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
- 엄정화와 이효리
이 글은 넷플릭스 [애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보그 코리아
이 드라마를 자칫 잘못 풀어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았다. 희란(이하늬)과 주애(방효린)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댔을 것이고. 간택을 받기 위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벗어젖히느라 바빴을 것이다. 이 싸움을 지켜보게 될 시청자들은, 한 회 한 회가 거듭될 때마다 얼마나 더 적나라하게 도파민을 팡팡 터트려댈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다음 회 버튼을 1초에 5번씩 눌러댔을. 그런 뻔하다 못해 속이 빼꼼히 들여다 보이는 드라마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쉬운 선택들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단호히 등을 돌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그 모든 유혹들이 돌아보면 자신을 돌로 만들어 버릴 메두사의 머리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 그 뚝심덕에, 모든 면에서 괜찮은 작품을 정말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드라마에 전형적인 요소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 드라마에서 노출만을 기대하는 천박한 인간들과, 남성들만을 악역으로 그린다며 작품을 폄하할 족속들 정도는 걸러낼 수 있을 정도의 고고함은 기본적으로 안고 있기에. 이들이 보여주는 일부 장면의 적나라함이 “야함”이 아닌, 그 시대의 악습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위와 같은 이유로 실망하는 자들이 있다면. 미리 아디오스를 외쳐본다.
사진 출처:국민 일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애마]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위안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21세기에도 똑같은 독재자를 겪었기 때문이 아닌(맞음) 희란의 존재 때문이다. 희란의 앞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 주애의 존재가 처음엔 그저 썅년에 불과했을 것이다. 밟자고 한다면 두 번 다시 자신의 그림자도 못 보도록 지근지근 밟아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희란은 주애에게서 자신의 어제를 보았다.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비바람 아래서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던 십 년 전 희란의 모습을. 그렇게 희란은, 주애 앞에 우산을 내밀었다.
시상식 장면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후반부의 이야기들은 흐름이 유달리 톡 튀어 보이고 과장되어 보이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들처럼,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손뼉을 치게 하는 통쾌함이 있다. 그 통쾌함의 봉합으로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선택했다는 것 역시도 이 짧은 여름밤의 꿈같은 장면들을 소중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희란의 이런 구원, 혹은 여성 서사가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로 그녀가 “잘 나가는”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게 쉬웠다면 영화 속 그 높으신 분들이 실컷 꼬리만 자르며 꽁꽁 숨었을 리가 없지. 그녀가 상대방의 눈을 항상 똑바로 쳐다보던 모습은 아마도 이 진리(?)를 빨리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나 나나. 인기와 돈, 권력을 떼고 본다면. 결국 목숨은 공평하게 단 하나뿐이라는 것. 그래서 그녀의 협상은 구차하지 않고 항상 동등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보그 코리아
[애마]에서도, 현실에서도. 투쟁과 싸움의 정중앙에 있었던 그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지저분한 싸움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직접 온몸으로 구르며 나아간 그녀들의 슬픔과 연민에 감히 위로를 건넨다. 끝나지 않은 투쟁과 싸움 앞에서 겁먹지 않으리란 각오를 해 보인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어제의 우리를, 나아가서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를. 구원해 내기를. 작품 속 희란처럼 주애를 가볍게 안아주며 지지 마.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그녀들의 당당한 시선이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참고
이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예전에 어떤 예능에서 엄정화에게 어떻게 혼자 (가수로서) 이 시간을 버텼냐.라고 묻자 엄정화는 술 마셨어.라고 대답하며 웃었지만 이효리는 울어버렸었다. 그 장면에서 얼마나 두 사람이 각자 많은 일을 겪고 그런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모티프를 따와서 글에 엮고 싶었지만 잘 묻어나지 않아서 그냥 제목으로 강등(?)시켜버림.
[이 글의 TMI]
1. 장염 걸려서 극장도 못 갔음.
2. 물론 지금은 커피 두 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됨.
3. 아 물론 커피만 먹지는 않음.
#애마 #이해영 #이하늬 #방효린 #진선규 #한국영화 #넷플릭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
- '상호 돌봄'이라는 새로운 부녀 관계

8/10
11살 딸 소피와 30대 초반의 아빠 패터슨이 소피의 방학을 맞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부부의 이혼 후 소피가 엄마와 함께 살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여행이다. 행선지는 튀르키예. 매끄럽지만은 않다. 두 개의 침대를 확인하고 예약한 호텔 방에는 침대가 하나뿐이고, 호텔 바로 옆에서 진행 중인 공사는 부녀의 신경을 긁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행의 기쁨이 더 크다. 패터슨은 다정한 얼굴과 몸짓으로 딸에게 선크림을 발라주고, 소피는 그런 아빠에게 의지하며 둘이 함께 만들 추억에 들뜬 상태다.
11살은 애매한 나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 사이 어딘가. 소피는 아빠와 함께 노는 것도 좋지만 수영장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며 그들처럼 놀고 싶기도 하다. ‘소피의 오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젊은 아빠인 패터슨 역시 그런 소피의 마음을 알고 보호자와 친구 역할을 오가며 소피를 배려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소피와 젊은 아빠라는 패터슨의 부녀 관계는 미묘하다. 소피가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젊은 청년인 패터슨 역시 소피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부녀 관계를 따뜻하게 담아내는 〈애프터썬〉이 흥미로워지는 건 이 지점이다. 성장 중인 딸과 여전히 방황하며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한 아빠가 만들어내는 관계에서는 기존의 부녀 관계와는 다른 역동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피 앞에서는 늘 밝고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패터슨은 고통의 시간을 겪는 중이다. 최근 사업에 실패한 패터슨은 미래가 두렵다. 딸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돈은 넉넉하지 않고, 당장 자신의 미래조차 확신할 수 없다. 딸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소피도 아빠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빠의 간섭과 참견을 귀찮아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활용해 아빠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녀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님에도 말이다.

