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6-29 09:24:43
이토록 정치가 재밌을 줄이야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 시즌2 리뷰
항상 정치를 다루는 뉴스는 엄청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이렇게 묘사되는 딱딱한 정치판을 재미와 스릴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꿔버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 이 마약 같은 정치 드라마는 2013년에 넷플릭스에서 처음으로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다. 마이클 돕스라는 영국의 전 정치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첫 오리지널 작품인 만큼 힘을 팍 준 게 느껴진다. <파이트 클럽>과 <조디악>을 연출한 거장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자로 참여한 덕인지는 몰라도 드라마의 결은 유려하면서도 차갑다. 그 속에는 미국 정치의 민낯이 생생히 반영되어 있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도 이 드라마를 보고 실제 미국 정치와 거의 비슷하다고 언급까지 할 정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은 냉혹한 정치인 프랜시스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다. 그는 시즌 1 ~ 시즌 2 내내 워커(마이클 길) 대통령과 대립하며 그를 끌어내고 대통령이 되려 한다. 그 야심을 안 모양인지 다양한 정치적인 장애물들이 프랜시스를 괴롭히지만, 정치, 경제, 언론 등 다양한 수를 동원해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물리쳐간다. 심지어는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괜히 거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 최소한 나는 나에게 프랜시스가 발휘하는 냉혹한 술수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이런 점에서 프랜시스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은 이 감정을 극대화시켜주기 위한 연출적 묘수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프랜시스의 냉혹한 모습은 현실 정치 속 정치인들이 부리는 술수, 발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예방주사 같은 역할도 한다. 실제 예방접종도 사람의 몸에 약화시킨 바이러스를 주입시켜서 면역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유권자들의 각성일 것이다. <웨스트윙>과 반대로 정치판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모습을 시뮬레이션해줌으로써 유권자들이 남발되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좀 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정치판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대리해주는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하우스 오브 카드>가 단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유다.
프랜시스는 시즌 3부터 이런 반면교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게 될 것 같다. 현재 시즌 3를 정주행하고 있는데, 거기서 대통령이 된 프랜시스가 여러 실책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1 ~ 시즌 2 내내 발휘된 지혜가 무색하게 말이다. 내가 이러한 변화를 <하우스 오브 카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역할 변화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계속 이야기했듯 시즌 3 이전에는 프랜시스의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봤다면, 그 이후에는 절대 악인이 된 프랜시스가 자신이 부당하게 얻은 왕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몰락하는 모습을 키득거리며 지켜보면 되니까. 과연 시즌 3가 끝나면 어떤 평가를 남길지 기대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지네마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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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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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호불호가 갈리는 지브리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는 벌써 1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요. 호평과 혹평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데요 다들 보셨나요? '난해하다' '지루하다'라는 반응과 이를 반박하는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이어지면서 관객들 사이에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관객들의 'n차 관람'까지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대표적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작
<바람이 분다>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개봉 첫 주말에 흥행 독주를 이어가며 1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30일>은 누적 관객 180만명을 돌파하여 식지 않는 열기를
입증하며 2위, 25일 개봉한 <용감한 시민>이 3위에 올라섰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인기 호러 게임 Five Nights at Freddy’s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화 영화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첫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조회 수 1000만 회 및 유튜브 인기
급상승 1위를 달성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7~29일 7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음 달 15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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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코엔 형제 작품. 다시 봤다. 다시 보고 또 놀랐다. 먼저, 영화 제목을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코엔 형제가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영화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알았다.
예이츠의 시 가운데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가져온 구절로 원래는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예이츠의 시를 읽어보자.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팔짱 낀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노래하고 있는 저 죽어가는 세대)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연어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모두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엔 관심이 없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늙은이란 하찮은 것)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막대기에 걸친 누더기일 뿐이리라)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육신의 옷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영혼이 좋아 손뼉치고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그래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왔다)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아 벽의 황금 모자이크 그림 속에 있는 듯)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성현들이시여,)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그 성화에서 원을 그리며 내려오셔서)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 주시라.)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내 심장을 다 태워버려 주시라, 욕정에 병들고)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죽어갈 동물성에 매어)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심장을 -그리고 나를 거두어 주시라)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영원히 죽지 않은 예술품 안으로.)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자연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어떤 자연물에서도 내 육신을 취하지 않으련다.)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대신 그리스의 금 세공인들이 망치질한 금과)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황금 유약을 발라 만든 형체를 취하여)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련다.)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아니면 황금 가지 위에 앉아)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비잔티움의 귀족과 부인들에게 노래해주련다)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지나간 것과 지나가는 것들, 그리고 다가올 것에 대해.)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다. 어느쪽이든, 이 영화를 상징하는데 있어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원작 소설을 쓴 코맥 맥카시는 미국 작가로 하드보일드한 액션 스릴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액션 스릴러'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하드보일드한 것만은 틀림없다.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텍사스의 사막 근처에 살고 있는 주인공 모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약 거래 현장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돈가방을 발견한다. 그리고 냉혹한 살인자 안톤 쉬거에게 쫓긴다.
돈가방을 갖고 도망다니는 주인공, 그를 쫓는 살인마 안톤 쉬거, 두 사람을 추적하는 지역보안관. 여기서 '노인'은 지역 보안관 에드를 말한다. 삼대를 이어 지역 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는 에드는 노련한 경찰이지만, 무차별,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옛날을 그리워한다.
영화 제목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영화 끝부분에 에드와 다른 보안관이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품위와 존경의 시대가 사라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노인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을 끄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개성 있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때로 엉성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하는 대사는, 웃음과 함께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칼슨 웰즈를 보자. 그는 최근에 HBO의 미니시리즈 '참 형사(트루 디텍티브)'에도 주연으로 등장한 배우인 우디 해럴슨인데, 여기에서는 겉멋든 킬러로 등장한다.
