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몽실2021-08-12 13:50:56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왓챠 영화 리뷰 <데몰리션>
느껴야만 하는 합당한 감정이 왠지 좀처럼 터져 나오지 않고 몸속 어딘가 꼭 박혀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어딘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 난 느끼지 못해도 내 몸 어딘가는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전달받은 곳은 고장이 나 삐그덕거린다. 발광하기도 하고 일부로 날 괴롭힌다. 그렇게 화가 나고 아픔을 느끼면 마음이 놓인다.
살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반복한다.
아내를 만나고 장인어른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산다. 그러나 자기가 빠져 있는 일이 아니면 게으르고 무심하다.
물이 새는 냉장고에도, 그리고 아내에게 마저도.
아내를 무심히 여기고 놓치고 살던 그는 아내가 떠나고도 마치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슬프지가 않다. 그렇지만 왠지 삐그덕 거린다. 어딘가에서 위급상황을 외친다. 매미나방이 심장을 갉아먹었다.
문제점을 찾기 위해 분해를 시작했다. 모든 걸 부수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전과 다른 충동적인 삶을 산다. 파멸, 파괴 그것만이 흥미롭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주는 관심. 조금 무심할 수도 있지 바쁘고 힘들면 그럴 수 있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날 아직도 뜨겁게 사랑한다는 관심. 그게 없이는 사랑이 아닌 걸까?
"전에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어쩌면 보긴 봤는데 무심하게 본 거겠죠."
오랫동안 아프던 마음이 사소한 위로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싹 낫는 일이 있다.
어떤 정신질환 약과 치료보다 강한 게 누군가 날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무엇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미루고 놓친다. 꼭 잃고 나면 그제야 깨닫고 후회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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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하게 빠져드네… 134개국에 판권 선판매한 K-좀비물
6★/10★
한국에서 나온 것이 세계적 관심을 끌 때 우리는 그 앞에 ‘K’자를 붙인다. K팝, K콘텐츠, K방역, K뷰티, K콘텐츠 등등. 그중 ‘K좀비’라는 표현도 있다. 탄탄한 각본,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자본을 곁들인 〈부산행〉,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국제적 성공을 거둔 후 등장한 말이다. 그리고 여기, ‘K좀비’의 계보를 잇겠다고 나선 영화가 있다. ‘B급 코믹 좀비 액션’을 표방하는 〈강남좀비〉다.
〈강남좀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대형 건물에 좀비가 등장하며 생기는 일을 담은 영화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으나 지금은 직원 월급과 사무실 월세조차 밀리는 조그만 영상 콘텐츠 기획 회사에서 일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민정은 제법 능력 있는 영상 편집자지만 아직 별다른 경력이 없어 경험을 쌓고자 한다. 남몰래 민정을 좋아하는 현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민정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해 조금은 침울한 상태다. 그 와중에 회사 사장이 민정에게 은근슬쩍 성추행을 일삼아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좀비가 등장했으니 줄거리를 예측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답게 고군분투하면서도 좀비 떼들로부터 회사 직원, 특히 민정을 멋지게 구하고 민정 역시 그런 현석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마음을 연다.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좀비 액션도 기대 이상이다. 저예산으로 만든 좀비 영화이 액션과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좀비 드라마의 액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초의 좀비 감염자를 연기한 조경훈 배우의 열연, 흰자를 보이지 않게 한 좀비 분장, 배우들의 노력으로 채운 좀비 액션은 분명 적당히 즐길 만한 정도다.
