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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걸음 뒤, 한걸음 앞에서 기록한 분열의 시대
시빌 워: 분열의 시대 (Civil War, 2024)
한걸음 뒤, 한걸음 앞에서 기록한 분열의 시대
개봉일 : 2024.12.31.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액션, 전쟁, 드라마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알렉스 가랜드
출연 :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와그너 모라, 스티븐 헨더슨, 제시 플레먼스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믿고 보는 제작사 A24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모종의 이유로 두 갈래로 나뉜 세상’이 주는 공포와 긴장감을 동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거대한 동력을 선택한 것치고는 움직임이 다소 방어적이다.
이 영화는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배경과 몇 개의 시선을 제시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최종에 이르러 애매한 감상을 남기게 만드는데, 이 싸움에 있어 확실한 선을 원한 관객에게는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영화 예고편과 시놉시스를 보고 거대한 전쟁 블록버스터 또는 정확한 저격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조금 더 고민해 보길 권하고 싶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흔히 생각하는 전쟁 블록버스터가 아닌 전쟁 한가운데 서있는 한 기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묵한 드라마에 가까우니 말이다.
극 중 미국은 최악의 내전을 겪고 있다. 이 혼란한 정세 속에서 종군 기자인 리, 조엘, 새미. 그리고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청년 제시는 아수라장이 된 도시를 누비며 끔찍한 순간들을 생생히 담아낸다. 이들은 정부와 반대 세력 사이 힘의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마지막 특종 기회를 잡기 위해 대통령이 숨어있는 워싱턴에 가기로 결정한다.
기자들은 총을 든 군인과 반대 세력들 사이에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이 카메라 한 대만을 들고 달려든다. 이들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바로 옆에 두고서도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카메라의 뷰 파인더만을 쳐다본다. 빗발치는 총성 사이에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섞여들리고, 각자의 무기를 든 군인과 기자들의 비슷한 실루엣이 보인다.
리와 기자들은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던 전투에 이어 원치 않은 사건에도 휘말리며 몇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비현실과 현실이 뒤섞인 상황과 오래 외면해왔던 공포들을 흠뻑 체감한다.
무엇을 위한 분열인가
워싱턴으로 향하던 네 사람은 한 테마파크 입구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군인 시체를 발견한다. 이상함을 느끼고 차를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총알이 빗발치고 새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려 바닥에 엎드린 군인 옆에 자리를 잡는다. 조엘은 군인에게 묻는다. 저 안에 누가 있냐고, 지휘관은 누구냐고. 군인은 답한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지휘관은 없고 그저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해서 쏘는 것이라고.
군인의 대답은 현재 내전 상황을 한 번에 설명한다. 이들은 누구와 왜 싸우는지 모른다. 그저 살기 위해 총을 쏠 뿐이다. 기자들도 군인들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내전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처럼 보이지만 나중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정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무엇을 찍고 그 사진 아래 어떤 말을 적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두 무리의 Shooting(총격, 촬영)이 가진 의미는 점점 흐릿해지고 이들은 더 이상 이 전쟁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 또한 이들에게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걸 흐리게 만드는 피
피와 뷰 파인더에 가려진 제시의 시선
공포와 피는 뚜렷했던 것을 점점 흐려지게 만든다. 특히 처음으로 전쟁을 가까이서 겪은 된 제시가 이에 크게 반응하고 변화한다. 주유소에서 처음 고문 당한 사람을 봤던 날, 제시는 밤이 되었음에도 요동치는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하지만 피 흘리는 사람을 다시 눈으로 보고 카메라로 담고 또 거대한 시체 구덩이에 떨어져 본 후 도착한 워싱턴에서 제시는 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탱크에 따라붙으며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리가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사진 현상액에도 자신의 체온을 담던 따뜻한 소녀는 어디로 가고 백악관 복도엔 징그럽다 싶을 만큼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 제시가 남는다. 제시의 눈에 가득 맺혔던 누군가의 피는 결국 그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그의 눈앞을 가로막은 뷰 파인더는 소중한 이(리)의 죽음마저 가려버린다.
