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몽실2021-08-12 13:50:56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왓챠 영화 리뷰 <데몰리션>
느껴야만 하는 합당한 감정이 왠지 좀처럼 터져 나오지 않고 몸속 어딘가 꼭 박혀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어딘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 난 느끼지 못해도 내 몸 어딘가는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전달받은 곳은 고장이 나 삐그덕거린다. 발광하기도 하고 일부로 날 괴롭힌다. 그렇게 화가 나고 아픔을 느끼면 마음이 놓인다.
살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반복한다.
아내를 만나고 장인어른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산다. 그러나 자기가 빠져 있는 일이 아니면 게으르고 무심하다.
물이 새는 냉장고에도, 그리고 아내에게 마저도.
아내를 무심히 여기고 놓치고 살던 그는 아내가 떠나고도 마치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슬프지가 않다. 그렇지만 왠지 삐그덕 거린다. 어딘가에서 위급상황을 외친다. 매미나방이 심장을 갉아먹었다.
문제점을 찾기 위해 분해를 시작했다. 모든 걸 부수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전과 다른 충동적인 삶을 산다. 파멸, 파괴 그것만이 흥미롭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주는 관심. 조금 무심할 수도 있지 바쁘고 힘들면 그럴 수 있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날 아직도 뜨겁게 사랑한다는 관심. 그게 없이는 사랑이 아닌 걸까?
"전에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어쩌면 보긴 봤는데 무심하게 본 거겠죠."
오랫동안 아프던 마음이 사소한 위로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싹 낫는 일이 있다.
어떤 정신질환 약과 치료보다 강한 게 누군가 날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무엇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미루고 놓친다. 꼭 잃고 나면 그제야 깨닫고 후회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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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진짜 피스메이커를 찾아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코르테 말테제'에 반미 세력 쿠데타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 정부는 그들이 감옥에 감금된 정체불명의 외계인, '프로젝트 스타피쉬'를 악용할 것을 걱정한다. 이에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는 벨 레브 교도소에 투옥되었던 슈퍼 빌런들을 코르테 말테제에 침투시켜 스타피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 결과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와 '할리 퀸(마고 로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1팀이 작전 개시와 동시에 끔찍한 실패를 겪는 사이, '블러드스포트(이드리스 엘바)', '피스메이커(존 시나)', '킹 샤크(실베스터 스탤론)', '랫캐쳐2(다니엘라 멜시오르)', '폴카도트맨(데이빗 다스트말치안)'로 구성된 진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안전하게 섬에 침투한다. 그러나 작전이 진행될수록 팀플레이가 체질이 아닌 악당들은 갈등을 빚기 시작하고, 그들 앞에는 프로젝트 스타피쉬 일명 '스타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1970~80년대 <슈퍼맨>과 <배트맨>의 성공과 이후 침체기였던 슈퍼히어로 영화는 2000년대 이후 변화한 시대상, 특히 미국의 패권주의가 불러온 부작용을 빠르게 작품 속에 녹여내면서 다시 영화계의 주류로 돌아올 수 있었다. 9.11 테러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실패로 인해 민주주의, 평화 유지, 도덕성이라는 명분과 정체성이 흔들린 미국의 어두운 현대사를 작품에 투영한 것이다. <다크 나이트> 속 배트맨의 활약이 더욱 강력한 악당인 조커를 끌어들이는 역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전개는 중동에서 악(테러리스트)을 없애기 위해 파견된 미군으로 인해 또 다른 악(알카에다, ISIS 등)을 불러일으킨 현실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다.
현재 가장 큰 슈퍼히어로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역시 기저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지닌다.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는 납치된 채로 슈트를 만들어 테러 집단으로부터 탈출한 후에, 자기를 납치했던 아프가니스탄 테러 집단을 보복한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9.11 습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현실을 재현한 셈이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하이드라에게 잠식된 쉴드는 국가적 위협을 먼저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했던 미국의 현실(애국자법 등)을 암시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이름을 알린 제임스 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흥행과 별개로 악평에 시달렸던 전편과 선을 그은 후 리런치(Relaunch)한 DC의 새로운 슈퍼 히어로(빌런)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미국의 패권주의적 악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다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는 앞서 살펴본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9.11 테러는 물론 그 이전부터 수십 년 간 자행된 미국의 대외적 악습을 한 데 모아 비판한다는 점이 첫 번째 포인트고, 그 악습을 철저히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이며 과장된 조롱으로 상기시킨다는 점이 두 번째다.
