다 못해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진정성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답이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빌 스카스가드조차 여기서 이런 역할이라니.
전설의 영화 타짜에서. (1편임. 2편도 3편도 아니고 1편임) 평경장은 고니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고니는 마치 녹음한 것처럼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평경장은 그런 세상에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면박을 주죠. (참고 2)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것과 "착한"것이 부딪치고, 끝에는 선한 것이 이긴다.를 원하죠. 물론 저 역시도 만약 어벤저스 마지막에 벌크업한 보라돌이 농사꾼이 이겼다면 루소 형제 나오라고 소리쳤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나쁘다. 혹은 착하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말 외에는요. 그나마 이 뜨개질에서 가장 굵고 독특한 색을 가진 실에 가까운 톰 홀랜드 역시도 그러합니다. 복수 혹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데. 속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분명 그는 감옥에서 생의 일부분을 보낼 것이고. 그 일부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이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그만 말해. 이제.
토요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서 최근에 썼던 다크 히어로 관련한 글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아주 근소하게나마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죠. 소비하는 책이나 영화마다 요새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줘서 감사함과 동시에 여태 대체 어떤 우물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훌쩍 넘지만. 정말 시간 순삭 하게 만드는 영화이니. 꼭 한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다고 함. 연기를 안 봐주고 자꾸 얼굴만 봐서 교정기를 끼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래봐야 교정기 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잖아.
참고 2
진짜.. 거짓말 아니라 타짜 대사 거의 다 외움.
[ 이 글의 TMI]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이 왔다.
2. 이제 왜 주중에 휴일 없죠?ㅠ 추석까지 존버인가ㅠ
3. 선풍기를 꺼내야 할까.
4. 과일 먹고 싶다. (요새 과일 끊음)
5. 나중에 잠시 회사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다.
6. 요새 무가당 두유 먹고 있는데(당류 1%, 진짜 그냥 콩물) 그거 먹고 2주일 만에 식욕을 잃음.
7. 그러나 그러기엔 너는 아직도 너무 많이 먹고 있지.
함께 읽으면 좋을까?
https://blog.naver.com/virgonmalta/222244860880
엘리오, 헨리 5세로 왕위에 스스로 앉다;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리뷰
#악마는사라지지않는다 #로버트패틴슨 #세바스찬스탠 #톰홀랜드 #빌스카스가드 #넷플릭스 #넷플릭스추천
* 본 콘텐츠는 블로거 Rigo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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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풀, 원더우먼, 홉스 너네 모여서 뭐하니?
넷플릭스에 레드 노티스가 공개 되었어요!
라이언 레이놀즈, 갤 가돗과 드웨인 존슨이 주연을 맡아서 꽤 기대를 받았던 영화였는데요.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 평범하고 예측가능한 액션 영화였습니다.
특히나 세 캐릭터 모두 그걸 맡은 배우들의 다른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하는 캐스팅이어서,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운 영화 레드 노티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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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지장(智將) '이순신' 바다 위의 성! 승리의 전술 '학익진' 전설 속의 완벽한 전투선 '거북선' 나라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전투! [한산: 용의 출현] 7월 27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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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친 능력> 메인 예고편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컴백? 왕년에 잘나가던 슈퍼스타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빚쟁이 신세가 된 ‘닉 케이지’ 그런 그에게 생일 파티 참석을 조건으로 기꺼이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슈퍼팬 ‘하비’(페드로 파스칼)가 등장한다. 스타로서의 자존심과 어마어마한 제안 사이에서 갈등하던 ‘닉 케이지’는 결국 생일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향한다. 도착과 동시에 초호화 환대를 받고 행복한 휴양을 보내던 그는 의문의 CIA로부터 납치되고, ‘하비’가 악명 높은 수배범인 사실을 듣게 된다. CIA로부터 가족을 빌미로 위험한 미션을 강요 받은 ‘닉 케이지’는 설상가상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는데… 감당 불가! 방심 금물! 참을 수 없는 초대형 코믹 액션이 온다! 레디 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