뷰 파인더를 벗어난 리의 시선
제시는 주유소 사건을 겪고 리에게 묻는다. 저는 왜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제시는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리는 제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린 묻지 않고 기록하지. 다른 사람이 묻도록.”
리는 오랜 시간 모든 물음을 지운 채 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 덕에 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냉혈한에 가까운 종군기자로 여러 전쟁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제시와 그가 던진 질문이 리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새미는 주유소에서 충격을 받고 공포에 떨던 제시의 모습과 어린 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은 리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제시의 모습을 관찰한다.
주유소 사건 다음날. 리, 조엘, 제시는 시내에서 벌어진 소규모 격전에 참여한다. 제시는 어제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죽어가는 이를 찍는다. 이때 리는 셔터를 누르는 걸 멈추고 사진을 찍는 제시를 가까이서 바라본다. 그때부터 리는 제시를 통해 자신을 본다. 피에 벌벌 떨던 어린 소녀였던 자신과 뷰 파인더 뒤에 숨어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찍는 종군기자인 자신을.
리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동료 새미와 토니의 죽음은 왜 이들이 죽어야만 하는지 이 전쟁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리의 마음은 무너지고,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쯤 그의 종군 기자로서의 자아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리는 커다란 탱크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몸을 웅크린다. 이제 뷰 파인더를 벗어난 리의 눈엔 누군가의 죽음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제시의 죽음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카메라 뷰 파인더 뒤에 가려진 제시의 눈엔 리의 죽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총 맞는 순간도 찍을 거예요?”라는 제시의 질문에 리는 온몸으로 답을 내놨지만 그걸 알아줄 소녀 제시는 이제 뷰 파인더 뒤로 사라졌다.
<시빌 워:분열의 시대>는 기자들의 눈과 뷰파인더를 통해 이 이상한 전쟁을 기록하며 은근하게 묻는다. “우리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뷰파인더 뒤, 아니면 앞?”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누가 무너져야 하고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니다. 영화가 은근슬쩍 던진 ‘이 커다란 분열 속에서도 놓쳐선 안 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분열과 죽음이 익숙해진 시대라 해도 우리는 뷰파인더 뒤에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승, 패와 잘잘못이라는 결과 밑에 쌓인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린 리처럼, 처음 여정을 시작했을 때의 제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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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잘 알아요 <별의 아이>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오프라인상영작)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별의 아이 Under the Stars(2020)
일본, 드라마, 110분
감독: 오모리 다츠시
네, 잘 알아요 <별의 아이>
일본 한 가정집에서 아기가 자지러지게 운다. 미숙아로 태어나 약한 면역력 탓에 잦은 구토, 발진, 두드러기를 계속 달고 살았던 치히로. 부모는 딸을 위해 시도해보지 않은 의학적 치료방법이 없었고, 더 이상 해 줄게 없는 현실에 우는 자식을 바라보며 매일 밤 숨죽여 울어야 했다. 어린 언니까지 치히로의 뺨에 핀 붉은 연꽃이 사라지기만을 기도했지만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에 갇혀버린 그들을 구원한 건, 의료기술이 아닌 '금성의 은총'이었다. 우주의 기운을 담은 물 한 병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아기를 뒤덮은 붉은 연꽃을 사라지게 했고, 부모에게 다시금 희망과 행복을 선물했다. 이후, 치히로는 '금성의 은총' 외에 수많은 제품을 파는 '우주 에너지' 매거진에 "우주의 은총이 구한 생명"으로 당당히 소개된다.