당장 시작부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미국 현대사의 치부를 드러낸다. 코르테 말테제에 잠입하는 임무를 맡은 1팀은 거대한 성조기 앞에 모인 채 멋진 워킹을 보여준다. 그러나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을 지닌 쿠데타 군 앞에서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믿기 힘든 실패를 경험한다. 이러한 오프닝 시퀀스는 엄연한 주권국가에 몰래 병력을 투입하고, 미국의 의도대로 쿠데타 정권을 조종하려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했던 '피그만 침공'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61년 4월 17일,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쿠바 해변에 상륙한 미국의 2506 여단은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남은 병력은 모두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 작전은 쿠바 미사일 사태를 촉발시킨 계기였고,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주권침해행위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처럼 피그만 침공의 그림자가 가득한 오프닝 시퀀스는 거대 외계 생물 스타로의 존재와 연관된 다양한 플롯을 미국의 어두운 현대사와 결부시킬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작중 나사의 우주비행사들이 스타로를 발견하고, 그를 감금하고 실험을 진행한 것은 냉전 시기에 체제 경쟁의 일환으로 비키니 섬에서 여러 부작용을 남긴 핵실험을 통해 소련뿐만 아니라 전 지구를 위협할 무기들을 개발했던 과거를 비꼬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괴물과 미국 정부 간의 연관성을 지우는 게 목적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임무는 그간 관타나모 수용소처럼 미국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자행한 비윤리적 폭거와 이를 숨기려고 했던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 역시 미국의 패권주의와 대외적 구태를 비판하는 데 가세한다. 그 중심에는 피스메이커와 블러드스포트의 대립이 있다. 두 인물은 인생사와 능력이 모두 동일하지만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다. 블러드스포트는 개인적인 이유로 임무에 참가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방관할 수 없다는 소시민적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에 피스메이커는 평화를 부르짖지만 정작 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든 상관없다고 믿는 급진적 애국주의자다. 작중 피스메이커가 폭주할 때 본인 스스로 자유의 상징이라고 여긴 헬멧이 찌그러져있다는 점은 그의 신념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이러한 둘의 차이는 진지한 성품을 지녔고 SF 스러운 무기를 선보이는 블러드스포트와 달리 피스메이커가 우스꽝스러운 외형과 행동을 보여주며 구식 무기들을 사용하는 외적인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이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블러드스포트를 중심으로 새로 모습을 보인 등장인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마련해 피스메이커의 신념을 비판하고, 그와 같은 광기를 통제할 수 있는 앞으로의 비전도 제시한다. 아동학대를 당했던 폴카도트맨, 쥐가 유일한 친구인 랫캐쳐2, 마음속 외로움이 가득한 킹 샤크는 블러드스포트처럼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치유하고 싶다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동기로 움직인다. 영화는 이처럼 전혀 관계없는 개인들이 자신들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해결하는 와중에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점진적으로 친구, 가족,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는 무용담을 부각한다. 즉, 아무리 사소하고 인간적인 삶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개인들이더라도 그들의 연대는 광기 어린 국가 권력의 폭주를 막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범죄자들이 하나의 팀과 가족으로 거듭나면서 우주를 구해내는 감독의 전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맞닿은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작중 가장 결정적이고 영웅스러운 역할은 가장 약하고 무용해 보이는 능력을 지닌 소녀에게 주어진다.
교도소 상황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은 코르테 말테제 섬에 처음 팀이 파견될 때만 해도 팀원들의 생존과 탈주 가능성, 사망 순서를 두고 도박판을 벌일 정도로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민간인을 도우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면서 이내 양심과 인간성을 되찾고 물심양면으로 슈퍼 빌런들을 지원한다. 이러한 변화는 꼭 권력을 지닌 군과 정보기관,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공동체적 힘이 과거와는 다른 미국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바람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코르테 말테제 섬에 여전히 미국 정부가 심어놓은 분란의 씨앗이 남아있고, 미국 정부의 구시대 패권주의적 접근법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쿠키 영상도 이처럼 진짜 피스메이커를 밝혀내는 메시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힘을 실어준다.
흥미로운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달리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방식은 철저히 유머러스하고, 과장되어 있고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숲에서 만난 현지 무장 세력의 캠프를 마치 게임하듯이 습격하고, 사살한 인원의 숫자를 세며 경쟁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죽인 이들은 현지 반 쿠데타 세력, 즉 우군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쿠데타 정권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그 외의 장면에서도 영화는 유독 살인과 죽음을 희화화하고 과장한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할리퀸이 군인들을 창으로 찌르고 베자 피 대신 화려한 꽃잎들이 튀어나온다. 해변에 도착한 팀원들은 마지막 유언에서 제일 중요한 말을 못 한다거나, 전투에 쓸모없는 능력을 선보인다던가, 심지어 수영을 못해서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익사하는 식으로 황당무계하게 퇴장한다.
