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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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넓은 우주 속 나의 여정이 특별한 이유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세 개의 부, 1부 'Everything' 2부 'Everywhere' 3부 'All at Once'로 나뉘어져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에블린이 자신의 '모든 것' (에블린의 모든 감정과 고민들 그리고 능력)을 '모든 곳' (다양한 차원에서 에블린의 모습)을 '한꺼번에' 마주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영화 내내 많은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다중우주가 나오면서 혼란스럽다는 평도 있지만,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삶의 철학을 얻는다.
모순에서 얻는 용기
이 영화가 주는 위로와 용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모든 것이 모순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오히려 그 모순이 삶을 살아갈 힘이 된다. 우리는 흔히 실패와 성공, 무의미와 가능성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경계를 허문다. 내가 실존하는 우주에서 실패했기에, 다른 우주에서 성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진동하며 중첩되는 미립자의 무작위 재배열에 불과한 세계이기에, 부질없는 세상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도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하찮고 어리석으며, 때로는 허접한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모순 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결국 그 속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걸어간다.
가끔은 온 세상이 허무해보이고 절망적이지만 나만의 개성으로 살아남기
'내가 늘 세상을 밝게만 보는 건 순진해서가 아니야 전략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어' 영화 중 에블린 남편 웨이먼드의 대사이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너무 순진하고 어리숙해보이고 답답해보이지만 결국 가장 단단하고 강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웨이먼드의 강함은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자세에서 기인한다. 혼란스럽거나 싸움이 요구 될 때는 되려 친절하고 이해하는 태도로 대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긍정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한다. 헤매고 방황하며 허무주의에 빠질 뻔한 에블린은 웨이먼드의 태도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가정을 구한다. 이는 단순히 다정함이 무조건적인 강함이라는 뜻은 아니다. 웨이먼드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부딪치고, 흔들리는 순간에도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내가 위태로울 때 나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낙하하지 않을 나만의 능력, 즉 개성이다. 개성이 있다면 수많은 우주에서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유연하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상식이 통하는 것도 한 줌의 시간뿐인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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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로스트 도터>는 숨겨진 명작으로 입소문 난 HBO 시리즈 <나의 눈부신 친구>의 원작자이기도 한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잃어버린 사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더 파더> 등 굵직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올리비아 콜먼과 감독으로서 처음 연출을 맡은 매기 질렌할의 만남만으로 영화는 화제가 되었다.
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하는 주인공. 그리스의 한적한 해변 마을로 휴양 온 이 여성은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한 비교문학 교수 '레다'이다. 해변가에서 한가로이 홀로 휴가를 즐기던 그녀 앞에 보트를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요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리던 레다의 눈에 '니나'가 눈에 띈다. 어린 딸아이를 안고 있는 니나의 모습을 찬찬히 그리고 집요하게 살피던 레다의 시선 끝에는 너무나도 매혹적인 여성과 완전히 지쳐버린 엄마 니나가 충돌한다. 그리고 레다는 자신의 과거를 그 위에 겹치기 시작한다.
언뜻 딸을 잃은 어머니의 처절한 드라마를 상상하게 하는 제목과 다르게 영화는 레다의 감정선을 좇으며 시종일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라진 니나의 딸을 찾아 그녀에게 안겨주다가도 아이의 애착 인형을 몰래 훔쳐 모두를 괴롭게 하는 등, 도통 저의를 알 수 없는 강박적이고 충동적인 행동과 편집증적으로 양극단을 오가는 레다의 무질서한 감정선을 쉽게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레다의 현재와 과거의 회상을 오가는 서사 전개는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니나를 통해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주인공의 양가적 감정을 그대로 좇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촉망받는 예이츠(W. B. Yeats) 연구자였던 레다에게 두 딸은 마냥 사랑스럽지많은 않은, 마치 신발 속의 돌멩이 같은 존재다.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성장기가 레다에게는 중압과 속박으로만 느껴진다. 매 순간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하면서 동시에 그녀는 죄의식에 움츠러든다. 염증이 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학계에서 만난 저명한 학자와의 학문적, 성적 교류다. 그리고 결국 레다는 어머니로서, 어머니의 장소로 대변되는 가정의 울타리에서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파편화된 삶을 뒤로하고 딸들을 떠난다.