영화가 표방하는 B급 정서도 포인트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웃음을 주고자 의도한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고, 영화가 진지해지고자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난다는 점이다. 즉 〈강남좀비〉가 의식적으로 표방한 B급 연출은 다 빗나간다. 그러나 진지한 감정선을 만들려 할 때는 오히려 B급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억지로 세태를 욱여넣은 장면과 장르 영화의 클리셰가 뒤섞인 장면을 보기가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저예산 영화의 공백을 기묘한 방식으로 채워내 의도치 않은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데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오프닝 액션을 보며 나온 ‘아……’ 하는 탄식이 ‘이 영화, 왜 재밌지…?’라는 당혹스러운 물음으로 전환될 때쯤부터, 나는 〈강남좀비〉를 기꺼이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134개국 판권 선판매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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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낙인의 틈새를 파고드는 한 노인의 묵직한 진심
아침바다 갈매기는/The Land of Morning Calm
뉴 커런츠
Korea/2024/114min/
*시놉시스
어느 밤 젊은 선원이 사라진다. 늙은 선장은 선원이 바다에 빠졌다고 신고한다.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선원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며 매일같이 부둣가를 지킨다. 이내, 선원의 베트남인 아내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평생을 고집불통으로 살아온 늙은 선장이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박이웅 감독의 전작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 김혜윤 배우(혜영)가 연기한 강렬한 캐릭터가 극을 추동했듯이, 두 번째 장편 〈아침바다 갈매기는〉도 윤주상 배우(영국)가 엄청난 묵직함으로 극을 견인한다. 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각기 다른 감정이다. 혜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층민 소녀의 강렬한 분노에 휩싸여 있고, 영국은 헤아릴 수 없는 책임감으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돌파한다. 두 사람은 깊디깊은 감정으로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
조그만 어촌 마을에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의 배에서 일하던 젊은 어부(박종환 배우)가 바다에 빠져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남자는 바다에 빠진 게 아니라 보험 사기를 계획했다. 자신의 사망 보험금으로 베트남인 아내(카작 배우)와 어머니(양희경 배우)에게 보탬이 되고자 영국을 이 일에 끌어들인 것이다. 영국은 젊은 남자의 가족과 한 가족처럼 지내온 사이다. 늘 썩은 동태 눈깔처럼 의욕 없이 흐리멍덩하던 남자가 보험 사기를 계획할 때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영국은 그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영국은 남자의 어머니와 아내에게까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완벽한 일처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영국의 마음은 편치 않다. 동료 어부들, 해경이 차례로 수색을 멈추는 상황에서도 남자의 어머니는 바닷가에 의자를 놓고 우두커니 앉아 돌아오지 않는/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기다린다. 베트남인 아내도 보험금이 얼마인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죽은’ 남편 대신 자신과 결혼할 생각은 없는지 등등 마을 사람들의 못된 관심을 마주한다. 그녀의 법적 지위에만 관심을 두고 그 외의 모든 맥락을 소거한 행정 관료들의 태도도 그녀의 어려움을 배가한다. 아들/남편이 죽은 줄로만 알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두 사람 앞에서 영국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영국은 남자의 아내에게 보험금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사라진 남자의 가족이 겪는 참혹한 현실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며, 한국이 그녀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은 죽고 국제결혼한 여자는 본국으로 보험금을 갖고 떠난다’는 통속적이며 저열한, 편견에 가득 찬 악의적으로 뻔한 이야기가 가진 힘에 비밀을 숨겨 남겨진 사람들의 새 출발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마을 주민의 말마따나, 평온한 일상 이면에 피폐한 생활로 인한 갈등과 반목 그리고 오래된 폭력이 꽉 달라붙어 도사리고 있는 이 마을은 이미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은 과거 가족을 잃은 아픔을 통해 옆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새 삶을 ‘시작할’ 힘을 준다. ‘야반도주’한 베트남인 아내를 두고 혀를 차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홀로 바다로 향하는 영국의 뒷모습에는 ‘끝’에서 ‘시작’을 길어낸 어느 노인의 뚝심이 놀라운 광채로 빛나고 있다.
박이웅 감독은 전혀 다른 질감의 두 이야기에서 모두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관계망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힘이 없는 인물에게 그 관계망을 지켜내라는 임무를 준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관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에서 비롯한 감정뿐이다. 그리고 감정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 관계망이 소리소문없이 절벽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수동적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함께 살길’을 모색하는 박이웅 영화의 주인공들은 형형한 존재감을 뽐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힘과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것이 박이웅 영화가 가진 미덕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 초청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 상영시간
10-06/09:00/영화의전당 소극장
10-07/10:30/CGV센텀시티 1관
10-08/15:30/CGV센텀시티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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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한 미소 뒤에서 바라보는 심연에 관한 공포
'어두운 날들이여 안녕, 외로운 눈물이여 안녕, 이제는 행복해질 시간이라 생각해' 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노래 가사를 부른다. 신나는 노래.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활짝 웃는 것 같다. 사실 어제 좀 늦게 잤다. 내가 좋아하는 맨유의 경기를 보다 늦게 잤다. 아니 사실 그 이전에 책을 한 권 읽고 잤다. 바로 <혐오의 과학>이라는 책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혐오범죄에 탐구했던 이 책. 45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거의 하루 꼬박 걸려서 다 읽었다. 엥? 이러지 않았는데? 나 그래도 책 일찍 읽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내용이 너무 어렵게 느껴 저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왜 이렇게 됐지? 생각해보면 그동안 책을 읽었다고 스스로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깊게 따져보면 그것은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책을 '단지 본'것에 가깝다. 그것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본 게 아니다. 그냥 시선을 그쪽으로 옮긴 것뿐이다. 왜 그렇게 됐지? 즐거운 하루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거리에 멈춰 서서 음악을 바꾼다. 바로 들리는 건 자우림의 <샤이닝>이다. 내가 기댈 곳은 어디인가.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던 카페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갑자기 씁쓸해진다. 내가 견뎌온 삶의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때문에 가끔 세상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샤이닝>이 지났다. 바로 나오는 곡은 아이유의 <밤편지>다. 또 느닷없이 드는 생각. 이런 거 생각해서 뭐해? 그냥 그렇게 묻어두는 거지. 다시 컨디션이 좋지도 않지만 안 좋지도 않은 상태로 돌아간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쨌든 웃을 만한 순간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나와 우라를 위해 호러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관객을 불러들일 거면 좀 예쁜 웃음이 좋았을 걸, 이 사람들은 너무 기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스마일>이다.