하지만 이처럼 부자연스럽고, 윤리적 금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판타지 덕분에 영화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강조된다. 지나치게 만화적이라서 비현실적인 묘사가 기반을 두는 현실이 역으로 명료해지는 것이다. 일례로 피스메이커와 나머지 팀원 간의 충돌과 갈등, 그로부터 비롯되는 죽음은 다른 장면들과 달리 대조적으로 매우 진중하게 묘사되며, 따라서 그들의 대립이 갖는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또한 자신들의 과오인 불필요한 살육을 간단히 외면하는 팀원들의 태도는 미군이 개입되었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전쟁만 보더라도 미 공군이 군사적 목표뿐 아니라 대도시와 민간인 거주지역에도 융단폭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해당 사건들이 유야무야 된 역사가 발견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작품에 비해 유달리 잔인하고 폭력적인 연출은 히어로 장르 안에서 이 영화를 (완성도와는 별개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고, 제임스 건이 제작하는 스핀오프 드라마 <피스메이커>에 대한 기대도 키우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모든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의도된 연출이다 하더라도 수위가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잔인해서 꽤 불편할 수 있다. 액션이 밀집되어 눈을 떼기 어려운 전후반부에 비해 캐릭터들의 과거사가 소개되는 중반부는 전개상 반드시 필요하지만 리듬이 순간적으로 늘어지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미국식 성인 유머가 남발되는 등 미국적 정서가 강조되는 것도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게 한다. 빌런 소개나 충격적인 장면의 연출 시 유달리 아이들을 강조되는 것만 해도 그 임팩트나 뉘앙스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는 국내보다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 처벌이 더 엄격하고 사회적으로 더 금기시되는 정서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영화다. 우선 할리 퀸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들을 폭넓게 활용하고 빌런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각인시키면서 전편의 실패를 씻어낸 공은 DC 팬들을 열광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선배 슈퍼 히어로 영화들의 행적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비현실적인 판타지로서 미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차별화된 방식으로 풀어내며 독보적인 매력을 뽐낸다는 점에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반적으로 실망을 안겨주었던 DC 히어로 영화들을 다시금 기대할 한줄기 희망이 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미친놈들의 난동이 비추고 조롱하는 더 미치고 더럽게 꼬여버린 미국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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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홍수에 깃든 파괴적 창조의 에너지
워터|El Agua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Elena LÓPEZ RIERA
Spain|2022|105 min|DCP|Color|Fiction|15|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여름철의 스페인 남동부 작은 마을, 폭풍이 몰아치자 마을을 지나는 강이 또다시 범람하려 한다. 이번에도 해묵은 미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여자들은 물을 품고 태어나 홍수가 나면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녔다. 마을 십 대들은 여름의 따분함을 달래려 담배를 피우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폭풍 전의 흥분되는 분위기 속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나, 그리고 호세는 사랑에 빠진다.
프로그램 노트
일련의 유명한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은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 감독의 대망의 장편 데뷔작. 이 영화는 고대만큼이나 신화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한 마을의 여성 세계에 주목한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한 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새로운 홍수가 발생하면 ‘몸속에 물을 지닌’ 선택받은 여자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다음 폭풍이 다가올 징조가 보이고 소문이 대물림되는 한 가족(할머니, 어머니, 딸)은 다시 한번 과거의 명령과 조상의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리얼리즘과 신비주의 중간쯤에 있는 <워터>는 여성, 연대와 저항, 사랑의 이야기와 성장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성경)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강가에 모인 아나와 친구들. 철없는 장난을 치다가도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대화를 나눈다. 작은 소도시를 떠나 마드리드 야경을 즐기고, 공부도 하고, 꿈을 이루자고. 그러나 강물에 떠밀려 온 염소 시체가 나타나자 화기애애한 대화는 뚝 끊긴다. 대신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스크린을 장악한다. 홍수와 강, 그리고 몸에 물이 깃든 여자에 대한 불길한 전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워터>의 오프닝은 일견 아무 맥락이 없다. 일상적인 수다와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전설을 억지로 붙인 듯 보인다. 전설 때문에 불안해하던 아나와 호세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사랑에 빠지고 키스하고 있으니 더 당황스럽다. 대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오프닝은 달리 보인다. 오히려 본본에 충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색하다고 생각한 오프닝 안에는 영화가 보여주려 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나 일행의 대화와 마을의 오래된 신화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을 억압하는 힘의 정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망갈 곳은 없다
아나와 친구들의 대화를 되짚어 보면 열망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갈망. 그런데 이는 역으로 현재 상황에 종속되어 있는 그들의 현실을 강조한다. 아나의 남자친구, 호세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과수원집 아들인 그는 자기가 런던에서 유학하다가 돌아왔다고 떠들고 다닌다. 아나에게도 템즈 강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준다. 하지만 그의 말은 현실과 다르다. 아버지의 강한 권유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나지 못한 채 가업을 배운다. 나무에게 물 주고 열매를 수확하는 법, 호우에 대비하는 법을 충실히 익힐수록 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 그의 일상과 현실은 다양한 잠재력과 젊은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설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신화는 젊은 여성을 억누르는 힘이다. 홍수와 강에 대해 듣고 자란 여성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 운명과 죽음이 이미 정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시간이 지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니라면 내 딸이 강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니까. 물론 전설 따위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설이 마을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나의 할머니가 샤먼 마냥 주술로 갓난아이를 치료하는 걸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워터>의 도입부는 젊은이들을 억누르는 현실적인 이유와 비현실적인 이유를 한 번에 암시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물어 탈출구를 뚫다
이때 로페스 리에라 감독은 아나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탈출구 하나를 열어준다. 현실과 신화, 현재와 과거라는 경계 사이에서 좁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방법은 간단하다. 통상 엄격하게 구분되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 된다.