이러한 레다의 이면과 내재된 모순적 충동을 자극하는 것이 니나와 그 딸이다. 영화는 '날 것'의 레다를 통해 그동안 직시하지 않았던 여성과 모성성의 간극에 대해 토로한다. 딸을 감당하지 못하고 버거워하는 니나에게 레다는 3년 동안 아이들을 떠나 있을 때 느꼈던 희열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터뜨린다. 질식할 것 같은 삶에서 빠져나와 레다는 그녀의 이름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로서의 무게가 영영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잉태하는 그 순간부터 부여되는 모성의 이름은 희생적인 어머니의 서사를 강요한다. 사회적으로 날조된 모성의 신화는 어머니의 자격을 규정한다. 그리고 이에 반하는 수많은 모체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견딜 수 없는 죄책감과 죄의식이라는 상흔을 남긴다. 여성으로 태어나 어머니가 된 이들에게 부과되는 모성의 신화가 사회적 숭배와 혐오 사이에서 개개인의 정체성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내적 충돌이 우리에게 드러난 순간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기괴한 육체만이 남게 된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레다이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다가오는 이들을 자신의 경계 밖으로 내몰았다가도, 누군가의 삶에 불쑥 끼어들기도 하는 레다를 보며 관객은 그녀의 널뛰는 감정에서 무엇이 진심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이 같은 양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들이 모두 레다의 것으로 타당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덧붙여졌을 뿐, 누구나 이 같은 관계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럴듯한 부연을 늘어놓으며 이 혼란함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섬세한 표현이 불친절하지만 필요한 인물 서사의 공백을 적절히 채워 놓는다.
이를 담아내는 질렌할 감독의 세심한 연출 역시 돋보인다. 말로 전달되지 않는 내면의 충돌은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통해 표면화된다. 예를 들어,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긴 레다를 담는 쇼트에서 그녀의 몸은 반쯤 잠겨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평화로움과 다르게 물 밑의 감춰진 레다의 다른 한쪽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레다가 숙소에 놓여있는 과일을 먹기 위해 들춰보는 장면도 유사한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다. 노랗게 잘 익은 과일 하나를 들어 올리자 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새까맣게 썩은 뒷면에 구더기가 득실 거린다. 레다는 과일을 내다 버리지 않고 바구니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통째로 눈앞에서 치워버린다. 그러나 한 번 폭발한 감정의 덩어리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훔쳐온 인형을 찬장 깊숙이 숨겨놓은 레다 앞으로 수 십 장의 인형 사진 전단지가 뒤덮이고 인형 입에서는 꿈틀거리는 벌레가 기어 나온다. 레다 안에 깊숙이 감춰 둔, 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그녀를 잠식한 어떤 잠재의식이 아브젝시옹의 이미지로 그녀를 집요하게 좇는다.
영화의 마지막이 되어서 관객은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니나에게 선물 한 모자 핀은 레다의 배에 상처를 남겨 놓는다. 배꼽 바로 옆쯤 생긴 천공에서 피가 묻어 나온다. 레다는 그대로 앉아 아이들이 좋아했던 방식대로 오렌지 껍질을 깎으며 이제는 성인이 된 딸들과 통화한다. 뱀의 표피처럼 끊기지 않는 오렌지 껍질은 마치 모체와 태아 사이를 이으며 마지막까지 그 흔적을 남겨놓는 탯줄과 같이 이어진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개인의 서사가 발화하기 작하는 근래, 영화는 오랜 시간 걸쳐 만들어진 모성의 신화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한다. 어머니로서의 의무감과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에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틈새를 열어 놓는 것이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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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에 의존한 나태함의 끝
* <공조2: 인터내셔날>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공조2: 인터내셔날 (2022)
감독: 이석훈
출연: 현빈, 유해진, 임윤아, 다니엘 헤니, 진선규
장르: 액션, 코미디
상영시간: 129분
개봉일: 2022.09.07
<공조2>는 780만 관객을 동원한 1편의 성공 덕분에 성사된 후속작으로 국내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주요 인물들이 후속작에 전부 합류했다. 작품의 중심을 잡는 투톱 주연 ‘현빈’과 ‘유해진’은 물론 맛깔나는 감초 연기로 호평을 받은 ‘임윤아’와 그 외 조연 캐릭터가 모두 합류해 전편과의 높은 연계성을 이룬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다. 명절 특수를 제대로 받은 2편마저 69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기록했으니 재회의 목적은 확실히 달성했다.