일상적 배려와 스치듯 지나가는 다정한 말 한마디로 서로를 응원하는 부녀. 그런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위기는 두 사람의 정체성이 엇갈릴 때마다 찾아온다. 어린이이자 청소년이고, 아빠이자 (위태로운) 청년인 부녀. ‘어린이’와 ‘아빠’, ‘청소년’과 ‘청년’이 만날 때는 좋은 시너지가 난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년’, ‘청소년’과 ‘아빠’가 만나면 불협화음이 난다. 지금 이 순간의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돌봄의 화살표가 바뀌기 때문이다. 두 정체성 사이를 오고 가는 둘은 매 순간 서로를 면밀히 탐색하며 미세하게 관계를 협상해야만 한다. 정체성을 오인하면 감정이 상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생긴다. 함께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자는 소피의 제안을 패터슨이 거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어린이’ 소피는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가족의 전통을 거부하는 아빠에게 서운하고, ‘청년’ 패터슨은 남들 앞에서 가무를 하는 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때로는 상처주는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부녀 관계의 깊이와 갈등 모두 고조된다. 더불어 패터슨의 아픔과 상처가 서서히 부각되며 소피와 패터슨의 부녀 관계는 점차 ‘청소년’과 ‘청년’의 관계, 즉 돌봄의 화살표가 딸에게서 아빠를 향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애프터썬〉의 성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빠에서 딸로 향하는 일방적‧일반적 부녀 관계를 거스르며 상호 돌봄의 부녀 관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아빠/아버지는 늘 강인한 존재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 요구가 내면화되어 남성이 스스로를 그렇게 재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젠더 이원론의 각본에서 태생적‧본질적으로 강한 존재는 없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각본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별자들이 있을 뿐이다. 〈애프터썬〉은 방황하는 청년이라는 보편적 인간에게 ‘아빠’ 정체성을 더함으로써 ‘아빠/아버지’ 역시 취약한 존재임을, 즉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인다.
영화에는 패터슨과의 상호 돌봄 관계가 소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성인이 된 소피가 동성 애인과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패터슨과 서로 기대며 버티고 지나온 시간을 바탕으로 성숙한 돌봄의 관계를 꾸렸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돌봄이 필요하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친밀한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만이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돌본다. 이것이 상호 돌봄의 부녀 관계를 감동적으로 영상화한 영화 〈애프터썬〉의 메시지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영화 리뷰] 원스 - 실현되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독: 존 카니
출연: 글렌 핸사드, 마르게타 이글로바
개봉: 2007. 09. 20 / 2017. 11. 01 재개봉
줄거리

평범한 청소기 수리공인 '그'는 매일 저녁에 자작곡을 거리에서 부른다.
낮에 사람들은 아는 노래만 들을려고 하기 때문에, 밤에만 나와 부르는 ‘그'

어느 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의 음악성을 본 그녀.

그녀 역시, 음악을 좋아하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피아노 가게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음악성을 확인한다.

그런 그들은 서로 작업을 도와주며, 가까워진다.

더블린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와 그녀.
서로 풍족하지 못하고, 늘 서툴던 서로.
닮은 부분이라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뿐인 그들.
그 둘의 부족함은 음악이 채워주고 둘의 이야기가 적힌 영화 속 스크린이 채워져간다.
Miluju tebe
감독&배우

이름 : 존 카니
필모그래피 :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등
특징 :
매번 음악 영화를 만들며, 원스에선 투박함과 어색함, 거친 영상을 다루어 만들었지만, 그런 어색함이 주는 감성을 잘 살리고,
비긴 어게인에선 몰락한 프로듀서, 바람난 톱 가수, 버림받은 연인의 이야기를 잘 다루었지만 원스의 색채는 잃어버린 듯 했으며,
싱 스트리트 에선, 청춘들의 음악이야기를 잘 다루었다.
매번 음악의 사운드트랙은 CD로 구매하여 소장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정도이다.


이름 : 글랜 핸사드
역할 : 그
필모그래피 : 원스, 원스 어게인,커미트먼트 등
특징 :
긴박한 느낌을 잘 주는 노래 'falling slowly'를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과 여유로운 감성을 주며 적당히 긴박한 느낌도 잘 주면서 불렀습니다.
실제 아일랜드의 인디밴드 'The Frames'의 보컬로 활동합니다.
노래에서는 특유의 감성이 잘 묻어나며, 여유로운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름 : 마르게타 이글로바
역할 : 그녀
필모그래피 : 원스, 원스 어게인
총 평
★★★★☆ 9.5/10.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며, &표시가 있는 부분은 스포일러 주의 표시입니다.)
-짧은 평가-
'비긴 어게인'이 프로 가수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 안에 생기는 갈등과 음악을 담았다면,
'원스'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존 카니' 감독의 초창기 작품으로 구조만 보면 정말 단순하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갈등요소도 없으며, 사족이 하나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아무 소스도 없는 샐러드 같다는 느낌이 처음에는 강합니다.
하지만, 음악이 등장하면, 위에 발사믹 소스가 뿌려진 듯 합니다.
역경, 갈등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강가에서 멀어저 가는 나뭇잎과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우리(관람객들)들이 그 나뭇잎처럼
잔잔히 흘러가며, 영화 원스라는 강의 한 가운대로 천천히 나도 모른체 가는 듯 합니다.
-더 현실적이라 여운이 남는 결말-
영화의 마지막을 달리다 보면, '그'와 '그녀'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그는 헤어진 전 애인을 잊지 못하였고, 그녀는 사실 이혼하여 아이가 딸린 엄마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자신을 사랑하냐 묻고,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체코말로 대답합니다. '너를 사랑해'라고 하지만,
그는 무슨 뜻인지 모른체..