언니가 빠진 가족사진, 별의 아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출처: 영화 <별의 아이> 스틸컷(다음)
치히로를 낫게 해 준 금성의 은총은 사이비 종교가 가진 정교한 톱니바퀴 중 하나다. '우주 에너지'에 실린 수만 가지의 제품이 각각의 톱니바퀴로 우주의 무한한 공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대놓고 맞물려 움직인다. 본래 믿음의 시초를 복기하는 건, 믿기로 한 '개인'에게 한정된, 하지만 무한하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적어도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는 현재 자신들이 원하는 삶고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린 금성의 은총으로 시작된 그들의 '우주 에너지'를 향한 굳건한 믿음이 쉬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치히로가 그 강한 믿음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중학생 소녀가 된 치히로는 여전히 금성의 은총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어릴 적엔 미남을 보고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얼굴까지 흉측하게 보인단 이유로 금성의 안경과 안약을 갖고 다니기도 했다. 부모는 작은 딸에게 생긴 문제의 답을 늘 '우주 에너지'에 찾았고, 문제의 작고 큰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치히로는 이런 부모님의 요구를 지금까지 군말 없이 따랐으나, 그녀의 언니는 거부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집을 떠나 홀로 생활한 언니, 치히로는 언니의 부재를 인정하면서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입 밖으로 "언니는 가출한 거야."라고 내뱉는 순간 현실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은 늘 "언니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뿐이야."라 얘기한다.
사건의 긴장감을 높이는 존재는 치히로의 언니 말고도 또 있다. 미나미 선생님, 어릴 적 에드워드 팔롱에 빠졌던 치히로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한 장본인. 치히로는 미나미에게 빠져 수업 내내 그의 얼굴을 그리며 영락없는 10대 소녀처럼, 다들 한 번쯤은 빠지는 지독한 짝사랑을 경험한다.
출처: 영화 <별의 아이> 스틸컷(다음)
미나미는 그동안 암암리에 숨겨왔던 사이비 종교에 대한 치히로의 의문을 폭발시키는 촉매로 등장한다. 가출한 언니의 기억과 미나미를 향한 짝사랑이 맞물리는 일은 치히로에게 언젠가는 일어나야 할, 예정된 길이었다. 운동장에서 초록색 운동복 차림에 흰 수건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금성의 은총을 뿌리며 나쁜 기운을 없애는 부모를 향해 "뭐하는 짓이야? 완전히 돌았네."라 일갈하는 미나미. 자신의 부모를 향해 조롱과 멸시를 주저하지 않는 짝사랑남을 지켜보던 치히로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무작정 어두운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너 때문이야. 맨날 아팠잖아."
언니는 초등학생의 치히로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와 별의 기운을 막는 커피를 마시며 '사랑'에 대해 털어놓는다.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선택한 건 그의 한숨 때문이라면서, 그의 한숨을 통해 나른한 안정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충분히 느꼈어야 했던 걸, 언니는 커피만 마시는, 통칭 '쓰레기'에서 찾은 것이다. 치히로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란 쪽지를 남긴 언니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계속 달린다. 그리고 묻는다, 하늘로 붕 떠올라 소리 내 불러도 더는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존재에게.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언니! 이 모든 게 아팠던 나 때문이야? 언니!!"
평상시처럼 의식을 치르고 온 부모는 밥을 안 먹는다는 딸의 말에 만병통치, 흰 수건과 금성의 은총을 준비한다. 단 한 번도 저항한 적 없던 치히로는 그날 처음으로 격렬하게 거부한다. 머리에 얹어진 흰 수건을 악착같이 끌어내리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당황한 엄마와 아빠의 눈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으나, 치히로는 그날을 기점으로 자신이 반드시 선택해야 함을 깨닫는다.
출처: 영화 <별의 아이> 스틸컷(다음)
'나는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 치히로에게 우주 에너지의 균열은 어렸을 때부터 보였다. 그 작은 틈에 손가락을 넣고 크게 만들기 시작한 것도 치히로였다. 금성의 안경을 쓴 채, 그녀는 아픈 게 아니라 외모지상주의에 빠져있다는 뼈 때리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아니 그전에 금성의 은총을 공원 수돗물로 바꿔치기 한 삼촌과 언니의 만행을 알았을 때부터 이미 금이 간 믿음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는 친구의 우스갯소리도, 다른 사람들이 금성의 힘을 믿는 부모와 자신을 어떤 눈길로 보고 있는지도 전부 다 알지만,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떠한 때를 기다려서? 아니, 자식을 위해 사이비 종교를 믿는 부모를 외면할 수도, 가만히 이렇게 숨죽여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자리한 두 갈래 길에서 치히로는 계속 도망치는 중이었다.