1편의 성공을 계기로 만들어진 후속작은 필히 규모도 커져야 하고, 스토리 면에서도 차별화를 둘 필요성이 요구된다. <공조2>는 ‘인터내셔날’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법을 택했다. ‘현빈’ 못지 않은 눈부신 비주얼을 자랑하는 ‘다니엘 헤니’를 주연으로 합류 시켜 남한과 북한 사이에 미국이라는 국가를 더했고, ‘삼각 공조’로 사건에 다이내믹함을 구현해 보고자 했다. ‘다니엘 헤니’의 캐스팅 효과를 톡톡히 보기는 했다. 전작에서는 ‘유해진’과 ‘현빈’의 구도만으로 뻔한 그림이 형성했던 반면 ‘현빈’과 시종일관 신경전을 벌이고, 잘생긴 얼굴과 마초적인 매력으로 ‘윤아’의 혼을 쏙 빼놓는 ‘잭’은 케미스트리의 다양화만으로도 제 몫을 해냈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주연 캐릭터의 수를 늘리고, 남한과 북한 형사 사이에 미국 FBI 요원이 합류한 설정을 제외하면 스토리의 전개 방식과 유머 코드는 전편을 그대로 답습한다. ‘철령(현빈)’과 ‘강태(유해진)’, 그리고 ‘잭(다니엘 헤니)’이 같은 목표를 갖고 공조를 벌이는 것 같으면서도 각 국가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구도는 전작에서 끝없이 티격태격 하고 서로를 쉽게 믿지 못했던 주인공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강태’의 가족들이 두 이방인에게 밥을 해 먹이고, 함께 정을 쌓고, 결말부에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자 다 함께 이들을 구출한다는 전개 방식 역시 전편과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다. 1편에서 성공적으로 구축된 캐릭터성에 의존한 채 나태한 이야기가 흐름을 주도할 뿐이다.
주인공들의 ‘멋’을 최대한 강조하고 싶은 탓에 액션 연출은 더욱 허술해졌다. 아낌없이 총알과 폭탄을 사용하지만 주인공들은 절대 타격을 입지 않고, 관객 역시 그들이 한 발도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액션신마다 마치 초능력자 같은 모습을 발휘하는 캐릭터들은 총격전이 형성해야 할 긴장감을 반감시키며 반복되는 슬로우 모션과 클로즈업 샷은 몰입도마저 떨어뜨린다. 이 영화에서 액션은 마치 주인공의 외모와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하는 액세서리 정도로만 여겨진다. 1편보다 커진 스케일 하나에 만족이라도 하라는 듯 액션 연출과 각본에 대해 고민을 한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공조1>이 호평을 받은 요인 중에는 극악무도한 카리스마로 임팩트를 안긴 빌런 ‘차기성(김주혁)’의 활약이 있었다. 작중 그의 역할을 이어 받은 ‘장명준(진선규)’은 가차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잔혹함을 그대로 가져 왔지만 존재감은 ‘차기성’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 냉혹한 ‘진선규’의 연기에서 <범죄도시>가 연상되기는 하지만 배우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탓에 악역만의 위압감도, 특유의 사이코 같은 면모도 드러나지 않는다. 공중에서 펼쳐지는 최종 액션신 역시 스릴감 없이 싱겁게 끝나지 않던가.
‘철령’은 한 번의 공조를 통해 ‘강태’와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전편처럼 군인으로서 각 잡힌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인간적이고 허술한 면모를 많이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려고 하지만 ‘강태’와 함께 선보이는 철 지난 유머코드는 실소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오로지 전편에서 적은 분량만으로도 코믹함을 선보였던 ‘임윤아’만이 코미디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각인 시켜준다. 푼수 뷰티 유튜버라는 성격을 제대로 살려 공조 작전에 ‘민영’ 캐릭터를 양념처럼 활용한 것은 호평할 만한 부분이다. ‘잭’과 ‘철령’을 두고 알아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민영’의 모습은 작중 유일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다.