그는 아침식사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은 둘 다에게 미련만 남고 돌아오지 못할 관계임을 직감하고,
그에게 내일 남편이 온다며 떠나고, 그는 그런 그녀에게 런던으로 작업을 하러 떠나기 전 피아노를 선물로 남겨주고 떠나며,
둘 다 자신의 바램과 서로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하였지만, 어느 한 편으론 둘다 실패했습니다.
분명 해피엔딩이지만,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과
항상 승승장구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면 잃는다는 일득일실의 느낌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다른 음악영화와의 차이점입니다.
그저 행복한 결말이 아닌 행복하지만, 현실적이며, 어딘가 쑤씨게 만드는 듯한 이 연출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10년 가까이 들어도 편안한 사운드트랙-
아마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게,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가족끼리 유럽 일주를 하며 유로스타 기차안에서 보았는데,
그 때는 다른 거는 잘 몰라도 음악은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계속 이 음악은 제 DAP와 아이폰,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글랜 핸사드의 부드러우면서 귀에 딱딱 박히는 듯한 보이스와
영화 특유의 감성과 여유로우면서 긴박한 느낌을 정말 잘 주는 듯한 노래입니다.
그 외로도 전체적으로 사운드트랙이 준수합니다.
-다소 특이한 연출-
이 영화는 꽤나 특이합니다.


주연인 '글렌 핸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캐릭터의 이름이 묘사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영화들을 돌려보며, 이름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이름은 누군가, 나 혹은 다른 이들의 정체성과 존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유바바가 치히로의 이름을 빼았습니다.
하쿠는 이름을 잊으면 되돌아올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만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음악에 포커스를 더 두며, 둘의 애정은 음악을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이름은 정체성과 존재라고 했는데, 둘이 서로 이름을 말하며 애정을 나누고 한다면,
이 영화에서 둘의 관계는 밋밋하다 느껴졌지만, 그 느낌이 없어지고 연인같다는 느낌을 줄거 같습니다.
저는 '연인같다는 느낌 = 존재감'을 없애기 위해 이름을 안 주었을 수도 있겠다. 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은유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습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음악을 표현한 영화인데, 둘은 실질적으로 애정을 나누거나 한 과정이 없습니다.
그저 말 몇마디와 음악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둘의 관계를 대충 유추하는 듯한 느낌의 연출도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뭔가 그냥 영상이 특이합니다
마치, 대학 동아리나 독립 영화나 다큐팀에서 찍은 듯 해서 현장감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소니의 6mm 캠코더로 촬영하여, 길거리 공연을 하며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는 것이
작위적인 것이 아닌 진짜 호응하는 것이 담겨 더 좋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방식-
우연히 그녀가 저녁에 지나가다 그가 자작곡을 부르는 걸 들었고,
우연히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렇게 둘은 서로 상부상조 하며 음악을 하며 사이가 가까워집니다.
그 후, 그녀와 작업을 하며 돈 문제와 프로듀싱 관련에서 서로 갈등이 없이 그냥 빠르게 해결됩니다.
다른 음악영화를 보면,
'비긴 어게인'에선 데이브가 그레타와 연인 관계지만, 음반회사의 직원과 바람을 피고, 둘은 헤어지게 되며, 그레타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댄은 원래는 그래미 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하고 유능한 프로듀서이지만, 영화에선 퇴물로 묘사되며 회사지분도 넘기고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되게 되며, 그러다 그레타의 음악성을 보고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영화에선 갈등요소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유심있게 볼 부분은, 두 남녀는 음악을 제외하곤 서로 접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국적도 아일랜드와 체코로 서로 다르며,
직업과 둘의 사회적 위치도 굳이 트러블이 생길 위치가 아닙니다.
그의 직업은 청소기 수리공이며, 그녀는 그저 직업이 묘사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는 아일랜드 토박이이며, 그녀는 체코 이민자입니다.
서로는 접점이 없으며, 접점이 없다 = 닿는 부분이 없다 =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도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닮은 부분도 비슷한 요소도 없는 둘이 친해지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음악 하나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게 더 이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매번 다른 감정-
이상하게 이 영화를 매년 다시보면,
다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이 영화를 보면, 그저 심심하기 짝이 없었고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봤을 땐, 음악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중학생 시절엔 그저 사랑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1~2학년 시절엔 보다 더 현실연인이 헤어지는 듯 했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뚜렷한 목표에 다다를수록 무언가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와 그녀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는 뮤지션이 되러 런던에 가듯,
그녀는 가족이 다시 재결합 되듯,
여운이 계속 남게 되는 몇 안되는 음악영화 였습니다.
난 당신을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당신을 원해요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JEONJU IFF 데일리] 불완전한 둥지 안에도 삶은 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눈을 사로잡는 섬세한 영상미의 영화 하나를 감상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앤드리아 아널드는 삶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감독인데요. 이번에도 그는 영국 하층민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현실을 포착하는 냉철한 시선 끝에 맺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영화 <베일리와 버드>입니다.
베일리와 버드
Bird

Summary
열두 살 베일리는 싱글 대디인 벅과 오빠 헌터와 함께 북부 켄트의 무단 점거한 집에서 살고 있다. 벅은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많지 않고 사춘기에 접어든 베일리는 집 밖에서 관심과 모험을 찾으려 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
출연: 니키야 아담스, 배리 키오건, 프란츠 로고프스키
날갯짓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은 사춘기 소녀 '베일리'입니다. 그는 비행 청소년, 양아치, 건달들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낡은 건물에서, 미성년자였던 시절에 자신을 낳은 아빠 '벅'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벅'은 그야말로 오늘 하루만을 사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면 버는 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죠. 내일에 대한 계획 없이 그날그날을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사는 아빠가 석 달 만난 새 여자친구와 또다시 느닷없는 결혼을 선포하자, '베일리'는 일상에 질려버린 채 집 밖을 맴돕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밖을 배회하던 '베일리' 앞에 새의 날갯짓이 만들어낸 바람처럼 홀연히 '버드'가 나타납니다. 오래전 헤어졌다는 가족을 찾으러 이 마을에 왔다는 '버드'. 둥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베일리'는 둥지에서 떨어진 듯한 '버드'를 돕기로 합니다.