살인마 안톤 쉬거를 처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등장해서 뭔가 멋진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그는 짧은 시간에 무수한 대사를 늘어 놓지만 결국 안톤 쉬거에게 맥없이 죽고 만다.
또한 주인공 모스 역시, 거의 살인마를 따돌리고 한숨 놓기 직전에 어처구니 없게도 멕시칸 갱에게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장모 때문이다. 살인마 안톤 쉬거 역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모스의 아내 칼라를 찾아가 죽이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죽지는 않았지만 부러진 뼈를 감싸고 사라진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는데, 보안관 에드 역시 퇴직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노인은 입을 닫는다. 즉, 돈과 마약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인의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는 총이 필요 없던 과거의 보안관 선배들 이름을 나열한다. 그때가 그래도 인간적인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미치광이의 시대라고 말하며. 그리고 곧바로 안톤 쉬거가 보안관에게 붙잡혀 경찰차에 태워지고, 수갑을 찬 채 보안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전화로 보고를 끝낸 보안관을 목졸라 죽이는 안톤 쉬거. 그의 두 팔목에 수갑에 긁힌 핏자국이 선명하고, 발버둥친 보안관의 발쪽으로 어지러운 흔적이 가득하다. 보안관 차를 훔쳐타고 나온 안톤 쉬거는 앞서가던 자동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살해한다. 그의 살인에 동기가 있을까.
텍사스주 테럴 카운티의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모스는 우연히 갱들이 서로 죽고 죽인 현장을 발견한다. 다섯 대의 트럭과 주위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는 사람들. 그는 한 트럭에서 가득 찬 마약을 발견한다. 아마도 마약 거래를 하던 자들이 서로 총질을 해서 모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이다. 모스는 분명 근처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무 아래 죽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 옆에는 가방이 있고, 그 가방 안에 2백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모스는 돈가방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트럭에서 죽어가던 사람이 물을 달라던 말을 기억하며 내키지 않지만, 물통을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한밤중, 물을 달라던 멕시코인은 이미 죽었고, 모스는 다시 돌아가려하지만, 갱단의 일행이 도착하고, 모스는 쫓기게 된다.
모스의 운명은 여기서 갈린다. 범죄 현장에서 돈가방을 발견한 것은 행운일지 모르나, 그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사람이 그냥 죽는 걸 지켜보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가 물을 가지고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부자로 살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신의 의지이며, 그 선택에 따라 다시 운명이 갈리는 아이러니는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모스는 돈가방을 들고 도망하고, 아내는 오데사로 보낸다. 범죄 현장에 차를 두고 도망했기 때문에 이미 그의 정체는 드러났고, 돈을 찾기 위해 범죄조직에서 자기 뒤를 쫓아 올 거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안톤 쉬거는 사막의 주유소 매점에 들르고, 매점 주인과 신경전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매점 주인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맞닥뜨린다. 살인마 안톤 쉬거는 차를 뺐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싸이코패스인데, 매점 주인과의 동전 내기에서 매점 주인의 선택이 맞자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매점을 나간다. 이건 그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뜻이다.
안톤 쉬거는 두 남자를 만나 범행 현장에 도착하고, 돈가방 안에 들어 있는 추적기를 찾을 수 있는 송신기를 받는다. 그리고 두 남자를 살해한다. 양복을 입고 추적 송신기를 들고 나타난 두 남자를 미루어 짐작하면, 마약범죄조직을 체포하기 위한 위장 거래를 하던 경찰 수사관 또는 마약단속국(DEA), FBI 요원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돈가방을 지닌 채 죽은 사람은 경찰이거나 FBI 요원 또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비밀요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안톤 쉬거는 모스의 트레일러 집을 찾아가고 그곳을 샅샅이 살펴본다. 트레일러 관리실에 가서 모스의 행방을 묻지만, 관리실 아주머니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때 안톤 쉬거는 말 없이 사무실을 나간다. 그의 행동은 언듯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싸움에서 살짝 밀리는 느낌이다.
안톤 쉬거가 트레일러에서 나가고 뒤 이어 보안관들이 트레일러를 찾아온다. 보안관은 아무 단서를 찾지 못하지만, 안톤 쉬거는 집안에 있던 우편물에서 모스의 처가집 전화번호를 찾아내 확인한다.
모스는 텍사스주와 멕시코의 경계인 '델 리오'에 도착해 허름한 모텔인 델 리오 레갈 모텔 138호에 묵는다. 방의 환풍구에 돈가방을 숨기고,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다른 모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와 138호 맞은편 37호실을 하나 더 빌린다.
안톤 쉬거는 멕시코로 가는 길에 '델 리오 레갈 모텔'을 지나다 수신기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모텔에 모스가 있다는 걸 확신한다. 모스는 37호에서 환풍기에 올려 놓은 돈가방을 끌어당기고, 안톤 쉬거는 총과 산소탱크를 들고 맨발로 138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대결은 조용하면서도 긴장감 높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138호를 급습한 안톤 쉬거는 그 방에서 세 명의 멕시코인을 발견하고 살해한다. 멕시코인들은 마약 범죄조직원들이고, 이들이 쉽게 모스의 행방을 알 수 있었던 건 돈가방에 든 송신기를 찾을 수 있는 수신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칼슨 웰스의 등장은 하드보일드한 영화에 약간의 유머를 넣으려는 코엔 형제의 의도로 보인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안톤 쉬거를 제거하려고 살인청부업자 칼슨 웰스를 고용한다.
레갈 모텔에서 도망한 모스는 이글 패스 호텔 213호에 묵는데, 이때 카운터를 보는 사람에게, 자기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잠을 자려고 누운 모스는 돈가방을 살펴보다 송신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을 쫓는 살인자가 매우 가까이 있다는 걸 직감한다.
모스와 안톤 쉬거는 여기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총을 쏜다. 둘 다 만만찮은 상대였고, 둘 다 총상을 입는다. 총상을 입은 안톤 쉬거는 사라지고, 모스는 피를 흘리며 멕시코 국경을 걸어서 넘는다. 다리 중간에서 돈가방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 무사히 국경을 지나 멕시코로 들어가는 모스. 이제 악몽은 끝난 걸까.