실제로 영화는 현실적인 기법을 활용하되, 신화적인 내용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달리 말해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다. 영화는 아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중간중간 마을 여성들의 인터뷰를 삽입한다. 강과 홍수, 여성에 대해 묻고 그들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결과 신화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현실감이 더해진다. 한 명의 입이 아닌 여러 입을 거치다 보니 사실을 증언한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우와 홍수도 생동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목격자들이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제보 영상을 통해 불어난 강과 마을을 점령한 물을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역사적인 맥락을 더하기도 한다. 17세기 이후로 기록에 남을 만큼 컸던 홍수의 이름을 연이어 호명한다. 그렇게 하여 터무니없는 것과 이성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근거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현실도 아니고 신화의 세계도 아닌,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홍수의 파괴적 창조
그저 공간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도 않는다. 그 공간을 도전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청춘이다. 정해진 길을 따르라는 현실적인 압력과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활력을 보여준다. 아나와 호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순간. 둘이 함께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장면. 홍수를 알리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 스크린을 가득 매운 클럼의 젊은이들. 그 순간 <워터>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오프닝에 등장한 아나와 호세의 키스는 단순한 키스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정해져 버린 삶의 방향을 바꿔보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힘은 여성들의 연대다. 홍수가 임박하자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는 여인들. 아나가 무슨 선택을 해도 막지 않고 기다려주는 엄마와 할머니. 홍수가 나면 강에 몸을 던졌던 여인들. 그들은 아나가 암울한 죽음을 걱정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강에 몸을 던져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의 힘을 빌려 그녀를 괴롭힌 현실과 신화의 억압과 압력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니까. 노아도, 데우칼리온도, 우트나피쉬팀도 홍수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한 것처럼. 그래서 <워터>는 염소 시체를 비춘 도입부와는 달리 밝은 햇빛을 받으며 강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나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영화 <워터>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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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2주차 개봉예정작
제임스건의 <슈퍼맨>의 🍅로튼토마토 지수는?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 7월 2주차 개봉기대작 골라왔습니다!
제임스건의 <슈퍼맨>의 로튼토마토 지수가 드디어 공개되었습니다. 엠바고 전 공개된 부정적인 리뷰로 우려도 있었지만 91%로 시작해서 현재는 87%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DC유니버스가 이번엔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공식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원래 무용을 했던 한예리 배우와 김설진 배우는 무려 23년 지기라고 하네요
독립영화부터 블록버스터, 프랑스·대만 영화까지…
한 주가 꽉 찬 영화 라인업으로 가득하네요! 🍿✨
여러분은 추천작 중 어떤 영화 가장 먼저 보러가실 예정인가요?🤔
🎬 7월 2주차 PICK!
►<봄밤>
►<슈퍼맨>
►<여름이 지나가면>
►<델마와 루이스>
►<우리들의 교복시절>
►<괴기열차>
►<발코니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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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 거장이 만든 영화 음악들이란 역시!
이 영화는 영화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어렸을 때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인해 음악 학원에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트럼펫 연주자이며 엔니오 모리꼬네도 음악 학원에서 트럼펫을 배웠는데 자신은 평범한 소년이었으며 지금처럼 음악계의 거장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또한 음악 학원에서 페트리시라는 유능한 선생님을 만나고 제자가 되는데 이때부터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곡가 인생이 시작된다.