겉보기에 '버드'는 몹시 유약해 보이는 인물입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자유로움과 그대로 추락해 버릴 듯한 위태로움이 공존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는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 '벅'이 뱉는 말에는 도무지 신뢰를 느끼지 못하는 '베일리'도 "Don't you worry"라는 '버드'의 말에는 강한 힘을 느낍니다. 얇고 연약한 깃털이 겹겹이 쌓여 바람을 가를 정도로 단단해진 날개로, 그는 '베일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합니다.
'버드'와의 만남은 '베일리'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결국 둥지를 완전히 떠나진 못했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 '베일리'. 그렇게 영화는 인간보다 더 큰 범위를 조망한다는 새의 눈을 가진 '베일리'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버드'를 연기한 독일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는 이 신비로운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펄럭이는 치마를 입고 옥상에 홀로 머무를 때의 모습은 정말로 새와 같은 형상을 떠올리게 했죠. 생각해 보면, <버드맨>부터 <애니멀 킹덤>까지 우리는 영화 안에서 인간이 새로 변신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새라는 존재가 가장 자연스럽게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버드'처럼 또 '베일리'처럼 다가올 바람을 기다리며 높게, 멀리 날아가기를 꿈꾸니까요.
⊙ ⊙ ⊙
이상적이진 않지만,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영화는 베일리와 버드의 관계만큼이나, 미성년자 부모가 구성한 가족의 형태에도 집중합니다. 아빠 ‘벅’은 14살에 첫째 아들 '헌터'를 낳았고, 머지않아 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베일리'를 얻었습니다. '베일리'의 엄마에게도 세 명의 자식이 더 있죠. 그러나 젊고 치기 어린 두 부모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아이를 잉태할지는 도무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만, 아이를 위한 적절한 환경을 준비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채 자라는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폭력에 노출되죠. '베일리'에게 세상의 전부는 무단 점거된 건물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양아치들뿐입니다. 그 너머의 세계는 인식되지도, 정의되지도 않았죠. 주먹을 휘두르는 오빠 '헌터'를 향한 분노도 ‘끼워주지 않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토록 불완전하고 위험한 환경에 놓인 '베일리'를 보며 아빠 '벅'에게 화가 차올랐지만, 어쩐지 영화가 흘러갈수록 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은 오묘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벅'은 자식들에게 "너희를 낳은 걸 후회해. 하지만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를 두고 누군가는 ‘비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포장한 대사’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상하다고 평가해 버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벅'은 아이가 귀가하지 않으면 걱정하고, 자신의 결혼식에 함께해주길 바라고, 아이가 괴로워하면 곁에 앉아 진심으로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베일리'도 끝내는 가족의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때, 영화가 포착한 베일리의 심정은 벗어날 수 없는 가족 안에서의 체념이 아니었죠.
너무 직설적이라서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 못해 그냥 외면해 버리고 싶은 가정의 모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삶이 다르니, 사랑의 모습도 다를 수 있습니다.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 안엔 저마다의 좌절과 희망이 있습니다. 누구의 방식이 옳다거나 틀렸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 이 영화는 그런 시선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One-Liner
고장 난 둥지에서도, 누군가의 품이 있다면 새는 자란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CGV전주고사 1관 10:30
2025.05.05(월)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13:30
2025.05.06(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
- [캐릭터 소개서] '팀 버튼'의 캐릭터 소개서
“어떤 영화를 사랑하게 하는 데에는 스토리, 대사, 연출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그러나 그 중에서도 빼먹을 수 없는 것은 단연 캐릭터이다. 특히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는 작품을 완전히 집어삼키기도 한다.좋은 감독과 좋은 배우가 만난다면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그 무엇보다 빛난다. 제대로 설정되기만 한다면,4개의 눈을 가지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 괴물들도 충분한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영원히 사랑받는다.[캐릭터 소개서]에서는 영화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강한 애정을 담아 소개한다.뽀글거리는 머리와 아이 같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가방에서 오래된 갈색 노트를 꺼낸다. 노트를 펼치자 눈알 없는 해골들, 입에서 벌레를 내뿜는 유령과 같이 생전 처음보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남들이라면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노트를 얼른 덮어버리려고 하겠지만, 남자는 노트 속 그것들을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괴기스러운 캐릭터들을 창조한 남자는 누구일까?그는 바로 할리우드의 대표 괴짜 감독 ‘팀 버튼’이다.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팀 버튼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배제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정말 미친 듯이 아름다운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팀 버튼의 노트를 펴고 그의 미(美)친 캐릭터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자.
‘첫 번째 캐릭터’<가위손/ 에드워드 시저헨드>
팀 버튼 감독의 노트를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한 남자의 그림이다. 사람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초췌한 표정.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시저헨즈’, 가위손이다.
- 영화 : 가위손 (1991)
- 감독 : 팀 버튼
- 출연진 : 조니 뎁, 위고나 라이더, 다이앤 위스트, 안소니 마이클 홀가위손이라 불리는 그는 인간이 아니고, 창조된 기계였다. 외로운 발명가였던 ‘빈센트’는 자신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심장을 가진 기계인 에드워드 즉, 가위손을 창조한다.그러나 빈센트는 에드워드에게 인간과 같은 손을 만들어주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결국,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위손 때문에 빈센트와 함께 살던 성에서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그런 그를 화장품 판매원 ‘펙’이 만나게 되고, 그를 마을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된다. 마을로 내려온 에드워드는 펙의 딸, ‘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에드워드는 마을에서 정원을 가꾸고 이발을 해주며 점차 적응하게 된다.그러나 킴의 남자친구 짐이 금고털이에 에드워드를 이용하려 하고, 마을 사람들이 차 사고의 범인으로 에드워드를 의심하는가 하는 등 에드워드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짐이 킴을 찾아와 폭행을 하자 결국, 에드워드는 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위손으로 짐을 살해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에드워드는 결국 쓸쓸히 성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사랑했던 킴의 모습을 얼음에 조각하는 에드워드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나게 된다.