기괴하게 웃는 사람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 로즈 코터. 그녀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회에 무언가를 기여한다는 생각은 로즈의 소중한 동기부여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는 로즈.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그녀 앞으로 들어온 환자 한 명이 있었다. 환자의 이름은 로라. 로라는 남들은 볼 수 없지만 자기에게는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의사의 관점에선 분명한 망상이다. 로라의 상태를 진단하는 로즈. 로라는 크게 화를 내며 난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라가 목격했던 광경을 털어놓는다. 대학원생이었던 로라. 그녀의 담당 교수였던 무뇨즈가 로라를 호출했고, 금세 망치로 자기의 머리를 스스로 가격해서 죽었다고 한다. 죽으면서 건넸던 말은 유언이 아니라 기괴한 웃음뿐이었다고 전하는 로라. 무뇨스 교수의 자살 이후 로라의 눈에만 이상한 웃음이 보인다. 당황하는 로즈. 주치의로서 무언가 피드백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로라가 발작을 일으켰다. 공황까지 오는 것 같다. 더 화들짝 놀라는 로즈. 로라는 발작을 일으키며 “그것이 오고 있어요!”라고 소리 지른다. 갑자기 이 발작을 멈추더니 로즈는 주변에 있는 깨진 조각을 줍는다. 기괴하게 웃는 로라. 곧 로라는 깨진 조각으로 스스로 목을 그어 목숨을 끊는다.
충격적인 상황. 정신과 주치의라고 해서 특별하게 멘탈이 강한 건 아니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로즈.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계속 찝찝하게 머리에 남는 건 로라가 죽기 전에 로즈에게 했던 말이다. “무뇨스 교수는 자살하기 전에 기괴하게 미소를 지었어요!”라는 말이 비단 자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다음 날. 로즈는 지나가다가 환자 한 명이 이상하게 웃는 모습을 목격한다. 환자 칼에게 다가가는 로즈. 칼은 로즈에게 다가가자마자 “넌 죽게 될 거야!”라고 소리친다. 화들짝 놀라는 로즈. 정작 칼은 계속 수면 상태였다. 이때 겪은 일을 상관에게 말하는 로즈. 상관은 로즈에게 일주일 동안 잠깐 쉬고 오라고 말한다. 그 때만 해도 잘 몰랐다. 로즈는 큰 구멍을 파고 있었다는 걸.