돈을 벌기 위해 극장에서도 일하고 군에 입대하여 군악대로 생활하기도 했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어느 날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부극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다. 서부극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풍경을 떠올리며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는 그의 모습에 한스 짐머가 그를 왜 극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미국의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한이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서부 영화 음악을 주름잡았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안타까운 흑역사이지만 훗날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는 쾌거도 이룬다.
쿠엔틴 티란티노 감독도 수상식에서 언급하길 엔니오 모리꼬네가 베토벤과 바흐와 모차르트와 견줄 만큼 위대한 작곡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칭찬에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200년 후에나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작곡한 영화 음악들이 미국의 팝,락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줬으며 리메이크해서 나온 곡도 꽤 있다고 들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천재적인 창작 센스는 아무나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고전적인 클래식과는 다르게 현대음악을 했으며 그래서 영향력이 크다고 유명한 음악가들이 말한다. 걸작을 만드는 엔니오 모리꼬네는 정말 마에스트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음악인들의 존경 대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영화 음악의 한 획을 그은 천재적인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영화 음악은 달랐을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창작이란 게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꼬네의 열정을 보며 나도 참신한 창작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선지에 그려놓은 음표가
천재 거장을 만들다!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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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것들에 대한 재판
한 남자가 외딴 산장 다락에서 떨어져 죽었다. 처음 발견자는 개와 산책을 나갔던 시각 장애인 아들. 집에는 엄마가 혼자 있었다. 이것은 사고일까 자살일까 살인일까.
일반적인 추리물은 사건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역학관계를 짜 맞춘다. 그러다 보니 종종 '트릭'이 얼마나 촘촘하게 잘 짜여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기가 막히게 파헤치는지에 집중한다. 거기엔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나 고찰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가난한 종이 주인의 학대를 이기지 못해 살인을 했고 감옥에 가는 게 두려워 자기가 하지 않은 것처럼 꾸몄다면, 결국 그 종이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트릭을 찾아내는 것이 대부분의 추리물이다. 그것이 재미있고 자극적이니까. 다 해결하고 나서야 미국식으로는 잠깐 플래시백 해서 범인의 과거를 보여주며 씁쓸한 마무리가 되거나, 일본식이라면 추리해 낸 괴짜 주인공이 범인에게 일장 교훈연설을 하며 범인의 눈물을 쏟게 만들면 끝난다. 거기엔 그 사회는 왜 종과 주인이라는 계급이 존재하는지, 그들은 원래 그런 성격인 건지 다른 이유로 사이가 점점 틀어진 것인지, 사회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었는지,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 둘의 문제에 관심은 가졌을지에 대한 전방위적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그럼 스토리가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추리 마니아들은 미스터리 커뮤니티나 방탈출 게임 등으로 아예 서사는 없애고, 트릭을 만들고 추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장르물을 즐기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모든 장르물은 장르성이 강해지면 사람보단 사건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되면 달라진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처음엔 평범한 추리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부 사이 이면에 감춰진 몰락한 관계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건을 논리로만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남녀의 이념갈등에 대한 은유도 들어있다.
해부
독일인인 유명한 소설가이자 번역가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자신이 살고 있는 프랑스 외딴 산장에서 그녀를 찾아온 여학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다락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들인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은 안내견 역할을 하는 개 스눕(메시)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음악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녀는 남편이 일부러 인터뷰를 방해하는 것 같다고 하며 인터뷰를 중단한다. 잠시 뒤, 다니엘이 산책에서 돌아오자 다니엘의 아빠, 프랑스인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이 집 밖 마당에 쓰러져 죽어 있다. 사뮈엘의 직접적인 사인은 길고 단단한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게 되어 두개골 손상으로 죽게 된 것이지만, 그 손상이 된 원인을 찾기가 힘들었다.
사건의 초기에는 직접증거를 토대로 추론을 해나간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교통사고 후 두개골이 골절되어 식물인간 상태로 치료받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한 일이 있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직접 원인은 폐렴이지만, 폐렴의 원인인 두개골 골절, 두개골 골절의 원인인 교통사고, 그 교통사고의 의도성까지 사망진단서에 기재하며 병인 폐렴으로 죽었지만 사인은 '병사'가 아닌 '외인사'가 된다.