영화 속 에드워드는 감독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기라도 하듯 기괴한 비주얼을 하고 있다. 새하얀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하며, 손에는 길고 날카로운 가위가 달려있다. 날카로운 가위를 가졌지만 병약하고 소심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관객들로 하여금, 에드워드에 대해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성에 사는 미스터리하고도 외톨이 같은 존재,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진 캐릭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동화 <미녀와 야수>일 것이다. 그러나 두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성을 가진다. 먼저 미녀와 야수에서의 야수는 처음에는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미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시련을 이겨내면서, 점점 따뜻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고 미녀와 결혼하게 되는 행복한 결말까지 맞이한다.반면 가위손 속 에드워드는 순수함과 기대에서 시작해, 시련을 겪었으나 야수와 다르게 결국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와 초월이라는 정서로 끝나게 된다. 에드워드는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겉모습과는 정반대로 그는 마을의 누구보다도, 아니 그 어떤 누군가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에드워드가 가졌던 기대와 희망은 결말을 더욱 아프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동화와 다른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 것이다.
팀 버튼의 영원한 페르소나 ‘조니 뎁’이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 바로 영화 가위손이다. 록 가수 출신이었던 조니 뎁은 당시에 영화를 몇 편 찍지 않은 신인 중에 신인이었다. 그러나 ‘게리 올드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톰 크루즈’ 등 당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그는 가위손 역할로 낙점받았다. 팀 버튼을 빠져들게 한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의 눈빛이 아마 그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광대나 피부 등 조니 뎁만의 특징은 많지만, 특히 그의 눈빛은 그 누구와도 다르다. 체념과 희망, 공허함과 가득함을 동시에 담은 눈빛은 가위손하면 그 어떤 배우도 생각나지 않게 하는 무언가이다.
가위손은 팀 버튼 감독이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림 속 남자는 길쭉한 체형에 날카로운 날들이 손에 달려있었다.
어린 시절 외톨이었던 팀 버튼 감독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난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날 그냥 혼자 두길 바라는 욕망 같은 것이 있었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알지 못한다."감독은 에드워드에게 날카로운 날을 달아주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타인과 멀리 떨어지면서도, 그 타인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에드워드에게서 겹쳐 보인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상실을 겪는다. 아버지 같던 빈센트를 잃는 데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킴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잃게 된다.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해 판단하고, 자신의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는데 너무나 익숙한 우리.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영화관을 나가면 우리는 금세 감각기관이 판단하는 것을 제외한 것들은 외면할 것이다. 가위에 스쳐 조그만 생채기가 날까 한걸음 떨어지기 이전에, 나의 한걸음이 누군가에게 느껴질 수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두 번째 캐릭터’<잭 스켈링턴>
다음으로 노트의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허한 구멍만 있고,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이것. 하얀 뼈와 검정 줄무늬 정장은 마치 한몸인 것처럼 붙어있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잭 스켈링턴’이다.
- 영화 :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1993)
- 감독 : 헨리 셀릭
- 원안: 팀 버튼
- 출연진 : 크리스 서랜던(노래: 대니 엘프먼), 캐서린 오하라, 켄 페이지, 패트릭 스튜어트잭 스켈링턴은 할로윈 마을에 사는 인기스타이다. 그러나 그는 매번 같은 할로윈 준비를 하면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방황을 하던 그는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에 가게 된다. 그는 크리스마스 마을을 보며 사라졌던 열정을 되찾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게 된다. 잭은 자신이 산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락’, ‘쇼크’, ‘배럴’ 세 악동에게 원래의 산타를 조심히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악동들은 악명 높은 악당, ‘우기 부기’에게 말하지 말고 정중히 모시라는 잭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산타를 우기 부기에 넘기게 된다. 잭을 사랑하는 ‘샐리’는 크리스마스에 완전히 빠져 이성을 잃은 그을 막기 위해 안개를 만들면서까지 방해하지만, 잭은 뼈돌프(?) 애완견 제로의 도움으로 무사히 출발한다.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크리스마스를 상상한 잭의 선물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인형 대신 괴물이, 강아지 대신 구렁이가 들어있는 등 그는 크리스마스를 망쳐버렸다. 그 와중에 샐리는 산타를 구출하려다 오히려 우기 부기에게 잡히고 만다. 잭 역시, 잭의 행동을 크리스마스 테러로 느낀 사람들에 의해 대공포 공격을 당하고 격추당하게 된다. 잭은 떨어진 망가져버린 자신을 보며, 실수를 깨닫고 호박의 왕인 자신의 원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잭은 마을로 돌아가 우기 부기와의 치열한 결투를 통해 샐리와 산타를 구출한다. 잭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산타는 크리스마스를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날로 되돌린다. 산타는 할로윈 마을에 눈을 내려주고, 잭은 샐리와 함께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해골의 왕이라는 별칭처럼 잭 스켈링턴은 할로윈 마을 내 사교적이고 인기 많은 리더이다. 할로윈의 준비와 결정을 잭에게 검토받을 정도이다. 그렇게 잭과 작중에서 표면적인 갈등을 보이는 인물은 사실상 우기부기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오히려 완벽한 삶 때문일까? 잭은 내면의 공허함을 겪고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공허함을 이겨내기 위해 충동적이지만, 추진력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잭의 크리스마스 계획은 결국 실패하지만, 잭은 거기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 자신의 역할인 할로윈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 즉, 크리스마스를 만드는 잭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잭을 성찰하게 하고, 성장시킨 것이다. 잭은 자신이 망친 크리스마스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로 잡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잭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이상적이고 능력 있는 리더 캐릭터이다. 