<별의 아이>는 고요하면서도 날카롭다. '사이비 종교'를 숨기거나, 볼드모트의 이름처럼 공포스럽게 포장하지 않는다. 부모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된 이유를 '딸을 향한 사랑이었다' 밝히는 동시에, 금성의 은총을 지금까지도 맹신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임을 친철히 설명한다. 표면적으로 익숙하게 소비해왔던 사이비 종교의 민낯을 밝히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 건 치히로의 마음이었다. 지금 사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소녀의 마음은 어떤가. 스토리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다가오는 건, 그녀가 금성의 은총 덕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한 사실을 알고서도 제삼자에게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어리석음을 확실히 결론 내지도 않으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천천히 풀어내는 점이, <별의 아이>가 사이비 종교가 아닌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앞둔 소녀의 성장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린 담담해 보여, 애처롭게 느껴지는 치히로 때문에 치히로 부모를 보며 강렬한 혐오와 멸시보단, 답답함을 느끼는 동시에 모든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치히로는 미나미에게 놀이터에 있던 이상한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이라 고백한다. 하지만 미나미는 이미 잔뜩 화가 나 있다. 학교 내에 치히로와 자신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결국 그는 학생들 앞에서 치히로를 대놓고 저격한다. 그림에 몰두해 수업을 듣지 않고, 이상한 물을 마시는 치히로를 꾸짖는다. 그의 폭발로 인해 치히로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까이는 하고 싶은 않은 동급생이 되어버린다. 미나미의 불같은 화에 심장이 멎을 듯 얼어버린 치히로. 그녀는 자신을 위로하는 두 친구에게 억울한 듯, 정말 부모님은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항상 품었던 물음에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나도 감기 한 번도 걸린 적 없는데..."라며 대화를 끝맺는다.
이렇게 <별의 아이>는 계속 치히로가 바라보는 사이비 종교의 허점을, 그 틈을 그녀의 주변인들의 입술을 통해 폭로한다. 앞서 말했듯, 아주 고요하면서도 날카롭게 관객의 비난할 기회를 순식간에 앗아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사이비 교주가 돌연 치히로의 눈을 통해 등장하는 순간, <별의 아이는> 달라졌을 거다.
출처: 영화 <별의 아이> 스틸컷(다음)
엄마와 아빠 몰래 외조부의 장례식장에 홀로 나타난 치히로. 커피를 마시는 치히로에 놀란 삼촌은 조카만이라도 사이비 종교에서 구출하고자 마음먹는다. 치히로에게 고등학교를 삼촌네 집에서 다녀도 좋다는 말과 함께, 너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소녀의 선택은 단호하다.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는 것.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음에도 두 눈을 힘 있게 뜬 채, 치히로는 부모님을 선택한다.
"네 알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긴 고민 끝에 치히로가 받아들인 건, 자신을 위해 금성에 헌신하는 부모님이었다. 금성의 기운도, 은총도, 에너지도 아닌 이 모든 걸 신의 뜻으로 여기는 아빠와 엄마. 친구들과는 다른, 너무나 이질적인 삶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으나 아이는 자신을 향한 가족의 사랑을 외면할 수 없었다. 동시에 더는 아팠던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이미 시간은 흘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부모님을 만들었으니까. 현실을 부정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다. 언니가 언젠가는 찾아올 거란 확신은 어리석고, 부모님에게서 도망치려는 건 무책임한 일임을 이젠 인정한다.