다리에 총을 맞은 안톤 쉬거는 약국 앞에 주차한 차에 불을 지르고,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훔쳐 나온다. 그는 총상이 심했지만,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꿰맨다. 그는 확실히 보통사람과는 다른 인간이다.
그 사이, 병원에 입원한 모스를 찾아온 사람은 칼슨 웰스. 겨우 3시간만에 모스를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보안관 에드는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을 오데사에서 만난다. 칼슨 웰스는 국경 다리에서 모스가 던진 돈가방을 발견하지만, 호텔로 쫓아온 안톤 쉬거에게 당한다. 안톤 쉬거가 칼슨 웰스를 죽인 직후, 모스와 전화 통화를 하고, 서로 두고 보자고 벼른다.
안톤 쉬거는 모스가 병원에 있다는 것도 알지만 찾아가지 않고, 그의 아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모스는 병원에서 나와 다시 미국 쪽으로 국경을 넘은 다음, 돈가방을 찾아 아내에게 전화한다.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로 오라고. 엘 파소 역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도시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모스의 장모에게서 정보를 얻고,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은 보안관에게 남편 모스의 행방을 알려주고, 안톤 쉬거는 모스를 쫓는다. 이들은 모두 엘 파소에서 맞닥뜨린다. 보안관이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격전이 벌어진 뒤였고, 모스는 죽어 있었다.
모스의 장례를 치르고 곧 이어 칼라 진의 어머니도 암으로 사망한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칼라 진은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톤 쉬거를 만난다. 안톤 쉬거는 이번에도 동전을 던져 정하라고 칼라 진에게 말한다. 칼라 진의 집에서 나온 안톤 쉬거는 무심한 상태로 운전하다 다른 차와 부닥치고,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보안관 에드는 퇴직하고, 아내와 차를 마시며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아버지를 봤고, 아버지는 춥고 어두운 오솔길을 앞질러 가시면서, 횃불을 들고 있었노라고 한다. 자신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안톤 쉬거가 살해한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다. 이 가운데 두 명은 살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도로에서 만난 닭장차 운전수와 마지막 장면의 칼라 진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테럴 카운티에서 시작해 델 리오, 오데사, 엘 파소로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도시와 연결된다.
보안관 에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지역은 과거와는 너무 달라졌고, 사람들이 돈과 마약으로 타락했으며, 도덕과 상식이 사라진 현실이 개탄스럽다. 늙어가는 에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느끼고 은퇴한다.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메마르며, 불투명해서 행복한 삶이란 마치 파랑새를 찾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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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kg의 짐을 지고 걸어도, 좋다
-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가사만 읽어도 음이 저절로 떠오르는 이 노래는 2001년에 발매된 지오디(GOD)의 '길'입니다. 20년 전 노래지만, 요즘도 인생에 확신이 없을 때면 이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갑자기 웬 노래 이야기냐고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소개해드릴 ‘이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지오디의 ‘길’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하염없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여서였을까요? 오늘은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속도>가 왜 지오디의 ‘길’을 연상케 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11월 11일(목)에 진행된 <행복의 속도> 특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행복의 속도>는 2021년 11월 18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행복의 속도Speed of Happiness<행복의 속도>는 일본의 '봇카'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봇카는 등에 진 물건을 도보로 운반하는 일본의 옛 직업 중 하나입니다.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라진 직업인데요. 일본에는 여전히 봇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군마, 후쿠시마, 니가타, 도치기에 이르는 4개의 현에 걸쳐있는 오제 국립공원입니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넓은 고지대 습원으로, 자연경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생태계가 엄격히 보존되는 특별보호구역인 만큼, 오제에는 차량이 드나드는 길이 없습니다. 나무판자로 이어진 좁고 기다란 길 하나가 외부와 국립공원 안의 산장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산장에 물건을 운송하는 방법 역시 이 길을 통하는 방법 뿐이죠. 그것이 이곳에 봇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관광객들이 오제의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산장을 방문하는 4월부터 11월까지 봇카는 이곳에서 짐을 나릅니다. 산장 운영에 필요한 제철 식자재부터 맥주통, 가스통 등 안 나르는 물건이 없죠. 지게에 켜켜이 물건을 쌓아 올린 다음, 푹신한 것을 잔뜩 덧댄 어깨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오직 두 다리의 힘으로 100kg 상당의 짐을 번쩍 들어 올립니다. 신장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짐을 들쳐 멘 봇카는 오제 깊은 곳의 산장으로 물건을 나릅니다. 짧게는 3km 남짓, 길게는 왕복 20km에 이르는 여정이죠. 오제에는 이렇게 산장에 짐을 나르는 베테랑 봇카 6명이 활동 중입니다.나무판자로 된 길 위를 우직하게 걸으며 짐을 나르는 봇카들. <행복의 속도>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봇카는 빠르게 걷지 않습니다.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게, 일정한 속도로 걸어갑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에 여차하면 넘어질 수도 있거든요. 덕분에 그들은 매일 달라지는 오제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습니다.영화는 클로즈업 촬영과 슬로우 모션을 통해 흘리는 땀, 내뱉는 숨, 내리누르는 고통에 비례하여 정직하게 돈을 버는 봇카의 1년을 진솔하게 담아냅니다. 카메라를 통해 어깨가 다 닳아버린 옷과 가방끈 모양대로 짙은 멍이 든 몸, 굳은살로 채워진 발가락을 한참 동안 응시하죠. <행복의 속도>는 이렇게 '봇카'라는 낯선 직업을 따뜻하게 조명합니다.⊙ ⊙ ⊙<행복의 속도>에는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두 명의 봇카가 등장합니다. 20년째 오제에서 짐을 나르며 살아가는 '이가라시'와 봇카를 널리 알리려는 일본청년봇카대 대표 ‘이시타카'가 그들이죠. 같은 봇카인데도 두 사람은 짐을 이는 방식부터 걸음걸이, 가방끈의 모양까지 모두 다릅니다. 봇카라는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마저요.‘이가라시’는 자기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아낍니다. 