특히, 모난 점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해당 영화 전후의 팀 버튼의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캐릭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흥적이지만, 훌륭히 조직을 이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를 떠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잭은 가족과 관련된 내면의 아픔을 갖고 있으며 특정 순간마다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웡카와는 다르다. 잭의 구구절절한 과거 이야기나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영화에서 크게 다루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적극적인 캐릭터의 매력만이 훌륭하게 보여준다. 작중에서 관객은 잭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는데, 잭의 기다란 팔다리가 만들어가는 춤과 쾌활하고 능동적 성격은 우리에게 한편의 즐거운 뮤지컬을 보는듯한 느낌을 선사한다.잭의 비주얼로 돌아가 더 알아보자면 먼저 하얀 해골 모양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둥글고 큰 머리에는 코가 없고,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입은 길고 가로로 넓게 벌어져 있으며, 선처럼 가늘게 그어진 이빨이 보인다. 마치 이모티콘처럼 미니멀한 잭의 디자인은 그의 표정이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보여지도록 한다. 이 때문에 잭은 무서운 존재와 친근한 존재를 넘나들게 된다. 할로윈 마을의 인물들이 가진 작은 키와 대비되는 잭의 큰 키는 잭을 돋보이게 하며 그를 자연스럽게 리더로 여겨지게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그의 가늘고 긴 팔다리가 만든 몸짓 하나하나는 동작을 경쾌하게 보이게 하며, 그를 우아하고 고딕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해당 작품은 팀 버튼이 원안을 제공했을 뿐, 감독까지 맡지는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격이나 비주얼 등 인물의 캐릭터성을 만드는 데에는 팀 버튼의 아이디어가 강하게 반영되었다. 세심한 캐릭터 설정이 특징인 팀 버튼의 캐릭터답게, 잭이 고민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고 진정한 가치를 찾는 모습도 적절히 등장한다. 당신이 뛰어난 미장센에 주제의식이 숨겨지듯이 담긴 영화가 보고 싶다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추천한다.
‘세 번째 캐릭터’
<빅터 프랑켄슈타인>
노트의 왼쪽 아래에는 한 소년이 그려져 있다. 커다란 눈과 언밸런스한 체형은 해당 인물 역시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앞서 본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잭과의 파격적인 비주얼과는 다르게, 해당 캐릭터는 비교적 깔끔하고 얌전해 보이기도 한다. 소년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지금부터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보자.
- 영화: 프랑켄위니 (2012)
- 감독: 팀 버튼
- 출연진: 캐서린 오하라, 마틴 쇼트, 마틴 란도우, 찰리 타핸‘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내성적인 소년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는 애완견 ‘스파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파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엄청난 슬픔에 잠긴 빅터는 과학의 힘으로 스파키를 살려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빅터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과 그의 재능으로 번개 실험을 하게 되고 스파키를 되살린다. 그러나 스파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빅터의 친구들, 이웃들이 알게 된다. 다른 아이들도 빅터의 실험을 흉내 내면서 다양한 동물들이 괴물처럼 변하게 되자 결국, 마을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실험이 가져온 결과에 빅터는 책임을 지고 스파키와 함께 마을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역시 실험으로 탄생한 고양이와 박쥐의 충격적인 결합체, ‘미스터 위스커스’는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고 빅터의 소꿉친구, ‘엘사 반 헬싱’과 스파키의 여자친구, ‘페르사포네’를 풍차로 납치한다. 빅터와 스파키는 엘사와 페스사포네를 구하는 데 성공하지만 빅터는 탈출에 실패한다. 빅터를 구하고자 스파키는 ‘미스터 위스커스’와 다시 한번 대결을 펼치게 된다. 스파키는 대결에서 승리하지만, 풍차에 깔려 다시 한번 죽는다. 그러나 빅터가, 다시 한번 스파키를 살리고 빅터와 스파키가 다시 재회하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프랑켄위니>의 원작은 팀 버튼이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1984년 만든 동명의 실사 단편 영화이다. 1984년 단편 영화 <프랑켄위니>는 장편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애완견 스파키를 잃은 빅터가 번개의 힘을 통해, 스파키를 살린다는 설정은 동일하다. 그러나 박쥐 고양이가 아닌 이웃들이 스파키를 괴물로 오해하며 혼란과 갈등이 생긴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팀 버튼 감독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애완견과 이별한 아픔과, 흑백의 화면처럼 고전 공포 영화 시대의 느낌을 결합해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1930년대 고전 공포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해당 작품을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기획했으나 좋지 못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팀 버튼은 세월이 지나 작품의 스토리를 확장하고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더해 2012년,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다.
팀 버튼의 특징인 자전적인 이야기 구성은 해당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빅터에게는 과학이, 팀 버튼에게는 그림이라는 평생을 바칠만한 취미가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자신만을 전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닌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강아지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아마 주인만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특성 때문은 아닐까 싶다. 밖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일이 있었든지, 나라는 이유로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존재를 찾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작품을 보다 보면, 팀 버튼의 B급 유머를 통한 클리셰 비틀기가 적절히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작게 본다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대결구도는 우리에게 흔한 구도이다. 물론 <에이리언 시리즈>, <아바타 시리즈>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의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인간을 욕심 많고 악한 존재로 묘사할 것인지, 아니면 재앙의 피해자로 묘사할 것인지의 차이는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그러나 감독은 작품의 빅터와 미스터 위스커스의 대결에서 빅터를 먼저 리타이어시키고 스파키와 미스터 위스커스를 대립시키면서 인간이 아닌 생명체끼리의 대결을 성사시킨다. 이러한 구도는 클리셰의 전환을 보여줬으며, 특히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 강아지 vs 고양이의 대결이라는 점 역시 웃음을 유발한다. 작품의 결말 역시 진정한 죽음이니 뭐니 하면서, 스파키를 떠나보내며 작품을 끝내는 게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로 살린다는 점 역시 팀 버튼답다는 느낌을 준다.