마지막, 치히로는 부모님을 따라 사이비 종교 예배에 참석한다. 사이비 종교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믿길 정도로 엄청난 수의 신도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치히로. 신도들 사이에서 서로를 애타게 찾던 치히로와 그녀의 부모는 늦은 밤, 숲 속으로 들어간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함께 보기 위해.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 하나로 똘똘 뭉친 치히로의 가족. 아기를 낳았다고 연락을 해온 언니의 소식을 전하면서 "참 잘 된 일이지?"라 말하는 엄마의 얼굴엔 행복만 보인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소름이 돋지 않는 건 왜였을까. 그들은 다 같이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기 위해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을 거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야만 볼 수 있는 별똥별이 치히로와 부모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겠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촌 오빠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마."라고 웃으며 말하던, 삼촌 가족을 만난 뒤 홀로 해변에 서서 바다를 응시하던 치히로가 떠오른다. 가만히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자신의 길을 생각했겠지.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길이 보인다는 걸 알았을 거다. 물론 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 그러나 치히로는 달라졌다. 영화가 내놓은 건 객관식 보기가 딱 하나인 문제였고, 우린 답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럼, <별의 아이>의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게 보일 거다.
그리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혼란스럽겠지, 치히로는 모든 걸 알면서도 '선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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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만지 1>, 사냥꾼의 얼굴을 한 아버지
<쥬만지 1>(1995)는 어려서 정말 재미나게 봤던 오락 영화이다. 세월이 한참 흘러, 우연히 <쥬만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의 충격과 전율은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쥬만지가 이렇게 깊은 뜻을 감추고 있는 영화였다니!!"
자녀의 성장 과정 속에서 부모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영화보다 더 잘 표현해낸 작품이 또 있을까?
<쥬만지> 게임 설명서
쥬만지 게임 설명서부터 예사롭지 않다.
A game for those who seek to find a way to leave their world behind.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게임)
Do not begin unless you intend to finish.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The exciting consequences of the game (게임을 마치고 나면 흥미로운 결과가 뒤따른다.)
이 게임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의 나의 삶이 바뀌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주의사항이 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 도중에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게임을 '끝까지' 마치고 나면, '흥미로운 결과'가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 보장한다.
이 영화의 핵심 줄기는 '쥬만지' 게임을 시작하게 된 알렌이, 과연 게임을 마치고 난 후 '어떤 새로운 세상'에 도달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알렌은 어떤 아이인가.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에, 인근 공사장에서 들리는 '북소리'를 듣고 따라갔다가 '쥬만지' 게임을 발견하는 '알렌'
알렌은 부잣집 아들이라는 점때문에 친구들에게 괜한 미움을 산다. 별거 아닌 일로 친구들과 시비가 붙어 아버지 구두 공장으로 피신을 간 알렌은 아버지의 보호와 위로를 기대하지만, 아버지는 "남자답게 맞서라"는 말만 해준다. 실망한 알렌은 공장에서 홀로 나오고, 기다리던 일당들에게 걸려 집단 구타를 당한다. 자전거까지 빼앗기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집에 돌아가려던 알렌은 인근 공사장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듣는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공사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북소리를 알아챈 것은 알렌 뿐이다.
알렌은 북소리가 나는 곳에서 '쥬만지 게임'을 발견한다.
쥬만지가 보내는 신호, 북소리를 알아듣는 것은 늘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다.
알렌 이후 '쥬만지' 게임의 '북소리'를 처음 알아차린 아이들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영화 속 '북소리'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신호'이다. 그런데 그 소리는 '간절함을 간직한 아이들'에게만 들린다. 북소리가 울리고 있을 때 주변에는 수많은 어른들이 존재한다. 그런에 그 북소리를 듣는 어른은 단 한명도 없다. 이 아이들은 어떤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는가. '북소리'를 들을 준비, 자세가 되어 있는 존재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울리는 '신호'를 얼마나 잘 알아챌까.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신호를 변화의 계기로 삼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다시 알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쥬만지 게임을 주운 그 날, 알렌은 아버지와 크게 다투게 된다.
아버지와 크게 다투는 알렌
알렌과 싸우고 난 후 아버지는 중요한 모임이 있어 바로 외출을 하게 되고, 알렌은 가출을 결심한다.