일주일에 6일을 100kg가 넘는 짐을 이고 걷는데도, 그는 매일 같이 달라지는 오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만으로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의 부인과 어머니는 베테랑 봇카의 삶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그의 아들은 아빠처럼 배낭을 짊어지고 오제를 걷곤 합니다. 가끔은 헬기가 순식간에 냉동 식자재를 산장에 배달하는 모습을 보곤 하지만, 그럴 때도 소박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가라시’는 그저 오늘도 봇카로서의 자긍심으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반면, '이시타카'는 사양화되는 봇카라는 직업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봇카 일을 하면서도 영업 활동에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등산할 때 짐을 대신 들어주는 봇카 이벤트와 같은 활동도 마다하지 않죠. 이처럼 ‘이시타카’는 봇카로 미래를 꿈꾸는 청년입니다.한 명은 봇카로서의 오늘을 살고, 한 명은 봇카로서의 내일을 준비합니다.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4월이 되면 오제에서 만나 언제나처럼 짐을 이고 걷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으며 행복을 찾는다는 점입니다. 남들처럼 빠르게 걷지 않아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을 느낍니다.언제부턴가 ‘최연소’ 타이틀을 단 영재들이 세상에 많이 보입니다. 남들보다 빨리 무언가를 해낸 사람들이죠. 우리는 그들을 향해 대단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성취의 속도와 행복의 속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목적지엔 일찍 도착할 수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느낄 순 없는 것처럼 말이죠.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닙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풍부한 행복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죠. 여기, 오제의 봇카들처럼요. 남들보다 앞서지 않아도 됩니다. 빠르게 달려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주위에 오제와 같은 천혜의 자연경관은 없더라도 천천히 걷다 보면 분명 그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지오디의 노래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이 정해진 길을 걷는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천천히 속도에 맞춰 걷다 보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행복의 속도>입니다.⊙ ⊙ ⊙겨우내 봇카의 발소리는 잠잠해집니다. 12월부터 3월까지 오제의 봄을 기다리며 봇카의 시즌도 잠시 끝이 나거든요. 지난 2020년 초부터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과연 6명의 베테랑 봇카들은 지금도 계속 봇카의 일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부디 오제를 누비는 봇카들의 ‘행복의 속도’가 지금도 여전하기를 바라봅니다.Summary꽃, 바람, 새 그리고 나뭇길... 해발 1,500미터 천상의 화원 ‘오제’.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이다. 70~80kg의 짐을 지고 같은 길을 걷지만, 매 순간 ‘오제’의 길 위에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는 '이가라시'. 반면, 봇카'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시타카’.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 지금,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있나요? (출처: 씨네21)Cast감독: 박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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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담쪽이는 5천 년을 자서 신경이 예민해
봉인이 풀리다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가상의 왕국 칸다크는 인터갱이라는 군사 집단이 지배하고 있었다. 폭압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사건건 검열하는 군부에 주민들은 진절머리가 났다. 이 동네는 혁명이 필요하다.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은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드리아나. 아드리아나는 팀을 이루어 전설로 전해지는 왕관을 손에 얻기 위해 모험 중이었다. 유적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한 아드리아나 일행. 노력을 기울인 덕에 왕관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왕관을 손에 넣자마자 인터갱이 들이닥쳐 아드리아나 일행을 공격하려고 한다. 위기일발의 상황. 아드리아나는 주문으로 왕관을 통해 칸다크의 수호신 ‘테스 아담’을 소환한다.
부활한 테스 아담. 엄청난 덩치에 카리스마까지 대단했다. 겁에 질리는 인터갱 군인들. 의문의 남자에게 발포한다. 신에게 총알이 통할 리가 없다. 총알을 맨손으로 잡고 ‘하찮은 마법이다’ 조롱하는 테스 아담. 순식간에 무덤(유적) 안을 이동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람소리만 휙휙 날리며 가볍게 인터갱 군인들을 몰살하는 아담. 아담은 손으로 군사들을 지져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적 내부의 병사들을 해치우고 밖으로 나온 아담. 무덤 밖에도 인터갱 군사들이 아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순식간에 전부 군사들을 태워버리며 손쉽게 1대 다수 싸움을 이긴 아담. 이 테스 아담을 제지할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칸다르를 죄다 부술 것 같은 테스 아담. 이 아담을 제지하기 위해 초능력자 집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등장한다. 아담 일행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만 대립하고 끝나면 다행일 텐데, 칸다르를 앞에 두고 거대한 빌런 집단이 이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 과연 테스 아담은 블랙 아담이 되어 칸다르를 지킬 수 있을까?
지지고 볶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액션이다. 2시간가량의 영화지만 체감상 1시간 10분 정도는 액션에 비중을 둔 것 같다. 또 그 와중에 이야기 전개도 성실하다. 가령 극초반부 블랙 아담이 등장할 때 병사들을 해치우는 신을 봐도 그렇다. 아담이 샤샤샥 하는 카메라 워킹에 인물의 전지전능함이 어떤지를 삽입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액션신을 쭉 하다가 이터니움으로 된 폭탄을 맞고 기절한다. 여기서 이터니움 폭탄 묘사도 극에서 어느 정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액션을 삽입한 느낌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먼저 깔고 액션을 삽입한 부분은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지속된다. 닥터 페이트라는 인물이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역할이다. 이 인물은 이 <블랙 아담>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이 이유가 영화 전체적으로 주요한 터닝포인트마다 배치된다. 캐릭터가 영화 동안에 살아 숨 쉰다고 느껴진 이유가 이 좋은 설계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호크맨이라는 캐릭터도 이 영화에서 무조건 필요하다. 영화는 무자비한 안티히어로 '블랙 아담'을 조명한다. 그 뜻은 즉 아담의 악랄함과 선함을 양가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같은 액션을 넣어도 둘 다 성립할 수 있게 배치한 각본가의 큰 그림이 돋보였다.