<추락의 해부>에서 산드라가 사뮈엘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검사는, 어떤 방식으로 그녀가 죽여야 사망현장처럼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건을 재조립한다. 산드라 측에서는 자살 혹은 사고로 떨어졌을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며 다양한 증거들과 시뮬레이션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추리로 사건의 원인을 정말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산드라는 유력한 용의자지만 또한 그녀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불충분하다. 살해에는 살해의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동기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다니엘이 사건 당일 산책 나가기 전 부모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다니엘이 증언과 다른 지점이 밝혀지며 사건의 해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실험
처음에 다니엘은 집 밖 창문 밑에서 부모가 일상적인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경찰들의 실험 결과, 당시에는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일상적인 목소리 톤으로 이야기를 하면 들을 수가 없었고 그건 집 안에서만 가능했다. 그제야 다니엘은 자기가 위치를 착각했다고 말을 바꾼다. 사실 정황을 보건대, 다니엘은 기둥마다 다른 테이프를 붙여놔 구분을 하는데 시각장애인인 그가 테이프를 혼동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엄마가 살인자로 몰리게 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둘이 언성을 높여 말하는 혹은 싸우는 소리를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검찰과 변호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해부하기 시작한다. 직접증거는 나오지 않으니, 정황증거, 즉 살인의 동기와 자살의 동기를 각각 파헤친다. 다니엘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던 재판부는 다니엘이 이후의 재판은 참석하지 않기를 권고했지만, 다니엘은 부모 관계의 진실을 듣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재판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생각보다 그들의 골이 훨씬 깊었던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집은 꽤나 흔하다. 부부싸움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제일 깊게 건드린다. 부부는 위태로운 실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너무 쉽게 부서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싸운다고 해서 그것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될까? 사뮈엘의 녹취에 들어있는 둘의 싸움은 관계가 몰락해 가는 끔찍한 과정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정도인지는 의문이 든다.
산드라는 다니엘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다니엘이 있는 그대로 말한 것들은 다 산드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아들 다니엘은 마지막 증언을 신청한다. 그리고 그 변론이 있을 때까지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을 선택한다.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다니엘이 영특하게도 엄마를 구하기 위해 한 행동 같다. 수사 초반 자신의 어설픈 둘러댐이 '경찰의 실험'으로 들통나고 엄마는 점점 살인범으로 몰렸다. 있는 증거 없는 증거 다 끌어모아 변론을 하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언가 실험을 통해 주장을 확증받는 게 필요했다. 엄마가 가고 난 후 다니엘은 아스피린 10알을 스눕에게 먹이고, 스눕이 쓰러지자 토하게 만들어서 그 냄새와 스눕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며 울먹인다. 스눕이 그때도 똑같이 지금처럼 쓰러졌었는데, 아빠의 아스피린이 들어간 토사물을 먹었던 것 같다고.
사뮈엘이 토한 토사물에 아스피린이 10알 정도 있었다는 건 앞에서 볼 때 굉장히 흐릿한 기억 속에서 나온 몇 가지 이야기를 짜 맞춘 느낌이었다. 아스피린은 실제로 수십 알을 과다복용하면 인간에게도 치명적이다. 엄마가 가고 난 후 스눕에게 아스피린을 먹이는 실험을 한 것으로 보면, 다니엘은 처음부터 그날의 증언을 하려고 했다. 그럼 왜 엄마를 내보냈을까. 그날 사뮈엘이 정말로 아스피린을 먹고 토한 것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런 심각한 일이 있었다면, 사뮈엘이 죽었을 때 바로 자살시도가 있던 사람이라는 게 생각나야 했다. 지금까지의 '사뮈엘의 자살시도' 증언이 조그만 실제 정황으로 엄마와 변호사가 말을 맞춰서 만들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감시자가 있기 때문에 엄마와 말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러면 가짜 실험을 위해서 엄마가 주변에 없는 것이 더 낫다.
다니엘은 결국 실험으로 자신의 마지막 증언에 무게를 더했다. 아스피린을 먹고 아픈 스눕을 동물병원에 데리고 아빠와 갔다 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자신은 자살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사뮈엘이 자살까지 하려고 아스피린 수십 알을 먹고 토할 정도였다면, 그날 스눕보다도 아빠가 병원에 가서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굉장히 멀쩡하게 차를 운전하는 모습으로 회상씬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판결을 내리기 직전이고, 다니엘의 증언은 실험을 더해 논리보단 감성으로 참심법관들에게 전해졌다. 결국 산드라는 무죄가 된다.
다니엘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인데, 특별한 지혜를 가지고 꿈을 해석하는 인물이다. 그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이다.