그때 알렌을 위로하러 친구 한명이 찾아오고, 두 사람은 동시에 '북소리'를 듣게 된다.
쥬만지 게임을 시작하게 된 알렌과 친구
친구 또한 북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반가워진 알렌은 가출을 하려다말고 급작스럽게 쥬만지 게임을 시작한다. 가볍게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나타나는 게임 속 경고문에 적힌 내용들은 실제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고, 급기야 알렌은 '정글'에 갇히게 된다.
쥬만지 게임 속 '정글'에 갇히게 되는 알렌
알렌은 게임 속 정글로 빨려들어가고, 다른 게임 참가자가 주사위를 던져 특정 숫자가 나와야만 다시 정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멘붕이 온 친구는 그 길로 도망가고, 알렌은 게임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26년의 세월이 흐르고, 폐허가 된 알렌의 집에 부모를 잃은 두 남매가 고모와 함께 이사를 오게 된다. 남매가 북소리를 따라 쥬만지를 발견한 덕에, 다시 게임을 시작한 덕에, 알렌은 26년만에 정글 속에서 빠져나온다.
26년만에 정글 속에서 빠져나온 알렌
이제 영화는 알렌과 어린 남매, 그리고 26년전 알렌과 함께 게임을 했던 친구까지 총 네 사람의 '게임 마무리 짓기 여정'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준다.
알렌은 26년 동안 게임 속에 갇혀 있었다. 그 동안 알렌의 겉모습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12세 소년이었다. 몸만 커지고, 나이는 먹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여전히 겁쟁이고, 비겁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람. 게임을 마무리 짓지 않아서, 한번 시작한 게임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여, 여전히 26년 전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여전히 발목을 잡고 정글에 빠진 것 처럼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한다. 그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생의 '시뮬레이션 체험' 판이 되어 준 쥬만지 보드 게임
알렌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26년 뒤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시뮬레이션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소중히 생각했는지, 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가 갔었는지, 나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남자답게 맞서라'라는 가르침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했던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알렌은 게임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세상'에 도달하게 된다. 그 새로운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쥬만지 게임 완료 이후 도달한 '새로운 세상'
26년 뒤의 알렌이 마지막 결승점에서 '쥬만지'를 외치고 게임을 마무리 짓는다. 게임을 마무리 짓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남자답게 문제 앞에 당당하게 맞서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게임을 마치고 알렌은 26년전 아버지와 싸웠던 그날 밤으로 다시 돌아간다.
알렌은 처음에는 “아버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무조건 아버지의 기준으로만 나를 평가하려 든다. 아버지는 나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아버지 밑에선 내가 원하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다.”라고 여겼으나, 쥬만지 게임 이후에는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솔직하게 나의 원하는 것을 표현하면 아버지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로 관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영화 초반, 아버지는 아들 알렌이 학교 친구들이 무서워 도망쳐 왔을 때에도,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아들이 원하던 따뜻한 위로를 해주지 못하고 “남자답게 맞서라"라는 말만 해준다.
알렌에게 아버지의 이 말은 “너무나 거부감이 들고 부담스러운, 나쁜 세상의 법칙”으로 다가온다. 자신은 그렇게 하기가 너무나 힘들고 버거운데,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으면서 강압적으로 몰아세우는 법칙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자신은 아무리해도 아버지의 기대에 맞출 수가 없기에, “남자답게 맞서라"라는 아버지의 이 말은, 알렌을 항상 옥죄인다.
26년간 게임 속 ‘정글'에 빠져 있던 알렌을 항상 ‘위협'한 것은 ‘사냥꾼'이다.
알렌을 26년간 쫓아다닌 '사냥꾼'
쥬만지 게임 속 정글에서 나타난 사냥꾼은 알렌의 ‘남자답게 맞서지 못함'을 늘 비꼬고 조롱하면서, 알렌을 하찮게 여기고 죽여버리고 싶어한다. 알렌은 사냥꾼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한다. 사냥꾼은, 알렌이 쥬만지 게임을 마무리 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쫓아다니는 존재이다.