호러 만세
영화의 톤은 흑백이었다. 주인공은 남자 둘. 남자 둘은 등대에서 일하고 있다. 두 남자는 따뜻한 성격을 가지지 않았다. 내내 까칠한 두 남자. 어떤 남자는 자기 이름도 거짓으로 둘러댔다. 나이 든 남자는 내내 젊은 남자에게 극언을 내뱉는다. 아무도 없는 등대와 해안가. 상사인 것처럼 구는 중년의 남자와 많은 일에 젊은 사람은 학을 떼고 있다. 이렇게 불안한 자의식이 점점 깊어질 때쯤 젊은 남자의 눈에 인어의 시체가 보인다. 분명히 과거에 전해 듣기로는 '인어의 시체를 목격하는 것은 그 광경을 본 자가 미쳐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었다. 미쳐가고 있는 것인가. 나를 침잠하는 바닷가와 서서히 조여 오는 사운드에 젊은 남자는 정신을 잃어간다. 앞에서 소재로 쓴 영화는 <라이트하우스>다.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잘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신화에서도 레퍼런스가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끝까지 봐야 이해가 용이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를 깊게 파지 않은 분들이라면 도중에 하차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렇게 큰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지만 나는 이 <라이트하우스>가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운드와 흑백 연출로 서서히 돌아버리는 인물의 처지를 깊게 잘 묘사했다. 러닝타임을 보면서 내내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 때문에 극의 끝까지 잘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나라에 <곡성>이란 영화가 이미 있었다. 그렇지만 <라이트하우스> 역시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곡성>과 비슷하게 인물을 서서히 옥죄는 연출을 보다 새롭게 접근했다. '얼마나 끔찍할까'의 공포가 아닌 '내가 처한 상황이 답도 희망도 없다'라는 두려움을 영화 전반을 이끄는 정서로 선택한 것이다. <곡성>이 2016년이고 <라이트하우스>가 2019년이니 이 두 영화는 꽤나 신선했다고 볼 수 있다. <쏘우> 시리즈를 위시로 한 슬래셔 무비나 <살인 소설>에서 봤던 '갑툭튀' 형 점프 스퀘어를 넘어 두려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호러는 이렇게 점점 더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장르에서 조금씩 빈틀어서 더 새로운 결과물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이 <스마일>은 이런 관점에서 신선하다. 일단 우리는 배트맨의 호적수 '조커'를 알고 있다. 찢어진 입으로 기괴한 웃음을 내뱉는 조커. 히스 레저와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한 방 먹였다. 또 어렸을 때 '빨간 마스크' 한번쯤 다들 들어봤잖아? 이렇게 웃는 모습으로 기괴함을 연출하는 방식은 잘 생각해보면 사실 몇 번 봤었다. 또 <트루스 오어 데어>라는 영화가 이미 개봉했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신선한 이유가 단지 웃음 때문에? 아니다. 영화의 핵심 소재와 웃음이 갖는 관련성이 탁월하기 때문에 신선하다. 일단 이 웃음과 영화의 주요 소재는 끊임없이 대비된다. 극에서 웃는 얼굴의 모습이 '아예 고통이 없음'을 암시하는 장면도 있다. 이는 왜 이 스마일이라는 소재가 양면적인 측면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핵심 소재를 결국 넘어서야 '스마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면의 무언가를 담아내지 못하면 결국 불안한 자의식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현대사회의 그림자는 영화 전부를 관통하며 호러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마일'이라는 제목과 포스터를 보러 갔다가 더 깊숙한 내면의 심연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익숙한 맛으로
소재에 대한 접근은 신선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기존 영화들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다. 바로 이미지 사용법이다. 이 영화는 이미지 사용을 잘했다. 일단 포스터부터 볼 수 있는 기괴한 미소는 누구 아이디어인지 궁금하다. 세상에서 가장 께름칙한 미소를 가져다가 포스터에 박았다. 이 웃는 얼굴은 영화 끝까지 반복해서 나타난다. 관객들은 이 기괴한 미소에 1차적으로 적응한다. 으. 저거 기분 나쁘게 웃네. 그런데 여기다 기름을 붓는다. 바로 미술을 활용했던 방식이다. 극은 여러모로 잔인하게 소품을 잘 활용한다. 자기가 직접 날카로운 걸 갖고 목을 긋는 건 기본이다. 직접 자기 머리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식칼 비슷한 걸로 사람 몸을 푹푹 찌르기도 한다. 또 중후반부쯤에 굉장히 잔인하게 피살당한 인물의 사진이 나온다. 이런 고어 묘사가 영화에서 가볍게 휙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 작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로라의 자살부터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엔딩 직전 시퀀스에서 해소시키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영화가 두렵다가도 주제와 맞닿아 있으니 경제적으로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이 감독의 연출 방식은 사운드 구성에도 강점이 있다. 봤던 소재를 중반부까지 이끄는 건 음향의 힘이 다 했다. 사실 이런저런 영화를 봤던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초반부 전개가 익숙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쓴 <곡성> <유전> <라이트하우스>를 살짝 비튼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기존의 것들과 차이점을 부여하며 초장부터 빠른 템포로 관객을 시종일관 제압한다. 예를 들어 칼이 로즈에게 '넌 결국 죽게 될 거야!'라고 소리 지르는 신이 있다. 목소리 톤을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듯싶다. 살짝 얼빠진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 서늘한 경고가 될 때가 있다. 영화는 이 지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표현한다. 또 지지징하는 효과음도 어느 장면에서 기괴해야 하고 그렇지 않아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채로 잘 들어갔다. 우리가 어떤 밴드의 음악을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밴드 합주를 하는데 드럼이 압도적으로 못하면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이야기에 딱 달라붙은 상태로 소리를 묘사한다. 작게 "로...즈"하는 속삭임도, 로즈의 눈에 타인의 기괴한 미소가 보일 때도 사운드에 변박을 주며 충분한 호러 분위기를 조성한다. 올해 <탑건 : 메버릭>이 거의 8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쳤다. 이 영화의 강점으로 많은 분들이 음향을 뽑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르릉하는 비행기 소리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것 같진 않다. 영화는 이와 다른 측면에서 강점을 내비친다. 아마 이 영화의 음향 효과가 기억이 안 나실 수도 있다. 아마 이 영화의 음향이 관객을 내내 붙잡고 집중하게 만들 테니까.