관객
프랑스는 중요 형사사건에서 참심제를 하고 있다. 참심제란, 일반 시민이 단순한 의견을 내는 배심원이 아니라 형량 선고까지 내릴 수 있는 참심법관으로 임명되어 재판하는 제도다. 재판에 참심법관은 9명, 법관은 3명이 참여한다. 법률 전문가에게는 법적인 논리 등이 중요하지만, 참심제에서는 아무래도 일반 시민이 참심법관으로 참여하므로 감정이나 정황에 호소하는 것이 재판에 유리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 재판은 치밀한 법적 공방보다는 점점 자극적인 내용으로 흘러간다. 검사는 산드라의 과거 소설들이 실제 그녀 주변에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하다며, 이와 비슷한 사건이 소설에 있었으니 그걸 그대로 실행하려 한다고 압박한다. 법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지켜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데다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참심법관들도 혹할만한 내용이다. 재판을 참관하러 온 사람들은 사뮈엘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산드라의 억울함에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마치 재미있는 리얼리티쇼나 미스터리 법정 수사극을 보는 듯 웃으며 관람한다. 이미 산드라의 재판은 프랑스의 구경거리다.
여기서 살인자가 되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놓인 주인공들을 제외한 다른 시민들의 모습은, 범죄 콘텐츠를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닿아있다. 우리도 어느새, 이 영화를 보면서 산드라가 정말 사뮈엘을 죽였는지, 죽였다면 어떻게 죽였는지에 더 신경을 쓰며 그들의 아픔조차 즐기고 있지 않았던가.
다니엘은 마지막 증언에서 '어떻게'보다 '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산드라가 살인자면 배드엔딩이고 사뮈엘이 자살이면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둘 다 부모사이의 관계가 몰락하면서 생긴 너무나 슬픈 결말인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옭아매긴 했어도, 만약 자살이라면 사뮈엘의 감정이 무너지게 된 것에 산드라의 책임도 있으니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 당사자들의 아픔이나 사건이 일어나게 된 큰 원인을 뒤로한 채 사고 자체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그 원인이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라면 사건의 '왜'를 더욱 축소하고 은폐하고, '어떻게'만 말하려 하기도 한다. 만약 산드라의 변호인 쪽이 '사뮈엘은 사고사였다'라는 걸 가닥으로 잡고 주장했다면, 판결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참심법관인 일반시민이 볼 때 그런 행동은 자신의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이 말은 이 재판을 지켜보는 침심법관에게, 프랑스 시민들에게, 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뱉는 따끔한 일갈이다.
이념
영화의 불어 원제인 <Anatomie d'une chute>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프랑스어 Chute는 영어 Fall에 해당하지만, Chute는 여성형 관사 une이 붙은 여성형 명사다. 즉 이 제목을 프랑스어로 들으면 여성인 산드라가 해부당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어인 <Anatomy of a fall>에선 그 느낌이 없다. 게다가 한국어 제목인 <추락의 해부>까지 오면, Chute나 Fall이 가지는 중의적 뜻인 '몰락', '패배', '타락', '죄'등의 뉘앙스가 없어진다.
이처럼 언어가 주는 뉘앙스에 대해서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심지어 재판에서, 산드라의 변호사는 산드라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을 때는 꼭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산드라는 프랑스어를 영어만큼 잘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영어로 이야기하고 법관들은 통역 이어폰을 끼고 듣게 된다. 또 프랑스인인 사뮈엘과 독일인인 산드라는 서로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는데, 이것은 남녀 서로가 자신의 고유한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서로 맞춰가며 말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언어에는 철학과 이념이 깃들어있다. 어느 한 언어로 말하는 것은 완벽하지 못하면 그 뉘앙스를 제대로 번역할 수가 없다.
언어와 소통의 어려움, 산드라와 다니엘의 관계나 재판의 과정은 가부장제와 페미니즘 간의 대립을 은유하고 있다. 마치 몰락한 가부장제를 페미니즘이 죽였다고 재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사뮈엘은 산드라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말한다. 시간, 꿈, 섹스까지도. 그는 산드라가 괴물 같다고까지 말한다. 또 산드라는 산드라 나름대로 억울하다. 산드라는 사뮈엘의 나라인 프랑스에 살기 때문에 내내 모국어인 독일어를 쓴 적도 없다. 다니엘이 시력을 잃어버린 사고는 사뮈엘의 잘못이 있다. 섹스를 거의 하려 하지 않으니 외도를 한 거라고 한다. 둘은 각자 나름대로 배려했지만 상처 입었고, 사회적으로 산드라는 점점 잘 나가고 사뮈엘은 스스로 몰락해 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다. 산드라는 아들 다니엘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든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사뮈엘이 좋아서 자처한 일이었고, 소설을 포기하고 아이디어를 넘겨준 것도, 사뮈엘을 돌보겠다고 한 것도, 프랑스에 와서 산장에서 살게 된 것도 사뮈엘이 결정한 일이다. 사뮈엘은 누구의 탓도 아닌 스스로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누구보다 사뮈엘 자기 자신이 그것을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산드라에게 분노를 표출하지만, 그것은 산드라를 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가부장제의 몰락에 대한 페미니즘의 재판처럼 보이지만, 또한 이것은 완벽한 미러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산드라와 사뮈엘은 통상적인 남녀역할이 완전히 바뀌어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사뮈엘의 외침은 바로 여성들이 외치던 말이다. 여성들은 집안일에 치여, 자신이 원래 하고 싶던 꿈은 하지도 못한 채, 바람이나 피우는 남편 뒷바라지나 하고 살았다. 결국 이 영화는 가부장제를 깔아뭉개거나 페미니즘을 올려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비극을 이해하자고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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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는,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 아니라 해부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곳에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그곳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건의 이유들이 숨어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몰락하기 전에, 그 이유들을 조금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어떻게가 아니라 왜. 다니엘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돈다.