또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는 번개와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블랙 아담이 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묘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번개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블랙 아담. 이에 걸맞게 번개를 활용한 시각화가 잘 들어갔다. 영화에서 드웨인 존슨이 그렇게까지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뚱한 표정으로 '나는 히어로가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 영화의 1/2 가량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억에 블랙 아담이 남는 이때 활용했던 시각화 비주얼이 잘 뽑혔기 때문이다. 이 또 영화에서 이 히어로의 기원을 다루기도 한다. 그럼 과거의 칸다르도 나오고 그 나라를 지켜보고 있는 신(마법사)들도 제시돼야 한다. 전자 과거의 칸다르는 살짝 빛바랜 느낌으로 촬영하고, 후자 마법사들은 색마다 특이점을 부여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설득력을 갖게 만든다. 이 시각화는 후에 나오는 사이클론과 닥터 페이트에게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사실 사이클론과 스매셔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에서 존재감 그렇게 안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클론 캐릭터를 활용해 형형색색 아름답게 제시한 액션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인물을 활용한 시각화의 정점은 닥터 페이트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좀 아쉬웠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와 싸우던 그 닥스는 어디로 갔을까? 이상한 음표 가지고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주인공이 닥스인데 마법사로서의 능력치는 완다에게 더 갔으니 후속작에서 주인공의 존재감을 묘사하는 것이 약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닥터 페이트의 마법 능력은 대단하다. 인물이랑 어울리기도 어울린데 진짜 멋있게 잘 뽑혔다. 주로 투명한 유리를 활용해서 액션 신을 보여준다. 엄청난 박력으로 히어로들을 요리하던 완다와는 다른 느낌의 마법이다. 가령 유리를 통해서 피사체가 여러 각도로 보이는 마법을 보여준다. 이 마법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닥터 페이트와의 캐릭터성과 어울리는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이상한 캐릭터들
그렇게 눈요깃거리는 충분한 영화지만 사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영화의 이야기 구성에 대해 말해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모녀 두 사람이 나온다. 그중 아들이 말하는 대사 퀄리티가 아쉬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명대사들이 있다. <블랙 팬서>에는 '와칸다 포에버!' <캡틴 아메리카>는 'I can do this all day!'같은 것이다. 여기서 영화에서 소년이 대사를 치는 걸 보면 이 명대사 삽입을 지나치게 의식한 티가 난다. 대사가 삽입되는 방식이 좀 뜬금없기도 하고, 아들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 전개에서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물리적인 시간이 많아 불필요하게 느껴져 이 지점이 두드러진다. 보통 이런 히어로들의 명대사들이 밈이 되어 유행이 되는 건 그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도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 종일 무엇이든 할 수도 있다! 는 걸 전달하기 위해 뱉은 말이다. 그런데 극 중에서 블랙 아담이 내내 정색하고 있어서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그 말이 영화에서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 이 심심한 표정연기는 인물 전체를 관통한다. 뭔가 입체적인 모습이 있어야 이 사람의 개성이 살아날 텐데 내내 똑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만 한다. 내내 부수기만 하고 끝난다. 후반부로 간다. 이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이후 맨몸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오! WWE 전설의 경험치를 볼 수 있나? 내레이션만 기억나고 카메라를 계속 흔들어서 잘 안 보여준다. 그래서 블랙 아담이라는 캐릭터가 멋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내내 부수는 것만 보니 캐릭터의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다. 영화에서 테스 아담이 감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없지 않다. 충분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내내 정색한 표정으로 연기하니까 주인공이 등장하니까 1절 못하고 2,3절까지 계속되는 유머를 보는 느낌이다. 이 히어로의 철학도 맥 빠진다. 자유를 추구하는 건 좋다. 왜? 그냥 주인공이 세니까 칸다르는 자유를 찾아야 해? 단순히 자유가 왜 중요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그냥 무작정 이상만을 좇는 캐릭터가 나오니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빌런 캐릭터를 설계하는 방식도 아쉬움이 있다. 전반부. 가장 첫 번째 시퀀스에서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칸다르 왕국과 그 나라를 지켰던 수호신에 대해 쭉 전달하는 영화. 살짝 길긴 하지만 친절한 전개 덕에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다시 러닝타임 중반으로 지나간다. 블랙 아담이 자기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내레이션이 한번 더 사용된다. 중후반부쯤으로 넘어간다. 그럼 최종 흑막으로 지목된 인물이 그동안 있던 일을 쭉 설명한다. 비슷한 연출 방식이 세 번이나 쓰였다. 2시간 동안 같은 말을 세 번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런 식의 연출을 세 번이나 써서 안 그래도 전체적으로 진부한 영화가 더 지루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또 그 사실이 빌런 개인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중요한 사실인데 후반부 잠깐 쨘 하고 나온 부분은 아쉽다. 이걸 초반부에 제시해서 빌런 캐릭터가 갖는 긴장감을 유지하면 좋았을 걸 중반부가 넘어가고 나서야 부랴부랴 보여준다. 염소 같은 빌런 디자인만 기억이 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몰개성한 작법으로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공조 : 인터내셔날>의 진선규 캐릭터가 연기했던 빌런 역이 생각난다.