전반적으로 성의 없는 구성의 속편이다. 연출과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마저 전작을 답습함으로써 나태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명절에 어떤 연령대의 가족과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의 틀을 찍어내는 공장에서 만든 작품 같다고 할까. 액션도, 코미디도, 서스펜스도 모두 어정쩡하게 만들 바에는 ‘코미디’라는 한 장르에 제대로 집중한 <극한직업>, <육사오>처럼 한 가지 큰 방향성을 택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찍으면 멋있어 보이겠지?’, ‘이 때 이런 대사를 날리면 웃음보가 터지겠지?’라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대사와 장면들은 제 역할을 해내기는 커녕 맥없이 지나갈 뿐이고 눈요깃거리만이 겨우 작품을 채운다. 하지만 이렇게 전부 나열하기도 힘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흥행을 일궈낸 현실에 JK필름의 다음 작품도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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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들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 하>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들
프란시스와 레이디 버드
처음으로 <프란시스 하>를 본 건 입시 준비를 하던 여름이었다. 계속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프란시스를 보는 게 정말 힘들었다. 같은 해, <레이디 버드>를 본 후에는 영화 말미에 대학에 들어가는 레이디 버드가 참 부러웠다. 수능 성적이 좋은 것도, 방과 후에 연극을 하고, 줄리와 대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전부 대단해 보였다. 스물 한 살이 되어 당시에 느꼈던 무력감과 긴장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새로운 고민이 생긴 후 두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를 그리워하듯, 프란시스가 방황하던 시간을 지나 ‘자기만의 방’을 찾듯 그레타 거윅이 그린 성장은 단순히 귀감이 되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We were in one parking lot and we went to another parking lot.”
‘레이디 버드’는 고등학생인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직접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면 반드시 고쳐 부르게 하고, 명단에 쓰인 이름은 새로 쓴 후 밑줄까지 그어 둔다. 반듯하게 인쇄된 글자 아래 적힌 손글씨는 어디서든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레이디 버드를 소개하는 듯하다. <레이디 버드>는 수십 벌의 예쁜 의상과 함께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하이틴’ 영화에서 벗어나 그 이미지를 보고 자란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깊이가 각기 다른 수많은 고민,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결정들, <레이디 버드>가 주인공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모녀의 이야기라는 점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관객에게도 호소력을 지닌다.
그레타 거윅이 공동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는 꼭 <레이디 버드>의 다음 이야기처럼 보인다. 프란시스는 여러 모로 불안정하다. 현대무용가가 되고 싶어하고, 뉴욕에 살며, 함께 살던 친구가 떠나며 갈 곳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진다. 영화는 색조차 빼앗아 가며 복잡한 감정과 걱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레이디 버드처럼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원동력을 절실히 원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름을 줄여 쓰지 않고 반 접어 우편함에 끼워 넣은 것처럼, <프란시스 하>는 때때로 한 발자국 물러나거나 타협하는 것이 결코 최악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화려한 스토리와 미장센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프란시스 하>는 불완전한 삶과 끝나지 않은 성장으로 위로를 준다.
레이디 버드는 “우리 주차장에서 출발했는데 또 다른 주차장에 왔네.”라고 말한다. 주차장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출발해야 하는 장소이다. 스치듯 읊조린 대사지만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의 정서를 모두 설명하는 것만 같다. 두 작품은 떠난 후에야 사랑하게 되는 것들,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성장을 담았기에 특별하다.
그레타 거윅이 그린 여성의 성장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가 유독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두 이야기를 충분히 내면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와는 공통점보다 다른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집에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고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태어난 연도와 사용하는 언어조차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에서 위로를 받거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나를 위한 영화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레타 거윅의 캐릭터들이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정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는 섹슈얼한 관계를 쟁취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스러운 욕망과 꼬이고 풀어지는 관계들, 보편적이고 사소한 고민을 보여준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녀 관계와 친구 관계 또한 위와 같은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
<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 <길버트 그레이프>, <바스켓볼 다이어리> 등은 모두 다양한 감상과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와 소통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자라면서 수도 없이 돌려 본 <금발이 너무해>, <클루리스>, <하이 스쿨 뮤지컬> 같은 작품들은 여성 제작자의 손을 거치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임에도 아름다우면서 유능한 캐릭터를 모델로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수없이 본 경험 이후에 그레타 거윅이 참여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 여성 제작자로서 그레타 거윅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이야기와 연출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나 다른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내면화하고,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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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의 디즈니 '인어공주' 실사판 후기
인어공주
23.05.24 개봉
뮤지컬/가족판타지/로맨스, 전체 관람가
미국, 135분
감독: 롭 마샬
출연: 할리 베일리 등
디즈니의 시대는 한물 갔다며 욕을 욕을 먹던 바로 그 작품...!