별개로 영화에서 강점으로 작용했던 건 캐릭터 설정이다. 우선 영화에는 로즈의 전남친과 현남친이 나온다. 여기서 현남친 캐릭터 설정이 좋았다. 우선 <유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유전> 거의 단점이 없다시피 한 영화지만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아내 애니가 그렇게 미쳐가고, 아들을 하대하고 있는데 남편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또 스콧 데릭슨의 <살인 소설>에서도 그냥 좀 조용히 신경 끄고 살지 왜 사서 고생을 만드는가? 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글쓴이가 호러에 식견이 그렇게 넓은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현남친 캐릭터는 확실히 클리셰를 벗어난 느낌이다. 앞의 두 영화 <유전> <살인 소설>과는 다르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친구라도 다 받아주는 건 너무 극적 장치라고 생각했다. 이를 비틀듯이 영화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인물을 묘사한다. 이 현남친 캐릭터와 비슷한 맥락을 하는 것이 상담사와 전남친 캐릭터다. 전자는 현남친과 비슷하게 적절하게 사용됐지만 후자는 엔딩부에서 살짝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두 인물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좀 더 매끄럽게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이미지만큼이나 캐릭터를 잡았던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아쉬운 것도 있어
그렇게 연출가의 강점도 들어가고 주인공 소시 베이컨의 열연도 느껴지지만 단점은 당연히 있다. 바로 점프 스퀘어다. 이 연출 방식 전부가 무의미하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가령 예고에서도 나오는 분홍색 여자가 니트를 입고 창을 똑똑 두드리는 장면은 점프 스퀘어가 잘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끔찍한 이미지들과 함께 시너지를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예고에 나오는 부분이다) 주인공 로즈가 화들짝 놀라서 기절하는 곳이 굳이 유리여야 했는가? 에 대해서는 살짝 아쉽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즈가 헛것을 보는 장면이 여러 번 제시된다. 왜 헛것을 볼까? 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것의 원인 절반이 '집에 불을 켜지 않아서'로 귀결 지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단순히 관객을 깜짝 놀래키기 위해 점프 스퀘어가 소모적으로 사용됐던 건 많이 아쉽다. 이게 주요한 순간에 점프 스퀘어가 들어간 것이 아닌 비교적 덜 핵심인 장면에 들어가니까 이질감이 더 크다. 감독님이 자신이 없으셨나? 이미 충분히 영화 잘 만들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엔딩부의 전개는 좀 아쉽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중후반부에 방향키를 트는 부분이 있다. 글쓴이는 이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도입부에 로라가 죽기 전에 했던 대사가 생각나면서,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더 완성도가 높은 각본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 이 방향키를 틈으로서 새롭게 나타나는 인물은 극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관련 있다. 이 메시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이 인물의 등장이 소모성으로 휙 쓰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오케이. 엔딩까지 가는 빌드업 좋았고. 터트려야 할 데에서 터트렸고. 클리셰 깨기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극후반부 가장 마지막 시퀀스가 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조악하다고까지 느낀 부분이었다. 뻔한 호러에서 탈피하고 싶었나? 영화의 처음과 끝이 조응하고, 이 '웃는 것'의 속성과도 대응하는 방식은 1절만 하면 됐다. 그런데 굳이 그걸 그런 식으로 비틀었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결국 지은 미소에 관하여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어떤 인생이든 나와 그렇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같았던 내 유년시이었다. 이것도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내가 어림잡지도 못할 정도로 뒤틀린 인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또 우리의 삶에서 이 영화가 차용한 주요 소재가 왜 인간에게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지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야 하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그것만큼이나 더 아픈 건 주위 사람들이 그런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람에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는 이 지점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며 폭주한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필요하다. 행동과학에 '담아내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각자의 어린 시절에 크고 작게 다가오는 부침을 '별 것 아니다'라고 버텨주는 것이 '담아내기'의 뜻이다.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에 이 '담아내기'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극은 이런 인간의 불완전성을 내세우며, 모두의 마음속에 진 응어리를 미소로 일깨운다. 내가 만든 세상을 일깨울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미소 지으며 정신승리한 채로 버틸 것인가? 감독은 굉장히 서늘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던 필, 아리 애스터, 로버트 애거스가 현재 호러 영화 기대주 탑 3으로 언급되고 있다. 뒤틀린 판타지/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발상/호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각 감독들의 주요 특징이다. 이 셋 만큼은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에 관해 묻는다'라는 특징을 가진 신성이 등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드린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함께 극장에서 볼 만한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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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톺아보기] 이성경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스타들의 뒤에서 그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현장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별똥별>의 여주인공 배우 이성경!