이 아쉬운 캐릭터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닥터 페이트에도 이어진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캐릭터를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계획 없이 내내 부수기만 하는 블랙 아담 / 감정적인 호크맨 / 무계획으로 깔아뭉개는 아드리아나 모자 / 존재감 없는 흑막까지 내내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닥터 페이트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닥터 페이트의 행보는 글쓴이의 예상대로 전부 흘러갔다. 더 과장해서 말하면 '닥터 페이트'라는 캐릭터만 듣고도 이 사람의 행보가 예상될 정도다. 이는 닥터 페이트가 들어간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역시 전형적으로 설정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작용으로 이 인물이 이렇게 단조롭게 느껴졌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마법은 멋있게 썼어도 그와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 이게 원작 코믹스는 닥터 페이트가 원조라고 한다. 그럼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더 살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형적인 이야기 톤, 사려 깊음, 운명론이 남고 이 사람이 왜 멋있는지는 어떤 창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브로스넌이 멋있는 자세로 앉아서 중저음의 톤으로 노년의 섹시함을 드러냈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그건 피어스 브로스넌이 멋있는 거지 닥터 페이트가 멋있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선택지만 골랐어
이런 아쉬운 점은 영화 전반적인 연출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연출 방식이 있다. 바로 슬로모션이다. 이 슬로모션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가령 사이클론의 캐릭터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인물의 동선을 꼼꼼하게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 블랙 아담이 광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슬로모션 연출이 필요하다. 슬로모션을 넣어야 이 인물의 무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맥락에서는 슬로모션을 넣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한 1/10쯤 된다. 그렇지 않아도 될 부분에도 슬로모션이 들어가는 것은 아쉽다. 가령 사이클론에 슬로모션이 들어가는 방식을 보면 한 10번 이상은 쓰였다. 빠르게 회전해서 형형색색의 바람을 유발하는 사이클론. 여기서 사이클론이 몇 바퀴 돌고 정자세로 서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 정자세로 서는 자세에 슬로모션이 반복해서 쓰인다. 이거 슬로모션으로 넣을 이유가 없다. 이 행동이 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냥 없다. 단지 멋있게 보이려고 넣은 것이다.
이 뿐일까? 전체적인 장면 구성이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따온 듯한 기시감은 어쩔 수 없다. 이는 닥터 페이트 캐릭터의 사용법과도 이어진다. 다른 예로는 블랙 아담의 입장 변화에서 따올 수 있다. 블랙 아담의 첫 등장이 있다. 그리고 굴곡이 생긴다. 또 그 굴곡을 상회할 만큼 문제가 생겨서 다시 부활한다. 이거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다 봤던 내용이다. 첩보물로 장르의 변주를 줬던 <캡틴 아메리카>나 코미디/스릴러로 장르를 병치시켰던 <앤트맨>과는 영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패턴이 전부 예상 가능하고 장면 구성도 거의 모든 시퀀스가 어디서 본 느낌이며 액션도 템포 조절 없이 강한 리듬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중반부로 방향키를 틀면 지루해진다. 볼거리는 많은데 진부한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이다(이 글 쓰는 것도 어려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거 다른 영화에서 봤는데'만 생각나서). 예술가적인 창의성이 안 느껴지는 느낌? 이거 DC 코믹스의 영화다. 그럼 DC 코믹스 다운 전체적인 톤이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그게 멋있는 시각화와 뭔가 어두운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에 유머(같이 느껴지는)와 모자 캐릭터 중 소년이 말하는 부분을 보면 딱히 그런 걸 노리고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닥터 페이트 / 호크맨을 제외한 두 히어로는 그냥 둘이 다른 영화 찍고 있는 느낌이었다. 청춘들의 로맨스를 넣을 거면 두 히어로를 주연으로 한 다른 영화를 만드는 게 좋았을 텐데?
올해 5월 개봉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있다. 이 영화가 만듦새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어도 <블랙 아담>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론 <닥스 2>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데 적어도 감독 샘 레이미의 인장과 운명론을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라는 주제는 기억에 남는다. 또 같은 DC 코믹스 영화인 <더 배트맨>은 이 <블랙 아담>보다 훨-씬 낫다. <더 배트맨>은 다 기억에 남는다. 반 폐인 같은 얼굴로 쓱 나타나서 악당들에게 맞기도 하고, 곤궁에 빠지기도 하지만 희망을 향해서 날아가는 브루스 웨인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난다. 리들러나 캣우먼 같은 캐릭터도 연출에서 힘을 줬던 지점이 분명해서 이 배역들의 특장점을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냥 어디서 통했던 것들만 그대로 갖고 왔다. 영화가 기억에 남아야 하는데, 드웨인 존슨과 피어스 브로스넌만 장점으로 기록될 영화가 돼버렸다.
성공적인 시행착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래도 있는 편이고 몰입하기도 어렵지 않아서 친구들끼리 극장을 찾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 영화에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쿠키 영상이 있다. 이 히어로의 행보가 오리무중에 있었기 때문에 DC 유니버스의 팬이라면 두 사람의 대결을 기다려 왔을 것 같다. 또 DCEU가 들인 돈에 비해 영화판에서 존재감이 없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선택지만 골랐다. 이에 따른 단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시도도 있어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2시간 동안 이 쿠키영상의 예고편이 된 건 아쉽지만 화려한 볼거리로 여러분의 시간을 불태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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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무비 | 그들이 영화와 멜로를 찍었던 이유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디오 가게에서 안 본 비디오가 없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한 '고겸'(최우식). 그는 영화와 더 사랑에 빠지기 위해 단역 배우 활동을 시작한다. '마성우'(고창석) 감독의 촬영장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던 중, 고겸은 촬영 스태프로 일하던 '김무비'(박보영)를 만난다.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 고겸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다가서고, 그를 부담스러워하던 무비는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고겸에게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때 고겸은 돌연 모습을 감춘다. 교통사고로 인해 장기 입원 환자가 된 형 '고준'(김재욱)을 간호해야 했던 것. 영문을 모르는 무비는 어릴 적 딸보다 영화를 사랑했던 아빠처럼 고겸이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그와의 관계를 홀로 정리한다. 하지만 5년 후, 영화감독이 된 무비 앞에 고겸이 나타난다. 그것도 유명 영화 평론가가 되어서. 그를 다시 본 순간 무비는 깨닫는다. 그와의 멜로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멜로무비>를 보는 두 시선
'멜로드라마' 혹은 '멜로' 장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좁은 의미에서 멜로는 로맨스 장르,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뜻한다. 특히 분위기가 무거운 작품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 '정통 멜로'라 하면 성인 간의 관능적이거나 진지한 로맨스를 연상할 수 있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에 멜로 향이 첨가되는 경우도 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내적, 외적 이유로 위기를 겪을 때 자연스럽게 멜로로 전환되는 식이다.