흰 피부에 빨간 머리가 대명사인 인어공주를
흑인으로 캐스팅해서 난리가 났던 바로 그 작품...!
드디어 '인어공주'를 봤습니다~~
다 보고 난 후 드는 생각을 말해 보자면 이거였어요
흑인 인어공주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이미 원작이 있는 작품에 '꼭'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해야만 했던
그 이유...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노래? 물론 잘합니다 노래 부를 때마다 감탄해요
그런데 노래 평균 만큼 하는 예쁜 배우가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네 인정합니다 저 외모지상주의 맞아요 . . .
자고로 여주 남주는 예쁘고 잘생겨야만 한다는 고정관념 있습니다
아무리 외모지상주의가 문제로 꼽히는 시대라지만
공주는. 예뻐야. 만. 한다는 생각. 있고요.
미국에서는 백인 외의 공주가 나왔다며 좋아한다던데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요?
아리아나 그란데가 이 역할을 했다면
전 광광 울면서 덕질 했을 거예요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빨간 머리도 차별받았다고 들었어요 해리포터 론처럼요
그걸 엎어 준 캐릭터가 인어공주인 건데
새빨간 머리조차 따라 하지 않았다면... 정말 인어공주가 맞을까요?
레게머리라 포크로 빗질 못하고 꼬을 때는 진심 킹받았어요
그게 인어공주 성격 잘 보이는 씬인데 ㅠ......ㅠ
사실 인어공주만 문제인 건 아녔어요
에릭 왕자도..............................................
원래 이 배우님을 모르긴 했지만
영화 보고 있는데 저 사람이 에릭일 거라고 상상도 못함
심지어 내용이랑 개뜬금 없는 입양아 설정까지 . . .
이제 픽사가 디즈니를 먹을 차례인가?
트라이튼이랑 우르슬라가 진짜 찰떡 캐스팅이었던 거 같고
바네사는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분량 3분쯤 되는 거 같은데 반했어요
못 된 표정 짓는데 너무 예쁜 거 있죠
크루엘라도 그렇고 이제 악녀의 시대가 오는 걸까요?
우리 모두 인어공주 이야기는 알잖아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해피 엔딩이 된다는 게 다른 점이죠
그런데도 실사판을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기대했던 건
디즈니라는 대기업이 가진 자본이 얼마나 대단한지였겠죠?
네 CG랑 효과랑 노래요 ㅎㅎ
근데 바다가... 그닥 예쁘진 않더라고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속 바다도 어두컴컴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때는 인어공주를 엄청 밝게 그려 놔서
그래도 화사하고 아름다운 동화 속 얘기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이건... 아바타 2보다도 어둡고 우중충한 바다였어요
우르슬라의 바다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듯
디즈니 실사판을 많이 본 건 아니에요
미녀와 야수 알라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노키오 정도?
근데 네 개 다 정말 동화 속 얘기 같고 어딘가 신비롭고
피노키오는 CG가 대박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번 인어공주는... 아무것도 잡지 못한 영화인 것 같아요
동화를 재해석하는 요즘 스타일st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크루엘라처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어야겠다 싶어요
이야기는 고대로 갖다 쓰면서 캐릭터성은 버리려고 하면...