오늘의 톺아보기 주인공은 바로 배우 이성경입니다.
그럼, 이성경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러 가볼까요?!
ⓒ YG STAGE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춤, 피아노 연주 실력까지 두루 갖춘 배우로 밝은 모습에 인간 비타민 같은
매력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특히 특별한 갈색 눈을 가져 신비로운 모습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배우 '이성경' 프로필
ⓒ YG STAGE
이름 | 이성경
출생 | 1990년 8월 10일
소속사 | YG엔터테인먼트
데뷔 | 2014년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 배우 데뷔
별명 | 이응, 깝경
배우 '이성경' 데뷔 과정
ⓒ YG STAGE
이성경 배우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 전공으로 음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의 권유로 모델 대회에 나가게 됐고, 모델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 후, 2014년 모델 활동을 그만둠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배우 '이성경' 대표작
치즈인더트랩 - 백인하
ⓒ TVING
이기적이고 게으른 성격을 가졌으며,
한 번 돌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트러블 메이커 '백인하'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역도요정 김복주 - 김복주
ⓒ MBC
한얼체대 역도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역도 유망주인 '김복주' 역을 맡았다.
불 같은 성격을 지녔고 의리 있는 인물이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왓챠
트롤 - 파피
ⓒ 네이버 영화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는 흥겨운 트롤 왕국의 긍정 공주 '파피' 역을 맡았다.
매사 즐겁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녔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레슬러 - 가영
ⓒ 네이버 영화
윗집 이웃이자 성웅의 소꿉친구인 '가영' 역을 맡았다.
통통 튀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녔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seezn
걸캅스 - 조지혜
ⓒ 네이버 영화
민원실로 쫓겨난 강력반 사고뭉치 초짜 형사 '조지혜' 역을 맡았다.
법인을 잡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사건에 매달린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낭만닥터 김사부 2 - 차은재
ⓒ SBS
거산대 의대에 들어가,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현재 CS 펠로우 2년 차가 된 '차은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수술실만 들어가면 울렁증 때문에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하트어택 - 성경
ⓒ 네이버 영화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100번의 시간을 돌리는 여자 '성경'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왓챠
별똥별 - 오한별
ⓒ TVING
남다른 언변과 뛰어난 위기 대응 능력을 가진 스타포스엔터 홍보팀장 '오한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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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러브! 러브! 러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경제는 내리막길이고, 이곳 저곳에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느 때보다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며, 조금이라도 가져야 할 행복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다. ‘사랑은 무신 얼어 죽을 놈의 사랑’이라 반박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사랑, 사랑, 사랑이다.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신작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척박한 세상에 그나마 행복이란 꽃을 피워내는 건 사랑이라 말한다. 특유의 괴팍한 유머와 건조하리만큼 무표정한 이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마트에서 일하는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공장에서 일하는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일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가라오케로 향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서로를 눈여겨본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안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술과 담배로 무미건조한 삶을 버티는 훌라파는 거리에서 안사를 만나고, 카페, 극장 데이트를 나누며 오랜만에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안사는 홀라파에게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넨다.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한 이 남자는 그 쪽지를 잃어버리고,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극장 앞을 서성인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사진제공 다음 영화