넓은 범주에서 보면 멜로 장르는 연인 간의 로맨스 그 이상의 이야기를 포함한다. 본래 멜로는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주인공(특히 여성)이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감정적으로 분출하는 극을 의미했기 때문. 즉, 멜로는 연인과의 사랑은 물론,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부딪히는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인 셈이다.
<그 해 우리는>의 이나은 작가가 넷플릭스와 만난 <멜로무비>를 보고 나서 반응이 갈릴 여지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멜로무비>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 비중이 작은 반면, 영화라는 매개체 덕분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냈다. 따라서 만약 좁은 의미의 멜로를 기대했다면 예상과 달리 곁가지가 많아 보이고, 넓은 의미의 멜로를 원했다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랑 이야기에 저항 못할 수밖에 없다.
고겸과 고준의 멜로무비
<멜로무비>는 영화를 구심점 삼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한 곳에 모은다. 그들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각기 다른 이유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영화와 찍은 멜로무비를 틀어주는 셈이다. 가장 먼저 고겸과 고준 형제의 멜로무비가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온갖 영화를 섭렵하고, 단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평론가가 된 고겸. 그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영화 속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고겸의 말에는 속뜻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형 고준과의 관계 때문이다. 고겸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과 사별했다. 그런 그에게 현실은 두려운 존재였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형마저 자신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무서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현실이었다. 달리 말해 고겸에게 영화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어린 나이에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차가운 현실을 잊게 만드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고준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인이 되자마자 어린 동생과 남겨진 고준. 그에게 현실은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는 밀린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항의하다가 모욕을 당해도 끓어오르는 감정을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야 했다. 그런 고준에게 영화는 온갖 감정을 눈물로써 승화하는 창구였다. 평상시에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그가 유독 슬픈 영화만 보면 펑펑 울었으니까.
더 나아가 두 형제에게 영화는 삶의 버팀목이었다. 둘이 같이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각자의 상처를 잊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고준이 교통사고 때문에 장기간 입원하고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고겸이 영화평론을 직업을 선택한 것은 상징적이다. 두 형제에게 영화란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자 가족을 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무비와 아빠의 멜로무비
김무비의 멜로무비는 고겸의 것과 양상이 다소 다르다. 그녀에게 영화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영화는 좋아했지만, 아빠 때문에 영화가 싫어진 것. 자기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던 무비의 아버지는 평생을 영화 스태프로 일했다. 딸과 약속이 있어도, 딸의 생일이어도 영화 제작 현장에 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무비는 그가 자신보다도 영화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아빠를 미워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사랑한 아빠를 미워했기에 무비는 영화를 자기 진로로 선택했다. 아빠가 너무나도 미운 나머지 그에게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그를 비롯한 다른 영화인들처럼 자기 인생을 갈아 넣지 않아도 충분히 영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그저 직장이자 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즉, 무비에게 영화는 의도치 않게 삶의 방향성을 정해준 이정표였던 셈이다.
이 이정표는 신인 감독이 된 무비에게 다른 길도 가르쳐준다. 그녀는 감독이 된 후에야 비로소 마음 한 구석에 품었던 미운 정을 떨쳐낸다. 아빠가 그토록 영화에 매달려야 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 영화는 혼자 만드는 예술이 아니니까.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무비 아빠처럼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꿈과 열정을 책임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그 무게감과 절실함을 마주하면서 무비는 비로소 진정으로 영화와 사랑에 빠진다.
무비와 고겸의 얕은 멜로무비
그런데 고겸과 무비는 정반대 방향으로 영화와의 사랑을 가꿔 나간다. 흥미롭게도 두 주인공 간의 멜로가 계기다. 고겸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형과 영화를 같이 보며 현실을 잊는 시간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형이 세상을 떠나자 영화에도 흥미를 잃는다. 평론도 그만두고, 그간 애써 모은 비디오도 정리한다. 빈자리는 무비가 대신한다. 형과의 추억이 뼈아파서 집에 못 들어가던 그를 무비가 데리고 들어가는 장면이 그 방증이다.
반대로 무비는 고겸을 만나 영화와의 멜로를 꽃피운다. 고겸이 그녀의 마음속 상처를 보듬어 줬기 때문. 무비는 영화감독이면서도 영화와 거리를 두었듯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영화를 쫓던 아빠처럼 다른 이들도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했으니까. 하지만 홀연히 떠난 것 같았지만 결국 되돌아온 고겸과의 로맨스 덕분에 무비는 달라졌다. 그와의 멜로 덕분에 영화와 사람에게 마음 주는 법을 배운 셈이다.
문제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끼친 영향이 강조되지 못했다는 것. 달리 말해 두 주인공 각자의 인생사가 그들의 로맨스를 가려버린다. 그들이 영화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떠나보내야 하는 이유는 인생의 역경과 얽혀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에 반해 둘이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고 애정을 키워 나가는 과정은 그저 우연에 기댄다. 드라마의 분위기 자체는 영화적으로 꾸며주더라도 그들의 접점을 강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작가의 전작인 <그 해 우리는>과 비교하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전작은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했다. 전 애인, 다큐멘터리 출연자, 마케터와 섭외 대상 작가 등 여러 관계를 중첩하면서 관계에 깊이감을 더했다. 반면에 고겸과 김무비는 운명적인 사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감독과 평론가라는 독특한 조합도 그저 둘을 재회시키는 도구일 따름이다. 자연히 둘의 로맨스는 표층적이다.
