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CINELAB2021-06-08 15:51:13

사이드가 아니라고

소수자를 다루는 영화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

이번 주에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개봉했다. 흑표당의 대표자로 활동하다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프레드 햄프턴(다니엘 칼루야 분)과 흑표당 내부의 스파이 이야기를 그린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농구선수를 꿈꾸는 부기의 이야기인 <부기>다. 두 영화 모두 미국 내에서 아직도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흑인과 아시아인을 다뤘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떨떠름한 기분이 지워지지 않았다. 소수인종들의 대표자는 늘 남성이어왔고 두 영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헬프>나 <히든 피겨스> 등을 통해 조명된 적이 있지만 아시아계 여성의 이야기는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두 영화에서 특히나 답답했던 건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이다. 단순히 비중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상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아직까지 영화 제작에 여성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에 등장하는 흑표당의 여성 당원들은 성희롱의 대상이거나 연애 대상으로 다뤄진다. 총을 들고 싸우는 여성 당원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메인 타이틀롤인 프레드 햄프턴과 내부 스파이가 된 빌 오닐(러키스 스탠필드 분)의 존재감에 비하면 없어도 될 만한 캐릭터들이다. 유일하게 높은 비중을 자랑하는 데버라(도미닉 피시백 분)조차 등장부터 프레드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결국 프레드의 아이를 임신하고 영화 마지막에는 프레드 햄프턴 주니어의 어머니로 서사를 마감한다. <부기>의 여성 캐릭터들은 더 심각하다. 엘레노어(테일러 페이지 분)는 운동을 하러 간 곳에서조차 부기(테일러 타카하시 분)의 성희롱 대상이 되고 이는 10대 소년의 치기로 묘사될 뿐 문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엘레노어의 운동 장면을 조명할 때 관음적인 시선으로 엘레노어를 훑는 카메라 자체가 남성들의 시각을 투영한 부기의 시선이다. 관심이 있으면 놀려도 되고 성희롱을 해도 된다는 20세기적 발상을 21세기 서구권 영화에서 봐야 한다니 관객으로서 그저 불쾌할 따름이다.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하거나 차별받는 입장에 놓인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임신했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대화가 있다.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가 가족에 집중해주길 바라지만 남성 캐릭터는 그럴 여력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대화의 끝은 자연스럽게 여성 캐릭터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남성 캐릭터의 발목을 잡거나 여성 캐릭터가 사회적인 의제보다는 자신과 아이에 집중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영화 말미에는 데버라 또한 흑인 인권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이었음을 드러내는 글귀가 등장하지만 정작 영화 서사에서 데버라는 프레드의 이상에 현실을 끼얹는 존재로 그려진다. 데버라는 스크린에서 프레드의 연애 상대이자 프레드의 아들의 어머니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서사의 절반 이상을 임신 상태로 소비당한다. 데버라 존슨이 흑인 인권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전혀 그려지지 않은 채 마지막 한 줄로 변명하듯 데버라의 서사를 남겨줄 뿐 영화는 데버라의 서사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데버라와 프레드의 연애 서사는 흑표당의 역사에서 정녕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었나?

 

부기에게 엘레노어는 연애 대상인 동시에 남성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도구로 소비된다. 엘레노어가 자신의 숙적인 몽크(팝 스모크 분)와 연애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기는 엘레노어와 대화하는 대신 분노한다. 엘레노어와 교감하는 시간에도 엘레노어를 기쁘게 해주기 보다는 자신의 남성성을 끊임없이 확인받으려 드는 부기는 엘레노어와의 대화에서 단 한번도 성인다운 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 엘레노어뿐만 아니라 가족, 코치와도 이런 대화를 나누지 못하며 그게 부기의 캐릭터성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부기가 친구인 리치와 나누는 대화와 비교해 보면 엘레노어와의 대화가 더 극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기는 리치와 농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지만 엘레노어와는 누가 더 비참한지 싸워 이기려 든다. 자신을 괴롭히는 5000년의 중국 역사를 들먹이는 부기에게 엘레노어는 자신에게는 역사가 없다고 응수한다. 흑인이나 아시아계나 미국에서는 소수인종에 해당하는데 애초에 누가 더 바닥인지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기나 한가 싶을 만큼 부기와 엘레노어의 언쟁은 소수인종 간의 논쟁으로서도, 연인의 애정 싸움으로서도 별 기능을 하지 못한다. 부기에게 엘레노어는 소수자성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남성성을 확립시켜 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프레드 햄프턴에게 데버라 존슨은 결국 서사의 비극성을 극대화시켜주는 존재일 뿐이며 데버라 존슨 자신에게 임신이라는 상황은 약자의 상황에서 더한 약자로 치닫는 도구로 변질되어 버린다. 영화 말미 흑표당 당사에 들이닥친 경찰은 임산부가 있다는 말에 데버라를 향한 총질은 멈추는 대신 데버라의 배에 총구를 들이댄다. 데버라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보호자로서 경찰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부기는 중국에 가느냐 미국에 남느냐의 상황에서 중국행을 택하고 엘레노어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엘레노어도 몽크와 교제한 과거를 말하지 않았으니 서로 거짓말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변명한다. 엘레노어가 몽크와 연인이었던 것은 부기를 알기 전이었고 현재 부기와의 관계에 있어 영향이 없다. 하지만 부기는 미래에 대한 논의를 엘레노어와 하지 않음으로써 관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을 감추고 엘레노어를 자신과 동등하게 시간을 보낼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부기와 프레드 모두 자신의 연인을 삶에 대한 주체성을 가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비극 서사에 매몰되어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으로만 치부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크게 실패했다.

 

소수자를 다루는 이야기는 언제고 필요하다. 흑표당의 역사에서 크게 부각되었던 많은 인물들과는 달리 프레드 햄프턴이 서사의 주체가 되어 주목받은 것은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최초라고 한다. <부기>는 실화 기반 영화는 아니지만 미국 내 현재 아시아인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이민자 2세로서 두 문화 사이에서 겪는 고민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두 영화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서사에서 한 성별이 의도적으로 대상화되고 주변부에 머무른다면 결국 소수자가 소수자를 만들어내는 아이러니가 탄생하고 만다. 관객의 절반이 데버라와 엘레노어의 성별을 공유한다면 그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려줄 필요가 있다. 단 어머니나 연인으로서의 서사가 아닌 데버라와 엘레노어 그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작성자 . CINELAB

출처 . https://brunch.co.kr/@screenholic/55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