작중의 빅터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감독의 작품의 많은 인물이 보여주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아웃사이더의 성격을 전부 가지고 있다. 죽은 동물을 번개로 되살린다는 점 외에는,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비교적 현실성 있는 설정을 가진 만큼 빅터에 공감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랑하기 때문에 되살린다’라는 간단한 논리구조는 원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와는 다른 숭고한 목적이다. 팀 버튼 감독의 많은 캐릭터는 대부분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앞서 본 ‘에드워드 시저헨드’와 ‘잭 스켈링턴’도 마찬가지이다. 빅터 역시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며, 스파키에 대한 강한 연대를 보여준다. 특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에드워드 시저헨드와 잭 스켈링턴, 그리고 뒤에 나올 비틀쥬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팀 버튼의 무수한 캐틱터들 중 그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캐릭터는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가족과 친구, 마을 사람들과도 교류가 적은 편이지만, 오직 한 존재 스파키와의 우정과강한 연대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끈다. 빅터는 스파키에 대한 강한 사랑과 애정으로 다른 것들을 애써 외면한다. 눈이 멀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해 본 적이 있던가. 순수함이 보여주는 투명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프랑켄위니>를 통해 한번 느껴보자.
‘네 번째 캐릭터’
<비틀쥬스>
어느덧 노트의 마지막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면 두 인물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세월이 지나 옷이 달라지고 주름만 생겼지, 똑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까맣게 칠해져있는 눈두덩이와 산발이 된 머리. 숨겨지지 않은 가벼움과 광기는 결코 감출 수가 없다. 마지막 그림의 캐릭터는 ‘비틀쥬스’이다.
- 영화 : 비틀쥬스 (1988) / 비틀쥬스 비틀쥬스 (2024)
- 감독 : 팀 버튼
- 출연진 : [공동] 마이클 키튼, 위고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단독] 비틀쥬스: 알렉 볼드윈, 지나 데이비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제나 오르테가, 저스틴 서로‘비틀쥬스’는 36년의 세월을 거쳐, 두 영화나 출연한 귀한 몸이다.먼저 1988년에 개봉한 <비틀쥬스>이다. 영화는 ‘아담’과 ‘바바라 메이틀랜드’ 부부가 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결국 알게 되고 유령들의 법에 따라, 자신들의 집에 머무는 유령이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집에 뉴욕 출신의 디츠 가족이 이사 오게 되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집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자신들의 집을 망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아담과 바바라는 자신들의 집을 지키기 위해 디츠 가족을 쫓아내려 하지만, 그들은 겁을 주는데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디츠 가족도 그를 보지 못한다.결국, 메이틀랜드 부부는 최후의 방법으로 바이오 엑소시스트 전문가(인간 퇴치사)인 ‘비틀쥬스’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비틀쥬스는 난폭하고 미치광이 같은 성격의 유령으로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비틀쥬스는 디츠 가족 중에 유일하게 유령을 볼 수 있는 딸 ‘리디아’와 결혼해 세상으로 나가려는 다른 목적이 있던 유령이었다. 결국 비틀쥬스가 디츠 가족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자, 메이틀랜드 부부와 리디아는 그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게 된다. 결국, 리디아와 메이틀랜드 부부는 비틀쥬스를 물리친다. 메이틀랜드 부부는 자신들의 집에서 평화롭게 살게 되며, 디츠 가족도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게 된다.다음은 2024년 개봉한 <비틀쥬스 비틀쥬스>이다. 해당 작품은 어머니가 된 ‘리디아’를 중심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리디아는 여행가였던 남편을 잃고, 1편에도 나왔던 새어머니 ‘딜리아’와 딸 ‘아스트리드’와 살고 있다. 전작에 등장한 메이틀랜드 부부는 떠났다는 설정이다. 그러던 중 새 사진을 찍으러 간 리디아의 아빠이자 딜리아의 남편인 찰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족들은 찰스의 장례식을 위해 그들이 살던 윈터 리버로 돌아간다. 그렇게 찰스의 장례식을 마치고, 리디아와 남자친구 로리의 갑작스러운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가족들은 윈터리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혼자 자전거를 타던 아스트리드는 나무에 부딪히고, 나무 위에서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과 시간을 보내던 와중 소년은 자신이 유령이며, 아스트리드에게 아빠를 만날 수 있으니 함께 저승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소년을 믿는 아스트리드는 저승에 가지만, 사실 그 소년은 연쇄살인마 출신 유령으로 아스트리드를 제물로 바치고 자신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을 알게 된 리디아는 딸을 위해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 비틀쥬스의 도움으로 리디아는 아스트리드를 구하지만 이번에도 비틀쥬스는 리디아에게 결혼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기지를 발휘해 계약이 무효임을 증명하고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비틀쥬스가 저승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마이클 키튼’의 미친 연기로 팀 버튼의 이름을 알리는데도 일조한 비틀쥬스는 정말 광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1편과 달리 2편에서는 비틀쥬스의 캐릭터성이 악당에서 조력자로 전환되긴 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아기 비틀쥬스 출산 공격, 내장 내뿜기, 괴물 선물 등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괴롭히는 비틀쥬스의 스킬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다. 비틀쥬스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성격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인간퇴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비틀쥬스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나 비틀쥬스의 시시콜콜한 과거 이야기는 1편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36년이 지나, 2편이 되어서야 ‘델로레스’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그의 과거 이야기가 짧게나마 나온다. 비틀쥬스는 수백년 전,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시기, 델로라스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던 델로레스가 자신을 포도주로 독살하려는 것을 알게 되자, 델로레스의 머리를 토막내어 함께 저승에 간다. 하지만 2편에서 부활환 델로레스는 어쩐 일인가 비틀쥬스를 아직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를 끊임없이 스토킹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틀쥬스에게 숨겨진 마초적인 매력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웠을까. 비틀쥬스는 델로레스에게 도망을 다니며 여전히 리디아에게만 결혼을 요구한다. 이처럼 마초적이면서도 순애보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비틀쥬스의 이중적인 캐릭터성은 “그게 비틀쥬스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관객을 수긍하게 한다. 비틀쥬스는 한번 할 때는 제대로 하는 쿨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오래전, 자신을 뒤통수친 리디아가 다시 한번 자신을 소환하자 과거를 잊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연쇄살인마 유령을 정의구현하는데 물심양면 돕는다. 물론 그의 도움과 상관없이 이번에도 얼얼한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말이다.