게임을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 나타나 알렌을 죽이려고 하는 사냥꾼
알렌이 이 사냥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쥬만지 게임을 스스로 마무리 짓게 되면서이다. 알렌은 총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사냥꾼이 무섭지만, 아버지 말씀처럼 남자답게 맞서겠노라 선포한다. 사냥꾼 말에 의하면 “이제야 남자답게 맞서는군"이 가능해 질 때, 아버지가 늘 했던 “남자답게 맞서라"는 가르침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냥꾼의 위협으로 부터 벗어난다.
나쁜 세상의 법칙(=사냥꾼)이 날 위협하는 한, 나는 정글 속에서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정글 속에 갇혀서 26년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린다. 알렌에게 ‘세상의 법칙’은 자신을 위협하고 죽이려 하는 ‘나쁜 사냥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26년간..
동일 인물인 '아버지'와 '사냥꾼'
사실, '사냥꾼'과 '아버지'는 동일인물이다!!!
나를 위협하던 세상의 법칙이 사실은 ‘나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세상의 법칙의 또 다른 측면, 새로운 경지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알렌은 비로소 정글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알렌이 결정적 위기를 극복할 때 의지했던 것은 바로 늘 자신을 위협하던 세상의 법칙(“남자답게 맞서라")이었다. 그 세상의 법칙이 ‘나를 죽이려는 사냥꾼’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다가올 때, 알렌은 쥬만지를 마무리짓고, 위협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넘어간다.
알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마무리했기에, 새로운 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끝까지 해야 한다. 중간에 멈추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갈 수 없다. 중간에 발생한 문제거리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 문제거리들이 남아 나를 괴롭힌다. 내 발목을 잡고 있다. 도중에 무서운 것들이 많이 튀어나오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마주하게 되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들을 마주해야만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섰을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는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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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공간 활용의 단점을 극복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영화 9편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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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왈로우> 리뷰
영화 「스왈로우」(2020)의 주인공인 헌터(헤일리 베넷)는 남편인 리치(오스틴 스토얼)와 함께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행복하리라 예상했던 결혼 생활은 답답한 생활의 반복이다. 리치의 가족으로부터 지극히 이방인으로 대우받고 단지 대를 잇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헌터에게 가족 간의 유대감은 고사하고 어떠한 (감정적인) 출구도 제공되지 않는다. 탈출구 없는 결혼 생활과 원치 않아 보이는 임신으로 헌터는 이식증을 앓게 된다. 영화는 헌터가 겪는 이식증을 헌터의 생활과 맞물려 제시함으로 병을 앓는다는 느낌보다 신비로움에 이끌려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은 듯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식증의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쾌락과 고통을 넘나드는 헤일리 베넷의 연기로 드러내며 스릴러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영화는 이식증이 발병하기 전 공허하고 단조로웠던 헌터의 삶과 대비된 그 이후의 삶을 화려해진 집의 공간과 빠른 템포로 마치 안정적이고 건강한 헌터를 보는 듯한 정서를 불어넣어 관객이 안정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이 이식증을 들킬까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을 그리 길게 끌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헌터의 이식증이 리치에게 발각된 이후 드러나는 헌터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이식증으로 인해 받게 된 심리 상담에서 불현듯 그의 과거가 드러나며 영화는 관객에게 이식증을 앓는 헌터에 집중하기보다 선행해 존재하던 헌터라는 한 인간을 다시 처음부터 이해하도록 한다. 헌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과거를 심리 상담가에게 말한다. 헌터의 엄마는 강간범의 소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였고 종교적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 자신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던 이 과거를 헌터는 ‘많이 생각하여’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가 리치에게 밝혀진 이후 헌터가 보인 심각한 불안 증세와 이식증의 재발은 아직 헌터가 그 과거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헌터는 결혼생활 중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식증이 발병되었다. 헌터에게 이식증은 주체성과 자율성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억압적 상황에서 하나의 감정적 배출구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원치 않던 임신을 한 후, 억압적 상황에 대한 반영이 이식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해볼 수 있다. 임신의 과정에서 먹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다. 부푼 배를 보고도 행복해 보이지 않던 그는 사실 자신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주체적으로 표명하지 못하는 억압의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거부감을 이식증으로 발병시키고 그 잘못된 쾌락에 더 빠져듦으로 일종의 투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헌터의 엄마와 헌터의 통화 내용, 그에 따른 헌터의 반응으로 유추해봤을 때 헌터의 엄마가 (의도적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헌터의 동생을 헌터보다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터의 엄마는 자신이 의지가 아닌 종교적인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를 어쩔 수 없이 출산한 엄마에게 헌터는 자신의 딸인 동시에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제공한 강간범을 연상시키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엄마와의 관계에서 헌터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온전한 의지로 탄생된 필연적 존재’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자라났을 것이다. 따라 헌터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경험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이 관계에 대한 집착이 낳은 결과가 리치와의 관계이다. 그가 자신 때문에 행복해했기에 그의 모든 선택을 따랐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 사랑의 관계는 결국 관계에서 헌터를 수동적인 존재가 되도록 했고 억압적이고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헌터는 혼자 지내게 된 모텔에서 리치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제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흘러가는 상황을 맞이한 헌터는 더 이상 이질적인 것(흙)을 삼켜내지 못한다.
