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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022-09-0430 views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후기
옐


먼저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다뤘던 영화인 <라쇼몽>이 떠올랐다. 자신의 상황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던 라쇼몽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도 자신의 안위와 이득, 자신의 가족 등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 이기심은 등장인물의 입장에 서서 고민을 해보면 어느 정도 다 이해가 되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나데르는 임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뱃속의 아이를 죽인 것이 되기 때문에 감옥에서 지내야 하며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어린 딸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씨민은 나데르가 임신 사실을 알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이를 아는 척 하지 않으며 라지에는 집 밖으로 나가버린 할아버지를 집으로 다시 모셔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차에 치여 유산 기운을 느꼈고 크게 아팠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면 남편이 화를 낼까 두렵기도 하고 할아버지를 침대에 묶고 외출을 하기 전에 하나의 업무 과실이 또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를 숨기려고 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호잣은 쿠란에 대고 맹세를 할 수 없다는 라지에에게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 맹세를 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즉 이들은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 등을 위해 이기적인 증언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중 한 명이 진실을 말한다면 모든 것을 그가 뒤집어쓰거나 큰 피해를 입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이기심에서 비롯된, 또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감정에서 비롯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우리는 등장인물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누군가가 가장 큰 잘못을 했다는 결론을내릴 수도 없으며, 이 영화 역시 중립적이고 때로는 냉정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카메라 속에 담아내며 그 누구도 편파적으로 변호하지 않는다. 이러한 영화의 시선이 관객들이 모두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크게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데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심으로 인해 상처 받는 건 각 집안의 어린 아이들인데,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부터 우리는 가족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아이들은 아이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논쟁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면 몰라도 된다고 하며 피하거나,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 놓기도 한다. 이 영화 속의 부모들 역시 그렇다.
그러나 정말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부모와 적절하게 맺어진 유대관계와 친밀함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간다. 이는 아이들에게 가장 유의미한 타자가 부모이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까지도 모두 관찰하고 따라하거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는 이 점에 초점을 정말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언쟁이 오고 갈 때 카메라는 소마에와 테르메의 눈빛을 자주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이때 아이들의 눈빛은 감정이 가득 들어간 어른들의 눈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며, 상황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일까, 자주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오히려 어린 아이들에게 저들이 배워야 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테르메가 나데르에게 왜 정직하게 말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나 소마에가 자신이 본 부모의 부부싸움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할아버지를 씻긴 것을 아빠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라지에에게 말하는 장면 역시 이러한 생각을 극대화 시킨다. 영화의 이러한 메시지 전달 때문인지 씨민과 나데르가 테르메를 마치 물건인 것처럼 나에게 줘라, 보내라와 같은 대사를 하는 것을 보면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어른들만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고, 아이들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상처를 받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성숙한 존재라고 해서 어른들이 주는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 역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각 가족의 문제를 넘어 이란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건넨다. 이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의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는데, 그렇기에 이들에게 정말 무서운 말은 죄를 지었다는 말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는 라지에가 더더욱 독실한 신자로 연출되는데, 종교에서 말하는 죄에 해당이 되는 행동을 혹시라도 했을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저게 죄라고?’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다.
당사자가 한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의 배경과 맥락,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죄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내는 모습은 작품 속 인물들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주목하지 않고, 그들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오로지 이분법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바쁜 이란의 법과 법정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감독은 이렇게 어떻게 보면 편협하기도 하고 꽉 막혀있는 듯한 느낌도 주는 종교의 법과 이란의 법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우리가 수없이 보았던 이란의 법정의 모습을 조명하며 끝을 맺는데, 영화의 초점이 앞에서 보았던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결말까지 가면서는 우리가 사건이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지, 각자의 이기심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이들의 거짓말을 유발하는 사회의 모순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법정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명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언성을 높이는 걸 수도 없이 봤었는데,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보니 그런 일은 씨민 가족과 라지에 가족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법정 전체를 가득 채우는 고함 치는 소리, 항의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이 영화가 다양한 문제를 두 가족에게 문제가 있기에 일어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적인 문제 때문이며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어른들의 소리를 듣다 보면 어린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음성이 끼어들어오고,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며 그와 동시에 어른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어른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아무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 역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장면인 듯했고, 그렇기에 이란의 사회 문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리고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국제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문제의 해결 방안을 논의해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