저승에서 보내는 수백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유연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다는것도 비틀쥬스가 굉장히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편에서 그는 변변치 않아보이던 인간퇴치사 즉,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다. 그러나 36년의 세월이 지나자, 밥을 포함해 많은 직원을 둔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는 점도 그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비틀쥬스는 야심을 갖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이 교활하다고 말하겠지만, 체계적인 계획으로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도 사실 능력이다. 거의 썩은 듯한 푸석푸석한 피부, 녹색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기괴한 메이크업 그리고 과장된 리액션과 표정까지 비틀쥬스하면 생각나는 비주얼은 이와 같다. 그의 비주얼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막무가내이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작품에 큰 혼란을 유발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비틀쥬스의 다양한 캐릭터성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비틀쥬스>와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사실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 상실과 기억, 그리고 사랑을 담았다는 것이 <비틀쥬스 시리즈>가 공통으로 가진 주제의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가 다소 오글거리고 썩 내키지 않는다면, 비틀쥬스에만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주제와 가치를 오염시키지 않는 선까지만 엇나가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는 비틀쥬스. 그 존재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지금까지 순수와 공포가 공존하는 팀 버튼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해 알아봤다. 부디 그의 캐릭터들과 함께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세계에 마음껏 빠져들고 싶어졌기를 바란다.
-
- 음악영화지만 무섭다, 하지만 재미있다. | 영화 위플래쉬
혹시 음악영화 좋아하시나요?~
보통 음악영화라고 하면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멋진 연주와 그에 맞는 사랑을 꽃피워야 할 것 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잖아요?!
오늘 소개할 위플래쉬 라는 영화는 분명 음악영화이지만, 그 속에는 광기와 피로 물든 노력이 담겨있어요. 지금까지 봤던 음악영화 중 기억에 오래오래 남았던 영화 위플래쉬 입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음악, 스릴러
감독 / 각본 : 데미언 샤젤
출연진 : 마일스 텔러, JK 시몬스
개봉일 : 2015년 3월 12일
평점 : 8.88
스트리밍 : tvN , 웨이브, 쿠팡, 왓챠
기획의도
"박자가 안 맞잖아, 다시"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 신입생 '앤드류'
최고의 지휘자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레쳐'교수는
폭언과 학대로 '앤드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인다.
드럼 주위로 뚝뚝 떨어지는 피,
빠르게 달리는 선율 뒤로 아득해지는 의식,
그 순간, 드럼에 대한 앤드류의 집착과 광기가 폭발한다.
최고의 연주를 위한 완벽한 스윙이 시작된다!
.jpg)
여담
영화 위플래쉬는 입소문과 인기에 힘입어 2020년 10월 28일 재개봉을 했다고 한다! (아~ 왜 이때는 몰랐을까~)
영화 위플래쉬는 평론가 이동진의 5점을 받은 영화이다. "JK 시몬스의 명언조차 이 영화의 탁원한 성취 중 일부분일 뿐." 이라는 감상문을 남길 만큼. 이 영화는 단순 음악영화를 뛰어넘은 영화였다.
.jpg)
후기 및 결말
위플래쉬 결말을 살펴보자면 결전의 날, 앤드루에게 플레처가 조용히 다가와 말 한마디를 건네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네놈이 찔렀잖아"
라는 말과 함께 그동안 연습했던 곡이 아닌 새로운 곡으로 연주는 시작이 된다.
그동안 연습은 "위플래쉬"만 연주했던 앤드류는 잠시 절망에 빠지지만, 플래처가 지휘할 틈도 없이 앤드루가 순식간에 밴드를 장악하며 "캐러번"연주가 시작된다. 연주가 끝났음에도 앤드루는 드럼 솔로를 이어가며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광기의 찬 표정으로 드럼을 연주하며 결국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하며 앤드류의 미소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이 넘쳐나는 기존 영화는 다르게 오직 두 사람의 심리와 표정 그리고 음악으로 이 모든 것을 다 표현한다.
분명 저예산 영화인데도 그 어떤 영화보다 아름답고 멋지게 잘 만들었다.
이제 재개봉은 당분간 안 할 것 같으니!! 침대 위에서 맛있는 팝콘과 함께 위플래쉬 영화 한편 어떨까 싶다. 이 영화 안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빨랐을까, 느렸을까"
대사가 절대절대 사라지지 않는 영화
위플래쉬! 꼭 보세요 두번보세요! 세번 보세요!
-
-
-
- 영화 <피그> 런칭 예고편
이름을 버린 남자 '롭'이 사라진 트러플 돼지와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은 마스터피스 드라마 [피그]
-
- 넷플릭스 <언포기버블> 공식 예고편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 강력 범죄 혐의로 장기 복역 후 출소한 루스 슬레이터(산드라 블록). 그러나 다시 발을 들인 사회는 그녀의 과거를 용서하려 들지 않는다. 한때 집이라고 여겼던 곳에서 심한 편견에 부딪히는 루스.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유일한 희망은 어쩔 수 없이 두고 온 여동생을 찾는 것뿐. 산드라 블록, 빈센트 더노프리오, 존 번탈, 리처드 토마스, 린다 이먼드, 애슐링 프란초지, 롭 모건, 바이올라 데이비스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