삐걱거려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처럼 두 주인공의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고, 멜로도 부각되지 않다 보니 <멜로무비>의 완성도에는 여러 문제가 생긴다. 우선 '홍시준'(이준영)-'서주아'(전소니) 커플의 이야기가 극에 녹아들지 못한다. 이 서브 커플은 고겸-김무비 커플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다. 그들처럼 우연히 재회했지만, 장기 연애가 끝난 후에 만났다는 점이 다르다.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대신 이별을 완성하는 이야기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그런데 고겸과 무비의 관계성이 각자의 사연에 가려지다 보니 서브 커플의 서사도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한다. 빛이 강해야 그림자도 짙어질 수 있는데, 정작 빛이 약한 모양새다. 이에 더해 꿈을 위해 이별을 선택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서브 커플의 플롯도 문제다. <라라랜드> 같은 이 이야기가 정작 '영화'와 접점이 없기 때문. 그 결과 이들의 로맨스는 다른 드라마가 중간에 삽입된 것 마냥 나머지 플롯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완성도의 결함으로 인해 기시감도 강조된다. 일례로 매 에피소드마다 반복되는 프롤로그-본편-에필로그 형식은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지만, 마치 전작의 답습처럼 보일 수 있다. 다른 설정도 마찬가지다. 헤어진 연인이 5년 만에 재회하는 전개, 사람을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과 사람을 밀어내는 여자 주인공 조합도 큰 틀에서는 전작과 똑같다. 그러다 보니 최우식의 내레이션이 들리는 순간부터 진한 익숙함이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멜로무비>의 아쉬움과 단점은 긴 잔상으로 남지 않는다. 남녀의 로맨스보다 강조한 사랑 이야기가 충분히 뇌리에 각인되기 때문. 고겸과 고준 형제의 사연으로 가득 찬 일곱 번째 에피소드의 끝에서는 눈물을 참기 어렵고, 어릴 적 상처를 딛고 마침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 무비를 보면서는 공감과 격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멜로무비>는 부족한 로맨스를 깊이감 있는 멜로로 대신하며 막을 내린다.
Acceptable 무난함
부족한 로맨스를 채우고 넘치는 멜로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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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은 벗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2년간 "청소년 관람불가"를 달고서, 100만명을 넘긴 영화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가 유일하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방자전, 2010 - 인간중독, 2014>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겼던 "한국 성인 로맨스"이다.
당연히, 노출에 대한 마케팅도 있었지만 극장에서 거둔 결과는 7만명에 불과했다.
700만명을 넘겼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이후 9년 만에 나온 신작임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이나 VOD 공개 1달 만에 8만건의 이용 횟수가 확인되었다.1. 야해서 보는게 아닌가?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공간은 어딜까? - 당연한 소리이겠지만, 영화관이 이에 충족하는 공간이다.
핸드폰과 태블릿, 컴퓨터, 혹은 TV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와 화질, 음향과 조명까지 비교가 될까? (최근 "공연 실황"에 "스포츠 경기"까지 그 범주가 넓어지고 있다만...)
그런 점에서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성인 로맨스"이다. - 아무리 <365일>가 재밌다고 한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으니...근데, 본 작품에 오가는 말들이 살벌하다.
'"색, 계'라니요, '화양연화'라니요, 대체."로 분노를 꾹꾹 눌러낸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해 관객들 역시,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속 편한 소리도 있겠지만 '왜, <화양연화, 2000 - 색, 계, 2007>가 지금까지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지?'를 아는가? - 설마, 자 영화들이 관객들의 눈요기만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2.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고?
그저, '야함'만을 선보였다고 하기엔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분량은 146분으로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이는 그만큼 이야기에도 공을 들였다는 소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무광 - 수련'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까지의 묘사가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특히, 이 과정이 나쁘지 않았기에 관객들이 기대를 걸었던 '그렇고 그런 장면(?)'들도 좋았던 것이고...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데에는 무엇일까?
일단, "수련"이 "무광"에게 관심을 보이는 원인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건, 필자가 '솔로'임을 유의하길...)
그저, 계급을 이용한 "역할 놀이"로 보일 만큼 그들의 '그렇고 그런 장면(?)'들은 '아이 캔디'에 그친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수련"의 남편 "사단장"의 성불구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한 여성 개인의 불만은 "이혼"이라는 상호 신뢰 간의 문제, 즉 한 국가의 신뢰로 이야기를 넓혀나간다.3. 자꾸만 아니라고 하네요...
이후 넋이 나간 "무광"이 당의 말씀이 적힌 팻말에 집중하는 장면까지 그저, 야한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보고자 했을 관객들의 기대치와는 한참이나 다른 야심에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이런 이유에는 본 국 '중국'에서 검열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고, 이후에는 이마저도 회수시켜 '금서'가 되어 영상으로도 제작되지 못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원작에 대한 소개말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이를 모르더라도, 사진이 있는 액자가 각 가정에 붙어있고 일부 군인들이 농사를 하는 방식이며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의 실제 사건 등은 단번에 윗동네를 연상시킨다.
다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으며 쓰이는 언어도 다양하게 섞여있다.
이런 모호함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여주인공 "수련"의 연기에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빠르고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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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도 없이]리뷰:단편영화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영화
#소리도없이#유아인#유재명
악은 변하지 않으며 항상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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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신세경, 왜 서촌으로 갔을까 (with 아름다움)
Ott 앱인 Seezn 오리지널 영화인 어나더 레코드가 공개되었어요.
다큐멘터리인 이번 영화는 배우 신세경의 고민과 함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서촌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서촌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죠.
마치 그들 옆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체 리뷰를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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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드 헤어> 메인 예고편
1989년 LA,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애나는 스타 VJ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볼품없는 곱슬 머리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특별한 미용실을 추천해 주는 동료, 애나는 그곳에서 찰랑이는 생머리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머리카락에 주문이라도 걸린 듯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지만 애나는 곧 머리카락이 피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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