다른 가족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헌터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강간범의 흔적으로만 그를 바라보았던 타인의 시선에 대한 수많은 경험들은 헌터에게 헌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을 탄생케 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마침내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권리로 그 물음을 던졌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대답했다. 헌터는 헌터가 그를 닮지도 않았음을, 그가 가진 비열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헌터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확인받았다. 헌터는 누구의 흔적으로서도 아닌, 누구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도 아닌 ‘헌터‘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상황에서 내린 첫 번째 선택은 임신중절이다. 헌터가 가진 아이는 마치 헌터를 닮았다. 누군가의 간절한 의지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헌터의 선택에는 배 속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반복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을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생기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헌터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릴러적 분위기로 시작하였으나 곧 드라마로 전환되어 주인공인 헌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닌 그의 삶에 주목한다. 헌터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여성이 겪는 이타적이고 고립된 결혼생활부터 임신중절 선택까지 현재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상황과 정서를 영화에 반영했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한 여성이 과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헌터의 출생부터 마지막 헌터의 선택까지 이 이야기는 중점적인 주제로서 임신중절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말한다. 헌터가 자신에 대한 결정, 통제권을 생물학적 아버지 앞에서 온몸으로 부르짖은 뒤 행했던 일이 임신중절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임신중절의 선택권을 임신을 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이가 행사했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현실의 반영‘인 영화는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다루었고 더불어 ‘반영의 현실’인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이야기를 모든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키며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여성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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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뷸런스, 정신차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
?Rabbitgumi입니다!!
파괴지왕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앰뷸런스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아주 크게 기대받던 영화는 아니었죠.
예고편을 봤을 때, 은행을 털고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여서 뻔하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꽤 재미있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가있는데 조금은 질질 끈다거나 오버하는 장면이 줄었어요.
이야기 구성에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액션과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긴장감 만은 확실히 잡습니다.
영상과 음향이 멋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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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훈 구교환의 연기대결이 볼만한 "탈주" 후기 / 비무장지대 / 희망을 찾은 탈주 / 명배우의 명품연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탈주"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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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글로리> 공식 예고편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거야. 이 복수의 끝에 영광 따윈 없다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멈출 수 없는 비극의 시작 《더 글로리》 12월 30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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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간 여행 : 과거에 갇힌 남자> 메인 예고편
가까운 미래, 과학자 '노만'은 인공지능 ‘애니’와 함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른 과거의 시점에 갇히게 되고,
'노만'은 그곳에서 타임머신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바꿀까봐 혼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노만'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던 가운데 우연히 '제니'라는 여성을 마주치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