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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2025-07-1122 views
[천하제일 로맨스 영화 대회] 침묵 속에 더욱 간절해지는 사랑의 몸짓, <아티스트>
옹심


영화 <아티스트>는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전, 즉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 시대로의 이행을 배경으로 엇갈리는 두 배우의 운명을 다룬다.
‘조지 발렌타인‘은 매력적인 미소와 익살스러운 연기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무성영화 배우다. 그런 조지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배우 지망생 ‘페피 밀러’는 우연한 계기로 조지와의 스캔들을 겪은 뒤,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 엑스트라로 캐스팅 된다. 첫 촬영에 설레는 마음으로 춤 연습을 하는 페피의 발 동작을 본 조지는 그녀의 탭 댄스를 똑같이 따라해 내고, 두 사람은 무도회 장면을 거듭 촬영하며 마치 춤을 추듯 서로의 마음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러나 이미 결혼을 해 아내가 있는 조지에게 페피와의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아는 페피가 조지의 분장실에서 그의 자켓에 손을 넣고 마치 그와 껴안고 있는 듯 연기하는 장면은 <제7의 천국>의 명장면을 아름답게 재현해낸 것에서 뿐만 아니라 그 체념과 슬픔이 무성영화의 형식을 취하는 이 영화 속에 충분히 녹아들어 한 마디 대사 없이도 그녀의 감정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다우며 탁월하다.
한편 영화에 음향을 넣는 것이 가능해진 영화 산업의 동향 속에서 키노그래프사의 제작자는 조지에게 유성영화가 바로 영화의 미래라고 소개하지만 조지는 "저 따위 미래엔 관심없다"며 냉소한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껏 속해있던 무성영화의 세계만을 아는 조지는 이미 시작된 유성 영화의 세계에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무성 영화에 세계에 남기를 고집하며 아무 준비도 없이 강제로 소리의 세계로 진입한 그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자신의 소리가 없기에 그에게 외부의 소리는 충격이자 혼란이고, 심지어는 깃털이 내려앉는 소리마저도 굉음처럼 느껴진다. 그는 시대가 원하는 "말을 하는 얼굴"이 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될 수조차 없다.
홀로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자의 고독감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잃은 자의 상실감 사이에서 그는 점점 자신의 나르시시즘적 자아가 유효했던 무성 영화의 세계로 침잠한다. 그는 모두가 유성 영화에 몰두할지라도 자신은 "스스로 걸작을 만들어 낼 것" 이라며 사비를 들여 무성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대공황의 여파로 이미 파산한 상태에서 영화 역시 흥행에 처참히 실패하게 되고, 시대의 흐름을 부정한 채 지금껏 믿어왔던 세계만을 고집하는 오만한 나르시시즘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끈다.
성실히 배역의 크기를 늘려가던 페피는 아름다운 외모와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유성 영화 시대의 가장 인기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최고의 스타가 된 후에도 여전히 조지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은 그녀는 몰락한 조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돕는다. 그러나 조지에게 스스로의 몰락은 도저히 맨 정신으로 마주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그는 알코올에 의존하며 마지막 남은 귀중품 마저 모두 팔아넘기기에 이른다. 대중들에게 잊혀지고 사랑받지 못하는 그는 더 이상 영화 산업으로 돌아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오만함과 무지함을 저주하며 끝내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들의 필름에 불을 붙이고 자신마저 불길 속에 몸을 던지는 조지.
화염과 총격의 자기파괴적 충동 끝에 조지의 나르시시즘적 세계는 파괴되고, 그 견고했던 세계가 붕괴된 폐허에서 그는 비로소 페피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발견한다.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의 끝은 늘 사랑이기 마련이듯, 이 영화의 마지막 역시 사랑으로 완결된다. 그러나 조지를 끝내 구원해낸 것은 그의 자기파괴적 충동이 아니라 페피의 자기희생적, 헌신적 사랑의 폭발음이다.
다시는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 비관하는 조지를 다시 대중의 사랑 앞으로 돌려 놓는 것 역시 페피다. 서로의 마음에 발을 들여 놓았던 그 탭 댄스를 추면서 그들은 함께 대중이 기다리는 스크린으로 복귀한다.
유성 컬러 영화가 당연한 현대인인 나에게, 불과 몇 년 전 제작된 이 21세기의 무성 흑백 영화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내 목소리가 없어 더 간절하게 표현되는 화면 속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며 이 순정 어린 사랑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영화 <아티스트>는 수많은 무성 영화시기 작품들을 21세기 영화의 문법으로 오마주하며 전개되는 한 편의 헌사다. 때로는 쏟아지는 말들이 진정성 없게 느껴지는 유성 영화의 시대, 아름다운 몸짓과 절절한 눈빛으로 대화하는 무성 영화의 존재는 귀하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