*개의 이름이 스눕이라고 하면, 사실 바로 떠오르는 이름은 미국 힙합의 전설 스눕독이다. 스눕독 역시 1집이 나올 당시 살인사건에 연루되었고,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재판을 몇 년이나 한 끝에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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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10월 첫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고 있습니다.외출하실 때 외투 꼭 챙기시고,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컴백홈>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공조2: 인터내셔날> (-)▶ 4주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공조 2: 인터내셔날>이 7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 영화에서 3번째로 누적관객수 600만 명을 넘은 영화이며, <탑건: 매버릭>이 600만 관객을 넘어선 것보다 빠른 속도로 600만을 넘어섰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7일- 10월 9일) 관객 수 22만 3,64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52만 5,77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인생은 아름다워> (▲1)▶ 이전보다 한 단계 상승한 2위를 차지한 <인생은 아름다워>. 흥겨운 노래와 감동적인 스토리와 함께 호평이 이어지며 흥행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주말 동안 (10월 7일 ~ 10월 9일) 관객 수 16만 8,22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8만 71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정직한 후보2> (▼1)▶ 블랙코미디 영화로 주목을 받았던 <정직한 후보>의 관객 수가 약 2분의 1 정도 줄어들면서
주말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번 주는 한 단계 더 낮아진 순위를 예상한다.
주말 동안 (10월 7일 ~ 10월 9일) 관객 수 13만 5,83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9만 5,45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21회 예측 이벤트는 <컴백홈>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컴백홈> 주말 스코어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컴백홈>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59%, 여성 41%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다음으로 2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컴백홈>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30대 초반 남성과(169,596명)과 40대 초반 여성(163,061명)이었습니다.
또한 <컴백홈>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8.7%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컴백홈>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 미스터리 장르로 관객을 모은 짱구 극장판이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관객을 모았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7일 ~ 10월 9일) 관객 수 12만 8,15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8만 9,21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스마일> (NEW)▶ 전 세계 호러 팬덤을 열광케 만든 영화 <스마일>. 판타스틱 페스트 개막작 상영 후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7일 ~ 10월 9일) 관객 수 3만 19,24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만 8,91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Smile>이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하여 기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던 영화들의 순위가 하락하였습니다.
주말 동안(10월 7일 ~ 10월 9일) <Smile>의 매출액은 17,600,000 (한화 약 250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9월 16일 ~ 2022년 9월 18일)1. <스마일> 1,760만 달러 (누적 4,989만 달러)2.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1,150만 달러 (누적 1,150만 달러)3. <암스테르담> 650만 달러 (누적 650만 달러)4. <더 우먼 킹> 530만 달러 (누적 5,412만 달러)5. <돈 워리 달링> 347만 달러 (누적 3,845만 달러)...씨네픽의 10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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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명지배: 대환장 특수임무> 예고편
시내에 있는 휴대폰 가게에서 총기 강탈 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들은 가기라는 여자의 집에 침입하여 몸을 숨긴다.
평소 죽고 싶던 가기는 죽이고 나가라며 범인들을 협박한다.
예전 경찰을 도우며 살아가다 한 번의 사고로 몰락한 마선용은 경찰의 도움이 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하는 일마다 꼬이게 된다.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서산 대교에서 조직폭력배와 학생들 간에 패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총기를 찾으러 갔다가 구급차에 실리게 되고, 그곳에서 총기 강도 사건의 범인들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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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몬스터: 어둠 속의 살인> 예고편
빅풋이 나타나는 화이트 홀 마을에서는 많은 여성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실비아와 제이미의 친구 데이나도 실종하고, 빅풋이 여성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던 중 실비아와 제이미는 데이나를 찾기 위해 알렉스와 만나게 된다.
실비아는 알렉스의 집에서 머무르며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