의미하고 불필요한 전쟁에 시달리던 중,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에 관해 쓰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연대, 희망,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 삶과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2017년 <희망의 건너편>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감독은 6년 만에 자신의 말을 주워 담고,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만들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다사다난했던 온 세상의 일들이 노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들이 점차 잊히고, 상실되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이 씁쓸한 감정과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겪는 고용 불안, 경제 하락 등 먹고 살기가 더 힘들고 팍팍해진 삶은 그 우울함을 배가시킨다.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을 가져갔다고 해고당하거나(물론 가져가면 안 되는 건 맞다.), 힘든 삶을 잠시 잊고자 켜는 라디오에서 매번 음악 대신 전쟁 뉴스가 흘러나오는 건 이를 잘 보여준다. 알코올에 의존해 일을 하거나 가스통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은연중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이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특히 감독이 영화를 통해 집중했던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을 그렸다는 점은 극 중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표현되며 극대화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켄 로치 감독의 영화처럼 노동자들의 비루한 삶을 투영하는 사회 비판적 작품은 아니다. 앞서 소개했듯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우연한 이들의 만남, 재회, 데이트,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은 더 돋보인다. 과장이 아닌 너무나 담백해서 무색무취한 감정이라고 해도 그 오가는 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돌고 돌아 비로소 재회한 이들의 첫 저녁 식사 준비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멋진 데이트를 위해 식기를 고르고, 값싼 구색 갖추기용 술을 사고, 집을 청소하는 안사,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빌리고 꽃을 사는 홀라파의 모습은 여느 로맨틱 영화보다 더 설렌다. 그 설렘의 근원은 삶이란 지난한 여정을 가는 상황에서 피어난 사랑의 기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고된 일과 일상이 그들을 기다릴지언정 이 순간만큼은 만끽하고 싶은 그 소중함. 감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갖고 싶어 하는 순간과 감정들의 고귀함을 스크린으로 옮긴다. 이 영화에서 그토록 노래 부르는 장면이나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극 중 등장하는 사랑은 한 발 더 나아가 연대의 의미를 고취시킨다. 안사와 홀라파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사랑이 힘겹게 이뤄지는 과정은 곧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서로 이해와 공감을 하는 과정과 일치해 보인다. 이는 이들의 관계에서만 빗어지는 게 아니다. 안사와 홀라파의 직장 동료는 물론, 홀라파가 입원해 있었던 간호사에게도 이 따뜻한 기류가 전파된다. 만약 안사와 홀라파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관객들이라면 스크린을 넘어 그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누가 뭐라 해도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영화다. 감독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렵게 길어온 그 소중한 감정은 냉기만이 흐르는 작금의 시대에 작은 촛불과도 같다. 올 연말, 이 영화를 마주한다면 저마다 작은 촛불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러브! 러브! 러브!
평점: 4.0 / 5.0
한줄평: 냉기만이 흐르는 시대에 켜진 작은 촛불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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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어쩌면 나만 섬인가봐
* 제목은 타블로의 노래 <airbag>에서 인용
절해고도(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감독 : 김미영
상영시간 : 110분
시놉시스 : 20대 때 청년조각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40대 이혼남 윤철에게 10대 딸이 있다. 미술가로 장래가 촉망되던 딸이 어느 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겠다고 한다. 윤철도 한때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하면 신부나 스님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윤철은 자신이 꿈만 꾸고 가지 못한 길을 딸이 가는 것 같아 인생을 도둑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스갯소리로 예술하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한다. 소위 대박이 터지기 전까지 생활의 궁곤함은 차치하고, 기질적인 예민함과 높은 이상, 비대한 자의식이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일 거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라 장점도 았다. 예민한 사람들이 가진 다정함과 배려심, 감각적인 표현과 시선 같은 것들, 먹고 사는 문제나 돈 벌 궁리 말고 다른 이야기들을 밤새워 할 수 있다는 새로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절해고도>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혹은 작업하는 사람의 이야기, 예술과 재능과 운에 대한 이야기다. 먼 바다에 있는 외로운 섬, 한때는 유배지를 절해고도라 불렀다.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보이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섬이 있다. 그런 섬을 상상해보자. 먼 바다 끝에 보물섬이 있다.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닿지를 않고 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그 섬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있다. 어쩌면 그 섬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20대에 청년조각상을 한 번 받은 후에 그렇다할 작업물 없이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윤철에게 현업 조각가의 꿈은 먼 바다의 섬 같다. 한때 자기보다 못했던 후배도 개인전을 여는데,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버지와 딸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닮기도 한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야구선수 이대호의 딸도 그렇고 윤철의 딸 지나도 그렇다.