원작의 팬도, 요즘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도 잡지 못하잖아요
마케팅 포인트가 불확실했다는 게 가장 큰 실패 이유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 2/5점
*연출: 1/5점
*영상미: 1/5점
*연기: 3/5점
*OST: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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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당신의 가족에게 ‘티끌만 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엄마의 왕국/한국경쟁
시놉시스
타인에게 희망을 주는 자기계발서 『진실의 힘』 작가 도지욱과 이웃에게 정을 주는 '왕국 미용실' 미용사 주경희는 모자(母子)지간이다. 어느 날, 평화로운 왕국에 침입자들이 쳐들어온다. 갑작스러운 주경희의 치매. 비밀을 파헤치려는 목사 도중명. 엄마와 아들은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가족이 품은 모순, 기괴함을 다루는 영화는 거칠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파하는 영화. 그리고 온갖 난리법석 후에도 모든 가족이 으레 그렇다는 듯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영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상영작 〈엄마의 왕국〉은 후자에 가깝다.
한 가족의 비밀을 하나둘씩 파헤치는 이 스릴러 영화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헤쳐야만 했던 아이러니를 좇는다. 엄마 주경희는 동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아들 도지욱은 자기계발서 몇 권을 출간한 작가다. 그러던 어느 날 경희에게 치매가 찾아온다. 지욱은 치매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일은 능숙하게 해낸다. 심지어 이를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는 듯하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문득 던진 말에는 아찔해진다. 바로 “내가 네 아빠를 죽였다”는 말이다.
경희의 남편이자 지욱의 아버지는 지욱이 어렸을 때 ‘실종’되었다. 이후 모자는 둘이서 생활을 꾸려왔다. 그런데 지욱의 아버지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살해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욱의 삼촌이자 목사인 도중명이다.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명은 떠나기 전에 진실을 알고 싶다며 형수인 경희에게 진실을 캐묻는다.
극이 전개되며 경희, 지욱, 중명 모두에게 ‘실종’ 혹은 ‘살해’된 남자를 해칠 동기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경희는 자신과 지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미웠고, 지욱 역시 어려서부터 자신을 미워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지욱의 머리에는 지금까지도 큰 땜빵이 있는데 이는 울며 보채는 지욱을 아버지가 던져서 생긴 상처다. 한편 한때 형수인 경희에게 감정을 품었던 중명 역시 자기 사랑을 가로막는 형의 존재를 마뜩치 않아 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결국 진실은 뭘까? 범인은 도지욱이다. 어린 지욱이 아버지를 죽였다. 지욱의 아버지는 지욱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동생인 중명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았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욱을 지독히 미워했다. 어린 지욱은 영문 모를 미움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끝내 엄마와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살해했다. 경희는 죄 많은 사랑의 결과물인 지욱을 지켜야만 했기에 이 사건을 자신이 벌인 일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중명 몰래 남편의 시신을 벽 안에 은폐하고 지욱에게도 ‘네 아버지를 죽인 건 나’라고 내내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욱은 결코 이 문제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엄마가 아빠를 죽인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엄마의 규칙’이었다. 지욱이 장성한 후에도 결코 어길 수 없는, 지금의 가족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규칙 말이다.
엄마가 만든 강력한 금기를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한 채 억눌려 있던 지욱은 경희의 치매 이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족을 구성하는 ‘거짓의 힘’을 확인한다. 이전에 지욱이 쓴 《진실의 힘》이란 책은 그저 그런 뻔한 책으로 많은 독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금기를 정면으로 다시 마주한 지욱이 새로이 쓴 책 《거짓의 힘》은 수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는다. 그렇다. 적어도 경희와 지욱 모자에게 가족을 지키는 힘은 진실이 아닌 거짓에서 나왔다. 거짓을 걷어내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중명)는 죽음으로 응징당한다.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는 ‘실종’과 ‘살인’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마다의 비밀이 있는 법이다. 티끌만 한 잘못도 없이 그저 번듯하게만 사는 가족?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그리 흔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에서 ‘실종’과 ‘살인’은 모든 가족이 가족의 테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감춰야하는 진실의 가장 극단적 형태일 뿐이다. 모든 가족은 크고 작은 거짓을 토대로 현재를 영위한다. ‘티끌만 한’ 가족의 잘못이라도 떠올리며 이 영화를 감상해보자.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영화를 넘어 우리 가족의 테두리에 달라붙을지도 모른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엄마의 왕국〉 상영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영화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111)
-5월 4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312)
-5월 8일 10:30 CGV전주고사 6관(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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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최신 개봉영화(귀문, 레미니 센스, 마더스 인스팅트, 여름날 우리, 캐논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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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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