지나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 하필이면 질투는 경쟁자들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한다. 때로는 가족이, 때로는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남긴 '쓰레기'라는 댓글은 예술하는 19세 청소년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지나는 예술가이므로 자기 감정을 학교 블라인드에다가 표현해놓고 학교를 떠난다. 그림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학교 선생은 지나의 부모를 호출한다.
학교에서 선생을 만나고 돌아온 윤철은 지나에게 '그림에 재능있기가 쉽지 않다'는 말만 주구장창 한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스님이 되겠다는 지나를 보며 한때 자기도 종교에 귀의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금우스님의 말처럼, 윤철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지나는 윤철이 멀리서 보기만 해야 했던 그 섬에서 태어난 아이다.
지나는 머리를 깎고 '행자 도맹'이 된다. 이제 윤철과 지나의 관계는 부녀에서 행자-거사의 관계로 바뀐다. 이들은 남남처럼 서로 존대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윤철은 더 이상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지 않고 국숫집을 꾸린다. 술도 팔지 않는 국숫집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국수를 삶는 일은 행자의 수행과 다름없다. 이 부녀는 요원한 섬을 꿈꾸며 허우적거리는 대신 고독한 수행자가 되는 방식을 택한다.
절해고도는 유배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컨테이너 작업장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삶과 시장으로 나가 국수를 삶는 삶 중 어느 쪽이 폐쇄적인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윤철은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쪽에 가깝다. 이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끼지 못해 좌절감과 자격지심으로 괴로웠다면 이제는 잘 맞는 옷을 찾아 입은 셈이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러빙 하이스미스>라는 제목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 <캐롤>과 <리플리>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9)>라는 제목의 단편집이 있는데, 러닝타임 내내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했다.
김미영 감독은 영화에서 '관계를 통한 성장'에 방점을 찍었으나 윤철과 매우 긴밀한 관계였던 영지(강경현 분)의 존재는 이 텍스트와 어울리지 않아 생략했다. 관계보다는 작업하는(만드는) 인간으로서의 윤철에게 더 집중했다. 나는 윤철과 비슷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지나는 윤철에게 "평생 그렇게 살"라고 가시돋힌 말을 던진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갔을 때, 마침내 윤철도 자기 자리와 할 일을 찾았으므로 절해고도 같은 유배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평생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르게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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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년 8월 27일 | 16:00 - 17:5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2022년 8월 29일 | 19:30 - 21:2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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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노라] 끝장리뷰 |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 빨간색과 흰색 | 노동자의 2주 해석 | 성노동자에 대한 견해 | 눈(snow) 상징
[아노라]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노동자의 2주
Chapter 2 이반과 이고르, 빨간색과 하얀색
00:00 황금종려상
00:37 귀여운 여인, 대부
01:51 노동자의 2주
03:46 편견, 자본가
06:34 이반과 이고르
08:01 빨간색 하얀색
09:10 별점 및 한 줄 평
09:28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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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팔콘앤윈터솔져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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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1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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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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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타임라인*
00:00 클라이막스로 향해중
00:49 예상했던 짭틴아메리카
02:26 캡틴의 향수를 뿌린 샘
04:16 5화 카메오?
06:12 새로운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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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이세계 삼촌> 공식 예고편
《이세계 삼촌》, 7월 일본에서 넷플릭스 스트리밍 시작. 전 세계 공개 결정! 2017년 가을...... 열일곱 살 때 트럭에 치인 뒤로 17년간 쭉 혼수상태였던 삼촌이 눈을 떴다. 그리고 병실을 찾은 조카 타카후미가 만난 것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며 자신이 이세계 '그란바하마르'에서 돌아왔다는 삼촌이었다. ......그렇다, 삼촌은 머리가 이상해진 게 분명했다. 할 말을 잃은 타카후미. 하지만 삼촌은 마법을 사용해 이세계에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 주고, 타카후미는 그런 삼촌의 능력을 활용해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도움을 청할 다른 친척도 없는 처지라, 삼촌을 한집에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타카후미는 삼촌과 함께 살면서 삼촌의 이세계 모험은 물론 세가 게임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 고독하고 가혹했던 삼촌의 지난 세월을 들을 때면 내심 즐거워하면서도 마음 아파하고. 이제, 세대가 다른 이 두 남자가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평범한 아파트 단지 한구석에서 신감각 이세계 코미디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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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섹스/라이프> 공식 예고편
[2021년 6월 25일, 넷플릭스 공개]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둔 욕망.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